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곽지균 감독의 데뷔작 ‘겨울나그네’(1986)를 기억하시는지? 최인호가 동아일보에 연재한 같은 제목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다. 주인공 민우가 운명처럼 만난 여인인 다혜의 사랑을 잃자 죽음을 택한다는 내용이다. 겨울나그네는 소설과 영화가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물론 그것들의 공통분모는 슈베르트(F.P.Schubert/1797-1828)다.
슈베르트는 빌헬름 뮐러(W.Müller/1794-1828)의 시에 곡을 붙여 연가곡집 ‘겨울나그네’를 발표했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사랑에 실패한 청년이 추운 겨울날, 연인의 집 앞에서 이별을 고하고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들판으로 방랑의 길을 떠난다. 추운 들판을 헤매는 청년의 마음속에는 어느덧 까마귀, 환상, 도깨비불, 백발과 같은 죽음에 대한 상념이 자리 잡게 된다.>
최인호는 바로 이 곡에서 영감을 받아 소설을 지었고, 곽지균은 이를 영상으로 만든 것이다. 원곡의 어둡고 침울한 분위기가 소설과 영상에서 비극적인 이야기와 영상으로 전이되었다.
슈베르트는 31살에 요절한다. 35살에 죽은 모차르트보다 더 젊은 나이에 죽은 것이다. 그래도 모차르트는 생전에 음악적으로 인정도 받고, 사랑하는 연인과 결혼도 했다. 하지만, 슈베르트는 키 작고, 눈 나쁘고, 존재감 없는 음악가로 평생 독신이었다. 작품에서 정처 없이 방황하는 겨울나그네는 아마도 슈베르트 자신일 것이다. 뭘러의 시에 투영된 자신을 발견하고 곡을 붙인 것이리라. 연가곡 겨울나그네는 슈베르트가 사망하기 1년 전인 1827년에 완성되었다. 화가 고흐처럼 일생일대의 작품이 죽음을 목전에 두고 나온 것이다. 슈베르트는 누가 뭐래도 독일가곡(Lied)의 아버지다. 600여곡의 주옥같은 가곡을 남겼다. 모차르트나 베토벤도 가곡을 작곡하긴 했지만, 가곡을 하나의 독자적인 장르로 발전시킨 데에는 슈베르트의 공이 크다. 여기서 시에 곡을 붙인다는 것은 음악에 문학을 도입한다는 뜻이다.
가곡은 형식미를 중시하는 절대음악에서 내용을 갖춘 표제음악으로 진화하는 국면에 등장한 장르이다. 이는 리스트의 교향시, 바그너의 음악극 등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장르의 초석이 되었다.
겨울나그네는 전부 24개의 곡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중에서 다섯 번째 곡인 ‘보리수’가 가장 유명하다. 영화 ‘겨울나그네’에서, 출소한 민우가 다혜를 만나지 못하고 눈 내리는 남산계산에 앉아 절망하는 모습에 이 노래가 흐르면서 민우의 슬픔을 배가시킨다. 예술가곡에 일가견이 있는 바리톤 피셔-디스카우(D.Fischer-Dieskau/1925-2012)의 보리수 연주는 그야말로 애절하다. 그가 노래해서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는 더욱 유명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