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금씨 성재(惺齋) 금난수(琴蘭秀,1530~1604)는 금학사 영렬공(英烈公) 금의(琴儀,1153~1230)의 후손으로, 부친 금헌(琴憲,1493~1576)․모친 영양남씨 남식(南軾)의 따님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외가인 안동에서 청계 김진(金璡,1500~1580)에게 수학하였고, 월천(月川) 조목(趙穆)의 누이동생과 혼인하였다. 이후 구봉령(具鳳齡)․권대기(權大器)․김팔원(金八元)․조호익(曺好益)․이정(李楨) 등과 교유하였고, 처남 조목의 조언에 따라 퇴계의 문하생이 되었다. 그의 호는 송나라 사양좌(謝良佐,1050~1103)의 늘 깨어있는 ‘상성성(常惺惺)’을 따라 경(敬)을 중심사상으로 삼았다. 1561년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여러 참봉직을 거쳐 직장(直長)․장예원 사평․봉화 현감 등을 역임하였으며, 말년에는 청량산 일동(日洞)에 고산정(孤山亭)을 짓고 산수를 즐겼다.
그가 남긴 『성재일기』는 25세~27세의 일상기록과 31세~32세의 유람과 과거시험의 기록 그리고 46세~75세의 관직생활 후 고향에서 지낸 30년간의 기록 등 50년간을 시간의 순서로 기록하였고, 개인의 일상과 사회활동을 소소하게 담은 것이 특징이다.
영양남씨․월성손씨․안동권씨 등 혼반을 통해 경주에 자주 왕래하였는데, 1581년에는 태조 영정을 봉안한 경주의 집경전 참봉이 되면서 경주와 인연이 깊어졌고, 이듬해 영천을 거쳐 경주에 입성한 후 소소한 일상을 날짜별로 중요한 일상을 간략히 기술하였다.
『성재집』에 수록된 한시를 미뤄보면, 퇴계의 문인으로 봉원(逢原) 이안도(李安道,1541~1584)와 간재 이덕홍(李德弘,1541~1596) 등을 경주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간재는 공무로 경주에 머물며 서로 만나 회포를 풀었고, 이후 『동경유록』을 통해 경주유람을 기술하였다. 『간재집』에 「김학봉․윤채련․권이계(송소의 옛날 호이다) 세 사람에게 차운하여 드리다(次呈金鶴峯尹採蓮權伊溪 松巢舊號 三同人)」 한시를 통해 서로를 언급하였다. 임오년(1582) 5월 25일부터 8월 17일까지 80여일 이상을 경주에 머물렀고, 영천을 통해 모량으로 경주에 입성한 후 경주부 - 백률사 – 진장(陣場) - 월성관 - 집경전 재실 - 봉황대 - 불국사 - 이견대 - 토함산 - 석굴 - 불국사 - 집경전 - 월성 - 분황사 - 포석정 - 오릉 – 아불역(아화) 등을 오갔다. 집경전 재랑(齋郞)에 임명되어 경주부윤 안종도(安宗道,재임1580.12~1582.12)를 만났고, 여러 벗과 이견대를 향해가다가 토함산을 지나며 시를 지었고, 포석정과 오릉의 여러 옛 자취들도 보았다. 그리고 옥산서원에서 회합을 마치고 손엽․이경해 등과 회재 선생의 글을 강학하고 토론하였으며, 계정의 경치를 감상하였다. 게다가 집경전 재실에서 동료 관리인 경주이씨 이홍각(李弘愨) 그리고 함창수령 오경로(吳敬老)·이홍정(李弘靜)․주사준(朱士俊) 등 지역의 많은 인사와 만났다. 세세한 정보를 담은 유람기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그의 소소한 기록은 경주지역의 인물 정보를 살피는데 도움된다.
•성재일기(惺齋일기) 중에서 1582년 경주 이야기 5월 25일. 아돌(鵝㐚)과 모량(毛梁) 두 역에서 쉬었다. 임소에 당도하다. 5월 26일. 부윤과 반자(半刺)를 뵈었다. 가장(家獐)에 동참하였다. 6월 3일. 부윤이 연못 가운데 새로 지은 정자에서 정충원(鄭忠元)을 전별하는데, 나를 부르기에 동참하였다. 6월 6일. 숙윤이 두 아동(衙童)과 함께 백률사를 구경하러 갔다. 6월 17일. 월성관에서 왜인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다. 7월 3일. 청허재(淸虛齋) 손엽(孫曄,1544~1600)과 이경해(李景海)가 찾아왔다. 7월 8일. 봉황대에 올라가 불어난 물을 구경하였다. 7월 27일. 불국사에 갔다. 임여장(任汝張)이 술병을 차고 찾아왔다. 악공 몽충(夢忠)과 기생 억지(億之)를 데리고 갔다. 7월 28일. 이견대로 길을 나섰다. 토함산에 들러 김종직 선생의 시에 차운하였다. 7월 29일. 흐리고 비가 내려서 일출을 보지 못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석굴에 들렀다가 불국사로 내려왔다. 7월 30일. 집경전 재실로 돌아오는 길을 나섰다. 저녁에 부윤이 불렀다. 8월 4일. 남원(南院)에 가서 이홍정, 이홍각, 주사준과 만나 함께 월성에 올라가 구경하고 지나는 길에 분황사에 들렀다가 돌아왔다. 8월 8일. 포석정과 오릉을 보러 갔다가 돌아왔다. 부윤에게 절구 세 수를 올렸다. 8월 16일. 부에 들어가 부윤에게 하직 인사를 하였다. 저녁에 반자가 안세준(安世俊)과 함께 재당(齋堂)에서 전별해 주었다. 8월 17일. 길을 나서서 아불역(阿弗驛)에서 묵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