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북정책연구원이 마련한 ‘지속가능한 경주의 도시디자인’ 전문가 정책워크숍은 천년고도 경주의 도시재생 및 구성방향을 논의한 자리여서 의미가 있었다. 워크숍에서는 지역 건축가 출신이자 전국적인 명성과 인지도를 갖고 있는 손명문 건축사(건.환건축 대표)를 비롯한 전문가들이 고도 경주가 현재 안고 있는 문제점과 앞으로 지향해야 할 지속가능한 도시디자인에 대한 열띤 토론을 한 것은 주목받기에 충분했다. 손 건축가가 현재 경주에는 도시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는 독창적이고 예술적인 건물이 없어 매력이 떨어진다는 점을 지적하고, 명품건축물 만들기와 건축물의 관광상품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주문한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특히 앞으로 이전하게 될 황남초등학교 부지 활용에 대해 반드시 행정과 주민,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어야 한다는 제안은 새겨봄직 하다고 사료된다. 산업이 발달한 세계 각국의 도시들은 산업구조의 변화 속에 흥망성쇠를 거치면서 도시는 위기에 처하고 주민의 삶의 질이 급격히 나빠졌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듯이 많은 도시들이 과거의 어두운 역사를 새로운 디자인을 통해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하고 있는 사례도 적지 않게 알려져 있다. 스페인의 빌바오는 한 때 조선, 철강, 석탄산업의 호황으로 유럽의 유명한 부자도시로 성장했지만 이들 산업이 사양화되면서 도심이 노후화되자 구 건축물을 독창적이고 예술적인 건축물(구겐하임 미술관)로 둔갑시켜 노후화되어가는 도심지역을 성공적으로 재생시킨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중국 베이징 798예술구는 구 무기공장 건물을 문화창의산업 집중구로 지정해 베이징의 문화아이콘으로 부상, 이제는 필수 관광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도 몇 몇 사례를 찾을 수 있는데 군산, 포항 구룡포 등 일제강점기 건물을 활용한 관광상품화 사례나,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참여해 명품 건축물 전시장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제주도가 그렇다. 우리나라는 반만년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몇 몇 역사도시를 제외하고는 도심에서 역사성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삼국, 통일신라, 고려, 조선시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산업화 과정을 거쳤지만 어느 곳에서도 역사의 연속성은 찾기 어렵다. 행정의 편리성 추구와 경제논리로 최근까지 그나마 남아 있던 유산도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경주시는 관광객 2000만 시대를 목표로 매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살펴보면 정작 관광객들이 더 관심을 두는 고도 경주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복원하는 데는 체계가 없어 보인다. 지금 시점에서 경주에 필요한 것은 과거 속에서 현재를 찾고, 현재를 통해 미래를 발견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고도 경주만의 도시디자인이라고 본다. 그리고 고도 경주는 새로운 것을 입히는 디자인보다는 남아 있는 흩어진 소중한 유산을 활용해 잘 엮어 내는 것이 고도 경주의 품격을 더욱 높일 수 있다고 사료된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역사성과 장소성에 대한 가치를 가장 높일 수 있는 곳이 경주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더 늦기 전에 고도 경주를 명품도시로 만들 기본계획을 수립하길 기대한다.
Q=A씨는 얼마 전 생산녹지지역의 농지를 경매로 낙찰 받았다고 한다. 그 이유가 택지지역으로 될 것을 기대했기 때문에 1차에 낙찰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보상을 보다 많이 받기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주변에서는 소나무나 과일나무를 관리도 하지 않으면서 식재한 농가가 많다고 한다. 과연 나무를 식재했을 경우에 그 보상의 기준이 현재의 녹지로 있는 것 보다 다르냐는 것이었다. A=A씨의 질문은 현재의 생산녹지가 택지로 변경될 것을 예상해서 현재의 시세보다 높게 낙찰 받았다는 것인 바, 그 대가를 보충 받고자 나무를 식재할 경우, 그 보상가가 어떻게 되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보상의 기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묻고 있다. 즉 수목의 보상과 기준에 대한 것이다. 이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즉 수목의 보상에는 수목의 종류와 이식 가능여부에 따라 판단을 하고, 그 보상을 결정한다. 모든 수목이 보상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반드시 매수 전에 보상대상의 여부를 확인해야 할 것이다. 어쨌거나 수목은 이식에 필요한 비용을 보상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식도 이식의 가능성과 이식의 난이도 그 밖에 가격형성에 관련되는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평가해야 한다. 이식 가능성의 과실 중에서도 결실기에 있는 과수와 결실기에 이르지 않은 과수 등으로 구분한다. 결실기에 있는 과수에서 이식에 필요한 이식비는 물론, 이식하면서 죽게 되는 수목(고손율)과 그 감수율을 감안한다. 그리고 결실기에 이르지 않은 과수는 또 다시 계절적으로 이식적기인 경우와 이식적기가 아닌 경우로 구분해서 감정한다. 또한 이식이 불가능한 과수에 대해서는 거래사례비교법에 의해서 평가한 금액으로 보상가를 정한다. 거래사례가 없는 경우는 결실기에 있는 과수와 결실기에 이르지 않은 과수로 구분애서 평가액을 정한다. 또한 수목의 수량은 그루별로 조사하여 사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처럼 수목에 대한 보상은 수목의 종류와 이식의 여부와 이식하고도 생존율 등을 모두 감안해서 복잡하게 보상가를 정하게 된다. A씨가 과수를 식재하려고 한다면 위와 같은 보상의 평가기준을 감안해서 식재해야 할 것이다. 또한 식재를 한다고 하더라도 이식가능수령에 따라 그 보상가가 다르게 산정되기 때문에 그 수종을 선정하는데도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가령 일반사과나무의 경우 5년 이하의 경우는 이식기를 2월 하순에서 3월 하순 사이를 이식의 적기로 본다. 이때 고손율은 15%로 본다. 그리고 감수율은 1년차의 경우는 100%이고, 이식 2년차의 경우는 80%이고 이식 3년차의 경우는 40퍼센트의 감수율로 본다. 그 밖의 수종에 대해서는 유사수종에 준해서 적용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최적 수확량에 대해서는 평가기준은 다르게 한다. 가령 일반사과의 경우에 최적수확수령을 18년에서 23년으로 본다. 이때의 21년짜리의 일반사과에 대한 수확취득금액은 22만4000원으로 정하고 있다. 이것은 2005년을 기준으로 한 것이고, 2013년의 기준금은 또 다르다. 이와 같이 보상을 받기 위해서 수목을 식재할 경우에 여러 가지의 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에 어떤 나무를 언제 얼마를 식재해야하고, 그 수목에 대한 보상가가 얼마가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답할 수 없는 문제다. 참고가 되기를 바란다.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은 지난달 21일 경주시청에서 경주시·경주문화재단과 ‘한수원 문화후원사업 협약식’을 가졌다. 이 협약식은 한수원의 본사 이전 기념식에서 조석 사장이 발표한 ‘경주시대 종합발전계획’ 10대 생활체감형 사업 중 문화예술 육성 사업의 일환이다. 한수원은 문화후원사업을 크게 5개로 나누어 1) 문화도시 경주를 위한 메세나 사업 2) 한수원과 함께하는 문화가 있는 날 사업 3) 지역 문화예술계 지원 사업 4) 한수원 문화의 거리 조성 사업 5) 지역 문화예술행사 홍보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크게 봐서 앞의 세 개 사업은 소프트웨어, 뒤의 두 개 사업은 하드웨어 관련 사업이라 할 수 있다. 소프트웨어는 좋은 문화예술프로그램의 실행으로 얼마든지 소기의 성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하드웨어는 하드웨어 구축만으로는 안 된다. 특히 네 번째 한수원 문화의 거리 조성 사업은 해당 하드웨어의 입지, 기능, 운영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마침 지난 19일부터 한수원 문화의 거리 조성을 위한 공모전이 시작되었다. 공모내용은 100개 정도의 컨테이너 박스를 활용한 설계 및 배치, 그리고 운영방안이다. 컨테이너 박스를 미적·기능적으로 조합한 건물들이 문화의 거리의 중심 공간이 되는데, 결국 이 공간을 어떻게 운영할 것이냐에 대한 아이디어 개진이 핵심 과제로 보인다. 필자는 한수원 문화의 거리가 경주의 문화예술 창작기반을 다지는데 크게 기여하길 바란다. 컨테이너 박스로 만든 건물이 공연이나 전시를 위한 공간이 되기보다는 예술인들이 창작 작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시설이 되었으면 한다. 문화예술의 생산과 인큐베이션(incubation)이 이곳에서 활발히 일어나고, 경주예술의전당이나 기타 문화예술시설에서 창작물이 유통되고 소비되는, 전례 없는 선순환이 일어나길 기대해 본다. 한수원 문화의 거리는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을 가리지 않고 수용하길 바란다. 특히 대중예술은 경주 관련 유명인사들의 지지와 도움을 받으면 좋겠다. 영화의 강우석 감독이나 만화의 이현세 화백이 그렇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은 요즘 가장 핫한 예술장르이다. 이는 한수원 문화의 거리가 출범 초기부터 대중적인 관심을 촉발할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하다. 한수원 문화의 거리는 예술가들의 실수요를 반영하길 바란다. 미술인이라면 개인 작업실, 공동 수장고가 필수이고, 음악인이라면 마음 놓고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할 터이다. 식당, 카페, 편의점 같은 편의시설도 갖추어야 입주자들이 불편하지 않을 것이다. 예술가들의 수요가 반영되지 못한 설계는 문화의 거리의 활용도를 크게 떨어뜨릴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한수원 문화의 거리는 국제성(國際性)을 갖기 바란다. 재능있는 외국 아티스트를 매력적인 레지던시(residency) 프로그램으로 끌어들여 우리 예술가들과 교류하는 기회를 많이 제공하면 좋겠다. 교류는 지역예술역량의 향상과 직결되며, 우리 예술가들이 해외로 진출하는 교두보가 되기도 한다. 마지막은 운영의 주체 문제이다. 필자는 한수원 문화의 거리가 조성된 후에도 ‘한수원’의 이름으로 ‘직영’되길 바란다. 이는 지방정부의 열악한 재정 때문만은 아니다. 문화의 거리는 한수원이 지역 예술계와 직접 호흡하며 지속적으로 배려할 수 있는, 역으로는 지역 예술인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좋은 장치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한수원 문화의 거리가 어디에 조성되든 100개의 컨테이너 박스로 만든 중심공간은 경주의 특별한 볼거리가 될 것이 분명하다. 설계와 배치, 그리고 운영방안으로 필자가 바라는 것보다 훨씬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면 좋겠다. 물론 지향점이 경주 문화예술의 체질 개선과 지역역량의 향상에 있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인간의 눈은 두 개다. 이것은 꼭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인류가 속해 있는 포유류를 넘어서 조류, 파충류, 양서류, 어류 등 모든 척추 동물의 눈은 두 개다. 어디 척추 동물뿐일까? 전갈과 같은 절지 동물, 지네 같은 다지류, 가장 많은 종이 속해 있는 곤충류, 이와는 또 다른 분류인 거미류, 낙지와 같은 연체 동물 등 지구 상에 있는 대부분, 거의 모든 동물들의 눈은 모두 두 개다. (잠자리와 같이 수많은 눈들이 있는 동물들도 있지만 잠자리 역시 수많은 눈들이 두 곳에 걸쳐 모여 있는 두 개의 눈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다.) 가끔씩 나오는 외눈박이 생명체는 실제 생명체가 아닌 외눈박이 도깨비와 같은 상상 속의 생명체이며 세 눈을 가진 생명체 역시도 실존하지는 않는다. 왜 눈은 모든 동물들에게 두 개인 것일까? 한마디로 설명하면 눈의 기능은 두 가지이다. 크기를 판단하고 또 거리를 가늠하는 기능, 크기를 판단하는 데에는 한 개의 눈으로도 가능하지만 거리를 알아보는 기능은 두 개의 눈이 필요하다. 거리를 파악한다는 것은 3차원적으로 느낄 수 있다는 뜻이다. 두 눈은 입체적으로 사물을 판단할 수 있게 되어서 보다 더 생존율을 높이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해 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또 다른 의문이 든다. 사물을 입체적으로 보기 위해 눈이 두 개가 있는 것이 한 개뿐인 것보다 더 유리하다면 왜 눈이 세 개, 네 개가 있지는 않는 것일까? 눈의 기능은 상당히 복잡하고 까다롭다. 게다가 눈은 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뇌는 이를 다시 재해석한다. 똑바로 걸어가고 있는데, 앞에 낭떠러지가 보인다면 낭떠러지를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본능적으로 다른 곳으로 피해서 움직이는 행동 자체가 이의 예이다. 그래서일까? 동물들에게 눈은 공통적으로 다른 장기들에 비해 뇌와 가장 가까운 부위에 위치하고 있다. 인간에게 있어 눈은 특히 각별하다. 외부의 정보를 입수하는 데 있어 눈의 비중은 절대적이기에 의존도 또한 엄청나다. 장님들의 생활은 어떨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서 생활해야 한다. 사람이 아니더라도, 시각장애인 도우미 견이나, 하다못해 지팡이라도 필요하다. 안전함과 편리함의 극치를 보이는 현대 사회도 이럴진대, 수렵과 채집으로만 생활했던 기나긴 원시 시대의 장님은 과연 어떻게 살았을까? 분명히 오래 살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스스로 자기 음식을 구하기는커녕 천적에 대한 제대로 된 방어도 잘 못했을 테니까. 이렇게 생존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눈이기에, 그 눈의 복잡한 기능들은 점점 더 발달했고, 이는 동전의 양면처럼 눈을 만드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투입할 수밖에 없게 되어버렸다. 경제학에서 사용되는 한계 효용의 법칙은 진화론과 생물학에서도 충분히 응용할 수 있다.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효용은 점점 더 떨어진다면, 가장 높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노력만큼만 하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우니 말이다. 눈을 두 개 만드는 데 드는 노력에 비해 눈을 세 개 만드는 것이 훨씬 더 힘든데도 눈 세 개의 효용이 그다지 높지 않다면 이는 포기하는 것이 더 나을 수밖에 없다. 지구가 만들어진 시기를 40억년 전으로 추측한다. 그 혼돈의 초기, 지구에서 최초의 생명체가, 자외선이 미치지 않는 바다 속에 모습을 드러낸 것을 약 1억년 전으로 잡고 있다. 초기 생명체들은 진화를 거치지 않았기에 현재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과는 무척이나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때에 눈이 한 개 달린 동물과 두 개 달린 동물, 세 개 달린 동물들이 공존했다면 그 중 어느 동물이 가장 유리했을까? 눈이 두 개 달린 동물들이 적자생존의 법칙에 의해 오늘날까지 살아남았고 한 개이거나 세 개인 동물들은 자연스럽게 도태되지 않았을까 상상하기도 한다. 손가락 수는 왜 다섯 개일까? 어린아이들이 부모에게 종종 물어보는 귀여운 질문이지만 사실 우리는 명확한 답을 알고 있지 않다. 다만 손가락이 네 개인 동물과 여섯 개인 동물들보다 다섯 개 가진 동물이 진화론적으로 더 우위에 속해 있기에, 경쟁에서 이기고 이들을 멸종시킨 후, 더 훗날까지 살아남은 것이 아닐까 하고 같은 맥락으로 추측할 뿐이다. 김민섭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백률사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오른쪽 바위 위에 발자국 셋이 있다. 현재 식별이 어렵지만 이 발자국은 이 절에 있던 관음보살이 도리천에 올라갔다가 돌아와서 법당에 들어갈 때에 밟았던 발자국이라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관음보살이 부례랑(夫禮郞)을 구출하여 돌아올 때에 밟았던 자취라고도 한다. 부례랑 구출과 관련하여 『삼국유사』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효소왕 때 부례랑을 국선으로 삼았는데 그 낭도의 무리가 천 명이나 되었다. 어느 늦은 봄 부례랑은 무리들을 거느리고 강원도 통천에 있는 금란(金蘭)이라는 곳에 놀러 갔다가 말갈족에게 사로잡히게 되었다. 부례랑의 무리들은 모두 어쩔 줄을 모르고 그대로 돌아왔으나 부례랑과 가장 친한 안상(安常)만이 혼자서 그들을 쫓아갔다. 그 소식을 들은 대왕은 크게 놀랐다. “선왕께서 만파식적을 얻어 나에게 전해 주셔서 지금 거문고와 함께 내고(內庫)에 간수해 두었는데, 무슨 일로 해서 국선이 갑자기 적에게 잡혀갔단 말인가.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는가?” 이때 상서로운 구름이 천존고를 덮자 왕이 두려워 떨면서 사람을 시켜 알아보게 하니, 그 안에 있던 거문고와 만파식적 두 보배가 없어졌다. “내가 어찌 복이 없어 어제는 국선을 잃고 또 이제 거문고와 만파식적까지 잃게 되었단 말인가!” 왕은 즉시 창고를 맡은 관리 등 5명을 가두었다. 이후 부례랑의 부모가 백률사 관음보살상 앞에 나가 여러 날 저녁 기도를 올렸다. 그러던 중 하루는 홀연히 향을 피우는 탁자 위에 거문고와 만파식적 두 보배가 놓여지고, 부례랑과 안상 두 사람이 불상 뒤에 와 있었다. 부례랑의 부모는 매우 기뻐하며 어찌된 일인지 물었다. “저는 적에게 잡혀간 뒤 그 나라의 대도구라(大都仇羅)의 집에서 말 치는 일을 맡아 대오라니(大烏羅尼)의 들에서 말에게 풀을 뜯기고 있는데 갑자기 모양이 단정한 스님 한 분이 손에 거문고와 피리를 들고 와서 위로하여 말하기를, ‘고향 일을 생각하느냐?’ 하기에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임금과 부모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어찌 다 말하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이에 스님이 ‘그러면 나를 따라오너라.’ 하고는 저를 데리고 바닷가로 갔는데 거기에서 안상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스님은 피리를 둘로 쪼개어 우리 두 사람에게 주면서 각기 한 짝씩을 타게 하고, 자신은 거문고를 타고 바다에 떠서 돌아오는데 잠깐 동안에 여기에 와 닿았습니다” 이 일을 자세히 왕에게 보고하자 왕은 크게 놀라 사람을 보내어 그들을 맞이하니 부례랑은 거문고와 만파식적을 가지고 대궐 안으로 들어갔다. 왕은 많은 금은보화를 백률사에 보내 관음보살의 은덕에 보답한 후, 나라 안의 죄인들에게 대사령을 내리고, 백성들에게는 3년간의 조세를 면제해 주었다. 또 부례랑을 봉하여 대각간으로 삼고, 그의 부모에게도 큰 벼슬을 내렸다. 또 안상은 대통을 삼고 창고를 맡았던 관리 다섯 사람은 모두 용서해 주었다. 며칠 후 혜성이 동쪽 하늘에 나타나더니 17일에 또 서쪽 하늘에 나타나자 일관이 아뢰었다. “이것은 거문고와 만파식적을 벼슬에 봉하지 않아서 그러한 것입니다.” 이에 만파식적의 이름을 만만파파식적(萬萬波波息笛)이라고 했더니 혜성은 이내 없어졌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경주시중증장애인자립지원센터(센터장 배예경)는 지난 5월부터 7월까지 3개월 동안 우당탕탕 스트라이크 볼링교실을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행사는 경상북도장애인체육회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 대한장애인체육회, 국민체육진흥공단이 후원하는 행사로 매주 화, 금요일 경주 황성 볼링장에서 실시된다. 총 20회로 진행되는 볼링 교실은 지역 여성 지적, 발달장애인 10여 명이 참여한다. 배예경 센터장은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 참여할 기회가 적고 이용할 수 있는 체육활동시설도 없어 장애인 생활체육 프로그램을 통해 정기적인 체육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돼 기쁘다”면서 “지역사회에서 운영하는 체육시설을 이용하면서 지역주민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도 개선할 수 있고, 장애인 스스로 체육 활동 참여로 삶의 즐거움을 얻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무보수 대표이사는 2011.6.7.부터 근로자와 사용자 범위에서 모두 제외되어 사업장가입자가 아닌 지역가입자로 가입하게 되므로, 사업장에서는 상실신고를 하고 개인적으로 지역가입자 자격취득신고를 하면 됩니다. 다만, 건강보험에 직장가입자로 가입되어 있는 경우에는 사업장가입자 자격을 그대로 유지하게 됩니다. 비상임 이사는 2010.9.1.부터 소득세법상 근로소득이 발생되는 경우, 60시간 이상을 근로하는 경우 사업장가입자로 적용대상이며, 60시간 미만 근로하거나 근로소득이 발생하지 않으면 지역가입자로 가입하게 됩니다. 따라서 무보수 대표이사는 사업장가입자 자격상실신고서(무보수 대표이사 사유 기재)를 제출하고, 비상임 이사는 근로소득이 발생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는 정관 등 서류를 자격상실신고서에 첨부하여 신고하여야 합니다. 납부예외 중 언제라도 소득(농업소득, 임업소득, 어업소득, 근로소득, 사업소득, 부동산임대소득)이 발생하면 다시 납부를 시작해야 합니다. 납부예외는 소득이 없는 기간 동안 연금보험료 납부를 면제받는 것으로, 소득이 발생하면 소득(납부재개)신고를 통해 연금보험료를 납부해야 합니다. 이 때 국민연금 적용 사업장에 취업하면 해당 사업장의 국민연금 업무담당자가 사업장가입자 취득신고를 하겠지만, 개인사업장을 운영하거나 사업장에서 국민연금이 적용되지 않을 경우에는 본인이 직접 공단에 전화나 우편 등으로 납부재개 신고를 해야 합니다. 소득이 있으나 이를 신고하지 않을 경우 향후 연금을 받으실 때 가입기간 부족으로 연금 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연금액이 줄어들 수 있고, 특히 장애 또는 유족연금의 혜택을 받지 못할 수도 있으니 가까운 공단 지사를 방문하거나 전화(국번 없이 1355), 팩스 등으로 꼭 소득 신고를 하시기 바랍니다. 제공=국민연금 경주지사
건강수명이란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활동에 지장을 주는 질병이나 부상으로 인한 병치레가 없이 건강한 상태로 살아가는 기간을 말한다. 삶의 질을 판단하는 운동 능력, 자기 관리, 일상 활동, 통증, 불안 및 우울감 등 5가지 항목을 고려해 판단하는 수치이다. 건강하게 행복한 삶을 살면서 100세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건강수명을 늘릴 필요가 있다. ▶평생의 10% 시간을 질병으로 보내는 한국인 2012년 11월 21일 보건사회연구원은 ‘우리나라 국민의 기대여명 및 건강수명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통계청의 사망률과 인구 통계자료, 한국의료패널의 건강 관련 삶의 질 조사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2009년 출생한 신생아의 기대수명(출생 시 평균 생존년수. 연령별·성별 사망률이 현재 수준으로 유지된다고 가정했을 때 0세 출생자가 향후 몇 년을 더 생존할 것인가를 통계적으로 추정한 기대치로, 이는 ‘0세에 대한 기대여명’을 뜻한다)은 80.67세이며 건강수명은 72.63세로 나타났다. 즉, 2009년 출생한 신생아들은 평생을 살면서 8.04년 동안 질병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성별로 보면 남성의 기대수명은 76.8세, 여성의 기대수명은 82.92세로 여성이 남성보다 약 6.12년 더 길었다. 하지만 건강수명은 남성 71.38세, 여성 73.37세로 남녀 차이가 1.99년에 불과했다. 즉, 여성은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의 차이가 9.55년이며 남성은 5.42년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질병에 시달리는 기간이 훨씬 길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기대수명의 10%에 달하는 시간을 병치레를 하면서 보내는 셈이 된다. ▶기대수명은 높아졌지만 만성질환도 같이 늘어 사회가 발달하고 식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기대수명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상태이다. 통계청이 2015년 12월 3일 발표한 2014년 생명표에도 그 결과가 뚜렷이 나타난다. 2014년출생한 신생아의 기대수명은 남자 79년, 여자 85.5년으로 1970년과 비교하면 남자 20.3년, 여자 19.9년이 증가했다. 국가지표체계에서 2014년 국민건강통계,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국민건강영양조사)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만 30세 이상의 고혈압 유병률은 2007년 24.6%에서 2014년 25.5%로 상승했으며, 당뇨병 유병률은 9.6%에서 10.2%로 상승했다. 고콜레스테롤혈증 유병률도 10.7%에서 14.6%로 올랐다. 인구의 노령화와 식습관의 변화, 환경오염의 증가로 만성질환 발생이 증가함에 따라 주요 만성질환 사망률도 높아지고 있다. 만성질환이 늘어나면서 이로 인한 의료비 상승과 삶의 질 저하로 안전한 노후가 위협받는 상황이 오고 있는 것이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관건 장수에는 생활 습관과 환경 등 후천적인 요인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서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만성질환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체중을 정상으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성질환의 대표적인 질환인 대사증후군은 여러 가지 신진대사와 관련된 질환이 함께 동반된다는 의미로 만들어진 용어다. 고혈압, 당뇨, 중성지방, 고콜레스테롤혈증 등이 이에 해당하는데, 가족력이 있거나 비만인 경우 등은 항상 자신의 건강 상태를 체크해 보는 것이 좋다. 또한 흡연, 음주, 달고 기름진 음식, 운동 부족, 스트레스 등은 대사증후군을 악화시킬 수 있으며 심장병, 뇌졸중 등의 심뇌혈관 질환에도 악영향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고치는 것이 좋다.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서는 하루에 30분 이상 일주일에 4회 이상 꾸준히 운동을 하고, 몸에 좋은 음식을 적정량 먹고,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고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국건강관리협회 경상북도지부 대구북부검진센터 건강증진의원장 허정욱
충효파출소(소장 전일석)와 청년회·자율방범대는 지난 22일 오후 선도동 주민들과 합동으로 야간 도보 순찰을 실시했다. <사진> 이날 충효파출소 직원, 청년회·자율방범대원, 주민, 미취학 학생과 부모 등 50여 명은 충효 전 지역에서 2시간에 걸쳐 방범순찰활동을 통해 청소년들에게는 일찍 귀가할 것 등을 지도했다. 충효파출소는 참여자에게 봉사시간도 부여했으며, 특히 방학을 맞아 참가한 청소년들에게는 소중한 체험활동의 시간을 제공했다. 전일석 파출소장은 “주민들과 함께하는 순찰활동을 통해 범죄예방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참가해 준 선도동 주민 모두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릴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굉장히 지루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까?” 실제로는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그 짧은 시간을 참지 못하고 무단횡단을 감행한다. 교통봉사답게, 횡단보도의 교통사고 발생을 줄이기 위한 마음씀씀이를 몸으로 실천하는 이들이 있다. 전직 경찰관인 이형동(67), 이성수(64)씨. 필자가 이 장면을 지켜보는 20여분 동안 보행자 100%가 횡단보도 적색신호를 준수하고 신호를 기다렸다. 물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호시탐탐 어떻게 빨리 건너갈 수 있을까 눈치를 보는 이도 있었다. 단 한 사람의 노력이 일상에서 보행자의 안전과 신호등을 지켜야할 필요성을 안겨줌과 동시에, 좀 더 안전한 도시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계림초 뒤쪽, 장미아파트 사거리에서 겨자색 조끼를 입은 이형동, 이성수 교통봉사자는 뙤약볕 아래 사거리 신호등을 따라 계속 걷고 멈추고 또 걷는 등 아무나 할 수 없는 행동을 매일 같이 취하고 있었다. 오른손에 안전기를 들고 왼쪽에 보행자가 위치하는 차량진행방향에 서서 함께 걷는 등 진정 안전의 책임을 다하고 있다. 등교와 하교를 위해 달려오는 아이, 학부형들도 서로 인사를 나누고 교통봉사자와 학생들이 두 손 가지런히 하고 나누는 인사는 참 아름다운 모습으로 새겨진다. 눈높이 봉사활동으로 학생들에게 그곳을 지나는 시민에게 인성교육의 생생한 현장이 되고 있다. 학생들이 공부를 잘하게 하고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사람공부’도 함께 가르쳐야 하는데 올바른 의식을 가진 지역사회가 사람공부를 가르치는 큰 스승이란 생각이 든다. 단순히 교통신호를 지키자고 사람들에게 외치는 기존 안전 캠페인의 패러다임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봤기 때문에 가능하다. 흔히 교통캠페인하면 전단지 나눠주고 각 신호대 앞에서 구호를 외치는 일시적인 방법을 많이 활용한다. 사람들이 무단횡단을 하는 원인은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의 지루함이다. 신호등을 통해 신호를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을 좀 더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으로 바꿔놓을 수 있는 어떤 것이 있을까 생각해 본다. 이형동 교통봉사자는 “매일 아침 등굣길 교통량이 많은 계림초 사거리에서 2인 1조로 교통안전 봉사를 실시하며 아이들이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도와주고, 시민들의 교통질서의식 수준을 향상시키는데 노력하고 있다”면서 “퇴직이후 늘 학교 앞 교통지도 봉사활동을 하다 보니 시민들의 교통질서 의식이 많이 달라지고 있어 큰 보람을 느낀다. 하지만 아직도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회전하는 운전자들이 가끔 보여 안타까울 때도 있다”고 말했다. 나날이 증가하는 교통사고의 위험으로부터 소중한 생명을 보호하는 것은 누구의 책임이라고 탓하기보다 보행자나 운전자 모두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과 행동에서 시작돼야 한다. 교통사고 없는 그 날을 위해서는 우리 모두 나부터 실천하는 교통안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보다 안전한 거리를 만들기 위한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교통사고의 위험성을 알릴 수도 있고, 준법정신에 호소할 수도 있다. 보다 많은 주의 표지판과 감시 카메라를 설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방법이 정말로 사람의 행동을 바꾸어 놓을 수 있을까? 윤태희 시민기자
선도동청년회·자율방범대(회장 김준락)는 지난 25일 주력 사업인 충효소하천 화분가꾸기 사업의 대대적인 재정비를 실시했다. <사진> 최근 가뭄과 무더위로 황폐해진 충효소하천 화분을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거미줄을 걷고, 메리골드 꽃과 흙을 준비해 100여 개의 화분을 수리·보수하고, 데크를 청소했다. 메리골드 꽃은 더위와 가뭄에 강해 여름철 관리에 용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재정비에 스스로 참여한 주민들에게 봉사활동 1시간을 부여하면서 함께 아름다운 꽃길 조성에 박차를 가했다. 최병식 선도동장은 “선도동청년회·자율방범대 회원들이 무더위 속에서도 아름다운 마을 조성을 위한 노고에 감사드리며, 주민들이 화합해 만드는 꽃길이 동네의 명물로 지속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황남동 새마을협의회(회장 오주도)·부녀회(회장 임순자)는 지난 20일 황남동, 배동, 내남면 일원에서 환경정화활동을 펼쳤다. <사진> 이날 새마을지도자 4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오릉네거리에서 배동사거리, 삼릉, 내남교도소 앞까지 인도와 도로 주변에 우거진 잡초와 풀베기 작업을 실시했다. 오릉네거리는 인터체인지를 지나 보문과 남산으로 들어가는 진입로로 경주를 찾는 관광객과 경주에 거주하는 시민들이 이곳을 많이 왕래하는 곳이다. 남산부근 유적지를 찾는 관광객들이 자전거나 도보로 이곳을 지나거나 동네 어르신들이 저녁 무렵 운동이나 산책을 할 때 잡초로 인해 여러 가지 불편사항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풀베기 작업을 한 것이다. 새마을 지도자들은 “이날 따가운 여름햇살로 온몸이 땀범벅이 됐지만 풀베기 작업을 끝내고 깨끗해진 인도를 걸어 내려오면서 뿌듯한 마음에 더위도 잊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작업에는 이동호 도의원과 김항대 시의원, 김영태 황남동장이 찾아와 노고에 격려했다.
경주상록자원봉사 김상규 단장이 지난 22일 나눔과 봉사의 문화를 확산하고, 사회공헌활동을 통한 지역사회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인사혁신처장 표창을 수상했다. 김 단장은 나라사랑 독도에 관심을 가지고 정년퇴임과 동시에 상록자원봉사단에 창립회원으로 가입해 현재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공직생활에서 못다한 사회봉사활동을 새로운 국가관과 사회봉사에 헌신하겠다는 사명감으로 참다운 봉사상을 확립하고 있다. 소외계층에 대한 다양한 사회봉사와 재능기부 프로그램에 주도적으로 참여함은 물론 개인적으로도 각 학교 학부모, 교직원, 지역아동센터, 돌봄교실, 경로당 등지에서 사랑나눔을 남몰래 실천해왔다. 또 다문화가족을 초청해 독도체험학습과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에 관심을 갖도록 하며 한국문화에 이해를 도우고 귀화한 보람을 느끼도록 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김상규 단장의 아내인 이춘자 씨도 새마을부녀회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으며 단장과 함께 독도사랑 등 봉사활동에 적극 참여하며 경주시장상을 수상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부부의 인간미 넘치는 베풂과 행복한 사랑나눔 실천이 지역사회에 귀감이 되고 있다.
경주가 낳은 한국 근대문학의 거목 소설가 김동리 선생의 ‘패랭이꽃’과 허영자 시인의 ‘완행열차’ 등 2개 시비가 최근 보문단지 호반길에 설치됐다. 힐튼호텔 뒤편에 세워진 패랭이꽃 시비와 경주월드 북서편 호반길 옆에 세워진 완행열차 시비 모두 높이 약 1.7m~2.0m의 자연석으로 만들어졌다. ‘파랑새를 쫒다가 들 끝까지 갔었네. 흙냄새 나무빛깔 모두 낯선 타관인데 패랭이꽃 무리지어 피어 있었네’ 소설가 김동리 선생의 패랭이꽃은 동리목월음악회나 다양한 문학인들의 모임에서 노래로 불려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로서도 낭송되고 있다. ‘급행열차를 놓친 것은 잘된 일이다 조그만 간이역의 늙은 역무원 바람에 흔들리는 노오란 국화 애틋이 숨어있는 쓸쓸한 아름다움 하마터면 모를 뻔했지......’ 2008년 제1회 목월문학상 수상자인 허영자 시인의 완행열차는 급박하게 돌아가는 세태를 바라보면서 한번쯤 뒤를 돌아보고 일상의 소소한 행복들이 소중하고 아름다운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이번에 설치된 두 시비는 앞으로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호반길을 거닐면서 문학의 향기를 느낄 수 있게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 두 시비 외에도 경주시 전역에 걸쳐 다양한 시비와 노래비가 설치돼 있다. 보문단지 홍도공원 내 안민가비,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공원 내 처용가비, 계림 내 찬기파랑가비와 같은 향가비, 황성공원 내 박목월 선생의 ‘얼룩송아지’ 노래비, 감포 나정해수욕장 인근의 ‘바다가 육지라면’ 노래비, 현곡 남사 저수지 인근의 ‘마지막 잎새’ 노래비까지 가히 문학의 향기를 만끽할 수 있다. 이번 기회에 시비와 노래비를 찾아 문학기행을 떠나 보자! 문학이 주는 감흥을 느껴 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와 즐거움을 안겨 주지 않을까···
경상북도관광공사(사장 김대유)는 지난 25일 일본의 대형 아웃바운드여행사 중 한 곳인 (주)한큐교통사와 일본 관광객 경북 유치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은 양측 상호협력을 바탕으로 공동마케팅을 통한 실질적 성과를 창출하기 위한 합의로 한큐교통사는 올해 9월부터 12월말까지 1200명 이상 송객을 목표로 경북 체류형 관광상품을 개발하고, 경상북도관광공사는 한큐교통사의 상품개발 및 모객강화를 위한 홍보를 지원하기로 했다. 또한 공사는 다양한 신규 관광 콘텐츠 발굴을 위해 하반기 중 한큐교통사의 각 영업지사 상품기획자를 초청 대대적인 경북 팸투어를 실시하고 개발되는 신상품에 대해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한큐교통사는 연간 해외송객수가 60만명이 넘는 일본 5대 여행사 중 하나이며 그 중 약 6만여 명을 한국으로 송객하고 있다. 김대유 사장은 “이번 협약을 통해 방한 외래관광객 제2위 시장인 일본 관광객을 경북으로 유치하기 위한 계기를 마련했다”며 “양 기관이 협력해 다양한 경북 체류형 관광상품을 개발해 지방관광 활성화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또 “침체된 일본 시장 재도약을 위해 홍보설명회, 관광박람회 등 다양한 현지 마케팅 활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경주시는 시민들에게 물의 소중함과 절약의 중요성, 생활쓰레기 줄이기 관심을 높이기 위해 탑동정수장, 자원회수시설, 친환경 하수처리장 에코물센터 투어를 매월 4째 주 목요일 실시하고 있다. 지난 25일에는 경주학교조리사회(회장 이순옥) 40여 명이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탑동정수장을 방문해 시가지에 안전하고 양질의 수돗물을 공급하는 전 과정에 대해 홍보동영상을 시청하고 정수장의 공정별 정수처리시설 등을 직접 체험·견학했다. 이어 경주시 자원회수시설에서 생활쓰레기의 처리과정을 영상으로 시청하고, 자원의 소중함과 재활용되기까지 분리배출의 필요성을 체험했다. 마지막으로 에코물센터를 방문해 환경부 녹색기술인증 취득한 하수급속처리기술 및 체계적인 수질관리로 공공수역 수질오염 예방 및 자연환경을 보호하고 있는 친환경 하수처리장 생태학습단지를 견학했다. 투어에 참가한 회원들은 “수돗물 생산에서 가정에 이르기까지와 하수물이 처리돼 강물로 흘러가기까지, 그리고 생활쓰레기 처리과정을 보며 자원을 아껴 써야겠다는 마음가짐을 다졌다. 시민이면 꼭 경험해봐야 할 견학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한편 ‘물사랑’ 견학 프로그램은 경주시 수도행정과(054-760-7802)를 통해 참가할 수 있다.
지난 7월 13일 국방부가 사드 배치지역으로 경북 성주군을 확정 발표한 가운데 이에 반발하는 성주군민들의 저항이 날이 갈수록 거세어지고 있다. 매일 저녁 8시가 되면 군청사 앞에 1500여 명의 군민들이 모여 THAAD(사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철회를 외치며 촛불 집회를 열고 있다. 지난 15일에는 황교안 국무총리와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사드 배치와 관련해 정부 입장을 전달하고 주민 설득을 위해 성주를 방문했지만 주민들의 거센 항의에 부딪혀 6시간여 동안 고립되기도 했다. 이날 황 총리 일행은 헬기를 타고 사드 배치 예정지인 성산포대를 둘러본 뒤 군청에서 개최된 주민설명회에 참석해 “미리 말씀드리지 못한 점 다시 한 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갑작스러운 발표에 얼마나 놀랐을지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이 하루가 멀다 하고 핵위협을 하고 있고 국가 안위와 국민 생명이 위험한 상황에서 국가로선 대비를 할 수 밖에 없었다”며 “사드와 유사한 레이더에서 전자파 강도를 검사한 결과 보호기준보다 훨씬 낮게 나왔다. 이 부분은 10번, 100번도 더 점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군민들은 “내 아이를 위해서라도 사드는 절대 안 된다. 군민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사드는 대체 누굴 위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울분을 토했다. 김항곤 성주군수는 “일방적인 성주 사드 배치 결정에 5만 군민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며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다. 단 한 차례의 현장방문이나 주민설명회도 없었을 뿐더러 사드 배치를 위한 환경영향평가조차 실시하지 않은 중앙 정부의 무책임하고 일방적인 통보에 참담한 심정”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주민들이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드에 포함된 ‘X밴드 레이더’가 내뿜는 전자파가 인체 및 전국 참외 생산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성주참외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공포 때문이다. 사드가 배치될 성주군 성산포대는 성주군의 최대 인구 밀집지역인 성주읍과 불과 1.5km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 야산이다. 이는 미 육군본부가 발표한 사드 레이더 반경 접근금지구역 중 ‘통제받지 않은 인원의 접근금지구역’인 3.6km 이내에 해당한다. 특히, 성주읍에는 성주군 인구의 약 40%에 해당하는 1만8천여 명이 살고 있으며, 초·중·고를 비롯해 군청, 교육지원청, 경찰서, 소방서, 아파트 등이 밀집해 있다. 지난 14일 주민 삭발식에서 손호택 선남면 성원2리 이장, 손석훈 청우회장, 윤지회 양봉협의회장, 허승락 양돈협회 지부장, 이기영(성주읍)씨 등 5명은 군민을 대표해 삭발식을 갖고 강력하게 사드 배치 반대의지를 표명했다. 손 이장은 “그동안 성산포대로 인해 많은 손실을 묵묵히 감내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정은 말도 안 된다”며 “손녀가 전자파로 인해 나를 걱정하더라. 군민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사드 배치는 결사 반대한다”고 말했다. 이재복 비상대책위원장은 “지역주민들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모든 절차를 무시한 일방적인 결정”이라며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사드 배치 철회가 될 때까지 군민들과 함께 투쟁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6일에는 ‘성주 사드 배치 철회 투쟁위원회’가 출범했다. 이재복·정영길·백철현·김안수 등 4명의 공동위원장 외 200명의 위원으로 구성됐으며 이는 초기 ‘사드 성주 배치 반대 범군민비상대책위원회’를 확대 개편한 것으로써 향후 평화적 시위와 사드 배치 철회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것을 결의했다. 지난 21일에는 성주군민 2000여명이 50여대의 대형버스에 나눠 타고 아침 일찍 성주를 출발해 서울역 광장에서 대대적인 항의집회를 가졌다. 오후 2시경부터 시작된 집회는 30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도 ‘사드배치 결사반대’ 구호를 제창하며 군민들은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쳤다. 특히, 집회에 대한 외부세력 개입 논란과 마찰을 사전 차단하기 위해 해병전우회, 성주군태권도협회 회원 200여명이 자체적으로 질서유지선을 만드는 등 질서정연하게 진행된 평화적 시위는 성주군민의 결연한 의지를 돋보이게 했으며, 전 국민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성주 사드 배치 철회투쟁위원회는 25일 법률자문단(변호사 4명)과 계약을 맺고 국방부를 상대로 사드 배치 결정 무효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진행 중에 있다. 바른지역언론연대 연합기사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유병하) 은 8월 1일부터 정기휴관일인 월요일에 특별전시관(기획전시)을 추가로 개방한다. 경주박물관은 2007년부터 휴관일인 월요일에도 옥외전시장을 개방해 박물관을 찾아온 관람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번에 새롭게 시행하는 ‘특별전시관 개관’(기획전시 기간 동안)은 휴관일에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에게 연중무휴로 전시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해 국민 문화항유 기회를 확대 제공하고자 마련됐다. 이로써 8월 이후에는 휴관일에도 관람객이 다양한 특별전을 관람할 수 있게 됐다. 아울러 관람객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역 문화상품점과 편의점도 함께 운영할 예정이다. 현재 고려시대 경주의 역사와 문화를 알 수 있는 특별전 ‘고려시대의 경주’ (7월 11일∼9월 4일)를 개최하고 있으며, 9월부터는 특별전 ‘아프가니스탄의 황금문화’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 밖에도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관람객들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선사하는 문화 공간으로 역할을 다하기 위해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박물관 작은 음악회’가 공연되며, 매월 마지막 수요일의 ‘문화가 있는 날’에는 박물관 야간개관과 함께 영화상영 및 공연, 전시해설 등이 마련돼 있다.
박주식 내남면장은 지난 26일 계속되는 폭염 속에 경로당 40개소를 방문해 어르신께 안부 인사를 드리며, 시원한 여름을 날 수 있도록 제철과일인 수박을 전달했다. <사진> 이번 순회방문은 폭염에 취약한 어르신들의 건강을 확인하고, 경로당의 각종 시설을 점검하며, 노인들의 불편을 살펴 해소하기 위해 마련됐다. 박 면장은 폭염에 대비해 13개소 무더위 쉼터를 적극 이용하도록 안내하고, 특히 한낮 무더위 시간에는 영농 등 야외활동 자제해 줄 것을 당부했다. 아울러 경로당내 에어컨 등 냉방시설을 점검하고 이용에 불편함이 없는지를 살피며 무더운 여름 건강하고 안전하게 보내길 기원했다.
문정 이말량(1908~2001) 선생은 1908년 경주 교동에서 태어나, 함흥 권번 출신의 기녀로서 일제시대와 해방공간과 한국전쟁 등을 두루 겪은 근.현대를 살다 간 예인이다. 1947년부터 1996년까지 50년 동안 경주에서 살았던 예인이었으나 지금까지도 음악학계는 물론 경주 시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2001년 타계하기까지 경주 국악계의 많은 후학을 양성하고 지역의 각계에 자신의 전 재산을 기증기부하고 근현대를 살다간 출중한 예인이었음에도 제대로 조명되지 않은 것. 이말량은 한국 음악계에서도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주로 함흥과 경주 등 지방에서 활동했으며 자신을 위한 연주회는 1984년 서라벌문화회관에서의 은퇴기념공연이 유일한 정도였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경주문화원 부원장이자 한국음악사학회 이사인 김성혜 박사가 2012년 발표한 논문 ‘이말량의 가무악 계보 연구’에서 발췌하고 김성혜 박사와의 인터뷰로 구성했다. 김 박사는 이 논문에서 이말량이 연주한 음악이 누구를 통해 계승된 음악인지, 이말량의 실력이 당대 어느 정도였는지에 대해 조명하고 이말량 음악의 계통을 밝히고자 했다. 이말량 선생의 사진 제공은 제자인 이지영 교수(현 서울대 국악과 교수)에게 제공받았다. 이말량 선생을 이하 ‘이말량’으로 표기한다. 관련한 다른 이들도 존칭을 생략했다. -이말량을 발탁한 인물은 ‘조금화’...함흥까지 동행해 조기교육 돕고 권번에 입학 시켜 1917년 이말량은 10살 때 풍물패 노는 것을 보고 3일 동안 쫓아다녔다. 그때 풍물패 중 ‘조금화’라는 이가 이말량을 눈여겨보고는 수소문 끝에 그의 집을 찾아갔다고 한다. 집안의 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말량은 ‘밤낮으로 울어’, 조금화를 따라 서울로 갔다가 다시 함흥 반룡권번으로 가서 혹독한 전통 가무악 교육을 받고 수련기를 거쳐 20~30대까지 거기서 활동한다. 조금화(1888~1921)는 이말량과 같은 고향 경주 사람으로 20년 연상의 무용에 능한 여성이었다. 조금화는 이말량이 예인이 되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한 첫 스승이었다. 조금화는 대한제국시대의 경주 예인이었던 것이다. 이를 인연으로 조금화는 이말량을 양녀로 삼았고, 그를 훌륭한 예술가로 키우기 위해 함흥으로 데려가 그곳 권번에 입학시켰다. 이렇듯 조금화는 이말량을 발탁한 인물이고 함흥까지 동행해 이말량의 보호자겸 조기교육을 도왔던 이다. 이말량의 대부분의 가무악 습득은 1917년부터 26년까지 함흥의 반룡권번에서 이뤄졌다. 가무악을 습득한 이후 20년간 함흥에서 활동하고 생활했기 때문에 이 부분을 간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말량은 함흥에서 계속 활동 하다가 1925년 18살에 정남희에게 가야금산조를 배웠고 함흥 반룡 권번을 졸업한 1926년, 19살에 변호사 한창달과 결혼(후처)했다. -40세에 고향 경주로 돌아와 1984년 은퇴기념공연 하기까지 줄곧 경주에서 활동 남편 한창달이 죽자 1947년, 당시 40세에 다시 고향 경주로 돌아와 1984년 서라벌 문화회관 은퇴기념공연을 하기까지 줄곧 경주에서 활동한다. 김성혜 박사는 “이말량은 당시 국악인들과 어울리고 1955년 당시 경주 읍장 최성규라는 이와 어울리면서 그의 후처로 다시 인연을 맺고 산다. 그러면서 동도국악원에서 같이 활동하면서 국악 활동을 계속해 나간다. 1959년, 어린 제자들을 양성하고 싶었던 이말량은 계림고전무용학원을 개원했다”고 했다. “1962년 신라문화제가 개막되었지만 예총경주지부가 없어 예총경북지부에 지원된 경비로 이 문화제를 치르게 된다. 그래서 당시 일성 조인좌 선생의 제안으로 예총경주지부가 발족돼 1964년부터 경주 사람들이 중심이 돼 신라문화제를 치른다. 이를 지속하려면 국악인들이 중심이 돼야 했고 이말량 학원의 제자들이 초반기 많이 참여했다”고 했다. 이말량은 이외에도 많은 후학들을 양성, 배출했지만 자신의 개인적인 공연 활동은 거의 하지 않는다. -이말량... 함흥에서 익힌 아악부 계통의 경제와 경주에서 익힌 경주 향제 모두 보유해 김 박사의 연구 결과, 이말량은 함흥에서 여섯명(조금화, 박경원, 정용운, 정남희, 산성준, 김계선)에게 지도를 받았고 경주에서는 한 사람에게 가르침을 받았다고 했다. 이같이 함흥에서 여섯명에게 풍류와 산조, 병창, 춤 등을 사사받은 이말량의 실력은 3년 연상의 이소향과 대등할 정도였다. 권번 시험에서 동점으로 공동 1위를 한다. 이 당시 공동 1위로는 이소향이었는데 세 살이 더 많았던 이소향에게 1위를 준다. 이소향은 집안 내력으로 어려서부터 조기 교육을 받았지만 이말량은 뒤늦게 배워 이소향과 대등했다는 것은 타고난 재능과 뼈를 깎는 수련의 결과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한편, 이말량은 양금풍류 전바탕은 아악부 출신의 박경원에게 배웠고 가야금 풍류 전바탕은 가야금의 명인 정용운에게 배웠다. 그 중 거문고 풍류와 단소 풍류를 경주에서 최창로에게 배웠는데 이것은 경주 향제일 가능성이 크다. 최창로(1880~1966)는 경주 사람으로 대금, 거문고, 피리를 잘했다. 최창로는 일제강점기부터 경주 율방에서 최윤과 함께 활동했고 1950년 후반, 동도 국악원의 사범을 했으며 1966년 작고할때까지 오직 경주에서 활동한 예인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풍류 음악에 있어 이말량은 함흥에서 익힌 아악부 계통의 경제와 경주 풍류의 사범에게 익힌 경주 향제를 모두 보유했다고 볼 수 있다. 가야금 산조는 정용운과 정남희에게 배웠는데 정용운제는 이미 1980년대에 가락을 잊었다고 하므로 이말량의 가야금 산조는 정남희제일 가능성이 크다. 이말량은 조금화가 지도한 내용을 뚜렷하게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승무, 검무, 화관무 등에 능했기 때문에 이를 포함한 춤의 기본기를 전승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로써 가야금 병창과 가야금 산조의 경우 대체로 계보가 선명하지만 풍류의 계보는 함흥에서도 배웠고 경주에서도 배웠기 때문에 선명하지 않다. 이는 앞으로 음원을 중심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한다. 춤 분야의 경우, 검무는 아악부 출신의 사범이었던 박경원에게 배웠다. 승무는 김계선과 한성준에게 배웠는데 김계선이 한성준의 제자였으므로 이말량의 승무는 한성준, 김계선, 이말량이라는 계보가 형성된다. -가야금풍류와 병창, 산조, 민요, 시조, 춤 반주 음악 등의 64개 녹음 테입 남겨 악보와 음반으로 2001년 타계하면서 이말량은 가야금풍류와 병창, 산조, 민요, 시조, 춤 반주 음악 등에 능해 64개의 녹음 테입을 제자 이지영에게 남겼고 이지영은 이를 국립부산국악원에 제공해 악보와 함께 음반을 남겼다. 이것이 바로 ‘이말량 전(傳) 영남 줄풍류’다. 김성혜 박사는 이를 ‘경주’라는 지역명을 따 ‘경주 줄풍류’라고 해야 한다며 당위성을 주장했다. 2010년 9월 국립부산국악원에서 영남공연예술자료 제1집에 낸 것이 이말량 선생의 것이었다. 음악학계에서 이말량을 처음 주목한 이는 이보형(현재 한국고음반연구회 회장)이었다. 당시 이보형은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에 재직했다. 이보형은 1984~1990년까지 네 번에 걸쳐 이말량과 면담하고 조사보고서를 냈다. 이보형은 1984년 5월 이말량의 은퇴공연 때 염불과 타령을 가야금으로 연주한 음원을 1999년 복원해 ‘향제 줄풍류’라는 제목으로 출시했다. 이보형 선생은 선생의 생존시 직접 인터뷰를 했던 이로 문화재보고서에 기록을 남긴 이인 것이다. 그도 ‘경주 풍류’라는 표현을 썼으므로 ‘경주 줄풍류’에 더욱 무게가 실린다. -이말량의 제자들...국악계에서 선생 이어 ‘맹활약’ 이말량의 제자 이지영(현 서울대 국악과 교수)은 다섯살 때 이말량의 제자로 입문해 가르침을 받고 서울로 가서 수학하다가 중고등학 방학때면 다시 경주로 내려와 선생에게 수학하기를 반복한 이다. 대표적인 수제자로서 스승 이말량의 10주기를 추모해 2011년 12월 스승에게 배운 가무악(歌舞樂, 가야금 연주와 병창, 승무)을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펼쳤다. 이 때 이지영은 가야금산조를 연주하면서 스승 이말량이 유품으로 남긴 가야금으로 연주했다. 이외에도 제자 이명실은 12살 때부터 1968년 고교 졸업까지 노래와 춤, 악기를 두루 익힌 뒤 무용전공으로 대학을 진학한 초기 제자다. 또 최은경은 이지영과 동기로서 함께 수학했으며 경북도 무형문화재 제19호 가야금 병창 이수자이며 동국대 한국 음악과 윤소희 교수도 이말량의 수제자로 국악계에서 선생을 이어 맹활약하고 있다. -“이말량 선생은 자랑스러운 경주의 대표 국악인, 경주 문화 발전 위해 자신의 전 재산 선뜻 내놓은 것 선양해야" 김 박사는 “선생은 학원을 모두 정리하고 악기들과 무용 의상 등 여러 교구들을 일차적으로 경주여고에 기증한다. 또 1986년 학원을 정리한 오천만원을 경주고등학교에 장학금으로 기부한다. 이 장학금은 지금도 경주고 장학기금으로 존속하고 있다. 그리고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선생은 동국대 불교미술학과에 오천만원의 장학금을 기부하고 동국대 총장에게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악기를 기증했다. 이렇듯, 사회 여러 분야에 걸쳐 기부와 기증을 한 사표였다”고 했다. 또 “이말량 선생은 자랑스러운 경주의 대표 국악인이다. 후학들을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선뜻 내놓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경주의 기부문화에서도 선구자였고 근대 마지막 기녀세대로서 선생의 의식있는 안목에 주목해야 한다. 가무악에 능통하고 기량이 출중했던 오늘날의 예인이었다”면서 “기증이나 기부를 하지 않은 예인들도 많았다. 선생이 경주 문화 발전을 위해 기증하고 기부한 것을 오늘날 지역민들이 선양하고 그 정신을 후학들이 본받기를 바라며 선생을 추모하는 의식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