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이씨 지헌(止軒) 이철명(李哲明,1477~1523)은 자신의 호 ‘그칠 지(止)’처럼 매사에 분수를 지켜 만족하여 그칠 줄 아는 실천적 학자의 삶을 살았다. 지위가 낮은 벼슬살이를 하면서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랏일을 근심하고 임금을 사랑하여 충성으로 섬기는데 그칠 따름이었고, 모친 초상에 여막을 짓고 효도를 다하는데 그쳤으며, 사화를 당해 벼슬에 미련을 두지 않고 편안하게 여기는데 그쳤으니, 지족(知足)을 실천한 인물이었다. 지헌 선생은 고려조 여주지방 호족 이세정(李世貞)의 후손으로, 고조부 이광호(李光浩) - 증조부 이극량(李克良) - 조부 이구성(李九成)의 가계를 이루며, 부친 이계손(李係孫)과 모친 의인양씨 사이에서 경주부 북쪽 천상촌(川上村)에서 태어났다.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1491~1553)과는 5종 형제관계로 선대(先代) 이윤방(李允芳)의 아들 장자 이지언과 차자 이춘언에서 분파되었다. 특히 부인은 풍덕류씨 류복하(柳復河)의 따님으로, 류복하는 송재(松齋) 손소(孫昭,1433~1484)의 장인으로 양좌동의 형성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 인물이다. 지헌은 1495년 진사에 합격하고, 1504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저작랑(著作郞)·홍문관박사·예조정랑·홍문관검교 등을 역임하였으나, 중종 14년(1519)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충암(冲菴) 김정(金淨)·동천(東泉) 김식(金湜) 등 신진사류가 남곤(南袞)·심정(沈貞)·홍경주(洪景舟) 등 훈구 재상에 의해 화를 입는 기묘사화가 발발하자 기미를 알아차리고 귀향하였다. 이후 부모봉양과 학문궁구에 매진하였는데, 이때 지은 「귀향부(歸鄕賦)」가 탁한 세상에 대한 그의 마음을 대변한다. 1900년에 포암(逋庵) 권주욱(權周郁,1825~1901)이 지은 행장을 보면, “선생이 돌아가신지 300여년이 되고, 문헌이 많지 않아 당시의 일을 상고할 수가 없으나, 현재 보존되어 있는 것으로 미뤄보면, 그것으로도 은미한 영향 그리고 후세에 끼친 학문을 닦는 법과 풍습으로 삼기에 충분하다.”라 하였으니, 세월의 멀어짐과 자료의 소략함이 아쉬울 따름이다. 강동면에 위치한 귀래정(歸來亭)은 1755년 천서문중에서 건립되었고, 이후 1798년 후손인 이지륜(李之輪)을 거쳐 1938년 문중의 논의를 통해 선조숭모사업의 일환으로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 뜻을 취해서 ‘육화정(六花亭)’에서 ‘귀래정’이라 하였으며, 춘사(春沙) 이병관(李炳觀,1858~1949)과 후손 이대원(李大源)의 「귀래정기」가 전한다. 세산(洗山) 유지호(柳止鎬,1825~1904)와 민병한(閔丙漢,1861~?)이 「묘지명 병서(幷序)」를, 방산(舫山) 허훈(許薰,1836~1907)이 지헌 이공 묘표(止軒李公墓表), 만구(晩求) 이종기(李種杞,1837~1902)가 병조좌랑 지헌 이공 묘갈명 병서(兵曹佐郞止軒李公墓碣銘 幷序) 등을 지어 지헌 선생의 내력을 전승하였지만, 선생에 대한 자료가 소략해 인물을 연구하기에 한계가 있다. 다만 이종기는 묘갈명에서 중국의 남전(藍田)에서 향약(鄕約)을 실행한 여씨(呂氏) 여대충(呂大忠)·여대방(呂大防)·여대균(呂大勻)·여대림(呂大臨) 4형제와 남송의 학자 서산(西山) 채원정(蔡元定,1135~1198)과 그의 아들 구봉(九峯) 채침(蔡沈,1167~1230) 부자 모두 주자(朱子)를 스승으로 섬긴 채씨 부자를 언급하면서 회재와 지헌의 돈독한 관계를 이끌어내려고 하였다. 특히 14살의 터울의 회재와 지헌은 기묘사화를 중심으로 경주로 돌아오는데, 회재는 조부상을 당해 화를 면하였고, 독락당을 짓고 학문에 궁구하였으며, 지헌은 사화를 피해 고향으로 돌아와 본분을 지키며 살았으니, 1519년부터 1523년 사이 이들의 만남이 사뭇 궁금해진다. -병조좌랑 지헌 이공 묘갈명 병서 - 만구 이종기 문원공 회재 이 선생이 조정에서 일어나 천년의 끊어진 학문을 이었고, 생각건대 앞서거니 뒤서거니 남전(藍田)의 여씨와 남송(南宋)의 채씨처럼 일어난 자가 있지만, 명성이 없음은 어째서인가? 지헌 이 공은 회재 선생의 족형제이다. 덕행과 사업과 문장이 모이면 단산(丹山)의 봉황깃털과 곤륜산의 옥이 되지만, 여러 병화를 거치면서 징험할 문헌이 없다. 또 400년 전의 일이라 그 유풍이 가리어져 자세하지 않다. 이는 태사공[사마천]이 이름이 없어지고 나면 불러 주지도 않음을 탄식한 것이다. 이철명 공은 자는 지지(知之), 호는 지헌(止軒)이다. 본관은 여주로 고려 향공진사 이세정이 선조가 된다. 조선조에 들어와 이윤방(李允芳)은 아들 둘을 두었는데, 장자 이지언(李之彥)은 공의 5세조이고, 차자 이춘언(李春彥)은 회재의 5세조이다. 홍치(弘治) 을묘면(1495) 진사시 2등에 합격하였고, 족숙으로 찬성에 증직된 이번, 진사 손계돈, 농암 이현보, 금헌 이장곤은 같은 해 갑자년(1504)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 기묘사화에 정암 조광조와 여러 사람을 잡아가두고 벌하자, 공은 마침내 벼슬에 마음이 없어져, 귀향부(歸鄕賦)를 지었는데, 대략 다음과 같다. 세상사 험난함에 두려워 장차 어디로 돌아가리 아득히 머리 들어 바라보니 가서 기다리는 어머니를 위로해 드려야지 부귀는 구할 것이 못되거늘 어찌 권세의 길목에서 주저하리오 종을 불러다 길을 안내하여 오래된 사당의 소나무와 국화를 찾으리 옛 성현의 귀감을 읽으면서 하늘이 나에게 부여한 처음의 본성을 따르리라
“기해일 동제를 봉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살기좋은 고장으로 전통 풍속을 지키며 신의 영험한 힘으로 이 터전에서 대대손손 살아왔습니다. 신의 영험이 온 동네를 감싸 안으시매, 상서롭지 못한 일은 막아 주시고 질병과 고통을 없애 주시므로 집집마다 좋은 일과 은광(恩光)을 주오시니 신의 크나큰 은덕입니다” 지난 15일은 정월대보름이었습니다. 정월대보름은 우리 세시풍속에선 매우 중요한 날로 설날만큼 비중이 큽니다. 우리 지역에선 봄을 재촉하는 빗님이 내린 뒤 휘황찬란하게 두둥실 떠 오른 달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경주 여러 지역에서도 다소 축소된 형식으로 동제(洞祭)들이 치러졌겠지요. 동제는 매년 음력 정월대보름이면 한 해의 무사 안녕과 마을의 번영을 기원하는 행사지요. 지금까지 세시풍속으로 그 전통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지역이 많습니다. 지역에서도 지난 14일 밤 12시, 제36회 정월대보름 황오동제가 열렸습니다. 달빛이 유난히 교교했던 황오동 제례 현장에 저도 다녀왔습니다. 성동장미아파트 남쪽 당수나무 아래 북정(北亭) 제단에서 동제가 열렸는데요, 이 동제는 황오동발전협의회와 황오동행정복지센터에서 주관했다고 합니다. 코로나로 동제 자체를 치르지 않은 곳이 많은데 비해 이곳만큼은 유지가 되고 있었습니다. 제단 위에 제물을 가득 올리고 여러 제관들이 지극정성으로 마을의 안녕을 기원했는데요, 황오동장을 포함해 수 십명의 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봉행된 동제에서 주민들의 표정은 달빛 아래 환하게 밝았고 각자의 소원을 비는 모습은 행복해보였습니다. 한편, 성동동 421-43번지 도로가에 있는 당수나무는 회화나무로 올해 100세를 맞이합니다. 이 나무를 심은 이는 김억술, 김용재 부자(父子)입니다. 100여 년 전, 이곳의 기존 당수나무가 불에 타서 죽은 자리에 일제강점기인 1928년 김억술, 김용재 부자가 자택인 경주시 북부동 5-2번지 성터 위에서 자라고 있던 5년생 회화나무를 이곳 북정으로 옮겨 심었다고 합니다. 이후 아들인 김용재 선생은 생전에 매년 막걸리 한 말씩을 이 나무에 부어주며 동민들과 함께 무사안녕을 기원했다고 합니다. 이 나무 아래 매년 음력 보름 전날 밤(음력 1월14일)에 황오동 주관으로 마을 주민들이 동제를 지내고 있으며 올해도 정월대보름 황오동제를 지낸 것이죠. 이 당수나무를 심었던 오는 5월에는 재식자인 김용재 씨의 자손들이 이 마을 출신 주민들과 함께 100세 수령을 기념해 잔치를 계획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당수나무 주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8명의 개구쟁이 꼬마들은 이제, 경향각지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으며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모임을 기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 모임 이름은 ‘회나무회’라고 한다지요. 예전의 당수나무 아래서 지내던 동제를 그 자리에 새롭게 식재한 당수나무를 키워 전통을 잇는 마음으로 동제를 지내니 참으로 보기 드문 귀한 풍속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왕원표 씨는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소탈한 사업가다. IT 솔루션 기업을 경영하던 왕원표<인물사진> 씨는 지난해 자신이 창업한 회사를 동종업계 한 업체와 합병시키고 지금은 새로운 사업을 구상 중이다. 그런 그가 꼽은 최고의 영화는 홍콩 코믹 액션 영화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주성치 주연·감독의 ‘소림축구(2002)’다. “이 영화를 단순히 우스운 무술 영화로 볼 수 있는데 자세히 뜯어보면 매우 중요한 메시지들이 들어 있습니다” 왕원표 씨는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협업을 꼽는다. 정글 같은 사업, 특히 IT업계는 업무 특성상 사람들 간의 소통이 부족한 듯하지만 알고 보면 첨단 기술과 기술이 만나고 그것을 소유하는 업체와 업체가 랑데부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감독으로 나오는 ‘황금의 오른발 명봉(오맹달 분)’은 젊었을 때 자신의 기량만 믿고 사람들에게 오만했다가 결국 자신을 망치고 말았습니다. 부정시합 제의를 거절한 후 집단 구타를 당하고 오른 발을 다쳤는데 그 후로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어요” 반면 영화의 주인공 강철다리 씽씽(주성치 분)은 소림권법으로 다진 자신의 엄청난 축구 실력을 깨닫고도 혼자서 움직이지 않고 곤란을 겪고 있는 무술 형제들을 찾아 함께 팀을 꾸린다. 결과적으로 승승장구하며 세간의 관심을 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메시지는 가난한 사람과 여자를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여자를 미추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도 분명하지요” 왕원표 씨는 극중 만두가게 아가씨 아메(조미 분)가 가난하고 못생긴 아가씨로 나오지만 마지막에 가서 악마축구단의 마왕슛을 태극권으로 막아내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나오는 것이 그 메시지의 결정판이라고 주장한다. “씽씽이 다시 돌아와 자신을 사랑한다고 고백했을 때 메이는 스스로 진정한 아름다움을 각성하고 자신의 내면에 감추어진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지요. 극에서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한 것으로 나왔는데 그것은 실상 내면의 아름다움이 그렇게 표현된 것이라 봐야 합니다” 극중 메이가 주성치의 너덜너덜해진 운동화를 손질해 다시 가지고 왔을 때 왕원표 씨는 자기도 모르게 경탄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고 회고한다. 아무리 좋은 새 운동화라도 발에 익숙한 헌 운동화보다 편치 않은 법, 씽씽은 바로 그 편하고 정겨운 운동화를 신고 축구장으로 나가는 것이다. 이 어설프지만 감동스러운 장면이야말로 이 영화의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강조한다. 그런가 하면 왕원표 씨는 악마팀 감독이 결국 처절히 패하는 것이 잘못된 IT업계의 생리와도 같다고 주장한다. 부단한 기술과 실력으로 사업을 이끌어야 하는데 사람을 빼가고 기술을 훔치고 바이러스를 유포하는 식으로 경쟁하려는 기업들은 모두 악마팀 감독처럼 업계에서 비참하게 퇴출돼야 한다고 열을 올린다. 왕원표 씨는 소림축구는 루저들의 반란이라는 측면에서도 이 영화가 매우 잘 만든 영화라고 거듭 호평이다. 특히 자신을 믿고 꿈을 꾸면 반드시 그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교훈도 들어 있다고 주장한다. 영화에 나오는 씽씽의 무술 형제들은 대부분 일상생활에서 가난하고 하찮은 사람으로 나온다. 그러나 축구를 통해 각성하면서 세상 그 어떤 팀보다 강한 팀원으로 자리매김하고 마침내 우승을 거머쥔다. “사실, 이런 것 저런 것 따지는 것은 전혀 의미 없어요. 메시지 같은 것은 억지고..., 그냥 재미 있잖아요? 재밌으면 된 거 아닙니까?” 소림 축구 이외에도 왕원표 씨는 ‘쿵푸 허슬’ 같은 주성치 영화를 즐겨보고 다른 장르보다 액션영화를 즐긴다고 소개한다. 무언가 심오하고 거창한 주제도 좋기는 하겠지만 번잡한 사회 생활을 견디기에는 액션영화, 그중에서도 소림축구 같은 다소 황당해 보이지만 웃음과 액션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영화가 가장 취향에 맞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영화에서는 고향 경주를 무대로 한 ‘신라의 달밤’과 ‘두사부일체’ 시리즈를 재미있게 봤다. 영화는 영화일 뿐 재미있으면 그만이라는 것이 소탈한 왕원표 씨의 가장 솔직한 영화선택 기준이다.
“생일선물로 무엇을 해드릴까요?”라고 물었을 때 선뜻 대답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몇 %나 될까? 아마 이 문제에 쉽게 대답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이 선물하는 것이다. 선물해주려는 대상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모르는데다 상대의 취향을 알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선물하는 입장에서는 상대방이 무엇을 해달라고 하는 것이 훨씬 편하다. 이전에는 생일날 미역국 한 그릇이라도 먹으면 감지덕지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짜장면 한 그릇 사주면 좋아하는 세대도 있었다. 햄버거나 피자를 사주면 좋아하는 세대들에 이르러서는 본격적으로 생일날 별도의 선물은 필수품이 됐다. 이제 생일날 잘 먹는 것은 기본이고 선물과 이벤트가 동시에 따라붙은 세상이 됐다. 그러나 물질적으로 풍요로울수록 생일선물은 더 어려워진다. 어지간한 것은 다 갖추고 있는 세상이다 보니 귀한 것도 없고 딱히 필요한 것도 없다. 게다가 조금이라도 희망지수가 높으면 가격이 높아서 엄청난 부담이 되기도 한다. 부모자식 간에도 마찬가지다. 아버지가 무얼 좋아하실까 혹은 엄마에게 필요한 게 무얼까 아무리 궁리해봐도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여쭈어보면 으레 ‘필요한 것 없다’는 말이 돌아온다. ‘필요한 것 없다’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실린다. 정말 필요한 게 없을 수도 있고 필요한 게 있지만 부담돼서 말 안 한다는 뜻도 있다. 이럴 때는 그저 현금이 최고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넉넉하면 넉넉한 대로 현금을 주고 받으면 그것으로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것 하면 그뿐이다. 그런데 간단한 등식이 좀처럼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현금으로 ‘때우면’ 무언가 성의 없어 보인다는 생각을 은연중 하기 때문이다. 정현석 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은 그런 생일선물에 대한 고민을 싹 날려버린 듯하다. 세종대왕으로 휘감은 케잌과 돈띠로 연결한 목도리를 한 정현석 씨 얼굴이 세상 다 얻은 것처럼 환하다. 누가 댓글에서 내년에는 신사임당 케익을 받아라는 말이 즐거움을 더한다. 돈케익 받은 정현석 씨가 행복하게 웃는 것으로 선물의 효용은 최고치다.
학재기(學在己) 공부하는 것은 자신이 하기 나름이고 지부지 재인(知不知 在人) 나를 알아주고 몰라주는 것은 사람들의 몫이다.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悅乎) 공부하고 익히는 기쁨은 말로는 다 할 수 없고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멀리서 찾아오는 친구가 있어 그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으면 군자다. 공자의 논어 첫 문장 학이(學而) 편이다. 수기치인(修己治人) 자신을 연마하고 다스린 옛 선비들의 향기가 느껴지는 옥산서원이다. 옥산서원 어서각과 사저 독락당문고 서적이 866종 4,111책을 소장하고 있다. 향촌에 머무르며 세속의 출세에 집착하지 않고 학문에 뜻을 펼친 배움터다. 한편으론 중앙정계에 진출하기 위해 그 관문인 과거공부도 소홀하지 않았다. 사물의 이치와 인간본성을 탐구하고 도덕적 가치를 추구하며 정진한 선비들의 참교육장이다. 조선후기 서원은 교육 기능이 약화되고 시묘 기능이 강화되었다. 선현을 우러러 모시고 충효사상을 숭배하던 유교사회에서 서원은 사묘(祠廟) 역할도 충실했다.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 선생도, 회재 이언적 선생의 학문을 중심으로 성리학을 완성시켰다. 살아생전에 보지 못한 회재를 스승으로 삼고 성리학 학문을 높고 넓고 깊게 매겨 나갔던 것이다. 문원공 회재 이언적선생의 위패를 체인묘(體仁廟)에 모신 옥산서원은 전학후묘로 배치된 옛터전이다. 구인당 뒤 켠 높지막한 위치에 있다. 매월 초하루 보름 분향 알묘하고, 봄∙가을 제향 때는 문중의 후손과 유림들이 의관을 갖추고 제사를 지낸다. 체인(體仁)의 뜻은 어질고 착한 마음을 몸으로 익혀 실천에 옮긴다는 뜻이다. 회재사상의 실천철학이 묻어나는 현판이다. 영원불변한 우주의 이치를 사람의 어진 심성으로 다스려 덕업을 베푼다는 것이다. 자신을 수련하고 연마한 갈고 닦은 어진생각을 행동강령으로 이끄는 성리학의 근본을 실천하는 것이다. 자연의 순리에 따르며 평생을 인(仁)을 체득하는데 일관한 회재선생의 학문이 경이롭다. 체인묘 옆 작은 건물은 제기(祭器)를 보관하는 곳이다. 구인당 왼편을 돌아보면 신도비각(神道碑閣)이 굳건하다. 호남의 선비 고봉 기대성(高峰 奇大升 1527~1572)이 짓고, 아계 이산해(鵝溪 李山海) 글씨다. 고봉이 비문에 적기를 “우리나라는 옛날에 어질고 착한분의 교화를 입기는 하였으나 학문이 전승된 바가 없었다. 선생은 누구에게도 가르침을 받은 데가 없는데도, 스스로 학문에 정진하여 조용한 가운데 날로 빛남으로서 덕행(德行)을 실천했다. 찬연히 저술이 나와서 후세에 남긴 이는 우리 조선에서는 찾아보아도 이와 같은 이는 드물 것이다.”라는 선생의 행적을 쓴 퇴계 이황선생의 구절 일부를 옮겨 적고는 “사람이 가지는 사덕(四德)이 기질에 가려 성(性)은 이로 말미암아 잃게 되는데 학문으로써 회복하면 그 성을 찾게 된다. 아! 우리 공(公)은 이 일방(一方)에 탄생했다. 그 기(氣)는 관후하면서도 장중하고 덕은 혼연하면서도 강직했다. 처음부터 학문을 알아 몸을 닦고 실천에 힘을 쏟았다. 부지런히 충양(充養)하여 잘 간직하니 집에서는 효를 다 하고 나라에는 충을 다 하였다”고 적었다. 신도비는 1577년 대학자인 문원공 회재 이언적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후학들이 뜻을 모아 건립할 당시에는 옥산서원 앞에 있었으나, 훼손을 막기 위해 서원 안으로 옮겨졌다. 1577년 세워진 비의 전체 높이는 320cm, 비신의 높이는 240cm다. 구인당 뒤란 경각(經閣)은 4000여질의 고서를 소장하던 건물이다. 오래된 목조한옥이 열악해서 1972년 새로 지었다. 후손들의 정성으로 청분각과 태극문을 지어 많은 서적들을 보관하다가 2009년 건축한 유물관으로 모든 책을 옮겨 보관하고 있다.
캄보디아 방문단 씽크탱크 2022팀이 지난 14일 캄보디아 100개 마을 개발 프로젝트를 위해 경주를 찾았다. <사진> 캄보디아 수스 야라 국회 외교위원장과 캄보디아의 외교부, 관방부, 관광부 등 관계자 17명으로 구성된 씽크탱크 2022팀은 농‧축산업, 문화‧관광 등 다양한 분야의 정책개발 및 핵심콘텐츠 벤치마킹을 위해 양동마을, 경주엑스포대공원, 현곡면 기흥농장 등을 방문했다. 이날 수스 야라 국회 외교위원장 일행은 김호진 경주부시장과 류희림 경주엑스포대공원 사무총장을 만나 장시간 농업, 경제, 문화, 관광 등에 대한 교류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환담 후 박대성 화백의 안내로 솔거미술관을 둘러보고, 경주타워, 경주엑스포기념관, 살롱헤리티지 및 크메르 제국을 소재로 제작한 3D 애니메이션 위대한 황제 관람 등 공원의 첨단 문화콘텐츠를 체험했다. 수스 야라 위원장은 “캄보디아와 경주엑스포는 2006년 앙코르-경주세계문화엑스포를 시작으로 인연이 깊다”며 “2007년부터 2019년까지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있고 앞으로도 문화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교류협력이 활성화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수스 야라 위원장은 2006년 앙코르-경주세계문화엑스포 개최 당시 캄보디아 측 총괄 단장으로 엑스포 성공 개최의 주역으로 활동했으며, 2016년에는 호찌민-경주세계문화엑스포2017 친선대사로 활동하는 등 그간 경주엑스포가 추진 해온 국제행사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준 인물이다.
경주 전통시장의 매출액과 유동인구수가 경북도내 23개 시·군 가운데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북도는 전통시장의 구조와 실태를 파악 및 분석해 시장 지원시책 수립, 활성화와 구조개선 사업 등을 위한 기초자료로 이용하기 위해 ‘경상북도 전통시장 통계’를 작성했다고 지난 10일 밝혔다. 통계에 따르면 경북의 전통시장 수는 176개이며, 상설시장과 정기시장(5일장)이 혼합된 시장은 108곳, 정기시장(5일장)은 68곳이다. 전통시장의 전체 면적은 2.16㎢로, 경북 전체 면적(1만9030㎢)의 약 1만분의 1, 여의도 육지 면적의 약 4분의 3에 달한다. 전통시장이 가장 많이 분포돼 있는 시·군은 포항(40곳)이며 다음으로 경주(19곳), 구미(16곳), 영주(13곳) 등의 순이다. 지난 2019년 경상북도 전통시장 전체 사업체(점포) 수는 1만2728개이며, 지난 5년간 감소 추세다. 시·군별 점포수로는 포항(2694개)이 가장 많고, 이어 경주(2049개), 구미(1205개), 안동(1035개) 순이다. 전통시장 내 전체 종사자수는 2만6649명이고, 그중 남성 1만631명, 여성 1만6018명으로 여성이 5387명 많다. 포항이 5051명으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경주 4897명, 구미 2647명 순이다. 사업주 성비는 2019년 기준 여성이 58.8%, 남성이 41.2%로, 여성이 약 17.6%p 가량 높게 나타났다. 종사자 성비는 여성이 60.1%, 남성이 39.9%로, 여성이 남성보다 20.2%p 높게 나타났다. 업종별로는 소매업(54.5%)과 음식점 및 주점업(26%)의 사업체가 약 80.5%이고, 기타 도매 및 개인서비스업(5%), 식료품 제조업(5.6%), 기타 개인 서비스업(6.5%) 등으로 구성돼 있다. 2019년 기준 경북 전통시장 매출액은 2조7319억원으로, 매출액이 가장 많은 시군은 경주(5101억원)이고, 다음으로 포항(4854억원), 김천(4102억원), 구미(3110억원) 순이다. 점포당 매출액은 경북 평균이 2억1460만원이고, 시군별로는 김천이 4억8600만원으로 경북 평균의 약 2배 정도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어 구미(2억5810만원), 안동(2억5090만원), 경산(2억4930만원), 경주(2억4900만원) 순이다. 전통시장 내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시군은 경주시로 전통시장 전체 유동인구의 23.3%를 차지했고, 포항시(21.2%), 김천시(10.8%), 안동(6.8%)가 그 뒤를 따랐다.연령별로는 60대 이상이 전체의 28.0%로 가장 많고, 20대 이하가 16.2%로 30대 13.6%보다 오히려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요일별로는 토요일이 15.4%로 제일 많고 일요일이 13.2%로 제일 적다. 전통시장 건축물의 평균연령은 40.8년이고, 평균연령이 가장 높은 시군은 영양군(61.3년)이며, 다음은 청도(60.3년), 울진(51.1년), 영주(47.1년) 순이다. 경주는 42.5년이었다. 황명석 경북도 기획조정실장은 “이번 전통시장 통계는 시장별로 사업체수, 종사자수, 매출액, 편의시설, 유동인구를 분석해 현업부서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작성했다”며 “향후 생활 밀착형 통계 개발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확산에 확산을 거듭하는 코로나로 우리는 축소된 문화현장에서의 갈증이 심했다. 때 이른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는 요즘, 기다리던 봄에 한층 다가서며 봄날 저녁의 감흥을 돋우는 음악감상회가 있어 화제다. 연일 지쳐있는 우리에게 정신적 여독을 해독해주는 음악감상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은 경주세무서 앞 ‘갤러리카페 화(임강혁 대표, 원화로 344)’에서다.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저녁 7시. 아직까지는 30명을 선착순으로 제한 초청해 진행한다. 팝과 재즈, 클래식, 국악 등 장르에 구애 받지 않고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의 첫 번째 장르는 ‘프로그레시브 락’이었다. 지난달 첫 선을 보이며 ‘프로그레시브 락의 음악여행(1)’을 진행한 데 이어 오는 23일에도 두 번째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철도원으로 38년째 근속 중인 현직 기관사인 박문수(57)씨와 함께하는 음악여행을 즐길 수 있는 것. 현직 기관사가 음악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사실이 생소하게 여겨질 것이 분명하나 그는 음악에 있어서만큼은 우리가 주목해야 할 재야의 고수임에 틀림없었다. 40여 년, 공들여온 음악에 대한 세계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그는 만만치 않은 내공의 소유자다. ‘미쳐야 미친다(不狂不及)’라고 했다. 몰두하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인데, 일상에서 무엇보다 음악을 중시하고 즐기며 살아온 그의 이력은 음악 평론가 수준에 다다랐다. 음악에 푹 빠져 사는 여지없는 음악 ‘덕후’다. 오디오 앰프와 스피커를 직접 만드는 경지의 그를 바라보자면 그의 주업이 헛갈릴 정도니..., 그를 갤러리 카페 화에서 만났다. -오는 23일, 갤러리 카페 화에서 즐기는 박문수와 함께하는 ‘프로그레시브 락(progressive rock)의 음악여행(2)’ 이 프로그램은 박문수 씨와 갤러리카페 화 임강혁 대표와의 의기투합으로 성사돼 지속적으로 다양한 음악을 감상하는 자리를 마련할 예정이다. 어떤 음악이든 훌륭하게 구현해내는 오디오 기기와 환경을 마련해두고 ‘문화 아지트’를 표방하는 임 대표와 박씨는 궁합이 척척이다. 특히 클래식 음악감상회 일색이었던 여타 유사한 프로그램에 비해, 첫 프로그램으로 프로그레시브 락을 소개한 것이 눈길을 끈다. 클래식뿐만 아니라 다양한 음악의 세계를 감상하고 알리자는 취지에서 임 대표와 인식을 같이 한 것이다. “제 의견과 맞아떨어지는 제안이었어요. 음악장르를 따지지 않고 시작하자는 거였죠” 장르를 다양화하고 누구나 쉽고 편안하게 들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지난 1회 감상회를 이미 열띤 호응속에 치뤘다. 락 계열로 시작해 대중적인 곡들부터 서서히 심화되는 프로그램으로 다가가려는 그들의 복안인 것. 지난달 첫 선을 보인데 이어 이번 프로그램에서는 그 두 번째 순서 ‘프로그레시브 락(progressive rock)의 음악여행(2)’가 기다린다. 각 곡들의 아티스트와 곡들의 비하인드 스토리 등도 소개할 예정이어서 더욱 호기심을 자극한다. “클래식을 오래 들어보니 프로그레시브 락이 클래식과 비슷했습니다.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의 주요테마를 재해석해 연주하는 변주곡이 있는데 원곡의 메인 테마는 가져가면서 그 곡에 가사를 붙인 곡 해석이었죠. 곡의 의미를 새롭게 만든다는 점이 좋았어요. 프로그레시브 음악을 즐겨 듣게 된 이유였지요. 예술성 있는 장르라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그래서 이번 프로그램은 클래식을 좋아하는 이라면 더욱 흥미롭게 들을 수 있는 장르다. 귀 호강과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즐기는데 필요한 회비는 만원. -영화 ‘스타워즈’ 주제곡, 100명의 트램펫터가 연주하는 음악 듣고서부터 음악의 다양성에 빠져 이번 프로그램을 기획한 박문수씨에겐 남다른 음악적 토양이 있었다. 소년 박문수에게 음악은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직접 제작한 대금을 연주하던 아버지의 감성과 소질을 그대로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대금 연주를 듣고 자란 소년은 음악적 감성에 누구보다 일찍 눈을 떴다. 국악으로 ‘소리’에 눈을 뜬 그는 사춘기 중학생 시절, 옆집 고등학생 형이 자작(自作)한 앰프로 들려준 영화 ‘스타워즈’ 주제곡을 우연히 듣게 되면서부터 음악의 다양성에 빠져든다. 100명의 트램펫터가 연주하는 음악에 완전히 매료된 것. 이를 시작으로 음악 감상의 영역은 클래식으로 진화했고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 파가니니 바이올린협주곡 1,2번, 비발디 사계 등을 듣기 시작한다. 서울에 있던 국립철도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는 음악동아리를 창립해 장르 구분 없이 음악을 즐기는가 하면, 당시 생활비를 모아 앰프(amplifier, 소리 증폭기)를 제작하기도 한다. 세운전자상가에서 간이 오디오 키트를 구입해 앰프를 만들고 꿈에 그리던 음악들을 들을 수 있었던 것. 클래식 편향에서 대중적인 팝을 듣기 시작한 것은 1984년 철도원이 되고 나서부터다. 그는 경주기관차 사무소 초임을 발령받고 부기관사와 기관사로 근무했다. 2018년에는 부산고속 기관사 KTX 기장으로 근무했으며 2020년 부산고속기관차 지도 팀장으로 발령받아 KTX 기장들의 교육과 관리를 담당하는 팀장으로, 한 달에 한 두 번은 직접 운행도 한다. 오디오 제작 이외에도 목공일, 서각, 집 짓는 일, 시작(詩作), 사진, 인쇄일 등에도 능한 그는 재능 많은 취미부자기도 하다. -세상에서 하나뿐인 나만의 오디오 제작… 진공관 앰프와 스피커 직접 제작해 듣는 음악 매니아 박 기관사는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틈만 나면 오디오기기를 제작하는 등 그만의 소리를 만드는 일에 몰두했다. 지금도 기성 오디오 브랜드 제품을 구입해 음악을 듣던 것에서 예전 들었던 진공관 앰프 소리가 너무 좋아서 ‘진공관 세상’ 이라는 인터넷 카페에 가입해 진공관 앰프 및 스피커를 직접 제작해 음악을 듣고 있다. 이전엔 혼자서 도면 만들고 부속을 구했지만 오디오를 직접 만들고 싶어하는 이들의 모임에서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스피커나 앰프의 외장까지 그의 손에서는 뚝딱이다. “어느 정도의 소리가 나올 것이라는 예상으로 정성들여 오랜 시간 만든 뒤, 기대했던 소리를 얻으면 진짜 기분이 좋죠. 하늘을 나는 듯하죠” 그가 직접 만든 스피커만 세 세트라니 놀라울 따름이다. 스피커 유닛(unit)을 받아 전기배선과 주파수대가 다른 소리를 분개해주는 네트워크를 만들고 관 배선과 단자를 만드는 등의 과정을 거쳐 스피커를 완성했다고 한다. 이 과정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일이 유닛을 본드로 붙여야하는 작업이라고 한다. “전기에 대해선 어느 정도 아니까요. 목공일도 그냥 혼자 공부했죠. 뭐” 대수롭지 않은 듯 ‘툭’ 이야기 하는 그는 진정한 멀티어다. 이렇게 만든 기기에 비해 기성제품의 가격은 열배 정도라니 가능하다면 본인이 원하는 음질을 찾아 만든다. 만족도도 훨씬 높고 가성비도 좋다는 것. 무엇보다 세상에서 하나뿐인 나만의 오디오를 가진다는 충만감은 비할 데가 없다고 한다. -경주 최초, 경주고전음악회 결성했으나 장르상의 한계 느껴… 앞으로는 다양한 장르 적절하게 구성해 장수할 수 있는 프로그램 선보일 예정 평소 ‘음악적 편식을 하지 말자’는 소신을 가지고 있으면서 팝부터 국악, 클래식, 제3세계음악, 째즈 등 다양한 음악을 즐기고 있었던 그는 1998년 경주고전음악회를 결성하고 5인의 결성멤버 중 한 사람으로 활동한다. 경주고전음악감상회가 결성될 당시는 이런 문화의 불모지였다. 꾸준하게 클래식을 전문적으로 듣던 5명이 멤버로 구성돼 정기적 음악감상회를 꾸린 이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지금가지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운영상 한계도 있었다. 클래식의 역사는 400~500년이니 매회 선곡의 한계가 따른 것. 새로운 곡을 발굴해 감상해야 하고 잘 모르고 듣지 않는 곡을 찾아 감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반에 잘 소개되지 않은 곡은 현대 클래식으로 흐르다보니 난해해지고 지속적인 회원 구성이 쉽지 않았다. “새롭게 진입하는 회원이 없는 거죠. 그런 한계를 알고 있기에 갤러리 화에서는 다양한 장르를 적절하게 구성해 장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갖추겠다는 것입니다. 음악은 즐겨야 되는 거죠. 음악에 몸을 맡기고 리듬을 타야 합니다” 음악에서 인간은 완성된다며 음악이 주는 지극한 즐거움을 간파했던 공자가 떠올랐다. 그렇다. 음악은 즐기는 것이다. 몸을 맡기고 감상하는 것이다. -“침체되었던 지역 문화의 흐름을 되살리고 가까이서 음악을 감상하는 힐링의 장이 되길 바랄뿐입니다” 앞으로 그는 우리음악의 모토인 국악, 서양 클래식, 대중가요 등 음악성이 뛰어난 곡을 선정해 우리가 미처 몰랐던 음악의 정보와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어한다. “스피커와 오디오 기계 제작과 구입, 선택, 음악에 대한 역사 등의 강의도 인터넷을 통해 진행하고 싶어요. 그런 시도를 하고 저변을 확대하고 지속적으로 펼칠 계획입니다” “침체되었던 지역 문화의 흐름을 되살리고 가까이서 음악을 감상하는 힐링의 장이 되길 바랄뿐입니다. 꾸준하게 지속된다면 이렇듯 작은 문화 모임들이 자연스레 우리 곁에 정착되겠지요” 세상 순한 아저씨 같은 그에게 다가올 정년 이후의 계획에 대해 묻자 역시 음악 관련 이야기가 주(主)다. “오디오를 만들어보니 제겐 어려운 일이 아니더라구요. 그래서 시간과 상황이 되면 오디오를 제작해 주위 분들에게 저렴하게 보급하는 것도 좋을듯해요” 자신만의 오디오를 주문 받아 제공한다는 것. “그리고 ‘해비타트운동(habitat, 사회봉사활동의 하나로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집을 지어 무주택 서민에게 제공하는 운동)에도 동참하고 싶어요. 순수하게 후원단체의 재료비만 지원받고 집수리 등을 돕는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취미로 서각도 해왔으니 집 수리후 문패를 달아드려도 좋겠지요” 평범한 소시민으로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오며, 자신이 즐기고 아끼는 영역과 재능을 아낌없이 펼치는 그의 선한 영향력이 잔잔하게 파급돼 음악감상문화에서 큰 구심적 역할을 하기를 바라본다.
경주시민의 이웃을 위한 나눔 정신이 코로나19 위기와 한파를 뚫고 빛을 발하고 있다. 시민들의 봉사활동과 기부행위가 늘어나는 동시에 사랑의 온도탑 역대 최대 모금액 확보와 아너소사이터 역대 최다 탄생 등의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어서다. 경주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부터 1월까지 2개월 동안 진행된 ‘희망 2022 나눔캠페인’에서 역대 최대인 10억2000만원을 모금했다. 목표액 6억원은 이미 지난해 12월 훌쩍 뛰어넘었고, 사랑의 온도탑 온도는 170도까지 끓어올랐다. 사랑의 온도탑은 모금 목표액을 기준 온도인 100도로 정한 뒤 모금액에 따라 최종 온도를 정한다. 경주시 사랑의 온도탑은 지난해 12월부터 모금을 시작한 뒤 한 달 만인 같은 달 30일 이미 목표액을 넘겨 조기 달성을 이뤄냈다. 이후에도 기업과 개인 등 각계각층의 기부가 이어져 총 10억2000만원으로 역대 최고 온도를 기록했다. 기부행렬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억원 이상을 5년 내 기부하겠다고 약속하는 고액기부자 클럽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가장 많은 곳이 경주다. 현재 활동 중인 회원은 19명으로 경북에서 가장 많은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감염병 확산 속에서도 지난해 8월과 10월에도 21호 회원과 22호 회원이 신규로 가입, 시민들의 나눔 정신은 이어지고 있다. 이에 경주시는 지난해 8월 시청 본관 2층에 ‘아너 사이어티 홍보존’을 경북 최초로 설치하고, 이들의 나눔 정신을 기리는 행사도 가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경주시는 지난해 11월 경북도가 주관하는 ‘경북 자원봉사대회’에서 최고상인 ‘자원봉사 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도 안았다. 지난해 4월부터 운영에 들어간 ‘경주시 예방접종센터’에 지역 자원봉사자 3757명이 참여하는 등 경북도에서 가장 높은 참여율을 나타낸 결과다. 이는 ‘친절한 경자씨’로 잘 알려진 경주시종합자원봉사센터를 비롯해 70여 지역봉사단체에 소속된 7만여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이뤄낸 성과다. 주낙영 시장은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신보다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시민 한분 한분의 따뜻한 나눔 정신이 있어 위기 극복이 더 앞당겨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주에서 미혼모자 가족복지시설이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다. 경북지역 최초의 미혼모자 가족복지시설인 ‘누리영타운’은 지난 10일 개소식을 가지고 본격적인 운영을 시작했다. 미혼모자 가족복지시설은 여성가족부가 추진하는 정책의 일환으로 저소득미혼모자가정의 자립과 건강하고 안정된 삶을 지원하기 위해 운영되며 미혼모자가족복지시설 중에서도 기본생활지원시설이다. 총 10개의 개인실로 되어있고, 최대 15가구가 생활할 수 있는 ‘누리영타운’은 총 면적 380.24㎡, 2층 규모 시설로 국비 2억5300여만 원, 시비 1억7700여만 원, 기관 자부담금 등 총 사업비 5억2300여만 원이 투입됐다. 1층엔 개별 화장실이 딸린 면적 14여㎡의 생활실 6곳과 공동육아실, 주방·조리실, 상담실과 사무실이 갖춰졌고, 2층엔 산후 회복실과 교양·교육실이 있다. 그간 경북에는 미혼모와 미혼모의 3세 미만 자녀를 양육을 지원하는 시설은 있었지만, 출산·양육·자립을 원스톱으로 돕는 시설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누리영타운은 모자가족 복지시설인 ‘애가원’ 내 유휴시설을 활용해 조성됐고, 누리영타운에서 애가원으로 자연스럽게 연계해 시설 이용자들이 8년이상 시설을 이용할 수 있어 미혼모자 가정의 안전한 출산·양육은 물론, 사회·경제적 자립을 위한 직업 교육 등을 개별 생활공간에서 지원할 수 있게 됐다. 이용대상은 미혼의 임산부와 출산 후 6개월 미만의 자녀가 있는 미혼모로 최장 1년 6개월까지 생활할 수 있다. 송미호 사회복지법인 자선단 상임이사는 “누리영타운을 통해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미혼 임산부의 안전한 출산과 산후조리, 건강하게 자녀를 양육할 수 있도록 친정집 같은 보금자리를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다. 이윤주 원장은 “누리영타운은 애가원과 자연스러운 연계가 가능한 시설로 이용자가 원한다면 출산에서 자립까지 최대 8년이상 이용할 수 있다. 누리영타운의 이용기간인 1년 6개월이 지나 퇴소를 하더라도 애가원에서 7년을 생활할 수 있다. 모자가정의 자립을 위한 기반을 다질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어 미혼모들이 자립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고 전했다.
지난 12일 오후 3시부터 16일 오후 6시까지 서울 대학로 혜화아트센터 2관에서 ‘시가 꽃으로 피어날 때’라는 이름의 뜻깊은 전시회가 열렸다. 12명의 시인이 24명의 미술가들과 함께 한 작업은 모두 36편의 시화(詩畫) 작품으로 탄생해 관람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시인들은 아예 이번 시화전을 기념하는 시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전회에 출품된 36점 이외에 각 시인들이 쓴 24편의 시가 더해져 역시 ‘시가 꽃으로 피어날 때’라는 한정판 300권의 시집으로 탄생한 것이다. 행사는 시와 그림뿐 아니라 문화인들의 축제다운 이벤트도 함께 열렸다. 개회식에서는 경주 황성공원에서 시민들 시낭송으로 만났던 최대남 시인을 비롯 구자평, 김지운, 문지아 등 12명의 시인이 자신이 쓴 시를 기타리스트 신현대 씨의 기타 연주에 맞춰 낭송해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다. 행사 운영위원장을 맡아 이 행사를 주도한 최대남 시인은 이번 전시회가 여느 시화전처럼 시에 맞춰 그림을 그리지 않고 반대로 그려진 그림에 시를 얹는 작업이어서 시인들이 어느 때보다 긴장했다며 소감을 전했다. 이번에 출품된 시화들은 한결같이 봄을 기다리듯 아름다운 꽃으로 채워졌다. 입춘이 막 지나면서 시작한 전시회라 봄을 미리 앞당긴 듯 전시회장이 밝고 아름다웠다. 한편 같은 장소에서 2월 13일 오후 3시에는 이번 전시회에 출품한 이호남 시인이 출판기념회를 함께 열어 눈길을 끌었다. 조선 후기 권신인 김창집은 시와 그림에 각별한 조예가 있어 당시 중국까지 소문날 만큼 명성을 떨치던 시인 사천 이병연과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겸재 정선을 수시로 불러 시화를 동시에 즐기는 즐거움을 누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이렇듯 당대 시인과 화가가 수시로 시와 그림으로 교류했으니 어딘가에 이병연 & 정선의 합작품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 시대 이병연과 정선이 함께 어울린 멋진 콜라보 기획전이었다. 이번 전시회는 행사가 끝난 뒤인 2월 17일부터 4월 30일까지 동성고등학교 샛별관 2층에서 계속 전시돼 학생들의 정서 함양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바야흐로 대선에 이어 지방자치선거가 몰려오고 있다. 관광도시 경주가 어떤 원칙에 의해 정책이 세워져야 할지 방향성을 제시하기에 적합한 시기다. 이에 ‘한국관광정보정책연구원’ 변성희 원장에게 관광정책과 관련한 질문을 해보았다. 변성희 원장은 경주대학교에서 관광학을 가르쳤고 동의대학교 관광학과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했으며 전국 지자체의 다양한 축제관련 심사위원과 자문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원칙적이고 근원적인 이론을 제시하고 사람의 삶을 토대로 세상을 보는 눈을 통해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해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장기간 본지 첨성대 칼럼을 쓰던 중 최근 시간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칼럼을 쉬고 있다.-편집자주 #다양한 공부를 하셨는데 전공이 무엇입니까? -컴퓨터 공학, 수리논리, 인공지능, 지능형 프로그램 등 박사과정에 필요한 공부. 관광 정보 등 관광학 분야와 더불어 사회과학 분야도. 나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 중 몇몇은 전공이 대체 뭐냐고 종종 물어보곤 한다. 명함에는 관광 전공이라고 돼있는데 메타버스나 정보보안 등의 특강도 하고 칼럼에서는 도시재생 등도 다루니까 이상했을 것이다. 30년 전의 나 자신도 지금의 내 모습을 상상하기 힘드니까 당연할 것이다. 물론 공부하고 전공한 분야가 자연스레 연관돼 있다고 나는 생각하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낯설 수도 있다. 처음 전공은 컴퓨터 공학으로 시작해 수리논리, 인공지능, 지능형 프로그램 등 그저 박사과정에 필요한 공부를 하다 보니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아졌다. 마침 관광학 전문가였던 형과 공동 연구를 하다 보니 관광 정보 등 관광학 분야와 더불어 사회과학 분야도 공부하게 됐다. 그게 ‘한국관광정보정책연구원’이라는 요상한 연구소의 이름이 탄생한 배경이 나의 공부 이력 덕분이기도 하다. #최근 전국지자체 관광객 통계가 발표됐는데 전문인으로서의 소감은? -엉터리 관광통계가 작성되고 있고 심지어는 부풀려진 통계를 가지고 지방자치단체장의 치적을 포장하고 있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관광통계에 문제가 많은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관광데이터랩에 따르면, 2021년의 경주의 외부 방문객 수는 3950만명으로 2019년의 4320만명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코로나 영향에도 상당히 많은 외지인들이 방문한 것 같다. 한때는 이 통계를 토대로 관광객 수를 산출하고 정책에 반영하려고 한 것 같다. 이는 이동통신사의 빅데이터 활용으로 산출된 결과다. 이 알고리즘에 의하면 2021년의 서울의 외부 방문객 수는 4억8700만명, 2019년에는 6억7600만명으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관광객 수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과거 관광통계 중 관광객 수 집계는 고속도로 나들목으로 진입한 모든 차량을 기준으로 산출한다든지, 단위면적내 인구밀집도를 판단해 산정하는 등 기준 자체가 모호해 정확한 통계 자료를 기대하기 어렵다. 통계는 각종 의사결정을 위해 필요한 공공자원이다. 통계의 작성 및 이용을 위해서는 통계의 신뢰성과 운용의 효율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관광통계도 마찬가지다. 신뢰할 수 있는 관광통계가 마련될 때,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가 합리적인 관광정책을 수립하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드러나고 있는 문제들처럼 엉터리 관광통계가 작성되고 있고 심지어는 부풀려진 통계를 가지고 지방자치단체장의 치적을 포장하고 있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보다 가치 있는 관광통계를 내기 위한 방법이 있을까요? -믿을 수 있는 자료를 수집해야 하며, 꼭 필요한 자료를 ‘지속적’으로 조사해야 관광객이 지닌 이동성이라는 속성 때문이라도 관광통계작성은 쉽지 않다. 제대로 된 관광통계를 위해서는 그 기준을 마련하고 믿을 수 있는 자료를 수집해야 하며, 꼭 필요한 자료를 ‘지속적’으로 조사해야 한다. 좋은 예로 일본관광청의 자료 중 일본 국내호텔 및 여관 투숙객수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2015년의 도쿄의 숙박인수는 1778만명, 오사카 934만명, 홋카이도 548만명, 교토481만명 등 숙박객 수나 객실 점유율 등 정확히 조사될 수 있는 수를 기준으로 관광 정책이 수립된다면 훨씬 합리적일 것이다. #특히 일본 관광지에 대해 오래 연구하셨는데요. 대표적인 성공사례를 들어주신다면? -유후인 마을의 인구는 1만2000명 정도지만 이 마을을 찾는 관광객은 연간 400만명이 넘고 그 중 25% 이상이 숙박객. 1975년 큐슈대지진으로 유후인은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겼지만 주민들은 벳푸나 기타 온천형 관광지와는 다르게 문화를 기반으로 한 휴양형 관광지를 만들어갔다. ‘정감있는 마을만들기 조례’를 제정하고, 관광객에게는 유후인에서 생산되는 쌀 채소 쇠고기로 요리를 만들어 제공하고, 극장 없는 유후인 영화제와 유후인 음악제를 만들었다. 기차역사를 개조해 갤러리도 만들고 ‘주민이 살기 좋은 곳이 가장 훌륭한 관광지’라는 모토를 내세웠다. 젊은이들은 독일의 온천휴양지 바덴바덴으로 시찰을 보내어 체류 휴양지로 발전을 도모했다. ‘유후인마을만들기’는 유후인 중심지에서 조금 벗어나면 강과 개천에 물이 흐르고 나무와 숲으로 이뤄지고 바로 그 곳에 전통식 료칸이 있다. 유후인 마을의 인구는 1만2000명 정도지만 이 마을을 찾는 관광객은 연간 400만명이 넘고 그 중 25% 이상이 숙박객이다. 관광은 변하고 있다. 관광이라는 말보다 여행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조용하고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쾌적함을 좋아한다. 그리고 맛있고 보기좋고 SNS에 올릴만한 뷰와 얘깃거리를 좋아한다. 또 남겨놓은 추억을 찾으러 그 장소를 찾을 것이다. #지역의 문화관광 콘텐츠 개발에서 고려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사항으로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지역주민의 삶이 우선해야 하고 얘깃거리, 베스트 원(best One)과 온리원(Only one)에 주목해야! 문화콘텐츠란 말은 문화유산, 생활양식, 창의적 아이디어, 가치관 등 문화적 요소들이 창의력과 상상력을 원천으로 체화돼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문화 상품, 인간의 감성, 창의력, 상상력을 원천으로 한 문화적 요소가 체화돼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문화상품 등으로 이야기 되는 지극히 한국적인 표현이다. 사실 지역문화관광콘텐츠란 말은 좀 어렵다. 범위를 좁히자면 지역 문화관광상품 정도다. 관광의 핵심은 잘 노는 것이고 놀이의 핵심은 재미와 감동이다. 좋은 문화 관광상품은 다녀간 후에 다시 생각나고 또 다시 찾게 되는 것이다. 재미로 시작해서 감동으로 끝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 기본적인 3가지를 들자면 1) 우선은 ‘가장 살기 좋은 곳이 가장 관광하기 좋은 곳이다’라는 유후인인의 모토처럼 지역 문화관광상품 개발의 대상을 선정하는데 있어 목적이 뚜렷하고 더불어 지역주민들의 삶의 질에 도움이 되는 대상 선정이어야 한다. 2) 얘깃거리가 중요하다. 적절한 스토리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장소 및 공간에 맞는 스토리텔링 발굴하고 재미라는 요소의 해석을 통한 소통과 전달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를 중요시한다. 3)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문화관광콘텐츠보다 비교 우위에 있는 베스트 원(best One)이 그 콘텐츠만이 지니고 있는 이야기인 온리원(Only one)에 주목해야 한다. 재미로 시작해서 감동으로 끝내려면 자기만의 추억 찾기, 자기 이야기 찾기가 필요하겠죠. 여기에 문화관광 콘텐츠들이 너무 깊숙이 들어옴으로써 지역주민들의 삶의 공간 침해 등 관광 목적지 주민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것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관광지보다 주민들의 삶이 우선일 때 관광도 성공할 수 있다. #경주시의 관광 활성화와 도시 이미지 제고를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요? -하드웨어 중요성 간과하지 말아야, 경주는 신라만의 경주가 아니다. 신라문화제 특징 명확해야 우선 4000만 관광객이라는 ‘숫자’를 좀 재고할 필요가 있다. 통계의 허구성이 경주의 관광정책을 호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냉정한 수치계산이 필요하다. 요즈음 다들 소프트웨어를 강조하는 추세지만 나는 좀 다른 생각이다. 소프트웨어란 하드웨어 없이 존재할 수 없다. 하드웨어의 정비 복원 없이는 원하는 결과를 얻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불국사만해도 임진왜란 때 불탄 터만 남아 있다면 지금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신라왕경복원에 관한 이야기도 철저한 고증 하에 진행된다면 경주의 훌륭한 하드웨어가 될 것이고 그 기반에서 좋은 소프웨어가 보강된다면 경주의 관광 활성화와 도시 이미지에 좀 더 좋은 역할을 할 것이다. 경주에는 신라만이 존재하지 않는다. 관광객 또한 개별 관광객들이 많아지고 있다. 양동마을, 경주 최부자집, 동학이야기 등 무궁무진한 문화콘텐츠가 존재한다. 이들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신라문화제 등 경주 고유의 축제는 관람객 수보다는 콘텐츠의 충실성과 고유성을 확립함으로써 ‘신라문화제는 이거지’라는 특징을 명확히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가족력은 ‘나도 질병에 걸릴 수 있다’라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가족력은 건강검진과 더해져 특정한 질병을 미리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는 ‘긍정적인 신호’로 볼 수 있다. 암처럼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과 함께 꼬리표처럼 언급되는 ‘가족력’은 무엇이고, 그 대처 방법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소심한 성격으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혼자 노는 것을 좋아했던 아이는 종이접기, 찰흙놀이를 통해 직접 친구를 만들어냈고, 자신만의 언어를 통해 그 장난감 친구들과 세계관을 공유하며 놀곤했다. 그리고 지금은 당시 친구들을 다시 소환해 자신만의 작품세계로 일궈가고 있다. 맹국호 작가의 작품 ‘MF-1’이 바로 그렇게 탄생된 것이다. 갤러리 란에서는 오는 27일까지 ‘단우조각회, 경주’가 진행된다. 단우조각회는 단국대 조소과 동문들로 구성된 단체다. 이번 전시에서 고다빈, 김완, 김하연, 맹국호, 민소현, 박지원, 송인영, 윤다혜, 은다운, 이신희, 이우빈, 이재영, 전서현, 전영재 등 14명의 조각회 신진작가들은 일상 속 추억을 형상화한 작품 20여점을 선보인다. 이들은 지난해 4월 갤러리란에서 ‘보물지도’전으로 한차례 전시를 가진 적이있다. 당시 전시를 기획했던 경주 출신 이신희<인물사진> 작가는 “동문들과 경주에서 전시를 기획하며, 우연히 경주의 정서와 정체성이 잘 어우러진 란갤러리를 알게됐고, 그 매력에 매료돼 첫 동문전 ‘보물지도’를 개최하게 됐다”면서 “한 달여 기간동안 경주시민들은 물론 타 지역에서 오신 관람객들과 소통하며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그 성과와 동문들의 호응과 교수님들의 지지를 받아 올해 ‘단우조각회’라는 단체가 정식 출범하게 됐고, 공식적인 시작을 의미 있는 이곳 갤러리란에서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신희 작가는 기억 속 소리를 표현한 작품 ‘경주, 194-6’를 선보였다. 이 작가는 “194-6은 28년동안 살아온 저희 집 주소다. 빈 공간이 돼버린 이곳은 현재는 제 작업 공간이 됐고, 공간이 간직한 여러 기억은 저에게 소리처럼 생생하게 다가왔다. 공간에서 느끼는 기억의 소리를 돌이라는 견고한 소재를 사용해 조형화한 작품”이라고 작품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여행을 통해 다양한 문화를 접해온 은다운 작가는 새롭고 신기한 외국 문화를 통해 우리 문화에 대해서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은 작가는 “호주의 서퍼 파라다이스에서 서핑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외국 문화인 서핑에 대한민국을 담고 싶었다. 미술관에 전시된 정적인 작품이 아닌 어디든 들고 다닐 수 있는 파도 위 스릴있고 역동적인 작품”이라며 작품 ‘Wooden Surfbord #1’에 대해 소개했다. 깨진 도자기로 자신만의 달항아리를 선보인 박지원 작가의 ‘My moon’, 소소한 일상 속 추억을 한 장의 이미지로 현상화 한 고다빈 작가의 ‘日常’ 시리즈, 자신을 지키기 위한 가시가 아닌 성장하며 겪었던 일들로 배우고, 성숙해지며, 그 기억을 빛을 들여 되새기는 이우빈 작가의 ‘FORESHADOW’ 등 신진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은 추억과 공감,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시키기 충분하다. 유쾌한 다람쥐캐릭터 작품을 선보이며 관람객들의 입가에 미소짓게 만드는 윤다혜 작가는 “작가는 인생의 모험을 떠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겪어가는 상황과 생각들을 마치 일지를 쓰듯 작품에 담아낸다”면서 “작업의 시작은 비록 작가 본인의 이야기에서 출발하지만, 담겨있는 내용은 타인들도 공감할 수 있다. 갤러리를 찾은 관람객들이 작품을 감상하면서 여정을 함께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전시 관람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빛- 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아름 선사합니다” 매년 이맘때, 졸업시즌이 되면 졸업식장에서 불리던 노래가 있다. 바로 ‘졸업식 노래’, 최근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해 졸업식이 대폭 간소화되거나 비대면 졸업식으로 대체되고 있는 상황이다. 졸업시즌이 무색할 정도로 졸업식 풍경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 아쉬운 현실이다. 더불어 전국 방방곡곡에서 펼쳐지던 졸업식 노래 대신 최근 이별의 아쉬움을 표현한 대중가요 ‘이젠 안녕’ 외국 민요인 ‘올드랭 사인’ 등이 더 불리고 있는 것에 안타까운 심정을 내비치는 이가 있다. 바로 동학문화창작소 김성표 소장, 그를 만나 우리에게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졸업식 노래와 관련된 동학에 대해 들어봤다. “1946년 광복을 맞이하고도 아이들이 부를 졸업식 노래가 없었던 시절, 당시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이 아동문학가 윤석중을 찾아가 급히 간청하고, 윤석중은 정순철에게 작곡을 부탁해 하루 만에 만든 노래가 바로 ‘졸업식 노래’입니다” 졸업식 노래는 동시 반달로 유명한 윤석중 선생이 작사했고, 동요 ‘새나라의 어린이’ ‘짝자꿍’을 작곡한 정순철 선생이 작곡했다. 정순철은 해월 최시형선생의 외손자다. “방정환과 함께 ‘색동회’를 만들어 어린이 문화 운동에 주도적 역할을 해왔던 정순철의 드라마틱한 삶을 먼저 소개하자면 동학 지도자 해월 선생을 잡아들이기 위해, 관군은 외동딸 최윤을 인질로 감옥에 가두고, 당시 옥천군수가 아전 정주현과 강제로 최윤을 혼인하게 해 낳은 아들이 바로 정순철입니다” 해월 최시형 선생은 경주를 떠나 35년간 두메산골을 피해다니며 고비원주했고, 동학 창시자 수운 최제우 선생이 남긴 글을 동학의 경전인 ‘동경대전’ ‘용담유사’로 간행한 인물이다. 경상, 강원, 충청도를 거쳐 보은에 거주하며, 보국안민을 위해 동학을 전국적 거대조직으로 만들어 나갔고, 1893년 3만명 이상 모인 보은집회 후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다. 당시 17세였던 김구 선생도 황해도 해주를 떠나 해월 선생님을 만나 동학에 입도하고, 팔봉접주로 동학농민혁명에 리더로 활약했다. “정순철은 동요 ‘옛이야기’를 발표하면서 자신의 불행했던 어린 시절에 대해 ‘낮이나 밤이나 홀로 외로웠습니다. 누나도 없고 동생도 없고,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의 따듯한 사랑도 모르고 지냈습니다’라고 언급했습니다. 어린 정순철이 집을 뛰쳐나와 서울로 올라온 것은 초등학교를 다니던 무렵이었습니다. 당시 의암 손병희 선생의 배려로 보성중학교에 입학하게 되고, 이후 손병희 선생의 셋째 사위인 소파 방정환과 함께 일본 동경으로 유학을 떠나 동양 음악학교에서 음악을 전공하며 ‘색동회’를 만들어 어린이 문화운동에 전념했죠” 이후 1929년 정순철의 첫 번째 동요작곡집으로 알려진 ‘갈닙피리’가 출간됐다. 작곡집에는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짝자꿍(우리애기행진곡)’을 비롯해 ‘까치야’ ‘길잃은 까마귀’ ‘여름비’ ‘봄’ ‘나뭇닙배’ ‘늙은 잠자리’ ‘물새’ ‘헌모자’ ‘갈닙피리’ 등 열곡의 동요가 실려 있다. “정순철은 성신여고에서 음악교사로 활동하다가, 6·25 전쟁 중 납북돼 행방이 묘연해진 것이 우리가 정순철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전국에서 졸업식 노래가 울려퍼지는 요즘, 아이들에게 슬픔과 기쁨을 나누기 위한 노래를 만들었던 의미와 그 당시 최고의 K-POP 아티스트 정순철, 윤석중 그리고 외솔 최현배 선생의 열정을 되새겨 보는 2월이 됐으면 합니다” 한편 충북 옥천에서는 정순철 기념사업회가 매년 ‘짝짜꿍 동요제’를 개최하고 있으며, ‘정순철 짝짜꿍 어린이 합창단’은 노래를 통해 정순철 선생을 알리는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달 ‘정순철 짝짜꿍 어린이 합창단’은 동학의 발상지 경주를 알리기 위한 취지로 경주동학문화창작소가 개사한 ‘동학은 흐른다~’(원곡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작곡 박문영) 노래 녹음을 위해 경북음악창작소를 방문했다. “동학으로 근대화가 이뤄졌습니다. 경주동학문화창작소는 동학의 발상지 경주에서 시민들이 동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알리는 활동이 주된 목표입니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을 개사한 ‘동학은 흐른다~’를 발표한 것 역시 같은 취지입니다. ‘동학을 흐른다~’를 발표할 수 있도록 흔쾌히 저작권을 허락해주신 박문영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동학문화행사, 동학해설사 등 경주 동학의 의미가 시민들에게 쉽게 전달되고,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다양한 문화 컨텐츠로 동학문화를 재조명해 나가겠습니다” 한편 동학문화창작소는 4절과 후렴구로 구성된 ‘동학은 흐른다~’를 경주동학문화창작소 유튜브채널을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
분황사가 신라와 조선의 역사와 문화가 공존돼있는 역사문화공간으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지난해 통일신라시대 조성된 경주분황사당간지주가 보물로 지정된 데 이어 최근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경북도지정문화재 분황사약사여래입상이 보물 승격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분황사는 신라 선덕왕 3년(634)년에 창건된 사찰이며, 신라 전불칠처가람 중 하나다. 신라시대 고승 자장과 원효 스님 등이 머물렀던 분황사는 설총이 원효의 유해를 부수어 만든 원효의 소상이 봉안돼 있던 사찰로 알려져있으며, 매년 ‘원효제향대재’와 ‘원효예술제’를 봉행해 원효스님을 추모하고 기리고 있다. -보물로 승격되는 ‘경주 분황사 금동약사여래입상’ 분황사 금동약사여래입상이 지난해 12월 30일 문화재청으로부터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돼 곧 승격을 앞두고 있다. 아동과 같은 귀여운 인상을 자아내는 불상은 앞서 1996년 경북 문화재자료 제319호로 지정됐으며, 높이 3.45m에 이르는 대형불상으로 조선 후기 규모가 가장 크고 유일한 금동불입상이다. 경북문화재자료 지정 당시만해도 불상관련 기록없이 조선시대 대형입상인 점을 고려해 문화재로 지정됐다. 이후 1998년 분황사 보광전 해체 수리과정 중 건물의 부재에서 ‘분황사상량기(1616)’과 ‘부동명활성하분황사중창문(1680)’ 묵서가 확인돼 금동약사여래입상이 신희인에 의해 1609년 5360근의 동을 모아 조성 봉안됐음이 밝혀졌다. 또한 당시 발견된 상량문을 통해 분황사 동조약사불상이 고려와 조선을 지나 유전돼 오다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면서 소실됐다. 전란 이후 사회·경제적 여건이 좋지 못한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약사불상은 전대의 전통에 따라 동조로 제작, 전대의 명성과 위상을 최대한 반영됐음을 알 수 있다. 경주 분황사 금동약사여래입상이 현존하는 한국 고대 동조불상 중 최대 작품이며, 정통성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받게 된 것이다. -볼거리 많은 분황사, 문화재 보호 관리에도 특별히 더 신경써야 이로써 분황사는 보물 지정을 앞두고 있는 ‘경주 분황사 금동약사여래입상’을 비롯해 국보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과 보물 ‘경주 분황사 당간지주’, 경북도유형문화재 ‘분황사 화쟁국사비부’, 문화재자료 ‘분황사 석정’ 등 국가 및 경북도 지정 문화재가 넘쳐나게 된다. 또 약사불, 초석과 허물어진 탑의 부재, 일본식 석등, 일제강점기시절 문화재표지석 등 비지정 문화재들이 곳곳에 산재돼 있다. 여기에 사적 ‘경주 구황동 원지 유적 일원’이 인접해 있어 관광객뿐아니라 문화재에 관심이 많은 관람객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분황사 당간지주를 찾은 관람객 A 씨는 “분황사 당간지주의 특징인 귀부형 간대석과 펜스설치를 위한 지주석 거의 맞닿아있다. 문화재 보호를 위해 설치해 놓은 펜스로 인해 문화재 관람이 불편하다. 개선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경주시 관계자는 “관람객들의 무분별한 행위로 훼손되는 당간지주의 보호를 위해 3년 전 펜스를 설치했다”면서 “펜스 확장을 위해서는 문화재청과의 협의가 필요하다. 이에 앞서 경주시에서 자체검토를 먼저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경북교육청은 학교 방역 및 학사 운영 체계의 정비를 기반으로 새 학년 정상 등교 추진을 위해 ‘2022년 새 학년 방역 및 학사 운영 방안’을 지난 9일 발표했다. <사진> 기본 방향은 △학교 내 방역 및 감염병 확산 방지 대책 강화 △지역별·학교별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한 학교 중심 대응 체계 마련 △학교별 업무연속성계획 수립을 통한 비상대응 체계 마련이다. 이를 위해 방역 및 역학조사 인력 지원과 방역물품, 방역소독비 등 총 306억원의 예산을 집중 투입한다. 또 학교별 지역 감염의 특수성을 고려해 학교 중심 대응 체계를 마련해 세부 지침을 수립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확대했다. 원활한 학사 운영을 위한 방역 대책으로 방역인력 지원 3580명, 217억원, 방역물품 지원 30억원 등 방역 관련 예산을 확대 지원할 계획이다. 진단검사체계 전환에 따라 신속항원 자가검사키트 배부 및 확진자 발생 학교를 대상으로 ‘찾아가는 PCR 진단 검사’를 실시해 학교 현장 지원을 대폭 강화한다. 이와 함께 2월 14일부터 3월 11일까지를 등교 대비 ‘학교 집중 방역 점검 기간’으로 설정해 학교별 방역 체계를 점검·보완한다. 한편 새 학년 원활한 교육활동 운영을 위해 학교별 학사 운영 유형을 △정상 교육활동 △전체등교+교육활동 제한 △일부등교+일부원격수업 △전면 원격수업으로 구분해 대응한다. 학내 재학생 신규 확진 비율 3%, 학내 재학생 등교 중지(확진+격리) 비율 15% 두 가지 학교 단위 지표를 설정해 등교 유형 전환 기준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어느 한 지표가 기준 초과 시에는 전체 등교를 원칙으로 하되 교육활동을 제한하거나 밀집도 조정을 통해 일부 학생의 원격 수업 실시가 가능하다. 학교단위 전면 원격수업 전환 기준은 단위 학교에서 정해 학교비상계획 수립 시에 반영한다. 지역·학교 단위 일괄 원격수업 전환은 신중하게 결정하되, 강화된 학교 방역을 통해 대면 수업을 유지하도록 권장하는 한편 유치원·초등학교 1~2학년·특수학교(급)·돌봄·소규모·농산어촌학교는 매일 등교한다. 임종식 교육감은 “학교별 업무연속성계획(BCP) 수립을 통해 코로나19 위기 상황속에서도 필수교육활동이 중단 없이 지속될 수 있도록 비상 대응 체계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동국대 경주캠퍼스가 동국대 와이즈캠퍼스로 명칭이 변경된다. <사진> 학교법인 동국대는 지난 8일 이사회를 개최하고 경주캠퍼스 명칭 변경 계획을 보고 받았다. 명칭 변경안 계획안은 동국대 경주캠퍼스를 와이즈(WISE)캠퍼스로 명칭을 변경하는 것이다. 동국대는 명칭 변경을 통해 대학 브랜드 구축과 캠퍼스 특성·미래 발전 가능성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수도권 대학들의 지방캠퍼스 명칭 변경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한양대 안산캠퍼스는 에리카캠퍼스로 명칭이 변경됐고 건국대 충주캠퍼스는 글로벌캠퍼스, 연세대 원주캠퍼스는 미래캠퍼스, 고려대 조치원캠퍼스는 세종캠퍼스 등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동국대 경주캠퍼스는 명칭 변경을 위해 지난해 3월 사업 계획안을 수립해 재학생과 교직원, 동문 등을 대상으로 캠퍼스 명칭 및 공모를 진행했다. 또한 2차례 명칭 선호도 조사를 거쳐 변경안을 수립했다. 동국대 경주캠퍼스 새 명칭인 와이즈(WISE)는 건학이념을 바탕으로 지혜롭게 혁신하고 스마트하게 융합 발전하는 캠퍼스라는 뜻을 담고 있다. 경주캠퍼스에 따르면 새 명칭 WISE는 Wise, Innovation, Smart, Evolution의 약자로 캠퍼스 특성과 미래 발전 방향 및 가능성을 함께 표현한 명칭이라고 밝혔다. 이홍천 동국대 경주캠퍼스 비서실장은 “캠퍼스 명칭 변경은 지방 캠퍼스가 경쟁력을 갗춰 확실하게 변하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건학이념을 기반으로 지속가능한 혁신과 발전을 이뤄나가겠다는 의지를 담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직 정관 개정과 교육부 절차를 거쳐야 명칭 특허청 출원 등이 남아 있어 바로 명칭 변경이 되는 것은 아니다”면서 “2학기 전에는 학교 명칭을 변경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동국대 경주캠퍼스는 학제 개편도 단행될 예정이다. 이사회에서는 ‘학과·대학의 신설과 폐지 및 학생정원 조정’에 대한 안건이 의결됐다. 경주캠퍼스는 기존 10개 단과대학에서 6개 단과대학으로 변경될 예정이다.
경주시청년연합회는 지난 12일 더케이 호텔 거문고홀에서 제24대 회장단 및 감사 이·취임식을 개최했다. <사진> 이번 이·취임식으로 이진수 회장이 ‘청년의 열정으로 밝은 경주를’이라는 슬로건 아래 1년간 경주시청년연합회를 이끌게 됐다. 이진수 신임 회장은 “우리 청년들이 먼저 배려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솔선수범 해 나간다면 경주는 더 살기 좋은 도시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며 “청년들이 앞장서서 노력해 말로만 하는 봉사가 아닌 현실에 적극 참여하는 봉사를 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최치훈 이임 회장은 “경주시청년연합회 역대 회장으로서 청년연합회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고 청년들이 가야 할 길을 같이 고민하고 함께 실천하도록 하겠다”며 “취임하는 이진수 회장 역시 실행력이 강하고 청년연합회에 대한 열정이 대단함을 알기에 직전회장으로서도 뜻을 함께 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주낙영 경주시장, 서호대 경주시의회 의장을 비롯한 경주시청년연합회 역대회장들과 (사)경상북도청년연합회 김재홍 회장과 경북지역 각 시·군 청년연합회장들이 참석했다.
취업과 창업도 어려워 귀농·귀촌으로 전향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귀농·귀촌을 해도 경제력을 가지기란 쉽지 않다. 처음 접해보는 농사와 농촌 생활이 익숙치 않아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방법을 몰라 포기하는 사람들도 동시에 늘어나고 있다. 김동영 ‘도시에서 온 총각’ 대표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 귀농·귀촌을 계획하고 있는 청년들에게는 정보를 제공하고, 소비자와 농부들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취업을 앞두고 떠난 151일간의 배낭여행을 통해 전국 37개 농가의 일손을 돕고 여행지역의 특색있는 집밥을 먹은 것이 현재의 자신을 만든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외 배낭여행을 통해 오히려 한국의 음식이 궁금해 졌습니다. 한국 음식의 다양성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고, 지역만의 특색있는 음식을 알고 싶어져 한국으로 돌아와서 곧바로 배낭여행을 다시 떠났습니다”, “약 5개월 정도를 다니면서 전국의 농가 37곳에서 일을 도와주고 숙식을 해결했습니다. 그러면서 각 지역의 특색있는 음식을 접하게 됐고, 그러면서 ‘아 향토음식과 지역 특산품에 대한 일을 해보자’, ‘농촌과 도시를 이어주는 역할을 해보자’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김 대표는 여행을 마치고 농산물과 관련된 업체들 위주로 취업을 준비했고, 취업을 하면서 경주로 이주하게 됐다. 그는 취업 후 농산물 전반에 대해서 익힐 수 있었지만 정작 본인이 하고 싶었던 ‘농촌과 도시를 이어주는 일’은 시작도 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1년 8개월의 직장생활을 정리하게 된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좋았습니다. 농산물과 관련된 일을 배우는데 월급까지 받으니 생활도 안정적이었죠. 하지만 월급이 주는 안정감에 정작 하고 싶었던 일을 미루는 모습의 자신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내가 무엇을 위해 도시를 떠나 시골에 왔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과감하게 퇴사를 결심하게 됐습니다” 직장을 퇴사함과 동시에 그는 자신이 배낭여행을 다니며 경험했던 것들을 엮어 책을 출간했고, 이어 ‘농촌과 도시를 이어주자’는 그의 목표를 위해서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전국의 농가를 다니며 인터뷰한 내용을 콘텐츠 삼아 귀농·귀촌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는 정보를 제공하고, 농가에 판로를 이어주기 위해 시작했지만,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유튜브를 시작하고 1년간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수입은 없어졌고 막막했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농가를 다니며 이야기를 듣고, 영상을 편집하고 꾸준하게 업로드 했습니다” 구독자도 영상시청 조회수도 쉽게 늘지 않았지만 김 대표는 꾸준히 농가를 찾아다녔고, 도시를 떠나 귀농·귀촌을 선택한 젊은 청년 농부들의 이야기, 오랫동안 지역 농가를 지켜온 농부들의 이야기 등을 꾸준히 소개했다. 그렇게 1년간 멈추지 않고 꾸준히 이야기를 소개한 김 대표의 유튜브 채널은 어느새 구독자 1만을 바라보게 됐고, 1개 영상 최대 조회수 80만회를 기록하게 됐다. “제 채널의 영상들을 보면 편집이나 영상의 퀄리티가 그렇게 전문적이진 않습니다. 콘텐츠를 꾸준하게 이어온 것이 성장의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막 성장하는 단계라 아직 목표를 이뤘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농가와 도시를 이어주고 싶다’는 제 목표에 한 걸음 다가간 것 같아 뿌듯합니다” 김 대표는 유튜브 채널을 시작으로 농가와 협업할 수 있는 창업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제대로 팔리지 않는 B급 농산물을 재가공해 판로를 이어주는 사업을 계획중이라고 했다. “농가에서 잘 팔리지 않는 B급 이하의 농산물들은 처치가 곤란해 애물단지가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 B급 이하의 농산물들을 재가공해 저렴하게 제공할 수 있는 유통구조를 만드는 것이 다음 목표입니다. 앞으로도 농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전달해 농가와 도시를 이어주는 역할을 계속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