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영화들은 단지 그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를 드러내기 위해 만들어진 듯 보일 때가 있다. ‘티파니에서 아침을(1961)’ 같은 영화가 대표적으로 이 영화는 단지 오드리 헵번에 의한, 오드리 헵번을 위한, 오드리 헵번의 영화처럼 보인다. 특별한 줄거리나 극적인 전개 없이 영화 전체가 거의 오드리 헵번으로 도배되다시피 한 이 영화는 문 리브(Moon River)라는 불후의 명곡을 남기고 흥행에도 성공했다. 그로부터 만 20년이 지난 후 또다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보기만 해도 즐거운 여배우와 영화가 등장했으니 그게 바로 브룩 쉴즈의 엔드레스 러브(Endless love/1981)다. “그 영화가 상영될 때 고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우습게도 그걸 보러 갔을 때는 2년이나 지난 1983년이었어요. 고3 초입에 경주 아카데미 극장에 영화가 왔는데 이걸 꼭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승헌 씨가 이 영화를 주목하는 이유는 오로지 브룩 쉴즈 한 사람 때문이었다. 브룩 쉴즈의 데뷔작이자 출세작이기도 했는 엔드레스 러브는 그녀를 단숨에 세계적인 스타덤에 올렸다. 당시 소피 마르소, 피비 캐츠 등 여성 3인방이 대세로 알려졌지만 그중에서도 브룩 쉴즈는 원 탑이라 할 만했다. “웃기게도 그 영화가 당시에는 요즘의 ‘19금’이었어요. 미성년자관람불가라는 딱지가 붙어 있었지요. 마침 고3이던 그 해, 저희가 처음으로 교복 아닌 사복을 입고 두발도 자율화되었기에 그런 용기가 났습니다” 한승헌 씨는 학교에서나 사회에서나 바른 생활 사나이로 통할 만큼 이른 바 착한 모범생이었던 자신을 회고하며 인생의 유일한 일탈이 바로 이 영화를 보러 간 것이라 회고한다. 그만큼 브룩 쉴즈는 그 시대 청소년들의 가슴을 온통 불바다로 만들었던 것. 그러나 한승헌씨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영화의 줄거리는 떠오르지 않는다고 실토한다. 그냥 브룩 쉴즈가 나오니 보러 갔을 뿐이라는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실제로 이 영화의 줄거리는 별것 없다. 같은 학교 고교생이던 데이비드와 제이드(브룩 쉴즈 분)는 정신을 넘어 육체적 사랑에 빠진다. 이를 안 부모들이 둘의 교제를 금지한다. 어느 날 제이드를 향한 그리움을 이기지 못한 데이비드는 우발적인 화를 이기지 못해 제이드의 집에 불을 지르고 정신병원에 수감 된다. 정신병원을 견디지 못한 데이비드는 간곡히 부모를 설득해 정신병원에서 나와 다시 제이드를 찾는다. 그러나 자신을 발견하고 분노하며 따라오던 제이드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둘 사이의 사랑은 끝을 맺는다. 충동적인 10대를 다루었다고 하지만 개연성 없는 줄거리에 당시 남자 주인공 마틴 휴이드가 완전히 무명 배우였음에도 이 영화는 오로지 브룩 쉴즈에 의해 흥행에 성공했다. 비록 영화는 별 내용이 없었지만 주제곡 ‘Endless Love’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라이어넬 리치와 다이애나 로스가 부른 이 노래는 세계적인 명곡으로 등극했고 영화가 개봉한 1981년 아카데미 주제가상 후보로도 올랐다. 밴드로스와 머라이어 캐리, 케니 로저스 등 유명 팝가수들이 리메이크해 화제가 되었다. “저는 대학 졸업 후 삼성전자에 입사해 지금까지 평범하게 살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나 대학 때, 어쩌다 해병대에 차출되어 빡센 군대시절을 보내면서도 일탈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았어요. 어쩌면 고등학교 때 그 어쭙잖은 미성년자관람불가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평생 아무런 추억이 없을 뻔했지요”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물론 그보다 더한 영화도 보러 갔을 것이라는 한승헌 씨, 그에게 영화 엔드레스 러브는 끝없는 추억의 바다로 남아 있기에 누가 뭐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로 보인다. #한승헌 씨 경주고와 서강대학교를 졸업하고 삼성전자에 입사 통상사업부에서 근무했다. 뛰어난 영어실력을 바탕으로 호주와 인도네시아 등에서 CFO로 활약하다 작년에 귀국, 대한민국의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과 문화, 친구들과의 유대를 유유자적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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