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케르크. 1940년 2차 세계 대전 때 나치 독일군에 의해 프랑스 덩케르크 해안에 고립된 영국, 프랑스, 벨기에, 폴란드, 네덜란드 5개국 병력 40만여 명을 영국 본토로 탈출시키는 철수작전을 소재로 한 영화다.
그 영화 못지않은 일이 한반도에도 있었다. 백제와 왜, 신라와 당나라, 고구려까지 포함시키면 동북아 5개국이 뒤얽힌 전쟁의 끝에 일어났던 대탈주극이 663년 한반도 남해안 대례성이란 곳에서 벌어졌다. 대례성은 덩케르크였다. 그 날의 탈주는 천사백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 영향이 미치고 있는 역사적 패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한반도로부터의 탈출 과정에서 생긴 숨가쁜 드라마가 여러 기록에 남아 있어야 하나, 663년 대례항에서 철수했다는 기록이 있고 난 후 단 한 줄의 기록조차 남아 있지 않다. 마치 예쁜 여자가 자신의 이마에 난 흉터를 머리카락으로 가리듯 당시의 왜국 지도부와 백제의 유민들이 그날의 상처를 감추고 싶어했기에 일어난 현상일 것이다.
통상 대규모 패전이 있고 나면 책임을 묻는 절차가 진행된다. 장수에게는 패전의 책임을 묻고 최고 책임자에게는 정치적 책임이 어떤 형태로든 뒤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백마강 전투 패배 후 책임 추궁이 이야기되어야 할 만엽집의 해당 자리에는 그러한 내용이 없었다. 그 대신 그 자리에는 한가하게도 꽃과 단풍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만엽집 16번가가 그것이다.
만엽집을 만든 이는 왜 꽃과 단풍 이야기를 추궁이 있어야 할 자리에 배치해 놓았을까.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만엽집은 허투루 만든 책이 절대 아니다. 그렇다면 내용도, 작품을 놓아둔 자리도 아무렇게나 하지 않아야 한다. 16번가는 반드시 있어야 할 내용과 자리를 생각하면서 음미해야 하는 작품이다. 그러기에 16번가는 논쟁적 요소를 가득 안은 작품이 될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冬 木成春 去 來 者/不喧 有之 鳥 毛 來 鳴 奴/不開 有之 花 毛 佐 家礼杼/山 乎 茂 入 而毛 不取/草 深 執 手毛 不見/秋山 乃 木葉 乎 見 而者/黃葉 乎婆 取 而曾 思努布/靑 乎者 取 而歎 久 曾許 持恨 之/秋山吾 者
“겨울이 가니 / 울지 않고 있던 새가 날아와 울고 / 피지 않고 있던 꽃도 피어나지만 / 산에는 나무가 우거져 들어가 꺾을 수 없고 / 풀도 무성하여 들어가 꺾는 사람을 볼 수 없다오. / 가을 산 나뭇잎을 보는 사람들은 / 노란 잎을 따 슬픔에 젖고 / 푸른 잎을 따들고는 오래도록 탄식한다네. / 가을 산을 좋아한다오, 나는”
백마강 전투 패전 4년 후였다. 백제 파병의 최고 책임자였던 중대형(中大兄) 황태자가 어느 모임 자리에서 그의 측근에게 ‘봄산의 꽃과 가을산의 단풍을 비교해 보라’고 한 일이 있었다. 그날 측근이 만들었을 작품은 사라져 없으나, 자리를 같이 했던 액전왕(額田王)이라는 여인이 만든 작품이 있어 오늘에 전한다.
16번가가 만들어지던 그 날의 상황을 살펴보면 액전왕이라는 여류가인이 중대형 황태자와 한자리에 앉아 있음이 눈에 띈다. 그녀는 중대형의 동생 대해인(大海人)의 여인이었고, 대해인과의 사이에서 딸까지 낳은 여인이었다. 중대형은 시숙이었고 액전왕은 제수였다. 그 날 두 남녀는 관계를 의심받을 수도 있는 꽃과 단풍을 이야기하고 있다. 오늘의 일본인들은 두 사람 사이를 단순한 시숙과 제수 관계로 보고 있지 않다. 고대를 꾸몄던 두 황자와 한 여인의 사랑이 있었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근친상간의 이야기이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