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노래한 시는 너무나 많은 것 같다. 얼마 전 집 근처 영천강을 자전거로 달리다 발견한 자목련(紫木蓮)을 보고 가곡 ‘목련꽃 그늘 아래서’를 흥얼거리며, 인터넷을 뒤져보니 경주가 낳은 대표적인 시인 박목월 시인이 작사한 것을 뒤늦게 알고 나의 무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0년 전 아일랜드에서는 아침 산책길에 길가에 피는 수선화(daffodile)를 보고 봄이 가까웠음을 알게 되었고 큰딸 어릴 때 찾았던 강진읍내 영랑생가에서 뜨락에 핀 모란을 보며 ‘찬란한 슬픔의 봄’을 노래한 시인을 떠올리며 지나가는 봄날에 대해 안타까워하기도 했었다. 무엇보다 고등학교 고전 시간에 배운 이백(李白) 시인의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에 나오는 ‘고인 병촉야유 양유이야(古人 秉燭夜遊 良有以也 - 옛사람들이 촛불을 켜고 밤에도 즐기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라는 멋진 시구는 필자가 다니는 서실에서 붓글씨로 써보는 호사를 매년 반복할 정도로 봄을 노래한 시는 길고 추운 겨울을 이겨낸 우리에게 봄꽃이 주는 아름다움을 확증시켜 주는 것 같다. 1993년 봄 당시 김영삼 정부는 지방 청와대 개방을 꺼내 들며 법석을 떨었다. 우선 충주와 진해 저도의 지방 청와대 개방, 군항제 기간 중 진해 주요 부대 영내를 개방하여 군항제를 찾은 전국의 시민들에게 개방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즈음 어느 날 필자가 근무했던 진해 해군작전사령부 사무실로 한 통의 문의 전화가 왔다. 당시 필자는 정훈공보처 공보과장으로 근무했는데, 한겨레신문 경남도청 출입기자로부터 “이번에 부대를 개방하게 된 배경과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전화 인터뷰였다. 그래서 필자는 우선 생각나는 대로 “문민정부 시대를 맞아 부대 영내를 개방함으로써 시민들이 영내의 벚꽃을 감상하며 민과 군이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취지”라고 대충 답변했다. 문제는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다. 사무실에 배달된 한겨레신문에 박스로 큼지막하게 필자의 전화 인터뷰가 보도되는 바람에 당시 공보규정과 절차를 준수하지 않고 언론에 공개한 필자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한겨레는 장교나 군무원이 부대 내에서 구독할 수 없는 신문으로 여겨져 보도 분석을 담당하는 정훈공보실에서만 구독이 가능한 매체였다. 해서 필자는 허가도 없이 한겨레 기자와 인터뷰한 사실이 알려지면 문제가 될 수 있는 일이라 인근 부대 정훈실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당일 한겨레신문을 폐기해 달라고 부탁했다. 공보 책임자였던 필자로서는 그해 봄날 KBS ‘6시 내 고향’에서 며칠 전 대통령 별장으로 쓰여 군사기밀로 분류되어 허락받지 않으면 들어가지도 못할 그곳을 촬영·제작해서 전 국민에게 방영함으로써 국민적 관심을 끌기도 했다. 하루는 KBS라디오 프로그램 담당 PD가 전화를 걸어와 꼭 필자와 생방송 전화인터뷰를 해야 한다며, “현역 군인 중에서 ‘문민정부’라는 표현을 처음 쓴 것은 당신이 처음”이라며 취재 섭외가 와 이를 고사하느라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30년이 지난 지금 신정부가 청와대를 개방한다고 온 나라가 시끄러운 것을 보니 30년 전 해프닝이 ‘데자뷰’를 보는 듯하다. 개방에 앞서 국민의 의중을 잘 헤아리기 바란다. 진해의 벚꽃은 일제가 심어놓은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군항제의 처음 시작은 ‘이충무공선양회’가 주축이 되어 나라사랑 정신을 기리는 뜻에서 비롯되어 전국단위의 축제로 자리잡게 되었다. 여기에 해군 군악의장대 시범과 한참 뒤 생겨난 ‘세계 군악축제’ 등 다양한 이벤트가 추가됨으로써 오늘에 이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축제의 볼거리를 떠나 그 정신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진주 유등축제의 시작도 1950년대 말 개천예술제에서 시작되었다. 개천절을 계기로 한 백일장에서 비롯되어 유등을 남강 위에 띄움으로써 전국적인 축제로 자리매김한 경우이다. 한편 필자가 살던 아일랜드의 봄은 세인트패트릭 데이(St. Patrick‘s Day) 축제로 유명하다. 이 축제는 5세기 말경 아일랜드의 목동으로 유럽에 건너가 신부가 되어 척박한 땅에 복음을 전하다 사망한 패트릭 성자의 사역과 기도, 복음전파의 노력을 되새기는 순례의 길을 탐방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그런 정신은 간데없고 축제와 돈벌이에 집중하다 보니 심지어 중학생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기네스 맥주에 취해 거리를 배회하며 비틀거리게 되었다. 고향 경주에도 봄꽃 축제가 한창이다. 봄이 주는 화사함과 화려함은 한순간도 놓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곁에 머물다 순식간에 지나버린다. 꽃을 보고 좋아하며 감상하고 즐기는데 무슨 정신과 이데올로기가 필요할까마는 얄팍한 상술과 돈의 논리에 의해 우리의 일상이 침해되어서는 안 될 것이기에 경계할 부분이라 여긴다.
1984년에 ‘미드나잇 블루(Midnight Blue)’란 제목의 팝송이 선물처럼 찾아왔다. 당시 고교생인 필자는 기분 좋으면 마냥 ‘미~드나잇’하면서 흥얼거렸던 기억이 있다. 분명히 기억하건데, 성악가의 창법이었고 몽환적인 느낌의 달콤한 노래였다. 이 노래를 부른 루이스 터커(Louise Tucker/1956-)는 본업이 오페라 가수다. 그녀는 영국의 브리스톨에서 태어나 런던의 명문학교인 길드홀 음악원에서 오페라 성악을 공부했다. 이후 오페라 가수로 무대에 올랐지만, 돌연 대중가요 가수로 변신했다. 미드나잇 블루는 그녀의 데뷔곡이다. 그런데 미드나잇 블루는 놀랍게도 베토벤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다. 베토벤의 3대 피아노소나타 중 하나인 8번 비창 2악장의 멜로디에 가사를 얹은 것이다. 따라서 미드나잇 블루는 작품도 가수도 클래식에 기반을 두고 있는 대중가요인 셈이다. 요즘에는 성악가가 대중가요를 부르는 모습이 익숙하지만, 1980년대에는 흔한 일이 아니었다. 메조소프라노인 루이스 터커의 목소리는 대중가요 시장에서 차별성을 가질 수 있었고, 바로 히트곡 대열에 합류했다. 마치 태풍의 눈이 되어 유럽의 인기차트를 휩쓸었고, 앨범은 5백만장이나 팔려나갔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성악가가 대중매체에서 버젓이 대중가요를 부르는 일이 일어났다. 작년에 별세한 가수 이동원은 당시 서울대 음대 교수였던 테너 박인수와 듀엣으로 ‘향수’라는 곡을 불렀다. 그때가 1989년이다. 당시에 향수는 거의 국민가요처럼 불렸다. 루이스 터커의 미드나잇 블루가 향수의 흥행에 당연히 큰 영향을 미쳤다.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8번 비창은 1799년에 작곡된 것으로 보인다. 20대 후반으로 청력에 이상이 생긴 시기다. 하지만 유서를 쓸 정도로 좌절한 시기는 아니다. 그래서 모차르트의 향기가 풍긴다. 아무 정보 없이 이곳을 들었을 때, 베토벤의 작품이라기보다는 모차르트의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또 이작품은 모차르트의 후계자(필자가 생각하기에 그렇다)인 차이콥스키의 동명작품에도 살짝 끼어 있다. 6번 비창교향곡 1악장을 들어보면 비숫한 멜로디가 발견된다. 이것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봉화금씨 성재(惺齋) 금난수(琴蘭秀,1530~1604)는 금학사 영렬공(英烈公) 금의(琴儀,1153~1230)의 후손으로, 부친 금헌(琴憲,1493~1576)․모친 영양남씨 남식(南軾)의 따님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외가인 안동에서 청계 김진(金璡,1500~1580)에게 수학하였고, 월천(月川) 조목(趙穆)의 누이동생과 혼인하였다. 이후 구봉령(具鳳齡)․권대기(權大器)․김팔원(金八元)․조호익(曺好益)․이정(李楨) 등과 교유하였고, 처남 조목의 조언에 따라 퇴계의 문하생이 되었다. 그의 호는 송나라 사양좌(謝良佐,1050~1103)의 늘 깨어있는 ‘상성성(常惺惺)’을 따라 경(敬)을 중심사상으로 삼았다. 1561년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여러 참봉직을 거쳐 직장(直長)․장예원 사평․봉화 현감 등을 역임하였으며, 말년에는 청량산 일동(日洞)에 고산정(孤山亭)을 짓고 산수를 즐겼다. 그가 남긴 『성재일기』는 25세~27세의 일상기록과 31세~32세의 유람과 과거시험의 기록 그리고 46세~75세의 관직생활 후 고향에서 지낸 30년간의 기록 등 50년간을 시간의 순서로 기록하였고, 개인의 일상과 사회활동을 소소하게 담은 것이 특징이다. 영양남씨․월성손씨․안동권씨 등 혼반을 통해 경주에 자주 왕래하였는데, 1581년에는 태조 영정을 봉안한 경주의 집경전 참봉이 되면서 경주와 인연이 깊어졌고, 이듬해 영천을 거쳐 경주에 입성한 후 소소한 일상을 날짜별로 중요한 일상을 간략히 기술하였다. 『성재집』에 수록된 한시를 미뤄보면, 퇴계의 문인으로 봉원(逢原) 이안도(李安道,1541~1584)와 간재 이덕홍(李德弘,1541~1596) 등을 경주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간재는 공무로 경주에 머물며 서로 만나 회포를 풀었고, 이후 『동경유록』을 통해 경주유람을 기술하였다. 『간재집』에 「김학봉․윤채련․권이계(송소의 옛날 호이다) 세 사람에게 차운하여 드리다(次呈金鶴峯尹採蓮權伊溪 松巢舊號 三同人)」 한시를 통해 서로를 언급하였다. 임오년(1582) 5월 25일부터 8월 17일까지 80여일 이상을 경주에 머물렀고, 영천을 통해 모량으로 경주에 입성한 후 경주부 - 백률사 – 진장(陣場) - 월성관 - 집경전 재실 - 봉황대 - 불국사 - 이견대 - 토함산 - 석굴 - 불국사 - 집경전 - 월성 - 분황사 - 포석정 - 오릉 – 아불역(아화) 등을 오갔다. 집경전 재랑(齋郞)에 임명되어 경주부윤 안종도(安宗道,재임1580.12~1582.12)를 만났고, 여러 벗과 이견대를 향해가다가 토함산을 지나며 시를 지었고, 포석정과 오릉의 여러 옛 자취들도 보았다. 그리고 옥산서원에서 회합을 마치고 손엽․이경해 등과 회재 선생의 글을 강학하고 토론하였으며, 계정의 경치를 감상하였다. 게다가 집경전 재실에서 동료 관리인 경주이씨 이홍각(李弘愨) 그리고 함창수령 오경로(吳敬老)·이홍정(李弘靜)․주사준(朱士俊) 등 지역의 많은 인사와 만났다. 세세한 정보를 담은 유람기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그의 소소한 기록은 경주지역의 인물 정보를 살피는데 도움된다. •성재일기(惺齋일기) 중에서 1582년 경주 이야기 5월 25일. 아돌(鵝㐚)과 모량(毛梁) 두 역에서 쉬었다. 임소에 당도하다. 5월 26일. 부윤과 반자(半刺)를 뵈었다. 가장(家獐)에 동참하였다. 6월 3일. 부윤이 연못 가운데 새로 지은 정자에서 정충원(鄭忠元)을 전별하는데, 나를 부르기에 동참하였다. 6월 6일. 숙윤이 두 아동(衙童)과 함께 백률사를 구경하러 갔다. 6월 17일. 월성관에서 왜인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다. 7월 3일. 청허재(淸虛齋) 손엽(孫曄,1544~1600)과 이경해(李景海)가 찾아왔다. 7월 8일. 봉황대에 올라가 불어난 물을 구경하였다. 7월 27일. 불국사에 갔다. 임여장(任汝張)이 술병을 차고 찾아왔다. 악공 몽충(夢忠)과 기생 억지(億之)를 데리고 갔다. 7월 28일. 이견대로 길을 나섰다. 토함산에 들러 김종직 선생의 시에 차운하였다. 7월 29일. 흐리고 비가 내려서 일출을 보지 못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석굴에 들렀다가 불국사로 내려왔다. 7월 30일. 집경전 재실로 돌아오는 길을 나섰다. 저녁에 부윤이 불렀다. 8월 4일. 남원(南院)에 가서 이홍정, 이홍각, 주사준과 만나 함께 월성에 올라가 구경하고 지나는 길에 분황사에 들렀다가 돌아왔다. 8월 8일. 포석정과 오릉을 보러 갔다가 돌아왔다. 부윤에게 절구 세 수를 올렸다. 8월 16일. 부에 들어가 부윤에게 하직 인사를 하였다. 저녁에 반자가 안세준(安世俊)과 함께 재당(齋堂)에서 전별해 주었다. 8월 17일. 길을 나서서 아불역(阿弗驛)에서 묵었다.
“엄마, 요즘 인스타에서 핫한 곳에 가서 우리도 사진 찍으면 안 돼?” “엄마, 아빠 오늘까지 끝내야 할 작업이 있어서 안 돼!” “다른 사람들은 멀리서도 일부러 사진 찍으러 오는데, 우린 가까이 있으면서 그것도 못 해? 친구들은 주말마다 가족끼리 놀러 다닌다는데... 엄마, 아빠는 주말이면 더 바쁘다고 하고...” 딸아이의 힘 빠진 말에 하던 일을 잠시 내려놓고 지난 주말 대릉원으로 향했습니다. 절정을 이룬 벚꽃 덕분인지 화창한 날씨 덕분인지 황리단길부터 대릉원 후문 입구까지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코로나가 무색할 정도로 말이죠. 대릉원에 들어가면서 펼쳐지는 한적한 풍경에 일상에 대한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자연만큼 좋은 약은 없다고 했나요? 초록색 나뭇잎과 곳곳에 개화한 목련, 벚꽃, 산수유 등 봄꽃의 향연에 시작하는 설렘과 심리적 안정감이 느껴졌습니다.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도 함께 말입니다. 고분과 고분 사이 목련나무 포토존에는 꽃이 지는 시기임에도 사람들의 줄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우윳빛 뽀얀 자태를 뽐내며 제일 먼저 꽃을 피우는 목련은 봉우리때도 활짝 피었을 때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습니다. 반면 꽃이 떨어지고 색깔이 시커멓게 변해 초라해지기 시작하면 다른 봄꽃들의 등장으로 금세 외면을 받죠. 하지만 대릉원 목련나무만큼은 예외입니다. 꽃이 화려하게 필 때도 꽃이 질 때도, 푸른 잎이 무성할 때도, 가지만 앙상하게 남았을 때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꾸준히 받고 있죠. 주위 고분들과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만들어진 풍광, 목련나무 중에서는 가장 축복받은 나무가 아닐까 엉뚱한 생각을 해봅니다. 딸아이는 대릉원 곳곳을 누비며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셀카 삼매경에 빠졌습니다. 목련 나무를 배경으로 사진 찍는 것은 오래 기다린 관광객들에게 양보한다고 합니다. “엄마, 난 경주에 살고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아. 남들은 계획하고, 오랫동안 차 타고 와야 하는 것을 난, 잠깐 엄마 아빠만 설득하면 올 수 있잖아” 딸아이의 고단수 설득에 걸려든 것이었을까요? 그래도 좋습니다. 시간을 쫓기는 현대인들이 자신의 시간을 할애해 경주를 찾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아이 말대로 누군가는 계획하고 시간을 내서 찾는 이 곳이 직장에서 5분 남짓한 거리에 있다는 것이 참 행운입니다. 대릉원에서 마주한 자연, 주위 고분과 조화를 이루며 매력을 뽐내고 있는 목련나무. 생생한 기억의 조각들이 분명 머지않아 저의 발걸음을 다시 이 곳으로 옮기게 할 것 같습니다.
밴드 퀸(Queen)은 80년대 일부의 사람들에게는 뜨거운 감자였다. 음악의 완성도나 열정을 떠나 내놓고 좋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했다. 사회적 편견이 지금보다 훨씬 심할 때였고 특히 에이즈나 동성애에 관한 한 죄악시 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그 모든 편견들이 일거에 무너진 사건이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2018년)’였을 것이다. 세계를 강타한 퀸 공연의 완벽한 재현은 그 시대 음악 팬과 지금의 신세대를 가리지 않고 거대한 용광로처럼 세상을 락 밴드 ‘퀸(Queen)’의 세상에 몰아넣었다. “저는 그림 그리는 사람이지만 이 영화를 미술 관련 영화에 양보할 수 없었어요” JJ갤러리 관장 겸 ‘공간접기’로 자신만의 미술 영역을 개척한 김정자 화백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인생영화로 추천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제가 좀 이상하게 보일지 몰라도...’라는 단서를 붙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오래 묵은 선입견에 대한 트라우마일 것이다. “제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감동적인 음악에 매료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프레드 머큐리’의 열정적인 삶에서 얻은 공감대가 커서이기도 합니다” 김정자 화백은 이 영화를 보면서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했을 때 가장 행복하다는 사실과 꿈을 가지고 있으면 언제건 반드시 그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믿게 되었다고 영화의 가치를 설명한다. “사실 어린 시절 그림보다는 공부하기를 바라신 부모님의 뜻을 이기기 어려웠어요. 그래도 지금 이렇게 그림을 그리고 있으니 얼마 행복한지 모릅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퀸의 리드 보컬 프레디 머큐리(1946~1991)의 열정적인 음악인생을 담은 영화다. 영국령 인도의 잔지바르 스톤타운에서 영국 총독부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난 프레디 머큐리, 인도명 파로크 불사라는 1964년 아랍인과 인도인을 위협하는 혁명을 피해 영국으로 이주한다. 런던의 일링 예술대학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한 프레디는 음악에 더 관심이 커 여러 밴드 활동을 하다 평생지기이자 맴버인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 드러머 로저테일러가 활동하는 ‘스마일’이라는 밴드에 합류한다. 1971년 퀸으로 이름을 바꾸고 자신의 이름도 프레디 머큐리로 개명한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바로 이 스마일 합류 지점에서 시작한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모두 확인했다시피 이때부터 프레디 머큐리는 쟁쟁한 명곡들을 히트 시키며 퀸을 세계적인 밴드로 키운다. 그들이 부른 명곡들과 노래에 따른 에피소드들도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프레디 머큐리에 완벽하게 빙의한 주연 라미 말렉의 신들린 듯한 연기와 출연자들의 놀라운 퍼포먼스 역시 전기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차고 넘치게 보여준다. “특히 마지막 공연장면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일 겁니다” 김정자 화백이 강조한 마지막 공연 장면이란 1985년 7월 13일 런던의 웸블리 경기장과 미국 필라델피아 존 F. 케네디 경기장에서 동시에 열린 자선공연 ‘라이브 에이드(Live Aid)’다. 당시의 기라성 같은 락 그룹들이 참여한 이 공연은 세계에서 무려 15억 명이 텔레비전을 통해 봤으며 에티오피아 기아구제를 위해 당시 돈으로 수백만 달러의 기금이 조성되는 등 숱한 화제를 뿌렸다. 영화는 그 라이브 에이드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은 퀸의 프레디 머큐리가 에이즈에 걸린 상태에서 미친 듯 쏟아내는 폭발적인 공연장면을 완벽히 재현해 특별한 감동을 준다. 그런 열정을 자신도 작품 속에서 담고 싶다는 것이 김정자 화백의 솔직한 바람이다. 경주와 인근 도시 미술인들을 위한 전시공간인 JJ갤러리를 운영하는 한편 공간접기라는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영위하는 데도 바로 이 열정이 큰 몫을 한다고 고백한다. 올해 5월 자신의 JJ갤러리에서 개인전, 9월 15일부터는 경주예술의 전당 알천갤러리에서 초대 개인전, 11월~12월 중에는 경주문화엑스포 공원 내 솔거미술관 초대 개인전을 각각 준비하고 있는 김정자 화백은 이 자체로 자신의 열정을 보여주고도 남는다. 영화의 제목에 나온 ‘보헤미안’은 체코 서부 보헤미아 지방 사람을 일컫는다. 프랑스 사람들이 춤과 노래를 즐기며 떠도는 사람들을 보헤미안으로 착각해 부르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사회적 관습이나 규율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예술가들을 통칭하는 명사가 됐다. 김정자 화백의 미술에 대한 지치지 않는 열정과 세계 영화 팬들을 열광시킨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장르를 넘어 절묘하게 크로스 된다.
(사)경주시종합자원봉사센터는 이달부터 약 6개월간 경주시민을 대상으로 자원봉사자의 집 ‘나눔실천家’를 추천 받고 있다. 자원봉사자의 집 나눔실천家란 2015년부터 지역사회를 위한 자원봉사활동에 헌신하는 자원봉사자들 중 자원봉사 활동시간, 기간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공헌 등을 기준으로 선정하고 있다. 선정된 나눔실천家들의 주택에 ‘자원봉사자의 집’문패를 부착해줌으로써 그들의 열정과 봉사정신을 널리 알리고 있으며, 선정된 나눔실천家들은 리더쉽 및 마을공동체 교육 등을 통해 지역 내 자원봉사 리더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나눔실천家 기본 자격요건은 1365자원봉사포털시스템에 최근 2년간 자원봉사활동 등록시간이 100시간 이상이고, 포털시스템에 가입한지 3년이 넘어야 한다. 선정된 자원봉사자에게는 문패 부착과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을 촬영하여 홍보하고, 경주시종합자원봉사센터의 주요 프로그램 우선 참여권과 역량강화를 위한 교육 참여 기회가 부여된다. 추천방법은 (사)경주시종합자원봉사센터 홈페이지(www.경주자봉.org) 공지사항 및 SNS, 경주시청 홈페이지에서 신청서를 내려 받아 작성하여 e-메일이나 센터로 현장 접수하면 된다. 참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경주시종합자원봉사센터 홈페이지를 참고하거나 전화(054-771-1365)로 문의하면 된다.
경주를 찾는 외지인들은 상당수 관광목적이 대부분인 여행객이다. 그러나 경주는 역사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성지와 같은 곳이고 박물관 관련 업무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보물창고와 같은 곳이다. 한국문화유산협회에서 근무하는 유명 페부커 여송은 씨는 경주를 출장차 다니러 온 모양이다. 처음 경주에 등장할 때부터 경주의 전문가들은 물론 관련 업계의 사람들로 보이는 분들이 여송은 씨가 어디를 들러고 어디를 페이스 북에 올리는지 죽 따라다니는 듯한 모습이다. 그만큼 인기 높은 인싸라는 게 여실히 증명된다. 페이스북에는 사진만 올렸지만 여송은 씨가 운영하는 블로그에는 훨씬 상세한 사진들과 설명이 올라가 있다. 여송은 씨가 가장 먼저 올린 경주 소식은 한 장 절정인 벚꽃나무다. ‘똥은이 없다’는 애교 섞인 글 한 줄과 경주의 왕벚나무가 전부다. 여기에 98개의 ‘좋아요’가 달렸고 21개의 댓글이 달렸다. 이 댓글 속에서 여송은 씨가 경주에 온 것을 알 수 있다. 누군가 경주에만 가면 사람이 유치해진다며 풍경사진을 열심히 찍어보라고 권한다. 유치해진다는 말이 오히려 듣기 좋다. 두 번째 포스팅은 경주산림환경연구원 옆 카페인 브로스에서 찍은 장면이다. 여송은 씨는 없고 중년 이상의 남성들이 약속이나 한 듯 오른쪽 다리 위에 왼쪽 다리를 올린 모습이 인상적이다. 함께 동행하는 분들인 듯. ‘경로당 봉사온 얼라’라는 말에 웃음이 터진다. 세 번째와 다섯 번째 포스팅은 월암재다. 김호 장군을 모시는 재실인데 지금은 고택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아쉽게도 숙박은 미리 예약을 하지 못해 불발된 듯하지만 덕분에 많은 분들이 월암재 고택체험을 알 게 된 듯싶다. 네 번째 포스팅은 옥룡암 뒤쪽, 경주사람들에게는 탑골로 알려진 탑곡 마애불상군이다. 경주사람들은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 소풍장소로 익숙하지만 외지인들에게는 다소 낯선 곳이다. 불교유적의 백미이자 여송은 씨가 썼듯 황룡사 9층목탑의 원형을 유추해볼 수 있는 곳이다.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는 헌강왕릉이라 알려진 릉과 진달래가 주인공이다. 경주가 능의 도시라 할 만큼 큰 능이 많지만 헌강왕릉을 일부러 찾아간 것은 아마도 동남산 일대를 일부러 돌아본 덕분인 듯 보인다. 블로그에는 정강왕릉도 함께 소개됐다. 이런 모든 유적들이 한창인 벚꽃, 진달래와 함께 어울려 경주의 정겨움을 한층 돋보이게 꾸몄다. 포스팅은 여송은 씨가 했지만 페북을 통해 수백 명의 사람들이 함께 경주를 다닌 것이 여실히 보인다. 포스팅마다 150개 가까운 ‘좋아요’가 달렸기 때문이다. 한 명의 인싸가 SNS상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여송은 씨 페북으로 충분히 알 수 있다. 출장으로건 관광으로건 앞으로도 경주에 자주 들러서 더 여러 곳을 소개해 주시면 고맙겠다.
춘입운림경물신간변도행총정신(春入雲林景物新澗邊桃杏摠精神) 구름 든 숲에 봄 오니 새로운 풍경들, 개울가 복사꽃 살구꽃 천지가 아득하네. 망혜죽장종금시임수등산흥갱진 (芒鞋竹杖從今始臨水登山興更眞) 짚신 신고 대지팡이 짚어 지금 출발하니, 물 따라 산 오르는 즐거움 다시금 변함없네. 「임거십오영을말. 조춘 기1(林居十五詠乙末. 早春 其一)」 회재선생의 옥산 ‘이른 봄’ 시 구절이다. 회재선생의 시조 구절구절 선비의 향기로 품어져 구성진 봄을 피워내고 있다. 시낭송가 심문희선생 읊조리는 시의 가락이 환청인양 구성지게 장단을 맞춘다. 독락당 마당 묵은 세월 수월찮게 손님을 맞았을 천년기념물 주엽나무 무성하다. 조각자나무로도 불리는데 수령은 450여년 독락당 울안 터줏대감이다. 중국사절로 다녀온 이로부터 기증받은 것으로 추측한다. 세월의 향기를 품어내는 향나무 산수유나무 동산의 대나무 등은 회재선생이 손수 심은 식수들이다. 옥산정사(玉山精舍) 현판글씨는 퇴계 이황선생 필체다. 역사의 흔적을 생생한 숨결로 지펴 논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23세 생원시 합격 후 사용했던 지관(紙冠)∙인종어찰(仁宗御札)∙고문서(古文書)∙벼루∙연적∙옥인(玉印)∙옥각대(玉角)帶)∙갓끈∙관자∙복두∙유서통 표주박∙젓대(笛) 등. 상여 대신 관(棺)을 운구한 굵고 긴 대나무막대기를 친견하면서 와 닿는 느낌은 눈물겹다 회재선생이 별세하자 죄인으로 누명쓴 장례를 도우려는 사람이 없었다. 타향의 엄동설한에 부친의 시신을 부둥켜안고 밤낮으로 통곡하니 지나가는 객들이 도와주어 귀향길에 올랐다. 거짓 모함으로 귀양살이 시킨 문정왕후와 윤원형 일당들에게 또다시 피해를 당하지 않으려 고심했다. 빠른 한양(서울)길을 택하지 않고 동해바다길 변방으로 숨어서 둘러왔다. 역적으로 몰린 유배지에서 맞은 주검이라 장례식 절차마저 선뜻 나서지 않는 암울한 현실이었다. 머나 먼 귀양살이 끝에 운명 달리한 부친의 시신을 고향산천으로 모시려 죽을힘을 다했다. 모함꾼들에게 들키지 않으려 동상으로 피고름 든 몸을 가누며, 상여도 곡소리도 감춘 기약 없는 시간에 애끓는 속울음만 삼켰다. 유품으로 남겨진 곧은 대막대기엔 피눈물로 얼룩진 피붙이 효성이 묻어난다. 양쪽 대막대기에 널을 동여매 썰매로 미끄럼 태워 운구한 기막힌 사연이다. 유일한 혈손 잠계공 이전인 부자지간(父子之間) 정 하늘도 통곡했으리. ‘무잠계 무회재’ 잠계공 아들이 없었다면 아버지 회재도 없었다 할 만큼 효심의 은혜 귀감인 아들이다. 평안북도 강계 유배지까지 동행해 자식 된 도리를 다했다. 부자간 문답한 『관서문답록(關西問答錄)』이 전해진다. 천지인, 하늘과 땅의 이치를 공부하고 인간의 도리를 실천하는 학문의 무량함이 선비의 향기로 우뚝하다. 독락당 옥산정사에서 13층 석탑이 보이는 정혜사지 옛터를 걷는다. 흙 담장을 끼고 민들레 제비꽃 살가운 풀꽃들의 향연에 영혼을 풀어내는 심신이 가볍다. 쉬엄쉬엄 시골정취에 취하다보면 닿는 정혜사지다. 정혜사지 13층 석탑은 아담한 자태 속에 품격이 새어나오는 통일신라 탑이다. 목탑의 형식을 겸비한 보기 드문 석탑의 양식으로 국보로 지정되었다. 조성 당시 쌍 탑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 한 기 훼손된 자취에 외톨이로 남아, 골 깊은 산새의 기(氣)를 받아 흐트러짐 모른다. 『동경잡기(東京雜記)』 “정혜사는 자옥산 아래에 있다. 회재 이언적 선생이 소시에 여기에서 학업을 닦았다. 그 절의 창건한 연대는 어느 해인지 모르나 예로부터 전해오기를 신라의 고찰(古刹)이라 한다. 부처님 앞 탁자(卓子)의 다리에는 치화원년정월일조(致和元年丁月日造)라는 여덟 글자가 있고, 선생이 손수 쓴 동유록(同遊錄)이 법당의 북쪽 가운데에 있으며, 영잠(楹箴) 7구가 북쪽 벽 동창(東窓)에 있다. 후인이 그것들이 먼지로 더러워질까 저어하여 드디어 모두 그 글자를 새기고, 분을 칠하고 비단으로 가려놓았다. 옥산서원(玉山書院) 창건 후에 이로 인하여 완호사(完護寺)라 하였다.” 춘심산야백화신독보한음립간빈 (春深山野百花新獨步閑吟立澗濱) 봄 깊은 산과 들에 온갖 꽃 새로워, 홀로 거닐어 한가히 읊으며 개울가 서있네 위문동군하소사홍홍백백자천진 (爲問東君何所事紅紅白白自天眞) 봄의 신에게 묻노라면 자연이 피워낸 붉고 흰 온갖 빛깔 하늘의 뜻이라네. 회재선생 옥산 「임거십오영을말 모춘 기2(林居十五詠乙末 暮春 其二)」
4월 5일은 식목일이기도 하지만, 1860년 4월 5일은 37세 청년 수운이 경주 용담에서 나라를 바로 세우고 역사의 주인공으로 인간답게 살아가자는 동학의 무극대도를 깨달은 날이다. 수운은 위기에 처한 나라를 걱정하며, 민중에게 각성을 요구하며, 각자 삶의 개혁을 통해 보국안민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종교의 메시지가 아니라 사회 개벽을 이루어 내고자 한 것이다. 그는 1년 동안의 반추 또 반추의 심사숙고 후 그 방법과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포덕을 시작한다. 수운이 처음 한 일은 한문이 아니라 민중을 깨우치기 위해 아름다운 한글 가사로 ‘용담가’를 짓는 것을 시작으로 전라남도 남원을 오가며, ‘동경대전’ ‘용담유사’를 집필했다. 163년 전, 수운 선생께서 이 땅에 동학을 심은 해이자 실학자 최한기의 영향을 받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가 세상에 나온 해이기도 하다. 동학의 발상지에 살아가고 있는 경주시민들은 과연 수운 최제우와 동학을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동학을 말하면 동학농민혁명보다는 수운 최제우와 해월 최시형 선생을 먼저 떠올릴 때, 동학을 바르게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경주 최씨 정무공 최진립 장군의 7대손인 수운 최제우는 1824년 10월 28일 현곡면 가정 1리에서 경주의 대유학자 근암공 최옥의 아들로 태어났다. 재가녀의 아들로 태어나 벼슬길이 주어지지 않았지만, 아버지 근암공의 사랑과 지극한 교육아래 수준 높은 학문적 경지에 이르렀다. 또한 시천주라는 인간존중 사상을 바탕으로 신분 철폐, 척왜를 통한 보국안민을 주창했다. 링컨이 정치적 목적으로 노예제 금지를 주장했다면 그보다 앞서 최제우는 자신의 노비 중 1명을 수양딸로, 1명은 며느리로 받아들이며, 진정한 신분 철폐와 인간 평등을 실천했다. 3년의 치열한 공생애를 살다 영남 유생들의 모함과 위기의식을 느낀 지배세력에 의해 혹세무민하는 서학으로 몰려 억울하게 1864년 3월 10일 대구 장대에서 순도했으니, 그의 나이 41세였다. 우리는 그날 19C 세계사에 기록될 천재 사상가, 철학자이자 조선 최고의 시·문장가인 수운이라는 대학자를 잃은 것이다. 그의 가르침은 제자 해월 최시형과 동학인들에 의해 ‘동경대전’ ‘용담유사’로 간행돼 영원히 이 땅에 남길 수 있었다. 동학을 알아가는 방법으로 몇 권의 도서를 권장한다. 추천도서로 저학년은 ‘Who? 한국사 최제우, 최시형’ / 청소년은 ‘동경대전(풀빛 출판사)’ 성인은 작년 4월 도올 김용옥 선생님께서 평생의 대업으로 역주한 ‘동경대전(통나무 출판사)’과 ‘용담유사’를 꼭 접해보길 권한다. 책을 통해 수심정기, 혼원지일기, 외유기화, 성경신, 무위이화, 동귀일체, 불연기연의 의미를 알아갈 때 비로소 수운과 동학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동경대전은 서양의 사상, 철학, 과학을 뛰어넘은 고조선으로부터 내려와서 경주의 수운 최제우에 의해 완성된 위대하고, 자랑스러운 우리 민족의 바이블인 것이다. 우리나라 고유의 근대사를 출발시킨 동학은 인류의 미래 이상이며, 경주의 정체성은 동학에서 찾아야 한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경주가 낳은 수운 최제우를, 해월 최시형을, 동학을 시민들이 모른 채 살아가고 있음이 너무나 안타깝고, 답답하다. 이는 우리의 책임이고 우리의 무지인 것이다. 수운은 동학을 ‘지기금지 원위대강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 21자로 함축했으며, 순도 35년 후 전국에서 일어난 동학농민혁명당시 동학농민군들과 전봉준 장군은 밤새 주문을 외우며 마음을 가다듬고, 다음날 전투에 임했다고 한다. 오늘의 우리는 수운이 자신의 숭고한 철학을 표현한 21자 주문의 의미를 되새기며, 천지자연에 경외심을 갖고 인간·생명·자연 존중의 조화로운 삶을 살아갈 때, 진정한 평등, 평화, 공정한 사회를 이룩할 수 있고, 나아가 기후·생태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천지개벽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수운은 ‘동학’이라는 가르침을 통해 인간 내면의 혁신을 이루고,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어가고자 했던 경주가 낳은 우리 민족의 스승이자 세계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다. 동학혁명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동학은 우리 모두의 역사이고, 문화이고, 경주의 콘텐츠다. 동학이 경주시의 미래전략인 만큼 동학의 역사, 문화를 활용한 콘텐츠 제작 및 공간 활용 방안 등을 다방면으로 모색해야 한다.
>>ESD와 지속가능발전대학(上)에 이어 SDGs 채택 이후 한국에서는 평택을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서 지속가능발전대학이 설립 운영되었다. 지속가능발전대학은 SDG 목표 4번인 ‘양질의 교육’을 충족시키려고 했다는 점에서 지방 ESD(지속가능발전교육), ESDGs 교육으로 규정할 수 있다. 여기서 ‘양질의 교육’은, 양질의 학습자(Quality Learners), 양질의 환경(Quality Learning Environment), 양질의 자료(Quality Content), 양질의 교육과정(Quality Process), 양질의 산출물(Quality Outcomes)을 포함한다. 이는 지역사회의 지원, 수강생 개인의 준비된 상태, 적합한 자료와 시설의 구비, 주요 이슈에 관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자료와 교육과정, 잘 관리된 교실과 배움을 촉진하기 위한 능력 있는 평가를 포함한 수요자 중심의 교육 접근법을 이수한 교사들을 통한 교과과정, 사회 내에서 긍정적인 참여와 국가별 교육목표와 연계된 지식, 능력, 태도를 포함하는 산출물이라고 할 수 있다. 전국 각지에서 지속가능발전대학 기획과 운영의 시스템 접근 시도는 추진 기관(지역 지속가능발전전협의회 서비스)의 교육과정, 교수·학습(지속가능발전대학 서비스), 인적 역량 형성(지속가능발전대학 준비 스텝의 서비스), 시설(운영 서비스), 파트너십(지역사회 지원 서비스)에 관한 이해뿐 아니라 교육환경과 서비스를 높였다. 지속가능발전대학을 함께 준비한 지방자치단체와 지역대학은 SDGs 추진력으로서 인적·재정적 자원과 전문적 지식과 정보, 교육 장소(강의, 워크숍, 졸업식)를 제공했다. 그리고 다양한 직업군, 성별, 연령대를 포용하며 평생교육의 기회를 제공했다(이창언, 2020a: 413). 지속가능발전대학은 전국지속가능발전협의회 지역 조직의 위상 제고와 조직혁신을 촉진했다. 지속가능발전대학 과정을 통해 시정 거버넌스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확산되었으며, 후속 조치로 협치 조례, 지속가능발전조례를 제정하고, 협치위원회와 지속가능발전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제도화와 SDGs 이행체계 구축에 기여했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도 높고 건너야 할 강은 깊다. 그리고 여러 과제와 교훈도 남겼다. 경주시에서 지속가능발전대학을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준비하고 이를 통해 지역 ESD(지속가능발전교육)의 성숙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ESD에 대한 총체적 시스템(whole-system approach) 접근이 필요하다. 이 총체적 시스템 접근을 위한 영역 프레임워크는 거버넌스(정책/의사결정/재정과 예산/모니터링과 평가), 교육과정(과정/교수/학습), 인적 역량 형성(리더십/전문성 신장/인적 자원), 시설과 운영, 파트너십 등 다섯 가지 영역 요소에 대한 촘촘한 계획 수립, 모니터링 평가와 피드백을 통한 개선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Connelly, 2013: 88-90). 지방자치단체는 예산뿐만 아니라 SDGs 교육과 실천의 성공적 이행을 위해 매우 중요한 데이터 수집과 모니터링, 제공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2030 의제(SDGs, 지속가능발전목표)에 대한 책임과 투명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도움과 자원, 그리고 기술적인 노하우와 역량계발이 필요하다. 경주시 지속가능발전대학이 개최되기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 기업, 대학, 중간지원조직, 시민사회단체가 협력하여 공동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맞춤형 교육 지원사업을 통해 지역사회 SDGs 접근 방법과 도구를 제공해야 한다. 지속가능발전대학은 지방자치단체의 리더와 주요 의사결정자, 공무원, 도시회복력 및 적응분야 전문가들,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로 하여금 SDGs 지표 개발과 평가를 하도록 하고, 파트너십을 강화할 수 있는 지역사회 SDGs 플랫폼(SDG platform) 구축의 촉진자로 설계되어야 한다. SDGs 플랫폼이 장기적으로 종합 도시계획 메커니즘(collaborative municipal planning mechanism)이 되기 위해서는 경주대를 포함해 지역 소재 대학의 역할이 중요하다. 또한 ESD 교육의 지속성과 내용성 확보, 이슈화, 재원 확보를 위해서는 경주시 지속가능발전대학 네트워크 구축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한편, 지역사회가 협력하여 지역 대학에 통합적 관리 틀인 지속가능도시센터(가칭)를 설립하는 것도 생각해 볼 때다. 이는 중간지원조직의 난립, 중복사업, 예산 낭비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센터는 ESD 커리큘럼 개발은 물론 학위, 비학위 교육프로그램 제공 외에 지역의 지속가능발전전략을 둘러싼 정책개발, 의사결정 컨설팅, 학술 연구의 수준 향상과 지방자치단체와 대학의 사회서비스 능력 제고와 실행에도 기여할 수 있다(이창언, 2020a: 415). 현재 경주시의 여러 가지 여건을 고려할 때 SDGs의 현지화를 위한 전제는 지속가능발전대학을 준비하는 한편,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경주시 ESD 네트워크(명칭은 네트워크 구축의 필요성이 공유될 경우 후속모임에서 진행)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는 ESD의 포괄적, 참여적 과정을 확대하는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ESD 네트워크는 분과학문 간 연계, 지역사회 ESD 네크워크 간 연계를 통해 지역사회 현실에 부응하는 지속가능발전 커리큘럼의 혁신과 개발, 체계적인 커리큘럼 계발, 시민과 이해관계자 참여, 교육과정,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제공할 수 있다.
현재 친환경 공간으로 시민들의 애정을 한 몸에 받는 ‘서천둔치’의 옛 모습은 어땠을까? 32년 전 본지 기사에 담긴 사진 한 장에는 그때 당시의 서천 풍경을 그대로 전하고 있다.<왼쪽 사진> 사진에는 하천 제방과 바로 밑에서 무성히 자라 오른 수풀, 그리고 강물 줄기 등 개발 전 모습이 담겼다. 본지 45호(1990년 10월 26일자)에는 홍수 때 재해를 막기 위한 콘크리트 제방만 있었던 사진과 함께 당시 서천의 개발 필요성을 제기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당시 기사에 따르면 ‘천년 경주의 역사를 지켜온 젖줄 서천을 현실과 부합되는 방향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의견이 조심스럽게 개진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서천의 개발은 지역사회에서 처음으로 제기되는 방안이어서 상당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고 전한다. 이 같은 의견은 지역발전연구회 정기세미나에서 나왔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상당한 반응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했다. 또 개발 방안으로는 기본적으로 고속도로 진입로 부근에서 유림까지 4km를 전면적으로 추진한다는 것. 세부적인 내용으로는 여름철 우수기 홍수에 대비하기 위한 물넘이둑을 서천교를 중심으로 2개 이상 설치해, 물넘이둑 안쪽을 가능한 한 호수로 만들고, 하천 바닥은 준설해 퇴적물로 인한 범람을 막는다는 것이다. 또한 강변은 양쪽 모두 제방을 일정한 높이까지 쌓아 이면도로와 분리하고, 제방 아래에 각각 고수부지를 조성해 호수와 함께 시민 위락시설로 사용하는 한편, 제방과 고수부지 지하에는 현재 시내에서 흘러들어오는 오수를 처리할 수 있는 오수관을 매설해 유림 아래쪽으로 정화 처리한다는 구체적인 계획까지 보도했다. 이에 드는 예산은 하천 바닥을 준설해 나오는 골재와 모래를 재산으로 처분할 경우 오히려 예산을 충당하고도 남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면서 서천 개발이 현재의 기대대로 추진된다면 서울의 한강변 개발과는 달리 고도로서의 상징성을 살릴 수 있다고 했다. 이와 함께 조경 전문가의 참여와 강변도로와의 조화 여부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는 제언도 했다. 이 같은 제안이 경주시 정책으로 정해지고 예산이 반영된 것은 1993년으로 추정된다. 1994년 8월 23일자 본지 제215호에는 그해 상반기 주요 시책사업 추진 상황에서 서천고수부지 조성 관련 예산이 포함된 것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당시 본지는 예산 1억원을 들여 잔디식재, 객토 등 서천고수부지 조성 사업을 설계 중에 있다는 내용을 도표를 통해 보도했다. 이후 제220호(1995년 1월 1일자)에는 경주시 신년 추진 사업으로 ‘서천 고수부지 정비’ 사업에 대해 요약 보도했다. 당시 기사에는 ‘경주시는 서천 고수부지를 더 확충하고 지난해까지 정비한 공간에는 생활체육시설(3만4280㎡)과 부대시설(1만2520㎡)을 만들 예정이다’고 했다. 생활체육시설은 잔디축구장, 배드민턴장, 사이클링장, 족구장, 배구장 등이고, 부대시설은 산책로, 진입로, 계단, 배수시설, 주차장 등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도면으로 이 계획을 상세하게 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완료되지 못했고 주차장 용도로만 사용돼왔지만, 현재 서천둔치의 기본 틀이 정립된 시기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서천둔치, 개발 필요성 제기 14년여 만에 완성 서천둔치 조성 사업이 본격화된 것은 시간이 한참 흐른 뒤인 2003년이었다. 고 백상승 전 시장의 역점 추진사업이었다. 본지 제617호(2003년 9월 8일자)는 서천둔치 개발이 본격 추진된다는 보도를 통해 사업 내용을 소개했다. 이어 제626호(2003년 11월 17일자)에는 ‘2005년까지 서천둔치 조성 마무리’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기도 했다. <오른쪽 사진▶> 각각의 기사에는 ‘방치된 서천둔치 개발 사업이 9월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경주시는 시가지를 감싸고 있는 남천·북천·서천 등 3대 하천 둔치를 국제문화관광도시에 걸 맞는 여가·레저·자연학습단지로 만들기로 하고, 우선 서천둔치를 8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사로 살펴본 당시 사업계획은 이렇다. ‘서천교에서 북천 합류지점까지 길이는 2214m, 넓이 32~65m, 총면적 14만6000㎡ 규모다. 이 면적에 성토가 끝나면 자전거도로 2120m, 조깅코스 1950m, 산책로 1000m를 조성한다. 또 각종 이벤트를 개최할 수 있는 광장과 주차장, 농구장, 족구장을 각각 조성해 시민들의 휴식공간과 체력단련 공간을 제공하기로 한다’는 소식이다. 앞서 그해 7월엔 경주시는 서천둔치 조성 및 이용시설 설치사업 보고서를 완료했었다. 그러나 이 사업은 당초 계획보다 1년 앞당겨진 2004년 4월경 완료됐다. 당초 조성하려 했던 농구장, 족구장 등 각종 체육시설이 들어설 자리를 잔디광장으로 만들고, 산책로, 자전거도로, 인라인스케이트 도로 등만 갖춰 공사를 마무리한 것이다. 본지 662호(2004년 8월 16일자)에는 이 같은 사실을 보도했지만, 공사가 축소된 이유는 명확하게 찾을 수 없었다. 다만, 관리관청인 부산지방국토관리청의 지적이 있었던 것으로 전했다. 그리고 홍수로부터의 안전문제 등을 우려하면서 시의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했다. 어쨌던 서천둔치 조성사업은 1990년 10월 개발 필요성이 제기된 지 14년여 만에 완료된 셈이다. 이후 서천둔치는 북천둔치로 이어지고, 보문관광단지까지 이르는 강변 산책로가 조성되면서 현재 많은 시민들이 이용하고 있는 친수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내년 말까지 남천둔치와 서천·북천 연결된다 2022년 현재 경주 시가지를 감싸고 있는 남천·서천·북천 둔치는 업그레이드 중이다. 경주시가 서천·북천·남천을 연결하는 수변문화 힐링로드 조성 사업을 내년 연말 완공을 목표로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이는 현재 연결되지 않은 남천둔치와 서천둔치를 연결하는 사업이다. 완공되면 남천과 서천, 북천, 그리고 보문관광단지까지의 이어지는 친수공간이 조성된다. 남천의 교촌교와 형산강 합류부인 문천교까지의 1.7km 구간에 둔치를 조성하는 이 사업은 현재 1차분 공사가 공정률 50%를 넘어섰다. 시는 4월 2차분 공사 착공과 함께 6월 1차분 공사를 완료하고, 오는 12월 2차분 공사도 준공한다는 계획이다. 이어 내년 말까지 산책로 정비를 완료하고 전체 사업을 완료할 예정이다. 남천둔치에는 3400㎡ 면적에 잔디를 식재하고, 1.7km 길이의 산책로 및 자전거도로가 설치된다. 또 체육시설을 비롯해 가로등, 화장실 등 부대시설을 갖출 계획이다. 이 사업이 완료되면 친수공간으로 자리매김한 서천둔치와 연결되는 새로운 힐링로드가 조성돼 시민들에게 휴식·운동 공간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호에서는 본지에 실렸던 과거 개발 전 서천 풍경 사진을 통해 향후 추진되는 사업을 짚어볼 수 있어 기록의 가치를 새삼 느끼게 해주고 있다.
(사)대한노인회 경주시지회 경로당 행복도우미 45명이 지난달 30일 경북행복재단(경상북도이웃사촌복지센터)이 진행하는 ‘2022년 경로당 행복도우미 기본교육’을 이수했다. 이번 교육은 23개 시·군 경로당행복도우미 관리사 및 경로당행복도우미 등 약 460여명을 대상으로 실무역량증진을 위한 교육이다. 경로당행복도우미들이 실제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된 교육은 오미크론 확산 방지를 위해 유튜브를 이용한 비대면 방식으로 진행됐다. 교육 내용은 △경로당행복도우미 역할과 배경(경상북도이웃사촌복지센터 장정민 대리) △치매예방교육(한국시니어인지교육협회 박양미 대표) △노인 인권과 상담(서연상담복지연구소 이승민 소장) △국가건강검진 및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안내(국민건강보험공단 대구경북지역본부) 등이다. 경주시지회 경로당 행복도우미는 오미크론 확산으로 경로당은 폐쇄됐지만, 자택방문 또는 유선상담, 다양한 야외프로그램, 행복갤러리와 유튜브 업로드, 비어있는 경로당 방역소독 및 관리 등 다양한 활동을 활발히 수행하고 있다. 2019년부터는 △복지 코디네이터(말벗·안부·안전 확인) △프로그램 코디네이터(건강·여가·취미 증진) △경로당 코디네이터(생활방역·행정 및 회계 지원·경로당 시설 점검 등) 등 3중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경북행복재단 이욱열 대표이사는 “이번 교육으로 경로당행복도우미의 역할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상담, 프로그램 제공, 경로당 관리 등 어르신들께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해 행복한 경로당을 만드는데 노력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경상북도이웃사촌복지센터는 경북도 민선 7기 핵심공약 사업인 경로당행복도우미 사업을 위탁 받아 △경로당행복도우미 사업의 실태 및 효과성 연구 △품질향상지원 사업 △역량강화 교육 등을 전담·수행하고 있다. 앞서 지난 2월 24일엔 경로당 행복도우미 담당 공무원, 수행 담당 책임자, 행복도우미 관리사 등 약 50여명을 대상으로 운영 매뉴얼 교육을 진행했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경주시가 최근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함에 따라 입원·격리자 생활지원비 56억원(국·도비)을 긴급 편성·지원한다. 이는 경주지역에 지난달부터 하루 1000~2000명에 이르는 확진자가 발생한데 따른 긴급 조치로, 올해 본예산이 소진됨에 따라 원활한 생활지원비 지급을 위한 것. 코로나19 생활지원비는 2020년 2월부터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입원 또는 격리 통지를 받고 이를 성실히 이행한 사람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지급된다. 그동안 가구원 수와 격리일수 등에 따라 차등지급(1인/7일 기준 24만 4400원)됐지만, 방역지침이 변경되면서 지난달 16일부터 1인 10만원, 2인 이상 가구 15만원 등 정액지원으로 변경됐다. 단 격리기간 동안 유급휴가를 제공받은 자, 공공기관 등 종사자, 해외 입국 격리자, 격리·방역수칙 위반자 등은 지원대상에서 제외된다. 지원신청은 격리 해제일로부터 3개월 이내에 주소지 읍면동행정복지센터에서 하면 된다. 경주시 관계자는 “긴급 예산 편성을 통해 생활지원비 지급 지연에 따른 시민 불편을 해소할 것”이라며 “추후 추경을 통해 시비도 확보하겠다”고 전했다. 한편 경주시는 지난 2020년 998건에 6억5200만원, 지난해는 3999건에 30억2400만원의 생활지원비를 지급한 바 있다.
하이웃이주민센터와 경주 우리작은도서관이 각각 우수교육지원프로그램에 선정됐다. 하이웃이주민센터는 2022년 이주배경청소년 교육지원사업인 레인보우스쿨 위탁운영기관에 4년째 선정, 경주 우리작은도서관은 올해 처음으로 ‘삼성꿈장학재단 배움터교육지원사업’에 선정된 것. 하이웃이주민센터의 레인보우스쿨은 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이 여성가족부의 지원을 받아 진행하고 있는 사업이다. 중도입국청소년들의 입국초기에 한국사회의 적응을 돕기 위해 한국어 교육과 특기적성교육, 다양한 문화체험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하이웃 이주민센터는 우리작은도서관(성건동 소재)에서 2019년부터 지금까지 4년동안 매년 평균 30여명의 학생들을 도와주고 있다. 올해 진행되는 레인보우스쿨은 3월 28일부터 11월 27일까지 시간제로 운영되며,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후 2시부터 오후6시까지 기초한국어교육, 영어·수학교육, 동화구연 등 다양한 특기적성프로그램을 비롯해 특별히 심리상담도 함께 병행해 운영하며 학생들의 심리상담 및 진로상담도 함께 도와줄 예정이다. 경주 우리작은도서관이 선정된 삼성꿈장학재단의 배움터교육지원사업은 지역적,사회적,경제적인 이유로 교육지원이 필요한 아동/청소년에게 양질의 교육기회를 주는 사업이다. 특별히 우리작은도서관은 하이웃 이주민센터 교육기관으로써 지난 4년동안 평일에 경주시 성건동지역에서 중도입국아동·청소년들을 위한 방과후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최근 중도입국청소년들이 많이 늘어나고, 이에 따라 주말돌봄에 공백이 어려움이 많다는 이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이들을 위한 돌봄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주말돌봄프로그램을 기획, 공모에 선정이 됐다. 프로그램은 4월부터 기초한국어를 비롯해 동화구연활동, 다양한 체험활동, 발표회와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며, 특별히 입국초기 한국어 능력이 부족한 중도입국아동청소년 15명이 우선적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운영시간은 2022년 4월부터 2023년 1월까지 매주 토요일 오전10시부터 오후3시까지 진행된다. 김조훈 센터장은 “경주 성건동지역에는 고려인들을 비롯하여 부모가 모두 외국인인 가정들이 많이 있으며, 이들이 대부분 한국어 능력이 부족해서 학습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부분이 많아 이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많이 필요하다”며 “이번에 선정된 교육사업들이 지역내 중도입국아동청소년들에게 주말돌봄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아이들의 돌봄공백이 최소화되고, 이들을 위한 학습권이 제대로 보장받을수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한편 하이웃 이주민센터는 외동지역에서는 상담센터를 통해 외국인 근로자들의 생활을 지원하고 있고, 성건동지역에서는 우리작은도서관을 운영하면서 지역 내 이주배경청소년들의 방과후 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본지는 향가 연구가 김영회<인물사진> 선생이 주장해온 신라 향가의 새 해석법을 집중적으로 보도했고 이와 관련한 학술회의와 신간 등에 대해서도 꾸준히 보도해왔다. 우리나라 고대 문학사에 향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막중함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 일본 학자인 오쿠라 신페이 교수의 해석과 이를 논박한 양주동 박사의 해석 이외에는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한 향가 해석에서 김영회 선생의 주장은 매우 혁명적이고 논리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기존 향가해석의 기반을 뒤흔든 김영회 선생의 향가해석은 이후 여러 학회를 통해 검증받았고 김영회 선생 자체로도 이론을 보강해왔다. 2019년 1월, 김영회 선생은 그간의 연구를 천년향가의 비밀이란 책으로 출간했으며 올해 1월에는 이 책의 내용을 보충한 개정판을 펴내기도 했다. 그런 한편 김영회 선생은 만엽집이 우리 향가의 영향을 받았다는 새로운 학설을 주장하며 연구에 매진한 결과 자신의 해석방법으로 만엽집을 풀어내기도 했다. 본지는 김영회 선생의 향가 해석과 만엽집 해석을 각각 15회씩 연재하며 향가의 새로운 지평을 소개한 바 있다. 김영회 선생은 만엽집의 핵심 노래와 다소 무작위적인 추출을 통해 만엽가를 해석했고 2021년 4월 ‘일본 만엽집은 향가였다’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이후 김영회 선생은 본격적으로 만엽집 전체를 체계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해 이미 30여편을 새로 해석하는 성과를 거뒀다. 만엽집이 향가의 한 분류라는 것을 향가 해석법을 통해 밝혀가고 있는 김영회 선생의 연구성과는 고대사의 교류를 통해 새로운 한일관계를 열어가는 데도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본지는 새롭게 해석된 일본 만엽집의 내용을 지면으로 소개해 향가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북돋우는 한편 김영회 선생의 향가해석법으로 풀이된 새로운 만엽가를 통해 양국 문화교류의 원류를 찾는데 작은 보탬이 되고자 한다. 독자들의 관심을 기대한다.
경주와 출향인 사회를 넘나들며 이슈의 인물을 집중적으로 인터뷰하고 보도해온 본란이 이번 호까지 모두 160호를 기점으로 잠정 중단에 들어간다. 박근영 기자는 본지 서울지사장 취임 이후 이 코너를 시작,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도 꾸준히 유지해왔으나 최근 확진자 수가 급증하면서 대면을 꺼리는 사회 분위기와 출향인 간 대외교류의 단절로 인해 원활한 취재가 어렵다고 판단, 이 코너를 코로나19 상황이 호전되기까지 잠정 중단할 계획이다. 셔블&서울 경주사람들은 향후 코로나19가 진정되면 다시 게재할 예정이다. 이를 대신해 박근영 기자는 SNS 시장의 발전과 함께 개인 글쓰기가 최고조에 이르고 개인적으로 자서전을 내거나 올해 실시되는 제8회 지방자치단체선거와 관련 정치인들의 자서전 출판이 붐을 이루는 등 자서전 쓰기에 대한 수요가 많음을 고려, 체계적인 자서전 쓰기에 대한 글을 올릴 예정이다. 매회 2000 자 정도의 규모로 진행될 앞으로의 연재는 ‘누구에게나 드라마는 있다’는 제목으로 진행되며 자서전을 기획하고 쓰는 전 과정을 박근영 기자의 경험에 기반해 면밀히 소개될 예정이다. 박근영 기자는 본지 서울지사를 맡기 전 2008년부터 자서전 전문 출판사인 ‘두두리’를 설립해 유명 정치인과 경제인들의 자서전을 꾸준히 출간해 왔으며, 그 자신이 직접 유명인들의 자서전을 대필해 10여명의 인생을 출판한 전문인이다. 특히 2000년대 이후 인터넷 카페와 블로그가 유행하면서 daum 블로그 ‘386세대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인기를 얻었으며 이때 연재한 초등학교 시절 추억담을 ‘니 꼬치 있나’라는 자전적 수필집으로 펴내 2007년 미디어 다음에서 실행한 ‘올해의 책’ 17위에 오르기도 했다. 박근영 기자는 2008년 이후 8년 동안 서라벌신문 서울취재본부장을 맡아 활동하며 만 7년 동안 350여명의 출향인을 인터뷰했으며 이 인터뷰를 바탕으로 인터뷰 책자인 ‘기파랑 1, 2’권을 펴내기도 했다. 박근영 기자는 2015년부터 4년 동안 경주최부자댁을 면밀히 취재하고 최부자 종손인 최염 선생을 오랜 기간 인터뷰한 끝에 ‘The 큰 바보 경주최부자’ 시리즈 세 권을 썼다. 이중 첫 권인 ‘숨겨져 있던 놀라운 이야기들’을 2018년 4월 출판해 교보문고, 영풍문고, 예스24 등에서 베스트 셀러를 기록했다. 2019년 12월부터 본지 서울지사장으로 활동하면서도 ‘셔블&서울 경주사람들’을 연재해 그간 140여명을 인터뷰하고 본지를 통해 보도했다. 박근영 기자는 “자서전 쓰기는 누구에게나 아주 매력적인 도전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하는가 하면 전문 작가들에게는 새로운 시장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자서전 쓰는 것을 지나치게 어렵게 생각해 엄두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며 현역 작가로 활동하는 사람들도 어떤 방법으로 인터뷰하고 어떻게 전개해 나갈지를 몰라 좋은 시장을 놓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번 제8회 지방자치선거의 경우 전국적으로 수백 명의 지방자치단체장이 자서전을 출간했어요. 제 경우 2월과 3월에 부탁받은 대필 의뢰가 5~6군데 되었습니다. 몸이 여럿이 아닌 것이 아쉬웠지요” 박근영 기자는 그러나 동시다발로 출간되는 이런 자서전들이 경우에 따라 수준 이하의 날림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자서전 시장에 참가하는 작가들이 자서전을 출간하려는 사람들을 전문적으로 주도하는 역량이 부족한 결과라고 진단한다. 특히 박근영 기자는 미국이나 유럽은 자서전 대필작가들이 ‘연대기 작가’라는 이름을 걸고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엄청난 유명세를 얻는 반면 우리나라는 대필작가라고 하면 성공하지 못한 삼류작가들쯤으로 분류된다며 이런 면에서도 전문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사실은 국내 유명 작가들도 자서전 대필을 하는데 이 경우 매우 높은 원고료를 받지만 막상 내용을 보면 기대 이하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자서전 특유의 인물 중심적 기술이나 주인공을 입체적으로 묘사하는 힘, 특히 정치인이나 경제인의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이 마케팅 측면인데 이런 면들이 전혀 고려되지 않거든요” 작가의 기량과 상관없이 자서전은 화자 즉 주인공이 어떤 목적으로 자서전을 쓰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접근해야 하는데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작가들은 글 쓰는 재능과 상관없이 이런 점에 취약하다는 설명이다. 박근영 기자는 이번 연재를 시작하면서 틈틈이 대필 시장에 관심 있는 현역 작가들이나 자서전을 쓰고 싶어 하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자서전 쓰기’를 강의형식으로 실행해볼 예정이다. SNS 시장이 급격히 발달하면서 실제로 자신의 이야기를 꾸준히 쓰고 있는 사람들도 늘어나는데 조금만 요령을 알면 훨씬 좋은 자서전을 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박근영 기자는 그 자신 ‘니 꼬치 있나?’라는 책을 통해 개인의 이야기에 시대상이 반영되거나 뜻밖의 재미를 줄 수 있다면 의외의 소득을 얻을 수도 있다고 조언한다. 그런 한편 박근영 기자는 이번 연재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뜻밖에도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찾는다. “저희 어머니가 올해 87세이신데 작년 겨울에 저에게 공책 세 권을 주시는 겁니다. ‘내 자서전을 써두었으니 네가 책으로 내봐라’고 하시면서 말입니다. 중학교밖에 나오지 않은 노모가 연필로 한 자 한 자 눌러 쓴 노트를 보면서 감동도 감동이지만 ‘자서전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박근영 기자는 팔순 노모조차 쓸 수 있는 자서전인데 대부분 중등교육 이상을 받은 요즘 사람들이 자서전을 못 쓸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적어도 열 개 이상의 드라마는 가지고 있습니다. 자서전은 그런 드라마틱한 장면들과 함께 오래 잊고 있었던 자신만의 보석을 찾는 의미 깊고 재미있는 작업입니다. 저와 함께 자신에게 숨겨진 이야기들을 찾아보시지요” 연재를 시작하는 박근영 기자는 특유의 여유로운 웃음을 웃는다. 앞으로 본지에서 연재할 ‘누구에게나 드라마는 있다’를 열심히 읽다 보면 누구나 자서전 작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간다. 자서전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니 누구나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책을 쓸 수 있는 것이다.
경기도가 올해부터 경기북부 접경지역에 시행하는 주민주도사업이 여타 광역지자체가 눈여겨볼 만한 사업으로 떠오른다. 경기도는 지난 4일 정주 여건 개선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역주민 주도의 ‘접경지역 주민 자생적 마을 활력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는 접경지역 7개 시군을 대상으로 하는 마을 단위 소득사업으로, 주민들이 사업을 직접 발굴하고 운영하도록 함으로써 사업에 대한 책임감과 응집력을 높여 활력 넘치는 ‘자립형 강소마을’을 구현하고자 도입했다. 이번 사업에는 지난해 추진한 ‘접경지역 빈집활용 정주여건 개선사업’이 정주 여건 개선에만 집중됐다는 점을 고려, 이번에는 주민들이 소득사업을 주도적으로 시도해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사업을 설계했다. 경기도는 이 사업에 1단계 ‘주민역량강화’, 2단계 ‘사업기반구축’ 및 ‘마을종합개발’ 순으로 단계별로 추진하되, 대상 지역 마을의 역량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그에 맞춰 다음 단계로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경기도는 1단계에서는 마을 자원을 분석하고 마을 공동체 전문가를 투입 마을주민들에게 맞춤형 교육과 현장포럼 등을 제공해 주민들의 역량을 강화해 스스로 ‘마을개발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하고, 2단계에서는 1단계에서 수립한 ‘마을개발계획’을 검토해 2단계 대상자를 선정, 본격적인 설계 용역 및 시설공사를 추진해 마을개발에 나서게 된다. 지난해 10월 공모 및 서면·현장 평가 절차를 거쳐 파주 봉일천리, 양주 연곡리, 포천 기산리, 연천 원당리 접경지역 4개 마을을 올해 1단계 주민역량강화 사업 대상지로 선정해 본격적으로 1단계 사업에 착수하게 되고 올 하반기에는 이들 중 2개 마을을 2단계 사업 대상지로 확정,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진행할 방침이다. 이번 사업은 단순히 경비를 지원하던 기존의 지원방법에서 탈피, 주민들이 스스로 소득사업을 발굴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길을 찾도록 동기를 부여했다는 점에서 향후 지자체들의 주민지원사업이 새로운 형태로 진화할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 관심이 모아진다.
아이가 다른 뚜렷한 증상 없이 37.8도 이상의 발열만 일주일 이상 지속된다면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은 그 원인을 찾기 위해 혈액검사, 소변검사, 흉부 x-ray 등 여러 가지 검사를 한다. 기저질환이 없던 건강한 아이가 갑자기 5일 이상 발열이 있을 경우 의사들이 먼저 의심하는 질환 중 하나가 가와사키병이다. 가와사키병은 통상적으로 환자의 임상 양상을 보고 진단을 내리는 만큼 환자가 발열 이외에 어떤 임상적 특징을 보이는지도 중요하다. 하지만 전형적인 가와사키병의 경우 겉으로 보이는 뚜렷한 증상들이 있는 반면 비전형적인 가와사키병의 경우 전형적인 가와사키병에서 보이는 명확한 증상이 없거나 부족한 상태에서 지속적인 발열만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 혈액검사 혹은 심장초음파 결과를 보고 진단을 내리기도 하므로 진단에 유의를 요하는 병이다. 그럼 가와사키병이 어떤 질병이며 어떻게 진단을 내리고 어떤 치료를 해야 하고 어떤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자.
보자기를 소재로 한 춤과 노래, 전통의상이 어우러진 흥겨운 마당놀이가 열린다. 전통에 대한 아름다움과 쓰임을 알 수 있는 보자기아트 공예체험으로 보자기의 다양한 매력을 즐길 수 있는 문화의 장이 황리단길에 펼쳐진다. 한국보자기아트협회가 보자기 속 아름다운 가치를 알리기에 나섰다.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황리단길 내 한옥 카페와 음식점 ‘빛구리’ ‘줄리스’ ‘레이지선데이’에서는 오는 15일부터 24일까지 보자기 전시 및 공연, 체험 행사가 진행된다. 이번 행사는 잊혀 가는 전통혼례문화를 테마로 MZ 세대들에게 전통과 우리의 혼례문화가 더욱 가까워지는 새로운 문화의 장으로 마련될 예정이다. 한국보자기아트협회는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인 보자기 문화를 세련된 감각으로 재해석한 보자기아트 trend-setter 작가들의 모임이다. 한국보자기아트협회 경주, 울산, 포항지회 작가들의 공동전시로 마련된 이번 전시는 모든 세대가 공감하고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보자기 아트의 신선하고 아름다운 가치를 알리기 위한 취지다. 전시 기간 내 16일 빛꾸리 마당에서는 젊은 MZ 세대들이 보자기 문화에 대해 함께 즐기고 이해할 수 있도록 체험과 공연예술이 펼쳐진다.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사전예약 신청자 50명과 현장예약(빛꾸리 영수증 지참자) 50명에게 보자기 가방 체험이 무료로 제공한다. 천년의 고장 우리 지역 경주에서 다시 새롭게 재해석된 문화 속 보자기의 의미를 체험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기회다. 이어 오후 6시부터 한 시간 동안 보자기 마당놀이가 펼쳐진다. 보자기와 혼례문화의 미술적 가치를 가진 ‘대중생활문화’ 공연이 현대적 감각과 시선에 맞춰 새롭게 재해석되는 공연이다. 한국보자기아트협회 측은 “우리 전통혼례 과정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의미를 전달하는 이번 행사를 통해 많은 세대들이 전통공예의 친숙함과 흥미,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길 바란다”면서 “보자기 아트를 통해 역사적, 문화적, 전통적인 중요성이 널리 알려지길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보자기 포장은 재사용 가능한 소재를 사용해 저탄소 시대에 맞는 포장법으로 활용이 무궁무진하다. 전통의 포장법이 세계적인 포장법으로 쓰일 수 있는 멋진 아이템이라 앞으로의 기대가 크다”며 “고유의 문화인 보자기로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고 디자인을 연구하며, 한국적 전통미를 현대로 이어가는 신선한 움직임으로 앞으로 더 큰 비전과 성공을 이루기 위해 발전해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경주동학문화창작소에서는 어린이날 100주년을 기념해 ‘어린이선언 공모전’을 개최한다. ‘어린이 선언 공모전’은 ‘어린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하며, 세계 최초 어린이 선언을 통해 어린이 인권과 해방을 주창한 방정환 선생을 되새기기 위해 마련됐다. 방정환 선생은 1922년 우리나라 어린이날 선언과 1923년 어린이날 취지와 소년운동 기초 조건, 어른에게 드리는 글, 어린이에게 쓰는 글을 발표했다. 이번 ‘어린이 선언 공모전’은 미래 주역으로 성장할 아이들이 부모님, 선생님, 어른들, 사회에 바라는 말들을 글로서 표현하는 공모전으로 방정환 선생이 꿈꿨던 ‘어린이가 주인 되는 세상’ ‘어린이가 행복한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기 위함이다. 참가대상은 7세부터 13세 어린이며, A4 크기 종이에 색연필, 사인펜, 파스텔 등 재료 제한 없이 ‘나의 어린이 선언’ 3문장 이상 손글씨로 쓰고 꾸미고, 채색하면 된다. 접수는 반드시 이름과, 학교(유치원), 연락처, 주소, 이메일 주소를 기재해 15일까지 경주동학문화창작소(경주시 금성로 347번길 10, 2층)로 우편접수(마감일 우표 소인 유효)하면 된다. 경주동학문화창작소 김성표 소장은 “경주는 동학을 낳고, 동학은 어린이날을 낳았다”면서 “올해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아 어린이에게 자유로운 목소리로 권리와 해방을 노래한 아동 권리의 선구자 방정환 선생의 뜻을 기리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면서 어린이들의 많은 참여와 관심을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