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과 서방을 잇는 무역의 교통로를 흔히 실크로드라고 한다. 독일의 리히트호펜이 처음 사용한 이 말은 그동안 중국 시안(장안)과 지중해 연안에 이르는 길을 일컬어 왔다. 여기에 대한민국 경주가 실증적 증거물인 신라시대 유물과 유적을 내세워 어렵사리 이름을 얹은 것도 불과 5년 남짓한 노력의 결과였다. 상대적으로 문물의 숫자에서 열세였던 것이 원인이기도 하지만 중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나 도시가 그리 탐탁지 않게 여겼기 때문이다.
지난해 경상북도와 경주는 59일간 실크로드 대축전을 개최하여 사실상 역사적으로 실크로드 속의 경주를 자리매김 하고자 하였다. 그렇지만 이를 계기로 터키 이스탄불은 더욱 다가온 반면 중국 시안은 오히려 더 멀어진 양상이다. 시안에 세운 실크로드 지도석에 표기된 실크로드 동쪽 끝 경주(신라)를 지우려 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매년 45개국 2천500여 업체가 참가하여 산시성에서 열던 투자무역박람회도 금년에는 실크로드박람회로 이름을 바꾸고 시안으로 옮겨 국가급 행사로 개최하였다. 일련의 정황이 시진핑 주석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신경제발전 전략임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 둔황에서는 실크로드 국제학술대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여 학문적 주도권을 잡으려는 찰나에 와있다.
경상북도는 2013년부터 코리아실크로드 프로젝트를 야심차게 진행하여 왔다.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 탐사단을 파견하였고 각종 도서를 발간하였다. 신실크로드 구현을 위한 세계실크로드대학연맹(SUN, Silk Universities Network)을 구축하여 지난 5월 22개국 50개 대학이 참가한 제2차 SUN 총회를 한국외국어대학과 안동에서 개최한바 있다. 국내에서의 학술대회도 단편적이지만 꾸준히 이어져 왔다.
신라의 경주에서 볼 수 있는 실크로드 문물은 시가지 적석목곽분에서 출토된 지중해·로마 계통의 유리병과 유리잔, 한반도 미생존 동물 토우, 황금보검, 금은장신구, 석조각품, 석인상 등이다.
또 처용설화와 쿠쉬나메에 등장하는 바실라 이야기가 실크로드 상에 경주를 자리하게 하는 기록이다. 4세기말-6세기 초에 이르는 시기의 고분에서 출토되는 유럽계 유물은 수입품이다. 이시기의 무덤에 넣었으니 아마도 훨씬 더 이른 시기에 교류가 있었을 것이다. 그쪽 상인이 직접 들고 왔거나, 중국 상인이 중계무역으로 가지고 왔을 것이다. 아니면 신라 상인이 중국에서 사왔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코끼리, 개미핥기, 원숭이 같은 동물은 그림을 보고 만들었을까, 신라에 정착한 서역계 사람들이 직접 만들어 붙였을까. 황금 알갱이를 붙인 누금기법의 장신구와 금관의 모양은 왜 지중해와 중앙아시아의 유물이랑 닮았을까. 처용은 실존 인물일까 아닐까. 원성왕릉이나 흥덕왕릉, 방형분의 소그드계 서역인은 직접 보고 만들었을까, 아니면 당시에 그들이 능을 지키는 일을 했던 것일까. 페르시아의 대서사시 쿠쉬나메에 나오는 7세기 바실라(신라)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했을까, 와전되어 등장 인물의 이름들이 틀려진 것일까. 실로 궁금하기 그지없다.
신라 5세기를 전후한 시점의 광경은 로만글라스나 토우, 금은 장신구를 통해 상상할 수 있다. 8세기 말의 광경은 원성왕릉을 지키는 소그드인 상에서 느낄 수 있다. 9세기 초의 광경은 흥덕왕릉을 지키는 서역인 상에서 짐작할 수 있다. 9세기 말의 광경은 각간의 벼슬까지 받은 처용의 이야기에서 유추할 수 있다. 9세기-10세기 광경은 폴로를 즐기던 방형분 호인 상에서 가늠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신라 992년 역사 가운데 적어도 600년 이상이나 서역인들이 신라땅 깊숙히 자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경주는 세계유산도시기구(OWHC) 아시아·태평양 지역 사무소를 유치하는 등 역사도시로서의 위상을 세우고자 노력하였다. 적어도 거창한 일에 앞장서다 보니 정작 바닥부터 훑는 일에는 세심하지 못했다. 돌이켜 보면 처용의 활동무대였던 경주가 손을 놓은 사이 울산은 처용문화제를 개최하여 벌써 50회째에 이르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에 처용무를 등재한 것도 서울지역에서 한 일이다. 쿠쉬나메에 기록된 신라 이야기를 주제로 지난해부터 뮤지컬 바실라를 선보인 정동극장의 공연도 언제까지 이어질지 의문이다. 막을 내린 이후엔 어떻게 될까. 잊혀지는 것일까.
경주 계림로 황금보검과 같은 유물이 출토된 카자흐스탄 알마티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지금 황금특별전을 열고 있다. 말 가슴드리개로 사용된 황금 곡옥의 모양이 신라의 형태와 같은 놀라움을 넘어 세공과 누금기법에서는 기술이 훨씬 뛰어나 충격적이다. 신라의 고분과 유사한 적석목곽의 원형 또는 표형분에서 출토된 유물은 신라보다 1천년이 앞선 기원전 6세기-기원전 3세기 유물이라니 어리둥절할 뿐이다. 중앙아시아는 물론이고 터키에까지 이러한 유형의 고분이 있다고 하니 이들을 잘 연구하면 실크로드의 실체와 인류문화의 이동까지 밝힐 수 있지 않을까.
경주시는 지금부터라도 바닥부터 연구하는 토대를 마련하는 일에 앞장섰으면 한다. 크게는 실크로드 상에 있는 주요도시의 박물관이나 고고학연구소를 네트워크화 한 실크로드 거점도시 학술연합체 같은 것을 만들어 매년 해당지역을 돌아가면서 학술세미나를 개최하면 좋을 것이다. 그렇게 될 때만이 세계의 실크로드 학계 속에 경주, 신라가 확고하게 자리를 잡을 것이다. 또 실크로드의 각 분야를 연구하는 장학생을 선발하여 해당 현지에 유학을 보내는 것도 중요하다. 현지에서 출토된 유물과 역사를 발굴하지 않고서는 경주에서 확인되는 실크로드 문물의 해석에 한계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뮤지컬 바실라에 취해 있을 것인가. 페르시아인들은 쿠쉬나메에서 신라를 천국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나라로 묘사하였다. 궁전이며 도로와 골목 풍경, 정원과 도시 주변 모습을 아름답게 그려주고 있지 않는가. 그들 속으로 달려가는 경주, 연구하는 경주가 아쉬운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