한국은행 포항본부가 지난 7일 발표한 2월 경북동해안지역 기업경기조사에 따르면 제조업과 비제조업의 기업경기가 하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은행은 경주를 비롯한 포항, 영덕, 울진 등 경북동해안지역 293개 법인기업을 대상으로 지난 2월 8일부터 28일까지 기업경기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제조업의 기업경기실사지수가 88로 전월에 비해 2p 하락했으며 다음달 전망지수도 전월에 비해 2p 하락한 것으로 집계됐다. 제조업 실적으로 살펴보면 채산성은 실적 81로 전월에 비해 1p 상승했으며 자금사정도 실적 80으로 전월에 비해 4p 상승했으나 매출이 큰 폭으로 하락해 전반적 하락을 이끌었다. 제조업 매출 실적은 94로 전월에 비해 12p 하락했으며 다음달 전망도 전월에 비해 9p하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제조업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매출 하락으로 이어졌으며 내수부진과 인력난, 인건비 상승 등의 영향으로 경영에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비제조업도 기업경기가 좋지 않지만 향후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비제조업 업황 기업경기실사지수는 78로 전월에 비해 1p 하락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다음달 업황 전망 기업경기실사지수는 82로 전월에 비해 12p 상승했다. 비제조업 실적을 살펴보면 매출이 83으로 전월에 비해 7p 하락했으나 다음잘 전망치는 1p 상승했다. 채산성의 경우 실적이 77로 전월에 비해 8p 하락했으나 다음달 전망은 85로 전월에 비해 2p 상승했다. 자금사정은 전월에 비해 7p 하락했으나 다음달 전망치는 전월에 비해 3p 상승했다. 비제조업은 인력난과 인건비 상승의 영향이 가장 컸으며 내수부진과 경쟁심화 등으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주)한국공간정보통신이 누구나 손쉽게 지도를 제작할 수 있는 ‘모두의지도’ 베타 서비스를 론칭했다. 이 서비스는 지금까지 전문가들만이 활용하던 지도 제작에서 탈피해 전문교육을 받지 않은 일반인들도 손쉽게 본인만의 지도를 만들 수 있게 개발, SaaS(Software as a Service) GIS형태로 서비스한다. 따라서 이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인터넷을 통해 공개된 공공 데이터나 본인이 가지고 있는 데이터를 이용해 다양한 형태의 사용자 참여형 지도를 만들고 활용할 수 있다. ‘모두의지도’ 서비스는 주소 칼럼을 포함하는 Excel, CSV 형식 파일을 서비스 웹상에 드래그 앤 드롭함으로써 누구나 손쉽게 지도를 제작할 수 있는 서비스이다. 안드로이드, iOS 사용자 모두 각각 플레이스토어, 앱스토어에서 ‘모두의지도’((주) 한국공간정보통신) 앱 설치를 통해 정보를 올릴 수 있으며, 공개지도와 비공개지도로 구분해 다수의 사용자가 하나의 지도를 제작하는 것도 가능하다. (주)한국공간정보통신 김인현 대표는 현재 다양한 형태의 공공데이터가 오픈돼있어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누구나 손쉽게 공간정보가 포함된 자신만의 지도데이터를 만들 수 있다고 이번 서비스의 의미를 전달했다. 이 서비스는 코로나환자 위치추적과 군산대학교의 젠트리피케이션 관련 연구에도 활용된 적 있고, 롯데글로벌로지스는 이 서비스에 포함된 경로 안내 엔진을 활용 택배 시스템에서도 활용하고 있다. ㈜한국공간정보통신은 ‘모두의지도’ 서비스를 활용해 제작한 샘플 지도를 공개하고 있으며 샘플 지도는 ‘모두의 지도’ 사이트(https://modoomap.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인현 대표<인물사진>는 “(주)한국공간정보통신은 대한민국 공간정보 SW 제작 기업 중 가장 오래된 회사로 자사의 GIS 전문 역량을 녹여 넣어 프로세싱 속도가 빠르며 대규모 정보처리 및 추가 공간분석과 구글어스나 브이월드등과 결합해 3D GIS로 적용이 가능한 점이 ‘모두의지도’ 서비스의 차별점이다”고 밝혔다. 모두의 지도는 다양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오픈소스GIS나 상용 GIS SW를 도입할 경우 엔진과 부가 소프트웨어, 디지털 맵 등을 따로 구매하느라 수억원의 사업비용과 긴 개발기간이 소요된다. 구축 이후에는 매년 유지보수 비용이 발생한다. 이에 비해 ‘모두의지도’는 무료 혹은 최소 월 2만원의 구독형으로 서비스를 제공해 경제적 장점을 살렸고, 최신 GIS 기술을 적용해 새로운 제품 확보 등에 대한 진입장벽을 크게 낮췄다. 모두의지도 서비스는 특히 지난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서울 일부 지역에 대해 대선 후보 홍보 현수막 현황을 지도화해 공개, 각 후보 특성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한 활용사례를 제시했다. 지난 대선에서 보았듯 공간적 분포 확인이 쉽고 후보별 홍보 문구 내용 확인이 가능해 유동인구 등 공공데이터와 결합할 경우 각 지자체나 국가 전략 수립, 기업영업전략 기획 등에도 활용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공간정보통신에 따르면 2022년 글로벌 디지털 지도 시장 규모는 약 32억6700만 달러로 추정되며 공간정보 분야인 3D, 디지털트윈, 스마트도시, 교통정보, 국방, 시설물관리, 공간정보, 지리, 역사 교육, 등산, 골프, 해운, 해양조사, 산림조사관리 등 스포츠 분야, 거래처 관리를 통한 영업 측면 활용,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한 커뮤니티 매핑 등 그 활용성의 확장은 다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참고로 SaaS는 사용자가 웹을 통해 접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클라우드 기반 소프트웨어와 이를 제공하는 서비스 형태를 아울러 지칭하는 용어다.
경주 근대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는 경주제일교회가 올해 120주년을 맞았다. 지난 1902년 5월 10일 작은 예배당에서 첫 예배를 시작으로 120년의 역사 속에서 꺼지지 않는 부흥과 발전을 이어온 경주제일교회. 그 배경에는 뜻깊은 역사의 현장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고,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한결같은 모습이 있었다. 오는 5월 경주제일교회 120주년을 앞두고 박동한 담임목사를 만나 교회의 역사와 지역사회에서의 역할, 향후 계획 등을 들어봤다. #경주제일교회 첫 신자 이남상 일화 1902년 봄, 안의와(James Edward Adams, 1867-1929) 선교사가 일행을 거느리고 경주 장날 운집한 조선인들을 향해 처음 노상에서 전도를 했다. 이때 처음으로 경주에 예수교인이 생기게 됐고, 첫 신도가 바로 이남상이었다. 모내기가 한창이던 날, 이튿날 모내기를 위해 논바닥을 정리해 놓고 모를 심으려 하는데 그날이 주일이었다. 이남상의 가족은 주일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하루 편히 쉰 후 다음날인 월요일에 모를 심었다. 이 일로 “예수쟁이 이생원은 게으르다”는 마을 사람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그런데 그 해 이남상은 주일에도 모심기를 한 마을 사람들보다 더 많은 벼를 수확하게 됐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이생원이 믿는 하나님은 참 영험이 있구나”하며 찬사를 보냈다. 안의와 선교사는 미국 북장로교 파송 선교사로 대구, 경북지역 전역을 다니며 순회전도와 교회개척, 대구지역 기독교 학교를 세워 현대교육에 앞장섰으며, 대구를 중심으로 경상북도 각 지역의 장날을 택해 노방전도를 해왔다. 안의와 선교사의 노방전도로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은 이남상 외에도 이봉기, 박금철, 손월성, 최태연, 윤두희, 윤마리아, 김치안, 김영교, 김순명, 박수은, 박영우 등 많은 이들이 있었다. 그 후 이들이 중심이 돼 당시 경주읍 성건동 197번지의 초가를 마련해 임시 집회장소(노동리교회, 현 경주제일교회)로 정하고 안의와 선교사의 인도로 첫 예배를 드린 것이 지금부터 120년 전인 1902년 5월 10일, 그날을 기점으로 경주제일교회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3·1 만세운동’ 주도한 ‘경주제일교회’ 일본 제국주의에 항거해 민족 자주독립의 깃발을 올린 1919년, 당시 경주제일교회 박영조 목사는 전국적으로 확산돼가고 있는 3·1만세운동에 대해 경주에서도 동조해 줄 것을 제의받았다. 당시 교회의 중진들과 젊은 청년들의 뜻을 모아 3·1운동에 참가할 것을 결의하고 3월 11일, 12일 밤 교회가 운영하는 계남학교 사무실에 모여 13일 경주읍 큰 장날 거사할 것을 계획했지만, 당일 13일 새벽 일본 경찰의 습격을 받고 실패하게 됐다. 일제의 억압에 굴하지 않은 이들은 15일 작은 장이 열리던 노동리 봉황대에서 청년 박봉록, 서봉룡, 박무홍, 최성렬 등이 선봉에 서고 수많은 애국 청년들이 태극기를 양 손에 들고, 시민들과 합세해 거리를 누비며 ‘대한독립만세’를 목이 쉬도록 큰소리로 부르짖으며 3·1만세 운동을 감행했다. 이 사건으로 박영조 목사를 비롯해 박문홍, 김학봉, 손석봉, 최성렬, 김성길, 박봉록, 김성필, 김철 등이 체포돼 대구형무소에서 상당기간 옥고를 치러야 했다. 이는 경주 3·15만세운동 중심에 경주제일교회가 주축이 돼 일어났고, 전개됐음을 입증하고 있다. 경주3·15만세운동은 규모면에서 다른지역에 비해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이후 ‘금관총 출토유물 경주유치운동’ ‘신라고적환등회’가 전국적 전개로 이어지면서 독보적인 행보를 드러냈다. ‘금관총 출토유물 경주유치운동’을 비롯한 ‘신라고적환등회’는 표면적으로 계남학교 학자금을 모으기 위한 것이지만, 경주 3·1만세 운동 이후 하나의 민족정신을 일깨우는 민족운동으로까지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특히 지역민들이 신라 문화재를 스스로 지켜내겠다는 것 자체로도 충분히 독립운동에 상응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렇게 경주제일교회는 경주지역 기독교 신앙의 중심으로 자리를 지켰을 뿐 아니라 뜻깊은 역사의 현장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함으로 지역사회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지역민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지역사회 섬김통한 목회활동 경주제일교회는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선교의 일환으로 교육선교에 앞장섰다. 경주제일교회는 1909년 8월, 경주 유일의 개화기 신문화를 가르치고 창줄하는 교육기관인 ‘계남학교’를 설립했으며, 계남학교는 ‘문화학원’으로 이어졌다. 이밖에 ‘고등공민학교’ ‘제일어린이 선교원’ ‘경로대학’ ‘농아인 교회’ 설립 등 교육과 섬김을 통한 복음의 접촉점을 끊임없이 마련해 왔다. 현재는 로벤피스 커피숍과 바자르 운영을 통해서 선교와 구제에 힘쓰고 있다. 이외에도 보훈가족과 환경미화원, 장애인을 초청해 위로하는 일을 비롯해 장학사업, 임산부학교, 아기학교, 어린이도서관 등 경주제일교회는 지역사회 섬김을 통한 사랑과 봉사의 목회활동이 널리 알려지면서 2017년에는 월간 한국인에서 선정한 사회공헌-종교부문 ‘대한민국혁신한국인&파워브랜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창립 120주년 기념행사 개최 경주제일교회는 지난 120년의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지역과 이웃에 참된 행복을 전하고자 다채로운 기념행사를 준비 중에 있다. 지역민들의 축제의 장이 될 이번 행사는 △문예부문 - ‘창립 120주년 문예대전’(공모-미술·문학, 4/12~22) △음악부문 - ‘창립 120주년 감사음악회’ ▶바리톤 최현수 초청음악회(4/3) ▶오르가니스트 신동일 초청음악회(7/3) ▶필그림 미션콰이어 합창단 초청음악회(11/6) △역사부문 - ‘120년사 출판 감사예배 및 기념 강연회(5/15)’ △예배부문 - ▶창립 120주년 감사예배(5/8) ▶창립 120주년 기념음악회(연합찬양대, 5/8) △선교부문 - ▶남아공임인모 선교사 파송식(1/2) ▶일본 김남석 선교사 파송식(미정) 등 문화와 기독문화를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있다. 자세한 사항은 경주제일교회 행정실(054-742-0211)로 문의하면 된다.
경주소방서는 지난 4일 경북 울진에서 시작된 산불을 진화하기 위해 소방대원 10명과 소방펌프차량 5대를 긴급 지원했다. <사진> 이번 지원은 경북 울진에서 발생한 대형산불이 강원도 삼척 등으로 번지면서 소방청에서 발령한 소방동원력에 따라 산불진압에 적극 대응하기위해 마련됐다. 이에 경주소방서는 산불이 시작된 지난 4일 화학차 소방차량 5대와 소방대원 10명을 교대로 긴급 파견됐다. 산불 진압을 위해 동원된 대원들은 경북 울진군 죽전면 야산 일대와 한울원자력본부 등에 배치돼 화재진압 및 급수지원, 민가 방어선 구축 등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현재 이들은 휴식 후 교대방식으로 산불현장에 투입되고 있으며 관할 현장지휘소에 따라 주어진 임무를 성실히 수행해 신속한 산불 진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경주소방서 관계자는 “현재 경주소방서 대원 10명씩 교대로 지원을 나가고 있다. 지역에서 화재가 발생할 시 대응 가능한 인력은 상시 대기중이니 지역 주민들께서는 큰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고 전했다.
1월과 2월 강우량이 예년의 1/10 수준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건조한 날씨와 가뭄으로 산불에 취약한 환경에도 지역 저수 저수율은 예년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농업용수와 식수부족은 한시름 놓게 됐다. 예전 1/10 수준의 비 내려 경주시와 농어촌공사에 따르면 올해 1월과 2월 0.3mm과 1.7mm의 비가 내린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강우량은 예년의 1/10에 수준이다. 지난 2021년 강우량은 1월 18.5mm, 2월 19.1mm, 2020년 1월에는 158.1mm, 2월 41.7mm의 비가 내렸다. 2019년에도 1월 14.3mm, 2월 24.9mm가 내려 올해 1월과 2월 강우량이 극히 적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올해 강우량 감소와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지역에도 크고 작은 산불이 이어졌다. 5일 문무대왕면에서 발생한 산불을 비롯해 외동읍과 양남면 등 5건의 산불이 발생했다. 이 산불로 3.3㏊가 불탔으며 피해금액은 1억3000만 원이 발생한 것으로 소방당국은 집계하고 있다. 저수율 예년 수준 유지 적은 강우량에도 경주지역 저수지 저수율은 예년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농어촌공사에 따르면 공사가 관리 중인 54개 저수지 평균 저수율은 지난 8일 기준 80.1%를 기록했다. 지난 2019년 평균 저수율 82.75%, 2020년 83.44% 보다 낮지만 2021년 77.66% 보다는 높은 수치다. 공사 관리 저수지 중 저수율이 높은 곳은 북군저수지와 성산저수지, 대현저수지, 하동저수지, 입실저수지, 성지저수지, 화곡저수지 등으로 저수율 100%를 기록하고 있다. 저수율 가장 낮은 저수지는 명계저수지로 54.9%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농어촌공사 경주지사 여창기 씨는 “지난해 가을비가 많이 왔고 가뭄을 대비해 수문을 개방하지 않았기에 저수율을 유지할 수 있었다”면서 “현재 평균 저수율이 50% 이상을 상회하고 있어 당분간 가뭄이 지속되더라도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수율 50% 미만으로 줄어들면 한해대책을 수립해 가뭄 해소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경주시가 관리 중인 저수지는 예년에 비해 저수율이 낮아진 상황이다. 경주시에 따르면 시가 관리 중인 360여 개 저수지의 평균 저수율은 77.1%로 조사됐다. 지난 2019년 3월 87.8%, 2020년 3월 87.8%, 2021년 3월 81.4% 등 80%를 상회하던 저수율이 70%대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지난 1월 74.5%였던 저수율을 2월 75.3%, 3월 77.3%까지 점차 높이고 있다. 덕동호 식수 걱정 ‘no’ 지역에 당분간 비가 내리지 않더라도 식수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보인다. 지역 식수원인 덕동호의 저수율은 72.6%로 70% 이상을 유지하고 있어서다. 지난 2019년 3월 84.2%, 2020년 3월 88.2% 보다는 감소했지만 지난해 같은 기간 64.8%보다 상승했다. 덕동호 저수량은 2019년 2811만 톤, 2020년 2873만 톤을 유지하다 지난해 3월 2119만 톤으로 줄어들었다가 올해 3월 2354만 톤을 기록하고 있다. 경주시 관계자는 “올해 누적 강우량이 2.1mm로 덕동호 저수량이 다소 줄었지만 지난해보다는 증가한 상황이다”면서 “3월과 4월 농번기 농업용수 공급과 식수 공급에 문제없도록 관리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두 바퀴 의원으로 잘 알려진 윤병길 경주시의회 전 의장이 6.1지방선거를 앞두고 후진을 위해 아름다운 용퇴의사를 밝혀 화제가 되고 있다. 윤병길 전 의장의 지역구인 용강동·천북면은 그동안 쌓아온 자신의 텃밭으로, 지난 2010년부터 내리 3선을 한 지역이기에 이번 불출마 선언이 갖는 상징적 의미는 더욱 크게 다가온다. 윤 전 의장은 지난 1일 용퇴 의사를 자신의 SNS를 통해 공개한 이후 지역주민들로부터 “출마하면 당선은 당연시되는데 왜 불출마를 하느냐”며 내심 섭섭한 마음을 전해오기도 한단다. 하지만 그는 ‘향후 경주발전을 위해 더 능동적으로 일할 후진을 위한 것’이라는 불출마 결심 이유를 일일이 설명하며 진심을 전하자 박수를 보내는 주민들도 많아졌다고 한다. 윤 전 의장은 “대과없이 공직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은 사랑하는 경주시민들과 용강·천북 지역주민들의 은혜 덕분으로, 한없이 고맙기만 하다”며 “경주발전과 민의를 대변하며 달려온 지난 12년간의 의정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대한 관심과 사랑을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그간의 소회를 밝혔다. 그는 “기초의회는 경륜과 역동성이 조화를 이룰 때 안정적이면서도 힘차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서 “이제는 후배 정치인들을 위해 스스로 자연스럽게 물러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용퇴이유를 재차 밝혔다. 윤 전 의장의 아름다운 용퇴에는 선친인 고 윤치홍 의원(경주시·군 통합의회 초대 의원)의 평소 유지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윤 전 의장은 “아버님도 당시 초선 의원을 역임하신 후 스스로 물러나셨다”면서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버려라’, ‘물러날 때 물러설 수 있고, 놓을 때 놓을 줄 아는 사람이 돼야 한다’ 등 생전 아버님이 하신 말씀을 항상 가슴에 품고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윤 전 의장은 현장 중심 속에 ‘생활정치’를 실현한 대표적 정치인으로 손꼽힌다. 그는 정치에 입문한지 20년 넘도록 두 바퀴 자전거와 함께 했다. 심지어 제8대 전반기 의장 시절 2년 동안에도 의장 직무수행 후 퇴근해서는 자전거를 타고 지역 곳곳을 누볐다. 윤 전 의장은 “인도블럭 파손에 따른 통행 위험 등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 평소 볼 수 없었던 개선점들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시민 안전을 위협하는 문제를 파악하고 개선해 나가는 것이 제게는 중요한 의정활동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그의 생활정치가 실현된 사례는 곳곳에 있다. 평소 자신이 자주 다니는 소금강산 등산로를 정비해 주민들에게 쾌적하고 안전한 등산길을 제공했다. 또 근화여고 앞 일방통행 도로를 양방통행으로 변경해 이 일대 교통소통을 원활하게 한 것은 주민들 사이에서 종종 회자되는 생활정치의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윤 전 의장은 “지난 의정활동 12년을 돌이켜보면 주민의 대변자로 머리를 맞대고 열띤 토론을 벌였고, 때로는 현장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청취하면서 최선의 해답을 구하고자 많은 고민을 했다”면서 “현장 중심 속에 생활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의정활동에 최선을 다할 수 있었던 힘은 결국 시민들의 지지와 격려 때문에 가능했다”고 밝혔다. 그의 생활정치 성과는 2012년 ‘YMCA 의정지기단 베스트 의원 선정’, 2015년 ‘경북의정봉사대상’, 2017년 ‘대한민국 지방의회 의정대상’과 ‘대한민국 바른 지도자 지방의정 부문 대상’, 2019년 전국 의정봉사대상 등 다양한 수상 경력으로 입증되고 있다.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어떤 인물을 선출해야 되느냐는 질문에 그는 “지방자치법 전면 개정에 따라 올해 자치분권 2.0시대를 맞았다”면서 “진정한 지방자치는 중앙정부의 일률적인 경직성을 탈피하고, 경주지역 특수성을 살리며 지역발전과 주민 삶의 질을 향상시켜나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제 경주시를 위해 일할 새로운 일꾼을 선출할 시기가 도래했다. 경주시민들이 향후 4년 동안 한결같이 지역을 위해 일할 선출직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할 때”라며 “이번 지방선거에 시민의 소중한 권리이자 의무인 투표 참여로 참 일꾼을 잘 선출해 주길 바란다”고 했다. “경주발전과 시민들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이 많이 남겨둬 아쉬움도 따른다”는 윤 전 의장은 “이제는 후진들이 더욱 도약하는 기초의회를 만들어 경주발전에 속도를 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했다. 윤 전 의장은 마지막으로 “헤어짐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만남이자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평생 경주에서 살았고, 앞으로도 살아갈 곳이 경주”라며 “앞으로도 오직 경주발전을 위해 항상 여러분과 함께 고민하며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성원해 주신 시민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충만하시길 기원드린다”며 시민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경주시는 오는 31일까지 노후경유차 조기폐차 신청접수를 받는다. 노후경유차로부터 나오는 대기오염 물질의 저감을 위해 시행중인 ‘노후경유차 조기폐차 지원사업’은 배출가스 5등급 경유자동차와 2005년 이전 배출허용기준이 적용·제작된 도로용 건설기계 덤프트럭·콘크리트 믹서트럭·콘크리트 펌프트럭 등 3종이 대상이다. 시는 올해 총 48억원의 예산을 들여 3000대 가량 노후경유차의 조기폐차를 지원할 예정이다. 3.5톤 미만의 승용차는 보험개발원이 산정한 차량기준가액 기준, 폐차지원금 50%와 신차구입지원 50% 비율로 최대 300만원까지, 그 외 차량은 폐차지원금 70%. 신차구입 30%를 지원한다. 특히 영업용, 소상공인, 기초생활수급자 및 차상위 계층의 차량, 저감장치미개발·장착불가능 차량은 최대 600만원까지 지원가능하다. 3.5톤 이상의 경우 3000만원 이내 범위에서 폐차지원금이 100% 지원되며, 신차를 구입할 시 200%까지 지원된다. 건설기계는 폐차지원금 100%, 신차구입지원 200%로 최대 4000만원까지 지원할 예정이다. 노후경유차 조기폐차 지원을 받으려면 △신청일 기준 경주시에 최근 6개월 이상 연속 등록 △최종 소유기간이 신청일 기준 최근 6개월 이상 △관능검사 결과 적합 판정을 받은 차 등의 기본 지원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인터넷이나 주소지 읍·면·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신청 가능하며, 4월 중에 지원대상자 선정 통보가 이뤄질 계획이다. 경주시 관계자는 “조기폐차 지원 등 미세먼지 저감사업으로 깨끗한 대기환경 조성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대상 차량 소유자들의 적극적인 관심을 바란다”고 말했다.
경주시의회가 의정활동 전문성 및 역량강화를 위한 ‘정책지원관’ 5명을 공개 채용한다. 지방자치법 전면 개정에 따라 기초의회 인사권 독립의 첫걸음을 내딛게 된 것. 정책지원관 응시원서는 오는 21일부터 23일까지 3일간 의회사무국을 방문하거나 등기우편으로 접수하면 된다. 4월 1일 1차 서류전형 합격자 발표 후 2차 면접을 거쳐 4월 중 최종 합격자를 발표할 예정이다. 채용된 정책지원관은 일반임기제(7급상당)로 2년 동안 근무하게 되며 실적에 따라 총 5년 범위 내에서 연장 가능하다. 응시자격은 만20세 이상으로 △학사학위 취득 후 1년 이상 관련분야 실무경력이 있는 사람 △3년 이상 관련분야 실무경력이 있는 사람 △8급 또는 8급 상당 이상의 공무원으로 2년 이상 관련분야 실무경력이 있는 사람으로 지방공무원법 제31조의 결격사유가 없어야 한다. 이번에 선발하는 정책지원관은 개정된 지방자치법 시행에 따라 지방의회의원의 조례 제·개정, 예·결산 분석, 행정사무감사 질의서 작성 등 의정활동 지원을 위한 의정자료 수집·조사·연구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앞서 경주시의회는 지난 4일 인사위원회를 개최하고 채용일정과 응시자격 등을 최종 확정했다. 이어 7일부터 17일까지 총 11일간 공고 중이다. 자세한 사항은 경주시의회 홈페이지 채용공고, 나라일터 채용정보란 공고문을 참고하거나 경주시의회 의정팀으로 문의하면 된다. 서호대 의장은 “자치분권 2.0시대를 맞이해 첫 도입되는 정책지원관에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시길 바란다”며 “우수한 인재를 채용해 의회 본연의 역할인 집행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 기능 향상으로 전문성 있고 신뢰받는 경주시의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8개 골목관광상권을 비교 분석해 기획보도를 한 의도는 단 하나의 지향점을 찾기 위해서였다. 전국 각지에 존재하고 있는 골목상권 그 자체만의 활성화가 아니라 인접한 상권과 지역 관광산업의 활력을 찾는 방안을 모색해 나가자는 것이었다. 특히 경주의 황리단길은 지난 2016년부터 전국 각지의 젊은 층들이 찾으면서 지역 상권지도를 바꿔버렸다. 반면 경주 도심상권은 침체되기 시작했고,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여파로 침체 속도도 더욱 빨라지고 있다. 그나마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의 상권 르네상스 사업에 선정돼 올해부터 본격 추진하고 있어 기대를 모으고 있다. 도시재생뉴딜사업 등 기존 사업과는 달리 실질적인 상권 회복에 중점을 두고 진행되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본지는 여섯 차례에 걸쳐 8개 골목상권에 대한 특징과 현황, 개선점 등을 보도했다. 이번 호에서는 경주 황리단길을 중심으로 도심 상권과 전통시장 등 인접한 상권을 연계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을 타 지역 사례를 통해 살펴봤다. 그리고 경주시가 추진 중인 중심상권 르네상스 사업에 대해 짚어보고 이번 기획보도를 일단락한다. -편집자주
오미크론 변이 확산으로 다시 찾아온 코로나19 위기 속에 지난 2일 전국의 유·초·중·고교가 일제히 개학했다. 경주교육지원청에 따르면 경주에서는 유치원 57개, 초등학교 44개, 중학교 22개, 고등학교 19개, 특수학교 1개 등 총 143개 학교가 이날 개학했다. 이중 141개 학교가 정상 등교했다. 전면 원격수업 1개 고등학교, 일부 원격수업 1개 중학교를 제외하고 모든 학교가 대면 수업을 시작했다. 전체 학생 수는 2만6300여명에 이른다. 문제는 오미크론 확산이 전국적으로 17만명선을 오르내리다 지난 1일 20만명선을 넘어섰고, 경주지역도 예외 없이 확산세가 가파른 상황에서 개학했기 때문이다. 경주에서는 지난달 28일 기준 누적 확진자가 1만명을 넘어서 총 1만521명을 기록했다. 2월 확진자만 7888명으로 지난 2020년 2월 지역 내 첫 발생 후 전체 누적 확진자의 75%가 한 달 만에 쏟아져 나온 것이다. 특히 지난달 22일 609명이 발생해 일일 최다 확진자수를 기록했고, 이후부터 매일 500명대의 확진자가 나오면서 확산세가 전혀 꺾이지 않고 있다. 또 검사건수 대비 확진자수를 나타내는 확진율도 2월 한 달간 14.5%로, PCR검사를 받은 사람 100명 중 14~15명이 확진판정을 받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교육부는 그동안 3월 신학기부터 정상 등교 방침을 확고히 했다가 자율적인 원격수업 카드를 꺼내 들면서 학교 현장과 학생, 학부모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방역당국은 3월 중순경에는 하루 확진자가 27만명에 이를 수 있다는 예측도 내놓았다. 백신접종율이 낮은 청소년들이 등교해 학생 간 전파가 많아지고, 또 그 가족들에게 전염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예상 가능한 확진자수 급증에도 지역 내 대다수 학교가 일제히 개학했고, 적절한 대책도 없다보니 학부모들의 불안감만 커지고 있다. 물론 코로나19 이후 등교일수 감소로 상하위권 학생 간 학력 격차가 심화하는 등의 부작용은 막아야 한다. 하지만 오락가락한 정책으로 인해 학생, 학부모들의 혼란을 가중시켜서도 안 될 일이다. 방역당국과 교육당국은 긴밀한 공조를 통해 학생들이 학교에서 안전하게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지난 1일은 103주년째를 맞은 3.1절이다. 전국에서 국권회복을 위해 헌신한 선조들을 기리기 위한 기념식이 열린 가운데 경주에서는 좀 더 특별한 3.1일절을 맞이했다. 경주 3.1 독립만세운동 발상지 표지석을 설치하고 제막식까지 거행해서다. 경주시가 이번에 설치한 표지석은 상판 가로 1.8m, 세로 1m 크기의 자연석으로 제작했다. 표지석 받침은 가로 2.2m, 세로 0.3m 크기다. 표지석 전문에는 ‘경주 3·1독립만세운동 발상지’라고 새겼다. 표지석이 세워진 곳이 1919년 3월 15일 경주3.1만세운동이 일어난 역사적인 장소라는 내용과 당시 독립운동에 대한 의의를 자세히 담기도 했다. 다만, 표지석이 설치된 경주 3.1만세운동 발상지가 노동·노서동 고분군이 위치한 문화재보호구역 내이어서 기대만큼의 크기로 제작되지 못한 점은 시민 입장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경주에서 실제 3.1만세운동이 거행된 것은 1919년 3월 15일이었다. 장소는 당시 작은 장이 열리던 노동리 봉황대였다. 앞서 3월 13일 노동리교회(현 경주제일교회) 신자를 중심으로 봉황대 일원에서 만세시위가 예정됐지만, 일제에 의해 발각되면서 안타깝게 무산됐다. 하지만 이들의 계획이 일반에 알려지며, 이틀 뒤인 3월 15일 기독교인, 천도교인, 시민 등이 참여한 만세운동이 성공적으로 거행됐다. 특히 경주에서 전개된 3·1만세운동은 1921년 금관총 출토유물 경주유치운동과 민족운동인 신라고적환등회로 이어지는 등 특별하고도 독보적인 운동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같은 가치에 비해 표지석 설치가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선조들의 국권회복을 위해 희생했던 경주3.1만세운동의 정신을 후손들에게 전하는 노력을 이어가야 한다. 그리고 학계에서는 일제강점기 나라를 되찾기 위해 기꺼이 나선 경주지역 독립운동가도 현재까지 알려진 것보다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제대로 된 자료수집과 연구를 통해 경주지역 독립운동사를 재정립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18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도시육성법을 제정하고 그에 따라 법정문화도시 공모사업을 하고 있다. 이 사업은 기존 하드웨어 사업이 아닌 인력양성, 문화생태계 조성 등의 의미가 들어가 있다. 공모에 선정된 기초지자체에게 5년 동안 최대 200억의 예산을 지원한다고 되어 있다. 작년 12월에는 3차 문화도시 평가와 4차 예비문화도시를 선정한 바 있다. 1차에 7개 도시, 2차 5개, 3차 6개 도시가 선정되는 동안, 경주시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경주는 누가 뭐래도 자타가 공인하는 유서 깊은 역사문화도시 아닌가? 그런데 이 법정문화도시 지정에 경주의 이름이 보이지 않음은, 평소에 경주에 대한 생각과 기대에 어긋나 보인다. 물론 정부 사업은 얼마간의 지역 안배도 있고 특히 대형 정책 사업은 정치적 고려가 없다고 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라면 경주로 등식이 되어야 할 판에 법정문화도시 이름에 보이지 않은 것은 자못 아쉽다, 지역소멸의 시대에 지역 간 문화생활의 불균형과 격차가 심하다. 지역 간 문화예산 격차가 심하고 지자체별 문화예산은 전체 예산 중 0.57%에서 13.28%까지 지자체별로 차이가 발생하고 있다. 정부사업은 우선적으로 소멸해가는 지역을 되살리고 국가균형발전전략의 일환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말하자면 이러한 사업은 지역문화생활의 지역불균형을 해결하려는데 성격이 맞춰져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맥락에서만 보면 경주시는 타 시군에 비해 문화적 기반이 비교적 우수하다고 하겠지만, 무엇보다 이 법정문화도시 사업의 성격은 지금까지 그러했듯이 위로부터 시행하는 사업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말하자면 풀뿌리 문화사업의 기획력과 자생력과 시민들의 문화마인드의 생산성을 보고자 하는 것이다. 지역의 문화적 소프트웨어와 지역문화를 끌어가는 힘을 보는 것이라 하겠다. 문화자치역량을 시험하는 잣대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지속가능한 문화도시로 성장시키기 위해서 이사업을 주목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도시가 되면, 문화를 통한 사회 활성화 및 지역 자치기반을 구축하게 될 것이다. 문화도시 활성화를 통해 도시민의 문화적 삶의 질 향상과 정주가치 확보, 문화가치 중심의 사회생태계에 기반을 두는 지역의 사회적 효과를 창출할 것이다. 그리고 문화적 재생의 효과가 있을 것이다. 문화적 도시재생사업은 유휴공간이나 시설에서 문화적인 활동을 통해 지역을 재생시키는 것으로 원도심의 유휴공간을 시민의 힘으로 재생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문화도시는 지역의 시대에 지역에 사는 시민들에게 경제적인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자존감을 부여할 것이다. 이러한 자존감이 곁들여진 삶의 모습은 당연히 역사문화도시로서 관광도시로서의 경주의 역량도 배가하리라 믿는다. 지금까지 법정문화도시로 지정된 몇 지자체의 특징을 요약해보면 장차 경주가 문화도시로 지향해야할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우선 그들 도시는 창조집단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주민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문화예술을 즐기고 누리고 있다. 그리고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주민들을 대상으로 아닌 주체로 키우는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이들을 조화롭게 풀어내는 역량도 필요하다. 지역문화에 자긍심을 가지고 지역문화를 꽃피우려는 간절함이 보인다. 로컬 크리에이터는 물론 문화기획가 양성도 필요하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람을 모으고 문화 학습능력을 길러야 한다. 지역에 필요한 전문가를 초청하고 머리를 빌려서라도 해야 한다. 경주는 오랜 역사문화도시로서 인프라와 자원은 풍부하다고 하겠지만 문화자치역량이 있는지 스스로 성찰해볼 때이다. 경주를 문화도시로 성장시키려는 간절함이 있는가? 이 간절함을 바탕으로 장기적인 비전과 계획을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경주시민이 문화기획의 주체가 되어 지역주민이 일상으로 문화생활과 활동을 통해 예술, 문화, 아름다움을 공유하는 매력적인 도시 거듭나기를 바란다. 그것이 역사문화도시로서 경주의 문화를 튼튼히 하고 경주 문화를 건강하게 가꾸는 길이다. 물론 경주시 문화관계 담당부서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으리라 본다. 그리고 정부사업의 선정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법정문화도시 사업의 선정에 따른 경주시 지역문화의 현주소와 역량을 진단할 필요가 있다. 문화도시 지정 이 한 가지를 넘어 진정한 역사문화도시로 거듭나는 일이다. 문화도시가 되어야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관광도시도 될 수 있다. 경주가 역사문화도시로서 김구가 말한 진정한 문화의 힘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으면 싶다.
2000년대 초반에 한국공법학회 김효전 회장으로부터 부탁을 하나 받았다. 김 회장은 까마득한 선배로서 존경하는 분이니 부탁은 곧 지시와 마찬가지였다. 한국 헌법학의 제1세대 중 한 분인 박일경 선생에 대한 간단한 평전을 써달라는 것이었다. 알려진 대로 박일경 선생은 박정희 정권의 유신통치에 협력하였다. 그러나 그는 내 고등, 대학의 선배였고, 어떻든 위계질서를 무시할 수 없는 학문의 세계에서 저 위의 높은 의자에 앉은 분이었다. 고심했다. 하지만 결심했다. 분명한 역사의 잣대를 들이밀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가 외부세계를 내다보는 창문은 때가 끼어 흐릿했다. 바깥세상에서는 겨울을 지나 봄으로 가는 길목에서 천지간에 화려한 향연이 열리는 준비가 차츰 갖추어지고 있었다. 민주화를 외치는 부단한 노력에 의해 세상은 점점 바뀌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맑지 못한 창문을 통해서는 이 변화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겨울의 한가운데 있는 것으로 착각하며, 학자로서 취해서는 안 될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과거에 안주했다. 그 후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도 그때 인간적 정리를 끊어버리고 신랄한 비판의 자세를 견지한 것이 과연 합당했을까 하는 의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마음의 동요(動搖)를 여전히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 입바른 소리는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다시 그러지 않을 수 없다는 긴장 속으로 자신을 몰아넣는다. 나는 알려진 대로, 이 정부의 탄생을 위하여 일조를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정국에서 그 물꼬를 트기 위해, 당시 가장 선명한 보도를 하던 JTBC에 4번이나 나가 전 한국헌법회장으로서 탄핵에 찬성하는 입장을 밝혔고, 이에 따라 대다수의 헌법학자들도 내 의견에 동조하게끔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 중앙선대위에서 위원장직도 맡았고, 최고위 싱크탱크이던 민주통합포럼의 상임위원도 했다. 정부 출범 후 감사원장, 법무부 장관, 대법관으로 여러 번 물망에 올랐다. 그러나 이 정부,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쓴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정부에서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어 시행한 소주성(소득주도성장) 정책에서 핵심인 주 52시간제를 그는 ‘일자리 나누기’로 파악하였다. 하지만 이것과 소주성의 다른 기둥인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결합하여 ‘일자리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어쩌면 선연하게 보일 수 있는 모습도 그는 보지 못했다. 임기 내내 탁현민 비서관의 현란한 정치쇼에 의한 현실의 왜곡이 탁현민의 간사한 술책에 말려든 것이 아니라 어쩌면 문 대통령 그 자신의 흐릿한 눈이 그쪽을 선호하며 방향을 잡은 것인지 모른다. 강성친문들이 권력분립 같은 민주주의 원리를 부정하고 20년, 30년 장기집권을 하겠다고 백주대로상에서 권력에 흠뻑 취해 추태를 벌이는 언동을 할 때 그들의 이러한 네오 파시스트적 속성이 어쩌면 문 대통령 자신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강성친문은 단지 윗사람의 심기를 살펴 그 마음에 들려고 충성경쟁을 벌였을 것으로 본다. 완전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문 대통령도 그가 가진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내다보는 식견과 지혜가 충분하지 않다. 자신의 흐릿한 눈으로 본 영상을 실제의 모습으로 잘못 판단하여 적지 않은 실책을 저질러왔다. 그리하여 그는 때때로 헌정사의 전례를 마음대로 무시하는 만용도 저지른다. 그가 진정으로 자신이 정점으로 된 정부의 마지막을 깨끗이 수습하고 떠나려는 생각을 가졌다면, 전례에 따라 대선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행안부, 법무장관을 민주당 당적을 가지지 않은 사람으로 교체하고 중앙선관위를 보다 중립적인 형태로 바꾸어주었을 것이다. 얼마 전 유력한 대통령후보가 이 정권에서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도 법과 시스템에 따라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일갈했다. 그러자 문 대통령은 직접 나서서 현 정부를 근거없이 적폐수사의 대상으로 몬 것에 대해 강력한 분노를 표하며, 윤석열 후보의 사과를 요구하였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대통령이 가장 당선이 유력시되는 후보를 향해, 더욱이 대통령 선거 직전에 이런 행동을 하는 것 역시 우리 헌정사에서 전례 없는 일이다. 그가 직접적으로 개입하여 일으킨 무용하고 심히 과장된 ‘정치보복’ 논쟁은 결국 현실을 왜곡시키는 그의 흐릿한 눈이 원인이 되었다고 본다. 여하튼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이나 무리한 탈원전정책의 시행 등은 곧 들어설 새로운 정부에서 그대로 넘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동궁과 월지’는 얼마 전까지 안압지(雁鴨池)로 불렸다. 신라의 성대함을 간직한 안압지는 뭇새가 날아드는 적막한 연못과 무너진 건물로 쇠잔한 기운을 머금으며, 오랜 세월을 견뎌왔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안압지는 천주사(天柱寺) 북쪽에 있다. 문무왕이 궁궐 안에 못을 파고 돌을 쌓아 산을 만들었는데 무산십이봉(巫山十二峯)을 본떴으며, 화초를 심고 진기한 새들을 길렀다. 그 서쪽에 임해전(臨海殿) 터가 있는데, 주춧돌과 섬돌이 아직도 밭이랑 사이에 남아 있다”고 전한다. 임해전은 신라 시대의 궁전으로 건립연대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삼국사기』를 보면, 신라의 국운이 이미 기울어진 931년(경순왕 5)에 임해전에서 신라왕이 고려태조를 맞아 연회를 베풀었다고 하였으니, 신라의 흥망을 기억하는 임해전은 신라의 수많은 기억을 간직한 공간으로 인식된다. 옛 사람들은 높은 곳에 대와 정자 등을 짓고서 자연과 더불어 풍류를 즐겼다. 또한 상서롭고 나쁜 기운을 관망하여 기미를 살폈고, 백성과 함께 노닐며 수고로움과 편안함을 조절하는 방도로 삼았다. 특히 문왕은 영대(靈臺)를 지었는데, 백성들은 마음이 즐거워 자식이 부모의 일에 달려오듯이 애써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왔으니, 이것이 바로 덕치의 표본이었다. 임해정은 안압지 동쪽에 있었던 정자로 1926년 경주군수 박광렬(朴光烈)이 경주의 풍광을 즐기기 위해 안압지 주변에 정자를 건립하였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1977년에 경주시장 최태진(재임1976.02.26.~1978.08.02)과 경주시궁도협회의 주도로 임해정을 황성공원으로 옮겨 활 쏘는 호림정(虎林亭)으로 고쳐 걸었다. 김해출신 소눌(小訥) 노상직(盧相稷,1855~1931) 은 경주의 안압지를 찾아 최근에 세워진 임해정에 올라 풍광을 즐기고 박광렬의 시에 “이름난 도읍에 좋은 누각이 없어 안타까웠는데 아득한 천년 안압지 가에 마침 어진 부윤이 새롭게 지어 지나간 성대한 시대를 이었네(名都曾歎乏名樓 千載寥寥鴈鴨頭 適値賢矦修擧日 緬追前代盛繁秋)”라며 차운하였다. 노상직은 김해 생림면 금곡리에서 태어났으며, 김해 부사인 성재(性齋) 허전(許傳,1797~1886)에게 글을 배웠다. 동학이 일어나자 1895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금곡에 금산서당(錦山書堂)을 건립하고, 이듬해 노곡(蘆谷)으로 옮겨 자암초려(紫巖草廬)를 짓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문화재 도시 경주는 독특한 문화환경과 오랜 역사를 지닌 특수한 공간이다. 특히 신라의 문화가 지배적인 이곳에서 조선문화의 산물인 누각정대(樓閣亭臺)는 시대공존의 문물로 인식되어 영구히 보존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임해정기(臨海亭記) - 노상직 누각(樓閣)과 정자(亭子)와 대(臺)의 설치는 풍광(風光)을 보기 위함이요, 손님과 즐기기 위함이다. 게다가 시대의 흥망성쇠를 또한 볼 수 있는데, 황제는 12루를 짓고서 신명(神明)의 사람을 구하였고, 문왕은 영대(靈臺)를 경영하고서 백성들이 자식처럼 찾아왔다. 반면에 초나라는 장화대(章華臺)를 쌓고서 제후가 이르지 않았고, 오나라는 고소대(姑蘇臺)를 쌓고서 갑자기 고라니와 사슴이 나타났었다. 우리 땅에 있는 300칸의 청류각(淸流閣)과 500길[장(丈)]의 흘산정(紇山亭)은 모두 한 때 빼어났으나 성쇠의 기미가 남아있다. 신라는 잘 다스려졌기에 정자를 지어 경영할 마음이 없었다. 그러나 포석정의 유상곡수와 금오산의 구성대(九聖臺)는 빼어나 태평성대의 명승지가 되었지만, 시든 꽃과 무성한 풀만 부질없이 유람객을 배회하게 할 따름이었다. 박광렬 군수가 동도를 다스린 지 8년에 은혜를 베풀어 만들고, 또 무너진 곳을 보수하였다. 지난해는 집경전을 보수하며, 선왕의 성대한 뜻을 잊지 않았다. 이때 옛 수도의 이름난 자취가 많이 발견되었다. … 객사는 낮고 좁아 어찌할 수 없음을 늘 안타깝게 여겨 안압지 가 임해전 옛터 곁에다가 정자를 지었다. 임해전의 완성은 신라 중흥의 사이에 있었다. … 조정은 위에서 화하고, 백성은 아래에서 편안하였으니, 우리나라가 생긴 이래로 이와 같은 성대한 때는 없었다. 진실로 이름난 자취를 보고자하다면 이 임해전을 빼고서 어찌 가능하리오. 임해정이라 편액하였으니 신라의 성대함을 알 수 있다. 진기한 새와 꽃의 가득함이 비록 옛적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12봉의 청류(淸流)는 다함이 없고, 난간에 기대어 바라보면 문득 무산(巫山)과 동정(洞庭) 사이에 내가 있는 듯하였다. 불국사와 분황사의 경계가 서로 접하고, 옥적과 금척의 영이(靈異)함을 보는 듯 … 모두가 시야에 들어왔다. 하물며 대중에게 물어 돈을 모으고, 백성들이 공사 돕기를 수고로이 여기지 않았다. 군수가 나에게 기문을 부탁하였다. 나와 군수는 비록 서로 만나지는 못하였지만 미수(眉叟) 허목(許穆,1595~1682)·성호(星湖) 이익(李瀷,1681~1763)·순암(順菴) 안정복(安鼎福,1712~1791)·하려(下廬) 황덕길(黃德吉,1750~1827)의 문하에 있으며 나아가 서로 같음을 구하였기에 나는 끝내 사양하였다. 아! 동도는 우리 영남의 매우 가까운 곳이다. 위로는 세 성씨가 서로 전하고, 천년의 기틀을 공고히 이뤘으며, 아래로는 홍유 설총·문창 최치원·익재 이제현·회재 이언적 여러 선생이 도덕 문장으로 후인을 깨우쳤다. 정자에 오를 날을 청하여 서악서원과 구강서원과 옥산서원을 바라보니 사모함이 일었다. 고을의 선비들과 남은 일을 차례대로 밝혀 나가야하는 이유를 도모한다면, 또한 사문(斯文)의 성대함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덧 경주의 풍광들을 통해 기억을 소환하고 찾아다닌 지 수 년이 되었습니다. 주로 사라질 위기에 있거나 기록해야겠다고 판단했던 소재들이 대부분이었죠. 경주의 구석구석에서 벌어지는 삶의 자잘한 일상과 현장에도 주목했고요. 동국대 서양화과 김호연 교수님과도 작품으로 구현된 경주풍광과 함께 오랜 시간 연재를 해왔습니다만 교수님께서 편찮으신 바람에 저 혼자 연재를 이어왔습니다. 골목길 걷는 것이 취미인 제가, 며칠 전에도 구석지고 허름한 구황동 원효로 밤 골목길을 걸으며 상념에 빠졌습니다. 어두운 골목길을 밝고 따스하게 밝혀주는 가로등 불빛같이 노오란 희망을 김 교수님께 전하고 싶었습니다. 이 지면을 빌어 김호연 교수님의 빠른 쾌유를 빌어봅니다. 이곳 골목 구석구석에선 오래되어서 정겹고 순박한 생활의 민낯들이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골목길 걷는 것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수년전부터 황리단길의 북적함을 피하면서 아날로그 감성을 즐길 수 있는 동네로 구황동과 황오동을 찾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시내권 여행지와 멀지 않으면서도 경주의 일상적 ‘생활의 발견’에 젖어들고 싶을 때 이 동네들을 떠올리는 거죠. 천천히 걷는데도 제 발자국 소리를 들었는지 ‘컹컹’ 굵은 볼륨의 개 짖는 소리가 조용한 골목에 가득 찹니다. 저녁이 깊은 구황동 원효로 골목은 이제 차갑지 않았습니다. 겨울과 별반 달라지지 않은 별 변화없는 골목길인 듯해도 대기는 온화해졌고 살짜기 달달해진 온기가 얼굴에 와 닿더라구요. 구황동 골목길을 어김없이 밝히는 가로등들은 참 이상하게도 통일된 디자인이 아니었고 가로등마다 크기나 불빛의 밝기도 달랐습니다. 얼기설기 모양새도 허름했구요. 그런데도 이 오래된 동네의 골목과는 기막히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제 곧, 봄볕이 짙어질 구황동 골목에서는 나른하게 낮잠에 취할 고양이들을 만날테고 주민들이 일군 작은 텃밭에는 푸른 생명들이 돋아날 테죠. 담장 너머로 보이는 빨래들은 바삭바삭 햇볕에 구워질 테고요. 목련이니 모란이니 앞 다퉈 꽃들도 자지러질 테죠. 골목길에 켜진 소박한 가로등 불빛이 더욱 살갑게 다가오는 봄밤이었습니다. 좁고 구불한 구도심의 허름한 골목을 따스하게 밝혀주는 골목 속 가로등 하나는 안전하고 편하게 골목 속 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합니다. 어쩌면 지금의 우리는 길고 지리한 터널을 통과하고 있을텐데요, 그런 우리의 긴 터널과도 같은 골목길에서 그 가로등 하나가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따금씩은 골목을 비추는 가로등을 의지하며 경주의 봄밤 속을 걸어보세요. 시간은 흘러가고 오래된 동네 골목의 풍경들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을테니까요.
아프리카에 대한 평소의 생각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영화가 있었다. 시드니 폴락의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1986)’다. 영화는 카렌(메릴 스트립 분)의 시각을 통해 아프리카의 재발견을 시도한다. 시각교정은 연인 데니스(로버트 레드포드 분)가 담당한다. 카렌은 제국주의적 시각에서 점점 벗어나 아프리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된다.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 200명 남짓됐던 발생 초기, 코로나19에 걸리는 자체로 죄악시되고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은 때가 있었다. 위험하기도 했지만 우선 낯선 바이러스에 대해 막연한 공포감을 가지고 있을 때고, 실제 치명률도 높았기 때문에 당연히 가질 수 있었던 두려움의 반증이다. 그러던 것이 지난 2월 28일자로 확진자 수가 300만을 넘어섰고 100만명 가까운 국민이 격리상태로 돌입했다. 그런데도 발생초기의 두려움이나 패닉은 거의 없다. 그간 백신도 3차례씩 맞았고 코로나 델타와 오미크론 두 번의 변이를 거치면서 바이러스 자체의 치명률이 상당부분 떨어진데다 방역에 대한 사회적 시스템도 잘 가동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낯선 것에 대한 이질감이 사라진 것이 펜데믹 상황임에도 이 정도의 안정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 한 예가 김인현 씨의 가족에게도 일어났다. 김인현 씨의 부인이 오미크론 바이러스에 확진된 것이 일주일 전, 더구나 김인현 씨 부인은 보건소에 근무하며 혼신을 다해 바이러스와 맞서 온 방역전사였다. 다행히 중증이 아니어서 부인은 자가격리에 들어갔지만 불철주야 방역과 싸워오던 부인이 덜컥 확진자가 되고나니 김인현 씨의 짠함은 누구보다 컸다. 그러나 그런 마음은 잠시, 김인현 씨는 그때부터 또 다른 오미크론과의 전쟁에 나서야 했다. 세상을 지켜오던 부인을 이제 자신이 지켜야 하는 한편 다른 가족들과 자신에게도 2차 감염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치해야 했기 때문이다. “집에 있는 사람 각자 식사를 하기 위해 매끼마다 상을 4개씩 차렸다” 지난 2월 26일 김인현 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전쟁의 한 토막이다. 상 차리고나서 돌아서면 다시 상 차리는 일과가 되풀이됐던 것. 그 외 환기 등 소소한 대처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와중에 재택 근무하며 회사업무까지 돌봐야 했으니 일인 다역의 일주일이 폭풍처럼 지난 셈이다. 도중에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김인현 씨는 가족의 소중함과 가장의 의무감을 이번처럼 막중하게 느껴본 적 없다며 오미크론에 맞서는 의지를 다진 바 있다. 다행히 28일자 페이스북에는 테스트 결과 가족들 모두에게서 음성판정이 나왔다는 낭보가 올라왔다. 이 포스팅에 평소보다 훨씬 많은 ‘좋아요’와 댓글이 붙었음은 물론이다. 오미크론을 감기처럼 알고 살아야 할지 모를 우리 모두의 일상이 김인현 씨 가족에게서 자연스럽게 들여다 보였다. 이제 누구에게건 예외 없이 일어날 일상이다.
1995년에 개봉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The Bridges Of Madison County, 1995). 남편과 평생을 평범하게 살아온 프란체스카(메릴 스트립 扮), 그녀의 죽음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자식들은 그녀를 아버지의 무덤 옆에 묻어주려 하는데, 유언장에는 화장해서 로즈먼 브릿지에 뿌려달라는 당혹스런 글이 남겨져 있다.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식들... 어머니의 유품과 일기장들... 프란체스카의 유품에는 평생 그녀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나흘간의 사랑과 그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함께 했던 그녀만의 세상이 들어있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사진작가인 로버트 킨 케이드(클린트 이스트우드 扮)가 사진촬영차 매디슨 카운티에 온 바로 그 날, 마침 남편과 두 아이는 일리노이 주에서 열리는 박람회에 참가하러 집을 떠난다. 그리고 이어지는 프란체스카와 로버트의 운명적인 만남. 그들은 꿈같은 나흘 동안의 여름날을 보낸다. 나는 이 영화를 내 나이 스물여섯일 때 친구와 함께 봤다. 이십대 중반의 나이는 아직 채 익지 못한 나이였고, 영화를 이해하기에는 조금 어렸던 듯도 하다. 그때의 우리는 너무 철이 없었고, 결혼이라는 것을 생각해보지도 않았고, 자식이 어떤 의미인지도 느끼지 못할 때였다. 우리는 영화를 보고 나와서 한참동안 경주 시내를 거닐었다. 그러다가 커피 한 잔을 하러 갔고, 그곳에서 친구가 물었다. 만일 네가 프란체스카였다면 어떤 결정을 했을 거냐고. 그때는 그 물음에 바로 대답했다. 확실한 감정은 일생에 단 한번 오는 거라는 로버트의 대사가 생각이 난 까닭이다. “그래, 일생에 한 번도 오지 않을 감정이고, 기회인데 떠나야지. 나는 떠날 거야!” “나두!” 한번 생각한 감정은 두 번을 되돌아 볼 틈도 없이 우리 둘은 의기투합했다. 지금은 세월이 흘러 내 나이가 오십을 훌쩍 넘었다. 프란체스카처럼 두 아이의 엄마에 정직하고 성실하고 착하고 자상한 남편과 평온한 가정을 이룬 지금, 그때의 물음에 다시 답한다면 난 주저 없이 “난 떠나지 못할 거야”라는 말을 할 것이다. 사람의 감정이 변해서가 아니다. 그때도 맞고, 지금도 맞다. 아주 맛있는 과자는 아껴두었다가 조금씩 꺼내먹는 것처럼 아름다운 사랑은 추억 속에 넣어두고 힘들 때마다 조금씩 꺼내서 회상하며 살아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그날, 로버트가 비를 흠뻑 맞으며 프란체스카를 기다리던 그날, 그럼에도 프란체스카가 차문을 열고 끝내 달려 나가지 못했던 그 마음을 오십이 지난 지금은 넘치도록 잘 알 것만 같다. **박미희 작가 : 소티마을에서 브런치 카페 ‘로만티시’를 경영하며 그림 그리는 화가. 만다라를 즐겨 그리며 강렬하고 화려한 색채로 내면의 심리를 묘사하는 그림을 즐겨 그린다. 음식방면에도 탁월한 재능이 있어 한식과 양식부문 조리사 자격증을 갖춘 전문 요리사다. 특히 전통 된장 만들기에 남달리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직접 담근 된장을 로만티시를 찾는 고객들과 지인들, 건강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판매하고 있다. 로만티시 장독대에는 전국에서 주문한 고객들의 된장이 독째 익고 있으며 갤러리 카페를 방불케 하는 로만티시 홀에는 박미희 작가의 그림들과 맛있는 음식 냄새가 늘 조화롭게 넘실거린다.
옥산서원 ㅁ음자 공간으로 먼 듯 가까운 듯 봄을 알아차린 계절의 낌새가 유유자적하다. 기와지붕 처마 끝 고풍스런 흙 마당에 멍하니 서서 3월의 봄바람소릴 맡는다. 춘풍의 묵향에 실려 오는 옛 선비 글 읽는 소리, 두루마기 자락 풍류를 담은 허화열명인님 정가(正歌) 가락, 꽃샘바람결에 청아하다. 회재선생이 평생을 갈고 구하던 인(仁)의 철학사상이 가득 묻어나는 구인당(求仁堂) 강학공간이다. 공자가 설한 유교사상의 윤리적 기초가 되는 덕(德)의 함양을 인(仁)의 근본으로 곧추세우려던 심오한 철학이 경이롭다. 어질고 자애로운 인(仁)의 근본이 생성하는 만물의 이치는 아름답고 선하리라. “인의예지(仁義禮智)는 마음 바깥에서부터 나에게 녹아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본시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그것을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구하면 얻고 버리면 잃는다.” -맹자의 사단지심(四端之心)- ① 측은지심(惻隱之心): 인(仁) 남을 사랑하여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 ② 수오지심(羞惡之心): 의(義) 불의를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 ③ 사양지심(辭讓之心): 예(禮) 양보하고 공경하는 마음 ④ 시비지심(是非之心): 지(智)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 통나무층계사다리 세월을 풀어놓는 석봉 한호의 편액 묵직한 무변루(無邊樓)누각으로 오른다. 주염계가 찬한 “풍월무변(風月無邊)”에서 취한 글귀이다. 끝이 없다. 한계가 없다는 뜻은 인격과 학문의 깊이를 가늠하는 의미이다. 자연을 벗 삼아 심신을 수양하면서 공부했던 선비들의 자유로운 정신세계도 담겨져 있다. 무변루 편액 옆 작은 글씨로 ‘모자람도 남음도 없고 끝도 시작도 없다. 빛이여 맑음이여 태허에 노닐도다.(靡欠靡餘 罔終罔始 光歟霽歟 遊于太虛 미흠미여 망종망시광여제여 유우태허)’ 소재 노수신(1515~1590) 문장이 있다. 무변루 이름의 의미에 관한 주석 글이다. 소재는 회재보다 24세 연하후배다. 을사사화 19년간 유배생활을 함께했던 인물로 회재의 성품과 학문을 잘 알았다. 소재는 회재를 ‘당세무비(當世無比)의 학자’로 칭송했다. 무변루 마루 양옆으로 방이 딸려있다. 벽면의 마루문을 열면 서슴없이 들어오는 자옥산 풍광이다. 푸른 산 빛에 물든 정기를 받으며, 드높은 하늘과 흘러가는 구름에 심신을 안주시켰을 것이다. 자연경치와 맞물린 정서로 인격수양을 연마하고 학문의 뜻을 무한히 펼쳤을 무변루다. 아담한 한옥의 운치와 풍류가 묻어나는 쉼의 공간이다. 방 옆 발코니를 연상하는 소담스런 난간에서 바라보는 자계천 너럭바위 훤하다. 사산오대 중 마음을 씻는다. 즉 깨끗한 마음가짐으로 인격수양을 다스리는 ‘세심대’ 바윗돌 굳건하다. 이황의 글씨가 새겨진 한 덩이 진풍경이다. 달빛에 영그는 물소리 바람소리 자연과 인간이 한 뜻되어 우주에 안기는 사유의 폭을 ‘무변루’ 누각이 내어주고 있다. 봄이 익으면 다우(茶友)들과 어울려 찻자리 깔고 싶은 무변루 마루에 정적이 돈다. 무변루 누각 아래 통로를 거쳐 역락문을 나서면, 몸 풀린 자계천 물소리 한가롭다. 꽃눈으로 움트는 묵은 노거수나무덩치들 껍질 채 튼 살갗 게워내고 있다. 서원은 지식 함양뿐만 아니라 인격수양을 연마하는 역할을 동시에 추구했다. 조선시대 유교적 정신교육 문장 핵심은 4단계로 요약 된다. ①위기지학(爲己之學) 자기가 좋아서 스스로 하는 공부의 의미는 인격수양을 위한 것이다. ②수기치인(修己治人) 자기의 인격을 연마하고 나서 다른 사람을 다스린다. 모자라는 인격의 지탄받는 사람은 진정한 지도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③정기이정인(正己而正人) 자신이 먼저 인격적으로 바른 사람이 되어야 다른 사람을 바르게 한다. 백성들의 존경을 받으려 한다면, 바른 인격을 곧추세우는 것이 조선시대 유교 정치의 정신 었다. ④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자기 몸을 수양하고 나서 자기 가정을 잘 이끈 후에 국가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한다는 것이다. 유교문화는 인격수양을 갖춘 후 사회에 봉사해야 한다는 정신을 익혔다.
2015년 유엔 회원국 만장일치로 채택한 SDGs(지속가능발전목표)는 지속 가능한 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17개 목표, 169개 세부목표, 231개 지표로 구성되어 있다. SDGs는 2030년까지 전 세계인이 달성해야 할 헌장으로서 모든 사회적 주체의 참여와 행동을 강조한다. 유엔은 특히 기업이 주도적으로 사회문제 해결을 담당하도록 요구한다. ‘민간기업의 활동과 투자 및 혁신은 생산성과 포용적 경제성장, 고용 창출의 주요한 동력’이기 때문이다. 유엔은 영세기업부터 협동조합, 다국적기업에 이르는 민간부문의 다양성을 인정하며 기업에게 혁신과 창의성을 통해 지속가능발전을 가로막는 문제의 해결에 동참해 줄 것을 요청한다(2030 의제 제 67항).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기업의 포용적이고 창의적인 혁신에 의한 SDGs·ESG(환경·사회·지배구조)의 활성화를 기대한다. 유엔은 ‘기업이 역동적이면서 제 기능을 다 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한편, 기업과 인권에 관한 이행지침 (Guiding Principles on Business and Human Rights), 국제노동기구의 노동기준, 아동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 및 주요 다자간 환경협정과 같은 관련 국제 기준, 협정, 보건 기준을 수호(2030 의제 제 67항)’할 것을 제언한다. 최근 많은 기업이 ESG 경영을 통해 SDGs 실천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기업의 SDGs·ESG 실천이 ‘회사 홈페이지나 광고,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만 존재한다’라는 비판도 커지고 있다. 국제기구, NGO, 언론은 이를 「SDGs·ESG 워시」라고 정의 내린다(OECD 2017). 기업이 친환경적인 이미지로 소비자를 오도하는 ‘그린 워시(위장 환경주의)’로 보는 것이다.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SDGs·ESG 워시(Wash)는 종종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발생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SDG 워시가 발생하는 원인으로는 크게 기업 리더의 SDGs-ESG 경영 철학과 비전의 부재, 공급망 관리와 통제 시스템의 미구축, SDGs 사내 이니셔티브의 부재, 다 부문적-지역사회 협력 부족 등이 거론된다. SDGs·ESG 워시를 방지하기 위해 기업이 할 수 있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것은 첫째, 개별 기업의 여건과 조건을 고려한 철학과 비전의 재설계와 사내 SDGs·ESG 이니셔티브 지원이다. 글로벌, 국가 경영 트렌드를 고려하되 기업에 맞는 방식으로 SDGs·ESG 과제 중 우선 순위를 선택함으로써 기업 활동에 부담을 주지 않고 SDGs·ESG를 실천하면 된다. 둘째, 공급망 관리와 시스템 구축이다. 기업 리더는 공급망 관리와 시스템 구축에 관한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담당부서와 책임 주체를 선정하여 K-ESG 가이드라인의 기준에 부합하는, 지역사회와 연계를 실행하는 항목 관리, 정기적인 내부적인 점검, 전문가의 자문과 감사를 수행해야 한다. 셋째, 지속적인 교육과 커뮤니케이션 모색이다. 직원과 비즈니스 파트너들에게 SDGs·ESG의 가치와 비전에 관한 상시적인 의사소통이 이루어져야 한다. SDGs·ESG 가이드라인을 명확히 인식, 정의하고, 특정 목표에 통합하여 회사와 외부에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 회사 내 교육과 홍보가 많을수록 SDGs·ESG 워시는 줄고, 직원의 더 많은 헌신을 끌어낼 수 있다. 기업의 SDGs·ESG 교과적 실행은 SDGs·ESG 이해, 우선순위 결정, 목표 설정, 통합적 관리, 보고 및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매커니즘이 작동된다. 환경과 사회의 미래를 염두에 둔 지속가능한 자원과 원료 사용, 노동조건 개선은 비용을 증가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많은 기업이 SDGs·ESG 경영 철학에 기반한 비즈니스에 참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SDGs는 빈곤과 기아 퇴치, 교육 기회 확대, 지속 가능한 에너지 보장, 기후변화 해결을 포함한 17개 목표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러한 목표는 세계가 직면한 문제이다. 이러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은 다른 산업, 이해관계자와 협력할 수 있는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하고 관계를 개선한다. 높은 브랜드 이미지는 우수한 인적 자원 유치와 고객의 수를 늘리는 데도 효과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