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에 대하여
김승희
가난은 전깃줄 위에 나란히 앉아 있는반쯤 감전된 검은 까마귀들이거나신문지로 덮어놓은 밥상구타와 악다구니와 꽃밭 앞에 나동그라지는 세숫대야천지는 인자하지 않단다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이 하나병들어서 어느 날 밤에 누군가는 생을 떠나고아침 골목에 내놓은연탄재 구멍 속에 누군가 파란 손목 두 개를 꽂아놓았네가난은 폭삭 끊어진 계단계단이 없으면 천사도 안 오고돈도 안 오고밤새 눈 내려 얼어붙은 빙판길에 압정 같이 떨어진 별빛들가난은 압정같은 별빛을 밟고 걸었다슬픔은 휘발되지 않더라슬픔은 가라앉아 벽돌이 되기도 하더라그 벽돌이 몸을 이기기도 하더라벽돌 한 장 만한 마당에 꼬부랑 할머니가세살짜리 손녀와 앉아 채송화나 분꽃 씨앗을 심는 것아욱을 바락바락 씻고 맑은 쌀뜨물에 된장을 풀듯이어진 손이 그렇게 하는 것천지는 인자하지 않지만가난 속에서 어진 기운이 나오는 움틀임의 방향으로그렇구나,가난이 마지막 단어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가난의 막다른 골목, 그러나 그 속에서 나오는 어진 기운
다시 봐도 번득이는 시다. 이미지는 선득하고 뼈가 저린다. 박수근 그림보다 우울한 푸른 빛이 서린 좋은 시에 찔린다. 감전된다. 시인은 ‘세상’이 아니라 ‘천지’라는 어휘를 써서 골목의 가난을 핍진하게 그린다. ‘천지’라는 말은 세계를 넘어서 우주, 섭리까지를 끌어오는 말이어서, “천지는 인자하지 않다”라는 문장 속에는 신의 섭리가 있다면 어떻게 이렇게 비참하도록 내버려두었을까 하는 감정마저 들어 있다.
시인은 가난을 전깃줄에 나란히 앉아 꾸벅꾸벅 졸다가 “반쯤 감전된 검은 까마귀들”, “구타와 악다구니와 꽃밭 앞에 나동그라지는 세숫대야”,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이 하나”밖에 없는 누군가가 병들어 죽어가는 것, 심지어 아침골목에서 발견되는 “연탄재 구멍 속에” 꽂아놓은 “파란 손목 두 개”로 묘사한다. 연탄구멍 속의 파란 손목은 필시 연탄 집게를 말한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그 불길함이 가시는 건 아니다. 가난은 필시 공간과 미래시간으로부터의 단절(“가난은 폭삭 끊어진 계단”)이어서 구원도(“천사도 안 오고”), 물질적 도움도 없어서(“돈도 안 오고”), 별빛마저도 압정같이 밟고(“빙판길에 압정 같이 떨어진 별빛들”) 건너게 한다.
이 시에서 가난이 야기한 슬픔은 벽돌이라는 최소공간으로 묘사되는데(“슬픔은 가라앉아 벽돌이 되기도 하더라”), 이 공간에서 반전이 일어난다. 바로 “벽돌 한 장 만한 마당에 꼬부랑 할머니가/세살짜리 손녀와 앉아 채송화나 분꽃 씨앗을 심는 것”에서 말이다. 골목에 만연한 조손가정 이야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천지는 인자하지 않단다”에서 “천지는 인자하지 않지만”으로 물길을 트는 할머니와 세살짜리 손녀에게서 어진 기운을 읽는 이 믿음 때문에 우리 삶은 아직 포기할 수 없다. 어진 기운은 어진 기운을 낳는 법. 마지막에 휘감아치는 “가난이 마지막 단어가 아니라서 다행이다”는 말이 한없이 작아진 우리를 감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