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이우걸
1 할머니 한 분이수의를 다리고 있다다가올 여행을 위한설레이는 준비라며,노을이 마루 끝까지 조심조심 깔리고 있다 2 애육원 뜰 앞엔 두 소녀가 앉아있다연보라 티를 똑같이 입고 있다언니가 보라는 듯이 싱긋 손을 흔든다
-옷, 그리고 몸이 드러내는 생의 신비
이우걸의 「옷」에서 우리는 드물게 묘사로만 이루어진 시조를 만난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기억을 촉진하는 ‘수의’, ‘노을’, ‘연보라 티’에서 드러나는 색채 이미지다. 이미지가 절제, 기교없음의 기교를 만나 한 편의 아름다운 그림을 이룬다. 이우걸은 “죽은 아이의 옷을 태우는 저녁/머리칼 뜯으며 울던 어머니가 날아간다/비워서 비워서 시린/저 하늘 한 복판으로”(「기러기1」)라는 시에서 하늘과 기러기를 통해 흰색/푸른 색 이미지의 선명한 대비를 보여준 바 있다. 다시 작품으로 돌아와 보자.
1에서 우리는 수의를 곱게 다리는 할머니 한 분을 본다. 그분은 정갈한 순명의 사람이다. 하늘의 이치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다. 세간世間 속에 존재하며 건너갈 피안을 위해 자신을 준비하는 표상이라 할 만하다. 그것을 알 수 있게 만드는 구절이 오로지 중장, “다가올 여행을 위한/설레이는 준비라며,”이다. 이 구절은 1에서 유일하게 의미가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노을이 마루 끝까지 조심조심 깔리고 있다”는 구절은 노을이 깔리는 모양과 문장형식이 결을 같이한다. 죽음의 기운이 천천히 드리우고 있음을 잘 암시하는 묘사이다.
이 할머니와 대조적으로 놓인 인물이 “애육원 뜰 앞”의 “두 소녀”이다. 우리는 ‘연보라 티를 똑같이 입고 있“는 두 소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라’는 일반적으로 장엄과 풍요, 호화를 상징하는 빛깔이지만 빨강과 파랑의 중간색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미결정 상태를 암시한다. 그녀들의 삶이 화려하다고 진단하는 것은 섣부르다. 왜냐하면 애육원에 있는 소녀들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절묘하게 소녀 둘을 배치함으로써, 특히 “언니가 보라는 듯이 싱긋 손을 흔든다”를 통해 한 가정에서 버려진 자매들인 두 소녀의 운명이 어느 빛깔로 번져갈 지 아무도 모른다는 암시를 은연 중에 읽게 한다. 이런 자연스러운 결, 여백으로 이루어진 기교 없음의 기교는 이우걸 시조의 고유한 가치를 논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영역이다. 연보라로 피어나는 소녀들과, 화려함을 다 들어낸 정갈한 수의(흰옷과 삼베)를 다림질하는 할머니는 우리 생이 보라에서 무채색, 나아가 흰빛으로 이동해가고 있음을 인지시키는 기호다. 그런 점에서 ‘옷’은 우리 생의 환유이자 삶을 드러내주는 신비라 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