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근대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는 경주제일교회가 올해 120주년을 맞았다. 지난 1902년 5월 10일 작은 예배당에서 첫 예배를 시작으로 120년의 역사 속에서 꺼지지 않는 부흥과 발전을 이어온 경주제일교회. 그 배경에는 뜻깊은 역사의 현장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고,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한결같은 모습이 있었다. 오는 5월 경주제일교회 120주년을 앞두고 박동한 담임목사를 만나 교회의 역사와 지역사회에서의 역할, 향후 계획 등을 들어봤다. #경주제일교회 첫 신자 이남상 일화 1902년 봄, 안의와(James Edward Adams, 1867-1929) 선교사가 일행을 거느리고 경주 장날 운집한 조선인들을 향해 처음 노상에서 전도를 했다. 이때 처음으로 경주에 예수교인이 생기게 됐고, 첫 신도가 바로 이남상이었다. 모내기가 한창이던 날, 이튿날 모내기를 위해 논바닥을 정리해 놓고 모를 심으려 하는데 그날이 주일이었다. 이남상의 가족은 주일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하루 편히 쉰 후 다음날인 월요일에 모를 심었다. 이 일로 “예수쟁이 이생원은 게으르다”는 마을 사람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그런데 그 해 이남상은 주일에도 모심기를 한 마을 사람들보다 더 많은 벼를 수확하게 됐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이생원이 믿는 하나님은 참 영험이 있구나”하며 찬사를 보냈다. 안의와 선교사는 미국 북장로교 파송 선교사로 대구, 경북지역 전역을 다니며 순회전도와 교회개척, 대구지역 기독교 학교를 세워 현대교육에 앞장섰으며, 대구를 중심으로 경상북도 각 지역의 장날을 택해 노방전도를 해왔다. 안의와 선교사의 노방전도로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은 이남상 외에도 이봉기, 박금철, 손월성, 최태연, 윤두희, 윤마리아, 김치안, 김영교, 김순명, 박수은, 박영우 등 많은 이들이 있었다. 그 후 이들이 중심이 돼 당시 경주읍 성건동 197번지의 초가를 마련해 임시 집회장소(노동리교회, 현 경주제일교회)로 정하고 안의와 선교사의 인도로 첫 예배를 드린 것이 지금부터 120년 전인 1902년 5월 10일, 그날을 기점으로 경주제일교회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3·1 만세운동’ 주도한 ‘경주제일교회’ 일본 제국주의에 항거해 민족 자주독립의 깃발을 올린 1919년, 당시 경주제일교회 박영조 목사는 전국적으로 확산돼가고 있는 3·1만세운동에 대해 경주에서도 동조해 줄 것을 제의받았다. 당시 교회의 중진들과 젊은 청년들의 뜻을 모아 3·1운동에 참가할 것을 결의하고 3월 11일, 12일 밤 교회가 운영하는 계남학교 사무실에 모여 13일 경주읍 큰 장날 거사할 것을 계획했지만, 당일 13일 새벽 일본 경찰의 습격을 받고 발각되었다. 그러나 일제의 억압에 굴하지 않은 이들은 15일 작은 장이 열리던 노동리 봉황대에서 청년 박봉록, 서봉룡, 박무홍, 최성렬 등이 선봉에 서고 수많은 애국 청년들이 태극기를 양 손에 들고, 시민들과 합세해 거리를 누비며 ‘대한독립만세’를 목이 쉬도록 큰소리로 부르짖으며 3·1만세 운동을 감행했다. 이 사건으로 박영조 목사를 비롯해 박문홍, 김학봉, 손석봉, 최성렬, 김성길, 박봉록, 김성필, 김철 등이 체포돼 대구형무소에서 상당기간 옥고를 치러야 했다. 이는 경주 3·15만세운동 중심에 경주제일교회가 주축이 돼 일어났고, 전개됐음을 입증하고 있다. 경주3·15만세운동은 규모면에서 다른지역에 비해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이후 ‘금관총 출토유물 경주유치운동’ ‘신라고적환등회’가 전국적 전개로 이어지면서 독보적인 행보를 드러냈다. ‘금관총 출토유물 경주유치운동’을 비롯한 ‘신라고적환등회’는 표면적으로 계남학교 학자금을 모으기 위한 것이지만, 경주 3·1만세 운동 이후 하나의 민족정신을 일깨우는 민족운동으로까지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특히 지역민들이 신라 문화재를 스스로 지켜내겠다는 것 자체로도 충분히 독립운동에 상응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렇게 경주제일교회는 경주지역 기독교 신앙의 중심으로 자리를 지켰을 뿐 아니라 뜻깊은 역사의 현장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함으로 지역사회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지역민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지역사회 섬김통한 목회활동 경주제일교회는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선교의 일환으로 교육선교에 앞장섰다. 경주제일교회는 1909년 8월, 경주 유일의 개화기 신문화를 가르치고 창줄하는 교육기관인 ‘계남학교’를 설립했으며, 계남학교는 ‘문화학원’으로 이어졌다. 이밖에 ‘고등공민학교’ ‘제일어린이 선교원’ ‘경로대학’ ‘농아인 교회’ 설립 등 교육과 섬김을 통한 복음의 접촉점을 끊임없이 마련해 왔다. 현재는 로벤피스 커피숍과 바자르 운영을 통해서 선교와 구제에 힘쓰고 있다. 이외에도 보훈가족과 환경미화원, 장애인을 초청해 위로하는 일을 비롯해 장학사업, 임산부학교, 아기학교, 어린이도서관 등 경주제일교회는 지역사회 섬김을 통한 사랑과 봉사의 목회활동이 널리 알려지면서 2017년에는 월간 한국인에서 선정한 사회공헌-종교부문 ‘대한민국혁신한국인&파워브랜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창립 120주년 기념행사 개최 경주제일교회는 지난 120년의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지역과 이웃에 참된 행복을 전하고자 다채로운 기념행사를 준비 중에 있다. 지역민들의 축제의 장이 될 이번 행사는 △문예부문 - ‘창립 120주년 문예대전’(공모-미술·문학, 4/12~22) △음악부문 - ‘창립 120주년 감사음악회’ ▶바리톤 최현수 초청음악회(4/3) ▶오르가니스트 신동일 초청음악회(7/3) ▶필그림 미션콰이어 합창단 초청음악회(11/6) △역사부문 - ‘120년사 출판 감사예배 및 기념 강연회(5/15)’ △예배부문 - ▶창립 120주년 감사예배(5/8) ▶창립 120주년 기념음악회(연합찬양대, 5/8) △선교부문 - ▶남아공임인모 선교사 파송식(1/2) ▶일본 김남석 선교사 파송식(미정) 등 문화와 기독문화를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있다. 자세한 사항은 경주제일교회 행정실(054-742-0211)로 문의하면 된다. 박동한 목사 인터뷰-“120년의 역사는 은혜의 역사” -경주제일교회 120주년을 맞이하는 소회는? “120주년을 맞이한 경주제일교회의 역사의 현장에 담임목사로 있다는 것이 황송하고 영광이다. 우리 성도님과 함께 120주년을 맞이함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한편으로는 경주제일교회의 역사와 정신을 계승해나가야 하는 무거운 책임감도 느낀다” -120년 역사에 대해 짧게 한 말씀하신다면? “경주제일교회의 120년의 역사는 한마디로 `은혜의 역사`이다. 120년 세월에는 기쁨과 환희도 있었지만 고난도 아픔도 늘 함께했다. 그럴 때마다 현명하게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전임 정영택 목사님도 사실 교회가 어려울 때 오셔서 그 상황을 잘 극복해 교회를 든든하게 세워오셨다. 결국 120년의 역사는 은혜의 역사고, 앞으로 나아갈 경주제일교회의 역사 역시 결국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 역사라고 생각한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어려움이 있었는데? “코로나19 감염확산을 막기 위해 교회 내 소모임, 단체식사 등이 금지되다 보니 온라인예배 참여 성도님이 상대적으로 늘었다. 반면 3년 전 17대 담임목사로 부임한 첫 해에 비해 직접 교회를 찾는 성도님 수는 반 정도 줄었다. 또 집합제한 등으로 인해 행사도 금지되다 보니 성도님들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말씀 준비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보더 더 내실을 기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코로나19 상황에 어려운 점도 많았지만 말씀과 기도에 힘쓸 수 있게 돼, 달리 생각해 보면 아주 불행한 일만은 아니라고 여겨진다”-교회가 앞으로 지향하는 방향은? “제가 꿈꾸는 목회는 ‘성령으로 살아 숨쉬는 교회’다. 성령님이 다스리시고 주도하시고 성령으로 살아 숨 쉬는 교회가 되길 원하고, 말씀과 기도로 나가길 원한다. 특히 미래 교회의 주역인 다음 세대에게 신경을 많이 써야할 것 같다. 요즘 학업과 코로나19 장기화 등으로 다음 세대들이 교회에 나오는 것이 쉽지 않다. 다음 세대들이 흥미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지속할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고민할 것이며, 또한 지역사회 내에서 평안하고 화합하는 교회를 만들어 가고자 노력하겠다”-성도들과 지역민들에게 한 말씀 “부족함에도 저를 받아주시고, 배후에서 기도해주시는 모든 성도님들 덕분에 목회를 감당해 올 수 있었다. 늘 감사드린다. 그동안 코로나19로 인해 소극적인 활동으로 지역민들을 많이 섬기지 못해 죄송하다. 지역민을 섬기는 것이 우리 교회의 사명인 만큼 앞으로는 어떻게 잘 섬길까 고민하고 연구하고 기도해서 섬기는 자세로 목회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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