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서 16일 코로나19 확진자 38명이 신규 발생했다. 경주지역 누적 확진자는 1540명으로 늘었다.이날 확진자 38명 중 18명이 집단감염이 발생한 황성동의 한 초등학교와 중학교 학생 확진자의 가족이거나 밀접접촉자로 파악됐다. 또 다른 초등학교에서도 학생 3명이 추가로 확진됐다.포항을 비롯한 타 지역 확진자의 접..
경주범죄피해자지원센터(이사장 이상춘, 이하 경주범피)는 15일 대구지검 경주지청 대회의실에서 범죄피해자 12가정을 초청해 ‘2021 따뜻한 겨울나기 희망동행’을 개최했다.‘따뜻한 겨울을 희망합니다’라는 주제로 열린 행사에는 범죄피해자 12명과 대구지검 경주지청 김태은 지청장, 정현 부장검사, 홍영기 검사, 경주..
경주시의 코로나19 위기 대응을 위한 고강도 특별방역대책 시행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확진자가 더 급증하고 있어 비상이 걸렸다. 방역당국에 따르면 15일 0시 기준 전국 코로나19 확진자는 7850명으로 8000에 육박하고 있으며 위중증환자도 964명으로 둘 다 역대 최다를 기록한 가운데 강화된 거리두기 시행이 불가피하다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다. 경북지역에도 연일 다수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경주도 심각한 상황에 처했다. 경주는 지난 11일~14일까지 85명이 발생, 매일 20명 안팎의 확진자가 나오고 있으며 15일 오전 10시 기준 45명이 발생하는 등 경북지역에서도 그중 많은 확진자가 나오고 있다. 확진자도 성건과 외동, 안강 등지에서 산발적으로 다수 발생하고 있으며, 특히 15일 발표에 따르면 지역 한 초등학교에서 확진자가 22명이나 나와 학교와 학원 등의 전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또 15일 발표된 45명의 확진자 중 30명이 재택치료에 들어갔으며 현재까지 경주지역 재택치료자가 49명에 달해 가족 간의 2차 전염이 우려되고 있다. 그리고 최근 확진자의 30%가 감염 경로를 확인할 수 없다는 것도 문제가 되고 있다. 그동안 경주시는 확진자가 급증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변경할 때마다 특별방역대책을 시행하고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시민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하지만 그동안 확진자 추세를 보면 이 같은 상황을 타계하기 위한 경주시의 특별방역대책 수립·시행도 무색해 지고 있다. 전국적으로 많은 확진자가 나오고 있고,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는 경주의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경주에서 주기적으로 확진자가 많이 나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부의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시행을 코앞에 두고 경주시는 또 특별방역대책을 발표할 것으로 보여 진다. 시는 정부의 대책에만 의존하지 말고 지역에서 방역 규정이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 타이트한 관리를 하길 바란다. 그리고 시민들도 연말연시를 앞두고 방역수칙 준수와 3차 추가접종에 동참하고 집단모임 등은 최대한 자제하길 바란다.
경주시 청렴도가 2년 연속 3등급을 평가 받은 것은 긍정적이며 더욱 신뢰받는 행정 구축에 박차를 가해야 할 때라 사료된다. 특히 매년 최하위(5등급)를 벗어나지 못했던 경주시 청렴도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연속 3등급을 받은 것은 그동안 경주시가 강력하게 추진해 왔던 청렴한 경주시 만들기가 정착되어 가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국민권익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경주시는 ‘2021년도 청렴도 종합평가’에서 전국 75곳 자치단체 시 중 ‘종합 3등급(7.87점)’을 기록했다. 경북도내 시 중에서는 경산시가 종합평가에서 2등급, 경주시와 포항시, 문경시, 영천시가 각각 3등급을 받았다. 지난 수년간 경주시 청렴도는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었다. 2014년 5등급(6.33점), 2015년 4등급(7.40점), 2016년 3등급(7.19점), 2017년 5등급(6.78점), 2018년 5등급(6.72점), 2019년 5등급(6.80점), 2020년 3등급(7.83)의 성적표를 받았다. 그리고 2014년, 2017년, 2018년, 2019년에 최하위 등급인 ‘종합평가 5등급’을 받았다가 시는 지난해부터 2단계 오르면서 ‘종합평가 3등급’을 2년 연속 유지하게 됐다. 세부 평가결과를 보면 민원인 290명을 상대로 한 외부청렴도 평가에서 3등급(7.98점), 공무원 153명을 상대로 한 내부청렴도 평가에서 각각 3등급(7.57점)을 받았다. 특히 내부청렴도 평가 항목 중 청렴문화 지표에서는 7.77점을 받아 전국 시 평균 7.30점보다 0.47점 높게 나왔다. 내부청렴도의 경우 지난해 4등급에서 올해는 3등급으로 받은 것은 경주시의 자정노력이 어느 정도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주낙영 시장은 2018년 7월 취임할 당시 바닥에 있는 경주시 청렴도를 높이는 것을 가장 큰 과제로 삼았다. 주 시장은 당시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다른 어떤 일을 잘하더라도 시민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없다”면서 청렴도 회복을 위해 고강도 대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경주시의 청렴도는 1등급도, 2등급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번에 전국 75개 지자체 중, 종합평가에서 1등급은 없으며, 2등급 30개, 3등급, 25개, 4등급 12개, 5등급 8개로 3등급인 경주시는 평균 수준에 그치고 있다. 지자체의 청렴도는 대외신뢰도와 지역사회 민심의 향배에 큰 영향을 미친다. 경주시는 향상된 청렴도에 결코 안주해서는 안되며 앞으로 더욱 매진해 투명하고 건강한 행정을 정착시켜 시민들로부터 신뢰 받은 조직이 되길 바란다.
경주에서 현곡남사 쪽 디자인고등학교(구 가정국민학교)를 지나서 조금 가다보면 좌측엔 용담정으로 가는 길이고 직진해서 조금만 더 가면 우측으로 가정1리 간이 정거장과 함께 최제우 유허비 이정표가 보인다. 그 길을 곧장 가면 <천도교조대신사수운최제우유허비>가 있는 최제우 대신사 생가 터가 나오는데 내 고모집 뒤뜰이다.
<천도교조대신사수운최제우유허비> 뒷면에는 문교부장관과 영남대총장을 지닌 문학박사 리선근의 글이 각자되어 있고 비몸 옆면엔 대통령 박정희, 천도교령 최덕신, 외동석재 한동식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최덕신은 광복군 대령출신이며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조인시 미국 육군중장 윌리암 케이 해리슨, 조선인민군 대장 남일이 서명할 때 대한민국 육군소장으로서 방청 자격으로 배석만 하였다. 후일 천도교령 최덕신 중장은 외무장관 및 주서독대사를 지낸다. 최덕신은 1914년생으로 1917년생 박정희 대통령의 막료였다. 비록 3살 차이긴 하지만 최덕신이 육사교장으로 있을 때 박정희 생도는 스승과 제자 사이였다.
최덕신의 부친인 의산 최동오는 상해임시정부의 법무부장이면서 사적으론 만주 <화성의숙> 교장 재직시 김성주(=북한 김일성 주석의 아명)의 스승이기도 했다. 이러한 인연으로 소위 북한의 모시기 공작과 남한 내 박정희 대통령과 그 수하들의 갈등 및 이간질로 최덕신 교령은 1976년 도미하고 1986년 9월 미국에서 북한으로 영구 귀국하여 현재 평양시 신미리 애국렬사릉에 최덕신과 최동오 부자는 나란히 묻혀있다.
한편 의산 최동오와 가장 막역한 사이인 춘교 류동열은 상해임시정부 군무부장을 역임했으며 자신의 딸인 류미영과 최동오의 아들 최덕신을 결혼시켰다. 류미영은 조선천도교 중앙청우당 위원장을 줄곧 역임했고 1980년대 북측 이산가족방문 단장으로 서울에 온 바가 있다.
생가터에서 멀리 마주 보이는 큰 산이 용담정을 품고 있는 교룡리 구미산이고 그 앞 작은 토룡산 등마루 움푹 패인 곳에 수운 최제우 대신사가 묻혀 있다. 최제우 대신사는 1824.10.28일 현곡면 가정1리 315번지, 내 고모집 뒤 뜨락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아명은 복술이고 1860.4.5일 무극대도를 터득한 경신참계 이전 이름은 최제선이다. 37세 경신참계 이후 이름을 민중의 어리석음을 구제한다는 뜻으로 최제우로 개명했다.
최제우 대신사는 해월 최시형(최경상)이 37세 되던 해에 동학의 법통을 전수했고, 해월은 의암 손병희가 37세 되던 해에 다시 그 법통을 전수했다. 손병희는 3.1운동을 총체적으로 주도했고 일제로부터 집회의 합법적 자유를 얻기 위해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했다. 실제 3.1운동은 천도교의 막대한 자금과 전폭적인 헤게모니로 천도교 서울본부인 성북구 우이동 ‘봉황각’에서 33난새들이 연출하여 기획되었다.
3.1운동의 기치는 1)거족적 대중화, 2)비분파적 일원화, 3)비폭력(무저항)이었다. 3.1운동의 여파로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1920년 ‘사티아그라하’(비폭력 무저항 불복종 운동)를 결의 성공했고 중국의 쑨원 등이 크게 감화되어 삼민주의(민족주의,민권주의,민생주의)를 주창해 독립운동을 일으켜 크나 큰 반향을 주었다. 이에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1929년 동아일보에 기고한
내년 3월 9일 제20대 대통령 선출투표가 행해진다. 석달이 채 남지 않았다. 여러 말, 특히 여야를 막론하고 후보교체라는 따위의 말이 돌아다니고 있으나 이는 있을 법 하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민주당의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 힘 윤석열 후보가 쟁패하여 두 분 중에서 한 분이 새로운 대통령이 될 것은 틀림없다고 본다. 두 분 다 이곳 경주에 와서 유세를 하였고, 그때마다 적지 않은 지역민들이 성원을 보내었다. 그런데 누가 더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이 높을까. 이재명 후보도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 그가 대통령이 되는 경우 기득권구조로 꽁꽁 얽혀있는 한국사회의 구조를 혁파할 것이라는 기대를 많은 국민들이 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뚜렷한 이유로 윤석열 후보가 차기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한다. 첫째 나는 이름 없는 민중들 사이로 퍼지는 ‘의식의 연대’를 믿는다. 문 대통령의 임기말 40% 남짓 지지율은 결코 자랑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임기 내내 철저하게 ‘내 편’, ‘네 편’의 갈라치기를 하여 지금까지도 전례없는 고지지율을 유지하는 것뿐이다. 즉 그는 ‘내 편’만을 붙들고 있었던 것이고, ‘네 편’은 그 사이에 점점 세를 불리며 어느 정권에서도 볼 수 없었던 강한 반감을 여권에 보내고 있는 것이다. ‘네 편’이 가지는 억울함, 분노, 한탄이 그들 간에 그동안 너무나 결속력 강한 연대를 형성하였다. 지금은 수적으로 ‘네 편’이 훨씬 앞서게 되었고, 이는 바로 정확하게 투표로 나타남을 지난 4월의 서울, 부산 시장 보궐선거에서 확인하였다. 2022년의 대통령 선거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반면에 이 후보는 ‘대장동 사태’로 문 대통령과 확연히 구별되는 스탠스를 취할 수 없다. 요즘 들어 자신은 문재인도 아니고, 윤석열도 아니라고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으나 한계가 있다. 그는 끊임없이 문재인 대통령을 쳐다보며 자신의 취약한 처지에 대한 도움을 청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이렇게 해서 이 후보는 반문의 프레임에 스스로 갇히게 되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민주화 이후 정권연장에 성공한 김영삼, 노무현, 박근혜 세 사람은 그 내용을 보면, 정권교체의 의미를 강하게 가졌다는 점에서 이 후보의 장래를 어둡게 만든다. 둘째 앞으로 전개될 대선토론회에서 이 후보의 탁월한 순발력은 빛을 발할 것이다. 그러나 윤 후보가 가지는 토론 전반을 아우르는 ‘상황지배력’은 이 후보보다 낫다고 느낀다. 두 사람을 모두 잘 아는 입장에서 하는 말이다. 그래서 막상막하의 대결을 할 것이나, 굳이 예상을 말하자면 윤 후보에게 약간 기울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윤 후보는 해방 후 지금까지 명멸한 숱한 정치인 중에서 ‘대중(大衆)친화력’이라는 점에 관한 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것이다. 그는 지금 여권에 의해서 ‘검찰쿠데타’의 주역으로 특권의식에 가득찬 인간으로 매도당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실제로는 너그러운 마음씨와 반듯한 인격, 그리고 깊고 뜨거운 정(情)을 가진 이로 인간적 매력이 대단하다. 이 매력을 바탕으로 하여 생긴 강력한 카리스마를 그는 갖고 있다. 그래서 경선기간 중이라는 한정된 시공간 안에서도, 그가 가는 곳에는 어디서나 구름 같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정치신인인 그는 국민의 힘 경선과정에서 유승민과 홍준표라는 노련한 정치인들의 막강한 협공으로 버거운 싸움을 치러야 했다. 하지만 이재명 후보와의 본선에서는 그런 낯선 질곡이 없다. 오히려 이재명 후보가 가진 대장동 사태의 책임이라는 약점을 검찰총장 출신으로서 심리적 우위의 발판으로 만들 수 있다. 셋째 이 정부의 실세들은 윤 후보를 두고 온갖 혐의를 잡아 족치고 있다. ‘고발사주사건’, ’판사사찰사건‘ 혹은 그 부인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사건‘ 등 닥치는 대로 파헤친다. 혐의가 전혀 드러나지 않아도 종결짓지 않는다. 공수처는 이제 ’윤석열 수사공작처‘로 전락해버렸다. 이러한 무리한 수사의 반대작용으로, 윤 후보는 이 정부의 무도한 행동에 의해 희생당하는 순교자의 거룩한 모습으로 바뀌며 거듭나는 과정을 거친다. 지금까지 내가 한 예측, 윤석열의 정계입문, 이낙연의 실패, 4월 보선에서의 야권 승리, 그리고 궁극적으로 윤석열과 이재명 양자가 겨루는 대통령선거에 관한 것들이 운 좋게 모두 들어맞았다. 그 기세에 올라타, 조금은 건방지게 윤석열 제20대 대통령의 탄생을 다시 예측한다.
모차르트는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이 성공을 거두자 곧바로 다 폰테와 함께 ‘돈 지오반니’(1787 초연)를 무대에 올린다. 돈 지오반니는 온 유럽을 들썩거리게 만들었던 희대의 바람둥이다. 그의 하인 레포렐로는 유명한 아리아 ‘카탈로그의 노래’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아가씨, 이것이 제 주인님이 사랑한 여자들의 명단입니다. 바로 제가 만들었답니다. 함께 읽어 보실까요? 이탈리아 640명, 독일 231명, 프랑스 100명, 터키 91명이고요. 스페인은 천하고도 세 명이나 됩니다. 1003명! 이 오페라의 표면적인 주제는 ‘바람피운 자, 지옥으로 간다’이지만, 그리 간단한 오페라는 아니다. 오페라 부파라고는 하지만, 비극적 요소가 혼재되어 있다.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도 뛰어나다. 모차르트의 음악이지만 베토벤 같은 웅장함도 맛볼 수 있다. 특히 서곡이 멋지다. 많은 이들이 모차르트의 오페라 중 ‘돈 지오반니’를 최고로 뽑고 있다.
‘그는 나정의 전설을 신이 나서 말하다가 오른편 울창한 송림을 가리키며 오릉이라 하고 이어 알영정이 그 옆에 있다고 합니다. 사릉(蛇陵)이라는 오릉을 바라만 보고 지나치려든 나는 알영정이라는 말을 듣자 정차하기를 청하여 솔숲 속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립던 옛 터를 찾아 신라 고도의 경주로’, 조선일보, 1934년, 박화성 글 중에서. ‘문천 남쪽 언덕 오릉의 동남방에 알영정을 찾으니 우수수 하는 대수풀 한 귀퉁이에 알영정이라 한 목표(木標)가 있고 그 앞에 알영정과는 아주 딴판인 흙무더기가 있고...-‘경주행’, 개벽, 제18호, 1921년, 권덕규 글 중에서. 경주유적지 중에는 고분들과 능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경주를 찾는 이들이 가장 많이 찾는 능으로는 대릉원이 으뜸이겠지요. 그러나 능역도 넓고 사계절 아름다운 오릉은 비교적 덜 알려져 있는 편입니다. 오릉은 경주시 탑동에 위치한 능묘이자 사적입니다. 짧은 겨울햇살을 만끽하면서 고요하게 산책하기 좋은 오릉을 찾았습니다. 오릉은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와 제2대 남해차차웅, 제3대 유리이사금, 제4대 파사이사금의 무덤으로 전해지는 능으로 사적 제172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아직 발굴조사가 실시된 바 없어 각 능의 구조를 알 수 없으며 경주일대에서 3세기 이전으로 올라가는 원형봉토분의 구조형식이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 알려진 피장자와 직접 연관시키기는 아직 이른 실정이라고 합니다. 오릉 동편에는 지금도 시조왕의 위패를 모시는 숭덕전이 있으며 그 뒤에는 알영부인이 탄생한 알영정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동절기인 요즘 오릉을 관람시간은 아침 아홉시부터 오후 다섯시까지입니다. 넓게 공원처럼 조성된 능역 안에는 모과가 아직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습니다. 대나무 숲길 또한 잘 가꿔져 초록이 귀한 겨울 능역에 활기를 더해주더군요. 이 대나무 숲길은 중앙으로 산책길이 나 있어서 걷다보면 오릉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합니다. 기품있는 소나무 숲 뒤로도 시야 가득 오릉이 들어오기도 하지요. 알영정으로 가는 길에서 만나는 대나무 숲은 이맘때쯤 제법 대나무 잎사귀들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깊어집니다. 연중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대릉원도 훌륭하지만 이곳 오릉은 오릉만의 여유와 힐링을 선사해주는 공간입니다. 특히 겨울철 오릉은 능역의 규모나 능의 적요한 아름다움에 비해 이상하리만치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아선지 다소 적막하기까지 한데요. 한가롭게 거닐기에는 오릉만한 곳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릉을 산책하며 한 바퀴 도는 시간은 천천히 걸었을 때 약 1시간여 걸립니다. 코로나 상황이 심상치 않은 시국입니다. 우리들 발자국 소리 기다리는 오릉을 찾아 외롭고 답답한 심사를 신라왕들에게 토로해도 좋을듯합니다.
안동권씨 대은(臺隱) 권경(權璟,1604~1666)은 영해(寧海) 괴시마을 출신으로, 관어대(觀魚臺) 곁에 살면서 스스로를 ‘대은’이라 하였다. 하담(荷潭) 김시양(金時讓,1581~1643)의 문하생으로 벼슬을 멀리하였고, 집 주변에 석양정(夕陽亭)을 짓고 학문을 닦으며 후학양성에 힘썼다. 모친 초상에 예를 다하였는데, 꿈에 신인이 나타나 관어대 아래에 무덤을 조성하라는 계시를 받는 등 효행이 빼어나서 영해부사(寧海府使) 최혜길(崔惠吉,1591~1662)이 그의 덕행을 듣고 조정에 천거하였기도 하였다. 권경의 둘째 아들 권득여(權復輿)는 셋째 사위 손건(孫鍵)을 맞이하였고, 손건의 장남이 바로 사헌부 지평(持平)을 지낸 매호(梅湖) 손덕승(孫德升,1659~1725)이었다. 매호는 안강읍 대동소류지 북쪽의 대동마을에 매호초당을 짓고 살면서, 수신과 효행을 가르친 인물로, 반구서원 건립 이후 외조부의 지평 추증을 고하는 글[外祖臺隱權公贈晦齋寒岡三先生職焚黃告由文]을 지었고, 그렇게 외조부 사후 1711년(숙종37)에 사헌부 지평에 추증되었다. 그의 행적은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1720~1799)과 추암(楸菴) 김하구(金夏九,1676~1762) 등 묘갈명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으며, 영해 도계정사(陶溪精祠, 현재 청암서원)에 배향되었다. 저서로는 『대은집』이 있다. 권경은 손자 손덕승이 태어나기 훨씬 이전인 인조 25년(1647) 3월에 대구부사 만회(晩悔) 이유겸(李有謙,1586~1663)․통판(通判) 이박(李璞) 등과 경주지역을 유람하고 「유월성록(遊月城錄)」을 지었는데, 경주의 월성을 맨 먼저 찾아 둘러보았고, 첨성대-오릉-나정-포석정-용장산 매월당-삼층석탑-반타암(盤陀巖) 등 주로 남산 주변과 용장골 등을 상세히 기술하였다. 유람 당시에 경주부윤은 김상(金尙,재임1647.10~1648.09)이었지만, 권경은 김상(金相)으로 표기하였으니 기록의 오류로 보인다. 게다가 포항 내연산(內延山)을 유람한 「유내연록」 그리고 종질(從姪) 권우경(權虞卿)과 청량산(淸凉山)을 유람한 「유청량산록」을 저술하는 등 산수유람에도 관심이 많았다. 유월성록(遊月城錄) - 대은 권경 내 어릴 적부터 월성 산수의 빼어남 승경(勝景)을 들었으나, 땅이 경상도라 멀어서 평소에 소망을 이루지 못하다가, 정해년(1647) 봄에 말 한 필에 종 한 명과 월성으로 향하였다. 연당(蓮堂)에서 수령을 만났는데, 수령은 새로 사귄 자였다. 인사를 마치고 차를 내어와 이전 조정의 일을 말하는데 흥미진진하여 싫지가 않았다. 윤해량(尹海良)에게 숙소를 정하게 하고, 해량 역시 여러 형승에 대해 자세히 말하는데, 마치 곳곳을 두루 상세히 그림을 보는 듯하였다. 다음날 해량은 나를 위해 길을 인도하였고, 먼저 월성에 올랐다. 반달의 황폐한 터는 나무 그늘과 무성한 수풀로 가득하고, 평평한 들판에는 찔레꽃이 일대에 피었으며, 길게 흐르는 시내는 세차게 흐르는데 신라 천년의 슬픈 감정이 있었다. 한번 두루 둘러보니 서악이 서쪽에 있고, 금강산이 남쪽에 있으며, 그 아래에 첨성대가 있었다. 첨성대는 무릇 30층으로 다듬은 돌로 주위를 쌓았고, 가운데 하나의 구멍을 통해 오르내리는 계단으로 삼았으니, 신라 시대 천문(天文)을 점치고, 천시(天時)를 물은 곳이다. 이날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가벼운 바람이 산들산들 불었다. 마침내 도롱이 쓰고 말 타고 오래된 못 안압지를 찾았다. 금강산․매월당․포석정․오릉․나정 등에 이르는 곳은 말과 종이 피로해서 가지 못하고, 병든 새처럼 날아오르지 못함이 있었다. 바야흐로 돌아갈 즈음에 수령이 종을 시켜 나에게 동행을 요구하기에 마침내 오릉에 참배하였다. 오릉은 신라 시대 다섯 왕의 능이고, 평평한 숲 풀이 우거진 가운데 용과 호랑이처럼 감싸는 지세도 없고, 산과 강을 옷깃처럼 띠 두르는 세력도 없어서 내가 보기에도 왕가에서 사용하는 묘소와 풍수지리의 이치가 아닌 것 같았으니, 또한 잘 모르겠다. 나정으로 향하였다. 평평한 들판에 네 모서리 초석이 있고 가운데 하나의 큰 반석이 있었다. 반석 위 네 모퉁이에 몇 척의 혈석(穴石)이 있는데, 돌 표면은 모두 부처 향상이 있었으니, 이곳은 신라 시대 불교를 숭상하던 시절 절을 세운 곳이 아니겠는가? 포석정에 투숙하였다. 시냇가에 작은 두둑이 있는데, 두둑 위에 유상곡수 형태의 자취가 완연히 있는데, 신라 왕이 매번 좋은 날에 기생들을 데리고 노닐며 잔치를 벌인 곳이다. …수령이 용장산 매월당 빈터에 술자리를 마련하였는데, 빈터는 절개의 선비 김시습이 스님이 되어 은둔한 곳이다. 다음 날 아침 마침내 수령과 작별하고, 여름에 만날 후일을 약속하고 돌아갔다. 이날은 정해년 3월 하현의 하루 전날이었다. 태수는 경주부윤 김상(金相), 함께한 자는 대구 부백 이유겸(李有謙), 통판 이박(李璞), 광릉일사 심종적(沈宗迪), 단양산인 권경옥(權景玉)이었다.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서 작품을 통해 타인에게 감동을 전달하는 것만큼이나 나에게는 보람찬 일이 하나있다. ‘긴 삶의 전쟁에서 물러나 세상의 한켠에서 조용히 스스로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내가 가진 미술적 경험들과 기술들로 그들에게 안내자 역할을 하는 것!’ 화실을 들르시는 어른들께 나는 굳이 가르친다는 생각보다 좋은 길을 안내 해드린다는 표현을 늘 쓴다. 10년째 나에게 소소한 것들을 안내받으시는 나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정신적 어른이신 어느 분이 70여년의 삶을 지내오시며 근간에 화두로 버리고 정리하는 일들을 조금씩 실천하고 계신다. 그 분의 초대로 사면이 책으로 가득한 방에 초대되어 마음에 드는 책을 얼마든지 가져가도 된다는 말씀에 눈에 힘을 잔뜩 넣던 중 빨간색 표지의 위화〔余華〕 작가의 장편소설 ‘인생’을 발견했다. 이 책은 불과 며칠 전 역시 그 분께 추천받아 감상할 날을 재고 있던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의 ‘인생’이라는 영화의 원작소설이었다. 그즈음 역시 위화 작가의 ‘허삼관 매혈기’라는 책을 워낙 재밌게 읽었던 터라 여러모로 잔뜩 기대하며 책을 펼쳤다. 이 책은 ‘푸구이’라는 사람의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삶을 중국 근 현대사를 배경으로 담담하게 펼쳐내고 있다. 남 부러울 것 없는 부유한 집안의 주인공은 미모의 부인과 예쁜 딸까지 모든 것을 가졌지만 매일 술과 도박으로 흥청망청, 가산을 모두 탕진하고 만다. 노한 아버지는 화를 참지 못해 돌아가시고 부인은 딸을 남겨둔 체 뱃속의 아이를 부둥켜안고 집을 나가버린다. 주인공은 결국 노모와 함께 변두리 소작농민으로 전락해 살아가게 된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아내는 혼자 낳은 아들을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푸구이의 삶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삶과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며 펼쳐진다. 나는 20여년 간 사람들의 이야기로 작품들을 펼쳐나가고 있다. 20대에는 방황하며 타인들의 겉모습을 표현해 왔으며, 30대는 상처받은 인간관계와 내면의 세계에 대해 초점을 두고 연작들을 그렸다. 불혹이라는 40대를 맞으며 나의 정체성을 통해 타인들과 소통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내 머릿속은 온통 삶에 대해 때론 타자로서 또 때로는 온전한 나로서 늘 고민하고 있다. 고등학교 강의에서 만나는 10대 청춘들을 보며 과거도 뒤돌아보고 작가로서 현재를 살아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화실과 문화센터에서 만나는 많은 어른들의 삶을 엿보며 나의 미래도 설계해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농부의 막내아들이란 타이틀을 안고 태어난 나의 삶은 늘 안개속이다. 푸구이는 파란만장한 역사 속에서 한 인간으로서 운명을 거역하지도 그렇다고 쉬이 무릎 꿇지도 않는다. 인생이란 것이 운명의 존재임을 인정하면서도 그 가혹함에 대해 거부하며 스스로 새롭게 개척해 나가면서 용서와 화해라는 삶을 엮어 가듯 40대 중반을 살고 있는 현재의 나에게 ‘인생’이라는 책은 많은 성찰을 하게 해주었다. 어쩌면 험난한 세상을 살아내야 하는 나에게 덤덤함으로 무장하고 스스로를 좀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계기인지도 모른다.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에서는 영화적 재미를 위해 원작과 다소 다른 몇몇의 각색과 다른 결말에 다다른다. 그러나 결국 책의 중국어 원제 ‘살아간다는 것’이라는 단어에서 느끼듯 전염병이 만개한 이 어려운 시대, 쉬어가듯 한 번쯤 우리들의 삶을 깊이 있게 되돌아보는 의미 있는 시간을 이 책을 통해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최한규 작가 : 달과 연꽃, 경주를 소재로 행복을 그리는 화가. 2002년 첫 개인전을 연 이래 매년 한 번씩 개인전을 열어왔을 만큼 치열하게 작품 활동을 하는 최한규 작가는 경주미협에서의 봉사활동에도 열심인 한편 황리단길 문화산실 ‘갤러리란’에서 미술관장 역할도 맡고 있다. 화랑로에 아트인 미술학원을 열어 미술대학 진학을 꿈꾸는 미술학도들을 가르치는데도 혼신을 다하고 있다.
연말연시와 추운 겨울을 맞아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따듯한 손길들도 여느 때보다 분주하다. 구세군이 거리에서 모금활동을 시작했고 겨울철 기본 먹거리인 김장 담기에 각종 자선단체들이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선다. 방송과 신문의 자선기금 모금활동도 가장 왕성하게 일어난다. 사랑의 연탄 나르기도 요즘 자주 만나는 귀한 자선 풍경 중 하나다. 그러나 연탄 나르기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경주의 주요 SNS활동가의 글을 통해 나오면서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농협에 근무하며 농협 관련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봉사자 김호열 씨가 지난 11월 13일 올린 글에는 연탄배달봉사에 대해 날카로운 지적을 남겼다. “시대가 바뀌고 물질도 발달되었으면 꼭 보여주기식 연례행사로 힘들게 나르고 인증샷 찍고 봉사활동했다고 보고하는···” 이라고 운을 뗀 김호열 씨는 그 비용으로 온열 매트, 전기 매트, 온수 매트 등을 전달하고 동절기 전기세를 지원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고 근원적인 지원이라고 주장했다. 시중의 일반 매트 가격과 전기세를 합해도 10만원이 채 되지 않는데 전기 매트류의 난방기구를 지원하면 겨울 한철 나는 연탄보다 훨씬 장기적으로 혜택을 주는 꼴이라는 주장이다. 이와 함께 연탄의 비현실성을 꼬집기도 했다. 연탄을 제공할 경우 독거노인이나 장애인들이 제때 연탄 갈기도 힘들고 연탄가스에 중독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불이 꺼지기라도 하면 불 살린다고 번개탄을 피우는 번거로움도 있고 연탄재를 처리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당연히 환경에도 나쁘다고 일갈! 실제로 연탄 1장에 700원씩 하는 상황에서 겨울 한 달 나기 위해서는 한 가구당 최소한 60~70장, 겨울철 전부를 고려하면 120~130장의 연탄이 소모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온열 매트가 훨씬 효과적임은 말할 필요도 없고 한 번 온열 매트를 제공하면 매트가 고장나지 않는 한 최소한 몇 년은 안심하고 쓸 수 있다는 차원에서 김호열 씨의 제안은 확실히 현실적이고 효과적이다. 연탄 갈기, 연탄재 치우기 등 번거로움도 없다. 그런 한편 김호열 씨는 전기 매트류를 전달해서 그럴싸한 모양새가 안 나오는 것이 염려된다면 연탄배달로 힘쓰는 대신 바람 들어오는 벽을 때우거나 문짝을 수리하고 도배나 장판을 새로 하는 등 보다 현실적인 봉사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김호열 씨는 연탄봉사활동 자체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라며 한발 물러서며 봉사 자체의 중요성에는 이의가 없음을 밝히기도 했다. 농협인 답게 시설하우스 농가 걱정도 하고 일손 딸리는 형편에 대해서도 지원이 필요하다는 운을 남겼다. 일일이 딱딱 떨어지는 제안에 글을 본 SNS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찬성하며 하루 사이 70여명이 ‘좋아요’를 눌렀고 댓글도 40개나 달렸다. ‘인증샷’으로 봉사보다 젯밥에 더 관심 많은 사람들에 대한 거부감에도 동조했다. 세상이 달라지는 만큼 봉사 역시 상투적인 관습에서 벗어나 좀 더 현명해질 필요가 있음을 이 글에서 절실히 느낀다. 이번 겨울부터 당장 적용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경주시정신건강복지센터는 보다 편리한 비대면 정신건강서비스 제공을 위해 챗봇 ‘온마음’과 정신건강플랫폼 ‘온나눔’을 구축·개설했다. 센터는 디지털 기반 건강관리 요구가 커짐에 따라 이들 서비스를 운영하게 됐다. 챗봇 ‘온마음’은 채팅을 통해 실시간 정신건강 관련 정보, 상담 안내, 자가진단 등을 제공한다. 정신건강플랫폼 ‘온나눔’은 자가 검진과 온라인 상담, 힐링 콘텐츠 등으로 구성됐다. 최재순 경주시보건소장은 “새로운 시도를 통해 시민들에게 더욱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면서 “많은 관심과 이용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온마음’과 ‘온나눔’은 경주시정신건강복지센터 홈페이지나 모바일로 이용할 수 있다. 이달 22일까지 사용 인증 이벤트가 진행 중이며, 자세한 내용은 전화(054-777-1577)로 문의하면 된다.
경주시 평생학습가족관은 지난 11일 2021년 평생학습동아리 지원사업 성과 공유회를 열었다. <사진> 공유회는 동아리 홍보영상 상영, 오프닝·클로징 공연, 동아리별 성과 발표 및 간이 갤러리워크 등으로 진행됐다. 평생학습동아리는 참여자들이 학습을 목적으로 평등한 관계의 모임을 형성하고 정기적인 대화와 다양한 활동으로 성장과 발전을 추구하는 지역학습공동체다. 동아리는 총 8개로 학습심화형인 달콤한 중국어 동아리 1개와 다안전지킴이를 비롯한 지역공동체연계형 동아리는 7개다. 올해는 학습동아리의 이해를 높이고 원활한 추진을 지원하기 위해 공통과정과 필수과정이 추가됐다. 특히 필수과정인 학습동아리 역량 강화교육은 각 동아리가 의무적으로 1회 수강하도록 편성됐다.
경주시새마을부녀회(회장 정명숙)가 지난 7일 회원 2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일회용품 줄이기·장바구니 들기 캠페인을 펼쳤다. <사진> 이번 캠페인은 비대면 문화 확산으로 일회용품 등의 사용이 증가됨에 따라 이를 줄이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캠페인에 참여한 회원들은 중앙시장에서 장을 보러 나온 시민들에게 장바구니를 나누며, 일회용품인 비닐봉투 대신 장바구니 들기 생활화를 독려했다. 정명숙 회장은 “장바구니 들기 캠페인을 매년 펼쳐 시민들의 손에 일회용 비닐봉투 대신 장바구니가 들여 있는 문화가 조성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석굴암 찬가 오동춘 경주 토함산 석굴암 국보 세계문화유산 자연석 둥근 지붕 흙덮힌 굴된 그 안에 근엄한 본존불 얼굴 미소 자비 넘친다 부모 위해 석굴암 짓는 김대성 건축가 경덕 혜공왕 때 천재 솜씨로 만든 석굴암 첫 이름 석불사 되어 대자대비 불심 불탔다 화강암 콩고물인 듯 빚어 세운 본존불상 통일신라 세계 백미 불교문화 꽃핀다 과학과 예술신 합쳐 이룬 석굴암 석가로 보인다 본존불 뒤로 십일면관세음보살상 자비롭다 굴 속 상단 좌우의 열 개 반구형 감실 다양한 불상 모습들 반가사유상 아닌가? 석굴암은 창건 이래 조선 말기까지 보수관정이 시행되었다. 석실 전체 해체된 것은 일제강점기가 처음이다. 해체전후의 기본에 충실한 기록을 남기지 않아 석굴암조각상들의 원래 구조와 위치를 알 수가 없다. 천년을 찬란히 꽃피워온 자연적 과학기술의 결정체 습도조절 환기를 봉쇄해버렸다. 그 당시 신소재로 우월하던 지하수로는 아연관으로 막았다. 이로 인해 석굴암내부에 습기가 차는 원인이 되었다. 일제는 석굴암을 자신들이 발견하여 수리하였으며, 문화적 역량을 발휘하는 우월성을 자랑삼고 식민통치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이용했다. 1918년 포항과 경주를 연결하는 동해남부선이 개통되고, 불국사·석굴암 관광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 불국사역이 설치되었다. 불국사·석굴암은 전국각급학교의 수학여행지 인파로 붐볐다. 석굴암 복원공사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교차한다. 해방이 되면서 석굴암은 1960년 초 우리 손으로 복원되었다. 일제 때 둘러친 시멘트 위에 1m의 공간을 두고 시멘트를 덧발랐다. 석굴속의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는 환기장치기구를 설치했다. 석굴암에 악영향을 미치는 자연조건을 차단하기 위해 목조전실과 유리벽을 설치했다. 외부 앞뒤 차단된 석굴암은 스스로의 자생능력을 완전히 잃고 습도온도 조절을 인위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석굴암 본존상의 방향은 ‘동남동 29.4도, 대왕암의 위치는 동남동 28.5도’ 동짓날 해 뜨는 방향과 일치하다. 중국에서는 동짓날을 한해의 끝이 아니라 새해의 시작으로 매긴다. 동짓날 둥글게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하며 석굴암대불의 위력으로 나라와 백성의 안민을 기원하기 최적의 곳 신라적 석불사다. 강우방 박사는 2014년 가을 ‘석굴암의 건축과 조각’ 문화재해설 강좌에서 이렇게 설했다. ‘떠오르는 태양이 암흑을 물리치듯, 석가모니의 깨달은 진리는 무명(無明)을 깨뜨리기에, 자연의 태양과 진리의 태양이 마주치는 순간은 가장 장엄한 광경이 된다. 토함산 석불사 앞에서 맞는 일출이 다른 어느 곳에서 보다 감동인 것은 그러한 인류역사의 대전환을 예고한 위대한 종교적 상징이 응집된 장소이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을 볼 때는 아름다움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숨겨져 있는 진리를 알아내야 한다. 진리가 표현되어 있을 때 예술품은 비로소 위대한 것이 된다. 따라서 위대한 정신을 표현하려고 노력하였을 때만 예술품은 아름다운 것이 되고 동시에 거룩한 것이 된다. 그 때 비로소 독창적인 예술이 탄생 된다’ 문화의 흐름을 반추해 독창적으로 해석하고 표현의 기법을 예술로 승화시킨 신라인의 정신세계가 거룩하다. 토함산석굴암본존불 일출의 벼경을 찬미한 ‘야나기 무네요시’ 글이다. ‘지금부터 3년 전인 1916년 9월 1일 오전 6시 반, 화창한 태양빛이 바다를 건너 굴원(屈院)의 불타얼굴에 닿았을 때 나는 그의 곁에 섰다. 그것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행복한 순간의 추억이다. 불타와 그를 둘러싼 여러 불상이 놀라운 새벽 햇살로 선명한 그림자와 흐르는 듯한 선을 보인 것도 그 순간이었다. 굴원 안 깊숙이 서있는 관음의 조상(彫傷)이 세상에서도 보기 드문 아름다운 모습으로 미소 지은 것도 그 순간이었다. 오직 새벽빛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그녀의 옆얼굴은 지금도 나의 숨을 죽이게 한다’ 석불사 절 이름은 일반적으로 석굴암으로 불러지고 있다. 창건연기설화에 '석불사'라는 명칭 기록이 분명히 전해진다. 건축·조각·종교·수학·과학, 자연의 원리까지 내재한 조화로운 석불사다. 석굴암으로 불린 이유는 명확하지 않으나 문헌에 나타는 것은 조선시대 정시한(丁時翰) 산중일기(山中日記)(1688년)에서 비롯된다.
화랑마을이 지난 3월부터 페이스북을 통해 진행한 ‘2021년 화랑마을 이벤트’가 9일을 마지막으로 종료됐다. <사진> 이번 이벤트는 앞서 진행된 소확행 화랑마을 만들기 프로젝트 ‘화랑마을 수영장’에 이은 두 번째 행사로, 코로나19 장기화로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시기별 화랑마을의 다양한 모습과 사업을 홍보하는 내용으로 꾸며졌다. 주 내용은 화랑마을 이용후기 작성하기, 화랑마을 포토존 소개하기, 화랑마을 칭찬하기, 초성퀴즈, 친구에게 국궁체험 알리기, 사진 콘테스트 등이다. 이벤트 결과 551명이 응모해 79명이 당첨됐다. 당첨자들에게는 기프티콘 등 선물이 주어졌다. 화랑마을 관계자는 “바이럴 마케팅 형식으로 진행한 이번 이벤트로 SNS 등에 화랑마을 방문 후기와 다양한 사진이 널리 홍보되는 효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울산 장생포문화창고서 진행하고 있는 박대성 화백 특별전 ‘장생포 석굴암을 만나다’가 호평을 받고 있다. <사진> 경주엑스포대공원과 고래문화재단이 함께 마련한 이번 전시는 박대성 화백의 작품을 울산지역에서는 처음 선보이는 자리다. 박대성 화백 특별전 ‘장생포 석굴암을 만나다’는 지난달 13일 개막해 오는 30일까지 장생포문화창고 3층 갤러리B에서 관람객을 맞는다. 전시는 석굴암에 있는 본존불과 십대제자상을 박대성 화백만의 화풍으로 재해석한 작품들과 전통 도자기 및 공예품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고미’ 연작이 대거 자리해 대작 한국화의 감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하고 현시대를 대표하는 한국화가로 자리한 박대성 화백의 예술세계를 직접 경험할 수 있어 지역민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이번 전시는 지난 6월 경주엑스포대공원과 고래문화재단의 업무협약 체결을 계기로 이어진 상호 콘텐츠를 활용한 상생활동의 일환으로 성공적인 실무교류 사례로 지역사회의 관심을 모았다.
경주엑스포대공원이 겨울시즌 프로그램 ‘겨울왕국(Winter Land)’을 선보인다. 경주엑스포대공원은 랜드마크 타워인 경주타워 옆 선덕광장을 겨울 낭만이 가득한 아이스링크로 꾸미고 내년 2월 27일까지 관람객을 맞이한다. <사진> ‘겨울왕국(Winter Land)’은 ‘봄 패밀리 페스티벌’과 ‘여름 루미나 호러나이트’ 그리고 지난 10월 할로윈 콘셉트로 진행해 큰 호응을 얻은 ‘루미나 해피 할로윈’을 잇는 경주엑스포대공원의 올해 마지막 시즌 프로그램이다. 특히 이번에 선보이는 아이스링크는 얼음이 아닌 인공 아이스패널을 이용한 것으로 지역에서는 최초로 선보여 관심을 모은다. 얼음이 사용되지 않는 만큼 넘어져도 비교적 안전하고 옷이 젖지 않는 장점이 있어 어린이를 포함한 관람객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 외부 온도와 날씨 등에 영향을 받지 않고 한결같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으며 사용 후 재활용이 가능하다. 얼음 상태 유지를 위해 사용되는 비용 등을 절감할 수 있어 재미와 환경, 경제성 모두 잡을 수 있는 겨울 한정 프로그램으로 기획됐다. 아이스링크의 크기는 가로 32m, 세로 20m 규모로 선덕광장 가운데 자리한다. 한 번에 최대 100명까지 수용할 수 있으며 매일 오전 10시 30분부터 한 타임에 50분씩 운영하며 주변정리와 방역을 위한 소독 등을 위해 20분의 쉬는 시간이 적용돼 일일 700명까지 이용할 수 있다. 스케이트화와 보호대 등은 아이스링크 옆에 위치한 렌탈샵에서 대여할 수 있으며 헬멧과 보관함은 무료로 사용할 수 있으며, 개인이 소지하고 있는 장비도 사용할 수 있다. 아이스링크와 함께 전국 최초 야간 체험형 산책코스 ‘루미나이트’는 크리스마스 콘셉트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낭만적인 겨울의 분위기를 극대화한다. 루미나이트 입구에서부터 루돌프 장식과 크리스마스트리로 채워진 ‘루돌프의 마차’를 설치하고 성 모양의 배경과 대형 눈사람 모형으로 꾸며진 ‘눈사람의 성’ 등 2km 코스 산책길 코스 곳곳에 눈사람과 트리장식을 설치해 포토존으로 탈바꿈해 관람객들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사한다. 류희림 경주엑스포대공원 사무총장은 “지역 최초로 인공 아이스패널을 활용한 아이스링크를 선보이는 만큼 올 겨울 지역 관광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정부의 특별방역정책에 따라 동시이용 인원 제한과 수시 소독 등을 실시해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 구축에 적극 노력할 방침이니 시민과 관광객 여러분의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선한국원자력환경공단은 (사)천년미래포럼과 공동으로 지난 8일 경주 일원에서 ‘연탄 사랑나눔 행사’를 개최했다. <사진> 이날 행사는 차성수 원자력환경공단 이사장, 김호진 경주시 부시장, 서호대 시의장, 공단 청정누리봉사단과 지역봉사자 60여명이 참여했다. 자원봉사자들은 정부지원을 받지 못하거나 부족한 140가구에 연탄, 라면, 쌀 등을 전달했다. 공단은 임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조성한 사회공헌기금으로 사랑의 연탄배달, 집 고치기 등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차성수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이사장은 “국민들과 더 많이 소통하고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기회를 자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선덕로타리클럽(회장 최병희) 회원들이 강동면에 위치한 은혜원(원장 손대호)을 찾아 코로나19와 추운 겨울로 힘들어하는 이웃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건냈다. 지난 13일 선덕로타리 회원 5명은 은혜원을 방문해 주기적인 지원과 봉사활동을 위해 자매결연을 맺었다. <사진> 또한 회원들의 정성으로 준비한 생필품을 전달하며 은혜원에 거주하는 소외된 이웃들이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냈으면 한다는 바람도 함께 전했다. 최병희 회장은 “은혜원 손대호 원장이 코로나19로 인해 모두가 힘든 상황이라 후원이 줄었다는 말을 듣고 회원들과 상의해 이번 자매 결연을 결정하게 됐다”면서 “코로나로 인해 이번 자매결연식에 5명밖에 오지 못해 아쉽지만 코로나 확진자가 감소하게 되면 자주 방문해 목욕 봉사, 가벼운 등산, 청소 등을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선덕로타리클럽은 38명의 회원들이 저소득층 가정과 주요 관광지 방역, 대상포진 예방접종, 다문화가정 생필품 지원, 독거노인을 비롯한 소외된 이웃을 위한 김장봉사 등 봉사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