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에 한국공법학회 김효전 회장으로부터 부탁을 하나 받았다. 김 회장은 까마득한 선배로서 존경하는 분이니 부탁은 곧 지시와 마찬가지였다. 한국 헌법학의 제1세대 중 한 분인 박일경 선생에 대한 간단한 평전을 써달라는 것이었다. 알려진 대로 박일경 선생은 박정희 정권의 유신통치에 협력하였다. 그러나 그는 내 고등, 대학의 선배였고, 어떻든 위계질서를 무시할 수 없는 학문의 세계에서 저 위의 높은 의자에 앉은 분이었다. 고심했다. 하지만 결심했다. 분명한 역사의 잣대를 들이밀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가 외부세계를 내다보는 창문은 때가 끼어 흐릿했다. 바깥세상에서는 겨울을 지나 봄으로 가는 길목에서 천지간에 화려한 향연이 열리는 준비가 차츰 갖추어지고 있었다. 민주화를 외치는 부단한 노력에 의해 세상은 점점 바뀌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맑지 못한 창문을 통해서는 이 변화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겨울의 한가운데 있는 것으로 착각하며, 학자로서 취해서는 안 될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과거에 안주했다. 그 후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도 그때 인간적 정리를 끊어버리고 신랄한 비판의 자세를 견지한 것이 과연 합당했을까 하는 의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마음의 동요(動搖)를 여전히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 입바른 소리는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다시 그러지 않을 수 없다는 긴장 속으로 자신을 몰아넣는다. 나는 알려진 대로, 이 정부의 탄생을 위하여 일조를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정국에서 그 물꼬를 트기 위해, 당시 가장 선명한 보도를 하던 JTBC에 4번이나 나가 전 한국헌법회장으로서 탄핵에 찬성하는 입장을 밝혔고, 이에 따라 대다수의 헌법학자들도 내 의견에 동조하게끔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 중앙선대위에서 위원장직도 맡았고, 최고위 싱크탱크이던 민주통합포럼의 상임위원도 했다. 정부 출범 후 감사원장, 법무부 장관, 대법관으로 여러 번 물망에 올랐다. 그러나 이 정부,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쓴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정부에서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어 시행한 소주성(소득주도성장) 정책에서 핵심인 주 52시간제를 그는 ‘일자리 나누기’로 파악하였다. 하지만 이것과 소주성의 다른 기둥인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결합하여 ‘일자리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어쩌면 선연하게 보일 수 있는 모습도 그는 보지 못했다. 임기 내내 탁현민 비서관의 현란한 정치쇼에 의한 현실의 왜곡이 탁현민의 간사한 술책에 말려든 것이 아니라 어쩌면 문 대통령 그 자신의 흐릿한 눈이 그쪽을 선호하며 방향을 잡은 것인지 모른다. 강성친문들이 권력분립 같은 민주주의 원리를 부정하고 20년, 30년 장기집권을 하겠다고 백주대로상에서 권력에 흠뻑 취해 추태를 벌이는 언동을 할 때 그들의 이러한 네오 파시스트적 속성이 어쩌면 문 대통령 자신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강성친문은 단지 윗사람의 심기를 살펴 그 마음에 들려고 충성경쟁을 벌였을 것으로 본다. 완전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문 대통령도 그가 가진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내다보는 식견과 지혜가 충분하지 않다. 자신의 흐릿한 눈으로 본 영상을 실제의 모습으로 잘못 판단하여 적지 않은 실책을 저질러왔다. 그리하여 그는 때때로 헌정사의 전례를 마음대로 무시하는 만용도 저지른다. 그가 진정으로 자신이 정점으로 된 정부의 마지막을 깨끗이 수습하고 떠나려는 생각을 가졌다면, 전례에 따라 대선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행안부, 법무장관을 민주당 당적을 가지지 않은 사람으로 교체하고 중앙선관위를 보다 중립적인 형태로 바꾸어주었을 것이다. 얼마 전 유력한 대통령후보가 이 정권에서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도 법과 시스템에 따라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일갈했다. 그러자 문 대통령은 직접 나서서 현 정부를 근거없이 적폐수사의 대상으로 몬 것에 대해 강력한 분노를 표하며, 윤석열 후보의 사과를 요구하였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대통령이 가장 당선이 유력시되는 후보를 향해, 더욱이 대통령 선거 직전에 이런 행동을 하는 것 역시 우리 헌정사에서 전례 없는 일이다. 그가 직접적으로 개입하여 일으킨 무용하고 심히 과장된 ‘정치보복’ 논쟁은 결국 현실을 왜곡시키는 그의 흐릿한 눈이 원인이 되었다고 본다. 여하튼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이나 무리한 탈원전정책의 시행 등은 곧 들어설 새로운 정부에서 그대로 넘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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