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국립중앙박물관의 특별전 <조선의 승려 장인>을 관람했다. 조선시대 불교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대규모 전시로, 평소에 실견하기 어려운 불상(佛像)과 불화(佛畫) 등 불교 미술품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중 필자는 제2부 ‘불상과 불화를 만든 공간’에 설치된 ‘화승의 스튜디오’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화승의 스튜디오’는 사찰에서 예술품을 만드는 스님(승려 장인)들이 실제로 작업하는 공간을 전시장에 옮겨온 것이다. 스튜디오 내부는 불화장(佛畫匠)이셨던 석정스님(1928~2012)이 생전에 실제로 사용하셨던 붓, 먹, 종이, 벼루를 비롯하여 불화를 그리는 도구들이 전시되어있었다. 도구들 옆의 모니터에는 석정스님의 제자인 송천스님이 실제로 불화를 제작하시는 영상이 방영되고 있었다. 스튜디오는 작가의 속살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완성된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작품의 제작 방법, 작품의 이면에 담긴 이야기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서예가인 필자는 종이와 먹 등 전통 서화재료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스튜디오에 전시된 재료들을 꼼꼼히 살펴보는데 먹이 눈에 뜨였다. 석정스님이 쓰신 먹들은 일반적인 것인 반면, 송천스님의 먹은 영상 화면에 얼핏 부분만 보였지만, 분명 <철재옹서화보묵(鐵齋翁書畫寶墨)>이었다. 이 먹은 유래가 좀 독특하다. 일본의 문인화가이자 유학자인 토마오카 텟사이(富岡鉄斎, 1837~1924)가 중국 상해에서 활동했던 청나라 먹장이었던 조소공(曹素功)의 후손인 조요천(曹堯千)에게 요청하여 만든 것이다. <철재옹서화보묵>은 문화혁명기 이전,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등 시대에 따라 먹의 재료가 조금씩 다른데, 문화혁명기 이전의 것은 오동나무 기름(桐油)과 칠(漆), 한방약을 향(香)으로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시기 먹은 매우 귀하고 비싸다. 먹은 와인이나 위스키처럼 시간이 오래되면 될수록 숙성되어 고색(古色)이 나오기 때문이다. 송천스님이 불화 제작에 이 먹을 쓰고 계셨다. 보통 전통먹, 그 중 유연먹(油煙墨)을 쓸 때 고매원(古梅園)의 홍화먹(紅花墨)을 쓴다. <철재옹서화보묵>은 우리나라에서 크게 알려진 먹이 아니라서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먹의 측면과 윗부분을 보면 어느 시기, 어떤 재료로 만들었는지 알 수 있는 세부정보가 적혀있는데, 영상의 먹은 부분만 나오다 보니, 세부정보까지는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먹은 식물의 씨앗을 착즙해 생긴 기름을 태워 만든 그을음으로 만든 유연먹이다. 소나무 그을음으로 만든 송연먹(松煙墨)보다 입자가 작고 고르며, 보다 진한 검은색을 띄며 광택이 있는 편이다. 극세필이 필요한 불화를 위해서 송천스님은 중후하고 깊은 색을 내는 송연먹을 사용하기 보다는 검은색에 가깝고 입자가 고운 이 먹을 선택하신 것 같다. 일본인의 요청에 의해 중국에서 만든 먹이 불화 제작을 위해 한국에서 사용되었다. 전통시대 서사도구를 함께 공유한 한중일 삼국의 이야기가 이 먹 한 자루에 들어있는 느낌이었다. 좋은 먹과 종이에는 국경이 없다. 조선시대 옛 편지를 읽던 중, 정조가 중국에서 수입한 냉금지(冷金紙, 금박, 은박이 박혀 있는 종이)를 신하들에게 한두 장 씩 선물했다는 구절을 읽은 기억이 있다. 신하들은 왕에게 선물로 받은 그 종이 한 장을 얼마나 애지중지했을까? 물론 임금에게서 하사받은 것이어서 더욱 소중했겠지만, 종이는 그 자체로 귀한 것이었다. 좋은 먹도 물론이다. 그래서 예부터 먹 아끼기를 금과 같이 한다(惜墨如金)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동아시아 삼국은 함께 공유한 역사와 문화가 풍부하다. 특히 서사도구였던 문방사우는 동아시아만의 독특한 문화이다. 명필이 붓을 가리듯 국적과 관계없이 더 우수한 제품을 선호하고 사용하는 것은 예술가에게 당연한 일이다. 수단과 도구를 잘 활용하여 최상의 결과물, 최고의 작품을 만드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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