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회와 문화를 묶어서 사회문화로 지칭할 때가 많다. 사회는 그릇이고 문화는 그 내용물이기 때문이다. 흔히 두 사람 이상이 모인 집단을 사회라 지칭하는데, 가장 작은 사회의 단위가 가족이다. 크든 작든 그 사회에 따라 문화가 달라지기 마련이다. 유교문화를 지칭할 때 가가예문(家家禮文)이란 표현이 있는데 집집마다 문화가 다르다는 전형적인 예가 되겠다. 이 문화는 예술 혹은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을 지칭하는데 그중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total way of life)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정의라 하겠다. 저마다 그 사회가 처한 자연이나 기후, 지리적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궁극으로 그에 적응하고 생존하는 방식 역시 각자 다르다.
각기 다른 조건과 바탕에서 생성된 이런 다양한 문화는 우열이 있는 게 아니라 양면성 즉, 장단점이 있을 뿐이다. 가끔 지나친 향토애의 발로에서 내 것이 좋다고 주장하고 자기가 처한 문화의 잘난 점만 부각해 자랑한다. 그 자연조건에 적응하며 살아가야만 하는 방어기제의 발동이다. 하지만 산이 높으면 골짜기도 깊다. 높은 산을 가진 사람은 아름다운 산만 자랑하고 계곡에 사는 사람은 그 골짜기만 주장한다. 거기에 정치이데올로기가 더하면 이러한 주의주장은 더욱 증폭한다. 그 추종세력은 확증편향에 더하여 점차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흔히 `내 문화가 최고다`라는 관점을 전문용어로 `자민족중심주의`라 한다. 살다 보면 내 것에 대해 긍지를 가져야 할 때가 있다.
반면에 문화 다양성을 지칭하고 저마다의 입장에서 문화를 보는 관점을 `문화상대주의`라고 부른다. 처한 상황이 다른 데서 문화가 생성되었기 때문에 상대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자는 것이다. 이런 관점이라면 이해되지 않은 일이란 없다. 문화나 어떤 일도 저마다의 조건과 처지와 형편과 까닭이 있기 때문이다. 한 사회 속에 살아가는 인간은 당연히 문화적 존재이다. 모든 사람은 그 지역의 문화적 영향 하에 성장하고 살아간다. 경주에서 성장기를 보낸 필자 역시 의당 경주문화의 영향을 받고 자랐다. 경주문화가 일정부분 몸에 베어 있다고 하겠다. 경주가 가진 여러 사회적 조건이 나를 그렇게 성장시켰듯이 내 성격도 그런 문화적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 연장선에서 필자 역시, 경주의 농사 짓던 집안 출신다운 문화를 배경으로 한 성격을 지녔다. 이후 도시생활을 통하여 도시 문화를 습득했으면서도 종종 시골에서 자란 근성이 드러나곤 한다. 이것은 어린 시절의 문화적 영향은 사회화를 통해 한 인간의 성격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작은 예이기도 하다. 주거문화를 예로 들어보더라도 우리는 서양의 아파트를 들여와서 살고 있지만 그 아파트에 온돌을 두는 우리만의 주거문화를 가지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온돌에 익숙했던 사람은 지금 아파트와 침대 위에 살지만 온돌 방바닥의 잠자리에 비교적 익숙할 것이다. 온돌방을 체험할 경우, 어린 시절 시골집 온돌 방바닥의 감각이 기억으로 살아나곤 한다.
어쩌면 필자가 관광을 전공한 것도 경주에서 성장하며 자연스레 관광문화를 수없이 보고 듣고 자란 존재구속성의 연장이 아닐까 싶다. 아마도 경주와 오랜 삶의 인연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관광의 삶을 은연중에 체화하고 있다고 봐도 될 것이다. 모든 인간은 그가 처한 존재구속성을 피할 수가 없다. 필자는 90년대 들어와서 대학원에서 관광학을 전공하고 있었는데 그 무렵 다수의 경주 한국관광대학 출신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의 관광 전공으로 유명한 대학원에 막 진학하던 때였다. 경주출신에다 대학원 선배인 필자의 주변에 이들이 함께 하였던 것도 자연적인 이치였다. 그네들이 지금 국내외 굴지의 대학에서 또는 관련 연구기관에서 관광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경주라는 배경이 있었기에 한국관광대학이 그간 많은 관광인재를 배출할 수 있었다. 이후 한국관광대학은 경주대학교로 개칭하여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관광의 입장에서만 보면, 구성원을 교육시키는 최고기관인 지역 대학이 관광의 정체성을 명칭에서 더 드러내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경주대학교와 서라벌대학의 통폐합 소식이 들린다. 모쪼록 통합에 즈음하여 경주대학교가 여전히 관광의 특성을 드러내는 관광인재 배출의 요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미 경주는 오랜 역사를 품은 고도이고 오늘날 그 역사와 문화를 관광으로 풀어내는 관광도시이다. 그 도시 구성원의 교육은 그러한 지역의 문화와 존재에 바탕했을 때, 쉬이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고 보다 강점을 가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