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미국 코네티컷주에 있는 샌디 훅(Sandy Hook) 초등학교 도서관. 광고는 도서관에 따분하게 앉아 있던 남학생의 낙서로 시작된다. ‘아, 따분해(I am boared)’ 무료할 때 흔히 하듯 주인공은 아무 생각 없이 책상에다 낙서를 남기고는 수업엘 들어간다. 가볍게 노래가 흐르고(아마 수업이 마쳤다는 의미겠다) 다시 돌아온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예상 못한 댓글(?) 낙서였다.
“안뇽, 따분아(hi boared, nice to meet you)” 처음엔 독백이었는데 이제 대화가 되었으니 쌍따옴표 처리가 좋겠다. 남학생의 굵은, 그러나 무료한 느낌 그대로인 글자 바로 밑에 귀여운 필체의 댓글이 달린 거다. 여학생이다. 소년은 놀란 마음에 주변을 둘러본다. ‘누구지? 누가 글을 남겼을까?’ 따분한 도서관은 이제 흥미와 재미로 가득한 놀이동산이 된다. 남학생의 얼굴에서, 중딩인 우리 아들 첫사랑에 빠졌을 때의 딱 그 얼굴이 보인다. 콧구멍이 벌렁거리는 사춘기 소년의 얼굴이. 그 학생은 반가움 반 호기심 반으로 또 댓글을 남긴다. “ㅋㅋ(lol)” 쉬는 시간이 되기만 기다리는 중(can’t wait for break)”
짝사랑도 상대가 있는데, 얼굴도 모르는 비밀 연애를 하자니 쉽지 않다. 남학생은 오가는 애들을 지켜보는 게 이제 주 임무가 되었다. 친구들과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도 목을 빼고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걸어가는 여자애들을 지켜본다.
댓글 릴레이는 계속 이어진다. “이번 여름방학에 뭐 할 거니?” 굵은 글씨가 물으니 “별 계획 없는데?” 하고 이쁜 글씨가 답한다. 가슴 설레는 주인공의 시선으로 학교 내 풍경은 즐겁게 어지럽다. 기분 좋은 배경 음악과도 아주 잘 어울린다.
이제 곧 여름 방학인데 마음이 급한 남학생은 “넌 정말 누구니?” 하고 물었다. 그를 아니 그의 필체를 알아본 건 우연하게도 여학생 쪽이었다. “안뇽, 따분아” 여학생이 웃으며 반갑게 부르자 “너였구나!” 남자애는 고개를 돌리며 여학생의 얼굴을 확인한다. 배경음악은 이미 해피엔딩이다. 이렇게 풋풋한 사랑이 시작되려는 순간! 저 멀리 강당 문이 활짝 열린다. 그리고는 헤드폰을 쓴 노랑머리 남학생이 장총을 꺼내 든다. 날카로운 비명소리와 함께 학교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바뀐다.
불행히도 이 광고는 사실에 기반을 둔 것이다. 2012년 12월 14일에 있었던 샌디 훅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은,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미국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총기 사건이었다. 6~7세 사이의 어린이 20명과 학교 직원 6명을 포함해서 모두 26명이 살해되었다. 끔찍한 일을 저지른 주인공은 대체 누구인가?
다시 광고로 돌아가 본다. 상대를 찾고 다니는 남자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다니다 우리(시청자)는 그만 중요한 걸 놓치고 말았다. 광고 제작자의 의도였으니 모를 수밖에 없었겠지만, 사실 (나중에 총을 들었던) 그 노란 머리 학생은 모든 장면에 등장한다. 기분 좋은 배경음악과는 비교되게 어디선가 홀로 외롭게, 헤드폰을 푹 눌러쓰고 있었는데, 아무도 몰랐다. SNS에 죽고 싶다는 글을 남겨도, 총기 사이트를 뒤져봐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외롭고 아무도 말을 걸어주지 않는, 왕따 소년은 불행히도 광고의 진짜 주인공이었다.
인지(認知)하지 못하면 바로 앞에 있어도 우린 그 존재를 모른다. 엉뚱한 이야기지만 우리 와이프도 절대 모른다. 남편이 결백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와이프의 냉장고에서 굴 소스 좀 꺼내 달라는 소리에 나는 아무리 찾아도 없는(!) 그 소스를 와이프는 기가 막히게 잘 찾아낸다. 정말 없었는데 말이다. 신경마케팅 분야의 권위자 한스 게오르크 호이젤 박사도 ‘모르는 것’은 눈앞에 있어도 보이지 않는 법이라 했건만 나는 ‘잘 아는데도’ 안보였다.
공익 광고는 인간의 이런 특성을 잘 활용했다. 아무도 관심이 없었으니 결국 존재하지 않았던 그의 진짜 이름은 아담 란자(20). 학교에서 범행을 저지르기 전 자신의 어머니도 쏴 죽였던 그는 경찰이 들이닥치자 자신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김으로써 처참한 사건은 종결된다. 광고의 마지막 자막은 이렇다. “당신이 사랑에 빠진 남학생에 빠져있는 동안 누군가는 총기 난사를 계획하고 있다는 신호를 끊임없이 보내고 있었다. 아무도 눈치를 채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외로움과 무관심이 이렇게 무섭다. 보험금 때문에 계곡으로 떠밀려야 했던, 어느 남편 이야기에 가슴이 먹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