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지역에서도 여지없이 농축산물 원산지 허위 표시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경기가 위축됨에 따라 가뜩이나 어려운 농업인들을 두 번 울리는 격이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경북지원 경주사무소가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경주지역 내 농식품 원산지 표시 부정유통 행위를 단속한 결과 44개 업소를 적발했다고 한다. 원산지를 거짓으로 표시한 21개소는 형사입건했고, 미표시 23개소에 대해서는 과태료 총 815만원을 부과했다. 원산지 표시 위반 주요품목은 돼지고기, 쇠고기, 배추김치, 콩(두부류) 등의 순이었다. 전체 위반품목의 77.5%를 차지했다. 이들 품목은 국내산에 비해 가격차이가 크거나 소비자가 외국산과 국내산을 육안으로 식별하기 어려워 원산지 허위 표시가 주로 발생하고 있다. 또 지역 내 쇠고기, 돼지고기 등 축산물 취급 업소 위반건수는 2020년 7개소, 2021년 15개소, 2022년 4월 현재까지 8개소로 매년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반 사례도 상당한 규모로 이뤄지고 있다. 적발된 한 식육점은 미국산 쇠고기 582kg을 국내산 한우로 원산지를 거짓표시해 1700만원 상당을 판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한 음식점에서는 중국산 배추김치 540kg을 반찬으로 제공하면서 원산지를 국내산으로 거짓표시하다 적발되기도 했다. 이처럼 소비자들의 눈과 입을 속이는 원산지 허위 표시는 꾸준한 단속에도 불구하고 근절되지 않고 있다. 농산물품질관리원과 지방자치단체 등의 한정된 인력으로 무수한 음식점과 유통업체를 모두 단속한다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원산지 표시제는 농업인 보호뿐만 아니라 시장 유통질서 확립, 소비자들에게 정확한 알권리를 제공 등의 차원에서 철저하게 관리돼야 한다. 이를 위해 지속적인 단속과 소비자단체 등과 연계한 상시감시활동이 강화돼야 한다. 또 원산지 표시 위반에 대한 처벌도 지금보다 더욱 강화해야 한다. 관계당국은 원산지 표시 위반이 근절될 때까지 지속적이고 강력한 단속을 벌이기 바란다. 소비자들이 믿고 농식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재발 방지에도 적극 나서야 함도 물론이다.
6.1지방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선거 분위기가 점점 과열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국민의힘 경주시장 후보 경선을 앞두고 의혹제기와 고발,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경북도당 공천관리위원회는 지난 22일 6.1 지방선거 기초단체장 경선 후보를 발표했다. 경주는 박병훈 전 경북도의원과 주낙영 현 경주시장 2인으로 경선을 통해 공천하기로 했다. 경선은 당원선거인단 50%와 일반여론조사 50%를 각각 반영하는 방식이다. 경선관련 여론조사는 28일과 29일 2일간 진행해 이르면 4월 말, 늦어도 5월 초에는 국민의힘 경주시장 후보가 결정될 전망이다. 문제는 경선을 앞두고 과열 경쟁으로 각종 의혹이 제기되고, 그에 따른 후보 간 공방으로 이어지면서 유권자들의 피로감을 불러오고 있다는 것이다. 먼저 포문을 연 것은 박병훈 예비후보다. 박 예비후보는 지난 24일 기자회견을 열고 상대 후보의 금권·관권선거 의혹을 제기하면서 공무원을 선거에 이용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주낙영 예비후보 선대위는 다음날 성명서를 내고 “박병훈 후보는 경주시민을 우롱하는 네거티브 선거 전략을 즉각 중단하고 정정당당하게 정책 선거에 임하라”며 “공무원 누가 우리를 돕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증거를 내놓을 것”을 촉구했다. 또 시내버스 업체 보조금 과다 지급과 관련해서도 의혹제기와 함께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지역의 일꾼을 뽑는 중요한 선거인데도 각종 의혹제기로 정책선거가 실종돼가는 분위기다. 아직 본 선거는 시작도 되지 않았다. 지금은 코로나19 장기화와 물가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민들을 위한 정책선거가 더욱 눈에 띌 것이다. 각종 의혹과 상대 후보 비방 등은 일부 선거 캠프 관계자나 열성 지지층 외에는 큰 관심을 끌지 못한다는 것이다. 평범한 대다수의 유권자들은 정책선거를 원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지방선거는 광역단체장, 자치단체장, 지방의원, 교육감을 뽑는 선거다. 경주시민의 손으로 선출해야 할 일꾼만 28명이다. 그만큼 선거 과정에서 과열될 가능성이 큰 것도 사실이다. 선관위와 검찰·경찰 등 관계기관은 민주주의의 꽃인 지방선거가 깨끗하고 투명하게 치러질 수 있도록 불법선거운동 단속과 감시에 빈틈이 없어야 한다. 무엇보다 후보자도 네거티브 전략을 버리고 정책과 비전으로 승부해야 유권자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요즘은 산불이 발생했다하면 초기진화 되는 화재보다는 한 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대형 산불이 주류를 이룬다. 필자가 가장 기억에 남는 산불은 2005년 강원도 양양 천년고찰 낙산사를 집어 삼키는 동해안 산불이다. 현장에 출동한 소방차도 화마의 희생양이 되어 전소된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올해 발생한 영덕, 고령, 울진 산불 등 경상북도에서도 대형 산불이 휩쓸고 있다. 산불하면 산림청 헬기가 불을 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산은 지형의 높낮이가 다르고 접근성이 떨어져 헬기 같은 기동장비가 산불 진압에는 제격이지만 야간이 되면 헬기는 안전사고 우려가 상당히 높아 화재 진압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소방은 산불 진화 시 산림인근 주택방어에 전력을 쏟고, 산은 주로 산림청이나 산불진화 요원, 군부대 등이 진화에 나서지만 소방 만큼 화재진화 능력은 뛰어나지 않다고 본다. 소방도 산불 진화에 상당한 기여를 하지만 산림인근 주택방어에만 전력을 쏟는 관계로 소극적으로 화재방어를 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소방이 국민들에게 보다 믿음과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적극적이어야 한다. 산불진화를 위해서는 산불차와 소형 펌프차 등 좁은 길에도 적응성과 기동성이 뛰어난 차량을 현장에 투입해야 하고 안전을 확보한 환경에서는 과감히 산불에 대응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춰야 한다. 방어적인 소극적 화재진압보다는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화재진압이 앞으로 소방이 산불을 대하는 태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무모하지 않는 선에서, 소방이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소방의 사명인 것이다. 예전처럼 산에는 인적도 드물고 나무를 땔감으로 쓰지 않기 때문에 산림이 울창하고, 게다가 건조한 날씨에서는 불씨만 떨어지면 삽시간에 산 전체가 화염에 휩싸이는 것은 시간 문제다. 산불을 방지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첫째, 산림인접 지역에서 쓰레기 소각하는 것은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 이로 인한 작은 불티가 산에 붙으면 감당이 안 될 정도로 급속하게 산불이 번진다. 대대적인 홍보로 ‘태우면 산불 난다’는 인식을 전 국민에게 심어줘야 하고 처벌의 강도도 상당부분 강화해야 한다. 둘째, 입산자 중에 라이터, 성냥 등 화기취급자에 대해서는 입산금지와 아울러 처벌을 강화해 ‘화기소지는 입산금지’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산에서 취사하는 행위도 엄단되어야 한다. 셋째, 산불을 발견했을 때는 정확한 위치를 신고해야 하고 산불 발생 위험 행위를 발견할 때는 제지하거나 소방관서에 신고를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산림인접 지역에서는 흡연을 삼가야 한다. 무심코 버린 담뱃불로 인해 감당 못할 엄청난 산불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요즘 봄철 화재예방대책 일환으로 경북 도내 소방관서에서는 산림인접마을에 대해 화재예방 순찰을 강화하고 있고, 소방차 진입불가 산림지역에 대해 산불대응 집중훈련을 하여 경북에서 추가 산불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 산불! 한 순간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 명심하고 실천하자.
우리는 사회와 문화를 묶어서 사회문화로 지칭할 때가 많다. 사회는 그릇이고 문화는 그 내용물이기 때문이다. 흔히 두 사람 이상이 모인 집단을 사회라 지칭하는데, 가장 작은 사회의 단위가 가족이다. 크든 작든 그 사회에 따라 문화가 달라지기 마련이다. 유교문화를 지칭할 때 가가예문(家家禮文)이란 표현이 있는데 집집마다 문화가 다르다는 전형적인 예가 되겠다. 이 문화는 예술 혹은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을 지칭하는데 그중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total way of life)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정의라 하겠다. 저마다 그 사회가 처한 자연이나 기후, 지리적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궁극으로 그에 적응하고 생존하는 방식 역시 각자 다르다. 각기 다른 조건과 바탕에서 생성된 이런 다양한 문화는 우열이 있는 게 아니라 양면성 즉, 장단점이 있을 뿐이다. 가끔 지나친 향토애의 발로에서 내 것이 좋다고 주장하고 자기가 처한 문화의 잘난 점만 부각해 자랑한다. 그 자연조건에 적응하며 살아가야만 하는 방어기제의 발동이다. 하지만 산이 높으면 골짜기도 깊다. 높은 산을 가진 사람은 아름다운 산만 자랑하고 계곡에 사는 사람은 그 골짜기만 주장한다. 거기에 정치이데올로기가 더하면 이러한 주의주장은 더욱 증폭한다. 그 추종세력은 확증편향에 더하여 점차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흔히 '내 문화가 최고다'라는 관점을 전문용어로 '자민족중심주의'라 한다. 살다 보면 내 것에 대해 긍지를 가져야 할 때가 있다. 반면에 문화 다양성을 지칭하고 저마다의 입장에서 문화를 보는 관점을 '문화상대주의'라고 부른다. 처한 상황이 다른 데서 문화가 생성되었기 때문에 상대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자는 것이다. 이런 관점이라면 이해되지 않은 일이란 없다. 문화나 어떤 일도 저마다의 조건과 처지와 형편과 까닭이 있기 때문이다. 한 사회 속에 살아가는 인간은 당연히 문화적 존재이다. 모든 사람은 그 지역의 문화적 영향 하에 성장하고 살아간다. 경주에서 성장기를 보낸 필자 역시 의당 경주문화의 영향을 받고 자랐다. 경주문화가 일정부분 몸에 베어 있다고 하겠다. 경주가 가진 여러 사회적 조건이 나를 그렇게 성장시켰듯이 내 성격도 그런 문화적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 연장선에서 필자 역시, 경주의 농사 짓던 집안 출신다운 문화를 배경으로 한 성격을 지녔다. 이후 도시생활을 통하여 도시 문화를 습득했으면서도 종종 시골에서 자란 근성이 드러나곤 한다. 이것은 어린 시절의 문화적 영향은 사회화를 통해 한 인간의 성격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작은 예이기도 하다. 주거문화를 예로 들어보더라도 우리는 서양의 아파트를 들여와서 살고 있지만 그 아파트에 온돌을 두는 우리만의 주거문화를 가지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온돌에 익숙했던 사람은 지금 아파트와 침대 위에 살지만 온돌 방바닥의 잠자리에 비교적 익숙할 것이다. 온돌방을 체험할 경우, 어린 시절 시골집 온돌 방바닥의 감각이 기억으로 살아나곤 한다. 어쩌면 필자가 관광을 전공한 것도 경주에서 성장하며 자연스레 관광문화를 수없이 보고 듣고 자란 존재구속성의 연장이 아닐까 싶다. 아마도 경주와 오랜 삶의 인연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관광의 삶을 은연중에 체화하고 있다고 봐도 될 것이다. 모든 인간은 그가 처한 존재구속성을 피할 수가 없다. 필자는 90년대 들어와서 대학원에서 관광학을 전공하고 있었는데 그 무렵 다수의 경주 한국관광대학 출신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의 관광 전공으로 유명한 대학원에 막 진학하던 때였다. 경주출신에다 대학원 선배인 필자의 주변에 이들이 함께 하였던 것도 자연적인 이치였다. 그네들이 지금 국내외 굴지의 대학에서 또는 관련 연구기관에서 관광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경주라는 배경이 있었기에 한국관광대학이 그간 많은 관광인재를 배출할 수 있었다. 이후 한국관광대학은 경주대학교로 개칭하여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관광의 입장에서만 보면, 구성원을 교육시키는 최고기관인 지역 대학이 관광의 정체성을 명칭에서 더 드러내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경주대학교와 서라벌대학의 통폐합 소식이 들린다. 모쪼록 통합에 즈음하여 경주대학교가 여전히 관광의 특성을 드러내는 관광인재 배출의 요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미 경주는 오랜 역사를 품은 고도이고 오늘날 그 역사와 문화를 관광으로 풀어내는 관광도시이다. 그 도시 구성원의 교육은 그러한 지역의 문화와 존재에 바탕했을 때, 쉬이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고 보다 강점을 가지기 때문이다.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웃고 있는 얼굴(Face with Tears of Joy)’이 작년, 세상에서 SNS나 문자를 주고받을 때 가장 많이 사용한 감정 아이콘으로 등극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3년(2019~21) 연속 세계 1위다. 그 뒤를 이어 3년 연속 2위가 소위 하트 뿅뿅의 ‘빨간 심장’이고, ‘엄지척’은 10등에서 4등으로 급상승 중이다. 노란색으로 된 웃고 있는 동그란 얼굴이나 눈에 빨간 하트가 나오는 얼굴 등 이런 종류의 감정 아이콘들을 본 적이 있을 거다. 방금 카톡 보내면서도 사용했을 수도 있고. 이들이 이모지인데, 이모지라고 것은 일본어로 된 조어(造語)로 그림(絵, e)에다가 문자(文字, moji)를 더한 용어다. 처음에는 일본 휴대폰 사용자들 간의 소통의 편의를 위해 제작된 딱 한 글자 크기의 그림문자 정도였다. 그랬던 것이 점점 유행을 타다 보니 여러 이동통신사에 경쟁적으로 도입되면서 인기를 끌게 된 것이다. 이모지와 비슷하지만 조금 헷갈리는 개념이 이모티콘이다. 이모티콘도 조어이긴 마찬가지다. 감정(emotion)과 아이콘(icon)을 합성어로, 키보드에 있는 각종 기호와 문자를 조합하여 만든 것이다. 예를 들어 :) 또는 :-)(옆으로 누운 웃는 얼굴), ^_^(웃는 얼굴), *^^*(반가운 표정), ^^;(쑥스럽게 웃는 모습), ^0^(크게 웃는 표정) 같은 식이다. 엄격히 말해 이모티콘은 컴퓨터 자판에 있는 문자와 부호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고, 이모지는 유니코드 시스템에 들어 있는 그림 문자를 말하는 거다. 말이 나온 김에 픽토그램이란 것도 있다. 왜 화장실 들어갈 때 흔히 볼 수 있는, 검은색 남성, 여성 실루엣을 떠올려 보면 정확하다. 픽토그램도 그림(picture)과 전보(telegram)의 합성어인데, 한마디로 올림픽 같은 국제행사 등에서 볼 수 있는 그림문자다. 의미하는 내용을 상징적으로 시각화하여 사람이 보면 바로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고 또 명료해야 한다. 색상까지 입혀 긴급ㆍ안전ㆍ주의 등의 안내를 표시하는 식이다. 엘리베이터 옆에 흔히 볼 수 있는 초록색의 비상구 표시나 빨간색 금지 표시의 금연 픽토그램이 대표적이다. 이상의 이모지, 이모티콘, 그리고 픽토그램은 각각 나름의 특징도 있지만, 글자로 전달이 잘 안 된다거나 감정이나 분위기 등 그 뉘앙스를 잘 살릴 수 없을 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주 쓰인다. 생각해보라, 한 권의 두꺼운 책 보다 한 장의 사진이 더 감동적일 수 있는 것이다. 문자를 통한 의사소통에 감초 격인 이모지를 개발하고, 국제표준코드로 제작하고, 발표하는 데가 유니코드 컨소시엄(Unicode consortium)이다. 다(多) 언어 환경과 호환되지 않는 기존 문자 인코딩 스킴(프로그래밍 언어)을 대체할 목적으로 개발된 유니코드 표준을 관리하고 출판하는 비영리 단체다. 유니코드 컨소시엄에서 선정한 올해의 이모지 1~10위 중 웃고 있는 얼굴이 6개나 된다. 올해가 특히 웃을 일이 많았을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코로나 시국에 웃을 일이 별로 없으니 문자로라도 웃지 않으면 힘들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어... 이건 사실 내가 개발한 이론인데, 인간의 얼굴은 원래 웃는 상(相)이다. 치과에서 올바로 양치하는 법을 설명할 때 사용하는 이빨 모형을 보고 생각해낸 것인데, 원래 우리는 입을 벌리지 않았을 뿐 그 모형처럼 입 안 가득 이빨들이 웃고(!) 있다. 생래적(生來的)으로 말이다. 울고 있을 때도, 누군가 질투하고, 욕하고, 눈을 흘길 때에도 입 속은 여전히 웃고 있다. 원래 웃는 상에 대한 문화사적 회귀본능이랄까, 무의식적으로 웃고 있는 이모지를 마구 누르는 진화론적 흔적 남기기 아닐까 싶다. 유니코드 컨소시엄에서 추가한 새로운 이모지 37개가 확정했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식 손가락 하트가 추가되었다는 점이다. 손가락 두 개로 살포시 만들어낸 감추듯 드러내는 한국식 하트가 그냥 마구(!) 빨간 하트를 뛰어넘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 K-POP이나 예능을 보고 많이들 따라 하는 모양이다. 또 있다. 성(性) 중립성을 채택하고자 임신한 남성 이모지도 흥미롭다. 트랜스젠더 남성과 간성인(間性人) 등이 임신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니코드의 범세계적 확대라고 본다.
불령봉표는 조선조 효명세자의 묘에 쓸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숯을 구울 나무를 베지 못하게 금한다는 내용의 표지석이다. 비스듬히 쓰러져 있는 바위면에 ‘延慶墓香炭山因啓下佛嶺封標(연경묘향탄산인계하불령봉표)’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이 봉표는 1831년(순조 31) 10월에 새긴 것으로, 순조의 아들이었던 효명세자(1809-1830)의 봉제사에 따른 경비를 조달하는 산이니 일반인의 출입과 벌채를 금한다는 내용의 표지석이다. 효명세자는 조선 후기의 세종대왕이 될 것이라 기대를 모았었다. 그런데 자신의 봉제사 경비를 조달하기 위해 봉표를 세우고 백성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였으니 지하의 세자 마음이 무척 불편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목할 점은 인근지역에 또 다른 2기의 봉표가 있으니 시령봉표와 수렴봉표이다. 시령봉표는 양북면 용동에서 장기로 넘어가는 감재골 고개 위에 불령봉표와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봉표를 새긴 인물과 날짜까지 새겨져 있는 점이 불령봉표와는 차이가 있다. 수렴봉표는 양남면 수렴리에 있다. 내용은 역시 불령봉표와 같으나 봉표를 세운 날짜가 신묘년 10월이다. 이 봉표를 세울 때 관련된 인물로 묘감 김창호와 감동 이○희가 등장하고 있고 그 외에 세 명의 인물이 추가되어 있는데 부○ 김하용, 이(吏는 관리를 의미) 박동윤, 하학로 등이다. 그런데 효명세자와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이곳 경주 지역 3곳에 봉표가 왜 있을까? 여기서 1km를 더 걸으면 용연폭포(龍淵瀑布)에 이르게 된다. 기림사에서는 북서쪽으로 1.5km 떨어져 있다. 『삼국유사』「기이」편 ‘만파식적’조에 의하면 신문왕과 그 일행이 동해 용으로부터 받은 옥대와 만파식적을 만들 대나무를 가지고 이곳 용연에 이르러 수레를 멈추고 점심을 먹었다. 그때 태자 이공(理恭)이 대궐을 지키고 있었다. 태자는 나중에 신문왕에 이어 제32대 왕위에 오르게 되는 효소왕이다. 왕 일행이 용연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태자는 곧 말을 달려와서 하례하고는 옥대를 천천히 살펴보고 아뢰었다. “이 옥대(玉帶)의 여러 쪽은 모두 진짜 용입니다” 왕이 놀라 물었다. “네가 어찌 그것을 아느냐?” “쪽 하나를 떼어 물에 넣어보면 아시게 될 것입니다” 이에 옥대의 왼편 둘째 쪽을 떼어서 시냇물에 넣으니 곧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고 그 자리에 생긴 못이 용연(龍淵)이다. 그런데 『삼국사기』 기록에 의하면 태자가 태어난 것은 신문왕 7년(687)이다. 신문왕이 왕위에 오른 것이 681년이고, 이 일이 일어난 것은 신문왕 2년(682)이다. 태자 이홍이 태어나기 5년 전이다. 태어나지도 않은 태자가 이곳으로 왔다는 것이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장자(莊子) 내편(內篇) 소요유(逍遙遊)에 이런 구절이 있다. 小知不及大知(소지불급대지) 편협한 지혜는 탁트인 지혜에 미치지 못하고, 小年不及大年(소년불급대년) 수명이 짧은 것은 수명이 긴 것에 미치지 못한다. 奚以知其然也(해이지기연야) 어찌 이를 알겠는가! 朝菌不知呣朔(조균부지무삭) 하루살이 버섯은 한 달이 얼마나 되는지를 모르고, 惠蛄不知春秋(혜고부지춘추) 여름에 생겼다가 가을에 죽는 땅강아지는 1년이 얼마나 되는지를 모른다. 단지 기록만 따져 이 설화를 부정하려는 필자 자신이 어쩌면 소지(小知)이고 아니면 혜고(惠蛄)일지도 모르겠다.
자취 박형준 늙은 원숭이가 무릎에 얼굴을 묻고 졸음에 빠져든다 그 옆에 활짝 피어난 모란꽃 나무를 잊고 매달려 사는 생을 잊고 자신의 냄새를 천천히 지우며 햇살 같은 털을 저녁 바람에 흩날리며 무리를 벗어나 단 한 번 땅 위에 편안하게 앉아 있다 죽음은 그렇게 온다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활짝 핀 모란꽃 옆에서 졸음에 빠져들며 자신을 잊어가는 것이다 -죽음, ‘졸음’에 빠져들어 자신마저 잊는 순간 서정을 이야기할 때 필자는 이 시를 많이 예로 든다. 전하는 이야기로는 이 시는 ‘신비한 동물의 세계’라는 방송국의 다큐프로를 보면서 썼다고 한다. 우리는 얼마나 많이 이런 프로를 봤던가.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밀림에서 원숭이가 어떻게 나무를 타고 무엇을 먹는지, 무리들의 특징은 어떤 것인지만 본다. 말하자면 우리는 한 번도 원숭이의 너머의 그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의 예리한 눈은 생이 머물다 간 자리를 쓰다듬는다. 시인은 죽음을 “활짝 핀 모란꽃 옆에서” 졸음에 빠져든 원숭이를 통해 본다. 세상은 바야흐로 활짝 피어나는 호시절인데도 그는 “무리를 벗어나” 홀로 졸고 있다. 이 대비는 세상의 아름다움과 무관하게 죽음은 찾아온다는 것과, 죽은 이후에도 세상은 아름다울 것이라는 선험적 인식이 있기에 가능하다. 죽음과 동행해줄 존재는 아무도 없다. 누구에게나 일생 “단 한 번” 일상에 “매달려 사는 생을 잊고/자신의 냄새를 천천히 지”워야 하는 날이 온다. 배우자와 자녀를 모아놓고 또렷한 유언을 남기고 그들 하나하나에게 자애로운 눈빛을 남기며 떠나는 생은 드라마에서나 있다. 대부분은 요양원이나 빈집에서 혼자 그 순간을 맞는다. 그리하여 이 시에서 가장 빛나는 구절은 죽음을 “졸음에 빠져들며/자신을 잊어가는 것이다”라는 서정적 인식이다. 생물학적인 죽음의 모습에서 우리는 죽어가는 주체조차도 ‘자신을 잊어’간다는 것을 확실히 인지한다. 그럼에도 걷잡을 수 없는 울음과 안타까움으로 반응하는 유족들의 모습은 자신의 삶과 고인의 삶을 심리적으로 연결시켜서 일어나는 현상일 것이다. 생에서 죽음으로 넘어가는 시간은 생각보다 장엄하지 않다. 소멸에 대한 인식을 시인은 다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삶의 자취’라는 시적인 모양새로 드러냈다. 원숭이는 나무에서 매달리고, 열매를 따먹고. 사랑하고 싸우는 것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졸음’에 빠져들어 자신마저 잊어가는 죽음까지가 바로 원숭이 삶의 ‘자취’의 전모라 할 수 있다. 이게 바로 시인 특유의 서정이다. 이렇게 시인들은 가끔 자신들만이 가진 시선을 통해 우리 생의 빈틈과 정서의 어떤 국면을 잡아낸다. 서정은 개인이 가진 가장 고유한 감성의 모양새이다. 서정은 이렇게 번지고 공유된다. 언제일까? “말간 햇살 같은 털을/저녁 바람에 흩날리”는 원숭이처럼 우리 생의 자취를 허공에 풀어놓고 참을 수 없는 졸음에 빠져들 날이.
우리는 공산주의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런 의문은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매우 조심스러운 주제다. 칼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을 출판한 것이 1848년이다. 공산주의 이론을 중심으로 최초의 공산혁명인 볼세비키 혁명(1917)이 일어나 제정 러시아가 문을 닫았고 이후 동유럽 국가들이 도미노 현상으로 공산화됐다. 우리나라가 해방된 1945년, 소련에 의해 신탁통치 된 북한에 공산주의 정권이 서고 남한은 미국이 진주하면서 후광을 업은 이승만 정권이 서면서 우리는 본격적인 이념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역사적인 사실을 따지면 분단 전까지 우리나라 전역에서 독립에 결정으로 공헌한 쪽은 일제를 끊임없이 괴롭히며 게릴라 활동을 벌인 좌익계열 독립투사들이었다. 여운형 선생을 위시, 일제강점기에도 이미 전국적인 조직을 가지고 있는 남한의 좌익 사상가들은 해방과 동시에 전국에 인민위원회를 중심으로 자치활동에 들어갔지만 이승만이 실권을 장악한 이후 미군과 그들이 복권시킨 일제강점기 조선 경찰들에 의해 급격히 세력을 잃어갔다. 사회적 기업 ㈜사랑의 집수리 망치와 벽돌 대표이사 겸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이정환 대표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으로 추천한 ‘대륙의 지도자 등소평’은 덩샤오핑(鄧小平·등소평)등소평(등소평)의 셋째 딸 등용이 자신이 본 아버지의 행적을 기억하고 오랜 기간 기록하며 쓴 평전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이정환 대표는 ‘지금까지 왜 이런 이야기를 아무도 들려주지 않았나?’며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진실에 대해 분통을 터뜨린다. 이정환 대표가 한탄하는 것은 초중고 12년과 대학 4년, 그리고 사회생활하면서까지 세상의 모든 정보들이 마오쩌둥은 물론 대부분 공산주의자들을 천하에 나쁜 놈으로만 몰아왔다는 사실이다. 무턱대고 공산당을 욕하는 역사를 가르친 교사들에게 욕이라고 한바탕 해대면 좋겠다며 교육부재의 과거를 원망한다. “그렇지 않았나요? 남북한 대치상황이라는 현실을 정권유지의 수단으로 삼았으니 상대를 무조건 악의 무리로 몰아갔던 겁니다” 이정환 대표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받은 반공교육을 떠올리면 공산주의자들은 전부 사람도 아닌 늑대고 붉은 돼지로 묘사된 기억을 떠올린다. 마오쩌둥은 바로 그런 늑대와 돼지들의 수장으로 기억되는 무시무시한 존재다. 아오지 탄광식의 강제노동, 치밀한 감시조직 같은 반인륜적 사회상으로만 대도된 공산권의 이야기들이 이 책을 통해 많은 부분 수정됐다고 털어놓는다. “예를 들어 덩샤오핑이 강제노동수용소에 잡혀 있을 때조차 하루 노동시간이 3시간밖에 안 되었다는 겁니다. 이런 이야기를 상상이나 할 수 있겠어요?” 이렇듯 ‘대륙의 지도자 등소평’은 덩샤오핑은 물론 대중이 잘못 알아왔던 공산중국의 이미지를 상당부분 중화시킨다. 물론 지금의 덩샤오핑은 이정환 대표가 이전에 알던 덩샤오핑처럼 악의 화신이 아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덩샤오핑 평전이 수십 종에 이르고 중국인민에 대한 덩샤오핑의 위민사상과 치열한 공산주의 사상가로서의 풍모가 잘 드러난 평전들도 수십 종이나 나와 있다. 공산주의 자체가 하나의 경제적 정치적 수단으로 인정된 2022년 대한민국 지성들은 더 이상 7~80년대식 반공 이데올리기에 빠진 나라가 아니다. 덩샤오핑의 많은 평전들과 달리 ‘대륙의 아버지 등소평’은 그중에서도 특히 덩샤오핑의 인간적인 면들을 부각시킨 전기다. 이 책은 2004년 8월 22일, 등소평 탄생 100주년을 맞아 친딸로서 그의 일생을 가장 잘 아는 등용의 눈으로 기록된 것이다. 이 책은 이미 1993년 ‘나의 아버지 등소평’으로 출간돼 베스트셀러로 알려진 바 있다. 특히 이 책에는 집안의 소소한 일들과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 아버지 덩샤오핑의 세세한 성격과 취미, 숨겨진 습관 등이 기록되어 일반적인 평전들과 다른 읽을거리를 선사한다. 이런 기술은 마오쩌둥의 딸 리민이 아버지 마오쩌둥을 회고하며 쓴 ‘나의 아버지 모택동’과 좋은 대비를 이룬다. “물론 딸의 입장에서 쓴 책이니 좋은 점만 부각시켰을 수도 있지만 이런 책들이 우리가 젊은 시절에는 아예 세상 밖에 나올 엄두조차 못 냈잖아요. 이런 암울한 문화단절과 교육부재는 앞으로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이정환 대표는 그나마 중년이 되어서라도 이런 책을 읽게 되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직도 비뚤어진 반공교육에 사로잡힌 채 앞뒤 꽉 막힌 꼰대로 살았을지 모른다며 어이없어 한다. 이밖에도 이정환 대표는 고교시절 읽은 알렉스 헤일리(Alex Haley 1921~1992) 작 뿌리(Roots 1972)를 인종과 종교, 이념을 떠나 사람을 편견 없이 보는 안목을 심어준 책으로 추천했고, 이주노동자의 처절한 현실을 비판한 존버거(John Berger 1926-2017) 제7의 인간(1975) 역시 이와 사람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소중한 책으로 기억한다.
효덕천황은 죽기에 앞서 자신의 원한이 두고두고 후손들에게 전해져 중대형 황자에게 복수를 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런 다음 효덕천황이 병으로 사망하게 되었다. 그의 누나 황극(皇極)천황이 물러났다가 이름을 바꾸어 다시 즉위하였다. 새 이름을 제명(齊明)천황이라 했다. 효덕천황이 죽고 4년이 지났다. 그 사이 사람들은 향가 속에 담아 놓은 저주가 현실화되어 원령이 살아나지 않을까 걱정하였다. 사람들은 유간황자를 효덕천황의 좀비로 보고 끊임없이 감시하고 있었다. 걱정은 사실이 되어 유간황자가 모반을 꾸몄다는 사건이 터지고야 말았다. 658년, 제명천황과 중대형 황자가 온천에 행차한 사이 수도 아스카에 남아서 궁을 지키게 된 소아적형(蘇我赤兄)이라는 관리가 유간황자에게 접근하여 은밀히 말했다. ‘현재 천황의 정치에는 3가지 잘못이 있습니다. 창고를 지어 백성들의 재물을 거두어 쌓아둔 것이 첫째이고, 수로를 만들기 위해 나라의 양식을 낭비한 것이 둘째이며, 배로 돌을 날라다가 담을 쌓은 것이 셋째입니다’ 유간황자가 이에 대해 ‘나도 이제 군사를 일으킬 수 있는 나이가 되었지 않는가’라고 응답하였다. 유간황자가 소아적형을 믿은 것은 아마도 젊음의 성급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소아적형은 유간황자의 편이 아니었다. 그는 사람들을 동원하여 황자를 체포한 다음 천황이 가 있던 온천으로 압송해 갔다. 끌려가던 도중 유간황자는 반대(磐代)라는 언덕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그 곳에 있던 어린 소나무 두 그루를 붙잡아 서로 묶어 놓은 다음 가던 걸음을 계속했다. 고대의 샤마니즘에서 긴 실은 수명을 연장시키는 주술도구로 쓰였다. 두 그루의 소나무를 서로 묶어 둔 것은 샤마니즘의 술을 편 것이다. 중대형 황자가 끌려온 유간황자를 직접 조사하였으나 유간황자는 이를 부인하였다. 유간황자가 끌려와 조사받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제명천황이 급히 향가 작품을 만들었다. 만엽집(万葉集) 10번가다. 君 之 齒 母 / 吾代 毛所 知 哉 / 磐代 乃 岡 之 草 根乎 去 來 結 手 名 “그대(유간황자)의 나이가 17살 밖에 되지 않았는데 어찌 모반을 꾸미겠는가. 내가 사람들을 대신해 중대형 황자에게 알리리. 그대가 반대(磐代) 언덕 풀숲에 가 머뭇거리지 않고 소나무 가지를 묶어 두었다는 사람들의 소문도 중대형 황자에게 알리리” 그녀는 유간황자의 고모였다. ‘유간황자 나이가 17세로서 모반을 꾸밀 나이도 아니고, 더구나 생명연장의 샤마니즘까지 시행하여 두었다고 하니 죽이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녀가 걱정하였으나 유간황자는 용서받지 못했다. 그는 조사를 받고 돌아가던 길 중도에서 교수형에 처해지고 말았다. 이때 그의 나이 17세였다. 중대형 황자는 효덕천황이 자신을 원망하면서 향가로 만들어 놓은 저주의 내용을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효덕천황이 만들어 놓은 ‘십대나 입에서 입으로 전하라’는 원한의 장치를 끊어버리기 위해 극단적 조치를 취했다. 중대형 황자는 효덕의 향가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효덕천황의 아들을 아예 제거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도 향가의 마력을 무력화 시키지 못했다. 효덕천황이 만든 향가는 기어코 다시 살아나 훗날 일본의 역사를 바꾸는 비극적 사건을 일으키게 된다.
향가시회가 지난 23일 동국대학교 향가 만엽집 연구실 실장으로 위촉된 김영회 실장을 초대해 그가 지금까지 연구해온 기본적인 이론에 대한 설명을 듣고 앞으로 향가의 현대화를 위해 함께 연구해 나가기로 뜻을 모았다. ‘향가시회’는 동국대 한국불교사연구소 소장인 고영섭 교수를 비롯해 장기간 향가를 연구해온 동인들로 구성돼 2017년 3월 제 1차 모임을 가진 이후 지금까지 122편의 현대 향가를 발표한 바 있으며, 지난 3월에는 고영섭 교수 등 11인이 동인지 ‘현대향가’ 4집을 발표하기도 한 향가연구단체다. 김영회 실장은 이날 초청에 응답해 지금까지 견지해온 자신의 향가연구는 ‘현대 향가를 창작하기 위해 어느 길을 가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답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전제하고 스스로 연구한 향가의 3대 요소인 노랫말+청언(請言)+보언(報言-알리는 말=地文=연기의 내용을 알리는 말)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영회 실장은 향가시회 회원들의 작품에서 윤정구 시인의 시집 ‘봄여름가을겨울, 일편단심’에서 이러한 요소를 갖춘 작품들을 골라보았다며 향가시회 회원들의 작품을 통해 향가 3대 요소를 찾아가는 불편함을 검토해줄 것을 부탁했다. 이날 고영섭 소장은 김영회 실장의 설명을 들은 후 “매우 흥미진진한 이론을 들었다. 향가만엽집 연구실이 많은 성과를 내어 향가 연구의 메카가 되어주기 바라고 향가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바란다”며 만남을 축하했다.
SDGs(지속가능발전목표)는 지방, 국가, 지역 및 글로벌 차원의 정기적이고 포괄적 검토에 적극 참여할 것을 약속하고 있다. 그리고 후속 조치와 검토에 관련된 기존 네트워크의 제도와 방법을 최대한 활용한다. 그리고 국가 보고서를 통해 이행성과를 평가하고 지역과 글로벌 차원의 도전과제를 파악한다. 지역 차원의 회담과 글로벌 검토와 더불어, 국가 보고서는 다양한 차원의 후속 조치를 위한 권고 사항에 반영되고 있다(지속가능발전 의제 77항). 물론, SDGs 체제에서 정부가 선진국의 정책과 지표를 적극적으로 수행하거나 혹은 수행하지 않는다고 해서, 국제사회 또는 국제기구로부터 인센티브 또는 패널티를 받는 것은 아니다(이창언·오유석, 2017: 177-178). 그러나 지구촌 전역에서 SDGs를 이행하기 위해 많은 정부와 지방정부가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자발적 국가 보고(VNR: Voluntary National Review)라고 할 수 있다. 자발적 국가 보고(VNR)는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2030 의제의 후속 조치 및 검토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SDGs는 ‘모든 국가가 2030년까지 이행에 대한 체계적인 후속 조치와 검토에 참여할 것을 약속’하는 헌장이며 ‘통합적인 후속 조치 및 검토는 견고하고, 자발적이며, 효과적이고, 참여를 장려하는, 투명한 과정(2030 의제 72항)’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국가가 이끌고 주도하여 국가 및 지방 차원의 포괄적인 이행 성과 검토를 정기적으로 실시할 것을 장려(2030 의제79항)한다. 나아가 ‘지역 차원에서의 포괄적인 검토 과정은 지역 차원의 검토에 기반하고, 지속가능발전에 관한 고위급 정치 포럼(HLPF) 등에서 이뤄질 글로벌 차원의 후속 조치 및 검토(2030 의제 80항)’를 동반한다.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주관의 고위급 정치 포럼은 2013년 7월 9일 총회 결의안 67/290에 따라 정기적인 검토를 실시한다. 검토는 회원국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이뤄지고, 보고서 작성을 권장하며, 선진국, 개발도상국 외에도 관련 유엔기관 및 시민사회와 민간부문 등 관련 이해관계자의 참여 속에 이뤄진다. 검토는 국가 주도로 이뤄지며, 각료급과 그 외 고위급 인사가 참여하도록 한다. 이는 주요 그룹 및 관련이해관계자들의 참여 속에 파트너십을 구축할 기회가 된다(2030 의제 84항).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2030 의제’ 84항에 명시된 바와 같이 지속가능발전에 관한 고위정치포럼(HLPF)의 정기적 검토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에 의해 자발적으로 주도되며 주요 그룹의 참여와 파트너십을 활성화를 위한 플랫폼을 제공해야 한다. HLPF는 매년 7월에 경제사회이사회(ECOSOC) 주관으로 8일간 개최되며, 4년마다 국가원수 및 정부 수반 차원의 회의를 유엔총회 주관으로 개최된다. 참고로 2022년 지속가능발전에 관한 고위 정치포럼(HLPF)은 VNR이 발표되는 7월에 13일부터 15일까지 뉴욕에서 ECOSOC의 주최로 장관급 회담이 열린다. HLPF는 1년 임기의 회원국 대사이자 상임 대표인 ECOSOC 의장에 의해 소집된다. 2021년까지 255건의 VNR이 실시되었으며(2016년 22건, 2017년 43건, 2018년 46건, 2019년 47건, 2020년 47건, 2021년 42건), 176개국이 VNR을 제시했으며 59개국이 1건 이상의 VNR을 실시했다. 2022년에는 46개국이 VNR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VNR은 2030 의제의 이행의 가속화를 위해 성공, 도전 및 교훈을 포함한 경험 공유를 가능하게 한다. 국가 및 하위 국가 차원의 포괄적이고 참여적이며 투명하며 철저한 검토 프로세스를 수반할 때, 증거 기반일 때, 가시적인 교훈과 해결책을 도출할 때, SDGs 구현을 주도하는 구체적인 행동과 협업이 뒤따를 때 가장 의미가 있다. ‘2030 의제 시행’ 7년이 되는 지금 VNR은 시행 중인 정책과 전략의 이행과 영향을 보여주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VNR은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각국이 목표와 목표의 이행 진척 상황과 단점을 평가하고 혁신하는 과정이다. VNR은 SDGs의 국가적 구현을 위한 촉매제 역할을 하고 조정 및 정부 전체와 사회 전체의 접근방식을 강화하는데 유용할 수 있다. 이행 진행 상황에 대한 모니터링과 평가를 강화하고 도움이 더 필요한 분야를 파악할 수 있다. 또한 2030 의제 및 SDGs 시행에 대한 정부와 사회의 인식을 높이기 위한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될 수 있다. VNR은 보편적이고 통합된 성격과 지속 가능한 발전의 모든 차원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모든 국가에서 2030 의제의 이행 과정을 추적하기 위한 것이다. 74항에 포함된 모든 수준에서 후속 조치와 검토를 안내하는 원칙은 무엇보다도 검토가 실질적이고 지식기반일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개방적이고 포괄적이며 참여적이며 투명하며, 특히 가장 가난하고 취약하며 가장 소외된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춘다(이창언, 2022).
-섬나라 ‘아이슬란드’로 가는 길 스코트랜드 에딘버러 공항을 떠나 ‘아이랜드’를 경유하여 아이슬란드 수도인 ‘레이캬비크’공항까지 오는 데 총 6시간이 걸렸습니다. 30여km 떨어진 시내까지 공항버스를 이용하여 유스호스텔에 여장을 풀었어요. 10여개의 크고 작은 짐에다 손자 녀석들 포함, 총 가족 여섯 명이 함께하니만큼 이동과정이 여간 힘들지 않았고요. 내일부터 시작되는 캠핑 생활로 텐트와 침구, 취사, 식재준비는 물론이요 렌트카도 인수하는 등 쉴 새 없이 바빴답니다. 낯설고 추운 북쪽 나라 이곳에서 텐트 생활을 하며 자동차로 10여일간 돌아볼 생각을 하니, 설레기도 하거니와 걱정이 앞섰습니다. -아이슬란드는 이런 곳 아이슬란드는 오리가 헤엄치는 모습을 한 섬나라입니다. 얼음과 불의 나라라고 할 만큼 빙하와 만년설이 많고, 화산과 온천이 많은 곳으로 상극의 자연환경이 함께하며, 원시적이고 목가적인 자연환경도 풍부한 나라예요. 영국의 북서쪽에 위치하며, 놀웨이와 비슷한 위도상에 있는 외딴 나라랍니다. 역사적으로 노르웨이, 덴마크의 자치령을 거쳐 1918년 독립되었고, 군대가 없으며, 자유가 보장된 민주공화국으로 35만 정도의 인구에 평균 수명 79세의 세계적인 장수국에 속한다고 해요. 고래, 대구 등 수산자원도 풍부하고 폭포와 호수가, 그리고 초원과 가축도 많으며. 더욱이 백야의 나라입니다. 이런 천혜의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어 세계의 관광객들이 근래에 들어 이 나라를 많이 찾고 있습니다.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 여행 레이캬비크는 아이슬란드의 남.서해 안에 위치한 인구 12만의 이 나라 수도입니다. ‘안개 낀 항만’이란 뜻을 가진 항구도시로, 이 나라 인구의 1/3이상이 여기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제일의 항구도시일 뿐 아니라 상공업,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행정의 중심도시로 산업시설 반 이상이 여기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중세풍의 도시지만 신개발 붐으로 깨끗한 주택, 반듯하고 넓은 계획도시로 각광을 받고 있어요. 유럽과 미국문화가 혼재되어 핫도그, 피자집이 많으며, 저녁이 되면 북유럽 스타일의 카페나, 도로변에서 주변 사람들이 모여 즐기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주변에 초원이 많아 150여개의 캠핑장이 있다고 해요. 깨끗한 잔디밭 위에 텐트 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전기시설, 조리대, 공동화장실, 샤워실, 통신시설 등 모든 편의시설을 잘 갖춰놓고 있어요. 인당 1만2000원 정도 사용료를 지불하면 된답니다. 이종기 문화유산해설가&시민전문기자 leejongi2@naver.com 이 기사는 지역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진도개는 증식과 농가 소득 증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날의 무계획적이고 무분별한 개체수 증가로 혈통관리가 어려워져 대접을 받지 못하는 천연기념물 토종개로 전락하였다. 경주개 동경이 혈통관리의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진도개는 일제 강점기인 1938년에 조선총독부 직속 보물 고적 명승 천연기념물 보존회 위원이었던 경성대학의 모리 타메조(森爲三)교수가 진도를 방문하여 조사한 시학보고서(視學報告書)에 의해 조선의 명견으로 지정되었다. 해방 후에도 진도개 명견 등록제도는 유지되었으나 일제의 잔재로 인식되어 잘 지켜지지 않았다. 또 진도개는 6.25를 거치면서 생활이 궁핍하여 개에게 신경 쓸 만큼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아 방치되어 잡종화로 인해 멸종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진도개란 이름은 모리 타메조(森爲三)교수의 진도 현지답사 보고서에 사용한 명칭 그대로가 견명이 되었고, 보고서는 진도개의 우수성 및 고유성에 대한 평가보다는 조선총독부가 조선의 국권 피탈(한일합방)의 당위성을 정당화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편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진도개의 기원과 역사성의 의미가 축소되고 왜곡되었다. 해방 후에도 진도개의 역사성과 기원에 대한 우리나라의 독자적인 조사와 연구가 부족했다. 구전으로 오늘날까지 내려온 진도개에 대한 기원은 삼국시대에 남송(南宋)의 무역선이 진도 섬 근해에서 조난되었을 때 배에 함께 있었던 개가 진도로 유입되어 진도개의 선조가 되었다는 송나라 무역선 표류견 설, 다른 하나는 서기 1273년경 삼별초 군을 토벌한 몽고군이 철수할 때 자기 나라로 데려간 진도 주민들이 고향으로 돌아올 때 데리고 온 몽고 개가 지금의 진도개라는 설, 또 조선 초기에 진도군 지산면에 설치된 군마 육성 목장에서 경비견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몽고에서 들여온 개가 진도개의 원종이라는 설들이다. 구전된 설들은 역사적 고증과 학문적으로 정립되지 않아서 진도개의 기원으로 보기에는 학술적으로 부족함이 많다. 오늘날 학문적으로 정립된 진도개의 기원은 우리나라 토종개가 진도의 기후와 풍토에 적응한 토착견으로 오랜 세월 진도 섬 지역에 격리되어 품종의 고유성을 유지해온 것으로 정리하여 문화재청에서 소개하고 있다. 진도군은 진도개의 날을 제정하여 매년 5월 3일∼5일까지 진도개 페스티벌 및 우수 진도개 선발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또 진도읍 등외리 일대 약 6만여 평에 진도개 사육장, 홍보관, 진도개 선수촌, 경견장(대형 운동장) 등 진도개 테마파크를 조성하여 진도의 유명한 관광코스로 진도의 자부심이 되었다. 현재 진도개는 전남 진도군 진도개 축산과에서 행정적인 관리를 하고 있으며, 약 4000개의 농가에서 약 1만3000두를 키우고, 4000두를 천연기념물로 등록하여 관리하고 있으며, 전국적으로 약 25만두가 분포되어 있다. 지난 2021년 8월 동물보호단체에 의해 천연기념물로 등록된 진도개가 식용 개 농장에서 발견되고, 또 개고기 시장의 가두리장에 갇혀 있는 진도개, 천연기념물인데 식용으로 거래되고 있다는 언론 보도로 인해 전국적인 비난을 받았다. 보호보다 증식으로 인한 농가 소득 증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관리정책 때문이다. 또한 진도개 보호에 대한 시민 인식과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동물보호단체에서 진도개 법 개정을 요구하여 담당 부서가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진도군에서는 진도개를 사육하는 농가를 약 600가구, 천연기념물 지정 두수를 1500두, 진도군 총 사육 두수를 2000∼3000두 내외로 축소하는 계획을 세웠고, 사육 농가들에 대한 엄격한 출산과 혈통 관리를 하고 분양견에 대한 중성화 수술 등으로 개체수를 조정하는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진도개는 전라남도와 진도군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인해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토종개의 맏형이 되었고, 진도의 명품이며 진도의 랜드마크가 되어 관광자원이 되었다. 그리고 지역민의 사랑도 받았다. 그러나 지난날의 무계획적이고 무분별한 개체수 증가로 혈통관리가 어려워지면서 오늘날과 같은 반려견 대접을 받지 못하는 천연기념물 토종개가 되었다. 지난날의 명성을 잃어가고 있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경주개 동경이 혈통관리의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최석규 경주개 동경이 혈통보존연구원장 경주신문 독자위원 이 기사는 지역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저녁놀을 뚫은 천만근의 종소리 (聲穿暮靄千萬重) 읍성 남문이 밤을 알리며 닫힌다 (認是城南報夜鍾) 휘영청 달 밝은 봉황대 아래 길은 (明月鳳凰臺下路) 바람결에 여음이 끊어질 듯 이어진다 (餘音嫋嫋遠隨風) 조선 후기 학자 유의건(柳宜健, 1687~1760)의 시문집인 ‘화계집’(花溪集)에 실린 ‘봉대모종’(鳳臺暮鐘)이란 시다. 제목은 ‘봉황대의 저녁 종소리’란 뜻이다. 이 시에 등장하는 ‘천만근의 종’은 ‘에밀레종’이란 이름으로 잘 알려진 국보 29호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이다. 봉덕사종(奉德寺鐘)으로도 불린다. 지금은 국립경주박물관 마당 한쪽에 전시돼 있다. 신종의 주인공인 신라 33대 성덕왕(재위 702~737)은 8세기 초반 35년간 재위하면서 통치체제를 정비하고 국가경제를 안정화해 통일신라 전성기의 문을 연 왕이다. 고려의 문종, 조선의 세종대왕과 곧잘 비교된다. 성덕대왕신종은 36대 혜공왕(재위 765~780) 때인 771년 음력 12월 14일 완성됐다. 신종 몸체에 새겨진 ‘성덕대왕신종지명’ 등의 기록에 따르면, 성덕왕의 아들인 35대 경덕왕(재위 742~765)은 위대한 아버지를 추모할 목적으로 봉덕사를 원찰(願刹)로 삼고 여기에 걸기 위한 큰 종을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경덕왕은 종이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고, 종은 그의 아들 혜공왕 대에 이르러 완성된다. 혜공왕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종을 봉덕사에 봉안했다. 이런 이유로 성덕대왕신종은 ‘봉덕사종’으로도 불렸다. ◆4차례 보금자리 옮긴 비운의 역사 이런 사연 속에서 탄생한 성덕대왕신종은 우리나라 금속공예를 대표하는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그러나 그 명성과는 달리 이 종은 1200여년의 세월 동안 이곳저곳을 떠도는 기구한 운명을 겪었다. 당초 신종이 설치됐다고 전하는 봉덕사는 오래전 폐사돼 그 위치가 분명하지 않다. 기록에 따르면 경주 북천(北川) 남쪽의 남천리 쯤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절은 성덕왕이 증조부인 무열왕(武烈王)을 위해 706년 창건했다는 것과, 성덕왕의 아들이자 경덕왕 형인 34대 효성왕(재위 737~742)이 738년 아버지를 위해 세웠다는 2가지 창건 기록이 ‘삼국유사’에 담겨 있다. 신종은 봉덕사에 처음 설치된 이후 고려를 거쳐 조선 초까지 700여년 동안 그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조선 초 숭유억불 정책으로 수많은 범종이 사라지게 됐고, 성덕대왕신종도 위기를 맞게 된다. 세종 6년(1424) 실록에 따르면, 당시 성덕대왕신종도 녹여서 무기를 만들자는 여론이 비등했으나, 왕은 “경주 봉덕사의 큰 종은 헐지 말라”고 명한다. 문화 예술을 숭상했던 성군 덕에 화를 면한 것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봉덕사에 큰물이 져서 건물은 떠내려가고, 무거운 종만 절터에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그 후 혜공왕 대에 이르러 (厥後惠恭王) 동천 물가에 절을 지었는데 (營寺東川傍) 그 절집 오래가지 못했지만 (招提久莫量) 신종은 누대보다 더 웅대했네 (鐘大逾魯莊) (중략) 절간 무너져 자갈밭에 묻히자 (寺廢沒沙礫) 신종은 그만 가시덩굴에 버려졌다 (此物委榛荒) 주나라 석고(북 모양의 돌 비석)와 흡사하여 (恰似周石鼓) 아이들이 두드리고 소는 뿔을 가는구나 (兒撞牛礪角) 조선시대 매월당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이 경주에 머물며 지은 ‘봉덕사종’이란 시의 일부다. 그는 31세가 되던 1465년 봄 경주 금오산(지금의 남산) 용장사에 금오산실(金鰲山室)을 짓고 살다 6년 뒤인 1471년 서울로 떠났다. 그가 경주에 머물고 있을 시기는, 신종이 이미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옮겨간 이후였다. 김시습은 경주에 와서 봉덕사종의 사연을 접한 뒤, 자갈밭에 방치됐던 안타까운 과거와 제자리를 찾게 된 이야기를 노래했던 것이다. 봉덕사 폐사 시점은 1424년 이후 30년 사이 쯤으로 추정된다. 실록에 따르면 세종 6년(1424) 때만 해도 봉덕사는 존재했고, ‘큰 종’(성덕대왕신종) 또한 종루에 잘 달려 있었다. 그러나 단종 2년(1454) 간행된 ‘세종실록지리지’엔 “(봉덕사가) 지금은 없어졌다. 큰 종이 있는데 771년 신라 혜공왕이 만든 것”이란 내용이 담겨 있다. 이를 근거로 봉덕사는 1424년과 1454년 사이에 수해를 입어 폐사된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이후 성덕대왕신종은 세조 5년인 1460년에 이르러 새로운 거처로 옮겨진다. 남천(南川) 끝자락쯤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영묘사(靈廟寺)가 새 보금자리였다. 하지만 신종의 고단한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영묘사로 온 지 40여년 뒤 영묘사마저 화재로 소실되면서 또다시 노천에 버려지는 신세가 된 것이었다. 이후 1506년(중종 원년)에 남문 밖 봉황대 고분 밑에 종각을 짓고 또 다시 거처를 옮기게 된다. 신종은 이곳에서 408년 동안 불심을 일깨우는 범종(梵鐘)이 아닌, 경주읍성의 개폐 시각을 알리는 행정용 관종(官鍾) 역할을 했다. 유의건이 들었던 ‘봉황대의 저녁 종소리’도 이곳에서 울려 퍼졌던 것이었다. 신종의 기구한 운명은 일제강점기까지 이어진다. 신종은 1915년 일제에 의해 또다시 봉황대 종각에서 경주박물관 전신인 경주고적보존회 진열관(현재 경주시 동부동 경주문화원 자리)으로 옮겨지게 된다. 이후 1975년 5월 인왕동에 국립경주박물관이 새로 지어지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아기공양설은 허황된 이야기 이 종의 별칭인 ‘에밀레종’이란 이름은 종을 칠 때마다 ‘에밀레~, 에밀레~’ 하는 아이 울음소리가 났다고 해서 붙여졌다. 여기엔 널리 알려진 ‘인신공양 전설’이 깃들어 있다. 나라의 명을 받은 봉덕사 스님들은 종을 만들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전국을 돌며 시주를 받았다. 한 스님이 어느 가난한 집에 이르렀을 때 이 집 여인은 젖먹이를 내보이며 “저희 집에서 시주할 거라곤 이 아이뿐”이라고 말했다. 결국 스님은 아이를 어찌 받겠냐며 포기하고 돌아왔다. 이후 스님들은 시주받은 재물로 종을 만들었으나 소리가 나지 않았다. 어느 날 스님의 꿈에 부처가 나타나 “모든 시주가 같거늘, 어찌 여인의 뜻을 거절했느냐”고 꾸짖었다. 승려는 그 길로 아이를 데려와 쇳물에 넣고 종을 만들자 그제야 소리가 울렸다. ‘에밀레~, 에밀레~’ 하는 종소리가 마치 희생된 어린아이가 엄마를 애처롭게 부르는 것처럼 들렸고, 이런 이유로 에밀레종으로 부르게 됐다는 이야기다. 이 설화는 역사적 기록이 없을뿐더러 과학적으로 입증되지도 않았다. 종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사람의 뼈를 구성하는 인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 게다가 불교에서 범종 소리는 부처님 말씀이자 자비심의 상징으로, 이 전설은 범종 조성 취지와도 전혀 맞지 않는다. 다만 이 전설은 근대 이후 서양 선교사들의 기록에서 비로소 등장하며 일제강점기 자료에서 본격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한다. 이를 근거로 일부에선 조선 말 경주의 유림 세력들이 불교를 폄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퍼뜨렸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현존하는 가장 크고 아름다운 신라 종 성덕대왕신종은 높이가 3.66m, 밑지름이 2.27m, 무게는 18.9t에 이른다. 국내에 현존하는 가장 큰 범종이다. 종의 몸통 앞뒤로 새겨진 비천상과 종을 매달기 위해 만든 용머리 모양 ‘용뉴’(龍鈕) 등 신종의 화려한 문양과 조각 수법도 통일신라 불교조각 전성기의 수준을 대변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종의 가장 큰 매력은 ‘소리’다. 맑고 웅장한 소리를 지니고 있으며 무엇보다 국내 범종 가운데 가장 긴 여운을 지녔다. 이 같은 종소리의 비밀은 일정하지 않은 몸체의 두께에 숨어 있다. 두께가 다른 부위에서 나는 소리들이 서로 교란을 일으키는 ‘맥놀이’ 현상이 반복되면서 끊어질 듯하면서 끊이지 않고 길게 이어진다고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성덕대왕신종 종소리는 2004년부터 직접 들을 수가 없다. 타종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타종을 계속할 경우 종에 충격을 줘 자칫 심각한 훼손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대신 국립경주박물관이 지난해 문을 연 ‘성덕대왕신종 소리체험관’을 방문하면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다. 2020년 타음 조사 때 얻은 음원에 입체 음향 시스템을 입혀 온몸으로 소리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종소리의 여운과 함께 8세기 신라의 풍경을 만날 수 있다. 김운 역사여행가
경주의 고두반을 비롯해 도내 3개 농가맛집이 ‘향토음식 간편조리세트 공모전 경연대회’에서 선정됐다. 경북농업기술원은 지난 14일 열린 대회에서 최종 선정된 전국 8개 상품 중 도내 농가맛집에서 참가한 상품이 우선개발 2개, 예비상품 1개에 선정돼 전국 최고 성과를 거뒀다고 밝혔다. 이번 공모전은 농촌진흥청, 롯데마트, 프레시지가 공동 추진해 코로나19 장기화로 침체된 농촌형 외식·체험사업장의 활성화를 위해 기획됐다. 선정된 상품은 간편 조리식 전문기업인 프레시지와 상품화 과정을 거쳐 롯데마트 자체 상표를 달고 입점하는 기회가 주어진다. 이번 공모전에 선정된 메뉴들은 지난해 경북도 민생살리기 사업의 일환으로 농업기술원이 추진한 ‘농가맛집 특화밥상 프로젝트’의 결과물로 개발된 상품이다. 이번에 선정된 경주의 농가맛집 고두반(대표 최성자)의 ‘고두반 모듬전골’은 경주한우불고기와 낙지, 버섯, 텃밭채소를 한데 담아 담백한 육수와 함께 바로 끓여내 간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개발된 상품이다. 고두반은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800~900℃ 장작가마에서 구운 소금으로 밑간을 하며 텃밭 채소와 손수 만든 두부를 활용해 상을 차려낸다. 도예가 남편과 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딸과 함께 운영해 직접 제작한 도자기 작품과 식기류, 멋스러운 그림도 감상할 수 있다. 상주 소재 농가맛집 종달이와 보릿단(대표 김정재)의 ‘어복쟁반’은 소고기수육과 굴림만두, 직접 재배한 채소에 상주한우를 삶아낸 육수가 들어가 담백하면서도 고급스러운 플레이팅이 가능한 전골류이다. 종달이와 보릿단은 단정한 잔디마당과 계절을 알리는 식물이 잘 어우러진 곳으로 마당아래 위치한 텃밭에서 갖가지 제철 채소를 조달해 사용하고 상주 곶감을 반찬으로 활용해 제공하고 있다. 또 예비상품으로 선정된 ‘청송사과 코다리찜’은 사과를 코다리찜 소스에 활용해 남녀노소 맛있게 먹을 수 있고 직접 만든 두부도 곁들여 먹을 수 있도록 구성한 간편 조리세트로 농가맛집 두연(대표 장두연)에서 선보인 상품이다. 우선개발 상품의 개발 변경이나 추가 개발 시 활용될 예정이다. 신용습 경북도 농업기술원장은 “지난해 1시군·1특화밥상 개발에 힘썼던 만큼 이번 공모전 입상을 계기로 향토음식의 상품화와 K-면역식품개발을 위해 지속해 지원해 나갈 계획이다”고 밝혔다. 농가맛집은 농촌진흥청과 경북농업기술원이 육성·지원해 도내 30여 곳에서 운영 중에 있으며 직접 생산한 농산물 또는 지역에서 생산된 식재료를 활용함으로써 사철 건강한 상차림을 맛볼 수 있다.
경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지난 19일 세계부부의날 경주위원회와 행복한 부부문화 확산과 통합사회를 위한 업무협약식(MOU)을 체결했다. <사진> 이번 협약식은 경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 박귀룡 센터장, 세계부부의날 경주위원회 손견익 대표 등 양 기관 주요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협약의 주요 내용은 △양 기관의 주요시책 홍보를 위한 협력 △장애인 차별 개선을 위한 상호 교류 및 정보자료 교환 △각종 문화 행사, 캠페인 및 홍보와 문화교류 활성화를 위한 공동추진 △매년 부부의 날 행사시 역경 극복 부부상(1쌍) 추천 및 표창 수여 △기타 양 기관의 발전과 우호증진에 관한 사항 등이다. 경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2006년 경북지역 최초로 지역 중증장애인 당사자들이 자립적이고 자주적인 삶을 실현하고 지역사회에서 한 사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스스로의 권리와 의무, 책임을 다하기 위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부부의날 운동은 95년 5월 21일 세계최초로 우리나라 경남 창원에서 시작된 범국민 부부문화운동으로 이 운동의 세계화를 위해 1998년 조직됐다. 매년 5월 서울, 부산, 경북도 등 전국 100여 지자체에서 기념행사를 펼쳐오고 있으며, 2003년 12월 국회본회의를 거쳐 2007년 5월 2일 대통령령에 의해 국가기념일로 제정됐다. 세계부부의날 경주위원회는 부부의날을 기념하고 그 의의를 확산시켜 경주시민의 건강하고 화목한 가정형성과 행복한 부부문화를 확산하고 있으며, 오는 5월 21일 제5회 부부의 날 행사가 개최한다.
420장애인차별철폐경주공동투쟁단(이하 공투단)은 지난 22일 경주시청에서 ‘함께 삶을 위한 탈시설’을 선언하는 투쟁선포식을 가졌다.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장애를 가진 시민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정책요구를 알리고, 경주시와 지방선거 후보자들이 탈시설을 권리로서 보장해나갈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지역사회에서 갈 곳이 없어 시설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도, 삶의 막다른 길에 내몰려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람들도 모두 우리의 이웃이고 이 국민이지만 사회는 이들을 외면했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시설에 격리된 당사자들은 시민으로서의 모든 권리를 박탈당하고, 집단수용시설에 갇혀 온갖 학대와 억압에 내몰렸다”고 강조했다. 이어 “특히 지역 6개의 장애인시설 중 3곳에서 십수년째 거주인 학대가 반복되고 있음에도, 돌아갈 곳이 없어 거주인들은 학대 시설에 남겨져야만 했고, ‘중증 장애인이 갈 곳이 없다’는 이유가 시설을 유지 시켰다”고 덧붙였다. 이에, 장애인시설에서 거주하는 장애인들을 학대하는 일들이 없어져야 한다고 강조하며 ‘함께 삶을 위한 탈시설로 전면 전환’, ‘돌봄·사회서비스 공공성 강화’, ‘지역사회 주거 보장’, ‘발달장애인의 존엄한 일상 보장’, ‘공익신고자 보호 대책 마련’, ‘인권침해 대응체계 구축’, ‘교통약자 이동권 보장’을 주장했다. 공투단은 “지난 2008년 지역장애인시설 거주인 사망사건을 시작으로 지역 6개의 장애인시설 중 3곳에서 학대가 되풀이 됐다. 진실을 외면하지 않은 공익신고자만이 일터에서 쫓겨났고, 사태 책임자들은 측근들을 투입해 시설 운영을 좌지우지했다. 수년간 목격한 시설의 기능은 거주인 보호도, 복지도 아니었다. 운영자들이 거주인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재산처럼 사유화하는 곳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이런일들이 일어나서는 안된다. 경주시가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지립지원 시범사업에 선정된 만큼 지역사회 중심의 자립기반을 새롭게 구축하며, 적극적으로 장애인들을 위한 정책을 펼쳐야 할 때 이다”고 주장했다.
(사)경주시종합자원봉사센터는 지난 20일 친절한 경자씨와 함께 소외된 이웃에게 따뜻한 사랑을 전달하기 위한 ‘봄맞이 밑반찬 도시락’ 조리 봉사활동을 펼쳤다. <사진> 참! 좋은 사랑의 밥차는 lBK기업은행이 후원하고 (사)경주시종합자원봉사센터에서 운영해 매월 셋째 수요일과 목요일(혹서기, 혹한기 제외) 황성공원에서 지역사회 독거어르신 및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무료급식을 진행했으나 코로나19로 집단 급식이 제한돼 비대면 식료품 키트와 함께 밑반찬 도시락을 전달하고 있다. 이번 밑반찬 조리 활동은 밑반찬 4일치 양으로 조리했고 이는 경주 외곽지역 기초생활수급가정과 독거어르신 200세대에 전달했다. 경주시자원봉사단체 연합회 최상춘 회장은 “코로나19로 상황이 여의치 않지만 든든한 도시락으로 위안을 받고 힘이 되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어려운 이웃을 위한 꾸준한 봉사활동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자서전 쓰는 분들이 벽에 부딪히는 대부분의 경우는 아무리 돌아봐도 딱히 기억나는 것이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말이다. 지난 호에서 말했듯 자신의 인생에서 자꾸만 거창한 무엇을 찾으려고 해서다. 남들이 다 공감하고 깜짝 놀랄 만한 일은 정말 드물다. 그런 것은 정말로 큰 사건이나 사고가 있어야 기억날 만한 일이다. 보통은 어려운 시험에 합격하거나 대단한 자격증을 땄다거나 힘겹게 승진했을 때 등인데 인생에서 그런 일이 몇 번이나 되겠는가? 그게 아니면 큰 사고들이다. 연탄가스 중독이나 교통사고, 화재, 물난리 같은 끔찍한 일들이다. 그런데 이런 일들은 자신에게는 아주 중요한 순간이고 대단한 변화의 시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정말 인생에서 몇 번 일어나지 않을 만큼 귀한 사례다. 또 한 가지 자서전의 단골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것이 성공 신화다. 인생에서 빛나는 성공의 순간은 영광이자 자랑인 것은 당연하고 마땅히 기록할 만한 특급 소재다. 그런데 의외로 공감지수에서는 떨어져도 아주 많이 떨어진다. 오히려 어지간히 성공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에게 뻔하게 들어있는 소재들이라 상투적으로 보일 정도다. 다시 말해 그런 순간은 본인에게 매우 중요하고 각별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저 공부 잘하는 샌님들의 뻔한 자기 자랑일 뿐 공감하기에는 마땅치 않은 소재들이라는 것이다. 내가 대필해드린 주인공들 중에서 행정고시, 사법고시에 걸린 분들이 몇 분 되었는데 그분들의 합격기는 거의 똑같았다. 하루에 몇 시간밖에 자지 않았다. 정말 죽을 만큼 혼신을 다해 공부했다. 일차에 합격하고 나서 이차는 어떤 식으로 공부했다. 고시에 합격하고 나니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연수원 시절은 어떠했다. 연수원 시기부터 이곳저곳에서 혼담이 밀려들었다. 이건 정말이지 듣지 않아도 쓸 수 있는 너무나도 빤하고 공식처럼 똑 같은 말들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공부의 귀재들이고 기억의 천재들인 고시 합격자들이 자서전 쓰기에 앞서 한결같이 기억나는 일이 없다고 손사래 친다는 사실이다. 그도 그럴 법한 것이 평생동안 학교와 집을 오가며 공부만 하던 분들이니 특별한 기억들이 없을 법하다. 탁월한 기억력의 소유자들이 그 정도일진대 고시공부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채 평범하게 세상을 살아왔다고 믿는 분들이야 오죽하겠는가? 도무지 기억나는 일이 없을 법하다. -‘나에게 이런 이야기까지?’ 인터뷰를 통해 자신조차 잊고 있었던 보석 같은 이야기들을 찾을 수 있다. 기억나는 일은 없고 거창한 일들은 하나둘뿐인데 그럼 무슨 재주로 자서전을 쓰나? 이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인터뷰’다. 직접 쓰건 대필로 쓰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 인터뷰다. 뭐라고? 인터뷰는 두 사람 이상이 만나 정보를 얻기 위해 나누는 대화인데 혼자서 무슨 인터뷰인가? 라고 물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 예를 보자.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은 아래 질문을 보면서 자신에게도 함께 인터뷰를 진행해보자? “엄마(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나?” “초등학교(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어른이 되어) 엄마(아버지)를 기쁘게(슬프게, 화나게, 미안하게) 한 일은 없는가?” “그때 그 일로 내 마음의 변화가 있었는가?” “지금 나는 엄마(아버지)에게 어떤 존재인가?” “나는 좋은 엄마(아버지)인가?” 괄호 속의 물음은 그 자체로 또 다른 인터뷰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또 다른 소재를 찾는 열쇠가 된다. 괄호 속 대상은 형제나 자매가 될 수도 있고 친구나 엉뚱한 제 3자가 될 수도 있다. 아래 한 예를 더 보자? “생각나는 친구는 누구 누군가?” “그 친구와 무엇을 하며 놀았나, 가장 기억나는 일은?” “그 일 후 친구와의 관계는 어떻게 되었나?” “지금 그 친구와는 무엇을 하며 어떻게 지내는가?” 이렇게 무언가를 정해서 파고들면 분명히 떠오르는 사건이 있다. 그 친구를 중심으로 다른 친구도 떠오르고 또 다른 친구와 그 친구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화들도 떠오를 것이다. 한 예를 더 들어보자 “고교 시절 존경하는(혐오하는) 선생님이 있었나?” “그분을 존경하는(혐오하는) 이유는?” “그분과 따로 생각나는 기억은?” “졸업 후에 따로 찾아뵌 적은 있나?” “다시 만나면 드리고 싶은 말은?” 기억나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하다 보면 또 다른 선생님이 떠오르고 다른 선생님과 얽힌 사연들이 또 하나씩 드러난다. 초중고, 대학이나 대학원 그 이상까지 기억에 나는 선생님과 교수님들에 대한 이야기로 책 한 권이 나올 수도 있다. 또 하나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드라마틱 한 경험 한 가지를 더 들어보자. “첫사랑은 언제 겪었나?” “대상은 누구였나?” “그(그녀)와 그때 진행된 일은?” “왜 헤어졌느냐?” “그때의 마음이 어땠는가?” 첫사랑이 있다면 당연히 그 다음의 연인이나 배우자의 이야기까지 이를 수 있다. 이렇듯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면 고구마 줄기 캐듯 기억이 굴러 나온다. 기억 저 편 깊숙한 곳에 감추어져 있던 소중한 추억들이 하나씩 되살아나고 오래 잊고 있었던 사람들을 떠올리는 것 자체로 자서선 쓰기는 스스로에게 감동을 주고 새로운 삶의 활력을 준다. 실제로 자서전 쓰기를 통해 기억해낸 사람을 찾아가는 사람도 있고 오래 잊고 산 친구에게 전화를 거는 주인공들도 자주 보았다. ‘나’에게서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면 나의 주변인들에게 똑같은 식으로 인터뷰할 수도 있다. ‘그때 내가 어땠지요?’, ‘그때 우리가 무얼 먹고 살았고 무얼하며 놀았지요?’, ‘그 시기 나와 함께 지내면서 특별히 나에 대해 기억나는 것은 없나요?’ 이런 물음을 통해 나의 기억을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다. 내가 대필해준 그 천재적인 공부벌레들도 마찬가지로 이런 과정을 통해 자서전을 냈다. 인터뷰가 진행되면서 그들은 스스로에게 깜짝깜짝 놀라기도 했다. 자신에게 그렇게 놀라운 이야기들이 그렇게 많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이구동성 고백했다. 심지어 오래 잊고 있었던 감동적인 사연을 꺼내놓고는 눈물을 줄줄 흘리기도 했다. 그것은 인터뷰를 진행하는 대필자의 능력이 좋아서이기도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누구에게나 보석 같은 이야기들의 잔뜩 숨겨져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퍼부어보자. 그러면 자신조차 몰랐던 오랜 기억들이 샘솟듯 달려들 것이다.
경기도가 경기도평생학습포털 ‘지식’(GSEEK)에서 생활·취미 분야 도민 온라인 강사로 활동할 재야고수 10명을 5월 18일까지 공개 모집한다. 올해 모집 분야는 음악, 미술, 건강관리, 체육활동, 생활상식(자전거 정비, 뜨개질, 반려동물 미용, 도배/타일 등)이며, 경기도민이면 누구나 개인 또는 팀 단위로 지원할 수 있다. 지난해 도민 온라인 강사 선발에는 생활·취미, 악기연주, 건강관리 등 16명 모집에 124명이 신청해 8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경기도는 경기도형 평생학습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2019년부터 도민 온라인 강사를 선발해 현재 총 57개의 강좌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번에 선발하는 10명은 이 강좌에서 추가로 개설하는 것이다. 도민 온라인 강사로 선발되면 교육콘텐츠 기획, 스피치 교육, 강의 전략, 현직 전문강사의 1대 1 멘토링을 받은 후 강의에 직접 출연해 본인의 지식과 노하우를 교육콘텐츠에 담아낸다. 해당 콘텐츠는 ‘지식’(GSEEK)에 탑재된다. 교육내용에 대한 학습자의 질의가 있을 시 답변을 하는 등 강좌 운영에도 참여한다. 지원 방법은 경기도 지식 누리집(gseek.kr) 상단 ‘더 보기’ 메뉴에서 ‘도민 온라인 강사 신청’을 선택 후 지원서 서식을 내려받아 작성하고, 강의 소개를 담은 3분 내외 동영상과 함께 압축파일로 제출하면 된다. 모집이 완료되면 제출된 지원서와 영상을 바탕으로 도민과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단에서 1차, 2차 심사를 거쳐 10명을 최종 선발한다. 경기도의 이 같은 시도는 교수나 유명전문가들로 구성하던 이전의 강사진을 실생활에서 내공을 쌓은 생활형 고수들로 대체해 훨씬 실질적이고 친화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시작된 것으로 평가된다. 도민이나 시민을 대상으로 각종 강좌를 개설하는 지자체들이 참고할 만한 사항이다. 한편 경기도가 운영하는 ‘지식’(GSEEK)은 외국어, IT, 인문소양, 생활·취미 등 총 1500여개의 온라인강좌와 실시간 화상학습, 1대 1 화상상담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