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 할머니는 우리에게 어떤 존재일까? 시골에서 대가족 중심의 생활을 해본 사람이나 어린 시절 할머니와 한집에서 살아본 사람이라면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아련하고 애틋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무뚝뚝한 아버지와 집안일 하기 바쁜 어머니가 눈길조차 제대로 주지 않을 때 가만가만 등을 쓰다듬어 주시거나 토닥거려 주시던 할매. 무엇을 좀 잘 못 했다 쳐도 무조건 감싸주시며 오냐오냐 돌봐주시던 할매에 대한 기억은 은근하고도 깊다.
늘 감싸주기만 하는 할매로 인해 ‘얼라들 버릇 나쁘게 한다’고 걱정하면서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끝내 할머니 품에서 ‘손지’를 떼놓지도 못했다. ‘마, 괘안타!’ 한 마디로 모든 분쟁과 질책에서 해방시켜주시던 할매의 부드럽고 따스하던 마음을 ‘손지’들은 모두 기억할 것이다.
유문식 씨가 지난 3월 8일 페이스 북에 ‘할매 제사’에 대한 단상을 실었다. 그 내용이 할머니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사뭇 불러일으킨다.
‘엄마는 밭에 일 나가고 젖먹이인 나는 할매 빈젓 빨며 등에 업혀 종일 산으로 들로 돌아다녔다’
이런 정황은 50대 이상 세대들이라면 눈에 선할 법하다. 농경이 주가 되어 있던 가난하던 시절 엄마는 시도 때도 없이 집안일이며 밭일로 시간을 보냈다. 집안에 남겨진 아이들은 당연히 할매 차지가 되어 종일 할매와 함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속옷 개념이 별로 없던 시절, 할매들은 대부분 삼베에 젓을 덜렁거리며 다녔다. 할매 빈젖은 흉도 아니고 자랑도 아닌 그냥 할매 젓일 뿐이었다. 배고픈 아기들은 젓만 보면 달려들어 빨아 댔고 할매들은 아무 말없이 젖을 물린 채 얼라들을 다독거렸다.
유문식 씨의 말에 따르면 할매는 마흔 가깝게 아들을 낳으시고 60대 중반에 유문식 씨를 손주로 보셨다. 그 아들과 그 손자가 얼마나 귀하고 기쁘셨을까? 그런 할매께 유문식 씨는 자신이 ‘장개’ 갈 때까지 꼭 살아계시라고 말씀드렸지만 안타깝게도 본인이 마흔 넘겨 결혼하는 바람에 할매가 기다리지 못하신 모양이다. 아들 하나 낳은 유문식 씨가 저승에 계신 할매가 좋아하실 생각하며 ‘다행이다. 참 잘 했다’ 칭찬 떠올리는 모습이 애틋하면서도 정감 넘친다.
할매가 더 장수하셨다면 증손주까지 보셨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유문식씨가 올린 사진에는 할매 대신 제사상 위에 올려진 위패만 덩그러니 모셔져 할매를 추억하는 유문식 씨 마음을 대신해 준다. 아마도 할매가 살아계셨다면 틀림 없이 유문식씨 독백처럼 잘 했다 잘 했다 하실 것 같다. 핵가족화 되는 것도 모자라 혼자살이가 만연된 요즘 젊은 세대들이 켤코 누려볼 수 없는 소중한 할매의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