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고분벽화의 토종개는 죽은 자의 무덤을 지키는 진묘견, 견우와 직녀의 반려견, 사냥개, 주인을 지키는 호위무사견, 평화로운 마당의 집개로 그려져 있다. 개를 사랑한 우리 조상들의 마음, 무덤에까지 함께 하고픈 심정을 엿볼 수 있다. 우린 분명히 오래전부터 개를 사랑하는 민족이었다.
고구려는 서기전 1세기부터 668년까지 존속한 고대 왕국으로 거주지는 압록강 유역과 대동강 유역 일대이다. 고구려인은 농경민이었지만, 목축과 수렵을 겸한 생활을 했으며, 주 활동 무대인 지역의 곳곳에는 적석총(積石塚, 돌무지무덤) 무덤이 분포되어 있고, 적석총에는 고구려인의 생활사 등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 이들 벽화에 우리나라 최초의 토종개 모습이 그려져 있다. 고분의 전실과 통로 벽면에 그려진 개는 인간의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주술적 믿음과 함께, 무덤을 잘 지키라는 의미의 진묘견(鎭墓犬, 무덤 수호 목적으로 사용한 개) 역할을 하고 있다. 고대 이집트의 죽은 자의 영혼을 안내하는 죽음의 신인 아누비스(Anubis)와 같은 의미이다.
개가 그려진 고구려 고분은 357년의 안악 3호분 벽화, 408년의 덕흥리 벽화, 5세기의 송죽리 벽화,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의 각저총, 5세기 중엽의 무용총 등이다. 안악의 3호(동수묘, 冬壽墓)의 동쪽 곁방 서벽 벽화에는 부엌에서 일하는 여인과 고기를 저장하는 창고 사이의 마당에 붉은색의 아름다운 목테를 하고, 귀는 쫑긋하고 꼬리가 긴 검둥이 두 마리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자유롭게 다니면서 놀고 있는 두 마리의 검둥이는 오늘날의 집개의 모습이다.
덕흥리 고분(408년)의 전실 천장 남쪽의 벽화에는 은하수 그림과 함께 견우는 목줄을 한 소를 끌고, 직녀는 검둥이와 함께 오작교를 건너는, 견우직녀의 칠월칠석의 의미가 신비롭게 그려져 있다.
직녀를 따르는 검둥이는 목줄을 하지 않았고, 귀는 쫑긋하고, 입은 뾰족하며, 가냘픈 꼬리를 말아 올린 중형견으로 오늘날의 반려견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송죽리 벽화(5세기)에도 두 마리의 개가 그려져 있다. 백구 한 마리는 앞방 동벽 기마 인물 행렬 제2단의 끝에 묘사되어 있고, 다른 한 마리는 제3단의 말미에 그려져 있다고 알려져 있다. 2단의 흰 개는 주인을 따라 사냥터로 가는 모습이며, 아주 고급스러운 검은 목테를 두르고 있으며, 누운 귀에 둥근 눈과 머리가 큰 편이며, 주둥이는 짧고 튼실하고, 꼬리가 탐스러운 대형견인 사냥개이다.
각저총(5세기 초)의 이음 길 벽에 그려진 개는 위치나 크기, 자세로 보아 무덤을 지키는 진묘견(鎭墓犬)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음 길 서북 벽에 실물 크기로 묘사된 이 개는 아주 화려한 목테를 하고, 귀를 쫑긋 세우고, 입을 벌려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고, 꼬리를 바짝 세운 공격 일보 직전의 모습을 하면서 무덤을 지키고 있다.
무용총(5세기 중엽)의 널방 벽 가무배송 장면에 말을 탄 채 춤과 노래로 배웅을 받는 주인 앞에 목테를 장식하고 쪼그리고 앉아 있는 황구가 묘사되었다. 노래와 춤으로 다소 혼란스러운 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전방을 노려보고 있는 호위무사견(護衛武士犬)의 모습이다.
또, 무용총 사냥도에는 사냥꾼 사이에서 말과 함께 날렵하게 달리는 사냥개가 그려져 있다. 장천 1호 고분(5세기 중엽)의 앞방 오른쪽 벽의 백희기악도 중에 주인 발치에 검은색의 고급스러운 목테를 한 누렁이가 뾰족한 귀와 크고 둥근 눈, 북슬북슬 한 꼬리털과 강한 입을 가진 매우 큰 대형견이 쭈그리고 앉아 주인을 보호하는 호위무사견, 즉 경비견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좌측 하단의 사냥도에는 말 타고 질주하고 있는 주인과 함께 흰색의 긴 털을 흩날리며 전 속력으로 달리고 있는 목테를 한 대형견인 사냥개가 그려져 있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 그려진 개 그림은 우리 토종개의 모색과 외형적 특징과 기원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고분군 벽화에 나타난 개의 활용도는 죽은 자의 무덤을 지키는 진묘견, 견우와 직녀의 반려견, 사냥개, 주인을 지키는 호위무사견, 평화로운 마당의 집개임을 알 수 있다. 개와 함께한 우리 조상들의 생활과 무덤에까지 함께 하고픈 선조들의 심정을 엿볼 수 있다. 우린 분명히 오래전부터 개를 사랑하는 민족이었다.
경주개 동경이 혈통보존연구원장경주신문 독자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