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1년 모차르트는 궁지에 몰려있었다. 닥치는 대로 작품을 만들어 빚을 갚아야 했다. 두 편의 오페라(티토왕의 자비, 마술피리)를 만들고 있었지만, 부인을 잃은 한 백작으로부터 레퀴엠도 의뢰받았다. 오페라 두 편도 결코 만만치 않은 작업량이었지만, 거액의 선금을 준 백작의 제안을 거부할 수 없었다. 모차르트가 그 해 과로사했다는 설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모차르트는 오페라 작곡 때문에 레퀴엠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레퀴엠을 완성시키지 못한 채 죽었다. 미망인 콘스탄체는 남편의 제자 쥐스마이어(F.X.Süssmayr/1766-1803)에게 레퀴엠 완성을 부탁했고, 결국 제자가 완성한 작품이 백작에게 전해졌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백작이 1793년 그 레퀴엠을 자신이 만든 작품이라 하면서 버젓이 연주 지휘를 한 것이다. 영화 ‘아마데우스’(1984)는 이런 해프닝을 인용한다. 영화에서 레퀴엠을 의뢰한 자는 바로 (가면을 쓴) 살리에리다. 살리에리는 거액의 선금으로 모차르트를 유혹하여 먼저 레퀴엠을 제공받고, 모차르트가 과로사하기를 바라는 설정이다. 실제 의뢰인이었던 백작이 그랬던 것처럼 모차르트가 죽은 후 레퀴엠을 자신의 작품이라고 할 참이었다. 열등감에 빠져있던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도 죽이고, 그의 천재성으로 자신을 치장하는, 일거양득의 묘책을 짠 것이다. 정말 영화다운 상상력이 아닐 수 없다. 모차르트 부부는 전부 6명의 자식을 낳았다. 하지만, 차남(공무원)과 막내아들(음악교사) 2명만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았다. 오늘날 모차르트의 후손은 없다. 살아남은 두 명의 아들이 독신으로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아내 콘스탄체(1762-1842)는 남편의 유작을 모아 출간하고, 연주회를 열며, 전기를 만들었다. 후에 덴마크 귀족 출신의 외교관과 재혼한다. 모차르트는 35년간 무려 600편이 넘는 작품을 작곡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작품들이 특정 장르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장르에 걸쳐있다는 점이다. 모차르트는 오페라, 교향곡, 협주곡, 실내악에 모두 능한 거의 유일한 작곡가다. 운동으로 치면, 한 사람이 테니스, 탁구, 배드민턴을 모두 국가대표 급으로 잘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차르트를 천재라고 하고, 그의 음악을 ‘태교음악’이라는 상품으로 만들어 팔기도 한다. 여기에는 천재가 만든 음악을 태아 때부터 감상하면 그 아이도 천재가 된다는, 다분히 상업적인 계산이 깔려있다. 이처럼 모차르트를 천재라고들 하지만 로시니(G.A.Rossini/1792-1868)는 반론을 제기한다. 그에 의하면, 베토벤은 일주일에 두 번, 하이든은 네 번, 그리고 모차르트는 매일 연습한다. 모차르트는 알고 보니 노력형 천재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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