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일기를 매일 썼었다. 집 어딘가 보관되었을 일기장,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며 이제는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너무도 뚜렷해서 일기가 없어도 절대 잊어버릴 수 없는 기억도 있지만, 다시 옛 일기를 읽어보고서야 이런 일도 있었구나하는 순간도 분명 발견될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어 너무도 아쉽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정리하여 기록해두고, 알려주지 않으면 그 온전한 이야기와 모습을 전해줄 수 없다. 도시를 연구하는 일을 하고 있어 지방출장이 잦다. 지방도시에 가면 도시역사관이나 박물관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되도록 방문하려고 한다. 도 시의 옛 자취를 담은 전시관인 도시역사관은 도시가 어디에서 출발하여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를 지도로, 모형으로, 때로는 영상과 사진을 통해 방문자들에게 알려주는 곳이다. 대부분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이어온 도시구조와 변화상, 일제강점기 도시계획과 근대건축물의 건립, 해방 이후 도시 성장 과정, 때로는 새로운 도심 건설로 인한 도시쇠퇴의 역사까지 담기도 한다. 이곳을 찾는 이유는 방문한 도시의 과거에서부터 현재를 알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도시의 미래상도 짐작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부산, 인천, 대구, 대전을 비롯한 대도시는 물론이고 군산, 익산, 정읍, 목포, 가까이는 구룡포에서도 도시역사관, 근대역사관, 근대역사박물관 등의 이름으로 도시역사관을 운영하면서 지역 도시를 연구하는 데이터베이스들을 꾸준히 구축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도시를 자랑하는 경주에 번듯한 도시역사관 하나 없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다. 경주에 도시역사관을 만들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시간을 지체할수록 소중한 유물과 기록들이 사라지거나 훼손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선사에서부터 신라시대의 유적과 기록들은 중앙과 경주의 국립박물관에서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관리하고 있다지만, 조선시대와 구한말 이후의 근대유적들의 상황은 좋지 못하다. 과거 박물관으로도 활용되었던 현재의 경주문화원에 가면 조선시대 읍성의 모형과 동경관 현판, 경주부윤의 갑옷과 무기, 고문서 등이 전시된 것을 볼 수 있다. 대부분 국보나 보물로 지정은 되지 않았지만 우리 고장에서는 가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전시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알고 있는 분들이 몇이나 될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지역의 역사를 보존하고 연구한 노력이 빛을 발하여 더 많은 시민들과 방문객들에게 우리 경주의 역사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라도 흩어지고 방치된 사료들을 모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관리하고 전시도 할 수 있는 도시역사관 건립이 필요하다. 그리고 경주의 미래를 잘 설계하기 위해서라도 도시공간의 최근 자취와 흔적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보전하는 것이 필요하다. 도시의 길과 장소는 모두 이야기를 품고 있다. 현재 서라벌문화회관 자리는 경주에 최초로 기차역사가 들어선 곳이었다. 서라벌문화회관에서 대릉원 앞을 지나 팔우정 삼거리 전에 지금의 구경주역으로 꺾어 들어가는 길은 기차가 다니던 선로였으며, 중앙시장에서 옹기전골목을 따라 난 길은 과거 경주읍성의 남측 해자가 덥힌 길이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금 대릉원 동측의 쪽샘지구는 민가로 밀집한 곳이었다. 이러한 도시의 지난 흔적들은 앞으로 도시의 성장 축과 형태를 결정하는데 큰 단서가 된다. 서울의 광화문 앞 세종로는 역사적 논쟁으로 축이 여러 번 바뀌었고, 원래 하나였던 창덕궁과 종묘를 끊어놓았던 율곡로는 최근 지하화하고 상부는 복원하여 연결시켰다. 과거를 공부하여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도시역사관은 쇠퇴한 원도심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역사관이 들어설 장소는 원도심이 최적이다. 옛 경주역사부지를 활용할 수도 있고 옛 경주시청 부지, 경주경찰서 건물 등 활용 가능한 대안은 많다. 원도심의 근대 건물들을 활용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봐야 한다. 근대건축물을 역사관 건물로 활용하는 사례가 많은데, 규모가 작다면, 스토리를 엮어서 주제별로 활용하는 방안도 있다. 경주를 방문하는 분들이 쉽게 찾고 다시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곳이면 황리단길에 집중된 활력이 사방으로 퍼져갈 것이다. 우리의 터전, 경주, 미처 쓰지 못한 일기장을 지금이라도 찾아서 정리하자. 더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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