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노래한 시는 너무나 많은 것 같다. 얼마 전 집 근처 영천강을 자전거로 달리다 발견한 자목련(紫木蓮)을 보고 가곡 ‘목련꽃 그늘 아래서’를 흥얼거리며, 인터넷을 뒤져보니 경주가 낳은 대표적인 시인 박목월 시인이 작사한 것을 뒤늦게 알고 나의 무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0년 전 아일랜드에서는 아침 산책길에 길가에 피는 수선화(daffodile)를 보고 봄이 가까웠음을 알게 되었고 큰딸 어릴 때 찾았던 강진읍내 영랑생가에서 뜨락에 핀 모란을 보며 ‘찬란한 슬픔의 봄’을 노래한 시인을 떠올리며 지나가는 봄날에 대해 안타까워하기도 했었다. 무엇보다 고등학교 고전 시간에 배운 이백(李白) 시인의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에 나오는 ‘고인 병촉야유 양유이야(古人 秉燭夜遊 良有以也 - 옛사람들이 촛불을 켜고 밤에도 즐기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라는 멋진 시구는 필자가 다니는 서실에서 붓글씨로 써보는 호사를 매년 반복할 정도로 봄을 노래한 시는 길고 추운 겨울을 이겨낸 우리에게 봄꽃이 주는 아름다움을 확증시켜 주는 것 같다.
1993년 봄 당시 김영삼 정부는 지방 청와대 개방을 꺼내 들며 법석을 떨었다. 우선 충주와 진해 저도의 지방 청와대 개방, 군항제 기간 중 진해 주요 부대 영내를 개방하여 군항제를 찾은 전국의 시민들에게 개방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즈음 어느 날 필자가 근무했던 진해 해군작전사령부 사무실로 한 통의 문의 전화가 왔다. 당시 필자는 정훈공보처 공보과장으로 근무했는데, 한겨레신문 경남도청 출입기자로부터 “이번에 부대를 개방하게 된 배경과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전화 인터뷰였다. 그래서 필자는 우선 생각나는 대로 “문민정부 시대를 맞아 부대 영내를 개방함으로써 시민들이 영내의 벚꽃을 감상하며 민과 군이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취지”라고 대충 답변했다.
문제는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다. 사무실에 배달된 한겨레신문에 박스로 큼지막하게 필자의 전화 인터뷰가 보도되는 바람에 당시 공보규정과 절차를 준수하지 않고 언론에 공개한 필자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한겨레는 장교나 군무원이 부대 내에서 구독할 수 없는 신문으로 여겨져 보도 분석을 담당하는 정훈공보실에서만 구독이 가능한 매체였다. 해서 필자는 허가도 없이 한겨레 기자와 인터뷰한 사실이 알려지면 문제가 될 수 있는 일이라 인근 부대 정훈실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당일 한겨레신문을 폐기해 달라고 부탁했다.
공보 책임자였던 필자로서는 그해 봄날 KBS ‘6시 내 고향’에서 며칠 전 대통령 별장으로 쓰여 군사기밀로 분류되어 허락받지 않으면 들어가지도 못할 그곳을 촬영·제작해서 전 국민에게 방영함으로써 국민적 관심을 끌기도 했다. 하루는 KBS라디오 프로그램 담당 PD가 전화를 걸어와 꼭 필자와 생방송 전화인터뷰를 해야 한다며, “현역 군인 중에서 ‘문민정부’라는 표현을 처음 쓴 것은 당신이 처음”이라며 취재 섭외가 와 이를 고사하느라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30년이 지난 지금 신정부가 청와대를 개방한다고 온 나라가 시끄러운 것을 보니 30년 전 해프닝이 ‘데자뷰’를 보는 듯하다. 개방에 앞서 국민의 의중을 잘 헤아리기 바란다.
진해의 벚꽃은 일제가 심어놓은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군항제의 처음 시작은 ‘이충무공선양회’가 주축이 되어 나라사랑 정신을 기리는 뜻에서 비롯되어 전국단위의 축제로 자리잡게 되었다. 여기에 해군 군악의장대 시범과 한참 뒤 생겨난 ‘세계 군악축제’ 등 다양한 이벤트가 추가됨으로써 오늘에 이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축제의 볼거리를 떠나 그 정신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진주 유등축제의 시작도 1950년대 말 개천예술제에서 시작되었다. 개천절을 계기로 한 백일장에서 비롯되어 유등을 남강 위에 띄움으로써 전국적인 축제로 자리매김한 경우이다.
한편 필자가 살던 아일랜드의 봄은 세인트패트릭 데이(St. Patrick‘s Day) 축제로 유명하다. 이 축제는 5세기 말경 아일랜드의 목동으로 유럽에 건너가 신부가 되어 척박한 땅에 복음을 전하다 사망한 패트릭 성자의 사역과 기도, 복음전파의 노력을 되새기는 순례의 길을 탐방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그런 정신은 간데없고 축제와 돈벌이에 집중하다 보니 심지어 중학생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기네스 맥주에 취해 거리를 배회하며 비틀거리게 되었다.
고향 경주에도 봄꽃 축제가 한창이다. 봄이 주는 화사함과 화려함은 한순간도 놓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곁에 머물다 순식간에 지나버린다. 꽃을 보고 좋아하며 감상하고 즐기는데 무슨 정신과 이데올로기가 필요할까마는 얄팍한 상술과 돈의 논리에 의해 우리의 일상이 침해되어서는 안 될 것이기에 경계할 부분이라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