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25년 전 모 학교 교감으로 재직할 때였다. 같이 근무하던 후배 선생님 중 평소 단 수련을 하던 분이 있었다. 그 후배가 방학을 맞아 1주일간 황룡사에서 단전 호흡 수련을 제안하였다. 동료 직원 네 사람과 함께 황룡골 황룡사에서 합숙을 하면서 수련을 하였다. 수련 중 낮에는 골짜기 이곳저곳을 다니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하루는 절로 가는 길을 잃어버렸다. 마침 일을 하고 있던 농부를 만나 황룡사로 가는 길을 물었다. “절로 가이소” 고개를 앞으로 쭉 내밀며 절로 가라는 것이었다. 절로 가는 길을 묻는데 절로 가라니……. ‘절로’란 ‘저리로’란 의미의 경주 사투리이다. 자기가 고개를 내미는 쪽으로 가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절로 가는 길을 묻는데 절로 가라고 하니 웃음이 나왔다.
당시에는 이곳이 옛 황룡사가 있던 곳이라는 것을 몰랐다. 이후 경주에 있는 문화재를 제대로 공부를 하고 싶어 찾은 박물관대학에서 이곳을 답사하면서 옛 황룡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경감도로를 가다 덕동교를 지나 1.2Km쯤 가면 오른쪽으로 개울을 건너 몇 채의 가옥이 보인다. 시부거리이다. 약 200여 년 전 오천 정씨가 잡초가 무성한 이곳의 늪을 논으로 개간한 후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늪을 경주 사람들은 ‘시부구디’라고 하는데 ‘진흙구덩이’라는 의미로 시부거리, 시부걸, 시북걸이라고도 하였다. 그리고 한자로 이항(泥巷)이라 표기한다.
시부거리에서 600여m를 가면 자그마한 다리를 건너기 직전 황룡휴게소 간판이 보인다. 여기서 왼쪽 골짜기로 들어가면 사시목이다. 사시미기이라고도 하는데, 옛날 이곳에 사슴이 많아 사냥꾼들이 사슴 사냥의 길목이라 사시목이라 했다고도 한다. 한자로 사항(獅項)으로 표기하기도 하는데 이는 입구에 있는 표충사 앞의 산이 마치 사자머리 같다고 하여 이렇게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길옆에 지금은 폐교가 되었지만 덕동초등학교 황룡분교가 있었다. 40여 년 전 이 학교에 근무한 친구가 있었는데, 이십 수년 전 고인이 되었다. 두주불사(斗酒不辭)에 친구들을 만나면 늘 큰소리를 뻥뻥치고 후배들을 꼼짝 못하게 휘어잡곤 했다. 방송통신대학 교육학과에 편입했는데 재학기간 동안 교재 한 권 없이 거뜬히 학위를 취득하는 재주를 가진 친구였다. 지금쯤 저승 어느 곳에서 호기를 부리고 있으려나…… 절이 있다고 해서 이 골짜기가 절골이다. 남산 용장곡에도 절골이 있는데 ……. 좁은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약 3km를 더 가면 근래에 새로 지은 절이 있다. 황룡사이다. 원원사지 앞에 새로 들어선 원원사와 닮았다.
절에 들어서기까지 여기저기 국적 불명의 조각상이 어지럽다. 일주문도 천왕문도 없다. 바로 절 마당으로 들어서면 마당 한쪽에는 포대화상이 큰 배를 드러낸 채 야구공만한 귀걸이를 하고는 어린아이처럼 해죽 웃고 있다. 그는 중국 오대(五代)시대 후량(後梁)의 고승으로 작대기에 포대를 메고 다니면서 무엇이든 동냥한 것을 그 속에 담곤 하였기 때문에 포대화상이라고 하였다. 배가 나오고 대머리이며 때로는 호탕하게 웃고, 거칠면서도 사람들의 길흉 화복이나, 날씨 등을 미리 말하는데 맞지 않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우리 전통 불교와는 관련이 없는 인물인데 왜 여기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지.
그 옆으로는 민머리에 석장(錫杖)을 짚고 훤칠한 키에 미남형인 지장보살이 서있다. 또 시무외여원인의 수인을 하고 있는 입상의 석가여래상도 한켠을 차지하고 있다. 마당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 불국사의 말사인 황룡사의 간단한 내력이 기록된 안내판이 있다.
“……이 절은 1986년 종연(宗然) 스님이 현 위치에 있던 민가를 구입하여 폐탑재 등의 유물을 두고 비로자나불, 석가모니불, 약사여래불의 도량으로 이루어시어 정진 수도 중이십니다”
안내판 내용대로 전각을 조성했다면 비로전, 대웅전, 약사전이 있어야 하는데 주전이 만월전이다. 만월전은 유리광전, 보광전이라고도 하는데 약사여래를 모시는 전각이다. 그렇다면 대웅전과 비로전은 어디에 있을까? 만월전, 요사채, 산신각 등을 제외하고는 다른 전각은 눈에 띄지 않는다. 빠른 걸음으로 현 사찰의 오른쪽으로 난 산길을 오르면 폐탑재과 주춧돌이 어지럽다. 신선한 기운이 몸속으로 스며든다. 속세를 벗어난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