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동·황오동 통합 행정복지타운이 구) 경주여중에 들어서게 된다. 지난 21일 열린 제267회 경주시의회 임시회에서 중부·황오 통합동 행정복지타운 건립안이 통과되면서 본격적인 통합동 시대가 열릴 예정이다. 경주시에 따르면 구 경주여중 부지에 건립될 중부·황오 통합동 행정복지타운은 지상 2층 규모로 1400㎡ 행정복지센터와 990㎡의 주민자치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다. 총 사업비 77억8000만원이 투입되는 행정복지타운은 2025년 완공을 목표로 사업이 진행된다. 통합동 행정복지타운 건립은 중부동과 황오동이 통합되면서 기존 노후화되고 협소한 청사 활용에 어려움이 예상돼 건립이 추진됐다. 기존 청사는 1990년에 건립돼 시설 노후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특히 재래시장과 인접한 지역 특성상 청사가 협소해 시설 이용과 활용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시는 행정복지타운 건립을 통해 통합동 이미지 제고 등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문화행정위 전문위원은 행정복지타운 건립 관련해 “중부동과 황오동의 행정 통합으로 새로운 통합동 청사 건립 필요에 따른 것으로 기존 청사 모두 협소하고 시설 노후화된 상황이다”면서 “통합동 신축이 불가피한 것으로 판단되며 문제점은 없다”고 밝혔다. 건립안이 통과되면서 구)경주여중 부지에 한림야간학교가 사용하던 건물은 2층 한옥의 통합동행정복지타운이 들어서게 된다. 통합동 행정복지타운 건립 안이 통과되면서 경주여중 건물을 사용하던 한림야간학교는 보금자리를 떠나야하는 상황이다. 한림야간학교는 1985년부터 2018년 1월까지 경주청년회의소에서 수업을 이어오다 2018년 2월에 경주여중 자리로 자리를 옮겨 현재까지 운영해오고 있다. 한림야간학교가 30년 동안 비좁은 교실에서 수업하다 경주여중 부지로 옮기며 여건이 나아졌지만 통합동 건립으로 또다시 학교를 옮기는 상황에 몰리게 된 것이다. 한림야간학교 이전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학생 통학과 넓은 학습 공간을 충족하는 곳이 많지 않아서다. 학생 대부분이 고령층에다 시내권 보다 읍면지역 거주자가 많아 대중교통 이용이 편리한 곳이 부지 마련의 핵심이다. 또한 교육 공간도 확보돼야 한다. 한림야간학교 관계자는 “통합동이 건립되는 동안 당장 학생 교육을 진행할 곳이 필요한 상황이다”면서 “학교 이전에 대해 아직까지 정해진 것이 없어 걱정이 크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현재 한림학교에 임차료를 지원하고 있는 상황으로 비슷한 예산으로 학교를 옮길 수 있는 곳을 찾고 있다”면서 “대중교통 이용이 편리하고 공간이 넓은 곳을 찾기가 쉽지 않지만 학교 운영에 문제가 없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지지부진했던 경주경찰서 청사 이전·신축 사업이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경주시의회 문화행정위원회는 지난 21일 경주시 공공용지와 경주경찰서 재산 교환을 위한 2022년도 공유재산 관리계획 제4차 변경안을 원안 가결했다. 경주시의회는 24일 제267회 임시회 제2차 본회의를 열고 안건을 최종 의결한다. 경주시에 따르면 경주경찰서 이전·신축을 위해 지난 2020년 초부터 매입해 부지성토 및 기반시설을 조성한 천북면 신당리 1490번지 일원 2만3313㎡ 부지와 경주경찰서·화랑수련원·충효방범순찰대를 맞교환한다. 시가 매입한 천북면 신당리 부지의 감정가액은 143억여원, 경찰청 교환대상 재산은 전체 부지 6987㎡, 전체 건축연면적 5764㎡, 지장물 16수 등으로 감정가액은 146억여원이다. 경주시는 이번 경주시의회 임시회에서 안건이 최종 통과되면, 교환차액 3억여원을 정산 후 경찰청과 교환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이후 경주시와 경주경찰서는 교환된 부지 등에 대해 각각의 계획에 따라 사업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경주경찰서 이전·신축이 완료되는 시점은 이르면 2024년 말, 늦어도 2025년 상반기로 예상된다. 경주경찰서 관계자는 “현재 신청사 기본설계 용역이 오는 9월 완료될 예정이다”면서 “이를 토대로 올해 말 또는 내년 상반기 착공에 들어가면 공사 기간이 2년에서 2년 6개월 정도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경주시 관계자는 “시와 경찰청 소유부지를 맞교환해 경주경찰서 신청사 건립 이전으로 근무환경을 개선해 치안 행정서비스가 향상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기존 경찰서 부지는 공공청사, 녹지공간, 주차장 등으로 활용해 도심 공동화를 해소하고, 시민 휴식 공간으로 조성해 시민 정주여건 개선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주시, 경찰서 이전 후 공공청사 활용 경주시는 맞교환하는 경주경찰서 건물을 리모델링해 공공청사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당초 철거하기로 계획했던 경찰서 본관 건물과 무기고, 탄약고도 리모델링을 통해 경주시가 활용하기로 했다. 경주시에 따르면 이들 건물은 당초 정밀안전진단에서 D등급을 받아 철거키로 했지만, 경주경찰서가 지난 2019년 7억여원을 들여 내진보강공사를 완료했다. 이어 지난 6월 경주시가 전문업체에 의뢰해 실시한 정밀안전진단에서 B등급을 받아 이들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활용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현재 경주경찰서 본관과 별관 및 신관 건물 모두 활용 가능하다는 것이 경주시의 설명이다. 경주시 관계자는 “경주경찰서 청사 건물 모두 사용할 수 있게 돼 향후 3여년 뒤 공공청사 활용방안이 확대될 수 있을 것”이라며 “현재 경주시 조직 중 2개국 정도를 이전할 계획으로 인원은 250~300여명 정도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경주시는 경주경찰서 신축·이전 뒤 공공청사로 활용하게 되면 그동안 제기돼왔던 경찰서 이전 후 중심상가 상권침체 등의 문제도 해소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경주경찰서 본청 근무인원이 250여명 보다 더 많은 인원이 근무하게 돼 인근식당을 비롯해 주변 상권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한편 이날 간담회에서는 경주경찰서와 부지 교환 과정에서 나타난 경주시의 행정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장복이 의원은 “부지 교환 후 경주경찰서 청사 철거와 리모델링 비용 등은 경주시가 감정가격에서 상계해야 하는데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며 “시의회에서 그동안 수차례 지적한 부분에 대해 전혀 반영하지 않고 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즉흥적인 행정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경주운영센터가 지난 13일 영천시평생학습관에서 개최된 ‘제6회 노인학대예방의 날’ 기념식에서 경상북도지사로부터 노인인권예방 유공기관 표창을 수상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경주운영센터는 앞서 지난 4월 13일 노인학대 발생 시 빠른 개입과 더불어 인적·물적 자원의 상호교류를 통해 지역사회 ..
경주범죄피해자지원센터와 김희수상담클리닉은 지난 17일 대구지검 경주지청에서 ‘범죄피해자 보호·지원 업무’ 협약식을 가졌다.김희수상담클리닉 김희수 센터장과 경주범피 이상춘 이사장은 이날 김태은 경주지청장이 참석한 자리에서 범죄피해자 보호·지원 협약서에 서명했다. 협약 체결로 두 기관은 상호 정보교환 ..
경주 이씨 시조 발상지인 표암재가 위치한 ‘경주 금강산 표암봉 일원(慶州 金剛山 瓢巖峯 一圓)’이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됐다.문화재청은 지난 17일 경주시 동천동 소재 ‘경주 금강산 표암봉 일원’을 사적으로 최종 지정했다.앞서 문화재청은 지난 4월 22일 이곳 일원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 예고하고..
태(態) 생명이란 우주의 원리나 자연의 섭리 등 총체적이고 형이상학적 차원이 아닌, 인간적 차원에서 원초적 에너지를 분출하는 생명성이다. ‘태(態)’는 생명의 근원적 형태를 연구한 작업이다. 조명과 금속을 사용해 부화하기 전 꿈틀거리는 알의 내부를 생명성이란 형태로 풀어낸다.
경주지역 소비자물가가 오름세가 심상찮다. 경상북도 물가관리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15일 기준 도내 주유소에서 판매하는 경유 가격이 1년 전에 대비 47%, 휘발유는 28% 급상승했다. 밥상물가 역시 쌀을 제외한 품목 대부분의 가격이 1년 전에 비해 수직상승했다. 대표적인 품목으로 돼지고기 500g 평균 가격이 24% 급등했다. 또 닭고기 1kg 8%, 배추 34%, 감자 24%, 고등어 8%, 쇠고기 3% 등 전반적으로 상승곡선을 나타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오는 7월부터는 주택용·일반용 도시가스와 전기료 등 공공요금 인상도 예고돼 있어 서민들의 부담이 가중될 전망이다. 치솟는 물가에 대한 불안은 경주만의 일은 아니다. 5월 국내 소비자물가가 1년 전보다 5.4% 오르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4년여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해 초 3%대에서 3, 4월 4%대, 5월에는 5%대 중반까지 치솟을 만큼 무서운 상승세다. 전문가들은 조만간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6%대도 기록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도 내놓고 있다. 고물가 현상은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글로벌 수급 문제가 빚어지면서 상반기 내내 지속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교란에 우크라이나 사태 등이 가세하며 석유류와 곡물 등 원자재 가격이 급상승했다. 여기에 코로나 방역조치 해제에 따른 소비 증가가 맞물리며 개인서비스물가도 오르고 있다. 물가가 무섭게 치솟자 민생에 대한 불안감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각 가정에서 느끼는 체감 물가는 훨씬 높기 때문이다. 정부가 민생대책을 발표했지만, 날뛰는 물가를 잡기에는 역부족으로 여겨진다. 14개 품목 관세 인하와 부가세 인하 등을 통해 물가 조정을 유도하겠다는 정부 조치가 효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뛰는 물가를 잡는 것은 쉽지 않다. 물가 급등 요인이 우크라이나 사태, 글로벌 공급망 차질, 국제유가·원자재·곡물 값 인상 등 대외적인 영향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정부는 물가 안정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경주시도 정부정책에만 기댈 일은 아니다. 농수산물과 공공요금을 비롯해 경주시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물가 안정에 선제적 조치를 다해야 한다. 그리고 고물가로 가장 고통을 많이 받는 취약계층을 위한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
코로나19로 위축됐던 경주지역 축제와 행사가 부활하고 있다. 경주시는 지난 8일 제15회 경주시민의 날 행사를 3년 만에 대규모로 개최했다. 이날 시민 4000여명이 행사장을 찾아 모처럼 열린 축하 행사와 공연을 즐기며 축제의 장을 이뤘다. 이어 10일엔 봉황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경주 대표 행사인 봉황대 뮤직스퀘어도 막을 올렸다. 지난 2019년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이후 역시 3년 만에 행사가 재개됐다. 이날을 시작으로 10월초까지 매주 다양한 무대로 시민과 관광객을 맞을 계획이다. 이외에도 중고용품을 직접 사고파는 ‘벼룩시장’이 3년 만에 개장했고, ‘경주 술술 페스티벌’, ‘제14회 Beautiful 경주! 환경대축제’도 성황리에 열렸다. 앞으로도 지역 대표 축제인 신라문화제를 비롯해 다양한 행사들도 재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300인 이상 참여하는 축제를 대상으로 시행해온 지역축제 심의·승인 제도 운용이 정부 방침에 따라 잠정 중단됐다. 그리고 안전점검과 함께 기본방역 준수를 위한 안내·계도 위주의 방역관리로 시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3년 가까이 중단됐던 경주지역 대규모 축제도 속속 재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지역경제 회복과 활성화에 청신호가 켜졌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코로나19로 억눌렸던 여행 수요와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미 경주지역 숙박시설 예약률이 지난 2~3년 전과 비교해 크게 늘어나는 등 소비 규모가 확대될 조짐도 보이고 있다. 경주지역 축제 재개는 경기 활성화 신호탄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타 지역 축제와의 경쟁도 염두에 둬야 한다. 그동안의 방식만으로 지역 축제를 찾는 관광객 확보는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축제와 연계한 관광코스와 스토리텔링을 개발하고, 다양한 먹거리와 볼거리, 즐길거리, 쇼핑거리를 창출하는 한편, 대대적인 홍보도 반드시 필요하다. 지역 상권과 주민, 경주시가 머리를 맞대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만들어야 경기 파급효과를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온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아직도 코로나19가 종식되지 않았고, 가을 재유행도 우려되는 상황인만큼 이에 대한 대비도 철저히 해야 한다.
1박에 40만원! 그래도 없어서 못 팔았다! 1박에 40만원이라는 고가의 방을 구하기 위해 온갖 인맥을 다 동원해도 구할 수 없었다고 한다. 며칠 전 6월초 짧은 연휴 기간에 있었던 경주 모 특급호텔의 상황! 이런 적이 있었나? 아주 특별한 연휴, 휴가철 성수기외에는 없었던 것 같다. 특히 6월 같은 비수기 철에는 더더욱 없었던 것 같다. 이렇게 비싼 비용을 감당하면서도 왜 경주로 오려고 하는 것일까? 그동안 코로나로 인해 통제된 생활 속에서 오랜만에 맛보는 해방감과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분출하기 위함일 것이고, 아직은 해외로 눈을 돌리기에는 여러 가지로 시기상조인 것도 큰 이유 일 것이다. 그렇다 해도 많고 많은 국내 여러 곳을 두고 왜? 경주! 그것은 경주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경주는 어떤 존재인가? 언급이 불필요한 대체불능의 한국인의 정신적인 고향인 것이다. 성씨의 본관을 보자 경주 김씨, 이씨, 최씨 등등 이 정도면 한국인의 정신적인 뿌리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요즘 경주를 다니다 보면 많은 관광객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특히 황남동 일대에는 젊은 청춘남여들이 길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어 생동감이 넘치며, 맛집이라 소문난 곳도 많고, 많은 방송매체에서 이곳을 앞 다투어 취재할 정도로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주말에 길이 막혀도 짜증이 나지 않고 즐겁다. 내 삶의 터 소중한 내 고향 경주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 와 주니 감사할 따름이다. 종종 눈에 띄는 외국인 관광객을 보면 더욱 흐뭇하다. 그런 와중에 스쳐가는 이 불안감은····· 비정상적인 지금의 상황들이 정리되면 어떻게 될까? 그래도 1박에 40만원을 부담하면서도 경주를 찾아올까?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경주의 매력을 더욱 키워야 하고 많은 관광객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편의시설 등을 확충하고 보강하여 지금의 이 기회를 잘 살려 연 2000만명 이상이 찾는 경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지금 이대로는 안된다. 부족하다.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경주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역과 터미널 주변부터 한번 살펴보자. 무엇에서 경주의 색깔을 찾을 수 있는가? 붉은색으로 도배된 통일되지 않은 형형색색의 광고판들, 도로 경계를 나타내는 경계봉들, 특히 중심상가에 있는 경계봉들은 위압감을 주기에도 충분할 만큼 크고 미관상 좋지 않다. 경주는 서천 북천 남천이라 칭하는 하천으로 둘러쌓여 있어 쉽게 하천을 접할 수 있다. 다른 도시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또 하나의 볼거리인데, 이러한 소중한 자산들이 그냥 방치 되다시피되어 있다. 하천과 도로를 경계하는 경계봉도 평범하고 허술하기 짝이 없다. 이러한 것들은 큰 예산도 민원의 요소도 없으면서 다른 것들에 비해 쉽게 정비할 수 있는 것들이다. 여기에 타 도시와는 다른 차별화된 경주만의 문양 등을 넣은 경계봉과 잘 정비된 통일된 간판 등은 관광객들에게는 또 하나의 볼거리가 될 것이고 도시 미관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많은 예산을 투입해 변화를 도모하는 것은 돈이 주가 되지만 간단하면서 세밀한 부분을 바꾸는 것은 관심이요 창의적인 사고인 것이다. 현재의 경주는 고정적인 틀에서 벗어난 현실에 맞는 상황 대처와 민첩한 행동이 그 어느 때 보다 필요하다. 그렇다면 누가 이것을 할 것인가? 당연 그것들을 실행하고 입안하는 것은 경주시를 앞장서 이끌어가는 선출직 지도자들이고, 그 분들과 함께하는 공무원들일 것이다. 하지만 이 분들을 실질적으로 선택하고 통제하는 것은 우리 일반 시민들이다. 이 분들이 더욱 힘을 내고 경주를 위해 뛰어다닐 수 있도록 분위기 조성을 해주는 것도 우리 일반 시민들의 몫이다. 얼마 전 향후 4년간 경주를 이끌어 나갈 선량들을 우리들의 손으로 선출하였다. 지금은 그것이 잘됐다 잘못됐다 논할 때가 아니다. 열심히 일 할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나서 그 역량과 노력들을 4년 후에 다시 평가하면 되는 것이다. 향후 4년은 경주에는 위기의 시간이 될 수도 있고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다시 올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1박에 40만원을 부담하고서라도 찾는 경주! 아니면 온갖 편의를 제공해도 찾지 않는 경주! 선택의 기로에 있는 중요한 시기인 것이다. 많은 관광객들이 온다해서 마냥 도취되어 기뻐 할 수만은 없다. 떠나는 것 또한 순식간 인 것이다. 그래서 더 많은 준비, 더 많은 노력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 누가? 바로 우리 경주시민!
4계절은 저마다 색깔이 다르다. 그 다른 색깔만큼이나 그 다른 계절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다른 추억이나 기억들을 머릿속의 저장공간에 아름답게 혹은 고통스럽게 혹은 잔인하게 남겨 두었을 것이다. 그게 세월이라는 이 고마운, 더러는 무정한 시간의 편린들이 우리의 의지와 상관이 없이 각자의 삶에 동승하고 있는 이유인지 모른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만들어 놓은 그 많은 추억과 기억들 중에서 나는 음식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그래서 오늘은 봄 이야기를 하고자 하고 봄이 만들어준 음식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봄은 항상 즐겁고, 활기차고,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들로 내 기억의 공간 속에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는 고향 땅 경주와 한없이 사랑스러운 ‘엄마’가 계시기 때문이다. 봄에 생각나는 음식과 ‘엄마’ 그리고 나의 기억들은 특별히 더 많이 있는데 그중 ‘앵두주’와 ‘진달래주’는 너무도 선명한 봄날의 추억들을 그림처럼 남겨 놓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더욱더 놀라운 것은 봄이라는 그 계절에 가장 풍성하게 얻을 수 있는 자연의 혜택들을 ‘엄마’는 정말로 지혜롭게 잘 활용하여 ‘음식’에 적용하신 분이셨다. 그도 그럴 것이 앵두는 우리 집 마당에서 때만 되면 풍성하게 소출의 기쁨을 주었고 진달래는 잠깐 걸어 나가면 뒷산에서 잠시만에 바구니 가득 따 담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향 집 마당의 앵두나무는 우리 가족 모두에게 정말 축복의 봄 선물이었다. 개화기가 되면 꽃을 활짝 피웠는데, 마당 정중앙에 턱하니 자리 잡았던 까닭에 집 어느 방향에서 봐도 화사하기 그지없는 풍경을 선사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족 중 누군가가 그 앵두나무에 있었고, 어느새 온 가족이 그 앵두나무 주변에 몰려들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갈 때도 가장 먼저 우리 가족을 반겼던 존재는 바로 그 화사한 앵두나무였다. 그렇게 활짝 핀 꽃이 지고 나면 이제는 조그만 앵두 열매가 송송 나기 시작해서 날씨가 더워지면 점점 더 탐스럽게 열매를 맺어가기 시작하는데, 이 경이로운 과정을 매일 매일 관찰하는 것 또한 온 가족들에게는 즐거움이었다. 때가 되어 앵두가 탐스럽기 그지없게 열매를 맺게 되고 앵두나무 가지가 조금씩 조금씩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아래로 처지게 될 즈음에, 어머니는 이웃집 애들을 불러서 따먹게 했다. 그렇게 해서 한 바구니 정도의 앵두는 애들의 입속으로 사라지고 나머지 한 바구니 정도의 앵두는 우리 가족들이 수시로 맛나게 따먹고, 나머지 남게 되는 한 바구니 정도의 앵두로 어머니는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앵두주를 담으셨다. 이러한 일들은 유년의 어린 시절 고향 땅 마당에서 늘상 벌어지는 우리 가족들만의 축제 같았다. 그렇지만 고향을 떠나 객지 생활하면서 고향 땅 앵두나무는 겨우 몇 년에 한 벌 볼까 말까 하다가 그나마도 부모님들께서 경주를 떠나 대구로 이사하면서 다시는 보지 못했다. 국어 시간에 배운 소월 선생님의 약산 진달래만큼이나 내 기억 속에 잘 남아 있는 것이 바로 유년의 진달래꽃이다. 시골에서 자란 모든 사람들에게 봄날의 진달래는 화사하기 그지없는 뒷동산의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 분명하다. 진달래꽃은 화단에서 곱게 가꾸어진 꽃과는 또 다른 것이 온 산 전체를 덮고 있는 그 엄청난 장관은 정말 경이롭다. 사실 우리가 ‘꽃에 파묻혀 본다’라는 기회를 어디서 얻을 수 있기란 참으로 어렵다. 그런데 한국의 산들은 봄에 이러한 축복의 감사함을 사람들에게 선물처럼 나누어 준다. 산이 많아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자연의 감사함이 많이 있는데 봄날의 진달래꽃도 바로 그중 하나다. 고향 땅의 ‘엄마’는 봄에 이 진달래꽃을 여러 개의 나무 바구니에 가득 따서 진달래주를 담으셨다. 항상 그러했듯이, 진달래 꽃잎을 따러 산으로 가실 때도 어김없이 ‘엄마’를 따라가야 할 사람은 막내인 나의 몫이었다. 엄마는 들판에 그리고 산에 봄나물을 캐러 가실 때도 항상 막내인 나를 불러서 같이 가셨다. 어쩌면 딸이 없었던 엄마가 여러 형제들 중에서 막내인 내가 딸이 되기를 바랐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진달래꽃을 따고 뒷마당에 아버지가 땅속에 묻어 놓은 항아리 단지에 담고 술을 완성하는 일들을 엄마와 나는 봄날 연례행사처럼 치르곤 했는데, 그 과정들이 엄마와 나는 항상 즐거웠다. ‘엄마’는 아직도 대구에서 잘 지내신다. 아쉬운 것이 하나 있다면 나를 포함하여 형님들 모두가 경주를 떠나서 타지에서 살고 계셔서 고향땅 경주를 갈 수 있는 기회들이 꼭히 많지 않다는 것이다. ‘엄마’가 계실 때 고향 땅 경주에서 잠시라도 같이 살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소망하고 기도하고 있다.
故곽지균 감독의 데뷔작 ‘겨울나그네’(1986)를 기억하시는지? 최인호가 동아일보에 연재한 같은 제목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다. 주인공 민우가 운명처럼 만난 여인인 다혜의 사랑을 잃자 죽음을 택한다는 내용이다. 겨울나그네는 소설과 영화가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물론 그것들의 공통분모는 슈베르트(F.P.Schubert/1797-1828)다. 슈베르트는 빌헬름 뮐러(W.Müller/1794-1828)의 시에 곡을 붙여 연가곡집 ‘겨울나그네’를 발표했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사랑에 실패한 청년이 추운 겨울날, 연인의 집 앞에서 이별을 고하고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들판으로 방랑의 길을 떠난다. 추운 들판을 헤매는 청년의 마음속에는 어느덧 까마귀, 환상, 도깨비불, 백발과 같은 죽음에 대한 상념이 자리 잡게 된다.> 최인호는 바로 이 곡에서 영감을 받아 소설을 지었고, 곽지균은 이를 영상으로 만든 것이다. 원곡의 어둡고 침울한 분위기가 소설과 영상에서 비극적인 이야기와 영상으로 전이되었다. 슈베르트는 31살에 요절한다. 35살에 죽은 모차르트보다 더 젊은 나이에 죽은 것이다. 그래도 모차르트는 생전에 음악적으로 인정도 받고, 사랑하는 연인과 결혼도 했다. 하지만, 슈베르트는 키 작고, 눈 나쁘고, 존재감 없는 음악가로 평생 독신이었다. 작품에서 정처 없이 방황하는 겨울나그네는 아마도 슈베르트 자신일 것이다. 뭘러의 시에 투영된 자신을 발견하고 곡을 붙인 것이리라. 연가곡 겨울나그네는 슈베르트가 사망하기 1년 전인 1827년에 완성되었다. 화가 고흐처럼 일생일대의 작품이 죽음을 목전에 두고 나온 것이다. 슈베르트는 누가 뭐래도 독일가곡(Lied)의 아버지다. 600여곡의 주옥같은 가곡을 남겼다. 모차르트나 베토벤도 가곡을 작곡하긴 했지만, 가곡을 하나의 독자적인 장르로 발전시킨 데에는 슈베르트의 공이 크다. 여기서 시에 곡을 붙인다는 것은 음악에 문학을 도입한다는 뜻이다. 가곡은 형식미를 중시하는 절대음악에서 내용을 갖춘 표제음악으로 진화하는 국면에 등장한 장르이다. 이는 리스트의 교향시, 바그너의 음악극 등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장르의 초석이 되었다. 겨울나그네는 전부 24개의 곡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중에서 다섯 번째 곡인 ‘보리수’가 가장 유명하다. 영화 ‘겨울나그네’에서, 출소한 민우가 다혜를 만나지 못하고 눈 내리는 남산계산에 앉아 절망하는 모습에 이 노래가 흐르면서 민우의 슬픔을 배가시킨다. 예술가곡에 일가견이 있는 바리톤 피셔-디스카우(D.Fischer-Dieskau/1925-2012)의 보리수 연주는 그야말로 애절하다. 그가 노래해서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는 더욱 유명해졌다.
안강읍 피일안길 112-2에 이르면 청안이씨 구암(懼庵) 이수인(李樹仁,1739~1822) 선생의 자취가 서린 소담한 상모정(尙慕亭)이 눈에 들어오는데, 건물 내에는 직산서사(稷山書社) 편액이 걸려있다. 문득 정자 뒤편에서 들려오는 맑은 계곡물과 자그마한 폭포의 경쾌한 물소리는 유람객의 발길을 끌어당긴다. 구암은 안강현 산대리에서 부친 학반재(學半齋) 이위현(李渭賢,1699~1752)과 모친 영월신씨 신명상(辛命相)의 따님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평범한 유년기를 보냈고, 여동생이 있었으나 단명하였다. 어려서 조부 이전초(李全初)와 부친의 가학을 계승하였고,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1679~1759)의 문인 작은 할아버지 이약초(李若初)에게 퇴계학을 배웠다. 벼슬에 대한 관심보다는 당시 세태의 혼란함을 떠나 고향인 경주 안강에서 산림처사로 살면서 후학양성에 매진하였고, 경주와 인근 지역의 유수한 인물과 부윤 등을 만나 교유하면서 학문의 폭을 넓혔다. 그가 남긴 『구암집(懼庵集)』에는 신라 경순왕의 황남전비각(皇南殿碑閣), 이화택의 삼괴정(三槐亭), 안강리 이공량(李公亮)의 사이헌(四而軒), 금암 최옥의 용담서당(龍潭書堂), 최주범의 취옹정(醒翁亭), 최의겸의 동호서사(東湖書社) 그리고 효자효부의 정려각 기록 등 지역문화 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많다. 문집은 이수인의 아들 이효영(李孝永,1778~1833)과 족질 이관영(李觀永)이 수습 정리하였고, 종제 이수문(李樹文)과 손자 이종림(李宗彬) 등이 사림의 협조를 받아 1860년에 목판으로 간행하였고, 이후 1901년 추가 개판하였다. 9권 5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휘녕(李彙寧)의 서문과 권주욱(權周郁,1825~1901)의 발문 그리고 이종상(李鍾祥)의 후서(後敍)가 있다. 권1~3은 시가 336제(題)이고, 권4는 소(疏)․서(書), 권5는 서(書)․잡저(雜著)․서(序), 권6은 기(記)․발(跋), 권7은 잠(箴)․명(銘)․송(頌)․상량문(上梁文)․축문(祝文)․제문(祭文), 권8은 애사(哀辭)․비명(碑銘)․묘갈명(墓碣銘)․묘지명(墓誌銘)․행장(行狀)․행록(行錄), 권9는 부록(附錄) 등이 수록되어 있다. 건물 내부에는 경인년(1890) 여강이씨 내헌(耐軒) 이재영(李在永,1804~1892)이 지은 「상모정기」 그리고 무술년(1958) 완산(完山) 류동시(柳東蓍,1886~1961)가 지은 「상모정중건기」가 걸려있고, 1827년 창려(蒼廬) 이정기(李鼎基,1759∼1836)가 지은 유사, 남려(南慮) 이정엄(李鼎儼,1755~1831)이 지은 묘지명과 풍산인 유태좌(柳台佐,1763~1837)가 지은 묘갈명 등을 보면 그의 행적을 알 수 있다. 상모정기(尙慕亭記) - 내헌 이재영 자계(紫溪)의 동쪽 그리고 화개(華蓋)의 남쪽에 넓은 골짝이 있는데 멀리 가리키면 황망한 한 구역에 불과하지만, 좁은 길을 찾아 그 안으로 들어가면 산은 높지 않게 휘두르고, 시냇물이 빠르지 않게 졸졸 흐른다. 곁에 작은 폭포가 졸졸 소리 내며 흐르는데, 그윽하고 평온하다. 깊숙이 하나의 한가한 구역이 되는데, 바라보면 단정한 선비가 초가집에 앉아 옛 사람의 책을 읽는 듯 매우 즐거울 만하다. 그 가운데 구암 이수인 공이 책을 읽고 학문에 힘쓴 곳인데, 넓게 물을 끌어 대고 위치의 경영은 거의 두서가 잡혔으니, 이 구역이 비록 은거하는 장소가 아니더라도 사물의 굳게 감춰짐은 진실로 주인의 소유일 것이다. 다만 외진 곳에 설치하여 훗날을 기다리지만 흥망의 조짐이 서린 서림사(西林寺)의 감회가 이곳에 머물러 있다. 동쪽의 깎아지른 듯 폭포 위에 3칸의 정자를 짓고 상모정(尙慕亭)이라 편액을 하였으니 또한 높은 산과 큰 길의 마음이로다. 아! 우리 구암공은 미천한 시골에서 정조년간에 소명(召命)이 집안에 이르렀고, 평민신분으로 급제하였으며, 선조의 훌륭한 덕으로 대접하여 주고받는 것이 메아리와 같았다. 절용애민(節用愛民:씀씀이를 절약하고 백성을 사랑하라) 4글자를 집 안에 걸어두고 하나의 명으로 삼았고, 자신을 불러준 예에 조금이나마 보답하였다. 공이 비록 뜻을 펼치기에 부족하였더라도 또한 가히 배운 것을 져버리지 못하였다고는 말할만하다. 가령 오늘날 이 정자에 머무는 자가 이 솥에 죽을 쑤고, 이 솥에 미음을 쑤어먹으며, 남겨진 책을 읽고 당일의 힘든 공부에 노력한다면 남은 여운이 다스려지고, 일생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지조를 생각할 것이다. … 이용직(李容直) 군이 나에게 그 사적을 청하였고, 마침내 이름난 정자의 뜻을 부연하여 기록한다. 경인년(1890) 윤달 하순에 가선대부 동지돈녕부사 여강 이재영 삼가 짓다.
경주를 처음 방문한 것은 중고등학교 시절 수학여행이었다. 그때는 처음으로 육지를 향한다는 설렘으로 가득했고 단체여행 코스에 대한 기대는 없고 친구들과 떠드는 수다가 마냥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보탑의 화려함과 특히 불국사의 웅장함, 말로 단순히 표현할 수 없는 그곳은 큰 감흥과 여운으로 가슴에 남았다. 그래서 쌍둥이들이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을 때 불국사는 아이들의 첫 방문지가 되었다. 불국사로 가는 길 낙엽이 가득한 곳은 아이들의 운동장이었고 그 끝에 도착한 불국사는 여전히 역사의 흐름 속에 시간의 마법사처럼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불국사의 역사는 그대로지만 세상은 변하고 있다” 1990년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미국 영화를 본다는 것을 의미했고 후반에는 홍콩 영화가 첨가되었다. 그 당시에 한국 영화를 영화관에서 본다는 것은 돈이 아깝고 바보 같은 짓이었다. 2000년대를 지나면서 조금씩 한국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친구들은 여전히 한국 영화는 TV나 비디오로 보는 것이라고 나에게 충고를 했었다. 2020년 코로나가 대유행했고 개봉을 계획했던 영화들이 OTT서비스 되었다. 세계가 K-콘텐츠를 보기 시작하면서 기생충, 오징어 게임, BTS는 K방역과 더불어 세계 속에 한국을 각인시켰다. 한국전쟁의 폐허를 기억하던 세계는 대한민국의 발전에 놀라워했고 대한민국의 위상은 높아졌다. 그러나 음양의 법칙처럼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대한민국은 빈부격차가 심해졌고 젊은 세대에게 ‘집’은 뜬구름 같은 것이 되어 지금을 즐기자는 욜로족이 대세가 됐다. 솔직히 욜로족은 매 시대, 매 순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젊은이들이 등장, 욜로족이라는 단어가 생겨날 정도가 된 것이다. 경제, 재테크, 투자 전문가들에게 욜로족에 대해 물으면 거지병, 거지근성이라고 단언한다. 오지랖 좀 떠는 아줌마 입장에서 말한다면 욜로족은 ‘무지에서 오는 안타까운 선택’이다. “집 한 채를 사려면 2~30년을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야 한다” “집 한 채를 사서는 평생 대출을 갚아야 한다” 둘 다 살고 싶은 인생이 아니기에 차라리 지금을 즐기겠다는 것이 욜로족이다. 재테크·투자 관련 책 한 권을 읽으면 이 말이 쓸데없는 소리라는 것을 알게 되고, 두 권을 읽으면 나도 얼른 종잣돈을 모아야겠다 결심하며, 세 권을 읽으면 투자 공부를 일찍 못했음을 아쉬워하게 된다! 재테크 관련 강의나 영상을 많이 봐서 좀 안다고 반문하는가? 아줌마 한소리 좀 한다. “영상이나 강의는 그때뿐, 책을 읽고 제대로 깨우쳐라!!” 그 결과물이 바로 나, 아줌마다! 엄청난 수익률을 자랑하지 않아도 된다. 과소비하지 말고 조금 절약하고 종잣돈을 만들고 성향에 맞는 투자를 하면 나머지는 다 시간이 해 준다. 삼십 대에는 답도 없고, 사십이 되어서는 지금 잘 하고 있는 것인가 계속 의심했지만 그때마다 책을 통해 마음을 다잡고 절약하며 종잣돈을 모으고 투자를 반복했다. 그랬더니 오십을 바라보는 지금, 부자는 아니더라도 계획보다 훨씬 많은 자산이 모였다. 그 비결은 수익률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겁많은 투자자로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지나가는 스타일로 언제나 목표는 은행 이자보다 좀 더 높은 수익률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시간이 더해지자 자산이 훨씬 많아졌다. 도전해보지 않고 결코 포기를 먼저 선택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인생을 살다 보니 쉬운 게 하나도 없다. 정답도 없다. 그러나 또 살아 보니 막막하게 느껴졌던 것이 별 일이 아니었고 답 없던 것들이 뜻하지 않게 술술 풀어지기도 한다. 그러니 어떤 일이든 포기하지 말고 언제나 마주하기를 바란다. 우리 아이들도, 남의 아이들도, 세상 모든 이들도!
6월 10일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또 하나 처연한 획을 그은 날이다. ‘6.10 항쟁’으로 일컬어지는 이날은 우리의 기억 속에 두 명의 청년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열사라는 이름으로 숨져간 박종철 군(1965~1987)과 이한열 군(1966~1987)! “그때 제가 연세대학교 간호대학 2학년 학생이었어요. 이한열 군의 비보가 있던 날, 온 캠퍼스는 물론 학과 내에서도 알 수 없는 비통함과 보이지 않는 분노로 일렁이는 것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지요!” 최정윤 씨(연세대학교 강남세브란스병원 VIP병동 간호차장)에게 그 며칠은 마치 시간이 박제되어 남아 있듯 또렷이 기억된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를 거부한 전두환 군사독재의 ‘4.13 호헌조치’에 반대하고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이 정권에 의해 은폐된 것에 항의하기 위한 6.10 국민대회를 하루 앞둔 6월 9일, 연세대학교 정문 앞에서 이한열 군이 전투경찰들이 쏜 직격 최루탄에 맞아 병원으로 후송됐다. 두개골 골절과 뇌손상으로 살아날 가망이 없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연세대학교는 초비상 상태에 돌입했다. “병원 실습 중이었는데 의과대학과 간호대 내에 그 소식이 가장 먼저 퍼졌어요. 무언가 크게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확연히 느끼는 순간이었죠” 이튿날부터 연세대학교는 침통한 기운이 가득 퍼졌고 또 한편에서는 전쟁터와 다름없는 투석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비분강개한 학생들은 수업을 전면 거부하고 누구랄 것도 없이 중앙도서관 앞으로 벌떼처럼 모여들었다. 그러나 최정윤 씨는 그곳에 함께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기에는 연세 간호고등학교라 불릴 만큼 빡센 학업과 두어 개의 아르바이트를 함께 하며 스스로 책임져야 할 현실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1980년대 중반이 대부분 그랬지만, 살면서 그때처럼 빚진 기분을 느낀 순간도 없을 겁니다. 간호대 내에서도 자발적으로 순번을 정해 의대생들과 같이 이한열 군이 죽음을 헤매고 있던 중환자실 앞을 지키기 시작했고 더 많은 학생들이 독재에 맞서 온몸으로 저항하고 있었는데 저는 그럴 수 없었거든요” 영화 ‘1987(2017년 개봉)’을 보면서 최정윤 씨는 동기생인 이한열 군에게 있었던 평화로운 일상과 그것을 파괴한 어이없는 죽음으로 인해 다시 한번 뼈저린 아픔을 느꼈다며 울먹였다. 나아가 그 당시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학생운동에 가담했던 학생들에게 또다시 어떤 부채의식을 느껴야 했다고 고백했다. 한편으로 그런 마음들이 당시 학생운동에 참여하지 못했던 의대생들이나 간호대생들에게 막연하게나마 퍼져 있었다는 정황도 알려주었다. 그런 최정윤 씨에게 그 부채의식을 홀연히 떨쳐버리는 절체절명의 계기가 생겼다. 그것은 상상하기 힘들 만큼 컸던 의료인들의 자기희생에서 비롯됐다. “코로나19는 아마도 20세기와 21세기 가장 위협적인 질병이었을 겁니다. 이에 맞서 혼신을 다해 환자들을 지킨 의료인들은 국민의 건강을 지킨 진정한 ‘시민’들이었습니다!” 최정윤 씨는 코로나19로 인해 의료진들과 병원 관계자들, 방역 관계자들이 겪은 고충은 일반 국민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험난했다며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학생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 의료인들이 국민들에게 끼친 영향이 클 것’이라고 자평했다. 병원에는 코로나 전담팀이 따로 꾸려져 있었지만 그쪽으로 빠져나간 만큼의 결원을 남은 의료진들이 메꾸어야 했기에 의료인들은 누구나 똑같은 상황이었음도 설명했다. “이제, 1987을 다시 봐도 덜 미안할 것 같아요! 그 시절 함께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에게는 우리 나름의 봉사와 의무가 있다는 것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거든요!” 올해로 간호사 생활 33년차, 최정윤 씨는 명예퇴직을 신청해놓은 상태다. 이제 코로나도 안정국면에 들어선 만큼 홀가분하게 오랜 기간 힘든 일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다독이고 싶다고! “글쎄요, 그렇다고 의료인들에게 부채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겁니다. 누구나 자신의 위치에서 다른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봉사할 수 있습니다. 그걸 믿으면 고생한 의료인들의 보람도 조금 더 커질 것 같아요!” 환하게 웃는 최정윤 씨를 보면서 2022년 대한민국 모든 의료진들을 영화 ‘1987’의 또 다른 주인공으로 헌정하고 싶어졌다. 1987년의 민주화 현장의 학생들과 2022년의 의료인들 모두 역사가 기억해야 할 참다운 시민들이다.
덩케르크. 1940년 2차 세계 대전 때 나치 독일군에 의해 프랑스 덩케르크 해안에 고립된 영국, 프랑스, 벨기에, 폴란드, 네덜란드 5개국 병력 40만여 명을 영국 본토로 탈출시키는 철수작전을 소재로 한 영화다. 그 영화 못지않은 일이 한반도에도 있었다. 백제와 왜, 신라와 당나라, 고구려까지 포함시키면 동북아 5개국이 뒤얽힌 전쟁의 끝에 일어났던 대탈주극이 663년 한반도 남해안 대례성이란 곳에서 벌어졌다. 대례성은 덩케르크였다. 그 날의 탈주는 천사백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 영향이 미치고 있는 역사적 패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한반도로부터의 탈출 과정에서 생긴 숨가쁜 드라마가 여러 기록에 남아 있어야 하나, 663년 대례항에서 철수했다는 기록이 있고 난 후 단 한 줄의 기록조차 남아 있지 않다. 마치 예쁜 여자가 자신의 이마에 난 흉터를 머리카락으로 가리듯 당시의 왜국 지도부와 백제의 유민들이 그날의 상처를 감추고 싶어했기에 일어난 현상일 것이다. 통상 대규모 패전이 있고 나면 책임을 묻는 절차가 진행된다. 장수에게는 패전의 책임을 묻고 최고 책임자에게는 정치적 책임이 어떤 형태로든 뒤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백마강 전투 패배 후 책임 추궁이 이야기되어야 할 만엽집의 해당 자리에는 그러한 내용이 없었다. 그 대신 그 자리에는 한가하게도 꽃과 단풍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만엽집 16번가가 그것이다. 만엽집을 만든 이는 왜 꽃과 단풍 이야기를 추궁이 있어야 할 자리에 배치해 놓았을까.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만엽집은 허투루 만든 책이 절대 아니다. 그렇다면 내용도, 작품을 놓아둔 자리도 아무렇게나 하지 않아야 한다. 16번가는 반드시 있어야 할 내용과 자리를 생각하면서 음미해야 하는 작품이다. 그러기에 16번가는 논쟁적 요소를 가득 안은 작품이 될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冬 木成春 去 來 者/不喧 有之 鳥 毛 來 鳴 奴/不開 有之 花 毛 佐 家礼杼/山 乎 茂 入 而毛 不取/草 深 執 手毛 不見/秋山 乃 木葉 乎 見 而者/黃葉 乎婆 取 而曾 思努布/靑 乎者 取 而歎 久 曾許 持恨 之/秋山吾 者 “겨울이 가니 / 울지 않고 있던 새가 날아와 울고 / 피지 않고 있던 꽃도 피어나지만 / 산에는 나무가 우거져 들어가 꺾을 수 없고 / 풀도 무성하여 들어가 꺾는 사람을 볼 수 없다오. / 가을 산 나뭇잎을 보는 사람들은 / 노란 잎을 따 슬픔에 젖고 / 푸른 잎을 따들고는 오래도록 탄식한다네. / 가을 산을 좋아한다오, 나는” 백마강 전투 패전 4년 후였다. 백제 파병의 최고 책임자였던 중대형(中大兄) 황태자가 어느 모임 자리에서 그의 측근에게 ‘봄산의 꽃과 가을산의 단풍을 비교해 보라’고 한 일이 있었다. 그날 측근이 만들었을 작품은 사라져 없으나, 자리를 같이 했던 액전왕(額田王)이라는 여인이 만든 작품이 있어 오늘에 전한다. 16번가가 만들어지던 그 날의 상황을 살펴보면 액전왕이라는 여류가인이 중대형 황태자와 한자리에 앉아 있음이 눈에 띈다. 그녀는 중대형의 동생 대해인(大海人)의 여인이었고, 대해인과의 사이에서 딸까지 낳은 여인이었다. 중대형은 시숙이었고 액전왕은 제수였다. 그 날 두 남녀는 관계를 의심받을 수도 있는 꽃과 단풍을 이야기하고 있다. 오늘의 일본인들은 두 사람 사이를 단순한 시숙과 제수 관계로 보고 있지 않다. 고대를 꾸몄던 두 황자와 한 여인의 사랑이 있었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근친상간의 이야기이다. >>다음에 계속
경주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경주 스케치 여행 SNS 포스팅 인증 이벤트’가 열리고 있다. 경주시는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추진된 문화체육관광부 공모사업인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사업의 후속으로 이번 사업을 진행한다. 이벤트에 참여하려면 먼저 카카오톡 ‘해돋이역사기행’을 친구로 추가해 경주 스케치 여행 참여 신청을 해야 한다. 그리고 경주 소재 북미카페와 봉황맨션, 황남고택, 석등있는 집, 불국사가족호텔, 대중음악박물관 등 6곳의 여행자 플랫폼에서 스케치 킷을 수령하면 된다. 이후 경주여행을 하며 경주의 아름다운 풍경이 담긴 작품 사진을 카카오톡 채널로 제출하고 여행자플랫폼에서 참여인증배지를 수령하면 된다. 또 경주 스케치 여행의 추억을 SNS에서 홍보하면 추가 기념품도 수령할 수 있다. 참여 인원은 선착순 1000명이다. 상세내용은 카카오톡 채널을 참고하거나 해돋이역사기행권 사업관리단에 문의하면 된다. 경주시 관계자는 “이번 이벤트가 참여자들에게 경주 여행의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색다른 경험이 되길 바라며, SNS 홍보로 관광객 유치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며 “여행자 플랫폼을 확대해 다양한 미션투어를 추진해 지역 관광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이벤트는 경주와 울산, 포항 등 해돋이 역사 관광권이 진행하는 공동 이벤트로 지역 관광자원을 홍보하기 위해 시행된다.
우리시대는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가 계속되어 매우 편리한 사회이지만, 자원의 고갈이나 환경의 악화, 지역 사람들의 인권침해라고 하는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행정이나 기업 등 다양한 주체가 임하고 있지만, 특히 소비자의 행동 없이는 해결할 수 없는 과제가 증가하고 있다. 경제활동의 토대는 소비 동향에 따라 좌우된다. 각국의 소비자는 SDGs를 활용해, 그 대응을 강화할 수 있다. 이를 계기로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녹색으로 인간적인 소비자를 증가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지속가능한 소비, 사회나 환경을 생각한 ‘윤리적 소비’가 주목받는 이유이다. -윤리적 소비 윤리적 소비는 나의 소비 행위가 다른 사람, 사회, 환경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고려하여 환경과 사회에 바람직한 방향으로 소비하는 행위를 뜻한다(황현택, 2014: 123). 그것은 인간과 동물, 자연과 환경을 착취하거나 해를 가하지 않는 윤리적으로 생산된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행위, 친환경 소비(에너지 절감 제품사용, 유기농 제품소비, 동물보호 소비 등)뿐 아니라 생산자에게 정당한 값을 지불하는 공정무역, 로컬푸드, 공정여행 등을 포함한다(유홍식, 2012: 24). 이처럼 윤리적 소비는 ‘생산을 배려하는 소비’로써 공정무역을 통한 제3세계 생산자와 우리 사회의 약자(장애인,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과 연대 그리고 지속가능한 국내 농업을 통한 식량 자급과 환경 보전을 중요한 내용으로 한다(김태환, 2019: 42). 최근 경상북도 여러 도시에서 윤리적 소비가 활성화되고 있다. 식품 손실과 CO₂ 삭감, 종이사용, 비닐봉지 사용, 플라스틱 사용량 줄이기, ‘택배 배달 줄이기’ 등의 소비자 행동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최근 지역생산 지역소비나 복구지원 등 다양한 소비와 관련해서 소비자의 의식적 행동도 늘어나고 있다. 이를 ‘지역에 대한 배려’라고도 하는데 이 외에 ‘사람에 대한 배려’, ‘사회에 대한 배려’, ‘환경에 대한 배려’, ‘동물에 대한 배려’ 등을 강조하는 윤리적 소비가 자주 언급된다(이창언, 2022). -SDGs 목표달성을 위한 소비자, 정부(지자체)의 역할 SDGs(지속가능발전목표) 실천을 위해 소비자들은 자기 취향과 이익을 추구하면서도 이웃과 사회를 생각하는 소비를 해야 한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는 소비, 합리적 의사결정이 가능한 소비자, 더 좋은 시장과 더 좋은 사회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소비자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한다. 소비자가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소비를 지탱해 나가는 지원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지금 어떤 문제가 일어나고 있는지는 정보를 얻지 못하면 행동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시민이 소비자 역할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부도 법과 제도를 정비해 주어야 한다. 최근 각 국 정부(지자체)가 지속가능발전목표 달성에 기여하기 위해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사회를 실현한다는 사명 아래, 소비자 기본계획에 따라 다양한 시책을 추진하고 있다. 소비자 기본계획에는 ① 소비자안전 확보, ② 신뢰할 수 있는 라벨 표기 및 적용, ③ 공정 거래의 실현, ④ 소비자가 주역이 되는 선택을 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회 환경 조성, ⑤ 소비자피해구제 및 권익 보호의 틀 정비, ⑥ 국가 및 지방소비자행정 체제 정비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어린이 안전사고 예방’, ‘윤리적 소비 역량 강화’, ‘음식물쓰레기 감축 방안 강구’, ‘지킴이 네트워크 운영’ 등이 있다(이창언, 2022). 이는 SDGs를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시책으로 이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이해 관계자와 긴밀한 협력체계(관계부처 네트워크, 연락회의, 협의회 등)를 구축하여 SDGs 13, 14번 목표가 더 효율적·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해야 한다(허민영, 2020: 15). -SDGs 목표달성을 위한 기업, 소비자의 역할 ‘지속가능한 소비’를 위해서는 ‘지속 가능한 생산’이 불가결한 것이다. 이를 고려해서 SDGs는 ‘지속 가능한 생산과 소비(목표 13)’를 명기한 것이다. 기업은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과제와 대처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야한다. SDGs·ESG에 대응하는 것은 기업 브랜딩(branding)의 좋은 수단이다. 하지만 브랜딩 효과만 노려 SDGs·ESG를 안일하게 활용하면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이창언 2022). 기업의 인식전환과 혁신을 위한 조치 못지않게 소비자와 시민도 변해야한다. ‘미닝아웃(Meaning Out)’이란 말이 있다. 정체성을 드러낸다는 의미의 ‘커밍아웃(Coming Out)’과 ‘신념(Meaning)’이 합쳐진 말이다. 소비를 통해 자신의 가치관이나 신념을 표출하는 행위를 일컫는 것이다. 기업이 환경 보호에 기여하는지, 제품이 윤리적으로 생산되는지 등을 고려해 구매를 결정하는 ‘착한 소비’를 의미한다. 소비자들은 기업의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것을 넘어서 기업의 철학과 가치를 점검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무에 대한 꼼꼼하고 깐깐한 감시활동을 전개해야 한다(이창언 2022).
(사)경주시종합자원봉사센터는 지난 8일 감포읍 해변가 일대에서 경주시자원봉사단체연합회, 동경주 해양환경·이불세탁 봉사회와 함께 줍깅챌린지를 진행했다. <사진> ‘줍깅 챌린지’는 2022년 (사)경주시종합자원봉사센터의 주요 프로그램 중 하나로서 탄소중립과 관련된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세계적 이슈로 주목받고 있는 기후위기극복에 동참하고자 진행하고있는 프로그램이며, 지난 4월 1일부터 진행하여 현재까지 100여팀, 1800여명이 프로그램에 참여해 활동하고 있다. 특별히 이날은 동경주 해양환경·이불세탁 봉사회 김유식 회장이 참여자들에게 해양쓰레기에 대한 경각심과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한 해양쓰레기 관련 교육을 진행한 후 감포읍 일대 해양쓰레기 과다배출지역을 중심으로 줍깅 챌린지 활동을 실시했다. 교육을 진행한 동경주 해양환경·이불세탁 봉사회는 2021년부터 문무대왕면을 중심으로 동경주 일대에 해양환경정화 및 취약계층 이불세탁을 진행하고 있는 봉사단체이고, 프로그램에 참여한 경주시자원봉사단체연합회는 지역사회 공익을 위해 각종 캠페인 참여, 재난재해 현장지원 및 피해복구, 지역행사 및 축제 자원봉사활동 참여, 지역사회 환경정화활동 등 따뜻하고 아름다운 경주를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정재윤 이사장은 “지구의 환경을 지키기 위해 솔선수범해 노력할 것이며, 앞으로도 환경을 위한 다양한 자원봉사활동 프로그램들을 운영할 예정이다”고 전했다.
‘동아시아 청소년 문화예술제’가 내달 22일, 23일 양일간 경주시 화랑마을에서 열린다. 2022 동아시아 문화도시 축제의 일환으로 열리는 이 행사는 한중일 청소년들이 예술활동의 장을 통해 교류하며 상호 문화의 이해를 증진하기 위해 추진된다. 주요행사는 다음달 22일 무더위를 날려 버릴 물총축제 ‘살水대첩’과 다양한 버스킹 공연이 펼쳐진다. 23일에는 ‘댄싱 위드 동아시아 UCC콘테스트’, ‘청소년 꿈드림페스타’, ‘중·일 문화공연’ 등 청소년들을 위한 다양한 문화행사가 진행된다. 이중 ‘댄싱 위드 동아시아 UCC콘테스트’, ‘청소년 꿈드림페스타’, ‘물총축제’ 등 프로그램은 동아시아 문화도시 경주 공식 홈페이지에서 오는 30일까지 참가 청소년을 모집하고 있다. 댄싱 위드 동아시아 UCC콘테스트에서는 한중일 3국의 전통의상과 소품을 활용해 제작된 댄스 영상을 공모하고 있다. 온라인 예선을 거쳐 선정된 5개 팀이 다음달 23일 현장 무대에서 본선을 치를 예정이다. 청소년 꿈드림페스타도 공연영상을 공모한다. 사전심사에서 10개 이내 팀을 선정해 다음달 23일 무대에서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다음달 22일 오후 2시~4시 사이 화랑마을 어울마당서 진행되는 물총축제는 9세~24세 이하 청소년들이 참여 가능하며, 무더운 여름 한바탕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전망이다. 공모 등 축제 관련 상세내용은 경주시 홈페이지나 2022 동아시아문화도시 경주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화랑마을이 다소 외진 곳에 위치함에 따라 축제가 열리는 이틀간 동국대 입구를 오가는 셔틀버스도 오후 1시부터 오후 7까지 운영된다. 경주시 관계자는 “코로나19가 완전 종식되지 않아 한중일 청소년들이 직접 만날 수는 없지만 이번 행사가 청소년들이 서로의 문화를 좀 더 이해하고 친근하게 느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끼와 열정이 넘치는 청소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동아시아 문화도시는 지난 2014년부터 한·중·일 3국간 ‘동아시아 문화 교류와 이해’를 목적으로 열리고 있는 행사다. 올해는 한국의 경주시와 중국 원저우시·지난시, 일본 오이타현 등이 문화도시로 선정돼 11월말까지 다양한 문화교류사업을 추진한다.
경주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일본인의 책을 우연히 경주시립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도서 반납일이 경과될 때까지 수중에 두고 싶은 책이었다. 닭이 알을 품듯 곁에 두고 싶었던 것은 작가에 대해 질문을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모리사키 가즈에는 1927년 대구에서 태어나 17세까지 대구와 경주, 김천에서 성장했다. ‘경주는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는 그녀가 성장한 조선에 대한 회고록이자 수기이다. 책머리 서문에 ‘조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마음이 무겁다’라고 말했듯 피식민지에 대해 말하는 것은 분명 불편한 것이 많고 원죄의식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소녀 눈에 비친 조선은 어머니처럼 따스했다. 나의 원형은 조선이 만들었다고 할 만큼 조선의 마음, 조선의 풍물과 풍습 그리고 자연환경이 만들었다고 이야기한다. 책 속에는 대구와 김천에 대한 이야기도 있지만, 특별히 경주에 대한 작가의 유별난 애정을 엿볼 수가 있다. 그녀의 눈에 비친 오래된 도시 경주 속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본다. 그녀의 아버지 모리사키 구라지는 교사였다. 대구공립보통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있다가 1938년 경주중학교 초대 교장으로 오게 되었다. 건물도 지어지지 않은 학교로 오게 된 것은 이규인 선생과 수봉 가문의 강력한 개교의 의지 때문이었다. 모리사키 가즈에가 경주에 와서 처음 나들이 간 곳은 신록이 한창이던 어느 봄날 무열왕릉 산책이었다. 서천을 건너 기와 조각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밭을 지나 도착한 그곳에서 멀리 토함산 정상과 훤히 내려다보이는 경주평야를 바라보기도 했다. 무열왕릉 비석(국보 25호)을 만져보며 거북 모양의 받침돌 목 부위를 불그스름하게 만든 옛 신라인에게 감탄했다. 그리고 신라 왕릉에 절을 올리기도 했다. 무열왕 김춘추와 김유신 장군이 삼국 통일 이야기와 신라 시대 이곳 도읍지에서 불국사까지 집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는 이야기까지 전해 듣기도 했다. 그다음은 오릉으로 갔다. 문천과 서천이 합해지는 부근, 솔밭으로 둘러싸인 다섯 개의 왕릉을 보며 온몸에 전기가 흐르는 듯했다고 했다. 천년 전 왕과 왕비의 목소리를 들리는 듯하여 이내 조용해 졌다고 했다. 경주를 떠올리면 이날의 정적이 되살아나 감회에 잠긴다고 했다. 이외에도 포석정과 계림, 반월성, 안압지 등을 둘러보곤 했다. 특히 석굴암에서는 대불보다는 벽면 부조 불상을 더 좋아했는데 꿈으로 우아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여러 번 찾아왔다고 했다. 조선 사람보다 더 조선을 좋아했던 당시 경주 박물관 관장 오사카 긴타로는 <경주의 전설>이라는 책을 만들었고 어린 그녀도 그 책 선물을 받았는데 오래도록 애지중지했다. 오사카 긴타로는 신라의 미소로 알려진 수막새가 국내로 다시 귀환하도록 큰 힘을 보탠 인물로 알려져 있다. 에밀레종(국보 29호 성덕대왕 신종)에 대한 이야기는 어린 소녀에게 많은 감흥을 가져다준 것 같다. 어린아이가 흐느껴 우는 듯한 공명(共鳴)의 음색이 꼭 어머니를 부르는 소리로 들린다는 이야기에 크게 감명받은 듯했다. 책 속에는 경주 장날에 대한 풍경도 많이 등장한다. 엿장수 가위소리, 약초 파는 사람들, 둥근 도자기 요강을 파는 상인, 그리고 분황사 주변에서 떡메치기하는 장면과 여동생과 걸어갔던 감포로 가는 포플러 가로수길도 선명하게 기억되고 있었다. 어머니와 북천에 자주 갔고, 들꽃을 꺾어 오기도 했다. 북천 건너 경주 이씨 선조가 강림했다는 표암에서 바라본 경주중학교와 안압지, 반월성과 남산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멀리서 바라보는 남산은 뿌옇게 보랏빛이 돌고, 딩구는 돌에는 자수정이 박혀있고, 성스런운 그 산은 그녀의 아버지도 남산에 묻혔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1943년 4월 초 벚꽃 필 무렵 그녀의 어머니가 서른 여섯 살에 암으로 돌아가셨는데 죽기 전 학교 관사에서 혼불이 빠져나가 남산쪽으로 사라지는 것을 경주중 1학년 학생이 보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기도 했다. 어머니의 혼불이 경주 남산 어딘가 있는 듯하여 그녀의 책 속에 ‘혼불’이라는 소제목을 달았던 것 같다. ‘경주는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그녀의 어머니는 경주에서 죽었고 에밀레종 소리에서 엄마를 부르는 어린아이 소리를 들었던 것이 책 제목으로 정해진 결정적인 것이 아닐까 싶다. 한국어판 부제는 ‘식민지 조선에서 성장한 한 일본인의 수기’이지만 일본 원서에는 ‘나의 원향(原鄕)’일 만큼 경주는 그녀에게 특별했던 것 같다. 1968년 그녀는 수봉재단 창립 30주년 행사에 초대 교장이었던 아버지 대신 초청받아 각별한 후의를 받았다. 한국에서 태어난 일본인 모리사키 가즈에는 주로 탄광촌에서 활동한 시인이자 페미스트 작가이다. 평생 사회적 약자를 위한 글을 썼으며 이 책 외에도 한국에 관한 여러 편의 책을 썼다. 비록 짧은 5년간의 생활이었지만 그녀에게 경주는 어머니처럼 영원히 그리운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