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디와 바그너 두 영웅으로 대표되는 낭만주의 오페라는 두 사람의 죽음을 계기로 그 위세가 약화되고, 대신 사실주의적 경향을 보이기 시작한다. 1890년대 이탈리아 사실주의 오페라를 의미하는 베리스모(verismo) 오페라는 19세기 중반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에 기반한다. 사실주의 문학은 프랑스 혁명 후 자본주의 시대의 도래와 함께 나타난 인간소외현상에 대한 낭만적인 포장을 거부하고, 현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다. 에밀 졸라(Emile Zola/1840-1902)가 대표적인 사실주의 작가다. 이러한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은 자국의 오페라 작곡가인 비제에게 영향을 주었고, 최초의 사실주의 오페라라고 할 수 있는 ‘카르멘’이 탄생했다. 1890년대 이탈리아 사실주의 오페라를 주도했던 이탈리아의 작곡가들은 청년시절 비제의 카르멘을 보면서, 이런 혁신적인 시도가 오페라의 본고장인 이탈리아가 아닌 프랑스에서 일어난 것에 대해 깊은 경외감을 가졌다고 한다. 어쨌거나 사실주의 오페라의 물줄기는 다시 이탈리아로 향했다. 혹자는 베르디의 후계자인 푸치니를 사실주의 작곡자 범주에 넣기도 한다. 라보엠이나 토스카를 보면 그럴 수도 있지만, 이 작품들은 짧은 단막극이 아니라는 점에서 베리스모 오페라와 구별된다. 우리가 흔히 이탈리아 베리스모 오페라의 효시를 말할 때는 마스카니(Pietro Mascagni/1863-1945)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Cavalleria rusticana)를 지칭한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로마의 작은 음악출판사인 손초뇨(Edoardo Sonzogno)의 기발한 오페라 공모전을 통해 탄생했다. 손초뇨는 밀라노의 대형 출판사인 리코르디(Giovanni Ricordi)에 맞서는 전략보다는 틈새를 노리는 전략을 세웠다. (*리코르디는 베르디의 전막 오페라 판권을 소유한 대형 출판사) 1889년 1막짜리 단막 오페라 공모전을 개최하였는데 무려 73편의 오페라가 출품되었다.  이중에서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가 압도적인 작품성으로 우승을 하고 만다. 이 오페라는 이듬해인 1890년에 로마에서 초연되어 대성공을 거둔다. 당시 27세의 청년 작곡가 마스카니는 일약 이탈리아 오페라계의 스타로 등극한다. 비록 후속작품으로 친구 프리츠(L`amico Fritz) 외에는 흥행작품이 없고, 말년에는 무솔리니에게 협력했다는 이유로 전 재산이 몰수되는 수모를 겪었지만, 그는 푸치니와 더불어 대중오페라 시대의 종말을 함께한 19세기 말 이탈리아 오페라의 거장이었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