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 골목관광상권을 비교 분석해 기획보도를 한 의도는 단 하나의 지향점을 찾기 위해서였다. 전국 각지에 존재하고 있는 골목상권 그 자체만의 활성화가 아니라 인접한 상권과 지역 관광산업의 활력을 찾는 방안을 모색해 나가자는 것이었다. 특히 경주의 황리단길은 지난 2016년부터 전국 각지의 젊은 층들이 찾으면서 지역 상권지도를 바꿔버렸다. 반면 경주 도심상권은 침체되기 시작했고,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여파로 침체 속도도 더욱 빨라지고 있다. 그나마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의 상권 르네상스 사업에 선정돼 올해부터 본격 추진하고 있어 기대를 모으고 있다. 도시재생뉴딜사업 등 기존 사업과는 달리 실질적인 상권 회복에 중점을 두고 진행되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본지는 여섯 차례에 걸쳐 8개 골목상권에 대한 특징과 현황, 개선점 등을 보도했다. 이번 호에서는 경주 황리단길을 중심으로 도심 상권과 전통시장 등 인접한 상권을 연계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을 타 지역 사례를 통해 살펴봤다. 그리고 경주시가 추진 중인 중심상권 르네상스 사업에 대해 짚어보고 이번 기획보도를 일단락한다. -편집자주
오미크론 변이 확산으로 다시 찾아온 코로나19 위기 속에 지난 2일 전국의 유·초·중·고교가 일제히 개학했다. 경주교육지원청에 따르면 경주에서는 유치원 57개, 초등학교 44개, 중학교 22개, 고등학교 19개, 특수학교 1개 등 총 143개 학교가 이날 개학했다. 이중 141개 학교가 정상 등교했다. 전면 원격수업 1개 고등학교, 일부 원격수업 1개 중학교를 제외하고 모든 학교가 대면 수업을 시작했다. 전체 학생 수는 2만6300여명에 이른다. 문제는 오미크론 확산이 전국적으로 17만명선을 오르내리다 지난 1일 20만명선을 넘어섰고, 경주지역도 예외 없이 확산세가 가파른 상황에서 개학했기 때문이다. 경주에서는 지난달 28일 기준 누적 확진자가 1만명을 넘어서 총 1만521명을 기록했다. 2월 확진자만 7888명으로 지난 2020년 2월 지역 내 첫 발생 후 전체 누적 확진자의 75%가 한 달 만에 쏟아져 나온 것이다. 특히 지난달 22일 609명이 발생해 일일 최다 확진자수를 기록했고, 이후부터 매일 500명대의 확진자가 나오면서 확산세가 전혀 꺾이지 않고 있다. 또 검사건수 대비 확진자수를 나타내는 확진율도 2월 한 달간 14.5%로, PCR검사를 받은 사람 100명 중 14~15명이 확진판정을 받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교육부는 그동안 3월 신학기부터 정상 등교 방침을 확고히 했다가 자율적인 원격수업 카드를 꺼내 들면서 학교 현장과 학생, 학부모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방역당국은 3월 중순경에는 하루 확진자가 27만명에 이를 수 있다는 예측도 내놓았다. 백신접종율이 낮은 청소년들이 등교해 학생 간 전파가 많아지고, 또 그 가족들에게 전염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예상 가능한 확진자수 급증에도 지역 내 대다수 학교가 일제히 개학했고, 적절한 대책도 없다보니 학부모들의 불안감만 커지고 있다. 물론 코로나19 이후 등교일수 감소로 상하위권 학생 간 학력 격차가 심화하는 등의 부작용은 막아야 한다. 하지만 오락가락한 정책으로 인해 학생, 학부모들의 혼란을 가중시켜서도 안 될 일이다. 방역당국과 교육당국은 긴밀한 공조를 통해 학생들이 학교에서 안전하게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지난 1일은 103주년째를 맞은 3.1절이다. 전국에서 국권회복을 위해 헌신한 선조들을 기리기 위한 기념식이 열린 가운데 경주에서는 좀 더 특별한 3.1일절을 맞이했다. 경주 3.1 독립만세운동 발상지 표지석을 설치하고 제막식까지 거행해서다. 경주시가 이번에 설치한 표지석은 상판 가로 1.8m, 세로 1m 크기의 자연석으로 제작했다. 표지석 받침은 가로 2.2m, 세로 0.3m 크기다. 표지석 전문에는 ‘경주 3·1독립만세운동 발상지’라고 새겼다. 표지석이 세워진 곳이 1919년 3월 15일 경주3.1만세운동이 일어난 역사적인 장소라는 내용과 당시 독립운동에 대한 의의를 자세히 담기도 했다. 다만, 표지석이 설치된 경주 3.1만세운동 발상지가 노동·노서동 고분군이 위치한 문화재보호구역 내이어서 기대만큼의 크기로 제작되지 못한 점은 시민 입장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경주에서 실제 3.1만세운동이 거행된 것은 1919년 3월 15일이었다. 장소는 당시 작은 장이 열리던 노동리 봉황대였다. 앞서 3월 13일 노동리교회(현 경주제일교회) 신자를 중심으로 봉황대 일원에서 만세시위가 예정됐지만, 일제에 의해 발각되면서 안타깝게 무산됐다. 하지만 이들의 계획이 일반에 알려지며, 이틀 뒤인 3월 15일 기독교인, 천도교인, 시민 등이 참여한 만세운동이 성공적으로 거행됐다. 특히 경주에서 전개된 3·1만세운동은 1921년 금관총 출토유물 경주유치운동과 민족운동인 신라고적환등회로 이어지는 등 특별하고도 독보적인 운동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같은 가치에 비해 표지석 설치가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선조들의 국권회복을 위해 희생했던 경주3.1만세운동의 정신을 후손들에게 전하는 노력을 이어가야 한다. 그리고 학계에서는 일제강점기 나라를 되찾기 위해 기꺼이 나선 경주지역 독립운동가도 현재까지 알려진 것보다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제대로 된 자료수집과 연구를 통해 경주지역 독립운동사를 재정립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18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도시육성법을 제정하고 그에 따라 법정문화도시 공모사업을 하고 있다. 이 사업은 기존 하드웨어 사업이 아닌 인력양성, 문화생태계 조성 등의 의미가 들어가 있다. 공모에 선정된 기초지자체에게 5년 동안 최대 200억의 예산을 지원한다고 되어 있다. 작년 12월에는 3차 문화도시 평가와 4차 예비문화도시를 선정한 바 있다. 1차에 7개 도시, 2차 5개, 3차 6개 도시가 선정되는 동안, 경주시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경주는 누가 뭐래도 자타가 공인하는 유서 깊은 역사문화도시 아닌가? 그런데 이 법정문화도시 지정에 경주의 이름이 보이지 않음은, 평소에 경주에 대한 생각과 기대에 어긋나 보인다. 물론 정부 사업은 얼마간의 지역 안배도 있고 특히 대형 정책 사업은 정치적 고려가 없다고 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라면 경주로 등식이 되어야 할 판에 법정문화도시 이름에 보이지 않은 것은 자못 아쉽다, 지역소멸의 시대에 지역 간 문화생활의 불균형과 격차가 심하다. 지역 간 문화예산 격차가 심하고 지자체별 문화예산은 전체 예산 중 0.57%에서 13.28%까지 지자체별로 차이가 발생하고 있다. 정부사업은 우선적으로 소멸해가는 지역을 되살리고 국가균형발전전략의 일환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말하자면 이러한 사업은 지역문화생활의 지역불균형을 해결하려는데 성격이 맞춰져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맥락에서만 보면 경주시는 타 시군에 비해 문화적 기반이 비교적 우수하다고 하겠지만, 무엇보다 이 법정문화도시 사업의 성격은 지금까지 그러했듯이 위로부터 시행하는 사업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말하자면 풀뿌리 문화사업의 기획력과 자생력과 시민들의 문화마인드의 생산성을 보고자 하는 것이다. 지역의 문화적 소프트웨어와 지역문화를 끌어가는 힘을 보는 것이라 하겠다. 문화자치역량을 시험하는 잣대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지속가능한 문화도시로 성장시키기 위해서 이사업을 주목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도시가 되면, 문화를 통한 사회 활성화 및 지역 자치기반을 구축하게 될 것이다. 문화도시 활성화를 통해 도시민의 문화적 삶의 질 향상과 정주가치 확보, 문화가치 중심의 사회생태계에 기반을 두는 지역의 사회적 효과를 창출할 것이다. 그리고 문화적 재생의 효과가 있을 것이다. 문화적 도시재생사업은 유휴공간이나 시설에서 문화적인 활동을 통해 지역을 재생시키는 것으로 원도심의 유휴공간을 시민의 힘으로 재생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문화도시는 지역의 시대에 지역에 사는 시민들에게 경제적인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자존감을 부여할 것이다. 이러한 자존감이 곁들여진 삶의 모습은 당연히 역사문화도시로서 관광도시로서의 경주의 역량도 배가하리라 믿는다. 지금까지 법정문화도시로 지정된 몇 지자체의 특징을 요약해보면 장차 경주가 문화도시로 지향해야할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우선 그들 도시는 창조집단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주민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문화예술을 즐기고 누리고 있다. 그리고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주민들을 대상으로 아닌 주체로 키우는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이들을 조화롭게 풀어내는 역량도 필요하다. 지역문화에 자긍심을 가지고 지역문화를 꽃피우려는 간절함이 보인다. 로컬 크리에이터는 물론 문화기획가 양성도 필요하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람을 모으고 문화 학습능력을 길러야 한다. 지역에 필요한 전문가를 초청하고 머리를 빌려서라도 해야 한다. 경주는 오랜 역사문화도시로서 인프라와 자원은 풍부하다고 하겠지만 문화자치역량이 있는지 스스로 성찰해볼 때이다. 경주를 문화도시로 성장시키려는 간절함이 있는가? 이 간절함을 바탕으로 장기적인 비전과 계획을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경주시민이 문화기획의 주체가 되어 지역주민이 일상으로 문화생활과 활동을 통해 예술, 문화, 아름다움을 공유하는 매력적인 도시 거듭나기를 바란다. 그것이 역사문화도시로서 경주의 문화를 튼튼히 하고 경주 문화를 건강하게 가꾸는 길이다. 물론 경주시 문화관계 담당부서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으리라 본다. 그리고 정부사업의 선정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법정문화도시 사업의 선정에 따른 경주시 지역문화의 현주소와 역량을 진단할 필요가 있다. 문화도시 지정 이 한 가지를 넘어 진정한 역사문화도시로 거듭나는 일이다. 문화도시가 되어야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관광도시도 될 수 있다. 경주가 역사문화도시로서 김구가 말한 진정한 문화의 힘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으면 싶다.
2000년대 초반에 한국공법학회 김효전 회장으로부터 부탁을 하나 받았다. 김 회장은 까마득한 선배로서 존경하는 분이니 부탁은 곧 지시와 마찬가지였다. 한국 헌법학의 제1세대 중 한 분인 박일경 선생에 대한 간단한 평전을 써달라는 것이었다. 알려진 대로 박일경 선생은 박정희 정권의 유신통치에 협력하였다. 그러나 그는 내 고등, 대학의 선배였고, 어떻든 위계질서를 무시할 수 없는 학문의 세계에서 저 위의 높은 의자에 앉은 분이었다. 고심했다. 하지만 결심했다. 분명한 역사의 잣대를 들이밀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가 외부세계를 내다보는 창문은 때가 끼어 흐릿했다. 바깥세상에서는 겨울을 지나 봄으로 가는 길목에서 천지간에 화려한 향연이 열리는 준비가 차츰 갖추어지고 있었다. 민주화를 외치는 부단한 노력에 의해 세상은 점점 바뀌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맑지 못한 창문을 통해서는 이 변화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겨울의 한가운데 있는 것으로 착각하며, 학자로서 취해서는 안 될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과거에 안주했다. 그 후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도 그때 인간적 정리를 끊어버리고 신랄한 비판의 자세를 견지한 것이 과연 합당했을까 하는 의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마음의 동요(動搖)를 여전히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 입바른 소리는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다시 그러지 않을 수 없다는 긴장 속으로 자신을 몰아넣는다. 나는 알려진 대로, 이 정부의 탄생을 위하여 일조를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정국에서 그 물꼬를 트기 위해, 당시 가장 선명한 보도를 하던 JTBC에 4번이나 나가 전 한국헌법회장으로서 탄핵에 찬성하는 입장을 밝혔고, 이에 따라 대다수의 헌법학자들도 내 의견에 동조하게끔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 중앙선대위에서 위원장직도 맡았고, 최고위 싱크탱크이던 민주통합포럼의 상임위원도 했다. 정부 출범 후 감사원장, 법무부 장관, 대법관으로 여러 번 물망에 올랐다. 그러나 이 정부,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쓴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정부에서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어 시행한 소주성(소득주도성장) 정책에서 핵심인 주 52시간제를 그는 ‘일자리 나누기’로 파악하였다. 하지만 이것과 소주성의 다른 기둥인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결합하여 ‘일자리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어쩌면 선연하게 보일 수 있는 모습도 그는 보지 못했다. 임기 내내 탁현민 비서관의 현란한 정치쇼에 의한 현실의 왜곡이 탁현민의 간사한 술책에 말려든 것이 아니라 어쩌면 문 대통령 그 자신의 흐릿한 눈이 그쪽을 선호하며 방향을 잡은 것인지 모른다. 강성친문들이 권력분립 같은 민주주의 원리를 부정하고 20년, 30년 장기집권을 하겠다고 백주대로상에서 권력에 흠뻑 취해 추태를 벌이는 언동을 할 때 그들의 이러한 네오 파시스트적 속성이 어쩌면 문 대통령 자신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강성친문은 단지 윗사람의 심기를 살펴 그 마음에 들려고 충성경쟁을 벌였을 것으로 본다. 완전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문 대통령도 그가 가진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내다보는 식견과 지혜가 충분하지 않다. 자신의 흐릿한 눈으로 본 영상을 실제의 모습으로 잘못 판단하여 적지 않은 실책을 저질러왔다. 그리하여 그는 때때로 헌정사의 전례를 마음대로 무시하는 만용도 저지른다. 그가 진정으로 자신이 정점으로 된 정부의 마지막을 깨끗이 수습하고 떠나려는 생각을 가졌다면, 전례에 따라 대선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행안부, 법무장관을 민주당 당적을 가지지 않은 사람으로 교체하고 중앙선관위를 보다 중립적인 형태로 바꾸어주었을 것이다. 얼마 전 유력한 대통령후보가 이 정권에서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도 법과 시스템에 따라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일갈했다. 그러자 문 대통령은 직접 나서서 현 정부를 근거없이 적폐수사의 대상으로 몬 것에 대해 강력한 분노를 표하며, 윤석열 후보의 사과를 요구하였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대통령이 가장 당선이 유력시되는 후보를 향해, 더욱이 대통령 선거 직전에 이런 행동을 하는 것 역시 우리 헌정사에서 전례 없는 일이다. 그가 직접적으로 개입하여 일으킨 무용하고 심히 과장된 ‘정치보복’ 논쟁은 결국 현실을 왜곡시키는 그의 흐릿한 눈이 원인이 되었다고 본다. 여하튼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이나 무리한 탈원전정책의 시행 등은 곧 들어설 새로운 정부에서 그대로 넘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동궁과 월지’는 얼마 전까지 안압지(雁鴨池)로 불렸다. 신라의 성대함을 간직한 안압지는 뭇새가 날아드는 적막한 연못과 무너진 건물로 쇠잔한 기운을 머금으며, 오랜 세월을 견뎌왔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안압지는 천주사(天柱寺) 북쪽에 있다. 문무왕이 궁궐 안에 못을 파고 돌을 쌓아 산을 만들었는데 무산십이봉(巫山十二峯)을 본떴으며, 화초를 심고 진기한 새들을 길렀다. 그 서쪽에 임해전(臨海殿) 터가 있는데, 주춧돌과 섬돌이 아직도 밭이랑 사이에 남아 있다”고 전한다. 임해전은 신라 시대의 궁전으로 건립연대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삼국사기』를 보면, 신라의 국운이 이미 기울어진 931년(경순왕 5)에 임해전에서 신라왕이 고려태조를 맞아 연회를 베풀었다고 하였으니, 신라의 흥망을 기억하는 임해전은 신라의 수많은 기억을 간직한 공간으로 인식된다. 옛 사람들은 높은 곳에 대와 정자 등을 짓고서 자연과 더불어 풍류를 즐겼다. 또한 상서롭고 나쁜 기운을 관망하여 기미를 살폈고, 백성과 함께 노닐며 수고로움과 편안함을 조절하는 방도로 삼았다. 특히 문왕은 영대(靈臺)를 지었는데, 백성들은 마음이 즐거워 자식이 부모의 일에 달려오듯이 애써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왔으니, 이것이 바로 덕치의 표본이었다. 임해정은 안압지 동쪽에 있었던 정자로 1926년 경주군수 박광렬(朴光烈)이 경주의 풍광을 즐기기 위해 안압지 주변에 정자를 건립하였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1977년에 경주시장 최태진(재임1976.02.26.~1978.08.02)과 경주시궁도협회의 주도로 임해정을 황성공원으로 옮겨 활 쏘는 호림정(虎林亭)으로 고쳐 걸었다. 김해출신 소눌(小訥) 노상직(盧相稷,1855~1931) 은 경주의 안압지를 찾아 최근에 세워진 임해정에 올라 풍광을 즐기고 박광렬의 시에 “이름난 도읍에 좋은 누각이 없어 안타까웠는데 아득한 천년 안압지 가에 마침 어진 부윤이 새롭게 지어 지나간 성대한 시대를 이었네(名都曾歎乏名樓 千載寥寥鴈鴨頭 適値賢矦修擧日 緬追前代盛繁秋)”라며 차운하였다. 노상직은 김해 생림면 금곡리에서 태어났으며, 김해 부사인 성재(性齋) 허전(許傳,1797~1886)에게 글을 배웠다. 동학이 일어나자 1895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금곡에 금산서당(錦山書堂)을 건립하고, 이듬해 노곡(蘆谷)으로 옮겨 자암초려(紫巖草廬)를 짓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문화재 도시 경주는 독특한 문화환경과 오랜 역사를 지닌 특수한 공간이다. 특히 신라의 문화가 지배적인 이곳에서 조선문화의 산물인 누각정대(樓閣亭臺)는 시대공존의 문물로 인식되어 영구히 보존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임해정기(臨海亭記) - 노상직 누각(樓閣)과 정자(亭子)와 대(臺)의 설치는 풍광(風光)을 보기 위함이요, 손님과 즐기기 위함이다. 게다가 시대의 흥망성쇠를 또한 볼 수 있는데, 황제는 12루를 짓고서 신명(神明)의 사람을 구하였고, 문왕은 영대(靈臺)를 경영하고서 백성들이 자식처럼 찾아왔다. 반면에 초나라는 장화대(章華臺)를 쌓고서 제후가 이르지 않았고, 오나라는 고소대(姑蘇臺)를 쌓고서 갑자기 고라니와 사슴이 나타났었다. 우리 땅에 있는 300칸의 청류각(淸流閣)과 500길[장(丈)]의 흘산정(紇山亭)은 모두 한 때 빼어났으나 성쇠의 기미가 남아있다. 신라는 잘 다스려졌기에 정자를 지어 경영할 마음이 없었다. 그러나 포석정의 유상곡수와 금오산의 구성대(九聖臺)는 빼어나 태평성대의 명승지가 되었지만, 시든 꽃과 무성한 풀만 부질없이 유람객을 배회하게 할 따름이었다. 박광렬 군수가 동도를 다스린 지 8년에 은혜를 베풀어 만들고, 또 무너진 곳을 보수하였다. 지난해는 집경전을 보수하며, 선왕의 성대한 뜻을 잊지 않았다. 이때 옛 수도의 이름난 자취가 많이 발견되었다. … 객사는 낮고 좁아 어찌할 수 없음을 늘 안타깝게 여겨 안압지 가 임해전 옛터 곁에다가 정자를 지었다. 임해전의 완성은 신라 중흥의 사이에 있었다. … 조정은 위에서 화하고, 백성은 아래에서 편안하였으니, 우리나라가 생긴 이래로 이와 같은 성대한 때는 없었다. 진실로 이름난 자취를 보고자하다면 이 임해전을 빼고서 어찌 가능하리오. 임해정이라 편액하였으니 신라의 성대함을 알 수 있다. 진기한 새와 꽃의 가득함이 비록 옛적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12봉의 청류(淸流)는 다함이 없고, 난간에 기대어 바라보면 문득 무산(巫山)과 동정(洞庭) 사이에 내가 있는 듯하였다. 불국사와 분황사의 경계가 서로 접하고, 옥적과 금척의 영이(靈異)함을 보는 듯 … 모두가 시야에 들어왔다. 하물며 대중에게 물어 돈을 모으고, 백성들이 공사 돕기를 수고로이 여기지 않았다. 군수가 나에게 기문을 부탁하였다. 나와 군수는 비록 서로 만나지는 못하였지만 미수(眉叟) 허목(許穆,1595~1682)·성호(星湖) 이익(李瀷,1681~1763)·순암(順菴) 안정복(安鼎福,1712~1791)·하려(下廬) 황덕길(黃德吉,1750~1827)의 문하에 있으며 나아가 서로 같음을 구하였기에 나는 끝내 사양하였다. 아! 동도는 우리 영남의 매우 가까운 곳이다. 위로는 세 성씨가 서로 전하고, 천년의 기틀을 공고히 이뤘으며, 아래로는 홍유 설총·문창 최치원·익재 이제현·회재 이언적 여러 선생이 도덕 문장으로 후인을 깨우쳤다. 정자에 오를 날을 청하여 서악서원과 구강서원과 옥산서원을 바라보니 사모함이 일었다. 고을의 선비들과 남은 일을 차례대로 밝혀 나가야하는 이유를 도모한다면, 또한 사문(斯文)의 성대함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덧 경주의 풍광들을 통해 기억을 소환하고 찾아다닌 지 수 년이 되었습니다. 주로 사라질 위기에 있거나 기록해야겠다고 판단했던 소재들이 대부분이었죠. 경주의 구석구석에서 벌어지는 삶의 자잘한 일상과 현장에도 주목했고요. 동국대 서양화과 김호연 교수님과도 작품으로 구현된 경주풍광과 함께 오랜 시간 연재를 해왔습니다만 교수님께서 편찮으신 바람에 저 혼자 연재를 이어왔습니다. 골목길 걷는 것이 취미인 제가, 며칠 전에도 구석지고 허름한 구황동 원효로 밤 골목길을 걸으며 상념에 빠졌습니다. 어두운 골목길을 밝고 따스하게 밝혀주는 가로등 불빛같이 노오란 희망을 김 교수님께 전하고 싶었습니다. 이 지면을 빌어 김호연 교수님의 빠른 쾌유를 빌어봅니다. 이곳 골목 구석구석에선 오래되어서 정겹고 순박한 생활의 민낯들이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골목길 걷는 것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수년전부터 황리단길의 북적함을 피하면서 아날로그 감성을 즐길 수 있는 동네로 구황동과 황오동을 찾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시내권 여행지와 멀지 않으면서도 경주의 일상적 ‘생활의 발견’에 젖어들고 싶을 때 이 동네들을 떠올리는 거죠. 천천히 걷는데도 제 발자국 소리를 들었는지 ‘컹컹’ 굵은 볼륨의 개 짖는 소리가 조용한 골목에 가득 찹니다. 저녁이 깊은 구황동 원효로 골목은 이제 차갑지 않았습니다. 겨울과 별반 달라지지 않은 별 변화없는 골목길인 듯해도 대기는 온화해졌고 살짜기 달달해진 온기가 얼굴에 와 닿더라구요. 구황동 골목길을 어김없이 밝히는 가로등들은 참 이상하게도 통일된 디자인이 아니었고 가로등마다 크기나 불빛의 밝기도 달랐습니다. 얼기설기 모양새도 허름했구요. 그런데도 이 오래된 동네의 골목과는 기막히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제 곧, 봄볕이 짙어질 구황동 골목에서는 나른하게 낮잠에 취할 고양이들을 만날테고 주민들이 일군 작은 텃밭에는 푸른 생명들이 돋아날 테죠. 담장 너머로 보이는 빨래들은 바삭바삭 햇볕에 구워질 테고요. 목련이니 모란이니 앞 다퉈 꽃들도 자지러질 테죠. 골목길에 켜진 소박한 가로등 불빛이 더욱 살갑게 다가오는 봄밤이었습니다. 좁고 구불한 구도심의 허름한 골목을 따스하게 밝혀주는 골목 속 가로등 하나는 안전하고 편하게 골목 속 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합니다. 어쩌면 지금의 우리는 길고 지리한 터널을 통과하고 있을텐데요, 그런 우리의 긴 터널과도 같은 골목길에서 그 가로등 하나가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따금씩은 골목을 비추는 가로등을 의지하며 경주의 봄밤 속을 걸어보세요. 시간은 흘러가고 오래된 동네 골목의 풍경들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을테니까요.
아프리카에 대한 평소의 생각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영화가 있었다. 시드니 폴락의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1986)’다. 영화는 카렌(메릴 스트립 분)의 시각을 통해 아프리카의 재발견을 시도한다. 시각교정은 연인 데니스(로버트 레드포드 분)가 담당한다. 카렌은 제국주의적 시각에서 점점 벗어나 아프리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된다.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 200명 남짓됐던 발생 초기, 코로나19에 걸리는 자체로 죄악시되고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은 때가 있었다. 위험하기도 했지만 우선 낯선 바이러스에 대해 막연한 공포감을 가지고 있을 때고, 실제 치명률도 높았기 때문에 당연히 가질 수 있었던 두려움의 반증이다. 그러던 것이 지난 2월 28일자로 확진자 수가 300만을 넘어섰고 100만명 가까운 국민이 격리상태로 돌입했다. 그런데도 발생초기의 두려움이나 패닉은 거의 없다. 그간 백신도 3차례씩 맞았고 코로나 델타와 오미크론 두 번의 변이를 거치면서 바이러스 자체의 치명률이 상당부분 떨어진데다 방역에 대한 사회적 시스템도 잘 가동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낯선 것에 대한 이질감이 사라진 것이 펜데믹 상황임에도 이 정도의 안정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 한 예가 김인현 씨의 가족에게도 일어났다. 김인현 씨의 부인이 오미크론 바이러스에 확진된 것이 일주일 전, 더구나 김인현 씨 부인은 보건소에 근무하며 혼신을 다해 바이러스와 맞서 온 방역전사였다. 다행히 중증이 아니어서 부인은 자가격리에 들어갔지만 불철주야 방역과 싸워오던 부인이 덜컥 확진자가 되고나니 김인현 씨의 짠함은 누구보다 컸다. 그러나 그런 마음은 잠시, 김인현 씨는 그때부터 또 다른 오미크론과의 전쟁에 나서야 했다. 세상을 지켜오던 부인을 이제 자신이 지켜야 하는 한편 다른 가족들과 자신에게도 2차 감염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치해야 했기 때문이다. “집에 있는 사람 각자 식사를 하기 위해 매끼마다 상을 4개씩 차렸다” 지난 2월 26일 김인현 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전쟁의 한 토막이다. 상 차리고나서 돌아서면 다시 상 차리는 일과가 되풀이됐던 것. 그 외 환기 등 소소한 대처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와중에 재택 근무하며 회사업무까지 돌봐야 했으니 일인 다역의 일주일이 폭풍처럼 지난 셈이다. 도중에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김인현 씨는 가족의 소중함과 가장의 의무감을 이번처럼 막중하게 느껴본 적 없다며 오미크론에 맞서는 의지를 다진 바 있다. 다행히 28일자 페이스북에는 테스트 결과 가족들 모두에게서 음성판정이 나왔다는 낭보가 올라왔다. 이 포스팅에 평소보다 훨씬 많은 ‘좋아요’와 댓글이 붙었음은 물론이다. 오미크론을 감기처럼 알고 살아야 할지 모를 우리 모두의 일상이 김인현 씨 가족에게서 자연스럽게 들여다 보였다. 이제 누구에게건 예외 없이 일어날 일상이다.
1995년에 개봉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The Bridges Of Madison County, 1995). 남편과 평생을 평범하게 살아온 프란체스카(메릴 스트립 扮), 그녀의 죽음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자식들은 그녀를 아버지의 무덤 옆에 묻어주려 하는데, 유언장에는 화장해서 로즈먼 브릿지에 뿌려달라는 당혹스런 글이 남겨져 있다.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식들... 어머니의 유품과 일기장들... 프란체스카의 유품에는 평생 그녀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나흘간의 사랑과 그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함께 했던 그녀만의 세상이 들어있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사진작가인 로버트 킨 케이드(클린트 이스트우드 扮)가 사진촬영차 매디슨 카운티에 온 바로 그 날, 마침 남편과 두 아이는 일리노이 주에서 열리는 박람회에 참가하러 집을 떠난다. 그리고 이어지는 프란체스카와 로버트의 운명적인 만남. 그들은 꿈같은 나흘 동안의 여름날을 보낸다. 나는 이 영화를 내 나이 스물여섯일 때 친구와 함께 봤다. 이십대 중반의 나이는 아직 채 익지 못한 나이였고, 영화를 이해하기에는 조금 어렸던 듯도 하다. 그때의 우리는 너무 철이 없었고, 결혼이라는 것을 생각해보지도 않았고, 자식이 어떤 의미인지도 느끼지 못할 때였다. 우리는 영화를 보고 나와서 한참동안 경주 시내를 거닐었다. 그러다가 커피 한 잔을 하러 갔고, 그곳에서 친구가 물었다. 만일 네가 프란체스카였다면 어떤 결정을 했을 거냐고. 그때는 그 물음에 바로 대답했다. 확실한 감정은 일생에 단 한번 오는 거라는 로버트의 대사가 생각이 난 까닭이다. “그래, 일생에 한 번도 오지 않을 감정이고, 기회인데 떠나야지. 나는 떠날 거야!” “나두!” 한번 생각한 감정은 두 번을 되돌아 볼 틈도 없이 우리 둘은 의기투합했다. 지금은 세월이 흘러 내 나이가 오십을 훌쩍 넘었다. 프란체스카처럼 두 아이의 엄마에 정직하고 성실하고 착하고 자상한 남편과 평온한 가정을 이룬 지금, 그때의 물음에 다시 답한다면 난 주저 없이 “난 떠나지 못할 거야”라는 말을 할 것이다. 사람의 감정이 변해서가 아니다. 그때도 맞고, 지금도 맞다. 아주 맛있는 과자는 아껴두었다가 조금씩 꺼내먹는 것처럼 아름다운 사랑은 추억 속에 넣어두고 힘들 때마다 조금씩 꺼내서 회상하며 살아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그날, 로버트가 비를 흠뻑 맞으며 프란체스카를 기다리던 그날, 그럼에도 프란체스카가 차문을 열고 끝내 달려 나가지 못했던 그 마음을 오십이 지난 지금은 넘치도록 잘 알 것만 같다. **박미희 작가 : 소티마을에서 브런치 카페 ‘로만티시’를 경영하며 그림 그리는 화가. 만다라를 즐겨 그리며 강렬하고 화려한 색채로 내면의 심리를 묘사하는 그림을 즐겨 그린다. 음식방면에도 탁월한 재능이 있어 한식과 양식부문 조리사 자격증을 갖춘 전문 요리사다. 특히 전통 된장 만들기에 남달리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직접 담근 된장을 로만티시를 찾는 고객들과 지인들, 건강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판매하고 있다. 로만티시 장독대에는 전국에서 주문한 고객들의 된장이 독째 익고 있으며 갤러리 카페를 방불케 하는 로만티시 홀에는 박미희 작가의 그림들과 맛있는 음식 냄새가 늘 조화롭게 넘실거린다.
옥산서원 ㅁ음자 공간으로 먼 듯 가까운 듯 봄을 알아차린 계절의 낌새가 유유자적하다. 기와지붕 처마 끝 고풍스런 흙 마당에 멍하니 서서 3월의 봄바람소릴 맡는다. 춘풍의 묵향에 실려 오는 옛 선비 글 읽는 소리, 두루마기 자락 풍류를 담은 허화열명인님 정가(正歌) 가락, 꽃샘바람결에 청아하다. 회재선생이 평생을 갈고 구하던 인(仁)의 철학사상이 가득 묻어나는 구인당(求仁堂) 강학공간이다. 공자가 설한 유교사상의 윤리적 기초가 되는 덕(德)의 함양을 인(仁)의 근본으로 곧추세우려던 심오한 철학이 경이롭다. 어질고 자애로운 인(仁)의 근본이 생성하는 만물의 이치는 아름답고 선하리라. “인의예지(仁義禮智)는 마음 바깥에서부터 나에게 녹아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본시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그것을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구하면 얻고 버리면 잃는다.” -맹자의 사단지심(四端之心)- ① 측은지심(惻隱之心): 인(仁) 남을 사랑하여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 ② 수오지심(羞惡之心): 의(義) 불의를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 ③ 사양지심(辭讓之心): 예(禮) 양보하고 공경하는 마음 ④ 시비지심(是非之心): 지(智)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 통나무층계사다리 세월을 풀어놓는 석봉 한호의 편액 묵직한 무변루(無邊樓)누각으로 오른다. 주염계가 찬한 “풍월무변(風月無邊)”에서 취한 글귀이다. 끝이 없다. 한계가 없다는 뜻은 인격과 학문의 깊이를 가늠하는 의미이다. 자연을 벗 삼아 심신을 수양하면서 공부했던 선비들의 자유로운 정신세계도 담겨져 있다. 무변루 편액 옆 작은 글씨로 ‘모자람도 남음도 없고 끝도 시작도 없다. 빛이여 맑음이여 태허에 노닐도다.(靡欠靡餘 罔終罔始 光歟霽歟 遊于太虛 미흠미여 망종망시광여제여 유우태허)’ 소재 노수신(1515~1590) 문장이 있다. 무변루 이름의 의미에 관한 주석 글이다. 소재는 회재보다 24세 연하후배다. 을사사화 19년간 유배생활을 함께했던 인물로 회재의 성품과 학문을 잘 알았다. 소재는 회재를 ‘당세무비(當世無比)의 학자’로 칭송했다. 무변루 마루 양옆으로 방이 딸려있다. 벽면의 마루문을 열면 서슴없이 들어오는 자옥산 풍광이다. 푸른 산 빛에 물든 정기를 받으며, 드높은 하늘과 흘러가는 구름에 심신을 안주시켰을 것이다. 자연경치와 맞물린 정서로 인격수양을 연마하고 학문의 뜻을 무한히 펼쳤을 무변루다. 아담한 한옥의 운치와 풍류가 묻어나는 쉼의 공간이다. 방 옆 발코니를 연상하는 소담스런 난간에서 바라보는 자계천 너럭바위 훤하다. 사산오대 중 마음을 씻는다. 즉 깨끗한 마음가짐으로 인격수양을 다스리는 ‘세심대’ 바윗돌 굳건하다. 이황의 글씨가 새겨진 한 덩이 진풍경이다. 달빛에 영그는 물소리 바람소리 자연과 인간이 한 뜻되어 우주에 안기는 사유의 폭을 ‘무변루’ 누각이 내어주고 있다. 봄이 익으면 다우(茶友)들과 어울려 찻자리 깔고 싶은 무변루 마루에 정적이 돈다. 무변루 누각 아래 통로를 거쳐 역락문을 나서면, 몸 풀린 자계천 물소리 한가롭다. 꽃눈으로 움트는 묵은 노거수나무덩치들 껍질 채 튼 살갗 게워내고 있다. 서원은 지식 함양뿐만 아니라 인격수양을 연마하는 역할을 동시에 추구했다. 조선시대 유교적 정신교육 문장 핵심은 4단계로 요약 된다. ①위기지학(爲己之學) 자기가 좋아서 스스로 하는 공부의 의미는 인격수양을 위한 것이다. ②수기치인(修己治人) 자기의 인격을 연마하고 나서 다른 사람을 다스린다. 모자라는 인격의 지탄받는 사람은 진정한 지도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③정기이정인(正己而正人) 자신이 먼저 인격적으로 바른 사람이 되어야 다른 사람을 바르게 한다. 백성들의 존경을 받으려 한다면, 바른 인격을 곧추세우는 것이 조선시대 유교 정치의 정신 었다. ④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자기 몸을 수양하고 나서 자기 가정을 잘 이끈 후에 국가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한다는 것이다. 유교문화는 인격수양을 갖춘 후 사회에 봉사해야 한다는 정신을 익혔다.
2015년 유엔 회원국 만장일치로 채택한 SDGs(지속가능발전목표)는 지속 가능한 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17개 목표, 169개 세부목표, 231개 지표로 구성되어 있다. SDGs는 2030년까지 전 세계인이 달성해야 할 헌장으로서 모든 사회적 주체의 참여와 행동을 강조한다. 유엔은 특히 기업이 주도적으로 사회문제 해결을 담당하도록 요구한다. ‘민간기업의 활동과 투자 및 혁신은 생산성과 포용적 경제성장, 고용 창출의 주요한 동력’이기 때문이다. 유엔은 영세기업부터 협동조합, 다국적기업에 이르는 민간부문의 다양성을 인정하며 기업에게 혁신과 창의성을 통해 지속가능발전을 가로막는 문제의 해결에 동참해 줄 것을 요청한다(2030 의제 제 67항).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기업의 포용적이고 창의적인 혁신에 의한 SDGs·ESG(환경·사회·지배구조)의 활성화를 기대한다. 유엔은 ‘기업이 역동적이면서 제 기능을 다 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한편, 기업과 인권에 관한 이행지침 (Guiding Principles on Business and Human Rights), 국제노동기구의 노동기준, 아동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 및 주요 다자간 환경협정과 같은 관련 국제 기준, 협정, 보건 기준을 수호(2030 의제 제 67항)’할 것을 제언한다. 최근 많은 기업이 ESG 경영을 통해 SDGs 실천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기업의 SDGs·ESG 실천이 ‘회사 홈페이지나 광고,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만 존재한다’라는 비판도 커지고 있다. 국제기구, NGO, 언론은 이를 「SDGs·ESG 워시」라고 정의 내린다(OECD 2017). 기업이 친환경적인 이미지로 소비자를 오도하는 ‘그린 워시(위장 환경주의)’로 보는 것이다.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SDGs·ESG 워시(Wash)는 종종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발생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SDG 워시가 발생하는 원인으로는 크게 기업 리더의 SDGs-ESG 경영 철학과 비전의 부재, 공급망 관리와 통제 시스템의 미구축, SDGs 사내 이니셔티브의 부재, 다 부문적-지역사회 협력 부족 등이 거론된다. SDGs·ESG 워시를 방지하기 위해 기업이 할 수 있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것은 첫째, 개별 기업의 여건과 조건을 고려한 철학과 비전의 재설계와 사내 SDGs·ESG 이니셔티브 지원이다. 글로벌, 국가 경영 트렌드를 고려하되 기업에 맞는 방식으로 SDGs·ESG 과제 중 우선 순위를 선택함으로써 기업 활동에 부담을 주지 않고 SDGs·ESG를 실천하면 된다. 둘째, 공급망 관리와 시스템 구축이다. 기업 리더는 공급망 관리와 시스템 구축에 관한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담당부서와 책임 주체를 선정하여 K-ESG 가이드라인의 기준에 부합하는, 지역사회와 연계를 실행하는 항목 관리, 정기적인 내부적인 점검, 전문가의 자문과 감사를 수행해야 한다. 셋째, 지속적인 교육과 커뮤니케이션 모색이다. 직원과 비즈니스 파트너들에게 SDGs·ESG의 가치와 비전에 관한 상시적인 의사소통이 이루어져야 한다. SDGs·ESG 가이드라인을 명확히 인식, 정의하고, 특정 목표에 통합하여 회사와 외부에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 회사 내 교육과 홍보가 많을수록 SDGs·ESG 워시는 줄고, 직원의 더 많은 헌신을 끌어낼 수 있다. 기업의 SDGs·ESG 교과적 실행은 SDGs·ESG 이해, 우선순위 결정, 목표 설정, 통합적 관리, 보고 및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매커니즘이 작동된다. 환경과 사회의 미래를 염두에 둔 지속가능한 자원과 원료 사용, 노동조건 개선은 비용을 증가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많은 기업이 SDGs·ESG 경영 철학에 기반한 비즈니스에 참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SDGs는 빈곤과 기아 퇴치, 교육 기회 확대, 지속 가능한 에너지 보장, 기후변화 해결을 포함한 17개 목표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러한 목표는 세계가 직면한 문제이다. 이러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은 다른 산업, 이해관계자와 협력할 수 있는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하고 관계를 개선한다. 높은 브랜드 이미지는 우수한 인적 자원 유치와 고객의 수를 늘리는 데도 효과적이다.
올해는 3.1만세운동 103주년 되는 해다. 동학 발상지 경주가 3.1 운동을 낳았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백범 김구, 몽양 여운형, 윤봉길 의사 역시 동학의 훈도를 받고 자란 인물들이다. 3.1 운동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유네스코 기록유산에 등재돼야 할 충분한 가치를 지닌 독립을 향한 민중들의 피맺힌 숭고한 항거였기에 필자는 이하 ‘3.1만세혁명’으로 칭한다. 3.1 만세혁명을 이야기하면 누구나 유관순을 제일 먼저 떠올리지만, 우리가 잘 몰랐던, 그래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민족대표 33인의 대표 손병희 선생이 있다. 손병희 선생은 충북 청원의 평범한 가정에서 서자로 태어나 21세 때 ‘빈부귀천의 차별이 없고, 누구나 평등하게 대접한다’는 말을 듣고 동학에 입도해 14년간 해월 최시형을 스승으로 모셨다. 전봉준과 함께 동학농민혁명을 지휘했고, 25년 후 동학의 최고 리더로서 3.1만세혁명을 이끈 위인이었다. 국운을 다한 조선의 보국안민과 척왜양을 위해 수운은 해월에게 고비원주를 명했고, 해월 최시형에 의해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그리고 동학의 도를 이어받은 그의 제자 의암 손병희에 의해 1919년 3.1 만세혁명이 가능했다. 신분철폐와 인간존중의 삶을 갈망하며 나라를 바로 세우려고 했던 동학인들은 조선왕조 지배세력들과 일본군에 의해 30만명이 넘는 너무나 많은 희생을 치른 후, 흩어져 항일 의병활동을 이어갔다. 이후 척왜와 독립을 위한 3.1만세혁명은 동학농민혁명의 변주곡으로 이 땅에 다시 태어났다. 일제는 동학인들이 항일 독립운동으로 이어가자 동학을 영원히 몰아내고자 했다. 하지만 손병희 선생은 일제의 탄압에 맞서며 이에 대한 항거로 1905년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했다. 보성사를 운영하면서 독립선언서를 인쇄했고, 민족대표 33인중 15인이 동학(천도교), 그 중 9인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리더로 활약했다. 그는 보성전문학교(고려대 전신)와 동덕여학(동덕여대 전신)를 인수하며 교육을 통한 구국에 헌신했던 소파 방정환의 장인이기도 하다. 천도교 중앙대교당(종로) 건립을 위해 당시 300만 교인들이 남자들은 짚신을 삼고, 여자들은 삯바느질, 논밭과 황소를 팔아 모은 100만원 중 건축비용 27만원을 제외한 거금을 3.1만세혁명, 독립운동 자금으로 모두 사용했다. 당시 한옥 1채가 1000원이었으니 엄청난 금액이었다. 이로 인해 대교당 건립도 1921년으로 늦어졌다. 이 같은 역사적 사실만으로도 결국 천도교의 자금과 인적 네트워크가 없었다면 3.1만세혁명과 임시정부의 실현이 사실상 불가능했다는 것을 입증한다. 손병희 선생은 대한민국 초대임시정부 대통령에 추대됐지만 독립을 위한 길을 선택했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모진 고문의 후유증으로 출소 후 1922년 5월 결국 순국한다. 지난해는 천도교 대교당 건립 100주년이었으며, 올해는 손병희 선생 순국 100주년의 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동학의 ‘보국안민, 광제창생’ 정신을 계승해 ‘대한민국 임시헌장(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 제3조: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무하고 일체 평등임)을 만들었다. 이는 외래 사상이 아닌 바로 청년 수운 최제우가 동학을 포덕한 궁극적 가치였다. 근대사 출발의 구심점이 되는 경주 용담은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에서 해월 최시형, 그리고 의암 손병희로 이어지고 있는 곳이다. 해방된 조국으로 귀국해 백범 김구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우이동 봉황각 손병희 묘역이었다. 그는 무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선생님 이제사 돌아왔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우리가 오늘 해방을 맞이하였습니다”고 전해진다. 경주에는 3.1만세혁명 성공기원과 국권회복을 위한 49일 기도처도 있었다. 해월 최시형의 아들 최동희는 1920년 8월 ‘최동희 음모 사건’이라 불리는 사건의 주모자로 지목되기도 했다. 대구의 부호인 윤홍열, 경주 최부자집 둘째 아들 최완 등과 만나 민족혁명 방침에 대해 논의하다 일제 경찰에 의해 9월에 체포돼 옥고를 치러야 했다. 이것이 바로 동학을 얘기하지 않고 3.1만세혁명을 이해할 수 없는 이유다. 많이 늦었지만, 봉황대 옆 3.1운동 표지석이 설치됐음은 참으로 다행이다. 경주시는 서양의 사상, 철학, 종교를 뛰어넘은 위대한 동학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관광 콘텐츠를 조성해주길 호소한다. 경주시가 전국에 퍼져있는 동학의 주도권을 하루 빨리 찾아와 역사·문화도시로서 경주의 이미지를 업그레이드 시키고, 세계 초 일류국가로 나아가는 중심이 될 수 있길 간절히 원한다. 이는 동학인들의 바람만은 아닐 것이다.
1907년부터 1908년 사이, 국민들의 모금으로 국채를 갚기 위해 전개된 국권회복운동인 국채보상운동은 전 민족적 애국계몽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당시 대한제국이 안고 있던 (주로 일본에서 도입)외채 1300여 만 원을 갚기 위해 민간차원에서 모금활동을 벌인 운동으로 115년 전 이 땅, 경주에서도 거세게 전개됐음이 2018년 경주최부잣집에서 발견된 여러 관련 문서 속에서 증명된 바 있다(보다 자세한 관련내용은 본지 1400호, ‘경주의 국채보상운동’ 참고). 국채보상운동에 당시 경주지역민들도 선도적인 참여를 했던 문서 자료들로서는 단연회사경비분배기, 경상북도 경주군 금연회사 설립취지서, 광고문안, 경주국채보상의연금성책, 향교연성회사규칙, 국채보상금검사소 편지 등이 이를 방증한다. 주목할 만한 것은 당대 여러 신문을 통해서도 전국적 국채보상운동의 열기를 들여다볼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경주의 국채보상운동에 관련한 보도도 많았다. ‘국채보상 의무를 다하려는 경주 군민들의 노력이 남다르다’, ‘관리에서부터 유생, 상인, 기생까지 모두 참여한 경주 국채보상’, ‘화적들도 국채보상으로 양민이 되다’, ‘경주군 여러 면리의 납부’ 등의 제목으로 경주국채보상운동 소식들이 실렸음을 볼 수 있었다. 송아지를 팔고 떡을 팔고 점 봐 준 돈을 납부하고 은비녀를 팔아 이 운동에 동참했던 경주 민초들의 충정이 고스란히 기록으로 전해졌다. 당시 발행된 각 신문에 게재된 기사 중, 경주국채보상운동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짐작할 수 있는 기사를 모아 살펴보았다. 경주국채보상운동에 관한 기사가 실린 신문들을 취합해 정리하고 자문해준 (사)경주최부자민족정신선양회와 최혁 연구위원께 깊이 감사드린다. -경주국채보상운동에 관한 기사는 ‘대한매일신보’, ‘황성신문’, ‘만세보’에서 찾아 볼 수 있어 국민이 담배를 끊어 그 성금을 상환해 독립의 기초적 실력을 튼튼히 하고자 전개된 이 운동은 1908년 초까지 전국으로 확산됐으나 일제의 방해와 탄압으로 좌절됐다. 이 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전개된 것은 1907년 4월부터 12월까지였다. 특히 6월~8월에는 가장 많은 의연금이 모아졌다. 한편, 국채보상운동은 대한매일신보(1904. 7. 18~1910. 8. 28, 타블로이드판으로 6면의 일간지), 황성신문(1898. 9. 5~1910. 9. 14, 국권피탈 이전의 대표 일간지로 이 신문에서의 의연금 게재는 ‘국채보상의무금집송인원급액수’에 실림), 만세보(1906. 6. 17~1907. 7. 22, 천도교의 기관지로 창간됐으나 민중의 계몽에 창간 목적을 둠), 공립신문 등에 기사가 실렸다. ‘국채보상기성회 취지서’를 제일 먼저 보도한 신문은 대한매일신보였다. 국채보상운동의 취지서가 신문에 실리자 이에 호응해 의연금이 신문사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외에도 중앙의 여러 신문들이 국채보상취지서를 게재하고 국민들의 동참을 호소하자 전국각지에서 불길처럼 호응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당시 고종 역시도 동참하는 뜻으로 단연했다. 이렇듯 국채보상운동의 시작과 국채보상취지서, 의연금 명단 등과 관련된 소식들이 신문을 통해 알려지면서 국채보상을 위한 모금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던 것. 특히 운동본부 역할을 한 대한매일신보에 가장 많은 기사가 실렸으며 다음으로 황성신문, 만세보, 제국신문의 순으로 보도됐다. 경주국채보상운동에 관한 기사는 대한매일신보, 황성신문, 만세보에서 찾아 볼 수 있었고 공립신문에는 보도된 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경주국채보상운동에 관한 어떤 내용들이 당시 신문들에 보도됐을까. -만세보 1907년 4월 27일자에 실린 ‘경주군 금연회사 설립과 취지서’ 금연회사설립, 경상북도 경주군 사는 전교리 이중구, 전참봉 최현식씨 등 수 십 인이 국채보상사에 대하여 금연회사를 조직했는데 그 취지서가 다음과 같다. ‘우리 금연 동맹이여! 일찍이 듣지 않았습니까. ... 우리나라 외채가 1300만원에 이르렀으니 지금 갚지 않으면 장차 갚기 어려운 상황에 이를 것입니다. ... 국가의 수치와 백성의 치욕이 오늘이라도 닥칠 것인데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담배를 끊어 빚을 갚을 목적의 단체가 달부(대구)에서 만들어져서 서울에서도 모임이 이뤄졌습니다. 나라를 위한 소박한 정성이 궁궐에 닿아 대황제 폐하께서 담배를 끊으시니 무릇 우리 백성이 황송하여 눈물이 흐릅니다. ... 동포여! 이러한 사연을 한 번 전하고 두 번 전하면 천 명이 깨우치고 만 명이 깨우치게 되고 일 원 이 원이 모이면 몇 천원 몇 만 원이 되나니, 이러한 의무를 빨리 이루어서 우리가 스스로 가다듬을 기초를 회복한다면 천만다행이겠습니다. 광무 11년 음력 2월 5일’ -만세보 1907년 4월 28일자에 실린 ‘국채보상 의무를 다하려는 경주 군민들의 노력이 남다르다’ ‘경주 군민들의 국채보상 의무가 남다르다. 경주군 주민 여러 명이 국채보상의무금을 그 군의 금연회에 납부하니 그 의무심이 특히 열렬하다는데 강서면 김득철은 송아지 판 돈 일백 냥을 냈고 동몽 이성률은 올해 삼십에 고용임금 30냥이요. 양학봉은 가옥 2칸을 팔아서 가액 25냥이오. 강동면 김갑의 처는 떡을 판 돈 10냥이오. 강서면 정여복은 점을 봐주고 받은 돈 10냥이오. 내동면 구황리 한성문의 처 이씨는 은비녀 한 개요. 거창군 과객 허형두씨는 경주에 왔다가 국채보상하는 것을 듣고 짚신 판 돈 1냥을 마련하였다더라’. -대한매일신보 1907년 4월 12일자에 실린 ‘관리에서부터 유생, 상인, 기생까지 모두 참여한 경주 국채보상’ ‘오늘의 기쁜 소식, 경주군 주사 김한은 씨가 국채보상의 일을 열심히 했는데 우선 담배를 끊기로 결심하고 경내의 상인들을 결탁하니 김덕헌, 김주복 등 단연을 동맹한 자가 30여 명이고 한편으로 선비 고을 우리 경주를 권기하여 국채보상동지회를 규합하였으니 같은 군의 관리와 기생 등도 각각 그 무리들에게 모이자고 연락해 의연금을 모집하는 자가 허다하다더라’. -황성신문 1907년 6월 7일자에 실린 ‘경주 각 동네, 기생과 무녀의 국채보상’ ‘경주군 단연상채회에서 김시권, 손명순 씨가 읍성 아래 각 동네 사람들에게 열심히 권유하고 지도해 제1회 모집의금을 대구상채회로 기송한 금액이 다음과 같다. 북정, 좌리, 황오, 노동, 북부, 동내, 황남, 나원, 성북, 보문, 서부, 재동, 성서리, 천북면, 손곡, 동문내, 청하 봉대면 광천리 이상 16동네의 합계 금 202환 64전. 남초상경중 합계 금 4환. 기생 옥련 몽금, 분향, 농옥, 금파, 기화 등 16명과 무녀 희이 1명 합계 금 18환. 이상 세 가지의 합계는 금 224환 64전’. -대한매일신보 1907년 4월 19일자에 실린 ‘화적들도 국채보상으로 양민이 되다’ ‘화적이 양민이 되다, 영천 경주 등지의 화적당이 도로에 방을 부쳤는데 ‘지금 국채보상에 대하여 귀천과 남녀에 상관없이 사람들이 의연을 하고 있는데 어찌 우리들만 이와 같이 양민들을 침해하겠는가. 지금 이후로 우리들도 양민이 되어 국채를 보상하기를 원하니, 만일 이전과 같이 악행하는 자가 있으면 우리들이 함께 공격할 것이다’ 하였으니...’ -황성신문 1907년 5월 24일자에는 ‘소를 팔고 새경을 맡기고 가산을 변통해 국채보상을 한 소식’ ‘영남에서 온 사람이 전하는 말에 따르면 이번 국채보상을 맞아 경주군 구강리 김득철 씨가 농사짓는 소를 팔아 40원을 준비했고 그 고을 강서면의 고용인 이동씨는 새경으로 받은 돈 6원을 주인집에 맡겨 놓았고 합천 사는 정사용 씨는 가산을 변통해 100원을 대구단연상채회로 보내 납부했다고 하니, 이 세 사람의 국민 된 의무는 과연 감탄하겠더라’. -대한매일신보에 가족과 개인 참여 기사와 경주군 상무소국채보상단연동지회의 참여 소식 실려, 황성신문에선 황남리 주민의 국채보상 참여 소식 알려 대한매일신보 1907년 5월 27일과 9월 13일자 등에는 부내면 황남리 김한근씨 가족의 납부소식과 경주 박인순씨의 납부 소식이 게재돼 있다. 또 1907년 5월 24일자에는 경주군 상무소결성회와 상무소국채보상단연동지회의 참여 소식도 실렸다. 황성신문 1907년 6월 21일자에는 경주 부내면 황남리 주민의 국채보상 참여를 알 수 있도록 주민들의 이름과 납부한 금액이 게재되었다. ‘김종헌 10환, 김기욱, 김기일 각 1환, 이규복, 백성채, 김우진, 이팔용 합 2환18전...’ 등으로 개인이나 여럿이서 합한 돈으로 참여했음을 알 수 있었다. 또 대한매일신보 1908년 1월 9일, 2월 8일자에서는 ‘경주군 여러 면리의 납부’라는 제목으로 ‘1월 3일 경주군 각 면리 39환60전, 1월 4일 경주군 각 면리 59환42전...’ 등으로 납부했음을 실었다. 그리고 ‘경주 국채보상 의연금 서울 본부 납부’ 기사가 대한매일신보 1908년 월 30일자에 국한문판 기사와 한글판 기사 모두에 실렸다. 경주 국채보상금을 재무 임천식의 아들 임휘태가 서울 본부에 납부했음을 확인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밖에도 경주국채보상운동에 관한 기사가 더 실렸으나 지면에서 모두 소개하지 못했음을 밝힌다.
재택치료 중인 확진자가 발열 등 증상이 있을 경우 전화상담으로 처방이 가능해진다. <사진>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민간 포털 검색 서비스 등을 통해 코로나19 재택치료(일반관리군) 전화상담·처방에 참여하는 전국 7000여개 동네 병·의원의 정보를 검색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 검색창에서 ‘코로나19 전화상담 병의원’을 입력하면 지도에 표시되는 방식이다. 검색 결과에서 정보를 확인하고 ‘전화상담’버튼을 누르면 해당 병·의원으로 즉시 연결 가능하며, 전화상담을 통해 증상진단 및 대응방법 안내 등 기초 의료상담부터 의약품 처방이 필요한 경우에는 신청을 통해 의약품을 자택으로 전달받을 수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관계자는 “‘코로나19 전화상담 병·의원’관련 보건의료자원 통합신고포털을 통해 재택치료자 전화상담에 참여를 희망하는 병·의원의 신청을 받고 있다”며 “보다 많은 동네 병·의원들이 신청하여 격리 중인 재택치료자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이달부터 코로나19 확산으로 학교에 못 가거나 확진돼 격리해야 하는 장애인이 집에서 원활히 돌봄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보건복지부가 ‘장애 학생 돌봄 활동 지원서비스 특별지원급여’와 ‘활동지원사 코로나19 돌봄 한시 지원’을 이달부터 시행한다. ‘장애 학생 돌봄 활동 지원서비스 특별지원급여’는 코로나19로 휴교 되거나 원격·단축 수업 등으로 등교를 하지 못하는 장애학생들의 가정 내 돌봄 부담 해소를 위해 지원한다. 지원 대상은 장애 학생 활동 지원 급여 수급자인 초·중·고등학교 재학생으로 월 20시간(29만6000원)을 최대 4개월(3~6월)간 지원하며, 수급자 본인부담금은 없다. 신청은 주민등록 주소지 관할 읍·면·동 주민센터에서 ‘사회보장급여 신청서’를 제출하면 된다. 읍·면·동 접수·확인일부터 최대 4개월까지 이용 가능하다. ‘활동지원사 코로나19 돌봄 한시 지원’은 코로나19로 확진·자가격리된 장애인에게 서비스를 제공한 활동지원사에게 재택치료 및 격리기간(7일) 내 1일 4만8000원씩, 최대 33만6000원의 추가 수당을 받을 수 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장애인 확진자와 자가격리자는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를 지원받을 수 있으며, 가족·친인척 등을 통한 가족 돌봄도 가능하다.
올해 다양한 복지혜택이 상향 조정돼 코로나19 장기화로 어려움을 겪는 저소득층을 지원한다. 올해부터 달라진 주요 복지제도는 △기초생활수급자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 △교육급여 지원금 향상 △긴급복지지원 지원금액 확대 △가사간병방문 지원사업 제도 개편 △자산형성지원제도 개편 △보훈명예수당 지원금 확대 및 사망 참전유공자 배우자 복지수당 신설 등이다. 경주시는 지원이 꼭 필요로 하는 시민들이 빠짐없이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달라진 복지제도 홍보에 나섰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생계급여 상향 생계급여는 4인 가족 기준 최대 153만원 가량 지급된다. 이는 지난해보다 7만원 늘어난 것으로 맞춤형급여가 시행된 이후 최대 인상폭이다. 또 정부는 더 많은 저소득층이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2018년부터 매년 단계적으로 기초생활수급자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하고 있다. 올해는 의료급여도 부양의무자 기준이 대폭 완화돼 부양능력이 있는 자녀로 인해 의료비 지원을 받지 못하는 시민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기초교육급여 지원금 상승 소득인정액 중위소득 50% 이하인 수급자 자녀들을 대상으로 지급되는 교육급여 지원금액이 늘어났다. △초등학생 28만6000원→33만1000원 △중학생 37만6000원→46만6000원 △고등학생 44만8000원→55만4000원 등으로 상승해 저소득층 교육비 부담이 더욱 줄었다. -위기가구 긴급복지지원 기준 및 금액 확대 긴급복지지원은 실직, 휴·폐업, 중병 등 갑작스러운 위기상황으로 생계유지가 어려워진 저소득 위기가구에 생계 및 의료비를 지원해 당장의 위기 상황을 벗어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4인 가구 기준 3만8000원이 상향된 130만원 정도가 지급된다. 특히 긴급복지지원금은 위기 상황을 지원하는 만큼 신속하게 선지원하고, 사후조사를 통해 지급 적정성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아울러 올해 지원대상 기준도 △소득(4인 기준 365만7000원→384만1000원) △일반재산(1억1800만원→1억5200만원) △금융재산(500만원→600만원) 등이 완화돼 저소득 계층을 보호하는 사회안전망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보인다. -보훈명예수당 지급액 확대 등 경주시는 국가유공자와 유족에 대한 예우를 다하고 실질적 복지 강화를 위해 지난해 5월 ‘경주시 국가보훈대상자 예우 및 지원에 관한 조례’와 ‘경주시 참전유공자 지원에 관한 조례’ 일부를 개정했다. 이에 따라 같은 해 10월부터 보훈명예수당을 기존 월 5만원에서 8만원으로 상향지급하고 있다. 또 사망 유공자 사망위로금 신청기한을 1년에서 3년으로 늘려 유족들이 신청기한을 놓치지 않도록 배려했다. 그리고 기존 아무런 지원이 없었던 6·25전쟁 또는 월남전쟁 사망 참전유공자 배우자를 위해 참전유공자 배우자 복지수당을 신설하고 올해부터 월 5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가사간병방문 지원사업 제도 개편 65세 미만 수급자 및 차상위계층 돌봄필요가구에 지원되던 가사간병방문 지원사업이 기준중위소득 70%이하 계층으로 확대됐다. 지원대상은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 6개월 이상 치료를 요하는 중증질환자, 희귀난치성 질환자 등이다. 지원 금액은 월 37만4400원(24시간)~62만4000원(40시간)이다. 신청은 주소지 읍면동행정복지센터에서 하면 된다. -자산형성지원사업 제도 개편 자산형성지원사업은 근로소득이 있는 수급자·차상위계층 등 저소득층이 소비를 줄여 저축할 경우 저축분의 일정비율로 정부가 지원금을 줘 자산형성을 지원하는 제도다. 저소득층 본인이 월 10만원을 저축하게 되면 10만원 또는 30만원의 지원금이 지급된다. 올해는 ‘희망저축계좌(기초·차상위)’와 ‘청년내일저축계좌(차상위 이하·차상위 초과)’ 신규 대상자를 모집한다. 특히 제도 개편에 따라 기존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외에도 차상위를 초과하는 청년들까지 지원 범위가 확대됐다. 모집일정은 추후 경주시청 홈페이지를 통해 안내할 예정이다. 주낙영 시장은 “코로나19의 급속한 확산 등으로 어려운 시기 달라지는 복지지원을 통해 어려운 가정이 위기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면서 “궁극적으로 따뜻한 복지도시 경주 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 아니 푸틴의 침공으로 전쟁의 참변에 빠졌다. 이로써 우크라이나는 사람 사는 세상에서 멀찌감치 멀어진 채 아비규환의 지옥도가 생생하게 전개되고 있다. 온갖 이유를 댄다 해도 남의 나라 국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전쟁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푸틴을 보면 그릇된 국가주의가 얼마나 무모하고 위험하고 역겨운지를 명백히 볼 수 있다. 그 어떤 경제적, 정치적 이익도 사람의 생명보다 중요한 것은 없는데 푸틴은 러시아의 국익을 위한답시고 우크라이나는 물론 러시아 군인들까지 무수한 사람의 생명을 전쟁의 참화 속에 밀어넣었다. 겉으로는 국익을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정치적 야욕과 평소의 비뚤어진 불만에 대한 앙갚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세상 사람들은 똑똑히 알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달 27일부터 서울을 상징하는 주요 기관 및 시설 4개소에 세계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블루+옐로우 조명을 표출하는 ‘평화의 빛(Peace Light)’ 캠페인을 추진해 전쟁으로 고통 받는 우크라이나 국민을 위로하고 반전(反戰) 메시지를 확산하는데 동참했다. 서울시는 세계 평화의 메시지에 동참하는 이번 ‘평화의 빛(Peace Light)’ 캠페인은 서울을 상징하는 주요 지점인 서울시청 본관, 세빛섬, 서울로 미디어캔버스(우리은행 중림동 지점), 남산 서울타워에 파란색, 노란색 조명으로 우크라이나를 위로하는 평화의 메시지를 표출한다. 서울시는 또 향후 서울시 주요시설 및 민간 운영 시설과도 긴밀한 협조를 통해 3월 중에는 ‘평화의 빛’이 서울 도심 전체로 확산될 예정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이번 ‘평화의 빛(Peace Light)’ 캠페인에 각계각층의 동참을 요청드린다”며 “우크라이나 국기를 상징하는 파란색과 노란색 불빛으로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위로를 전하고 세계 평화 유지를 위한 메시지 확산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전했다.
환경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 인류의 큰 문제가 됐다. 국제적으로 2050탄소중립을 위한 각종 조약들이 위력을 발휘하고 있고 정치권에서는 구글정부를 만들고 원전을 에너지원으로 가속겠다는 후보가 RE100과 EU텍소노미를 모르는 것이 온당한 것인가에 대해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탄소 중립 : 2050년까지 인간의 활동에 의한 온실가스는 줄이고 남은 온실가스는 흡수·제거해 실질적으로는 배출되는 탄소량과 흡수되는 탄소량이 같아져 탄소 순배출이 0(zero)가 되게 하는 개념. 넷-제로(net-zero)라고도 함. *RE100 :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석유나 석탄이 아닌 태양광, 풍력 등 재생 에너지로 대체한다는 환경운동으로 구글, 페이스북 등 기업들이 이미 실현하고 있음. *EU텍소노미 :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을 판별하는 EU(유럽연합)의 분류체계로 여기서 원자력을 기후변화 대응의 주요 수단으로 인정함. 탄소흡수를 위해 과거에는 산이나 들에 나무를 많이 심자는 운동을 벌이는 그린 카본(Green Carbon)연구가 중심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육지에서보다 바다에서 해결점을 찾는 것이 10배~50배 이상 효과적이라는 면에서 블루 카본(Blue Carbon)연구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3월 1일자로 세종대학교 환경에너지 공간융합학과 조교수로 부임한 노준성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바다를 중점으로 블루 카본을 확산하고 이로써 탄소중립을 이루려는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는 연구가다. “바다에 대한 관심은 서울대학교 수중탐사대라는 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부터 부쩍 늘어났습니다. 다이빙 횟수가 50회 넘었으니 학교 다니면서 줄곧 다이빙만 한 셈이지요” 이렇게 바다를 좋아한 노준성 교수는 석사과정에서는 일반생태학을 공부하다가 박사과정으로 해양생태학을 공부하게 된다. 여기에는 스승인 김종성 교수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김종성 교수는 블루카본과 갯벌 활용에 대한 연구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은 선구적인 석학이다. 노준성 교수는 자신의 연구가 모두 김종성 교수가 걸어온 길을 이어받은 연장선이라 단정하면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노준성 교수는 갯벌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나라 갯벌의 생물다양성 세계 최고, 그린카본에 비해 10~50배 효과 높아. 잘피 등 증식해야! “우리나라 갯벌은 매년 자동차 11만대 분의 탄소를 흡수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건 연구의 성과를 설득력 있게 꾸민 예일 뿐입니다. 갯벌에는 다양한 생물들이 있어서 환경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중에서도 갈대와 칠면초 잘피 등 염생식물, 각종 조개류와 저서생물들이 미치는 영향은 상상을 뛰어넘습니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바다를 막아 농지로 만드는 간척사업이 큰 인기를 얻었다. 식량증산과 국토면적 증대라는 현실적이고 경제적인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 갯벌의 반 이상이 사라지고 지금은 2480㎢ 정도가 남았다. 그러나 이제는 간척지를 해체해 거꾸로 갯벌을 만드는 것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할 만큼 갯벌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현실적·경제적으로도 훨씬 커졌다. 현정부 들어서 역간척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오고 실제로 그런 사업들이 활발히 진행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노준성 교수는 소개한다. 우리나라 갯벌이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이 된 것도 모두 이런 중요성이 반영될 결과라는 것. 특히 우리나라 갯벌은 단위면적 당 가장 많은 생물이 살고 있어서 세계적으로 생물다양성이 가장 높은 곳으로 보고돼있다는 설명이다. 노준성 교수는 블루 카본의 측면에서 갯벌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갯벌에 살고 있는 조개류와 각종 저서생물이나 갈대, 칠면초 잘피 등 블루카본에 효과적인 생물들을 보호하고 늘이는 연구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우리나라 갯벌은 생물다양성은 높지만 블루카본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잘피’의 서식은 매우 좁아서 이를 증식하기 위한 연구도 절실하다. 노준성 교수는 이 분야에서 흥미를 끌만 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블루카본 연구에는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등에 대규모 군락을 이루는 맹그로브 나무를 우리나라 해양에 옮겨심는 연구도 있습니다. 맹그로브는 블루카본의 대표적 염생식물로 2040년경이면 지구온난화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서식할 가능성이 큰 식물로 연구되고 있습니다. 씁쓸하지만 필요한 연구이지요” 그런 한편 해양침식과 오염으로부터 해변을 살려 블루카본에 효과적인 염생식물이나 해양생물이 잘 자랄 수 있는 해안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리빙-쇼 라인(Living Shore Line)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 호주, 영국, 스페인, 이스라엘, 홍콩 등 이 분야 연구를 선행한 나라들은 친환경 생태블록을 방조제, 격벽 등에 부착해 연안 침식을 줄이고 생태환경을 조성하는데 박차를 가해왔다. 대표적으로 홍콩은 2019년 총 1000억원을 들여 약 3.8km 해안을 에코-쇼어라인으로 정비해 동청 해안지역 해양생물다양성을 증진시키는 한편 이를 경관화함으로써 주민과 관광객을 위한 사업으로 활용하고 있다. 노준성 교수는 블루카본은 인류가 잘 살기 위한 중요한 화두인 만큼 기업들의 참여도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독일 자동차 기업 볼보(Volvo)가 친환경 거대 에코타일 50개를 호주 시드니 항구 방파제에 부착해 화제가 된 적 있습니다. 이 에코타일은 재활용 플라스틱을 재료로 3D 프린팅해서 만들었는데, 그 구조가 해양생물이 쉽게 안착할 수 있고 오염물질 흡착 기능까지 있지요” -블루카본 경제성 수치화, 스마트팜 연구에도 박차... 맹글로브 교수로 불리는 것이 꿈 노준성 교수는 블루카본을 늘이는 것은 그 자체의 기술적, 기능적 연구도 중요하지만 이를 경제적인 수치로 환산해 보여주는 작업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정치인, 행정가, 시민들은 무엇이건 경제적 가치로 따지기를 좋아해 구체적인 이익을 제시하지 않으면 쉽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갯벌이 블루카본 기준에서 제곱미터당 얼마의 가치가 발생한다’고 하면 누구나 갯벌에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어디에 쓰나미가 왔다면 그 앞에 산호초가 있었기 때문에 피해를 최소화 했는데, 만약 산호초를 없애고 인공 방파제를 만들면 몇 천억원이 들어간다. 이러면 산호초의 가치를 확연히 깨닫겠지요. 블루카본의 기능도 이렇게 ‘얼마다’는 가치평가 제시가 필요합니다” 여기에 더해 노준성 교수는 블루 카본은 과학일 수도 있지만 다분히 정치적이기도 하다면서 우리나라가 탄소중립으로 가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의 전향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중요성에 비해 아직도 상당부분 인식이 부족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노준성 교수는 항구적으로 ‘스마트팜(Smart Farm)에 대한 연구에도 박차를 가해 왔다. 스마트팜은 쉽게 말하면 육상에 건물을 세우고 이 속에서 해양 동식물의 생태계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아래쪽에 어류를 키우고 거기서 나오는 먹이 찌꺼기나 분비물로 더러워진 물을 위쪽식물수조로 올려 그 영양소로 미역이나 다시마 같은 것을 기르고 여기서 정화된 물을 다시 어류를 키우는 수조로 돌려 계속 순환시킨다는 것이다. 환경을 보존하면서 어류와 조류를 동시에 얻는 문자 그대로 스마트한 해양 농장이 되는 것이다. 노준성 교수는 그 자신 블루카본에 관한 연구를 거듭할수록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결국 자연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가장 탄소 중립에 접근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우리 국민 누구나 스스로 블루카본이 될 수 있고,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생활 속에서 탄소를 줄이는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스스로 블루카본이 되는 길이라는 것. “예전 한강 지도를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한강의 그 모습은 엄청나게 다이나믹하고 아주 멋있거든요. 예전 사진을 보면 한강 백사장에서 사람들이 물놀이를 즐겨요. 그 구불구불한 물길과 모래톱 속에 다양한 생물들이 살았지요. 그게 지금은 정비라는 이름을 달고 네모 반듯하게 바뀌어 있지 않습니까? 그 속의 생물들은 다 사라졌고요. 사람들이 편의만 생각해 환경을 망쳐버린 것이지요” 노준성 교수와 이야기 나누다 보니 블루카본이니 탄소중립 같은 이야기가 의외로 무척 재미있고 다이나믹하다. 탄소중립이 실현될 2050년에는 자신에게 맹그로브 교수라는 애칭이 붙어 있을지도 모를 것이라며 활짝 웃는다. 경주고를 졸업한 노준성 교수는 경주의 해안들에도 새로운 개념의 리빙-쇼 라인이 만들어져 해양생태도 보살피고 관광에도 도움을 주는 즐거운 일이 생기길 바라며 언제건 기회가 되면 경주시와 이런 논의를 진행해보고 싶다며 의욕을 불태운다. 패기만만한 젊은 교수의 바람이 반드시 이뤄지길 기대한다.
은행나무숲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서면 도리마을이 변신을 시도한다. 경주시는 사업비 5억원을 들여 ‘서면 도리1리 마을만들기 사업’을 추진한다. 더욱 아름답고 살기 좋은 ‘은행나무 숲길 노란 상상마을’로 거듭나게 한다는 목표다. 사업은 실시설계 후 5월 착공, 내년 5월 준공 예정이다. 이번 사업은 마을경관 개선, 휴식공간 정비·조성 등으로 주민 삶의 질을 높이고, 방문객들에게 더욱 쾌적한 경관을 제공하기 위해 시행된다. 먼저 주민들의 공공 생활공간이자 쉼터인 마을회관과 경로당 리모델링 사업이 시행된다. 장판·도배 교체, 화장실 보수 등을 통해 마을주민들의 정주여건이 개선될 예정이다. 또 무선방송시스템과 CCTV 등 전자통신장비도 설치된다. 방송시스템은 주민 소통을 더욱 원활하게 하고, CCTV는 관광명소로 입소문을 타며 방문객이 늘어남에 따른 사고와 범죄 발생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을 전망이다. 마을회관 2층 리모델링을 통해 주민들을 위한 ‘도리카페’가 조성된다. 도리카페는 주민 일자리 창출로 주민소득을 지원하고 방문객들에게 은행나무숲을 내다보며 차를 즐길 수 있는 명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 주민 친목도모 공간으로 활용돼 노년층이 많은 주민들의 우울감 해소와 활력 증진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도리1리 마을로 진입하는 회리교도 새 단장한다. 은행잎 등 마을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설치되고, 교량 난간도 은행잎을 모티브로 한 특색있는 디자인으로 꾸며진다. 마을 내 서면 도리 1103, 931-4 등 유휴부지에는 조경 식재, 포토존 조성 등 경관 조성으로 기존 은행나무숲과 함께 다채로운 볼거리를 연출할 예정이다. 주낙영 시장은 “마을만들기 사업을 통해 마을이 더욱 아름답게 가꿔지고 주민 삶이 더 윤택해지길 바란다”며 “도리마을이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만큼 방문객들을 위한 쾌적한 경관 조성에 중점을 둘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