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개는 증식과 농가 소득 증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날의 무계획적이고 무분별한 개체수 증가로 혈통관리가 어려워져 대접을 받지 못하는 천연기념물 토종개로 전락하였다. 경주개 동경이 혈통관리의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진도개는 일제 강점기인 1938년에 조선총독부 직속 보물 고적 명승 천연기념물 보존회 위원이었던 경성대학의 모리 타메조(森爲三)교수가 진도를 방문하여 조사한 시학보고서(視學報告書)에 의해 조선의 명견으로 지정되었다. 해방 후에도 진도개 명견 등록제도는 유지되었으나 일제의 잔재로 인식되어 잘 지켜지지 않았다. 또 진도개는 6.25를 거치면서 생활이 궁핍하여 개에게 신경 쓸 만큼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아 방치되어 잡종화로 인해 멸종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진도개란 이름은 모리 타메조(森爲三)교수의 진도 현지답사 보고서에 사용한 명칭 그대로가 견명이 되었고, 보고서는 진도개의 우수성 및 고유성에 대한 평가보다는 조선총독부가 조선의 국권 피탈(한일합방)의 당위성을 정당화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편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진도개의 기원과 역사성의 의미가 축소되고 왜곡되었다. 해방 후에도 진도개의 역사성과 기원에 대한 우리나라의 독자적인 조사와 연구가 부족했다. 구전으로 오늘날까지 내려온 진도개에 대한 기원은 삼국시대에 남송(南宋)의 무역선이 진도 섬 근해에서 조난되었을 때 배에 함께 있었던 개가 진도로 유입되어 진도개의 선조가 되었다는 송나라 무역선 표류견 설, 다른 하나는 서기 1273년경 삼별초 군을 토벌한 몽고군이 철수할 때 자기 나라로 데려간 진도 주민들이 고향으로 돌아올 때 데리고 온 몽고 개가 지금의 진도개라는 설, 또 조선 초기에 진도군 지산면에 설치된 군마 육성 목장에서 경비견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몽고에서 들여온 개가 진도개의 원종이라는 설들이다. 구전된 설들은 역사적 고증과 학문적으로 정립되지 않아서 진도개의 기원으로 보기에는 학술적으로 부족함이 많다. 오늘날 학문적으로 정립된 진도개의 기원은 우리나라 토종개가 진도의 기후와 풍토에 적응한 토착견으로 오랜 세월 진도 섬 지역에 격리되어 품종의 고유성을 유지해온 것으로 정리하여 문화재청에서 소개하고 있다. 진도군은 진도개의 날을 제정하여 매년 5월 3일∼5일까지 진도개 페스티벌 및 우수 진도개 선발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또 진도읍 등외리 일대 약 6만여 평에 진도개 사육장, 홍보관, 진도개 선수촌, 경견장(대형 운동장) 등 진도개 테마파크를 조성하여 진도의 유명한 관광코스로 진도의 자부심이 되었다. 현재 진도개는 전남 진도군 진도개 축산과에서 행정적인 관리를 하고 있으며, 약 4000개의 농가에서 약 1만3000두를 키우고, 4000두를 천연기념물로 등록하여 관리하고 있으며, 전국적으로 약 25만두가 분포되어 있다. 지난 2021년 8월 동물보호단체에 의해 천연기념물로 등록된 진도개가 식용 개 농장에서 발견되고, 또 개고기 시장의 가두리장에 갇혀 있는 진도개, 천연기념물인데 식용으로 거래되고 있다는 언론 보도로 인해 전국적인 비난을 받았다. 보호보다 증식으로 인한 농가 소득 증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관리정책 때문이다. 또한 진도개 보호에 대한 시민 인식과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동물보호단체에서 진도개 법 개정을 요구하여 담당 부서가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진도군에서는 진도개를 사육하는 농가를 약 600가구, 천연기념물 지정 두수를 1500두, 진도군 총 사육 두수를 2000∼3000두 내외로 축소하는 계획을 세웠고, 사육 농가들에 대한 엄격한 출산과 혈통 관리를 하고 분양견에 대한 중성화 수술 등으로 개체수를 조정하는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진도개는 전라남도와 진도군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인해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토종개의 맏형이 되었고, 진도의 명품이며 진도의 랜드마크가 되어 관광자원이 되었다. 그리고 지역민의 사랑도 받았다. 그러나 지난날의 무계획적이고 무분별한 개체수 증가로 혈통관리가 어려워지면서 오늘날과 같은 반려견 대접을 받지 못하는 천연기념물 토종개가 되었다. 지난날의 명성을 잃어가고 있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경주개 동경이 혈통관리의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최석규 경주개 동경이 혈통보존연구원장, 경주신문 독자위원 이 기사는 지역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