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통령에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됐다. 9일 밤 개표를 시작해 개표율 95%를 넘어설 때까지도 당선자를 확정하지 못할 만큼 치열한 접전 끝에 10일 새벽 승리했다. 개표 결과 윤 당선인은 득표율 48.56%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47.83% 보다 0.73%포인트 앞섰다. 득표 차이는 24만7077표였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된 이후 최소 표 차이다. 윤석열 당선인의 대선 승리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로 위기를 맞았던 보수정당은 5년 만에 정권을 탈환하게 됐다. 또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부터 보수와 민주 진영이 10년씩 번갈아 집권했던 ‘10년 주기론’도 깨졌다. 그러나 높은 정권교체 여론과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의 단일화에도 과반 이상 득표하지 못한 점은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이 같은 국민의 선택은 분열과 갈등을 해소하고 통합의 길로 나가야 한다는 의미다. 또 민주당이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여소야대의 정치 구도 속에서 통합과 협치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윤 당선인이 약속한 대로 대통합의 원칙을 갖고 명실상부한 국민통합 정부를 출범시켜 국정운영에 안정을 기하는 것은 최우선 과제다. 이와 함께 윤 당선인의 국민과 한 약속인 공약도 반드시 살펴봐야 할 것이다. 주요 공약이 코로나19 위기 극복과 경제회복 등 민생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윤 당선인은 선거운동 기간 경주를 찾아 천년도읍, ‘신라왕경 복원·정비’ 집중 투자 및 지원, 경주 ‘역사·문화·관광 특례시’ 지정, 혁신 원자력 프로젝트 추진, 미래 자동차산업 혁신벨트 추진 등을 약속했다. 천년고도의 위상을 회복시키는 일은 바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살리고, 국격을 높이는 중차대한 사업이다. 또 원자력 산업의 혁신, 자동차산업 혁신벨트 추진은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경주와 인근 도시뿐만 아니라 국익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같은 공약이 향후 결실을 맺는 것은 이제부터는 지역 정치인들의 몫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2016년 대규모 촛불집회를 발판으로 2017년 5월 집권한 문재인 정부의 일성은 적폐청산이었다.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을 없애겠다는 것으로 역사문화계의 우선순위는 청와대 경내에 있는 석불상의 경주 반환이었다. 그로부터 5년이 흐른 지금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 불상 조사라는 요란한 변죽만 울린 채 ‘석조여래좌상’(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4호)에서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대한민국의 보물 제1977호, 2018년 4월)으로 명칭만 변경되었을 뿐이다. 이 불상이 청와대 경내에 깊숙이 갇히게 된 사연은 이렇다. 일제강점기 조선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가 1912년 11월 일본으로 가는 길에 경주를 순시하게 되고 당시 경주금융조합 이사였던 고다이라 료조[小平亮三]의 집에 들른다. 이 집 정원에는 경주 도지동의 이거사(移車寺) 터에서 옮겨온 석불상이 있었는데 총독은 이를 몹시 탐내었다. 고다이라 료조는 이를 눈치 채고 1913년 2월에 조선총독의 관저가 있던 서울 남산의 왜성대(倭城臺, 옛 안기부 자리)로 옮겨 진상하게 되었다. 이후 1939년 경무대(景武臺) 총독관저(구 청와대 자리)가 신축되어 이전하면서 이 불상도 따라 옮겨지게 된 것이다. 이 때 조선총독부 기록을 보면 박물관 기수(技手) 오가와 게이기치[小川敬吉]를 경주로 출장 보내어 불상 대좌 일부분을 찾고자 했음이 드러난다. 1939년 8월 복명서에 보면 “경주박물관에도 찾아보아도 없고 옮겨온 곳인 도지동(이거사지)에 가서도 찾지 못하였다”고 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석불상의 원래 위치에 대한 경주 남산 설, 경주 모처 설 등 논란이 분분하였고 2017년 정밀조사 때에도 불상이 있었던 원래의 위치를 모른다는 이유로 경주 반환은 성사되지 못했다. 고다이라 료조가 이 석불상을 어떻게 입수하였고, 어디에 있었던 것인지를 밝혀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8년에 모로가 히사오[諸鹿央雄]가 1916년에 발간한 ‘신라사적고(新羅寺蹟考)’가 알려지게 되면서 이 논란은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이 책에는 “과거에 완전한 석불좌상 1구가 엄존했는데, 지난 다이쇼 2년(1913) 중에 총독관저로 옮겼다. 그 외에 목 부분에 손상이 있는 석불 1구와 후광(장식)이 있는 석불입상 1구, 석탑 1기(도괴됨) 등이 절터 부근 땅속에 묻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동안 “고향 경주로 돌려보내겠다”던 대통령의 말은 슬그머니 “옮겨온 원위치가 어디인지 밝혀지면 반환하겠다”는 말로 후퇴하더니 이제는 “불교계가 반대하기 때문에....”라고 말을 흐리고 있다. 일제에 의한 문화유산 현지이탈이라는 적폐청산이 사실상 무산된 것이다. 1967년 박정희 대통령의 친불교 거론으로 이거사 터 석불상이 세간의 주목을 받은 이래, 1994년 김영삼 정부 때의 석불상 온전설, 2008년 이명박 대통령 때의 경주 반환요청,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경주반환 지시에 이르기까지 수십 년간 여러 명의 대통령이 관여를 하였으나 이거사 터의 석불상은 청와대로부터 해방되지 못했다. 2017년 8월, 서울에서 문화재제자리찾기 시민단체가 ‘청와대 불상 제자리 찾기에 대한 진정’을 시작으로 같은 달 경주 시민단체가 ‘청와대 석불좌상 경주로 모시기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KBS2 TV는 취재파일 K에서 ‘청와대 불상, 경주 가나?’를 방영하였으며, 급기야 9월에는 경주시의회가 ‘청와대 석불좌상 경주반환 촉구 결의서’를 채택하였다. 시민들은 경주문화재제자리찾기시민운동본부를 결성하여 청와대와 문화재청, 서울시에 반환을 촉구하는공식 의견을 전달하고 ‘일제강점기 불법반출된 청와대 경주 석불좌상 반환 요구 결의문’을 발표하였다. 2017년 11월 7일 경주시장실에서는 경주시장과 경주시의회 의장, 경주문화재제자리찾기시민운동본부 상임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민관합동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반환을 촉구하는 서한을 청와대(대통령)와 국회의장,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문화재청장, 행정안전부장관에게 전달하였다. 이제 제20대 대통령도 선출되었다. 청와대의 새 주인이 바뀌는 지금, 국민을 위한 대통령답게 청와대에 갇혀있는 이거사 석불상이 조속히 반환될 수 있도록 요청해야할 것이다. 대한민국 문화유산헌장의 첫 조항에는 ‘문화유산은 원래의 모습대로 보존되어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한 때 ‘미남석불’로, ‘석굴암 불상의 축소 석불’로 명성이 난 청와대 불상을 원래의 자리에 원래의 모습으로 모셔와 안치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자 의무이다. 명칭도 ‘경주 이거사지 석조여래좌상(慶州移車寺址石造如來坐像)’으로 고쳐야 한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제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대선공약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윤 당선인은 선거운동 기간 핵심공약을 비롯해 경북지역과 경주를 방문해 주요 공약을 내세우며 표심을 자극했다. 윤석열 당선인이 제시한 핵심공약과 경북·경주 공약을 정리했다. -윤석열 당선인의 핵심 공약은? 윤 당선인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10대 공약 가운데 제1공약으로 △코로나 극복 긴급구조 및 포스트 코로나 플랜을 내세웠다. 이어 △지속가능한 좋은 일자리 창출 △수요에 부응하는 주택 250만호 이상 공급 △스마트하고 공정하게 봉사하는 ‘디지털 플랫폼 정부’ 구현과 대통령실 개혁 △과학기술 추격국가에서 원천기술 선도국가로 △출산 준비부터 산후조리·양육까지 국가책임 강화 △청년이 내일을 꿈꾸고 국민이 공감하는 공정한 사회 △여성가족부 폐지 △당당한 외교, 튼튼한 안보 △실현 가능한 탄소중립과 원전 최강국 건설 △공정한 교육과 미래인재 육성, 모두가 누리는 문화복지 등 순으로 10대 공약을 제시했다. -경북지역 주요 공약은? 경북지역 공약으로는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글로벌 공항으로 조성 △통합신공항과 연계한 사통팔달 SOC 구축 △신한울 3·4호기 건설재개, SMR 특화 국가산단 조성 및 그린수소 플랫폼 구축 △경주·포항 가속기 기반 연계 첨단 연구산업단지 조성 등 신산업 적극 육성 △경북 북부지역 첨단바이오 신약개발과 세계적인 백신산업 클러스터로 탈바꿈 △미래 친환경·자율주행 모빌리티 산업 거점화, 차세대 소부장 산업 전략 육성 △경북 케어팜 G-밸리 조성 등 농산어촌 웰니스(치유) 산업화 △농식품 수출 위한 ‘경북 푸드밸리’ 조성 및 스마트농업 클러스터 등 혁신생태계 구축 △낙동강 철기로드 조성 등 낙동강 문화관광 르네상스 실현 △포항 영일만 대교 건설 및 지역 랜드마크화, 대구경북 광역경제권 형성 적극 지원 등을 약속했다. -경주지역 공약은? 경주지역 공약으로는 크게 △천년도읍, ‘신라왕경 복원·정비’ 집중 투자 및 지원 △경주 ‘역사·문화·관광 특례시’ 지정 △혁신 원자력 프로젝트 추진 △미래 자동차산업 혁신벨트 추진 등이다. 윤 당선인은 먼저 신라왕경 복원·정비 사업에 집중 투자 및 지원을 통해 경주의 미래가 걸린 왕경복원 사업이 빠르게 추진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를 위해 경주에 국립문화재복원연구소를 설치하고, 현재 문화재 복원·정비 총액사업에 묶여 있는 신라왕경 복원·정비 예산에 별도의 사업코드를 부여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경주를 역사·문화·관광 특례시로 지정해 각종 규제를 개혁하고, 국가 차원의 집중 투자와 지원이 이뤄지도록 해 신라왕경 복원사업을 조속히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경주의 양성자가속기를 기가일렉트론볼트(GeV) 급으로 업그레이드해 첨단·우주 등 다양한 분야의 소재개발에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국가 혁신원자력 연구개발 R&D 사업 적극 추진, 문무대왕과학연구소 조기 완성 등을 공약했다. 자동차 산업과 관련해서는 2025년까지 1조원을 투자, 제로에너지 장비 및 부품산업을 선도하는 경주산단으로 대개조하고, 경주 경제자유구역 지정 등을 통해 경주를 비롯한 해오름 경제권을 한국 미래자동차 뉴딜산업 현장의 혁신 플랫폼 기지로 육성할 것을 약속했다.
지난 9일 치러진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당선됐다. 윤 당선인은 10일 오전 6시 21분경 100% 개표가 완료된 가운데 48.56%, 1639만4815표를 얻어 당선을 확정지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47.83%, 1614만7738표를 획득했다. 두 후보 간 득표 차는 0.73%p, 24만7077표였다. 역대 대통령선거 사상 최소 득표 차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2.37%, 80만3358표를 얻는데 그쳤다. 개표율 51%까지는 이재명 후보가 우세한 흐름을 보였지만 자정을 넘기면서 윤석열 후보가 역전하면서 0.6~1% 내의 격차를 유지했다. 이로 인해 개표율 95%를 넘어설 때까지도 당선인을 확정하지 못하며 초접전 양상을 보였다. 보수성향이 강한 경주에서는 총 투표인수 17만3759명 가운데 윤석열 후보가 71.49%, 12만3196표, 이재명 후보 24.97%, 4만3031표, 심상정 후보는 1.96%, 3380표를 각각 획득했다. 다자구도로 치러진 지난 2017년 제19대 대선에서는 더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1342만3762표(41.08%),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785만2843표(24.03%),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669만8323표(21.41%),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220만8770표(6.76%),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201만7457표(6.17%)를 각각 득표했었다. 이번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의 당선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로 위기를 맞았던 보수정당은 5년 만에 정권을 탈환하게 됐다. 이에 따라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부터 보수와 민주 진영이 10년씩 번갈아 집권했던 ‘10년 주기론’도 깨졌다. 윤 당선인 본인으로서는 의회정치 경력이 없는 ‘장외 0선’ 출신으로 최초로 대권에 도전해 당선되는 기록을 세우게 됐다. 윤 당선인은 작년 3월 검찰총장직을 사퇴한 뒤 6월 29일 정권교체를 기치로 내걸고 정치참여를 공식화하며 대선도전을 선언했다. 결국 정치참여 선언 후 불과 8개월 만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번 대선에서는 전국 총선거인수 4419만7692명 중 3406만7853명이 투표해 투표율 77.1%를 기록했다. 지난 2017년 19대 대선 투표율 77.2%보다 0.1%p 낮았다. 경북도에서는 총선거인수 227만3028명 중 177만4097명이 투표해 78.0%의 투표율을 보였다. 경주는 총선거인수 22만573명 가운데 17만3759명이 투표해 78.8%의 투표율을 나타냈다. 지난 19대 대선 대비 경북도는 1.9%p 경주시는 2.1%p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제20대 대통령선거 전국 사전투표율이 역대 최고치인 36.93%를 기록한 가운데 경주의 사전투표율 또한 최고 기록을 세웠다. 지난 4일과 5일 이틀에 걸친 사전투표 기간에 경주에서는 총 22만573명의 선거인중 9만7716명이 투표해 44.3%를 기록했다. 이는 제19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율이 28.99%보다 15.31% 상승한 수치로 이번 대통령선거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도가 높음을 나타냈다. 또한 21대 국회의원 선거 사전투표율 31.42%, 20대 6.32%, 7회 지방선거 24.05%, 6회 11.44% 등 역대 선거 중 최고의 사전투표율을 기록했다. 지역별로는 보덕동이 98.57%의 압도적인 투표율을 보였으며, 중부동 64.11%, 황오동 56.61%의 순으로 나타났다. 반면 외동읍은 22.47%로 가장 저조했고 용강동 36.51%, 현곡면 30.42%의 투표율을 보였다. 한편, 사전투표를 하기위해 투표소를 찾은 유권자들의 민원도 있었다. 경주시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3일과 4일 유권자들 중에서 선거사무원의 장갑이 파란색으로 특정정당을 나타낸다는 이유로 민원을 제기한 것. 선관위 관계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전국 선관위에 배부한 장갑 색으로 인해 유권자의 민원이 다수 있었다”면서 “이후 장갑을 교체해 민원을 해결했다”고 밝혔다.
경주시가 지난 8일 문화체육관광부, 한국관광공사의 ‘2022년 스마트 관광도시 조성사업’에 최종 선정됐다. 스마트 관광도시 조성사업은 특정관광구역을 대상으로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한 관광 서비스를 제공하고 지역관광 콘텐츠와 기반시설을 개선하는 사업이다. 사업비는 국비 35억원을 포함해 총 70억원이 투입된다. 시는 사업 선정에 따라 황리단길과 대릉원 지구를 중심으로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한 관광 서비스를 제공하고 지역관광 콘텐츠와 기반시설 등을 개선한다. 이를 통해 역사문화 기반의 아날로그 관광도시에서 디지털 기반 스마트 관광도시로의 전환에 나서게 된다. 특히 황리단길 대릉원지구를 확장 가상세계(메타버스)로 구현하고 신라시대 유물의 증강현실 전문 안내 관광을 제공하는 등 경험형 디지털 역사·문화 콘텐츠를 중점 개발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예약과 결제를 하나로 이어주는 통합스마트관광플랫폼 ‘경주로ON’ △온-오프라인 여행자 라운지 ‘황리단’ △지능정보형 교통시스템과 연계한 교통원스톱해결서비스 ‘경주 스마트 마(馬)’ △여행 불편사항을 실시간 해결할 수 있는 ‘경주 스마트 통(通)’ △역사 관광자원을 디지털 게임으로 만들어 정보와 재미를 동시에 제공하는 ‘스마트 Scene(新)세상’ 등 스마트 관광 5대 요소를 구축한다. 또 스마트폰 앱의 원활한 연동을 위해 KT와 SK 등 통신사를 포함한 관련기업 13곳과 컨소시엄 구성 등을 추진하고 있다. 사업이 완료되면 주민사업체 누구나 쉽게 상품을 올리고 통합 관리하며, 여행자는 쉽게 관광지 정보를 얻고 편의 서비스 등을 제공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사업에 따라 경주시는 찬란한 신라천년의 정체성 회복을 위한 신라왕경 복원사업과 함께 관광산업 디지털화로 역사문화자원의 가치를 증진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 글로벌 스마트관광을 선도할 것으로 기대한다. 또 지역주민과 유관기관, 대학, 연구소 등과 협력체계를 단계적으로 확립하고, 스마트관광모델을 황리단길과 대릉원 지구를 시작으로 중심상권, 읍성권역, 불국사권 및 8개 국립공원권역과 해양권역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주낙영 시장은 “황리단길 대릉원지구 등 특화구역 스마트 관광도시 조성으로 창업과 일자리 창출 등 선순환 경제구조를 만들어 나가겠다”며 “사업 선정에 도움을 주신 김석기 국회의원과 사업 유치에 지지를 보내주신 시민 여러분께 감사하다”고 전했다.
청년문화활동가들로 인해 시민들의 보다 높은 문화적 품격과, 유대감을 가질 수 있기를…
철로 풀어낸 한의 소리 나의 작업의 기본적인 틀은 회화에서의 드로잉 기법과 맥락을 같이한다. 서예나 동양화에서 필묵의 線으로 그림을 표현하듯 철이나 stainless steel 같은 금속의 선재를 이용해 구부리고 두드려서 형상을 찾아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때, 필연적으로 덩어리 보다는 선적으로 표현하게 되며, 여기에 가끔 자연석 오브제를 가미하거나 채색을 해 시각적으로 그 효과를 극대화한다. 유년기에 보아왔던 전통 풍물의 박자와 리듬 속에서 신나게 놀던 마을 어른들의 모습은 꽤 인상적이었다. 그것은 인간의 삶속에서 희노애락이 녹아나는 우리의 가락이자 마치 신들린 자의 한의 몸짓으로 다가 왔다. 이제 이러한 농악놀이와 탈춤, 외줄타기 등 즉흥적이며 흥겨운 분위기의 소재들을 작품에 불어넣음으로써 전자의 무거웠던 느낌으로부터 벗어나 가볍고 경쾌한 분위기로 전환시킨다.
어릴 적 일기를 매일 썼었다. 집 어딘가 보관되었을 일기장,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며 이제는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너무도 뚜렷해서 일기가 없어도 절대 잊어버릴 수 없는 기억도 있지만, 다시 옛 일기를 읽어보고서야 이런 일도 있었구나하는 순간도 분명 발견될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어 너무도 아쉽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정리하여 기록해두고, 알려주지 않으면 그 온전한 이야기와 모습을 전해줄 수 없다. 도시를 연구하는 일을 하고 있어 지방출장이 잦다. 지방도시에 가면 도시역사관이나 박물관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되도록 방문하려고 한다. 도 시의 옛 자취를 담은 전시관인 도시역사관은 도시가 어디에서 출발하여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를 지도로, 모형으로, 때로는 영상과 사진을 통해 방문자들에게 알려주는 곳이다. 대부분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이어온 도시구조와 변화상, 일제강점기 도시계획과 근대건축물의 건립, 해방 이후 도시 성장 과정, 때로는 새로운 도심 건설로 인한 도시쇠퇴의 역사까지 담기도 한다. 이곳을 찾는 이유는 방문한 도시의 과거에서부터 현재를 알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도시의 미래상도 짐작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부산, 인천, 대구, 대전을 비롯한 대도시는 물론이고 군산, 익산, 정읍, 목포, 가까이는 구룡포에서도 도시역사관, 근대역사관, 근대역사박물관 등의 이름으로 도시역사관을 운영하면서 지역 도시를 연구하는 데이터베이스들을 꾸준히 구축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도시를 자랑하는 경주에 번듯한 도시역사관 하나 없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다. 경주에 도시역사관을 만들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시간을 지체할수록 소중한 유물과 기록들이 사라지거나 훼손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선사에서부터 신라시대의 유적과 기록들은 중앙과 경주의 국립박물관에서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관리하고 있다지만, 조선시대와 구한말 이후의 근대유적들의 상황은 좋지 못하다. 과거 박물관으로도 활용되었던 현재의 경주문화원에 가면 조선시대 읍성의 모형과 동경관 현판, 경주부윤의 갑옷과 무기, 고문서 등이 전시된 것을 볼 수 있다. 대부분 국보나 보물로 지정은 되지 않았지만 우리 고장에서는 가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전시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알고 있는 분들이 몇이나 될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지역의 역사를 보존하고 연구한 노력이 빛을 발하여 더 많은 시민들과 방문객들에게 우리 경주의 역사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라도 흩어지고 방치된 사료들을 모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관리하고 전시도 할 수 있는 도시역사관 건립이 필요하다. 그리고 경주의 미래를 잘 설계하기 위해서라도 도시공간의 최근 자취와 흔적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보전하는 것이 필요하다. 도시의 길과 장소는 모두 이야기를 품고 있다. 현재 서라벌문화회관 자리는 경주에 최초로 기차역사가 들어선 곳이었다. 서라벌문화회관에서 대릉원 앞을 지나 팔우정 삼거리 전에 지금의 구경주역으로 꺾어 들어가는 길은 기차가 다니던 선로였으며, 중앙시장에서 옹기전골목을 따라 난 길은 과거 경주읍성의 남측 해자가 덥힌 길이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금 대릉원 동측의 쪽샘지구는 민가로 밀집한 곳이었다. 이러한 도시의 지난 흔적들은 앞으로 도시의 성장 축과 형태를 결정하는데 큰 단서가 된다. 서울의 광화문 앞 세종로는 역사적 논쟁으로 축이 여러 번 바뀌었고, 원래 하나였던 창덕궁과 종묘를 끊어놓았던 율곡로는 최근 지하화하고 상부는 복원하여 연결시켰다. 과거를 공부하여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도시역사관은 쇠퇴한 원도심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역사관이 들어설 장소는 원도심이 최적이다. 옛 경주역사부지를 활용할 수도 있고 옛 경주시청 부지, 경주경찰서 건물 등 활용 가능한 대안은 많다. 원도심의 근대 건물들을 활용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봐야 한다. 근대건축물을 역사관 건물로 활용하는 사례가 많은데, 규모가 작다면, 스토리를 엮어서 주제별로 활용하는 방안도 있다. 경주를 방문하는 분들이 쉽게 찾고 다시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곳이면 황리단길에 집중된 활력이 사방으로 퍼져갈 것이다. 우리의 터전, 경주, 미처 쓰지 못한 일기장을 지금이라도 찾아서 정리하자. 더 늦기 전에.
제20대 대통령 선거공보물을 펼쳐보니 후보자들은 하나같이 환하게 웃고 있다. 제일 앞에 있는 후보자의 경우 성주의 참외 농가를 방문했다가 계란 세례를 받을 뻔했던 기억이 있다. 표현 방식에는 문제가 있어 보이지만 후보 입장에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검증 과정의 일부다. 흥미로운 것은 경호팀에 제압당해 경찰서로 넘겨진 그 계란을 던진 남성이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란다. 왜관에 사는 고등학생은 왜 이웃 지자체인 성주까지 가서 계란을 던지려 했을까? 성주군에 임시로 배치한 사드(THAAD) 철거에 대한 입장 변화에 학생은 화가 났다고 한다. 해당 정치인은 2017년 SNS에 “사드는 한국 안보에 도움이 안 된다. 안보와 경제 측면에서도 피해가 크다”라고 했다가, 지금은 “이미 배치된 사드를 현실적으로 수용하고 이 위에서 가능한 대안을 찾자”라고 했다. 믿었던 사람이 배신을 한 것이다. 동지가 갑자기 적이 된 것이다. 정치적 양극화(兩極化)가 작동하는 순간이다.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에서 인간을 동굴에 갇힌 죄수로 묘사했다. 죄수는 족쇄가 채워진 채 평생 똑같은 자리에서 같은 벽만 볼 운명이다. 동굴 벽에 비친 것은 그저 횃불에 일렁이는 그림자일 뿐인데, 죄수들은 그 그림자를 진리라고 믿어버린다. 이렇게 동굴의 비유는 대상화(對象化)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여준다. 흔히 우리는 존재 그 겉면만을 보고 느끼고 판단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또한 그 피상적인 이해로 진실에 가닿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상황이 이러하면 진실은 어쩌면 중요치 않을 수 있다. 우리는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또 믿고 싶은 대로 믿게 되니까. 그 결과 나와 다른 모든 이들을 대상화한다. 나와 똑같은 감정을 느끼는 똑같은 인간인데, 그를 대상화·타자화함으로써 타협과 소통의 채널을 스스로 막아버린다. 스스로 동굴에 갇혀버리는 아이러니다. 오늘날 동굴의 비유가 가장 극대화된 공간이라면 가상세계를 뽑을 것이다. 페이스북(face book)은 2018년 친구 및 가족과의 상호작용을 촉진하겠다는 취지로 알고리즘을 개편했지만 사실은 오히려 반대다. 선정적이고 증오를 부추기는 콘텐츠에 더 많이 노출되었고, 그 결과 이용자의 양극화와 적대감은 더 심화되었다. 당연히 환경 개선 건의가 있었지만 최고 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는 적극적인 대응을 외면했다. 물론 그런 그의 행동에 의도가 있었음은 나중에 밝혀졌지만 말이다. 이유는 단순하지만 가공할 만하다. 그들이 제공하는 콘텐츠에 더 오래, 더 자주 노출될 수 있도록 고객들을 잡아두기 위해서다. 지금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이 경제적 성패의 변수가 된 세상이다. 이른바 주목 경제(attention economy)다. 찰스 데버(Charles Derber)는 『주목의 추구(The Pursuit of Attention, 2000)』에서 사람들은 오직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말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의 건전한 대화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대상화는 소통과 협업을 막는다. 광고, 홍보나 PR이 전통적인 주목 산업 형태였다면, 이제는 거의 모든 산업이 주목 산업화가 되고 있다. 사실 온라인(on-line) 전체는 아니지만 일부 공간에서는 사용자의 주목을 획득하기 위한 노력이 정말이지 눈물겹다. 구독자가 13만인 어느 유명 유튜버는 자신이 몰던 경비행기를 일부러 추락시켰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조회 수’를 올리기 위해서다. 그러자 이제는 전·현직 비행조종사들이 그 유튜버의 의심스러운 행동을 낱낱이 분석하는 영상들을 또 찍는다. 주목 경제가 얼마나 치열한지 또 얼마나 비정상적인지를 말해준다. 여태 대중들의 관심으로 사는 대표적인 직업이 연예인이었다면, 이제는 ‘대중의 연예인화’라고 해야겠다.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있는 올해도 어김없이 전국 곳곳에서 선거 벽보가 훼손됐다는 신고가 있다. 내가 미는 후보를 위해 경쟁 후보의 벽보를 훼손하는 것도 주목 행위로 봐야 할지는 모르지만, 공정 선거를 방해하는 중대 범죄임에는 분명하다. 아, 그러고 보니 핸드폰 사용자의 주목을 끌려고 치열하게 경쟁 중이던 애플과 삼성이 서로 상대 제품의 장점을 은근슬쩍 베낀다는 뉴스를 봤다. 누구보다 주목받고 싶은 욕망을 살짝만 비틀어도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는데 말이다. 경쟁적(!)으로 웃고 있는 후보자 가운데 누가 가장 큰 주목을 받을지 곧 알게 될 것이다.
지금부터 25년 전 모 학교 교감으로 재직할 때였다. 같이 근무하던 후배 선생님 중 평소 단 수련을 하던 분이 있었다. 그 후배가 방학을 맞아 1주일간 황룡사에서 단전 호흡 수련을 제안하였다. 동료 직원 네 사람과 함께 황룡골 황룡사에서 합숙을 하면서 수련을 하였다. 수련 중 낮에는 골짜기 이곳저곳을 다니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하루는 절로 가는 길을 잃어버렸다. 마침 일을 하고 있던 농부를 만나 황룡사로 가는 길을 물었다. “절로 가이소” 고개를 앞으로 쭉 내밀며 절로 가라는 것이었다. 절로 가는 길을 묻는데 절로 가라니……. ‘절로’란 ‘저리로’란 의미의 경주 사투리이다. 자기가 고개를 내미는 쪽으로 가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절로 가는 길을 묻는데 절로 가라고 하니 웃음이 나왔다. 당시에는 이곳이 옛 황룡사가 있던 곳이라는 것을 몰랐다. 이후 경주에 있는 문화재를 제대로 공부를 하고 싶어 찾은 박물관대학에서 이곳을 답사하면서 옛 황룡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경감도로를 가다 덕동교를 지나 1.2Km쯤 가면 오른쪽으로 개울을 건너 몇 채의 가옥이 보인다. 시부거리이다. 약 200여 년 전 오천 정씨가 잡초가 무성한 이곳의 늪을 논으로 개간한 후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늪을 경주 사람들은 ‘시부구디’라고 하는데 ‘진흙구덩이’라는 의미로 시부거리, 시부걸, 시북걸이라고도 하였다. 그리고 한자로 이항(泥巷)이라 표기한다. 시부거리에서 600여m를 가면 자그마한 다리를 건너기 직전 황룡휴게소 간판이 보인다. 여기서 왼쪽 골짜기로 들어가면 사시목이다. 사시미기이라고도 하는데, 옛날 이곳에 사슴이 많아 사냥꾼들이 사슴 사냥의 길목이라 사시목이라 했다고도 한다. 한자로 사항(獅項)으로 표기하기도 하는데 이는 입구에 있는 표충사 앞의 산이 마치 사자머리 같다고 하여 이렇게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길옆에 지금은 폐교가 되었지만 덕동초등학교 황룡분교가 있었다. 40여 년 전 이 학교에 근무한 친구가 있었는데, 이십 수년 전 고인이 되었다. 두주불사(斗酒不辭)에 친구들을 만나면 늘 큰소리를 뻥뻥치고 후배들을 꼼짝 못하게 휘어잡곤 했다. 방송통신대학 교육학과에 편입했는데 재학기간 동안 교재 한 권 없이 거뜬히 학위를 취득하는 재주를 가진 친구였다. 지금쯤 저승 어느 곳에서 호기를 부리고 있으려나…… 절이 있다고 해서 이 골짜기가 절골이다. 남산 용장곡에도 절골이 있는데 ……. 좁은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약 3km를 더 가면 근래에 새로 지은 절이 있다. 황룡사이다. 원원사지 앞에 새로 들어선 원원사와 닮았다. 절에 들어서기까지 여기저기 국적 불명의 조각상이 어지럽다. 일주문도 천왕문도 없다. 바로 절 마당으로 들어서면 마당 한쪽에는 포대화상이 큰 배를 드러낸 채 야구공만한 귀걸이를 하고는 어린아이처럼 해죽 웃고 있다. 그는 중국 오대(五代)시대 후량(後梁)의 고승으로 작대기에 포대를 메고 다니면서 무엇이든 동냥한 것을 그 속에 담곤 하였기 때문에 포대화상이라고 하였다. 배가 나오고 대머리이며 때로는 호탕하게 웃고, 거칠면서도 사람들의 길흉 화복이나, 날씨 등을 미리 말하는데 맞지 않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우리 전통 불교와는 관련이 없는 인물인데 왜 여기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지. 그 옆으로는 민머리에 석장(錫杖)을 짚고 훤칠한 키에 미남형인 지장보살이 서있다. 또 시무외여원인의 수인을 하고 있는 입상의 석가여래상도 한켠을 차지하고 있다. 마당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 불국사의 말사인 황룡사의 간단한 내력이 기록된 안내판이 있다. “……이 절은 1986년 종연(宗然) 스님이 현 위치에 있던 민가를 구입하여 폐탑재 등의 유물을 두고 비로자나불, 석가모니불, 약사여래불의 도량으로 이루어시어 정진 수도 중이십니다” 안내판 내용대로 전각을 조성했다면 비로전, 대웅전, 약사전이 있어야 하는데 주전이 만월전이다. 만월전은 유리광전, 보광전이라고도 하는데 약사여래를 모시는 전각이다. 그렇다면 대웅전과 비로전은 어디에 있을까? 만월전, 요사채, 산신각 등을 제외하고는 다른 전각은 눈에 띄지 않는다. 빠른 걸음으로 현 사찰의 오른쪽으로 난 산길을 오르면 폐탑재과 주춧돌이 어지럽다. 신선한 기운이 몸속으로 스며든다. 속세를 벗어난 느낌이다.
옷 이우걸 1 할머니 한 분이 수의를 다리고 있다 다가올 여행을 위한 설레이는 준비라며, 노을이 마루 끝까지 조심조심 깔리고 있다 2 애육원 뜰 앞엔 두 소녀가 앉아있다 연보라 티를 똑같이 입고 있다 언니가 보라는 듯이 싱긋 손을 흔든다 -옷, 그리고 몸이 드러내는 생의 신비 이우걸의 「옷」에서 우리는 드물게 묘사로만 이루어진 시조를 만난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기억을 촉진하는 ‘수의’, ‘노을’, ‘연보라 티’에서 드러나는 색채 이미지다. 이미지가 절제, 기교없음의 기교를 만나 한 편의 아름다운 그림을 이룬다. 이우걸은 “죽은 아이의 옷을 태우는 저녁/머리칼 뜯으며 울던 어머니가 날아간다/비워서 비워서 시린/저 하늘 한 복판으로”(「기러기1」)라는 시에서 하늘과 기러기를 통해 흰색/푸른 색 이미지의 선명한 대비를 보여준 바 있다. 다시 작품으로 돌아와 보자. 1에서 우리는 수의를 곱게 다리는 할머니 한 분을 본다. 그분은 정갈한 순명의 사람이다. 하늘의 이치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다. 세간世間 속에 존재하며 건너갈 피안을 위해 자신을 준비하는 표상이라 할 만하다. 그것을 알 수 있게 만드는 구절이 오로지 중장, “다가올 여행을 위한/설레이는 준비라며,”이다. 이 구절은 1에서 유일하게 의미가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노을이 마루 끝까지 조심조심 깔리고 있다”는 구절은 노을이 깔리는 모양과 문장형식이 결을 같이한다. 죽음의 기운이 천천히 드리우고 있음을 잘 암시하는 묘사이다. 이 할머니와 대조적으로 놓인 인물이 “애육원 뜰 앞”의 “두 소녀”이다. 우리는 ‘연보라 티를 똑같이 입고 있“는 두 소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라’는 일반적으로 장엄과 풍요, 호화를 상징하는 빛깔이지만 빨강과 파랑의 중간색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미결정 상태를 암시한다. 그녀들의 삶이 화려하다고 진단하는 것은 섣부르다. 왜냐하면 애육원에 있는 소녀들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절묘하게 소녀 둘을 배치함으로써, 특히 “언니가 보라는 듯이 싱긋 손을 흔든다”를 통해 한 가정에서 버려진 자매들인 두 소녀의 운명이 어느 빛깔로 번져갈 지 아무도 모른다는 암시를 은연 중에 읽게 한다. 이런 자연스러운 결, 여백으로 이루어진 기교 없음의 기교는 이우걸 시조의 고유한 가치를 논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영역이다. 연보라로 피어나는 소녀들과, 화려함을 다 들어낸 정갈한 수의(흰옷과 삼베)를 다림질하는 할머니는 우리 생이 보라에서 무채색, 나아가 흰빛으로 이동해가고 있음을 인지시키는 기호다. 그런 점에서 ‘옷’은 우리 생의 환유이자 삶을 드러내주는 신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무문’은 중국 현대 중국무협영화의 백미이자 중국인들의 자부심과 같은 영화다. 브루스 리, 이소룡이 중국 무협의 자부심을 최초로 구현한 영화(1972)이기도 하고 현대 홍콩판 무협액션의 새 지평을 연 이연걸의 정무문(1994), 스토리를 강화한 견자단의 정무문 - 100대1의 전설(2011), 신예 진혁명의 정무문 레전드 파이터(2020)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무술영화배우들이 자신의 진가를 발휘한 영화다. 정무문은 중국과 일본 사이의 민족감정을 다루었다는 측면에서 일제 강점기를 거친 우리 국민들에게도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며 적지 않은 흥행을 기록했다. 일본의 침략 야욕을 무협으로 깨부순 통쾌함은 대리만족을 주기에 충분했다. 정무문은 각각의 내용과 줄거리는 조금씩 다르지만 큰 틀에서는 비슷한 내용이다. 즉 외국에 나가 있던 주인공이 중국으로 귀국하면서 일본인 무술가에 의해 살해된 스승의 죽음을 알게 되고 계속해서 중국인들과 중국 무술가들을 괴롭히는 일본인들을 상대로 일당백으로 쳐부순다는 내용이다. 황성동 유명 고기 맛집 만석정을 운영하는 사장님이자 딱밤으로 유명세를 치른 허동욱 사장은 자신의 인생영화로 이연걸의 정무문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허동욱 사장이 정무문을 좋아하는 이유도 바로 일본에 대한 은연 중의 반감과 원초적 애국심에서 비롯된다. 우리 국민의 한 사람으로 태생적으로 일본에 대한 혐오가 있는 것은 둘째치고라도 걸핏하면 외교적 문제를 빌미로 우리나라를 괴롭히는 일본을 영화 정무문이 시원하게 혼내주는 데서 대리만족을 느낀다는 것이다. 허동욱 사장은 비단 정무문뿐만 아니라 이연걸 주연의 영화는 황비홍이건 방세옥이건 가리지 않고 다 좋아하는 편이며 중국무협영화라면 무엇이건 가리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허동욱 사장은 어느 순간부터 중국무협영화는 물론 중국에 대해서도 일종의 거부감에 빠져버렸다고 불편해한다. 일차로 2002년부터 중국이 본격적으로 동북공정을 시작하면서 우리나라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로 편입시키려 시도하면서 중국 무협영화에 알 수 없는 거부감이 생겼다. 그러다 중국 무협영화배우로 유명한 조문탁이 중국 동방위성 TV가 방영한 예능프로그램 청춘유박격에서 ‘태권도는 중국의 춰죠우(戳脚)이란 발차기에서 비롯된 무술이다’고 주장하면서 조문탁은 물론 중국 무협영화에 대한 친밀감이 떨어져버렸다고 말한다. 더군다나 중국 무협대가라는 사람들이 중국의 격투기 전문가 ‘쉬샤오둥’에게 어이없이 참패를 거듭하면서 중국 무협에 대한 실망감이 급격히 커졌다. “제가 이연걸의 정무문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런 동북공정이나 태권도 논란, 가짜 무협대가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전, 원래 좋은 느낌이 남아 있던 시대의 무협영화이기 때문일 겁니다” 허동욱 사장은 이연걸 전성기의 호쾌한 무협 액션들을 보고 있노라면 일로 쌓였던 스트레스가 시원하게 뚫리는 기분이 든다며 어떤 영화 장르보다 마음에 든다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운다. 허동욱 사장이 무협영화를 좋아하는 데는 그 자신 비록 무협 액션은 아니나 ‘딱밤’에 관한 한 국내 최고의 고수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허동욱 사장이 시전하는 딱밤은 단순히 손가락 딱밤 정도가 아니고 호두를 깨고 수박을 뚫는 불가사의한 딱밤이다. ‘기운 주는 딱밤 달인’ ‘딱밤 격파왕’ 등으로 불리는 허동욱 씨는 강호동이 진행하던 ‘스타킹’과 김구라 등이 진행하는 ‘한국판 TV 갓 탈랜트’, ‘TV특종 세상에 이런 일이’, ‘킹왕짱’ 등에 출연하며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그의 딱밤에 맞은 연예인도 강호동과 김구라, 이수근, 노홍철, 데프콘, 쌍칼 박준규 등 별별 사람이 다 있다. 심지어 예전에는 20~30명의 고객들이 일부러 허 사장의 딱밤을 맞으러 찾아왔을 정도다. 그의 딱밤에 좋은 기운이 흘러 한 번 맞으면 기운이 살아나고 만사형통한다고 소문난 때문. 그러나 2년 반 가깝게 지속된 코로나19로 인해 고객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허동욱 사장은 무협영화 주인공들이 한번씩은 시련을 겪듯 세상에 닥친 시련에 대해 담담하게 맞서고 있다며 초연해한다, 이 기간 견디며 쌓은 내공이 조만간 큰 힘으로 발현될 것이라는 희망과 함께! 그런 뜻에서 정무문은 또 다른 위안이 되는 영화다.
‘할매’, 할머니는 우리에게 어떤 존재일까? 시골에서 대가족 중심의 생활을 해본 사람이나 어린 시절 할머니와 한집에서 살아본 사람이라면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아련하고 애틋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무뚝뚝한 아버지와 집안일 하기 바쁜 어머니가 눈길조차 제대로 주지 않을 때 가만가만 등을 쓰다듬어 주시거나 토닥거려 주시던 할매. 무엇을 좀 잘 못 했다 쳐도 무조건 감싸주시며 오냐오냐 돌봐주시던 할매에 대한 기억은 은근하고도 깊다. 늘 감싸주기만 하는 할매로 인해 ‘얼라들 버릇 나쁘게 한다’고 걱정하면서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끝내 할머니 품에서 ‘손지’를 떼놓지도 못했다. ‘마, 괘안타!’ 한 마디로 모든 분쟁과 질책에서 해방시켜주시던 할매의 부드럽고 따스하던 마음을 ‘손지’들은 모두 기억할 것이다. 유문식 씨가 지난 3월 8일 페이스 북에 ‘할매 제사’에 대한 단상을 실었다. 그 내용이 할머니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사뭇 불러일으킨다. ‘엄마는 밭에 일 나가고 젖먹이인 나는 할매 빈젓 빨며 등에 업혀 종일 산으로 들로 돌아다녔다’ 이런 정황은 50대 이상 세대들이라면 눈에 선할 법하다. 농경이 주가 되어 있던 가난하던 시절 엄마는 시도 때도 없이 집안일이며 밭일로 시간을 보냈다. 집안에 남겨진 아이들은 당연히 할매 차지가 되어 종일 할매와 함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속옷 개념이 별로 없던 시절, 할매들은 대부분 삼베에 젓을 덜렁거리며 다녔다. 할매 빈젓은 흉도 아니고 자랑도 아닌 그냥 할매 젓일 뿐이었다. 배고픈 아기들은 젓만 보면 달려들어 빨아 댔고 할매들은 아무 말없이 젓을 물린 채 얼라들을 다독거렸다. 유문식 씨의 말에 따르면 할매는 마흔 가깝게 아들을 낳으시고 60대 중반에 유문식 씨를 손주로 보셨다. 그 아들과 그 손자가 얼마나 귀하고 기쁘셨을까? 그런 할매께 유문식 씨는 자신이 ‘장개’ 갈 때까지 꼭 살아계시라고 말씀드렸지만 안타깝게도 본인이 마흔 넘겨 결혼하는 바람에 할매가 기다리지 못하신 모양이다. 아들 하나 낳은 유문식 씨가 저승에 계신 할매가 좋아하실 생각하며 ‘다행이다. 참 잘 했다’ 칭찬 떠올리는 모습이 애틋하면서도 정감 넘친다. 할매가 더 장수하셨다면 증손주까지 보셨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유문식씨가 올린 사진에는 할매 대신 제사상 위에 올려진 위패만 덩그러니 모셔져 할매를 추억하는 유문식 씨 마음을 대신해 준다. 아마도 할매가 살아계셨다면 틀림 없이 유문식씨 독백처럼 잘 했다 잘 했다 하실 것 같다. 핵가족화 되는 것도 모자라 혼자살이가 만연된 요즘 젊은 세대들이 켤코 누려볼 수 없는 소중한 할매의 추억이다.
2015년 9월 유엔 총회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회원국 만장일치로 합의·채택했다. 그리고 2020년 1월, 유엔은 SDGs(지속가능발전목표) 선포 5주년이자 유엔 창립 75주년을 맞이하여 2030년까지 SDGs를 달성하기 위한 10년의 야심찬 행동을 결의한다. ‘SDGs 달성을 위한 ’행동의 10년(Decade of Action)’은 전 세계인의 공동과제인 빈곤, 기아 종식, 성평등, 양질의 교육과 일자리, 기후위기 대응, 불평등과 빈부(재정)격차 해소에 이르기까지 지속가능한 해결책을 찾는 과정이자 사람, 지구, 번영, 평화 및 파트너십을 위한 로드맵이라고 할 수 있다. ‘행동의 10년(Decade of Action)’은 세 가지 조치를 포함한다. 그것은 첫째, SDGs를 위한 더 큰 리더십, 더 많은 자원 및 더 현명한 해법을 확보하기 위한 글로벌 조치. 둘째, 정부, 도시 당국의 정책, 예산, 기관 및 규제 프레임 워크 전환을 위한 지역 조치. 셋째, 청소년, 시민사회, 언론, 민간부문, 노동조합, 기업, 농민, 학계 및 기타 이해관계자의 의식 전환과 협동을 위한 조치를 말한다(UNSDG/Decade of Action). 또한 ‘행동의 10년(Decade of Action)’은 세 가지 지향을 표방한다. 그것은 첫째, 모든 장소의 모든 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다(Mobilize everyone, everywhere). 둘째, 긴급성·즉효성 있는 대담한 조치를 하는 것이다(Demand urgency and ambition). 셋째, 새로운 발상과 해결책을 촉진하는 것이다(Supercharge ideas to solutions). 2020년 1월, 유엔 사무총장은 유엔의 SDGs(지속가능발전목표) 선포 5주년 이자 유엔 창립 75주년을 맞이하여 ‘유엔75’ 활동을 시작했다. 목적은 75주년을 축하하는 것만이 아니라 COVID-19 시대의 글로벌 과제를 해결하고, 현재의 추세가 초래할 불평등과 격차를 해소하는 것이었다. 유엔은 75주년 기념표어를 ‘우리 미래를 함께 만들자’(Shaping our future together)로 정하고, ‘우리가 원하는 미래, 우리가 필요로 하는 유엔’(The Future We Want, The UN We Need)을 제창했다. 대화의 결과는 9월 21일, 유엔 창설 75주년 기념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유엔 창립 75주년 기념 선언’에 반영되었다. 선언은 SDGs를 전면에 내세우고 제때에 실행할 것을 약속하였다. 그리고 2015년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채택한 ‘파리협정’의 약속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량을 통제하고, 지속가능한 소비와 생산모델을 실현할 것을 각국에 촉구했다. 1945년 유엔이 창설된 이후 각국 정부는 유엔을 통해 평화·안보, 발전, 인권 등 3대 축을 중심으로 글로벌 도전을 해결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왔다. ‘유엔75’ 활동과 ‘유엔 75주년 기념 선언’은 기후 거버넌스가 사실상 유엔의 4대 축으로 설정되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특정 국가 주도의 패권주의를 넘어서려는 혁신 의지도 보여주고 있다. 여전히 세계는 불평등, 빈곤, 기아, 무력 분쟁, 테러, 불안정성, 기후변화 및 팬데믹에 시달리고 있다. 이러한 도전에 대응하려면 이제는 강대국 주도의 유엔이 아니라 다자주의의 재활성화가 필요하다. 유엔 역사상 최대 과제인 팬데믹은 죽음과 질병, 세계적 경기후퇴를 가져왔다. 이는 개발도상국 못지않게 선진국 정부의 무능력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전 세계는 협력하고 연대해야 이러한 위기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 다자주의는 단순한 선택지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세계로 더 나은 부흥을 이뤄내기 위해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평화와 안전, 개발 및 인권이라는 유엔의 세 축은 상관관계에 있다. 유엔은 SDGs가 모든 국가와 도시의 일정표로 되고 실행될 때 지구와 인류는 지속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2021년 9월 10일 안토니우 구테흐스(Antonio Guterres) 유엔사무총장은 지구의 멸망과 우리 사회의 역사적 붕괴를 피하고, 더 친환경적이고 안전하며, 더 나은 미래를 실현하는 방법을 제시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일명 ‘우리의 공동 의제’는 세계 지도자들이 ‘유엔 창립 75주년’을 맞아 제시한 열두 가지 약속을 진전시키는 조치(행동)를 제안하고 있다. 그것은 1.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2. 지구를 보호하고, 3. 평화를 증진하며 갈등을 예방하고, 4. 국제법 준수와 공정성을 확보하고, 5, 여성과 소녀들을 중심에 두고, 6. 신뢰 구축에 나서며, 7. 디지털 협력을 강화하고, 8. 유엔을 혁신하고 강화하며, 9. 지속가능한 자금조달을 보장하는 한편, 10. 지구촌 동반자 관계를 강화하고, 11. 청년에게 듣고 청년과 함께 일하며, 12. 지속가능한 세계를 준비하는 것이다. 한계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지구상에 유엔만큼 정통성 있고, 전 지구인을 통합하는 힘과 규범적 영향력을 가진 국제적 기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유엔은 전쟁의 참상으로부터 미래세대를 구하기 위해서 창설되었고, 탈 식민지화, 자유의 촉진, 지속가능발전 규범 형성, 인류의 질병 근절과 건강 보건 증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분쟁의 완화, 인도적인 지원, 교육, 인권 보호에 힘써 왔다. 현재도 100만 명 이상이 70개 이상의 유엔 평화유지 활동에 종사하고 있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유엔 헌장은 주권 평등이나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포함한 원칙을 명확히 해, 국제법의 기반을 제공한다.
-‘운명의 돌’에 대한 전설 에딘버라성을 구경할 때, 대접견실에서 소중히 보관되어 있는 직육면체로 생긴 돌을 보았어요. ‘야곱의 돌’, 또는 ‘운명의 돌’이라고도 합니다. 가로 60여cm, 세로 40여cm쯤 되는데 많은 관람객들의 시선을 끌고 있었어요. 돌 윗면에 십자가가 새겨져 있고, 쇠고리가 양쪽에 달려있습니다. 지금은 영국 왕의 대관식 때 왕이 앉는 의자 받침돌로 사용해 매우 귀한 성물로 받들고 있어요. 당초에는 스코틀랜드 왕의 대관식에 왕이 왕관을 받기 위해 무릎을 꿇을 때 쓰인 돌인데, 1296년 영국 에드워드 1세가 전리품으로 가져와, 런던의 웨스트민트사원에 보관하다 700년 뒤에 돌려준 것이라고 합니다. 돌에 대한 전설이 다음과 같이 전해옵니다. 이것은 원래 ‘벧엘’이란 지방에서 출토된 돌로 성경 창세기 편에 의하면, ‘야곱’이 삼촌 집으로 가던 중 광야에서 베고 자든 베개 돌이라고 합니다. 야곱이 어느 날 돌을 베고 잠을 자다가 꿈속에서 하늘의 문이 열리며 천사들이 춤을 추는 평화스러운 광경을 보고 놀라 깨는데, 그리고 도망 다니는 초라한 자기 신세를 크게 뉘우친 뒤, 하느님께 재산의 십분의 일을 바치면서 그를 섬길 것을 약속하는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 돌은 ‘하늘의 문’, 또는 ‘하나님의 집’으로 전해오고 있어요. 그래서 왕의 대관식에서 성물로 사용하며, 이 나라 독립의 상징이자, 최상의 긍지며 최고의 보물로 받들고 있어요. 1950년 성탄절에 이 돌은 한 번 더 수난을 당합니다. 스코트랜드 대학생에 의해 영국에서 도난당했다가 영국 정부가 다시 찾아왔고, 대관식이 있을 때는 영국에 빌려준다는 조건으로 1996년에 본국 (에딘버라성)으로 보내 지금처럼 보관한다고 합니다. -영국여왕의 휴양지(홀리루드 하우스 궁전) 에딘버라성에서 로얄마일 거리를 지나면 끝자락에 회색의 궁전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예수님이 처형된 십자가를 보관했던 ‘홀리루드 사원’의 숙소였다고 전하며, 16세기부터 스코트렌드 왕이 거주했으며, 지금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하계휴양지로 이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왕족들의 시기와 질투로 사형을 당한 메리 스튜어트 여왕(1542-1587)이 좋아했던 궁전으로 겔러리에는 메리왕의 초상화와 금장식, 옷 등의 유품이 진열되어 있어요. 궁 주변에는 옛 수도원이던 낡은 건물이 천장이 뚫린 채 그대로 남아있어, 오히려 미완성 수도원으로서 옛날을 그리워할 수 있는 좋은 관광지로 호평을 받고 있더군요. -헤리포트 최초 집필 장소, ‘엘리 펀드 하우스’에 들어가다 에딘버라는 ‘JK 롤랭’이 헤리포드 작품 대부분을 집필한 곳으로, 팬들에게는 헤리포드의 성지 같은 곳입니다. 로열 마일 거리를 걷다가 첫 번째 작품인 ‘헤리포드와 마법사의 돌’을 쓴 곳으로 알려진 아담한 카페에 왔습니다. 건물색이 빨갛게 칠해진 건물로 가장 인기를 많이 얻고 있습니다. 그녀가 종종 유모차를 끌고 나와 생각하고 글을 쓰던 카페인데, 정문에는 ‘the elephant house‘라는 이름이 큼직하게 쓰여 있고, 내부에 들어가면 작가와 관련된 신문기사, 서명, 사진 등이 빼곡히 붙여져 있습니다. 특히 화장실에는 그녀를 찬양하는 낙서가 여러 나라의 언어로 팬들에 의해 촘촘히 적혀있어요. 주변에는 그녀가 앉았던 카페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셔보려는 사람들로 왁자지껄합니다.
토종개는 한국풍토에 맞게 생존한 지역적응 생명체이며, 민족의 생명공학적인 특성을 대변할 수 있는 고유 생명자원이다. 토종개는 유전적 질병 등의 치유에 필요한 의료학적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21세기의 유전형질 자원이다. 오늘날까지 함께한 토종개인 진도개, 삽살개, 경주개 동경이, 풍산개는 생명공학의 소중한 연구자원이 될 것이다. 인류의 역사문화는 뒷받침할 수 있는 유적과 기록 등이 많이 남아있지만, 동물에 관한 역사적 기록은 학문적인 관심과 연구 부족으로 거의 없는 상태이며, 특히 우리나라 토종개에 관한 기록과 유물에 대한 연구는 거의 전무한 상태이다.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개는 인류에 의해 길들여진 최초의 동물이며, 인류와 함께 이동한 동물이다. 한반도의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탄생한 현생 인류가 유럽과 아시아로 이동하였고, 약 5만~6만년 전에 인도 북부에 도착한 것으로 학술적으로 정리되어 있으며, 험준한 티베트고원을 피해 동남아시아로 이동하여 인도차이나반도 등에 정착한 인류가 아시아인이며, 이들의 일부가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등 남태평양의 섬으로 이동하였고, 다른 집단은 인도 북부, 인도차이나반도,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정착하였고, 한반도에 도착한 우리 조상과 함께 이동한 개가 우리나라 토종개의 원류이다. 또한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이주한 야요이인(彌生人)과 함께 일본으로 이동한 개가 일본의 토종개로 추정한다. 한반도 토종개의 기원은 개의 유골, 고문서, 고분 벽화와 조선시대 회화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개의 유골은 BC 5000년경이며, 연평도 까치산 패총에서 발굴된 것이다. 최초의 개에 관한 문헌은 BC 450년경『후한서』동이열전 부여국((後漢書 東夷列傳 夫餘國)과『삼국지』위서 동이전 부여조(三國志 魏書 東夷傳 夫餘條)에 있는 가축을 사육하고 관리하는 부서의 관직 명칭인 구가(狗加), 마가(馬加), 우가(牛加), 저가(猪加) 중에서 개를 관리하는 관직인 구가(狗加)란 기록이다. 개의 외형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고구려 고분인 덕흥리 고분(408호), 무용총, 각저총, 장천 1호, 오국리 안악 동수묘(3호분), 송죽리 등의 개가 그려진 벽화이다. 최초의 서화는 조선시대 이암(李巖, 1499-1565)의 모견도(母犬圖)이다. 우리나라는 자연환경이 농경에 적합하여 오랫동안 농사를 위주로 하는 농경생활을 해왔다. 자급자족이 가능했기 때문에 타민족을 공격하거나 침략하여 농지를 확보한다거나 가축을 사육하여 모자라는 식량자원으로 활용하지 않아도 생활에 큰 문제가 없었던 민족이었다. 그래서 야생동물을 가축화하는 노력도 많지 않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개는 자연스럽게 우리 조상들과 함께했던 동물이다. 고구려와 신라는 개를 사냥개로 사용하였고, 문헌에 나타난 개는 대부분 길흉사에 관한 경고나 불길함을 예시하는 영리한 동물로 기록하고 있다. 토종개는 가장 오랜 기간 동안 민족과 함께한 최초의 동물이며, 같은 자연환경에서 먹거리를 공유했으며, 민족의 품성에 적합하고, 온순하고 말을 잘 듣는 개체가 선택적으로 번식되어 오늘날의 반려견(狗, 犬)이 되었다. 토종개는 한국풍토에 맞게 생존한 지역적응 생명체이며, 민족의 생명공학적인 특성을 대변할 수 있는 고유 생명자원이다. 토종개는 유전적 질병 등의 치유에 필요한 의료학적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21세기의 유전형질 자원이다. 오늘날까지 함께한 토종개인 진도개, 삽살개, 경주개 동경이, 풍산개는 생명공학의 소중한 연구자원이 될 것이다. 경주개 동경이 혈통보존연구원장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 사업 중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월정교. 월정교는 교각 복원에 이어 남·북측 문루 공사를 마무리하고 지난 2017년 10월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2008년 4월 28일 기공식 열린 후 9년여 만이다. 하지만 이는 복원 공사에만 걸린 시간일 뿐이다. 지난 1984년부터 발굴을 시작한 시점을 감안하면 무려 33여년이나 걸렸다. 과거 찬란했던 신라의 문화유산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발굴과 고증을 거쳐야만 한다는 사실을 월정교 복원사업을 통해 학습 아닌 학습을 하게 됐다. 향후 월성 복원, 황룡사 구층목탑 복원 등 굵직굵직한 사업들이 추진 중이지만, 복원 완료 시기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게 현재 상황이다. 이는 월정교의 교훈처럼 복원·정비 사업 추진과 함께 발굴과정 공개, 복원 과정의 스토리텔링 등 유산의 가치를 알리는 다양한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월정교가 오랜 시간 발굴과 고증, 전문가 자문 등을 거쳐 복원되기까지, 본지에서 보도한 그간의 세월에 묻힌 이야기를 정리했다. -월정교 복원 본격화되기까지는··· 월정교 복원사업이 본격화되기 훨씬 이전 본지는 1990년 6월 29일자 발행신문을 통해 ‘월정교 설계 변경 요청’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1989년 본지 창간 이후 월정교와 관련된 기사는 그 때가 처음이었다. 기사는 ‘한국 최고 최대의 석교로 알려진 월정교 복원사업이 활발히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원형복구를 위해 일부 설계변경 승인을 문화재관리국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는 내용이었다. 이어진 기사를 정리해보면 이렇다. ‘지난 1984년부터 2년여에 걸쳐 월성 사적지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교량의 원형을 규명하고 복원하기 위한 실측설계 사업을 벌였다. 이후 1989년 11월 남북측 교대 복원사업에 들어갔다. 발굴보고서를 토대로 남·북 양쪽 교대를 정비했는데 남측 교대는 복원을 완료했지만, 북측 교대는 지반이 원형과는 달리 석축 자체가 땅 밑으로 묻히도록 설계돼있었던 것.’ 이에 따라 원형에 맞추기 위해 지반 밑을 콘크리트로 다지고 그 위에 교대 지반을 얹어 표면에서 60~70cm 가량 돌출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이 같은 설계변경을 요청한 것이었다. 당시 시 관계자는 지금까지의 월정교 복원사업은 발굴보고서에 의해 정비 차원에서 공사를 진행해 왔으나 이번 지반 높이 변경 승인 요청을 계기로 복원 차원에서 공사를 추진해나가기로 했다고 한다. 또 문화재 관리국(문화재청)은 ‘3억5700만원의 예산으로 남·북측 교대를 복원한 후 2~3년 내로 고증을 거쳐 교량을 복원시키기로 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 기사 내용으로만 보면 당시 교량 하부의 교대를 복원하고, 월정교 복원까지 구체적인 계획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경주시 등에 따르면 실제 교대와 교각 실측조사 후 1983년 월정교 복원 실시설계에 들어갔지만, 복원 자료가 불충분하다고 결론지었다. 그래서인지 본지 역시 그 이후부터는 월정교 복원과 관련한 보도는 없었다. 시간이 14년여 지난 2004년에서야 월정교 복원 관련 기사가 본지에 언급된다. 본지 678호에는 2004년 12월 6일 열린 제98회 경주시의회 제2차 정례회 관련 기사를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고 백상승 전 시장은 당시 시정연설을 통해 월정교 등의 복원을 통한 새로운 관광명소 조성계획을 밝히면서 월정교 복원 의지를 표명했다. 앞서 11월엔 일정교지·월정교지가 사적 제457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05년 7월 마침내 경주역사문화도시 조성사업이 국책사업으로 확정됨에 따라 월정교 복원사업이 탄력을 받게 된다. 이는 2003년 8월 경주세계문화엑스포 행사 당시 고 백상승 시장이 역사도시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건의한데서 비롯됐다고 본지는 전했다. 답보 상태였던 월정교 복원 추진은 그동안의 발굴조사를 토대로 2005년부터 기본계획 및 타당성 조사를 시작했고, 철저한 고증과 자문회의 등을 거쳐 2007년 복원 세부계획까지 마련한다. 이어 2008년 4월 28일엔 월정교 복원을 위한 기공식을 현장에서 개최했다. 기공식 현장과 고 백상승 시장의 감회를 담은 인터뷰 기사는 본지 제843호에 보도되기도 했다. 당시 백 시장은 월정교 복원의 의미에 대해 “경주역사문화도시 조성이라는 새로운 시대적 요구와 사명감에 따라 복원작업을 해가는 시작이다”고 감회를 밝혔었다. -월정교 복원 경주 관광산업에 한 획 그어 그러나 많은 시민들의 기대와는 달리 월정교 복원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당초 2012년 완공 예정이었던 월정교는 계획보다 5년이나 지연돼 2017년 말 준공된 것. 2008년 공사를 시작해 2013년 4월 교각 공사는 완료됐다. 하지만 남·북측의 문루공사가 문제가 됐다. 고증이 지연되면서 2015년으로 한 차례 완공 시기가 연기됐다. 또 월정교 남쪽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와 국비 지원 부족, 주차장 부지 변경 등으로 다시 2017년 말로 지연됐다. 반복되는 사업 지연으로 월정교 복원을 기다리던 시민들의 불만이 커지기도 했다. 이 같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마침내 지난 2017년 9월 복원된 월정교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월정교는 그해 말 완공 예정이었으나, 10월 31일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처음으로 개최되는 ‘제14차 세계유산도시기구(OWHC) 세계총회’ 개막식 장소로 사용하기 위해 일정을 앞당겼다. 당시 열린 OWHC 세계총회는 전 세계 120여 세계유산도시 관계자와 전문가 1500여명이 참여한 행사로, 월정교는 복원과 동시에 전 세계를 대상으로 이름을 알린 셈이 됐다. 월정교 복원이 완료됨과 동시에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기 시작했고, 인접한 교촌한옥마을까지 주말마다 사람들의 발길로 북적였다. 특히 야경은 동궁과월지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풍경을 연출,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효과를 누리면서 경주 곳곳의 야간경관사업을 본격화하는 밑거름이 됐다. 이는 문화유산 복원이 경주관광산업에 어떤 영향을 가져오는지 실감할 수 있는 첫 사례였다. -향후 국비 확보위한 안전장치 마련 고려할 때 월성과 동궁과월지 등 동부사적지 내 주요 유적에 대한 발굴·정비가 본격화된 것은 지난 2005년 경주역사문화도시 조성사업이 국책사업으로 선정되면서부터다. 이후 이 사업의 연속으로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 사업이라는 명칭이 본격 거론된 것은 지난 2013년 10월 21일 문화재청, 경북도, 경주시가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다. 역사문화도시 조성사업이 2006년부터 2035년까지 30년간 35개 사업으로 추진했지만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부족, 사업 장기간 소요 등으로 사실상 추진이 미흡했다.이에 따라 경북도와 경주시는 신라왕궁과 황룡사 복원사업을 지난 대선 공약사업으로 건의했으며, 당시 박근혜 정부의 문화융성 기조에 맞춰 대선 공약으로 확정되면서 이뤄진 협약이었다. 월성 복원·정비 등 신라왕경 8개 핵심유적에 대해 2025년까지 총 9450억원을 투자해 경주의 정체성을 회복과 대표 고도로서의 위상을 정립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사업은 여전히 지지부진하고 국비 지원에 대한 보장도 없었다. 이 같은 상황에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에 관한 특별법(신라왕경특별법)이 지난 2019년 12월 10일 제정됐다. 신라왕경특별법은 김석기 국회의원을 비롯한 여·야 국회의원 181명이 2017년 5월 공동 발의했다. 특별법은 신라왕경 핵심유적의 범위를 정하고, 종합계획과 연도별 시행계획 수립 시 필요한 사항, 추진단의 업무·구성 및 운영에 관한 내용을 구체화했다. 지난 2013년 문화재청, 경북도, 경주시 간 업무협약을 토대로 추진해 온 신라왕경 사업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특별법에 특별회계 조항이 제외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반면 특별회계 조항이 없어도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가 완료될 때까지 정부가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조항을 명시해 국비 확보에는 무리가 없다는 입장이다. 특별법 개정과 관련해서는 정치권이 풀어야 할 과제다. 보다 안전한 장치를 마련할 필요도 있다는 의견도 있는 만큼 특별법 개정 추진도 고려해야 할 시점으로 보인다. 비록 월정교가 복원됐다 하더라도 아직 경주에는 월성과 황룡사 구층목탑 등 지지부진한 대형 복원 사업이 풀릴 듯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경북도민들이 지난해 1372 소비자상담센터에 신고, 접수한 문의 내용 중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유사투자자문’ 신고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나 주의가 요구된다. 경북도와 한국소비자원이 지난해 소비자상담센터에 접수된 경북도민의 소비자 상담 현황 분석 결과 이처럼 나타났다. 1372 소비자상담센터는 10개 민간 소비자단체, 16개 광역 지방자치단체로 한국소비자원이 참여하는 전국 단위 통합 상담처리시스템이다. 경북지역 소비자상담 건수는 총 1만9452건으로 전년 2만2253건 대비 12.6% 감소했다. 기초자치단체 확인이 가능한 1만4571건 중 포항 3422건(23.5%), 구미 2834건(19.4%), 경산 1814건(12.4%), 경주 1494건(10.3%) 순으로 인구가 많은 도시의 상담접수가 대다수였다. 군위(27.1%), 칠곡(2.9%)은 전년 대비 상담접수가 증가한 반면, 다른 지역은 전반적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도민이 상담을 신청한 상위 5개 품목은 유사투자자문이 1390건으로 가장 많았고, 신유형상품권 683건, 의류·섬유 628건, 이동전화서비스 598건, 휴대폰·스마트폰 303건의 순이었다. 또 전년 대비 증가율이 높은 상위 5개 품목은 신유형상품권이 683건으로 1353.2% 증가해 가장 높았다. 이어 기타자동차용품(75.7%), 콘도회원권(32.3%), 보석·귀금속(30.5%), 가스보일러(24.6%) 순으로 증가했다. 특히 신유형상품권의 경우 전국적으로도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으며 상품권 포인트 사용처 제한 등 계약불이행에 따른 환급 관련 상담이 급증해 발생한 것으로 판단된다. 연령 확인이 가능한 1만8786건 중에 40대가 5016건으로 가장 많이 상담을 받았고, 다음으로 50대(4492건), 30대(4314건), 60대(2694건) 순이었다. 40대 이상 소비자는 다른 품목과 비교해 유사투자자문 관련 상담을 가장 많이 받은 것으로 확인돼 고수익을 가장한 허위·과장 광고에 현혹되지 않도록 소비자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판매 방법별로는 일반판매가 8429건으로 가장 많았으나, 전화권유 판매의 경우 전년(961건) 대비 1609건으로 67.4% 증가해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이는 상담 건수가 가장 많은 유사투자자문 품목에서 전화권유 판매가 78.9%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기 때문으로 확인됐다.
경북도는 올해 567억원의 예산으로 6개 분야 22개 자활사업을 추진해 9300여명의 근로 취약계층에 대한 자립촉진에 나선다. 사업 분야는 맞춤형 행복일자리 제공, 자산형성지원, 지역 특화형 사업개발, 착한생산품 판매 활성화, 전문기업 연계사업 확대, 자활지원 체계 역량강화 등이다. 도는 경북광역자활센터를 중심으로 20개 지역자활센터, 지역 3개 대학과 자활지원 협력체계를 구축해 기초생활수급자 및 차상위 계층을 대상으로 일자리 제공과 취·창업을 지원한다. 맞춤형 행복일자리 제공사업은 저소득층이 취·창업을 통해 자립할 수 있는 기초능력 배양을 목적으로 추진한다. 근로유지형, 사회서비스형, 인턴·도우미형, 시장진입형으로 구분해 참여자의 자활능력과 사업유형에 따라 맞춤형으로 제공된다. 3357명에 대해 421억6800만원이 지원된다. 자산형성지원사업은 일하는 수급자 및 차상위자의 자활에 필요한 자산형성을 지원한다. 희망저축계좌(기초), 희망저축계좌(차상위), 청년내일저축계좌(차상위이하), 청년내일저축계좌(차상위초과) 등 9개 사업 7845명에 67억900만원이 지원된다. 특히 올해 7월부터 시행되는 청년내일저축계좌 사업은 중위소득 100% 이하 청년층(19~34세 이하)을 대상으로 본인 저축금 10만원에 정부의 근로소득장려금 10만원을 추가 지원하며, 지원대상이 대폭 확대됐다. 지역특화형 사업개발은 청년 자활근로사업단의 경쟁력확보를 위해 프랜차이즈사업인 큐브릭 커피(QBRIC COFFEE) 6개소와 외식업체 아시안푸드 청림 2개소를 운영을 시작한다. 앞으로 경북 전 지역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또 쓰레기로 매립하는 커피박(커피찌꺼기)을 재자원화해 축사 악취저감 등 환경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경북형 커피박 재자원화 상생협력 사업을 확대 추진한다. 이는 커피박과 유용미생물(EM)을 섞어 축·돈사의 바닥재로 보급·활용하는 사업으로 지난해 영천자활센터의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올해 4개소로 확대할 방침이다. 착한생산품 판매활성화 사업은 지역 자활생산품에 대한 판로확대를 위해 한국라이스텍과 코레일 유통 대구경북본부 등과 업무협약을 맺고 홈플러스(인천 간석점)와 도내 코레일 역사에 전문매장 입점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전문기업 연계 사업 확대는 고령지역자활센터와 프랜차이즈 전문기업 MIB KOREA와 협업해 식품제조 시설을 설치, OEM방식으로 소스를 생산·납품하고, 식재료는 인근의 지역자활센터로부터 공급받음으로써 판매처가 확보된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한다. 지역 특화형 사업개발, 착한생산품 판매 활성화, 전문기업 연계사업 확대는 경상북도 사회복지기금(자활계정) 3억6000만원을 투입하게 된다. 자활지원 체계 역량강화는 전달체계인 광역자활센터 1개소와 지역자활센터 20개소 운영에 총 74억6200만원을 지원함으로써 실효성 있는 자활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또 종사자들과 자활사업 참여자들의 자활역량 강화를 위해 카톨릭상지대학교 링크플러스사업단, 경북대 인문학술원, 경일대 미래융합대학 등 지역 대학들과 협력해 자활핵심 인재를 양성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