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통령 선거공보물을 펼쳐보니 후보자들은 하나같이 환하게 웃고 있다. 제일 앞에 있는 후보자의 경우 성주의 참외 농가를 방문했다가 계란 세례를 받을 뻔했던 기억이 있다. 표현 방식에는 문제가 있어 보이지만 후보 입장에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검증 과정의 일부다. 흥미로운 것은 경호팀에 제압당해 경찰서로 넘겨진 그 계란을 던진 남성이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란다. 왜관에 사는 고등학생은 왜 이웃 지자체인 성주까지 가서 계란을 던지려 했을까?
성주군에 임시로 배치한 사드(THAAD) 철거에 대한 입장 변화에 학생은 화가 났다고 한다. 해당 정치인은 2017년 SNS에 “사드는 한국 안보에 도움이 안 된다. 안보와 경제 측면에서도 피해가 크다”라고 했다가, 지금은 “이미 배치된 사드를 현실적으로 수용하고 이 위에서 가능한 대안을 찾자”라고 했다. 믿었던 사람이 배신을 한 것이다. 동지가 갑자기 적이 된 것이다. 정치적 양극화(兩極化)가 작동하는 순간이다.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에서 인간을 동굴에 갇힌 죄수로 묘사했다. 죄수는 족쇄가 채워진 채 평생 똑같은 자리에서 같은 벽만 볼 운명이다. 동굴 벽에 비친 것은 그저 횃불에 일렁이는 그림자일 뿐인데, 죄수들은 그 그림자를 진리라고 믿어버린다. 이렇게 동굴의 비유는 대상화(對象化)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여준다.
흔히 우리는 존재 그 겉면만을 보고 느끼고 판단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또한 그 피상적인 이해로 진실에 가닿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상황이 이러하면 진실은 어쩌면 중요치 않을 수 있다. 우리는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또 믿고 싶은 대로 믿게 되니까. 그 결과 나와 다른 모든 이들을 대상화한다. 나와 똑같은 감정을 느끼는 똑같은 인간인데, 그를 대상화·타자화함으로써 타협과 소통의 채널을 스스로 막아버린다. 스스로 동굴에 갇혀버리는 아이러니다.
오늘날 동굴의 비유가 가장 극대화된 공간이라면 가상세계를 뽑을 것이다. 페이스북(face book)은 2018년 친구 및 가족과의 상호작용을 촉진하겠다는 취지로 알고리즘을 개편했지만 사실은 오히려 반대다. 선정적이고 증오를 부추기는 콘텐츠에 더 많이 노출되었고, 그 결과 이용자의 양극화와 적대감은 더 심화되었다. 당연히 환경 개선 건의가 있었지만 최고 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는 적극적인 대응을 외면했다. 물론 그런 그의 행동에 의도가 있었음은 나중에 밝혀졌지만 말이다.
이유는 단순하지만 가공할 만하다. 그들이 제공하는 콘텐츠에 더 오래, 더 자주 노출될 수 있도록 고객들을 잡아두기 위해서다. 지금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이 경제적 성패의 변수가 된 세상이다. 이른바 주목 경제(attention economy)다. 찰스 데버(Charles Derber)는 『주목의 추구(The Pursuit of Attention, 2000)』에서 사람들은 오직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말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의 건전한 대화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대상화는 소통과 협업을 막는다.
광고, 홍보나 PR이 전통적인 주목 산업 형태였다면, 이제는 거의 모든 산업이 주목 산업화가 되고 있다. 사실 온라인(on-line) 전체는 아니지만 일부 공간에서는 사용자의 주목을 획득하기 위한 노력이 정말이지 눈물겹다. 구독자가 13만인 어느 유명 유튜버는 자신이 몰던 경비행기를 일부러 추락시켰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조회 수’를 올리기 위해서다. 그러자 이제는 전·현직 비행조종사들이 그 유튜버의 의심스러운 행동을 낱낱이 분석하는 영상들을 또 찍는다. 주목 경제가 얼마나 치열한지 또 얼마나 비정상적인지를 말해준다. 여태 대중들의 관심으로 사는 대표적인 직업이 연예인이었다면, 이제는 ‘대중의 연예인화’라고 해야겠다.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있는 올해도 어김없이 전국 곳곳에서 선거 벽보가 훼손됐다는 신고가 있다. 내가 미는 후보를 위해 경쟁 후보의 벽보를 훼손하는 것도 주목 행위로 봐야 할지는 모르지만, 공정 선거를 방해하는 중대 범죄임에는 분명하다.
아, 그러고 보니 핸드폰 사용자의 주목을 끌려고 치열하게 경쟁 중이던 애플과 삼성이 서로 상대 제품의 장점을 은근슬쩍 베낀다는 뉴스를 봤다. 누구보다 주목받고 싶은 욕망을 살짝만 비틀어도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는데 말이다. 경쟁적(!)으로 웃고 있는 후보자 가운데 누가 가장 큰 주목을 받을지 곧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