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가 경북도의 ‘2021년 계약원가심사 운영 평가’에서 우수기관으로 선정됐다.계약원가심사 제도는 지자체가 발주하는 사업에 대해 원가계산과 물품 구매·제조 원가 산정의 적정성 등을 분석·조정해 예산을 절감하는 제도다.경북도는 매년 23개 시·군을 대상으로 계약원가심사 운영평가를 실시해 우수 시·군을 선..
경주시는 2월 28일까지 각 읍면동 행정복지센터를 통해 ‘2022년 농어민수당’ 지원신청을 받는다.시는 사업비 113억6900만원(도비 45억4800만원, 시비 68억2100만원)을 들여 농·임·어업 농가에 연 60만원의 농어민 수당을 상·하반기로 나눠 30만원씩 분할 지급한다.지급대상은 농업경영체에 등록된 농업 2만1860호, 임..
경주시는 ‘2022년 상반기 평생학습 강좌’ 수강생을 모집한다.개설 강좌는 직업능력교육 19개, 문화예술교육 44개, 인문교양교육 19개, 외국어교육 17개 등 99개 강좌로 총 1325명의 수강생을 모집한다.교육대상은 만19세 이상 경주시민이다.먼저 7일부터 우선 대상자에 대한 방문접수 및 ‘평생학습포털경주’ 사이트 온..
경주시가 도로 등지에 무단 방치된 자전거를 수거, ‘경주시 행복자전거’로 재탄생시켜 복지시설 등에 기증했다.김호진 경주시 부시장과 전대욱 한수원 기획본부장 등은 지난달 26일 경주애가원과 아동센터 등 복지시설에 행복자전거를 전달했다.쾌적한 도시환경 조성을 위해 시작된 ‘경주시 행복자전거’는 자원 재생과 ..
경주에서 4일 135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 전날일 3일 110명이 발생해 처음으로 세 자릿수를 넘긴 뒤 하루 만에 최다 기록을 갈아치웠다. 특히 경주에서는 지난 1일 73명, 2일 79명, 3일 110명, 4일 153명으로, 2월 들어 연속으로 최다 확진자 수를 경신하고 있다. 경주지역 누적 확진자는 모두 2759명으로 늘었다..
경주에서 1일 하루 확진자로는 가장 많은 73명이 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았다. 설 연휴가 시작된 1월 30일 39명, 31일 49명의 확진자가 발생한데 이어 설날인 1일 하루 최다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추가 확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통상적으로 주말, 연휴 기간 검사 수 감소로 확진자 수가 줄어드는 경향이 있지만..
경주시청년연합회는 지난 25일 주낙영 경주시장과 간담회를 가졌다.
법무부 청소년 범죄예방위원 경주지역협의회(회장 박태일, 이하 경주범방)는 ‘설맞이 청소년 희망키움’ 선물을 전달했다. 모범청소년, 다문화가정, 보호관찰소년 등 청소년 선도·보호 사업을 전개하는 경주범방은 청소년가정 50세대를 방문해 선물을 전달하고, 상담과 격려를 통해 수혜 청소년들이 건강하고 건전하게 성..
불꽃의 흐름 우주에 존재하는 수많은 물질 중에서 예술가는 자신이 공감하는 극히 소수의 것들을 선택하고 그것을 통해 각자 자기만의 예술세계를 창작물을 재창조시키는 작업을 행한다. 그래서 나는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비금속 무기 재료인 파인세라믹스(Fine Ceramics)의 깊은 매력에 빠져 새로운 재료로 창작예술세계로 접목시키는 인생의 한복판에 서 있다. 흙이 지닌 순수성과 무한한 가변성, 불꽃의 흐름에 따른 요변(窯變) 나에게 무한한 가변성 불꽃의 흐름에 따라 나에게 항상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흙의 종류와 수분 상태에 따라서 성형 방법과 기법, 종류에 따라서 소성 온도 변화에 따라서 늘 최선을 다하는 삶으로 오늘도 신비롭고, 아름다운 도예 창작품을 탄생시키며…
경주시가 여성친화도시로서의 첫 걸음을 내딛었다. 경주시는 지난 25일 여성가족부와 여성친화도시 지정 협약을 체결하고, 여성친화도시 현판 제막식도 가졌다. 이번 협약을 시작으로 경주시는 ‘함께 만들어 함께 누리는 양성평등 행복도시 경주’라는 비전을 내세워 향후 5년 동안 여성친화도시 조성에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여성친화도시 시민참여단 적극 운영, 여성친화 공공시설 건축 가이드라인 제작, 시민 대상 여성친화 인식 개선사업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여성친화도시 지정을 위해 시는 2019년 9월 ‘경주시 여성친화도시 조성에 관한 조례’ 제정을 시작으로 여성친화도시 조성 중장기 계획 연구용역, 여성친화도시 조성위원회와 시민참여단 구성, 위촉직 여성위원 확대 등을 추진해 왔다.당시 김순옥 경주시의회 의원이 대표 발의해 제정된 이 조례는 지역정책과 발전과정에 남녀동등 참여, 여성의 성장과 안전이 구현되도록 정책을 운영하는 도시 조성 등이 주요 골자다. 또 여성친화도시 조성을 위한 자문역할을 하게 될 ‘경주시 여성친화도시 조성위원회’도 두기로 했다. 여성친화도시는 정책 과정에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참여하고, 그 혜택이 여성을 비롯해 아동·노인 등 사회적 약자에 골고루 돌아가는 도시다. 궁극적으로는 전체 시민들의 삶의 공간과 도시경쟁력을 높인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따라서 여성친화도시는 여성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시민들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여성이 안전을 느끼는 거리나 도시는 모든 사람이 안전하다고 느낄 것이다. 이 같은 환경이 갖춰진 도시라면 타 도시와 안전성 면에서 더 후한 점수를 받을 수 있고, 이는 결국 도시경쟁력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현재 경주시는 신경주역세권을 건설 중에 있고, 폐역된 경주역과 폐철도 활용방안을 찾고 있다. 또 도심 재생사업을 통해 새로운 도시 건설을 준비하고 있다. 이 같은 계획의 기획 단계부터 여성친화적 관점을 고려한다면 도시 전체의 수준을 한 계단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시민들이 경주에 사는 것을 안전하고, 편리하고, 행복하다고 느낄 때 진정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고, 여성친화도시는 바로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역사와 문화를 품고 있는 도시 경주시가 향후 세계 일류 명품도시로 나아가려면 여성을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의 욕구와 삶의 질에 관심을 기울여 진정한 도시경쟁력을 갖춰야 할 것이다.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확산으로 지난 25일 전국의 확진자가 처음으로 1만명대를 넘어선 1만3012명이 확진됐다. 이런 가운데 경주지역 코로나19 확산세가 심상찮다. 경주에서는 올해 1월 들어 25일 기준 모두 359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이를 열흘 단위로 끊어보니 1일부터 10일까지 76명, 11일부터 20일까지는 131명이 확진됐다. 20일 이후부터는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1일부터 25일까지 5일 만에 152명이 확진판정을 받으면서 앞선 10일간의 확진자수를 훌쩍 넘겼다. 향후 지역 내 추가 확산이 우려되는 이유다. 특히 코로나19 델타변이보다 2배 이상 빠른 전파력을 가진 오미크론 변이가 확산되면서 긴장감마저 들고 있다. 경북도에 따르면 최근부터 25일까지 33명의 집단감염이 발생한 실내체육시설의 확진자들이 오미크론 변이 감염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체육입시학원 관련 강사와 수강생 등 13명의 확진자도 오미크론 변이로 추정되고 있다. 표본 추출 방식으로 바이러스 유형을 검사하다보니 지역 내 오미크론 변이 확진자수가 정확히 파악되지는 않지만,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경북지역의 오미크론 검출률이 1월 셋째 주 69.6%에 이른다고 한다. 이미 경주지역에도 오미크론 감염자가 널리 퍼져 있을 것으로 추정될만한 수치다. 오미크론 변이가 확산되자 정부는 대응체계를 전환했다. 일부 지역에서 시행된 신속항원검사가 가능하도록 한 검사체계가 29일 전국으로 확대된다. 내달 3일부터는 호흡기 전담 클리닉 및 지정 동네 병·의원도 전국으로 확대 시행한다. 또 전국 모든 지역에서 자가 격리 기간을 단축·조정하는 방역체계 전환도 26일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이 같은 방역체계 전환으로 오미크론 변이 확산에 따른 코로나19 제5차 대유행에 제대로 대응할지는 의문이 든다. 정부의 대응이 확산 속도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지자체에서도 눈에 띄는 대응책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본격화된지 2년을 넘어 3년차로 접어들며 지역 경제, 문화, 관광 등의 산업이 침체되고, 이제 버티는 것도 한계에 직면했다. 이제 다시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다. 정부와 방역당국, 경주시는 체계 전환 과정에서 예상되는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오미크론 대응 능력을 강화해 나가는 것이 급선무다. 특히 설 명절 전후로 확산 방지를 위해 총력을 기울여 경주의 근간 산업이 또 다시 흔들리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지난 25일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페이스북에 ‘탈원전 백지화, 원전 최강국 건설’이라는 한 줄 공약을 올렸다. 젊은 세대 눈높이와 자신의 의지를 간단명료하게 공약으로 페이스북에 표현을 하고 있다. 그리고 윤석열 후보는 “문재인 정부의 전기요금 인상 방안은 졸속으로 밀어붙인 탈 원전정책으로 발생한 한전의 적자와 부채의 책임을 고스란히 국민에 떠넘기는 무책임한 결정”이라며 지적하고 “현 정부가 결정한 전기요금 인상은 없던 걸로 하겠다”고 덧붙였다. 최근 정부(한전)는 제20대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4월 1일부터 전기료 인상을 발표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탈원전, 탈석탄 정책’인 에너지전환정책이라는 슬로건으로 탈원전을 밀어붙였지만 별다른 성과도 없었다. 문대통령은 오히려 해외를 순방하면서 “한국의 원전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성과 안전성을 가지고 있으며, UAE 바라카 원전사업을 상업운전까지 성공적으로 수행한 바 있어, 사우디 원전사업 최적의 파트너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며 사우디가 한국 원전을 도입해 줄 것을 지난 18일 적극 요청했다. 참으로 이율배반적인 지도자라는 느낌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는 탈원전을 강조하면서 해외 나가서는 원전 세일즈를 하니 어불성설이다. 그러니 지난 5년 동안 해외순방은 많이 다녔지만 한 건의 원전관련 세일즈에 완전히 성공한 것이 없다. 우리나라는 현실적으로 에너지에 관련해서는 에너지믹스가 맞다. 우리나라 전체 전기 생산에서 원자력은 여전히 25~30%를 웃돌고 있다. 앞으로는 우리가 신재생에너지를 통해서 화석연료를 줄이고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을 실현해 나가야 하겠지만 당장에 현실적으로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위해서 원전의 비중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지난 17일 경상북도가 경북지역의 국회의원과 경주시장, 울진군수, 영덕군수 등과 함께 현 정부의 탈 원전 정책으로 28조8125억원 규모의 경제적 피해와 또 13만2997명의 고용 감소로 지역경제는 물론 사회적 피해로 경북지역이 막심한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대구경북연구원의 용역결과인데 탈원전으로 인한 지역경제 피해 현황과 지방재정 감소 실태 등을 분석한 결과다. 용역 자료를 보면 수조원에 달하는 원전건설 비용과 60년간 운영으로 경북에서 발생하는 연간 공사, 구매, 용역, 인건비 등을 한국은행의 지역산업연관표를 이용해 분석한 결과라고 내놓았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에 뭐하고 있다가 지금 이 시점에 도지사, 원전관련 지자체 시장, 국회의원들이 정부의 일방적인 탈 원전 정책으로 경상북도가 사회, 경제적 피해를 입었다고 보상대책을 마련하라고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입으로 기자회견을 했는데 참으로 한심한 도백이요, 국회의원, 시장, 군수들이 아닌지 도민의 한 사람으로써 화가 나고 자괴감을 느낀다. 도지사나 국회의원, 시장이 지난 5년 동안 탈원전 때문에 힘들다고 정권의 눈치만 봤지, 청와대나, 국회, 산자부 앞에서 누구하나 투쟁하거나 집단시위, 그 흔한 피켓 1인 시위하는 것조차도 못 봤다. 탈원전에 따른 피해 보상대책을 지금 정부가 해줄리도 없지만 다들 말로만 하지 말고 그렇게 자신들이 있으면 소송을 하던지 강력한 조치를 어떻게 취하는지 6월 1일 날 두고 보겠다. 경상북도의 지도자들은 전략과 전술도 없이 지역의 보수화에 그냥 빨간색 당만 좋아하고 눈치만 살피는 무사안일주의자들이다. 지난 11일 월성원전 ‘맥스터 상생협력 특별지원사업 합의서’를 체결했다고 경주시가 발표했다. 우선 상생협력 지원금 750억원은 주민복지 증진 사업, 주민 소득증대와 일자리 창출에 사용하기로 했고, 350억원의 지역협력지원사업으로는 경주시민 의료복지 향상을 위한 공공 의료지원 체계 구축 사업, 한수원 축구단 훈련센터 건립 추가 지원 사업, 삼중수소 자원화 사업 추진에 사용하기로 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지난 1년간 총 14명의 위원들이 ‘월성원전 사용후핵연료 관련 협의기구’를 구성해서 얻은 결과물이 1100억원의 상생협력금을 만들어 낸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괜찮은 협상 금액이다. 맥스터 추가 7기 건설에 따른 위로금 성격이니 추후에 운영에 따른 보상과 지원금은 별도로 봐야 한다. 앞으로 경주시는 원전과 관련해 몇 가지 큰 숙제를 갖고 있다. 첫 번째는 정부가 입법 예고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이고 두 번째는 지난 30년간 월성원전에 임시로 저장하고 있는 중수로 사용후핵연료(고준위핵폐기물) 48만 다발에 대한 보관세를 언제, 어떻게, 얼마를 받아내느냐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임시 건식저장시설의 설계 수명이 50년인 것을 감안하면 얼마 남지 않았다. 세 번째는 월성 2~4호기의 설계수명 연장에 대한 지역사회의 공론화 문제. 네 번째는 정부가 “지난 12월 27일 원자력진흥위원회에서 심의·의결된 ‘제6차 원자력진흥종합계획’에 따라 올해 과기정통부는 원자력 전주기 기술개발, 융복합·혁신 기술개발, 인프라 구축에 총 32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래서 감포에 들어설 ‘문무대왕과학연구소’와 시너지효과 등 탈원전, 친원전 정책에 대한 새로운 5년이 곧 결정된다. 2050 탄소중립과 국제적인 기후위기에서 원자력에너지가 녹색에너지로서의 분류가 공감대를 얻을 수 있을지 좀 더 국민적 여론을 지켜보자.
매년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꺼내 보는 시 한편이 있다. 바로 “설날 아침에(김종길시인)”이다. 연말연시, 그리고 설날을 앞두고 이 시를 찾아 여러 차례 읽고 지인과 공유하고 있다.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 새해는 참고 /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 중략 //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 한 해가 가고 / 또 올지라도 //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 고운 이빨을 보듯 //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김종길 시집, 성탄제, 1969) 이처럼 온기, 희망, 용기, 다짐, 사랑을 담은 시로 내게 다가오는 것은 많지 않다. 2021년을 보내고 2022년을 맞이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월 하순이 목전이고, 설날이 저만치 와 있다. 지난해 말과 금년 초, 경주는 내게 무엇으로, 어떻게 다가와 머릿속에 각인되고 있을까? 매년 새해가 되면 습관적으로 언론사나 지명한 지인들의 메시지를 통해서 챙겨보는 것이 있는데, 바로 기업들의 신년사 및 경영전략 관련 키워드다. 기업의 역사나 규모, 국내외를 불문하고 경영자(CEO)의 신년사와 경영 관련 새해 화두는 많은 영감(Insight)을 준다. 새로운 방향과 특별한 과제, 그 기업의 경영이념에 맞는 도전의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연말연시 이러한 자료를 접하는 기대와 재미, 유용성은 매우 의미 있는 연례행사(?)이다. 이들 메세지들은 코로나 3년차인 2022년은 예측하기 힘든 변화가 파상적으로 몰려와 경영 지침을 설정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지만 이 속에서 기회를 찾아 함께 하고, 따스한 인간애를 높여갈 수 있는 빛과 힘을 구하는 계기가 된다. 2022년 주요 대기업 신년사의 공통 키워드를 들여다보면 ‘사람과 고객’, ‘혁신’, ‘글로벌 리스크 극복’, ‘ESG’ 등이 대부분이다. 기업의 신년사와 신년 레포트를 찾아보면서 경주시장의 신년 관련 기사를 언론에서 찾아보았다. 경주시장의 신년사는 코로나19에 있어서는 국정과 맞닿아 있다. 경주만의 비전으로는 신성장 동력 집중 육성으로 고용안정화, 역사문화도시의 정체성 확립, 체계적인 도시재생 기반을 구축과 교통망을 확충, 「with 코로나19 시대」에 대비한 보건·복지 분야 대응역량을 강화 및 여성·아동 친화도시 조성과 명품교육 도시 실현, 농어업 경쟁력을 강화, 시민과의 소통을 통한 공감행정 등이다. 이런 과제들은 경주시민이 2022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를 설정하는 데도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 시의 활동을 눈여겨보고 그 경과를 모니터링하고 얼마만큼 실천하는지를 감시하고 그 과제들이 성공적으로 수행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중요하다. 피터 드러커가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고, 관리할 수 없으면 개선 시킬 수도 없다.(If you can not measure, you can not manage)’고 했던 말처럼 시의 비전제시는 시민의 일상과 매우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마침 작년 말 경주역이 103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출향인의 입장에서 경주는 언제나 ‘마음의 고향’이고 그 고향을 떠날 때의 출발점이었던 경주역이기에 폐역 소식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헛헛해졌다. 통합 신경주역과 신설된 서경주역·안강역·아화역이 여객 업무를 이어가게 된다는 기사를 보았지만 중앙선 밤기차를 타고 새벽에 청량리역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서울에 온 스무살의 추억을 다시 살려볼 기회를 가질 수 없음이 못내 서운하다. 경주역에 대해 나와 유사한 상념을 가진 분들이 어디 한두 분일까? 서울만 해도 5만 이상의 출향인이 살고 있다고 보았을 때 그런 추억들이 새로 단장될 경주역을 통해 일부나마 남을 수 있도록 배려되기를 바라며 나아가 대한민국은 물론 해외관광객들에게까지 명소로 부각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청안이씨 두촌(杜村) 이팽수(李彭壽,1559~1596)는 안강출신 선비로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비로소 무과에 합격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의사(義士)이다. 두촌선생은 부친 이거(李琚)와 모친 오천정 씨 정이함(鄭以咸)의 따님 사이에서 기미년(1559) 4월 8일에 안강현 도리촌(島里村)에서 태어났다. 고조부 이지(李地)가 서호(西湖)에서 경주 안강현으로 처음 이거하였고, 증조부는 이대생(李大生), 조부는 이세발(李世發)이다. 어려서부터 행실이 남달랐는데, 10살에 부친상을 당해 낮밤으로 빈소를 떠나지 않았고, 예도(禮度)가 어른과 다를 것이 없었으며, 마을에서 효자라 칭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현손인 이두경(李斗經)이 지은 「유사(遺事)」등에 그의 행적이 실려 있다. 『무명자집』에 의하면, 경주의 이팽수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순절하였는데, 정조년간 계묘년(1783)에 그의 후손인 인와(忍窩) 이술현(李述賢,1736~1822)이 조정에 상언하여 증직(贈職)과 정려(旌閭)를 받았다고 전한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두촌은 붓을 던지고, 의병을 모아 각지에서 적을 무찌르고, 6월에는 경주성 탈환을 위한 문천회맹(汶川會盟)에 가담하였으며, 이후 당당히 무과에 급제하여 복병장(伏兵將)으로 울산 서생포 방어를 맡았지만 젊은 나이에 순국(殉國)하였다. 온유재(溫裕齋) 윤종섭(尹鍾燮,1791~1870)은 「속정충록서(續精忠錄序)」에서 “창의하여 변경을 진압함은 탁월하게 빛났으나, 배향되지 못하였으니 늘 안타깝다(其倡義鎭邊 卓然赫赫 而不及餟享則是積欠也)”며 의병에 대한 후속조치가 미흡함을 지적하였다. 번암 채제공(1720~1799)의 「忠臣李公墓碣銘」, 청대 권상일(1679~1759)의 「李義士墓誌銘 並叙」, 간옹 이헌경의 「鷄林李義士招魂辭 幷引」․「李義士傳」, 약남 이헌락(1718~1791)의 「招魂墓詩」, 이계 홍양호의 「贈兵曹參判李公彭壽旌閭記」, 金尙集의 「旌閭記」, 양암 정존겸(1722~1794)의 「旌閭碑文」, 여와 목만중(1727~1810)의 「李義士㫌閭記」 등이 당시 의병활동을 뒷받침한다. 당시 경주부윤 정존겸(재임 1759.09~1760.07)․홍양호(재임 1760.07~1762.06)․김상집(재임 1777.09~1779.05) 등의 도움으로 조정에 알려졌고, 1783년에 이르러 후손 이술현 등이 조정에 선조의 일을 아뢰어 가선대부 병조참판으로 추증되고, 표충각(表忠閣)을 세워 그의 업적을 기리게 되었다. 후손이 엮은 『杜村實記』가 전하고, 1924년에 안강읍 산대리에 건립된 덕산서사(德山書社)에 배향되었다. 증 병조참판 이 공 팽수 정려기(贈兵曹參判李公彭壽旌閭記) - 이계 홍양호 계림은 신라의 옛 도읍으로, 예로부터 빼어난 선비들이 많았다. 경진년(1760)에 나는 계림 부윤이 되어 몸소 산천을 둘러보고 옛사람의 자취를 찾았다. 일찍이 안강현을 지나는데 길가에 묘소가 보였고, 지역사람이 가리켜 말하길 “이곳은 이 의사(義士) 혼을 불러들여 장사지낸 곳입니다”라 하기에, 나는 공경과 예를 갖추었다. 그 남은 후손을 물으니, “이술현이라는 자가 있습니다”라 하였다. 여러 생원 중에 재주가 빼어났고, 고을 서당에서 노니는데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자기 선조의 일을 가져와 나에게 보여주었다. 이팽수(李彭壽) 공은 본디 벼슬아치 집안으로 4대조에 호서에서 영남으로 이거하였다. 어려서 기이한 자질이 있었고, 10세에 부친상을 당해 애통해하며 빈소를 떠나지 않았고, 향리에서 효동(孝童)이라 칭송하였다. 장성해서는 임진년에 왜란을 당해 왜놈들이 쳐들어오자 임금이 탄 수레가 서쪽으로 사냥 갈 때 비분강개하여 눈물을 흘리며 “아버님은 무덤에 계시고, 나는 대대로 녹을 먹는 후예로 어찌 가만히 앉아 책만 보고 있겠는가?”하고는 마침내 붓과 벼루를 던지고, 활 쏘고 말 달리는 재주를 익혀 갑오년에 무과에 합격하였다. 을미년(1595) 겨울, 절도사 박진(朴晉)이 공의 명성을 듣고 추천해 복병장(伏兵將)이 되었다. 이때 적병이 바닷가를 거점으로 세력이 매우 컸고, 관군이 거듭 패하였다. 공은 기꺼이 일어나 부인 손씨에게 “내 지금 죽을 때이다.”라 말하였는데, 한 아들이 포대기에 있었으나 돌아보지 않았다. 종 5, 6명과 마을의 20여명이 따라 나아갔고, 마침내 울산 진장의 한 무리에 다다랐다. 서생포에 닿자 강어귀에 매복하고, 적이 나오길 엿보다가 갑자기 급습해 쳤다. 공은 매번 선봉에 섰고 적들이 두려워 감히 마음대로 하지 못하였다. 수개월을 차지하였으나, 적이 큰 병력을 끌어들여 공격은 더욱 급박하였다. 공은 병사는 적고, 화살은 다 떨어져, 짧은 무기를 들고 힘써 싸우다가 온 군대가 모두 전멸하였으니, 이때가 병신년(1596) 정월 4일이었다. 왜란이 잠잠해지자 집안사람이 시신을 찾았으나 찾지 못하였고, 마침내 의복을 수습해 혼을 불러다가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술현은 “선조께서 나라의 어려움에 목숨 바친 것이 이같이 위엄 있지만, 당시 군대가 모두 전멸하였고, 사적은 드러나지 못하였으며, 자손은 미미하여 여전히 선조를 드러내지 못하고 있으니, 이 때문에 매우 한스럽습니다.”라 울면서 말하였다. … 임금이 특별히 정려를 명하고 말하길 충신의 집안은 영의정 정존겸이 아뢰었고, 가선대부 병조참판에 추증됨은 이술현의 영화이다. 내게 와서 기문을 청하였고, 내 이미 그 죽음의 본말을 알기에 글을 지어 다음과 같이 칭송한다. 군자는 자신을 희생해 인을 이루고, 명성을 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위의 사람을 바로 세우지 않는다면 후대의 사람 그 누가 권면하겠는가? 때문에 적노라. 그 마을을 표창하고 풍속과 명성을 심는 것은 대개 왕정(王政)의 급한 바이다. 우리 임금께서 이에 곡진하여 지난달에는 손씨를 정려하였고, 이 달에는 이씨를 정려하였으니, 모두 계림인이다. 이곳 영외(嶺外)의 선비를 따라 반드시 유풍을 듣고 일어나는 자가 많으리라.
황성동 경주예술의전당과 현곡면 금장대를 잇는 첫 자전거 교량인 ‘월령교’가 지난해 12월 준공돼 개통됐습니다. 월령교는 길이 237m, 폭 5m로 자전거나 사람은 통행이 가능하지만 차량 통행은 금지됩니다. 이 교량으로는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금장대와 발 아래 굽이치는 형산강 물줄기를 감상할 수 있게 됐습니다. 특히 김동리 선생의 소설 무녀도에서 무당 모화가 생을 마감하는 예기청소의 현장이 지척이라 이야깃거리로도 손색이 없는 위치입니다. 또 청동기 시대 바위그림으로 알려진 경주 석장동 암각화를 보다 수월하게 둘러 볼 수 있게 됐지요. 준공된 후, 두 어 차례 이 다리를 건너보았습니다. 양쪽으로는 형산강의 물살이 제법 세차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오리 떼는 유유자적 강물 위를 둥둥 떠다녔고요. 다리 건너 금장리 주민들은 경주예술의전당으로 바로 건너갈 수 있었습니다. 금장쪽에서 걸으면 경주예술의전당이 바로 정면으로 보여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정확하게 볼 수 있겠습니다. 다리 가장 자리쪽에는 보행자들이 잠깐 쉴 수 있도록 휴게 공간을 두었습니다. 이 교량이 준공돼 공개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많은 시민들이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야간 조명등에는 불빛이 들어오지 않아 야간경관을 조망할 수는 없었고요. 애초, 이 다리는 부산지방국도관리청에서 형산강 수위와 유량 조절을 위해 197m 길이의 ‘월령보’로, 물막이 공사만 하려고 했답니다. 그러나 경주시가 시민들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공도교로 만들어 줄 것을 제안하면서 지금의 월령교를 전액 국비(45억원)로 건설하게 되었다고 하니 잘 한 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경주시는 향후 주민의 생활 편의 개선은 물론 지역관광 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안타까운 대목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이 다리 공사가 한창일 때도 디자인을 섬세하게 고려하지 않은듯해서 몇 몇 지인들과 안타까워했었는데 준공된 후 다녀와 보니 예상한대로 그저 그런,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콘크리트로 견고하게 지은 교량이 경주에 또 하나 등장했더군요. 이왕이면 디자인과 안전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었는지... 다른 지자체도 모두 그런 디자인이라구요? 우리는 아름다운 고도 ‘경주’에 살고 있잖습니까. 디자인이 아름다운 교량 하나 정도는 가지고 싶었거든요.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지만 자전거와 보행자 전용 교량인 만큼 친근한 공공 미술작품이나 자연친화적 소재의 벤치라도 설치해 콘크리트와 쇳덩이 일색의 이 다리에 아날로그적 따스한 온기를 더해주길 바라봅니다.
1791년 모차르트는 궁지에 몰려있었다. 닥치는 대로 작품을 만들어 빚을 갚아야 했다. 두 편의 오페라(티토왕의 자비, 마술피리)를 만들고 있었지만, 부인을 잃은 한 백작으로부터 레퀴엠도 의뢰받았다. 오페라 두 편도 결코 만만치 않은 작업량이었지만, 거액의 선금을 준 백작의 제안을 거부할 수 없었다. 모차르트가 그 해 과로사했다는 설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모차르트는 오페라 작곡 때문에 레퀴엠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레퀴엠을 완성시키지 못한 채 죽었다. 미망인 콘스탄체는 남편의 제자 쥐스마이어(F.X.Süssmayr/1766-1803)에게 레퀴엠 완성을 부탁했고, 결국 제자가 완성한 작품이 백작에게 전해졌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백작이 1793년 그 레퀴엠을 자신이 만든 작품이라 하면서 버젓이 연주 지휘를 한 것이다.
어떤 영화들은 단지 그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를 드러내기 위해 만들어진 듯 보일 때가 있다. ‘티파니에서 아침을(1961)’ 같은 영화가 대표적으로 이 영화는 단지 오드리 헵번에 의한, 오드리 헵번을 위한, 오드리 헵번의 영화처럼 보인다. 특별한 줄거리나 극적인 전개 없이 영화 전체가 거의 오드리 헵번으로 도배되다시피 한 이 영화는 문 리브(Moon River)라는 불후의 명곡을 남기고 흥행에도 성공했다. 그로부터 만 20년이 지난 후 또다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보기만 해도 즐거운 여배우와 영화가 등장했으니 그게 바로 브룩 쉴즈의 엔드레스 러브(Endless love/1981)다. “그 영화가 상영될 때 고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우습게도 그걸 보러 갔을 때는 2년이나 지난 1983년이었어요. 고3 초입에 경주 아카데미 극장에 영화가 왔는데 이걸 꼭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승헌 씨가 이 영화를 주목하는 이유는 오로지 브룩 쉴즈 한 사람 때문이었다. 브룩 쉴즈의 데뷔작이자 출세작이기도 했는 엔드레스 러브는 그녀를 단숨에 세계적인 스타덤에 올렸다. 당시 소피 마르소, 피비 캐츠 등 여성 3인방이 대세로 알려졌지만 그중에서도 브룩 쉴즈는 원 탑이라 할 만했다. “웃기게도 그 영화가 당시에는 요즘의 ‘19금’이었어요. 미성년자관람불가라는 딱지가 붙어 있었지요. 마침 고3이던 그 해, 저희가 처음으로 교복 아닌 사복을 입고 두발도 자율화되었기에 그런 용기가 났습니다” 한승헌 씨는 학교에서나 사회에서나 바른 생활 사나이로 통할 만큼 이른 바 착한 모범생이었던 자신을 회고하며 인생의 유일한 일탈이 바로 이 영화를 보러 간 것이라 회고한다. 그만큼 브룩 쉴즈는 그 시대 청소년들의 가슴을 온통 불바다로 만들었던 것. 그러나 한승헌씨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영화의 줄거리는 떠오르지 않는다고 실토한다. 그냥 브룩 쉴즈가 나오니 보러 갔을 뿐이라는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실제로 이 영화의 줄거리는 별것 없다. 같은 학교 고교생이던 데이비드와 제이드(브룩 쉴즈 분)는 정신을 넘어 육체적 사랑에 빠진다. 이를 안 부모들이 둘의 교제를 금지한다. 어느 날 제이드를 향한 그리움을 이기지 못한 데이비드는 우발적인 화를 이기지 못해 제이드의 집에 불을 지르고 정신병원에 수감 된다. 정신병원을 견디지 못한 데이비드는 간곡히 부모를 설득해 정신병원에서 나와 다시 제이드를 찾는다. 그러나 자신을 발견하고 분노하며 따라오던 제이드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둘 사이의 사랑은 끝을 맺는다. 충동적인 10대를 다루었다고 하지만 개연성 없는 줄거리에 당시 남자 주인공 마틴 휴이드가 완전히 무명 배우였음에도 이 영화는 오로지 브룩 쉴즈에 의해 흥행에 성공했다. 비록 영화는 별 내용이 없었지만 주제곡 ‘Endless Love’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라이어넬 리치와 다이애나 로스가 부른 이 노래는 세계적인 명곡으로 등극했고 영화가 개봉한 1981년 아카데미 주제가상 후보로도 올랐다. 밴드로스와 머라이어 캐리, 케니 로저스 등 유명 팝가수들이 리메이크해 화제가 되었다. “저는 대학 졸업 후 삼성전자에 입사해 지금까지 평범하게 살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나 대학 때, 어쩌다 해병대에 차출되어 빡센 군대시절을 보내면서도 일탈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았어요. 어쩌면 고등학교 때 그 어쭙잖은 미성년자관람불가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평생 아무런 추억이 없을 뻔했지요”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물론 그보다 더한 영화도 보러 갔을 것이라는 한승헌 씨, 그에게 영화 엔드레스 러브는 끝없는 추억의 바다로 남아 있기에 누가 뭐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로 보인다. #한승헌 씨 경주고와 서강대학교를 졸업하고 삼성전자에 입사 통상사업부에서 근무했다. 뛰어난 영어실력을 바탕으로 호주와 인도네시아 등에서 CFO로 활약하다 작년에 귀국, 대한민국의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과 문화, 친구들과의 유대를 유유자적 즐기고 있다.
차준환 선수의 4대륙 선수권 대회에서 펼친 피겨 스케이팅 경기는 감동 그 자체였다. 더구나 1위 금메달이 차준환이고 2~4위가 모두 일본이었다. 남자 피겨 스케이팅 사상 처음 있는 멋진 승부였다. 아쉽게도 여자부에서는 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여자 싱글 이해인이 2위, 김예림이 3로 은메달과 동메달을 차지했다. 차준환의 금메달 소식은 피겨 여제 김연아 선수 이후 무려 13년 만에 나온 희소식이라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특히 남자 피겨 역사상 금메들은 처음 있는 일이라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서의 메달 가능성도 한껏 열렸다. 경주출신 도현경 씨가 차준환 선수의 우승 소식에 연지곤지란 표현을 써 이채롭다. 애국가에 맞추어 올라가는 태극기 양쪽으로 일본의 국기가 나란히 걸린 것이 마치 연지곤지 찍은 듯하다는 표현이다. “연아 이후 얼마만의 연지곤지인가. 감동~” 짧지만 많은 내용들이 함축적으로 들어 있는 재미나고 멋진 표현이다. 돌이켜 보면 김연아 선수가 주니어 국가대표로 맹활약할 당시, 일본의 아사다 마오, 안도 미키 등의 선수들이 김연아 선수와 줄곧 라이벌 관계로 다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기에서 김연아 선수가 압도적인 우위를 보여 아사다 마오 선수의 천재성이 빛을 잃었다. 그렇다고 아사다 마오 선수가 실력이 없었던 것도 아니어서 당시 김연아 선수만 아니었다면 많은 대회에서 금메달을 휩쓸었을 것이라 평가됐다. 심지어 안도 미키 선수 역시 아사다 마오 선수에 버금가는 역량을 가지고 있어서 김연아 좌우에서 연지곤지를 찍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 신나는 순간들이 김연아 선수 이후 오래도록 멀어져 있다 차준환 선수에서 재현됐으니 얼마나 즐거운가. 차준환 선수의 이번 쾌거를 연지곤지로 표현한 도현경 씨는 경원대학교, 지금의 가천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출신의 기량 있는 바리톤 가수였다. 서울에서 오래 음악 활동하다 지금은 함안에 터를 잡고 창원에서 직장생활하고 있다. 예술인다운 멋진 위트로 SNS를 꾸민 도현경 씨, 성가대와 직장에서의 취미로 노래를 즐기고 있다고 하니 아쉬우면서도 다행이다.
국립경주박물관은 민족 최대 명절인 설을 맞아 다채로운 문화행사를 개최한다. 설날 당일을 제외한 29일부터 2월 2일까지 나흘 동안 경주박물관 일원에서는 ‘새해 소망카드 만들기’ ‘소망나무 만들기 체험꾸러미 증정’ ‘신나는 민속놀이’ ‘박물관 관람 후기 이벤트’ 등 관람객 체험 중심의 행사를 운영한다. 신라역사관 앞마당에서는 투호 놀이, 윷놀이, 팽이치기, 제기차기 등 전통놀이를 체험할 수 있으며, 신라미술관 로비에서는 가족과 함께 올 한해 이루고 싶은 소망을 카드에 적어 소망나무에 달아보는 ‘새해 소망카드 만들기’체험이 진행된다. 어린이박물관에 입장하는 어린이에게는 컬러룬 소망나무, 볼클레이, 모양색지, 실 등으로 구성된 ‘소망나무 만들기 체험꾸러미’가 증정된다. 경주박물관은 체험행사와 더불어 후기 이벤트도 함께 진행한다. 이벤트 참여는 박물관 전시를 관람한 후기와 인증사진을 2월 6일까지 해시태그와 함께 개인 온라인 채널(SNS)에 올린 다음 경주박물관 온라인 채널(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블로그)에 댓글을 남기면 된다. 이벤트 참가자 중 30명에게 반가사유상 미니어처가 선물로 증정된다. 국립경주박물관 측은 “코로나19와 관련한 방역수칙을 준수해 관람객들이 안전하게 설 명절을 보낼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면서 “설 연휴 기간 박물관에서 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느끼며, 가족과 함께 새해 소망을 기원하고 민족 고유의 전통문화를 즐기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어린이박물관은 안전한 관람을 위하여 국립경주박물관 누리집에서 사전 예약 후 입장이 가능하다.
우리나라 서원 시초는 조선시대 1542년(중종 37) 안향의 옛 집터에 사당을 짓고 제사하며 선비 자제들을 교육한 백운동서원으로 전한다.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오른 9곳 서원의 년대와 선현을 배향한 위패는 이러하다. 경북 영주 소수서원 1550년(명종 5)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이다. 회훤 안향(1243~1306) 경남 함양 남계서원 1552년(명종 7), 현판 사액 1556년(명종 11) 일두 정여창(1450~1504) 경북 경주 옥산서원 1572년(선조 5), 현판 사액 1574년(선조 7) 회재 이언적(1491~1553) 경북 안동 도산서원 1574년(선조 7), 현판 사액 1575년(선조8) 퇴계 이황(1501~1570) 전남 장성 필암서원 1590년(선조 23), 현판 사액 1662년(현종 3) 하서 김인후(1510~1560) 대구 달성 도동서원 1605년(선조 38), 현판 사액 1607년(선조 40) 한훤당 김굉필(1454~1504) 경북 안동 병산서원 1613년(광해 5), 현판 사액 1863년(철종 14) 서애 류성룡(1542~1607) 전북 정읍 무성서원 1615년(광해 7), 현판 사액 1696년(숙종 22) 고운 최치원(857~?) 충남 논산 돈암서원 1634년(인조 12), 현판 사액 1660년(현종 원년) 사계 김장생(1548~1631) 서원의 원생들은 교육의 일원으로 성리학을 숭상하고, 「소학」「대학」「논어」「맹자」「중용」「시경」「서경」「주역」「예기」「춘추」등의 순서로 배웠다. 윤리학적 체계를 갖춘 다음 「가례」「심경」「근사록」「사기」 등을 읽어 뜻을 넓혀 나갔다. 옥산서원을 둘러싼 친화적 자연환경은 학문을 배우고 익히는 학생들에게 더 할 나위 없이 아늑한 지리적 조건이다. 옥산서원 출입문에는 한석봉 글씨 역락문(亦樂門) 현판이 걸려있다. 공자의 논어 학이(學而) 편 문장에서 취한 구절이다.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有朋自源方來 不亦樂乎) 벗이 멀리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벼슬도 세력도 내려놓고 초야에 묻혀 지내는 선비를 찾아드는 것은 세속의 물욕에 욕심이 없는 이들이다. 선생의 학문적 철학사상과 덕업을 구하고저 각처에서 사람들이 찾아드니 그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고매한 인격과 사리에 밝은 인품으로 위기지학 가치를 추구한 선비 회재 이언적 선생의 뜻이 담겨있는 현판 대문이다. 역락문 들어서면 2층 누각 무변루(無邊樓)다. 중국 송대(宋代) 철학자 주염계 ‘풍월무변’ 문장에서 따온 말이다. 자연을 벗 삼아 끝없이 자신을 갈고 닦는 정서를 감지하는 곳이다. 누각 통로를 거쳐 흙 마당에 선다. 아담한 한옥 처마로 옥산서원(玉山書院) 큼직한 현판글씨가 반긴다. 맨 처음 현판글씨는 아계 이산해(1539~1609)가 썼다. 현종5년(1839) 화재 후 사액을 받아 추사 김정희가 다시 썼다. 편액 왼쪽에 “만력갑술사액후260년기해실화개서 선사(萬曆甲戌賜額後二百六十年己亥失火改書 宣賜)” 추사가 54세 때 쓴 편액이다. 아계 이산해∙추사 김정희 옥산서원 편액은 흰 바탕에 검은 글씨다. 임금이 하사한 편액의 표본이다. ‘토정비결’ 저자인 토정 이지함의 조카 아계 이산해 현판은 안쪽에 걸려있다. 댓돌에 신발을 가지런히 벗고 강당격인 구인당(求仁堂) 대청마루에 앉는다. 그 예날 선조들의 수기치인(修己治人) 진리구현에 정진하던 모습이 얼비친다. 회재 선생의 저서 구인록(求仁錄)에서 발췌한 구인당(求仁堂) 현판은 한호 석봉글씨다. ‘구인’의 뜻은 성현의 학문이 ‘인’을 구하는데 있다 함이다. 옥산서원 내 석봉글씨는 ‘역락문’ ‘무변루‘ ’구인당’ 현판글씨가 있다. 구인당 대청마루 양쪽 좌우로 해립재(偕立齋)∙양진재(兩進齋) 협실이 있다. 지금의 교장실 교무실 역할이다. 유교사상에서 수기치인 뜻을 세워 밝고 바르게 경건한 심신을 갖추어 사물에 대처한다. 도덕과 인격수양을 신의로 만사에 적응한다는 성인에 이르는 행동강령이다. 운동장이라기엔 협소한 미음자 마당 동서로 툇마루가 소박하다. 민구재(敏求齋) 암수재(闇修齋) 학생들이 공부하고 생활하는 기숙사 역할이다. 민첩하게 구한다는 뜻의 ‘민구’는 공자가 제자들에게 자신은 “천재가 아니라 단지 열심히 지식을 구하는 사람” 논어의 ‘민이구지자야(敏以求之者也)’에서 취한 글이다. ‘암수’는 중국 남송 때의 유학자 주희(朱熹)의 암수자수(闇修自修) 글귀이다. 조용히 스스로 공부한다는 의미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