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는 황오동 지역 문화와 역사를 발굴해 마을해설사로 활동하게 될 ‘마을해설사 교육생’을 29일까지 모집한다.교육은 해설코스 설계 및 대본 작성, 마을해설사 실습 등 심화과정(8회)이 진행된다. 이를 통해 우수한 성적을 거둔 교육생 3명이 함께하는 마을해설사 특강 및 실전 등 전문가 과정(5회)도 구성됐다.특히 ..
경상북도 시장·군수들이 202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경주 유치를 지지하는 서명운동에 동참했다.경상북도시장군수협의회는 25일 구미시청에서 열린 ‘민선8기 제5차 정기회의’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가장 한국적인 도시 경주가 2025 APEC 정상회의 개최 최적지임을 알리고 나섰다. 특히 경주 유치..
‘2023 신라문화 기반 창작뮤지컬 제작·공연단체’ 공모에 선정된 ‘더 쇼!-신라하다’의 출연진이 공개됐다. 경상북도문화관광공사는 지난 22일 ㈜나인스토리와 함께 ‘2023 신라문화 기반 창작뮤지컬 제작 및 상설공연 위·수탁 협약서’를 체결했다. 이번 협약을 통해 공개된 ‘더 쇼!-신라하다’의 주요 배우로는 아이돌 그룹 블락비의 유권과 마이네임의 세용이 주인공 ‘처영’ 역을 맡게 됐다. 그 외에도 이번 뮤지컬의 예술 감독인 남경주와 신화 멤버 김동완, 모모랜드의 낸시, 가수 겸 뮤지컬 배우 린지 등 다양한 인물들이 출연한다.
가을의 시작인 9월, ‘박물관 속 바이올린’ 공연이 펼쳐진다.
평범함 속 소중한 순간 누군가가 나에게 왜 이렇게 분주하게 살아가느냐고 물었다. 갑자기 숨이 턱 막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이유를 찾으려 해도 명확한 답은 없었다. 평범한 일상이라 생각할 뿐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익숙함 속에서 자리를 지키며 하루를 보낸다. 그러다 우연히 마음에 드는 일이 생겨날 때 그 순간을 즐긴다. 바쁜 일상과 권태로운 삶 속에서, 청량한 파란색 세계로 빠져본다. 평소 좋아하지 않던 색임에도 그 안에 새로운 사색과 신비함이 내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한다. * 답호 :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말기까지 유행하던 옷으로, 반소매 또는 소매가 없는 긴 덧옷으로서, 포(袍)위에 착용됐다.
지방의 중소도시들은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다방면으로 고민하고 있다. 청년이 원하는 일자리와 현재 청년을 원하는 기업들의 괴리가 있어 상대적으로 기회가 많은 수도권을 비롯한 대도시로 청년 쏠림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경주도 지역 청년의 유출을 막기 위해 경주시청년센터를 2021년 4월 설립했다. 청년들의 취업, 창업은 물론 문화·취미, 네트워크 형성까지 다양한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청년 新골든 창업특구 조성사업은 침체된 구도심을 활성화하는 동시에 청년들만의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활용하는 창업지원 사업으로 청년센터가 올해 2번째 시즌을 맞이하고 있다. 청년들의 창업지원은 2017년 야심차게 출발한 북부시장 청년몰의 실패로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하지만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쉽지 않고, 관광도시인 경주에서 창업이 가지는 이점은 가히 적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창업지원에 따른 예산이 지출되는 만큼, 그리고 일부 선정된 청년 창업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만큼 그들이 자생력을 갖추고 지역에 든든한 업체로 성장할 수 있게 경주시청년센터는 도와야 할 의무가 있다고 하겠다. 또한 안정적인 직장을 원하는 청년들을 위한 취업지원 프로그램도 마련돼있다. 아쉬운 것은 우수한 프로그램을 구성하더라도 막상 좋은 일자리가 없어서 타 지역으로 취업을 위해 이동하는 청년들이 매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청년 일자리 문제는 경주시청년센터만의 문제가 아니라 경주시를 비롯한 유관기관, 기업 등 모두가 합심해 풀어야 할 중요한 문제라 할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에서 내려오는 일방적인 정책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지역 청년들을 직접 만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야한다. 또한 그들의 니즈를 파악하고 현재 지역에 걸맞은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대한 많은 고민과 토론이 필요하다. 물론 ‘양질의 일자리란 무엇인가’에 대한 원론적인 문제가 남아있지만 이는 장기적이고 사회 시스템이 풀어야 할 숙제로 당장 청년들에게 제공할 일자리에 대한 해결이 시급한 때다. 청년은 근시일 내 지역을 이끌어 갈 인재다. 취업이든 창업이든 그들이 원하는 일자리를 마련해줄 수 있는 장기적인 정책을 만들어 일자리를 위해 떠나는 청년보다 일자리를 위해 청년들이 모여드는 경주가 되길 희망해 본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묻지마’ 흉기 난동 범죄가 이어지고 있어 집 나서기가 두렵다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늘고 있다. 지난달 26일 서울 관악구 신림역 흉기 난동 사건에 이어 이달 3일에도 경기도 분당 서현역 일대에서 흉기를 휘두른 사건이 발생했다. 또 살인 예고 글도 우후죽순 올라오는 등 안전을 위협하는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경주에서도 지난 13일 30대 남성 A씨가 접이식 칼 등 흉기 10개를 소지하고 도심을 배회하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의 신속한 대응으로 별다른 사고 없이 A씨가 검거됐지만, 최근 일어난 흉기 난동 사건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또 경찰의 후속 조치로 A씨를 병원에 갈 수 있도록 해 급성 조현병 진단이 내려졌고, 현재 입원 치료 중이라고 한다. 이번 사건은 경찰의 신속한 검거와 후속조치로 시민들을 안심시켜 칭찬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묻지마 흉악범죄가 전국에서 꼬리를 물고 있는 상황에서 시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경주경찰서는 최근 서울 신림동에서 발생한 둘레길 성폭행 사건 등 범죄취약지역 내 ‘이상동기 범죄’로 높아진 사회적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범죄예방활동을 강화한다고 한다. 이를 위해 경주지역 내 둘레길 10개소와 주요 공원 및 등산로 진출입로 일대를 대상으로 범죄예방진단 결과 동천동 소금강산 진출입로에 이동형 CCTV를 설치했다. 또 충효동 흥무공원 등 취약지역 2개소에 방범용 CCTV 설치를 경주시와 협의하는 등 범죄예방시설물을 확충해 묻지마 범죄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방침이다. 지금이라도 지역에서 자체 대응에 나선 것은 다행한 일이다. 경주는 시민은 물론 많은 관광객이 찾는 관광도시로 범죄로부터 안전은 어느 도시보다 중요하다. 시민의 안전한 생활과 관광객들이 안심하고 경주 곳곳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방정부의 책무이기도 하다. 그동안 발생한 묻지마 범죄의 유형에 쫓아 예방대책을 수립하기보다는 먼저 범죄취약지역이 없는지 면밀히 살피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진정한 선제적 대응이다. 무엇보다 근본적 예방을 위해서는 사회적 외톨이나 은둔자를 조기에 파악하고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사전적 예방 조치로 사회안전망을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 주변에 사회적으로 고립된 이웃이 없는지 살펴보고, 지속적인 관심으로 이들을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범죄 없는 안전한 사회는 정부와 지자체는 물론이고, 지역 구성원들이 모두 힘을 모아야 가능한 일이다.
요즘 집주변 담벼락엔 어김없이 담쟁이, 길가의 보리수가 노랗게 물들고 있어 가을이 성큼 다가온 느낌이다. 이맘때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는 추수동장(秋收冬藏)이라는 말일 것이다. 이 말은 벼농사를 짓는 한·중·일에만 적용되는 줄 알았는데 지난주 루간보이(Luganboy)라는 조그마한 농촌 마을에 예배 갔다가 양철지붕으로 된 작은 교회 앞의 각양각색 허수아비들을 보고 이곳에도 추수 전통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농사와 관련된 영미 격언 중 ‘Making hay while the sun shine’라는 표현이 있다. 해석하면 ‘햇살 비칠 때 건초를 만들라’는 것이다. 며칠 전 슬라이고 시내 서점에서 건초더미를 쌓고 있는 농부의 사진과 함께 상기 제목의 기사가 잡지(Ireland’s Own) 1면을 장식한 것을 보았다. 그 칼럼에서 편집자는 한마디로 “농촌의 여름철 작업은 어머니와 같은 대자연의 오케스트라 연주에 비견된다”고 글을 시작했다. 태양이 작열하는 6월 말부터 7월 초, 뜸부기(Corncrake)의 길고 가느다란 울음소리가 들판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면 건초 베기가 시작된다. 이른 아침 종달새 울음은 농부들의 늦잠을 깨우고 제비와 비둘기, 찌르레기는 하늘 높이 난다. 농부들은 목이 긴 낫자루를 활용해 여름 내내 웃자란 풀을 잘라 둔다. 갈고리로 밭고랑을 만들어 줄지어 3~4일 동안 풀들을 뒤적여 주면서 충분히 말린다. 흩어진 건초를 우선 한 사람이 들 수 있을 정도의 더미를 만들고 이것들을 더 큰 건초더미로 옮겨 쌓는다. 둥글고 높은 건초더미를 만들기 위해서는 갈고리를 활용해 시계방향으로 빗어 둥그스름하고 단정한 건초더미를 만든다. 한 달포 정도 들판에 쌓아둔 뒤 이맘때쯤 집으로 가져와 창고에 저장하면 건초가 완성된다. 급조된 건초는 온도가 상승하고 영양이 떨어진다고 하니 상당한 노하우가 필요한 작업이다. 지금은 트랙터를 이용해 건초를 잘라 1톤 이상의 검은색 포대에 넣어 발효와 보관을 쉽게 하기 때문에 요즘은 위의 전통은 찾아보기 힘들다. 더불어 땀의 소중함도 온가족이 도란도란 둘러앉아 맛있게 먹던 점심의 추억들도 시간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힘들여 일하지 않으니 말들은 마력(Horse Power)을 잃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더 이상 푸른 초장 위, 엥콜이나 커튼콜은 사라졌다”며 농촌의 전통과 추억이 사라진 데 대해 아쉬워하며 글을 맺었다. 기사를 다 읽고 나니, 농부의 아들로서 어린 시절의 추억과 오버 랩 되는 부분이 많았다. 늦봄 뒷산에 소쩍새 울 때면 아버지와 형님들은 들판에 나가 쇠풀을 낫으로 베 와서 잘게 썰어 마당에 널어놓았고 갈고리로 뒤적일 때마다 상큼한 풀냄새가 좋았었다. 마당에 널어 잘 말린 건초는 볏짚과 섞어 겨우내 소에게 먹일 여물로 사용했다. 새참에 관련된 추억은 내겐 좀 특별하다. 4형제 중 막내인 필자는 아무래도 형님들보다 힘과 경험에 밀리다 보니 농번기가 되면 늘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였다. 1970년대 중반 어느 초여름 광명들 논에 모심기하던 날, 이날도 예외가 아니어서 의기소침해 집으로 돌아온 필자는 힘들게 일하시는 가족들을 돕기 위해 새참을 준비해야겠다고 결심하고 가마솥에 감자를 삶기 시작했다. 땔감으로 보릿단을 사용하다 보니 눈물만 나고 열이 쉽게 가해지질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노릇노릇 감자를 삶아 찬합에 담아 들로 가져갔다. 저만치 우리 논으로 가기 위해서는 미끄러운 논두렁을 지나야만 하는데 그만 중간에 미끄러져 넘어지고 말았다. 순간 어렵게 가져간 새참을 논두렁에 버릴 수 없어 내 몸은 진흙투성이가 될망정 감자만큼은 떨어뜨리지 않았다. 덕분에 뜻하지 않게 새참을 먹게 된 가족들의 얼굴에 미소가 돌았고 칭찬 세례가 쏟아졌다. 문제는 그 후에 벌어졌다. 어머니는 ‘막내’가 너무도 대견하셨던지 빨래터에서 동네 아낙들에게 그 일을 자랑삼아 늘어놓았나 보다. 이후 동네 아낙들이 필자만 보면 ‘내게도 맛난 감자 좀 삶아 주라’며 놀려대기 시작해 한동안 동네 아낙들의 눈길을 피해 다녀야만 했다. 이제는 부모님 돌아가시고 어릴 적 추억만 남았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만난 허수아비들, 전통적인 건초 만들기 기사를 접하고 잠시 옛 추억에 잠길 수 있는 호사를 맛볼 수 있었다. 이 가을 ‘경주신문’ 독자분들 중 형편이 되신다면 경남 하동의 평산리(박경리 소설 ‘토지’의 주무대)에 열리는 ‘마을 허수아비 축제’를 다녀오시길 권해드리고 싶다.
“야! 저기 황룡사를 봐, 번(幡)이 높이 올랐어! 백고좌가 열리나 봐!” 지금으로부터 1400여년 전 신라 왕경의 황룡사 하늘에 높이 매달려 펄럭이는 번을 보고 외쳤을 법한 신라인의 목소리다. 절에서 법회 등의 행사가 있을 때 당간지주(幢竿支柱) 가운데에 당간을 높게 세운 후 번이나 깃발을 내걸었다. 오늘날의 홍보 현수막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요즈음은 지역의 주요 교차로나 눈길이 잘 가는 곳에 현수막 지정 게시대가 자리해 온갖 홍보물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지정 게시대 밖에 무분별하게 정당 현수막이 나붙어 꼴불견이다. 더구나 자극적인 정치적 문구는 짜증을 불러일으켜 찜통더위를 더욱 불쾌하게 하고 있다. 현수막(懸垂幕)은 지방자치단체나 관공서, 정당, 시민단체, 학원, 상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홍보용으로 거는 긴 직사각형 모양의 천이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현수막의 한자 ‘수(垂)’자가 ‘드리우다’의 뜻이므로 사찰에 걸었던 번처럼 세로로 길게 늘어뜨린 천을 의미한다. 영어로는 배너(Banner)이다. 이는 한자문화권의 글쓰기가 세로쓰기였던 데서 유래한 면도 있다. 가로로 된 것은 횡단막(橫斷幕)이라 불러야 하고 국어사전에도 별도로 실려 있다. 그러나 우리는 대체로 가로세로 구분 없이 통틀어 그냥 현수막이라 부르고 있다. 가로등에 세로로 늘어뜨려 매다는 것을 현수막(배너)이라 불러야 하기에 앞으로 횡단막이라 구분하는 것이 옳다. 경주시에는 128개소의 현수막 지정 게시대가 있으며, 행정용 현수막 게시대는 56개소 182면, 상업용 게시대는 72개소 500면이 있다. 상업용은 통상 7일을 게시기준으로 신청 접수를 받아 추첨을 통해 정해진 비용을 부담하고 게시하는데, 월간 2000장을 걸 수 있다. 이들은 ‘경상북도옥외광고협회 경주시지부’가 위탁받아 관리하고 있다. 반면 읍·면 행정복지센터에서 자체 관리하는 현수막 게시대도 74개소 124면이 있다. 이들은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및 시행령, 경상북도 옥외광고물 조례(약칭), 경주시 옥외광고물 등 관리조례에 의해 잘 관리·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선거철도 아닌데 어느 순간 정당 현수막이 지정 게시대 밖의 명당자리에 시도 때도 없이 난립하고 있다. 문구도 정치구호 일색이거나 상대 당 헐뜯기, 자화자찬, 심지어는 자기 사진까지 크게 실어 선거철인 마냥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그야말로 원색 비방이 난무해 정치 혐오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처럼 길거리 정당 현수막이 갑자기 많아진 이유는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20년부터 2021년까지 더불어민주당의 김민철, 서영교, 김남국 국회의원이 시차를 두며 발의하고 모든 정당이 이 정책을 반겨 2022년 6월 무려 90% 찬성으로 신고 및 금지·제한 적용을 배제하고 표시방법 및 기간을 시행령에 위임하는 내용으로 옥외광고물법이 개정됐다. 이에 따라 같은 법 시행령이 2022년 12월 10일자로 개정되면서 소위 ‘무제한 정당 현수막법’이 시작됐다. 정당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정당의 현수막을 사전 신고나 허가 없이 걸 수 있게 한 것이다. 불법 현수막의 합법화 반란이었던 셈이다. 당시 정부는 도시 미관을 해치고 시민들의 보행권을 방해하며, 동네의 상가나 사회단체, 무소속 국회의원, 정치 신인 등 여타 수요자들과의 형평성 문제로 반대했으나 횡포를 막을 수 없었다. 현재 정당 현수막으로 인한 불법 현수막 민원이 기존의 2배 이상에 이르렀고 담당 공무원은 법률에 따라 적법하다고 대변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결국 폭증하는 민원에 행정안전부는 가이드라인까지 만들었으나 속수무책이어서 사실상 정당 현수막은 정치권, 정부, 지자체, 선관위 등 어느 주체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참다못해 인천시의회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금년 6월에 현수막 설치 장소와 개수, 내용 등을 제한하는 내용의 조례를 제정하고 강제 철거에 들어가 시민들로부터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 시민들은 이구동성으로 “속이 다 후련하다”는 반응이었다. 이에 힘입어 서울시의회에서도 지난 8월 정당 현수막 난립을 규제하는 내용의 조례 개정안을 발의했고 잇달아 부산시의회, 광주시의회, 울산시의회에서도 조례 개정안을 발의 중이다. 상위법과 지자체의 조례간에 상충돼 충돌하자 행안부에서는 법 준수를 유도하고 있지만, 시민들의 권리를 대변하는 조례 개정은 점차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급기야 ‘새로운 미래를 위한 청년변호사 모임’(새변)은 8월에 ‘인천사랑운동시민협의회’와 함께 옥외광고물법에 대해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고 전국 17개 광역 시·도지사도 정당 현수막 특혜 폐지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서울특별시옥외광고협회 송파구지부’는 이미 지난 6월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정당 현수막 난립을 개탄하며 불법적인 형태의 정당 현수막 제작을 거부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국회의원은 일반인과 기관에 대한 신뢰도 여론조사에서 10년째 꼴찌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곧 정치인 불신이자 정당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당 현수막은 불 난 곳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다. 예로부터 민심은 천심이라 했다. 법 위에 시민들의 민심이 있음을 알고 정당 현수막 걸기를 스스로 자제했으면 한다. 경주시의회에서도 조례 개정에 속도를 내고 다른 도시에서처럼 지정 게시대에 한해 국회의원 선거구별 2개 또는 4개 이하로 수를 제한했으면 한다. 또 정당 활동과 관련한 정치적 견해 표명이나 정책 비판이 아닌 개인에 대한 비방이나 모욕 등 혐오 문구를 철저히 금지했으면 한다.
경주신문 연재를 통해 효열(孝烈)에 대한 기사를 다루다가 우연히 ‘호랑이’에 대한 자료를 검색하였는데 대단한 효행 스토리가 있어 소개한다. 한반도의 호랑이는 일제강점기 경주 대덕산에서 잡힌 이래로 종적을 감췄다고 하며 예로부터 호랑이는 용맹과 악귀를 쫓는 수호신의 의미 반면에 때로는 민가에 내려와 사람을 해치는 잔악한 괴수로 묘사된다. 조선 초기에 호랑이로 인한 인명피해를 보면 경상도가 가장 많았으며, 조정에서는 호랑이를 잡기 위해 별도의 착호갑사(捉虎甲士)가 있을 정도였다. 신라 진덕왕 때 알천(閼川)공․유신(庾信)공 등이 남산의 우지암(亐知巖)에 모여 화백회의를 하는데 갑자기 난입한 호랑이를 알천공이 맨손으로 꼬리를 잡아 메쳐 죽인 일을 보면 경주 남산에 호랑이가 있었다는 점이 매우 신기하다. 1734년 경주에 사는 과부 김조이(金召史)와 유황군(硫黃軍) 김자안(金自安) 등이 호랑이에게 물려 죽는 등 조선시대에 호랑이가 나타나 사람을 물어 죽였다는 실록의 기록이 상당하다. 조정에서는 여러 가지로 덫을 놓아 반드시 잡도록 엄한 분부를 내리며 호랑이를 잡은 자에게 재물과 벼슬을 내렸으니 당시 호랑이는 백성의 목숨을 해치는 무서운 존재로 각인되었다. 경주 외동읍 원동(院洞)마을에 호랑이와 얽힌 남양홍씨세천(南陽洪氏世阡) 정렬각(㫌㤠閣)이 있다. 영조년간 어느 여름 날에 남양홍씨 홍계발(洪啓發)의 부인 월성김씨와 나주정씨 두 아내가 길쌈을 하고 있었는데, 호랑이가 나타나 남편을 해치려 하자, 이불로 호랑이를 덮어 날카로운 아가리를 막고, 한 명은 부엌칼[포도(庖刀)]로 호랑이를 찌르고, 한 명은 절굿공이[도저(搗杵)]로 호랑이를 내리쳐 남편을 위기에서 구하였다. 이는 아내가 목숨 바쳐 남편을 구한 열부(烈婦)스토리로 해석된다. 성종년간 1490년 6월에 경상감사가 효자ㆍ효녀의 행적을 보고하였는데, 경주인 김윤손(金允孫)은 어느 날 호랑이가 그의 아비 김소남(金召南)을 물어 가자, 맨손으로 뒤쫓아가서 왼손으로는 범의 턱을 움켜쥐고 오른손으로는 입을 틀어막고서 때려죽여 아비를 구한 일을 아뢰었다. 이 일이 조정에 알려져서 정문(旌門)이 세워졌고, 평양으로 이주해야하는 사민(徙民)에서도 면제되었으니 김윤손의 효행의 특이함을 알만하다. 이 일은 『해동잡록』에도 실려있다. 영조년간 1733년 10월에 경주 역리(驛吏) 박상희(朴尙希)의 딸 19세 초랑(楚娘)이 그 어미와 산전(山田)에 갔다가 그 어미가 호랑이에게 물리자, 초랑이 통곡하며 ‘지난날에는 우리 오라버니가 호랑이에게 물렸고, 이제 또 우리 어머니가 물렸으니, 차라리 함께 죽고 말겠다.’라 하고는 왼손으로 그 어미를 안고 오른손으로 낫을 잡고 휘둘러 그 어미의 시신을 빼앗은 사실이 있었다. 이에 절도사가 장문(狀聞)하여 임금이 휼전(恤典)을 베풀었다. 참으로 용맹한 초랑의 이야기이다. 영조년간 1735년 1월에 경주 군관(軍官) 박남구(朴南耉)는 호랑이가 어머니를 물어뜯자, 호랑이와 치고받고 싸워 호랑이가 어머니를 내버리고 달아나 죽음을 모면하였다며 도신(道臣)이 계문(啓聞)하여 정문을 세워 포장(褒獎)하였다. 효행은 부모와 자식의 천륜지정(天倫之情)으로 절대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이다. 부모든 자식이든 곤궁에 처한 급박한 상황에 초인적 힘을 생겨나 위기를 벗어난 경우를 종종 본다.경주와 호랑이 이야기처럼 효행을 드러낸 더 많은 스토리가 세상에 알려지길 바라며, 경주의 유학자가 남긴 문집과 고전번역을 통해 더 많은 자료가 발굴되길 기대해 본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전국의 하수처리장에서 다량의 마약류가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영화나 드라마 속 이야기가 아니다. 마약 관련 뉴스는 더는 생소하지 않다. 연예인들의 일탈로 등장했던 마약 관련 뉴스는, 이제는 일반인들의 삶 속에 깊이 들어온 것이 아닐까 할 정도다. 화단이나 골목에 던져진 검은 물체는 마약이다. 누가 버린 것이 아니라 그렇게 배달하고 받는 거란다. 짭짤한 알바로 무장한 마약 배달에, 퇴직금과 변호사비까지 보장하는 마약 브로커. 이들이 야쿠자와 삼합회보다 더 무섭게 느껴지는 것은 아줌마뿐인가? 많은 아이가 스마트폰을 들고 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통해 마약에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텔레그램, 인스타를 통해 누구나 마약을 쉽게 살 수 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설마, 우리 아이는 안 그러겠지?’ 하는 안일함은 부모의 오만이 될 수 있는 환경이다. ‘우리 아이는 스마트폰이 없어요.’ 해도 안심할 수 없다. 부모의 주민등록번호가 부모가 아니라 아이의 것이라는 농담이 사실인 것처럼, 부모가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사주지 않아도 친구의 공기계나 공짜폰을 통해 부모 몰래 기기를 개통한 아이들도 많다. 우리 아이들을 몰래 뒷조사하자는 소리가 아니다. 우리 아이들을 믿지 말라는 소리는 더더욱 아니다. 우리 주변에 마약이라는 말은 이미 흔하다. 그런데 정작 우리 아이들은 마약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가? 부모인 우리는 제대로 알고 있는가?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엄마는, 부모는 아이들과 이야기를 제대로 나눠야 한다. 이제는 마약 김밥이나 마약 떡볶이처럼 음식에 마약이라는 말을 쓰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마약이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다. 아줌마 동네에도 계란 장조림을 마약 계란이라고 쓰고 판매하고 있는 반찬가게가 있다. 맛있어서 마약처럼 중독될 것이라는 의미로 쓰이기 시작, 성공한 마케팅의 일환이라고 치부할 수 있다. 그러나 부모인 우리는 그럴 수 없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마약의 의미를 물었다. 계란 장조림을 굳이 마약 계란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이야기를 나눠봤다. 엄마의 생각을 아이들에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고 싶었고, 우리 아이들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했다.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한 뼘 더 자라 있다는 말을 실감했다. 그러나 아줌마는 걱정이 된다. 뭐든지 익숙해지면 무뎌진다. 마약이라는 말이, 우리가 먹는 음식에 쓰인다는 것이 적절한가? 초중고생 자녀가 있다면 아이에게 물어봐라. 요즘은 학교에서 마약 관련 교육도 받는다. 우리 아이들과 소통하자. 그리고 우리 주변을 살펴보자.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말은 어떤지 살펴보자.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해결해보자. 부모는 아이들과 평생 함께할 수 없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하는 모든 교육의 목표는, 아이의 독립이다. 물질적, 정신적으로 독립하여 건강한 성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부모가 고민하는 것들을 아이와 공유하자. 부모라고 다 알지 못한다. 아이들도 안다. 동네 단골 가게에 등장한 마약계란. 우리 아이들에게 물었다. “마약 계란을 계란 장조림을 바꾼다고 안 팔릴까?” “아니, 맛은 똑같잖아.” 마약에 대해서 이미 이야기를 나눠봤고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을 지난번 대화에서 알게 되었기에 오늘은 이름을 변경하는 것에 관해서 물어봤다. 그러면 반찬가게에 가서 그냥 ‘이름 바꾸세요’ 하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우리 아이들과 이제는 반찬가게에서 마약 계란이라는 이름을 어떻게 바꾸게 할까, 방식을 고민해보려 한다. 소통의 방식을 배우는 것도 교육이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자.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눠보자. 마약을 만들고 판매하기 힘들었던 마약 청정국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동네 골목 안까지 마약이 배달되고, 음식 이름에 마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되었는지.
베르디와 바그너 두 영웅으로 대표되는 낭만주의 오페라는 두 사람의 죽음을 계기로 그 위세가 약화되고, 대신 사실주의적 경향을 보이기 시작한다. 1890년대 이탈리아 사실주의 오페라를 의미하는 베리스모(verismo) 오페라는 19세기 중반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에 기반한다. 사실주의 문학은 프랑스 혁명 후 자본주의 시대의 도래와 함께 나타난 인간소외현상에 대한 낭만적인 포장을 거부하고, 현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다. 에밀 졸라(Emile Zola/1840-1902)가 대표적인 사실주의 작가다. 이러한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은 자국의 오페라 작곡가인 비제에게 영향을 주었고, 최초의 사실주의 오페라라고 할 수 있는 ‘카르멘’이 탄생했다. 1890년대 이탈리아 사실주의 오페라를 주도했던 이탈리아의 작곡가들은 청년시절 비제의 카르멘을 보면서, 이런 혁신적인 시도가 오페라의 본고장인 이탈리아가 아닌 프랑스에서 일어난 것에 대해 깊은 경외감을 가졌다고 한다. 어쨌거나 사실주의 오페라의 물줄기는 다시 이탈리아로 향했다. 혹자는 베르디의 후계자인 푸치니를 사실주의 작곡자 범주에 넣기도 한다. 라보엠이나 토스카를 보면 그럴 수도 있지만, 이 작품들은 짧은 단막극이 아니라는 점에서 베리스모 오페라와 구별된다. 우리가 흔히 이탈리아 베리스모 오페라의 효시를 말할 때는 마스카니(Pietro Mascagni/1863-1945)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Cavalleria rusticana)를 지칭한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로마의 작은 음악출판사인 손초뇨(Edoardo Sonzogno)의 기발한 오페라 공모전을 통해 탄생했다. 손초뇨는 밀라노의 대형 출판사인 리코르디(Giovanni Ricordi)에 맞서는 전략보다는 틈새를 노리는 전략을 세웠다. (*리코르디는 베르디의 전막 오페라 판권을 소유한 대형 출판사) 1889년 1막짜리 단막 오페라 공모전을 개최하였는데 무려 73편의 오페라가 출품되었다. 이중에서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가 압도적인 작품성으로 우승을 하고 만다. 이 오페라는 이듬해인 1890년에 로마에서 초연되어 대성공을 거둔다. 당시 27세의 청년 작곡가 마스카니는 일약 이탈리아 오페라계의 스타로 등극한다. 비록 후속작품으로 친구 프리츠(L'amico Fritz) 외에는 흥행작품이 없고, 말년에는 무솔리니에게 협력했다는 이유로 전 재산이 몰수되는 수모를 겪었지만, 그는 푸치니와 더불어 대중오페라 시대의 종말을 함께한 19세기 말 이탈리아 오페라의 거장이었다.
‘21세기는 정보의 시대’라는 말이 있다. 정보가 차지하는 비중이 개인과 단체의 생활과 생존은 물론 국가와 세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일 것이다. 정보를 습득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그중 가장 손쉬운 것이 ‘뉴스(news)’다. 뉴스는 개인이 살고 있는 지자체와 광역단체, 국가와 세계의 소식 중 가장 중요하거나 관심가질 만한 내용을 순차적으로 간추려 대중에게 알려준다. 이 뉴스를 전달하는 매체는 과거에는 신문과 공중파 방송이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지상파 방송과 유튜브, 페이스 북 등 다양한 SNS도 뉴스 양산에 한몫 하고 있다. 그러나 뉴스 매체가 다양해지고 많아지는 것과 반대로 뉴스에 대해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란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정파에 따른 대립과 갈등이 고조되면서 서로 상대방을 헐뜯기 위해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행위들이 넘쳐난다. 이로 인해 뉴스의 신뢰도가 급격히 떨어졌고 가짜 뉴스나 편향된 뉴스를 쓰는 기자를 향해 ‘기레기(기자 쓰레기)’라는 말을 넘어 ‘기더기(기자 구더기)’라는 말까지 생겼다. 가짜뉴스는 내용이 가짜인 경우도 있지만 내용과 딴판인 제목을 쓰거나 사실과 상관없이 내용의 일부분만 오려 그게 사실의 전체인 양 짜깁기 하는 것도 한 종류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누군가의 입을 통했다는 전제로 퍼뜨리는 소식도 가짜뉴스다. 이런 종류의 기사들이 우리 사회 전반에 흘러넘치다 보니 이제는 어떤 것을 믿고 어떤 것을 옳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럽다. 가장 정확한 것이 통계를 통한 전달인데 이제는 이마저도 믿을 수 없다. 통계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평가가 엇갈린다는 것을 뉴스 생산자들이 알고 이를 교묘히 이용하기 때문이다. ‘숫자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는 통념을 왜곡한 채 언제 통계인가, 전체의 비율은 어떤가, 이웃 국가들의 현황은 어떤가 등을 따지지 않고 편집해서 쓰는 통계들은 오히려 더 악랄한 가짜 뉴스가 된다. 이런 뉴스들은 작게는 개인의 명예를 떨어뜨리고 기업을 악화시키는 정도지만 크게는 생명을 죽이고 사회와 국가를 수렁에 밀어 넣는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있다. 교묘하게 치장된 가짜 뉴스는 정적을 소멸하는 도구로 사용된 지 오래며 그로 인해 국민들이 애써 이룬 민주주의가 하루아침에 몇 십 년 이전으로 후퇴하기도 한다. 특히 아직까지 뉴스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방송과 신문의 뉴스는 대중을 현혹하는 주범이 된 지 오래다. 더구나 지금 언론사 기자들은 사주의 경향을 대변하는 직장인이라는 소리를 할 만큼 기자들의 역할이 무뎌지고 무너졌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사실은 이런 일들은 역사적으로도 흔히 일어나던 일이고 대다수의 경우 언론은 언제나 힘 있는 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살찌우고 그들에게 딸랑거리는 역할에 충실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나폴레옹에 대한 일로 나폴레옹이 엘바섬에 유폐되었다가 탈출해 다시 지지세력을 모아 프랑스로 진격해 들어올 때 시시각각 변하던 프랑스 대표 신문 ‘르몽’지의 기사 제목이다. “살인마, 소굴에서 탈출 / 코르시카의 마귀 쥐앙만에 상륙 / 폭군, 리용 지나 / 보나파르트 급진, 파리 입성은 절대 안 돼 / 황제 퐁텐블로에 들어오시다” 최근 우리나라 정세도 이와 특별히 다른 점이 없다. 좀 더 엄격히 말하면 오히려 지금의 우리나라 언론은 가짜 뉴스들을 적극적으로 양산하며 권력을 떠받들고 그 권력과 동반하는 기업의 광고를 받고 그들과 함께 안락과 생계를 유지하는 형태다. 창궐하는 악성 유튜브 방송들은 여기에 한 술 더 떠 가짜뉴스 퍼뜨리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이런 이야기들을 세부적으로 간추린 책이 있다. ‘가짜 뉴스 시대에서 살아남기(2018/글로세움)’다. KBS와 YTN등에서 30년 넘게 기자 생활 후 은퇴한 류희림 씨가 쓴 책이다. 이 책은 가짜 뉴스의 다양한 행태와 사례들, 가짜 뉴스로 인해 일어난 참사, 한국언론의 고질적인 병폐 등이 체계적으로 들어 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가짜 뉴스들을 판별하는 방법, 가짜 뉴스들을 속 편히 볼 수 있는 방법, 궁극적으로 가짜 뉴스에서 살아남는 방법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가짜 뉴스가 싫다고 뉴스를 보지 않는 것은 교통사고가 무서워 자동차를 타지 않는 것과 같다” 작가는 결론적으로 ‘뉴스를 보지 말라’고 조언한다. 쓰레기 같은 가짜 뉴스들이 앞으로 쏟아져 나올 것은 분명한 만큼 뉴스를 보지 말라는 말을 다시 바꾸어 ‘뉴스에 속지 말라’로 고친다. 그래야 현명하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주시정신건강복지센터는 세계자살예방의 날을 맞아 오는 19일 경주 보문 씨네큐 영화관에서 열리는 ‘생명존중 영화제’ 참여자 150명을 모집한다. <사진> 이번 행사는 정연경 감독의 영화 ‘나를 구하지 마세요’를 관람하고, 영화 평론가 심영섭과 함께 생명존중 토크콘서트를 펼친다. 영화 ‘나를 구하지 마세요’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을지 모를 안타까운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동시에 따뜻한 희망의 메시지도 전달한다. 영화제 참여 신청은 9월 15일까지 경주시정신건강복지센터 홈페이지를 통해 선착순 150명을 사전 접수한다. 참가비는 무료이며, 신청자에 한해 안내 문자가 개별 발송될 예정이다. 한편 타인에게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할 시에는 심리상담 핫라인(1577-0199) 및 자살예방 상담전화(1393), 희망의 전화(129) 등에서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이 사업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경주시정신건강복지센터 홈페이지를 참조하거나 센터로 전화문의하면 된다.
경주시시설관리공단이 변화와 혁신을 통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며 지방공기업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평가다. 경주시시설관리공단은 지난 2017년 5월 설립돼 올해로 만 6년을 넘겼다. 현재 경주시로부터 체육·관광·교통 등 3개 분야 42개 공공시설물을 위탁받아 효율적으로 관리·운영해 시민 복리증진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지난해 8월 23일 취임해 만 1년을 맞은 제3대 정태룡 이사장을 만나 그간의 성과와 향후 목표 등을 들어봤다. 취임 1년을 맞았다. 그간의 소회는? 지난해 취임 일성으로 ‘경주시시설관리공단은 100% 시민혈세로 운영되는 만큼 경주시 시정목표와 시정철학에 부응하는 경영을 통해 시정발전을 든든히 뒷받침하고, 한편으론 공단 구성원 개인과 조직의 발전과 미래가 있는 일하고 싶은 자랑스런 직장을 만들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동안 공단의 획기적인 변화와 혁신을 통해 조기에 가시적 성과를 거두기 위해 다양한 과제를 발굴해 직원들과 함께 발 빠르게 시행해왔다. 취임직후 경영목표 실현을 위해 곧바로 공단의 운영 전반에 대한 심도 있는 직무분석을 시행했다. 이를 통해 실현 가능한 단기 및 중장기 계획을 수립해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과감하고 속도감 있게 실행하고 있다. 공단 내부 조직을 위해 시행한 일들이 있다면? 우선적으로 직원들의 결속을 통한 조직의 안정 속에 내부 역량강화에 힘썼다. 조직의 활력화와 업무의 효율화를 위해 대규모 직제 개편과 함께 인사를 단행했다. 또 현 경주실내체육관 지하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해소하고 쾌적한 사무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오는 9월 선도동 소재 구 경찰서 방범순찰대 청사로 이전을 확정하고 현재 리모델링 공사 중에 있다. 동일 목표를 지향하는 한 가족 공동체 인식을 확고히 심어 조직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독립된 기관으로서의 브랜드 이미지인 새로운 CI(심볼마크)를 제작하기도 했다. 또 노사·상하·연령·성별에 차별없는 원활한 소통체계 구축,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운영, 철저한 능력과 성과중심의 보상, 청렴도 및 윤리경영 강화, 직무전문성 향상을 위해서도 적극 노력하고 있다. 대외적인 성과는? 다른 지방공기업과의 활발한 정보교환 및 대외 교류협력을 통해 역량을 강화하고자 지난 1월 1일부로 ‘전국시군구지방공기업협의회’에 가입했다. 그리고 곧바로 수석부회장으로 선임돼 지난 3월 30일, 31일 이틀간 경주에서 전국 지방공기업의 CEO와 임직원 160여명이 참석한 총회를 개최해 지역경제 도움은 물론 공단과 경주시를 널리 알리고 위상을 높이는데 일조했다. 공단 경영개선 등을 위한 노력은? 공단의 특성상 공공성과 경제성의 조화를 위해 경영합리화를 통한 재정건전성 유지에 집중했다. 세입증대를 위한 다양한 신규 수익사업의 선제적 발굴, 수시 모니터링을 통한 경영성과 점검·관리, 세입증대·세출저감의 예산목표 수립 및 집행, 기간제근로자의 성수기·비수기 탄력적 인력운영에 의한 인건비 절감, 기계·전기·에너지·조경 등 자체 전문 인력을 활용한 공사 직접시행으로 경비절감에도 힘썼다. 시민과 관광객들을 위한 정책은? 고객중심의 고객지원 관리시스템의 구축으로 고품질 고객서비스 강화에도 힘쓰고 있다. 불편·불만 접수창구를 활성화해 온·오프라인 접수민원을 최단 시일 내 처리하고, 반복적인 직원친절 교육과 수시 점검을 통해 최상의 서비스가 일상화 되도록 했다. 전 사업장에 인터넷 예약 시스템을 구축해 편리하고도 공평·공정한 시설운영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공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과 역할은? 공공기관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지역사회와 협력·상생하는 활발한 공헌활동도 적극 전개하고 있다. 지난해 힌남노 태풍으로 피해가 컸던 암곡지역 복구에 곧바로 전 직원이 앞장서 참여했다. 또 수시로 금전·물품 및 재능기부를 통해 어려운 이웃과 소외계층에 대한 나눔을 적극 실천했다. 또한 지역농산물 구입, 전통시장 이용하기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적극 동참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새로운 정규직원 12명에 이어 올해 하반기에도 5명을 채용할 예정이다. 단기기간제 직원도 매달 평균 20∼30여명을 꾸준히 고용하는 등 더 좋고 더 많은 일자리 창출에도 노력하고 있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씀은? 인생 제2막을 태어나고 자란 고향으로 돌아와 새로운 공직에서 다시 할 수 있음에 무한히 감사하게 생각한다. 재임기간 동안 미력하나마 경주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 보답하겠다.
유상곡수 잔을 나르던 자리 (曲水傳觴地) 맑은 물이 돌에 부딪쳐 흘러오네 (淸流激石來) 천년의 유적 남은 그 자리 (千年遺跡在) 좋은 계절 늦봄이 돌아왔네 (佳節暮春廻) 지나는 객은 전성기 생각하고 (過客思全盛) 지내는 백성들 경애왕을 말하네 (居民說景哀) 오릉의 북쪽에서 상심하자니 (傷心五陵北) 예전 못과 누대 잡초에 뒤덮였네 (蕪沒舊池臺) 경애왕 마지막 이야기 품은 포석정 조선 중기 문신이자 학자인 김수흥(金壽興, 1626~1690)이 쓴 ‘포석정에서 회고하다’(鮑石亭懷古)란 시다. 그의 시문집인 ‘퇴우당집’(退憂堂集)에 실려 있다. 김수흥은 현종 원년(1660) 임금이 내린 시호 교지를 전달하는 사시관(賜諡官) 자격으로 경주를 방문했다. 당시 그는 경주부의 안내를 받아 봉황대, 첨성대, 미추왕릉, 월성, 계림, 안압지(지금의 동궁과월지), 분황사, 백률사, 금장대, 김유신묘, 포석정 등을 둘러봤다. 이 시는 그때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김수흥이 방문했던 포석정은 남산 북서쪽 자락에 있다. 신라 때 국가 의례나 연회 장소로 추정되는 곳이다. 포석정이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삼국유사’에 제49대 헌강왕이 포석정에 행차했다는 기록과 효종랑(孝宗郞)이라는 화랑이 포석정에서 놀았다는 내용이 남아 있다. 신라 제55대 경애왕의 마지막 이야기도 이곳에 남아있다. 927년 후백제가 경주로 쳐들어왔을 때에 경애왕이 포석정에서 잔치를 베풀다가 견훤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다고 전해진다. 사실 포석정에서 볼만한 건 별로 없다. 63토막의 화강암을 다듬어 구불구불하게 물길을 만든 유명한 석조 구조물이 전부다. 물길의 너비는 30cm, 깊이는 22cm, 전체 길이는 22m 정도다. 이 물길에 술잔을 띄우면 대략 12곳에서 술잔이 머물게 된다고 한다. 이른바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 굴곡진 물길 위에 술잔을 띄워 그 술잔이 머무는 곳에 있는 사람이 시를 읊는 연회)을 즐기기 위한 수로로, 일제강점기에 정비한 것이다. 물길 주변엔 돌로 만든 우물과 기타 석재들이 남아 있다. 포석정이란 이름은 돌로 만든 물길이 전복(鮑, 전복 포)을 닮아 붙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포석정의 성격에 대해선 연회장소, 혹은 제의 공간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연회장소라기보다 제의 공간으로 보는 쪽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다만 구체적인 제의 내용에 대해서는 계욕(禊浴, 3월에 부정한 것을 씻어내기 위해 하늘에 제사 지내는 의례)의 장소, 팔관회(八關會, 불교와 토속신앙이 합쳐진 국가 행사로 전쟁에서 희생된 사람을 위한 위령제의 기능을 한 의례) 장소, 길례(吉禮)를 행하던 장소 등으로 차이를 보인다. 정리하자면 이곳에서 행해졌던 의례의 성격에 대해선 분명하게 알 수 없지만, 주변에 포석정과 연관된 건물지가 확인됐고 기와 등 출토 유물을 통해 볼 때, 신라 왕실과 관련된 중요한 건물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게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측의 설명이다. 포석정에 얽힌 오해와 진실 포석정은 알다시피 ‘망국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유적이다. 이 무덤의 주인 경애왕 또한 포석정에서 신하, 궁녀들과 술판을 벌이다 견훤이 이끄는 후백제군에게 잡혀 죽임을 당하고 1000년 사직을 나락에 빠뜨린 부끄러운 군주로 기억되고 있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등의 기록 때문이다. ‘삼국유사’는 그날을 이렇게 기록했다. 927년 9월에 후백제 견훤이 신라를 침공해 고울부(지금의 경북 영천)에 이르니 경애왕이 우리(고려) 태조(후삼국을 통일해 고려를 세운 왕건)에게 구원을 청했다. 태조는 장수에게 명령해 날랜 군사 1만명을 거느리고 구하게 했으나 구원병이 미처 도착하기도 전에 견훤이 그해 11월 서울(경주)로 쳐들어갔다. 이때 왕은 비빈과 종실, 외척들과 포석정에서 연회를 열고 있었기 때문에 적이 쳐들어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어찌할 줄 몰랐다. 왕과 비는 달아나 후궁으로 도망가고 종실과 공경대부, 사녀(士女)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다가 적에게 사로잡혔다. 귀천을 막론하고 모두 땅에 엎드려 노비가 되기를 빌었다. 견훤은 군사를 풀어 나라와 백성들의 재물을 약탈하고 왕궁으로 들어갔다. 좌우 신하들에게 신라 왕을 찾도록 했다. 왕은 왕비와 첩들과 함께 후궁에 숨어 있었다. 견훤은 왕을 백성 앞으로 끌어내 자결하게 하고 왕비를 욕보였다. 부하들은 왕의 빈첩을 욕보였다. ‘삼국유사’는 경애왕이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해있는데도 포석정에서 술 마시고 놀다가 견훤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게 사실이라면 참으로 부끄러운 역사다. 그러나 여기서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 있다. 경애왕이 술판을 벌였다는 시기는 음력 11월, 다시 말해 한겨울이었다. 게다가 경애왕은 이보다 두 달 전인 음력 9월 후백제 견훤의 군대가 인근 영천까지 진격하는 위험에 처하자 고려 왕건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이에 왕건은 구원병 1만명을 보냈는데, 이들이 미처 경주에 도달하기도 전에 견훤군이 침략한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적을 목전에 두고 술판을 벌일 왕이 있을까. 더구나 한겨울 노천에서 술판을 벌였을까. ‘화랑세기’를 보면 의미심장한 대목이 나온다.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포석사’(鮑石祠), 혹은 ‘포석(鮑石)’이다. 포석‘정’(亭)이 아니라 사당을 뜻하는 포석‘사’(祠)라는 점에 주목해야한다는 일부 학자들의 견해다. ‘화랑세기’에 따르면 이 포석사에는 화랑 중의 화랑으로 추앙받은 문노(文努)의 화상을 모셨다. 문노는 제8대 풍월주(재임 579~582년)였다. 그는 삼국통일 이후 ‘사기(士氣)의 종주(宗主)’ 즉 ‘씩씩한 기운의 으뜸’으로 추앙받았다. 그런 문노의 화상이 포석사에 있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포석사에서 나라의 안녕을 비는 행사가 열렸던 것은 아니었을까. 포석사에서는 귀족들의 길례(吉禮)도 열렸다. 문노와 윤궁이 혼인할 때는 진평대왕이 친히 포석사에 간 적이 있다. 또 태종무열왕인 김춘추와 김유신의 동생 문희의 혼인식이 열린 곳도 바로 포석사였다. 이런 점에 미뤄 보면 경애왕은 술판을 벌이려 한겨울에 포석정으로 간 것이 아니라, 위기에 빠진 나라의 안녕을 간절히 빌기 위해 왕실과 귀족을 동원해 포석사로 간 것이라는 유추도 가능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삼국유사’ ‘삼국사기’ 기록은 신라를 무너뜨린 역사의 승자 ‘고려’ 때의 것이다. 포석정과 경애왕의 이야기는 새 왕조 탄생의 당위성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가 됐을 가능성도 있다. 김운 역사여행가
(사)대한노인회 경주시지회(회장 구승회)는 경주노인회보에 ‘100년 전 경주 장날 풍경’ 사진을 게재하며 어르신들과 경로당 행복선생님들의 추억을 소환해 행복감에 넘쳐나고 있다. 사진 한 장으로 어르신들은 유년시절의 장날 풍경에 대해 이야기하며 즐거운 회상을 하고 있다. 대신3차 경로당 어르신들은 “추석, 설날, 할아버지 생신날이 다가오면 해질녘 동네 어귀에 앉아 엄마를 기다리던 그때가 먼저 떠오르네요. 엄마를 기다렸지만 실상은 장바구니에 담긴 먹거리가 더 궁금하고 내 것은 무엇이 있을까?”라며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다. 김모 어르신은 “뻥장수의 뻥튀기 후 망태 옆으로 튀어 나오는 강냉이를 주워 먹으려고 쪼그리고 앉아 기다리던 기억이 떠오르네요”라며 크게 웃자 “맞다 맞아”라고 맞장구치는 어르신들은 마냥 행복한 모습이다. 박목월의 ‘기계장날’ 시를 읽어드리며 시인 박목월 생가가 경주 모량리에 있는 이야기부터 몇 십리를 걸어서 학교에 다녔던 이야기들을 재미나고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유경자 행복선생은 “웃고 또 웃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장날이야기를 꺼내자마자 ‘뻥이요~~’ 외침이 먼저 나왔구요. 설날이 되어야 새 옷, 새 신발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날이라는 어르신들의 말씀에 가슴이 먹먹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우화한식당 황남정은 지난 16일 경주시청을 방문해 저소득층을 위한 쌀 280kg(65만원 상당)을 기탁했다. <사진> 천군동에 소재한 우화한식당은 김해시에 본점이 있으며 지난달 경주에 4호점을 오픈했다. 이번에 기탁한 쌀은 개업 축하로 받은 쌀 화환으로 백미(20kg) 14포다. 윤한검 대표는 “지역사회 내 취약계층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기탁을 결정하게 됐으며 어려운 세대에 잘 전달해 달라”고 전했다. 이날 기부물품은 경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경주성애원은 지난 16일 여름방학을 맞이해 물놀이 프로그램을 경주월드 내 캘리포니아비치에서 진행했다. <사진> 이번 캘리포니아비치 체험은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고,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주)삼봉개발 경주월드에서 경주성애원의 아이들을 ‘여름 쏙 VIBE 캘리포니아 비치’로 초청해 시원하고, 짜릿한 여름을 즐길 수 있도록 각종 편의 시설과 입장권을 제공하는 등 잊지 못할 여름 추억을 선사했다. 캘리포니아비치 체험에 참여한 아이들은 “실제 바닷가 파도처럼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시원한 파도 풀과 아찔한 워터 슬라이드가 너무 재미있어요”, “언니, 오빠, 동생들과 함께 물놀이를 하면서 찐친이 됐어요”라고 입을 모았다. 김가영 원장은 “아이들에게 행복하고 소중한 추억이 됐고, 지역사회 아동복지 증진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실천해주시는 경주월드의 배려에 깊은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경주시장애인종합복지관은 지난 17일 경주시평생교육사협회 김명희 회장을 비롯해 회원 4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장애인 평생교육을 위한 업무협약식을 가졌다. 또 협약식 이후 ‘장애인 인식 개선 및 장애인 평생학습에 대한 이해’를 주제로 경주시평생교육관계자 3차 교육이 성황리에 진행됐다. 장애인 평생교육 관계자와 함께 공유하고 발전 방향을 고민하는 소통의 장이 됐다. 경주시평생교육사협회는 2010년 창립해 현재까지 13년째 운영해오고 있으며, 현재 김명희 회장을 중심으로 70여명의 회원이 함께하고 있다. 매년 평생교육관계자 역량강화교육을 비롯해 성인 문해교육, 평생교육 포럼, 평생교육 관련 세미나 워크숍 등을 운영하고 있다. 또 재능기부 교육봉사를 통해 평생교육 소외계층을 직접 찾아가 평생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있고, 선진지 견학을 통해 선진 평생교육 프로그램 및 운영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경주시평생교육사협회 김명희 회장은 “경주시가 2023년 장애인 평생학습도시로 선정되면서 경주시장애인종합복지관 뿐만 아니라 경주시평생교육사협회의 역할이 커지게 됐다. 이에 기관 및 단체 간 연계와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해 경주지역의 평생교육이 활성화되기 위해 업무협약을 하게 됐다”며 “회원들과 장애인식개선 교육 수강 및 장애인분들과 함께하는 다문화 체험 교육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번 경주시평생교육관계자 계속 교육 3차를 통해 회원들의 역량 강화와 장애인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좋은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경주시장애인종합복지관 종성스님은 “복지관은 장애 유형별 평생교육 프로그램 개발 등 특성화된 장애인 평생학습 인프라와 시스템 확충을 통해 장애인분들의 평생교육 학습 기회가 확대되길 바라며 노력 중이다”면서 “특히 경주시평생교육사협회와의 업무협약을 통해 보다 질 높은 평생교육 서비스가 제공되고 지역의 평생교육이 발전되리라 기대한다” 고 말했다. 경주시장애인종합복지관은 지역 장애인을 대상으로 치료·교육·훈련·취업·문화·여가·체육 등 종합적인 재활서비스를 제공하고 아울러 장애인의 사회통합에 기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기타 이용 상담 및 사회공헌활동은 경주시장애인종합복지관로 문의하면 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