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의회 이철우 의장과 이동협 부의장을 비롯한 시의원과 의회사무국 직원 등 30여명은 지난달 31일 폭우로 큰 피해를 입은 영주시 장수면을 찾아 수해복구 지원에 발 벗고 나섰다.시의원과 직원들은 수해복구 일손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주민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나눴다.특히 생활터전을 잃은 마을주민들이 하루..
경주시가 속칭 ‘황성동 공동묘지’ 부지에 공영주차장 신설에 이어 인접 부지에 도시계획도로를 조성한다.시는 황성동 공영주차장 인접 무연분묘 3기가 지난달 26일 모두 개장됨에 따라 이달 중 도시계획도로 개설 공사에 나선다. 공사는 오는 10월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황성동 공영주차장 옆 도시계획도로(너비 8m,..
한수원(주) 월성원자력본부가 동경주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한수원과 함께하는 1kWh 줄이기 캠페인’을 전개한다. 7월 31일부터 8월 31일까지 진행하는 이 캠페인은 정부의 에너지 절약 정책 동참과 하계 전력피크 시즌을 맞아 자발적인 에너지 절약 실천을 유도하기 위해 추진한다.참여 대상은 경주시 양남면, 문무대왕면..
경주시가 최근 들어 코로나19 확진자수가 증가함에 따라 요양병원, 장애인시설 등 감염취약시설 등에 대한 선제적 대응에 나섰다.만 65세 이상, 기저질환자 등 건강 고위험군의 감염 시 중증화로 진행될 수 있어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한데 따른 조치다. 또 감염병에 대한 경각심이 느슨해지고, 예방접종 후 시간경과로 면역..
경주시가 ‘2023 반려동물 문화교육’ 수강생을 7월 31일부터 선착순으로 모집한다. 교육은 9월 4일부터 11월 1일까지 경주동물사랑보호센터 2층 교육장을 비롯한 야외운동장에서 실시한다.이번 교육은 최근 대두되고 있는 개 물림 사고, 소음으로 인한 사회갈등과 유기동물 증가 문제 등을 사전 예방하고, 건강하고 배려하..
경주 동궁원이 여름 휴가시즌을 맞아 방문객들에게 특별한 추억을 선사한다. 동궁원은 28일부터 다음달 19일 매주 금·토요일 밤 10시까지 야간 개장한다. 특히 올해는 처음으로 식물원 2관 야간 미디어쇼를 준비했다.미디어쇼 주제는 지역의 문화재와 함께 사계절을 표현하고 있다. 수막새, 에밀레종, 석굴암의 부처상, ..
경주시민의 휴식처인 황성공원 내 맥문동 꽃이 보랏빛 물결을 이루며 방문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경주시는 올해 황성공원 산책로 주변으로 10만5000본(3000㎡)을 추가 식재해 약 2.2㏊에 달하는 대단위 맥문동 꽃단지를 조성했다.맥문동은 그늘진 곳에서도 잘 자라는 특성이 있어 푸르른 황성공원 소나무 숲과 어우러져 환..
경주 코오롱호텔이 시원한 호텔에서의 휴식을 원하는 ‘호캉스’ 관광객을 위한 이색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먼저 코오롱호텔에서만 즐길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호텔 전시 ‘타임 애프터 타임’을 관람할 수 있다. ‘타임 애프터 타임’은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콘텐츠로 전 세계 피규어를 감상할 수 있는 피규어 박물관과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레트로 박물관으로 구성돼있다.
경주시 관내 11개 농·축협 조합장들이 지난 26일 집중호우로 큰 피해를 입은 예천군을 방문하고 수해복구 성금 1100만원을 전했다. 이번 성금은 예천군의 신속한 복구를 위해 지역 농·축협이 함께 모금한 것으로 피해지역 복구와 이재민 구호활동, 구호물품 지원, 수재민 주거시설 마련 등에 사용될 예정이다
민화 책가도의 현대적 조형 전통적인 색과 문양을 이용해 한국의 아름다움을 조화롭게 표현하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몬드리안의 면 분할을 착안해 전통의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각과 공간을 탐구한다. 전통민화를 칠보기법과 도자기로 재해석한 작품은 과거와 현대가 충돌하면서 탄생한 과정을 담고 있다. 전통민화의 상징성을 과거와 현대가 만나는 접점에서 표현함으로써 작품에 희망과 행복한 삶을 바라는 마음을 녹여낸다. 눈앞에 펼쳐진 민화 책가도의 현대적 조형을 통해 전통이 현대와 만나는 새로운 표현의 지평이 열릴 것을 기대한다. 미묘한 금빛과 한국적인 색채가 공감, 편안함, 행복으로 전달되길 바라며, 더불어 민화의 가치 또한 많은 이들에게 널리 알려지길 희망한다.
필자가 어렸을 때는 머슴을 둔 집이 더러 있었다. 머슴이 거처하는 방에 동네 젊은이들이 자주 모였다. 그러면 주인집에서는 커다란 보시기에 짠 동치미를 몇 사발을 들여준다. 마땅한 간식거리가 없던 시절이라 이야기를 나누면서 잘 삭은 무를 어썩어썩 씹어 삼키고는 국물을 들이킨다. 그러면 소변이 마렵다. 주인이 노리는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이들이 변소에 내갈긴 소변이 바로 거름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약삭빠른 사람은 자기 집에 가서 볼일을 보고 오곤 했다. 가끔은 내기를 하기도 했다. 누군가가 찹쌀 한 되로 만든 떡을 다 먹을 수 있겠냐는 것이다. 내기에 상상 이상으로 큰 것을 걸었다. 어쩌면 쌀 한 가마 쯤 되었을 것이다. 좀 모자라는 사람이 바로 집으로 가서 찹쌀 한 되로 떡을 해서 먹어보니 좀 무리가 되긴 했으나 이를 먹을 수 있었다. 그 길로 돌아와 내기를 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제법 호기를 부리며 먹었으나 결국 다 먹지 못해 내기에 지게 되었다. 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이 떡을 다 먹으면 두 되 떡을 먹는 셈이 아닌가? 또 이런 내기를 하기도 했을 것이다. 저 뒷산 공동묘지에 다녀올 수 있냐는 것이다. 공동묘지에는 귀신이 많이 나타난다는 이야기에 모두 겁을 먹곤 했던 시절이었다. 기골이 장대한 청년 하나가 다녀오겠다며 나섰다. 물론 다녀오면 푸짐한 보상이 약속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다녀왔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말뚝을 하나 건네며 몇 번째 묘 앞에 이 말뚝을 박고 오라고 했다. 좀 으스스 했지만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 묘 앞에 이르러 큰 돌을 하나 집어 말뚝을 박았다. 담력을 과시하려면 깊이 박아야 한다. 곧 귀신이 달려들 것 같지만 꾹 참고 박았다. 다 박고 나서 이제 돌아가려고 몸을 돌리는데 귀신이 옷자락을 잡고 놓아주지를 않는다. 더럭 겁이 나서 큰 소리로 “놓아라!”라고 고함을 치지만 잡은 옷자락을 꽉 쥐고 놓지 않는다. 날이 새도록 이 사람이 돌아오지 않으니 모두 그 묘지로 가 보았다. 먼동이 희끄무레 밝아오는데 그 친구가 묘 앞에서 그때까지 “놓아라, 놓아라!” 외치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옷자락이 말뚝과 함께 박혔던 것이었다. 혹 당시에 내기를 했던 사람들이 이곳 모량 사람들이고 그 묘지가 이곳 금척리 고분군이었던 것은 아닐까? 경주에서 국도를 따라 서악과 광명, 모량을 지나 10Km 쯤에 이르면 4번 국도 양편에 작은 산과 같은 고분이 밀집되어 있는데 외형상으로는 대부분 원형토총인데, 2기가 맞붙어 있는 표형분도 있다. 모두 경주시내의 대릉원 등에 있는 대형 고분들보다는 규모가 작다. 1963년에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금척리 고분군이다. 일제강점기의 조사에서는 모두 52기가 확인되었으나 가운데 도로가 생기면서 현재는 32기 정도만 확인되고 있다. 아직 이 고분들에 대하여 본격적인 학술적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1952년에 파괴된 고분 2기에서 금귀걸이·곱은옥 등이 출토된 바 있고, 1976년 고분군 사이의 밭에서 작은 규모의 고분들이 발견되어 문화재관리국 경주사적관리사무소가 주관하여 발굴한 바 있다. 이어 1981년 민가 보수 중 파괴된 작은 고분들이 발견되어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발굴하였다. 당시 세환식 금귀걸이 1쌍, 호박환옥(琥珀丸玉) 1점, 기타 철편·토기편 등이 출토되었는데, 이러한 유물들은 경주지방의 고분들에서 나오는 것과 같아 축조 시기도 대체로 경주고분군과 비슷한 시기일 것으로 추정된다. 2013년 5월에는 영남문화재연구원 발굴단이 경주 도심에서 서북쪽 10여㎞ 떨어진 들머리 길목인 동해남부선 철로 연결 예정터 일대를 파보았더니 정연하게 구획된 도로와 네모난 주거지, 우물, 초석 아래에 기초석을 다져 넣은 적심 건물터가 나왔다. 너비 8-5m의 남북-동서축을 잇는 도로도 10군데나 발견됐다. 격자형 도로로 둘러싸인 이 도시 유적은 8세기 것으로, 경주 도심 왕경 유적의 도로·주거지 등과 얼개가 거의 같았다. 신라인의 경주 도시계획이 이곳 외곽까지 확장된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다. 고분군의 남쪽은 모량(牟梁)이다. 그래서 금척리 고분군을 신라의 6부 가운데 하나인 모량부 귀족들의 무덤들로 보는 견해도 있다. 모량부는 『삼국유사』에 의하면 22대 지증왕의 왕비가 이곳 출신이다. 학계에서는 당시 모량부가 신라 중앙 정계에서 커다란 역할을 하던 집단으로 보고 있다.
살을 빼는 건 간단하다. 먹는 것보다 더 움직이면 된다. 너무 쉽다. 하지만 문제는 움직이는 것보다 우리 인간은 먹는 걸 훨씬 좋아한다는 데 있다. 먹고 싶은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은 까닭에 자연스럽게 또한 당연하게 살은 찐다. 그래서일까, 먹고는 싶고 살은 빼야겠고 그 개미지옥 같은 악순환을 ‘한 방!’에 없애버리는 핵폭탄급 처방에 환호한다. 그게 이번엔 주사제다. 살 빼는 주사. 코앞의 음식은 분과 초 단위로 음미하듯 즐기면서 살은 또 단번에 빼고 싶다. 힘든 운동이나 지루한 다이어트 식단보다는 단기간에 그것도 확실하게 체중을 줄여주는 비법이 나왔다. 원래 당뇨 치료용으로 개발된 건데 이게 웬걸 비만 치료에 탁월하단다. 음식을 먹으면 장(腸)에서 나오는 포만감 호르몬을 모방해 식욕은 줄이고 포만감은 커지게 하는 방식이란다. 일주일에 한 번 맞으면 몇 개월 만에 체중이 15% 이상 줄어든다고 하니 뾰족한 주사에 대한 선입견이 아주 그냥 싹 사라진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Elon Musk)나 세계적인 가수 아델(Adele) 같이 덩치 좋은 셀럽들도 앞다퉈 처방을 받고 있다. 미국식품의약국의 승인을 받아 내년에 출시될 어느 제품의 경우는 무려 23%의 체중감량 효과가 있다고 한다. 다이어트 시장의 판도를 확실히 바꿀 게임체인저(game-change)다. 상상만으로도 짜릿하지 않은가? 가령 80kg의 남자 몸에서 18.4kg이 빠져나간다는 말이다. 삼겹살로 치자면 9인분(200g 기준)이 넘는다. 먹는 것의 두 배가 빠진다면 누가 힘들게 땀 흘려가며 운동을 하겠는가?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상보다 현실 쪽이 우세하다. 한 달에 쓰는 주사값이 100만원이 넘는다. 당연히 보험 적용도 안 된다. 더 큰 문제는 주사를 끊으면 체중이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비만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비만은 치료해야 할 ‘질병’으로 보는 분위기다. 미국의학협회(AMA)는 비만을 질병으로 선언했고,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도 비만을 만성 재발성 질병으로 정의했다. 다른 비전염성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도 비만은 도덕적 타락이나 게으름이 아니라 치료해야 할 질병이라고 전했다. 이 모든 담론의 시발점인 식욕, 뭔가를 먹고 싶은 그 욕망에 대한 정의를 찬찬히 음미해 보자. 자, 배가 고프다. 공복 상태다. 위장은 이 상황을 위기로 파악한다. 그러니 뇌한테 SOS를 치기를 배고픔이라는 자극을 전달하게 된다.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신속한 방안을 제시해 달라고 마구 압박을 가하는 거다. 바꿔 말해 배가 고프면 위에서 식욕 촉진 호르몬이 분비되고 이것이 식욕 조절센터인 뇌(의 시상하부)에 도달해 음식을 먹게 만드는 과정이다. 시간이 지나고 배 안에 음식이 적당하거나 가득 찬 상태가 되었다. 그럼 반대로 이젠 촉진 말고 식욕을 억제하는 호르몬이 나와서 뇌가 숟가락을 내려놓게 만드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동물과 구별되는 우리 인간만의 모습이 발견된다. 아니, 장 속에 음식의 존재 여부로 배고픔이라는 문제가 해결된다면야 이렇게 간단한 일이 없다.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 ‘심리적 자극에서 비롯된 배고픔’도 배고픔으로 느끼는 우리다. 마음이 헛헛하고 휑할 때 우린 단 것을 찾는다는 말이다. 남자친구와의 애정전선에 문제가 생기면 괜히 꾸덕꾸덕한 초콜릿케이크를 집어 든다. 우린 육체적 배고픔과 정신적 배고픔을 구별하지 못한다. 우리가 고가의 주사까지 맞는 이유다.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을 느끼는 건, 그 과정에서 세로토닌, 도파민 등 좋은 호르몬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이게 핵심이다. 맛있는 음식과 먹음직스러운 플레이팅보다 중요하다. 영양심리학 전문가도 사람들이 불행한 이유로 불충분한 영양, 불균형한 섭취 패턴을 꼽는다. 영양의 균형이 맞지 않아서 불행한 것이다. 좋은 사람과 맛있는 음식 앞에선 도파민이, 이 자리가 의미 있고 소중하다고 느낄 때 세로토닌이, 공감과 신뢰의 분위기에 옥시토신이, 음식을 꼭꼭 씹다가 보면 모르핀보다 몇 배 커지는 행복 호르몬인 엔도르핀이 샘솟는다. 이런 행복과 빠진 살을 등치시키지만 않는다면, 비싼 주사 안 맞고도 우린 언제든지 행복할 수 있다. 살을 무리하게 빼다 보면 없던 주름이 진하게 패인다. 하나의 행복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행복이 희생된다면 그건 좀 생각해 볼 문제다.
수묵 송진권 저 노랑을 저 파랑과 하양과 붉음을 지나지 않으면 어스름이 내려오지 않는다지요 거무죽죽한 날개를 떨쳐입은 숭숭 검은 털 배긴 어둠이 오지 않는다지요 나는 등롱에 기름도 채워 두고 심지도 가지런히 잘라두었지만요 기다란 더듬이 소리 없는 날갯짓의 올빼미 같은 어스름이 검은 수레를 타고 곳곳에서 번지듯 스미어 올 때 차마 불을 그을 수 없었음을 뭐라고 해야 할지 다 알고 있으면서도 이야기하지 않던 사람아 차마 얘기할 수 없어서라며 고개 숙이던 사람아 묵의 농담만으로도 충분히 한세상을 담아낼 수 있는 것을 온갖 색이 섞인 묵을 명과 암 그 언저리에서 촘촘히 번지는 색 중에 내가 모르는 그 어떤 희미한 빛을 붉은 낙관 찍어 벽에 걸어두렵니다 이처럼 밝은 분간이 너무나 무서워서요 어스름이 그린 한 폭의 수묵화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23년 6월호에 발표된 시인의 ‘수묵’이라는 작품은 한 편의 동양화론 같다. 흔히 채색화가 더 강렬하고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수묵의 깊이와 멋을 알게 되면 그 말은 달라진다. 채색화가 뿜어내는 아름다움이 화려하고 선명하다면 수묵화는 화면에 번지는 서정성이 그윽하고 서정적이다. 백과 흑 사이, “명과 암 그 언저리에서” 셀 수도 없는 색이 촘촘히 번진다. “번지듯 스미는 수묵” 속에는 그래서 수많은 채색들은 물론 채색화가 표현할 수 없는 그 너머의 색이며 기운까지가 다 들어 있다. 노랑과 파랑, 하양과 붉음을 지나지 않으면 수묵의 “어스름이 내려오지 않는다”는 말도 수묵의 단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러나 수묵은 자신의 세계를 자랑하지 않는다. 이 시에서 나와 이야기하는 그 ‘사람’은 가상적인 청자이기도 하지만, 수묵을 인격화한 표현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다 알고 있으면서도 이야기하지 않던 사람아”, “차마 얘기할 수 없어서라며 고개 숙이던 사람아”라고 말하지만 이는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지 않고, 이야기할 수도 없는 어떤 수묵의 속성인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묵의 농담만으로도/충분히 한세상을 담아낼 수 있”다는 말은. 담묵, 중묵, 농묵, 초묵으로 나뉘는 농담의 단계로 수묵은 천의 정조과 만의 감흥을 불러 일으킨다. 그래서 화자는 “숭숭 검은 털 배긴 어둠”, “기다란 더듬이”를 가진 “소리 없는 날갯짓의 올빼미 같은 어스름”이 내려오는 순간의 감흥에 젖어, “등롱에 기름도 채워 두고/심지도 가지런히 잘라두었지만” 쉽게 불을 긋지 못한다. 우리가 흔히 밝다고 말하는 불빛은 어스름을 다 몰아낼 것이기 때문이다. 불이 켜지는 순간은 파랑과 하양 붉음 같은 맑은 이성이 작동하는, “밝은 분간”의 세계이다. 화자는 그 뚜렷한 “분간이 너무나 무서워서” 다만 수묵의 농담이 번질 때 보여주는 “내가 모르는 그 어떤 희미한 빛”을 “붉은 낙관 찍어 벽에 걸어”둘 뿐이다. 우리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어깨를 친다. 정작 이 구절이 이 시의 급소이다. 실은 시인이 화선지가 아니라 어스름의 저녁에 수묵화 한 폭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독자들은 현실의 수묵화가 아니라 시인이 시로 만든, 어스름이 그린 깊고도 그윽한 수묵화 한 폭을 보고 있는 것이다.
지난 7월 19일은 독립운동가 몽양(夢陽) 여운형 선생(1886~1947)이 서거한 지 76년 되는 날이었다. 여운형 선생의 생가가 있는 경기도 양평군은 선생의 탄생 137주년을 맞아 ‘몽양, 독립의 여정’이라는 주제로 양평군 생가와 기념관에서 특별전시회를 가졌다. 우리 국민 대부분은 ‘독립운동’하면 백범 김구 선생(1876~1949)을 떠올린다. 그러나 국내에서 독립운동 조직을 꾸준히 이끌면서 언론, 사회, 문화, 스포츠 등 다방면에서 독립운동을 이끈 가장 핵심 인물은 여운형 선생이었다. 여운형 선생은 비단 국내에서만 독립운동을 한 것이 아니다. 상하이 임시정부 창립에도 깊은 관련을 맺었으며 상하이, 일본, 꽝저우, 모스크바, 이르쿠츠크, 블라디보스톡, 마닐라, 싱가폴 등을 다니며 대한독립의 정당성을 역설하고 다녔다. 심지어 일본에서는 한일병탄의 정당성에 대해 연설하겠다고 거짓 약속한 채 일본에 들어가 대한독립의 의지를 연설하는 등 일본을 혼란에 빠뜨려 당시 내각이 책임지고 사퇴하는 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대부분의 독립운동가들이 무장 투쟁에만 역점을 둔 것에 비해 여운형 선생은 교육, 언론, 스포츠와 문화 활동을 장려하면서 국민의 정신과 저력을 다지는데 주력했다. 대표적인 사건이 베를린 올림픽에 손기정 선수와 남승룡 선수를 보내 국민적 각성을 일으켰고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자신이 대표로 있던 조선중앙일보를 폐간하기도 했다. 특히 여운형 선생은 일본의 패망을 예견하고 1944년부터 국내에 조선건국동맹을 구성해 해외 독립운동가들과 연계했으며 해방과 동시에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구성해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지속해오던 전국의 인민위원회와 손잡고 국가 전역의 치안을 일사불란하게 다잡았다. 그러나 이승만 박사와 미군이 진주해 들어오면서 건준은 해체되고 치안을 담당하던 인민위원회는 모두 해산된다. 해방 후 독자적인 기반이 약하던 이승만은 미군을 등에 업고 과거 친일 인사들과 친일 경찰, 일제에 복역하던 군인 등을 주축으로 남한 내 새 정부를 꾸려나간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해방 이후 제대로 일제 청산을 해보지도 못 한 채 남북분단의 운명을 짊어지게 된다. 또 한쪽에서는 김구 선생을 비롯한 상해 임시정부 요인들이 대거 귀국하며 바야흐로 치열한 권력 암투가 벌어진다. 그러나 해방 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여운형 35, 이승만 21, 김구 18, 박헌영 16, 김일성 9, 김규식 5로 나올 만큼 여운형 선생의 국민적 신뢰와 지지도는 그 어떤 독립운동가들보다 높았다. 그러나 좌파 운동가였다는 문제가 이승만, 김구 양자 모두에게 걸림돌이었다. 좌익과 친한 것이 독립운동의 방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여운형 선생은 해방 후 미군정의 진주를 반대하고 신탁통치를 반대했다. 그러나 신탁통치가 가결되고 남북한 각각의 정부가 수립되는 상황에서 이념에 대해 관대했던 여운형 선생은 좌우합작정부를 구성하자고 주장, 상하이 임시정부파인 김구 선생, 중도세력에 적대적이었던 박헌영 등 좌익 세력, 미군을 등에 업은 이승만 등의 눈밖에 나는 결과를 초래했다. 여운형 선생은 1947년 7월 혜화동 로터리에서 한지근이라는 청년이 쏜 총탄에 맞아 생을 마감한다. 당시 한지민의 단순 범행으로 매듭지어진 이 사건은 공소시효가 끝난 후인 1974년 여운형 암살의 배후인 4인이 나타나며 당시 신익희 선생과 김구 선생과도 관련된 ‘백의사’란 우익단체의 사주인 것처럼 해석되기도 했다. 여운형 선생이 국민적 신뢰와 영향력을 가진 독립운동가였지만 일반국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그를 좌익사상가로 백안시했기 때문이다. 여운형 선생이 독립운동가로서 제대로 인정받고 늦게나마 국민훈장 대한민국장에 추서된 것은 노무현 정권이던 2008년이다. 선생은 소련 방문시 트로츠키의 연설에 감명받아 연설에 각별한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건장한 체격에 잘 생긴 얼굴, 카이젤 수염의 카리스마까지 더한 선생의 연설은 많은 사람들을 감화시켰던 것으로 알려졌다. 선생은 당시로서는 매우 자유로운 삶을 산 것으로도 알려졌는데 그래서 일부에서는 그의 사생활로 인해 그를 폄하하는 일도 잦았다. 여운형 선생이 남긴 어록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있다. “혁명가는 침상에서 죽는 일은 없다. 나도 서울 한 복판에서 쓰러질 것이다” 몽양 여운형을 검색하면 다양한 책이 나온다. 어떤 것을 읽어도 좋을 것이다.
(사)경주시종합자원봉사센터(이하 센터)는 지난 21일 컬러링북 500권을 경주시 가족센터에 전달했다. <사진> 이번 전달식은 친절한경자씨(경주의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엮어 완성한 컬러링북을 지역 내 어린이들에게 배부하고자 진행됐으며, 지난 5월 여성행복드림센터와 노인종합복지관 300권 기증에 이어 경주시 가족센터로 500권이 기증됐다. 수령된 500권의 컬러링북은 지역 내 공동육아나눔터로 배부될 예정이다. 센터에서 상시적으로 진행하는‘V-컬러링북’프로그램은 △도안 기부활동, △컬러링북 제작활동, △컬러링북 기증활동으로 구성돼 있으며,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컬러링북 제작 활동은 별도의 신청 없이 센터로 방문하면 바로 진행할 수 있고, 컬러링북 4권을 제작하면 1권이 제공되고 1시간의 봉사시간을 인증받을 수 있다. 정재윤 이사장은 “친절한경자씨들의 소중한 노력이 담긴 컬러링북을 전달하게 되어 기쁘다”며 “앞으로도 지역의 아이들과 어르신을 위해 프로그램을 진행할 것이며, 친절한경자씨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V-컬러링북’ 프로그램 관련 자세한 사항은 경주시종합자원봉사센터 인스타그램 게시물 참고 및 전화로 문의하면 된다.
경북문화관광공사는 관광기업 역량 강화 특강 ‘관광氣UP DAY’ 1회차를 내달 29일 경주에 있는 경북관광기업지원센터에서 개최한다. 특강은 도내 관광기업 및 예비창업자를 대상으로 한다. ‘관광氣UP DAY’는 경북관광기업 육성·컨설팅 프로그램 사업의 일환으로 8월부터 11월까지 경주, 안동, 구미, 포항지역에서 매월 1회씩 총 4회 운영할 예정이다. 1회차 특강은 취미 여가 플랫폼 기업 프립(FRIP)의 임수열 대표가 ‘140만이 이용하는 취미 여가 플랫폼의 성장과정과 로컬 크리에이터와의 상생 노하우’를 주제로 진행한다. 참가 신청은 7월 24일부터 8월 21일까지 온라인 구글 폼을 통해 가능하다. 자세한 사항은 경북관광기업지원센터 홈페이지 공지사항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신청자에게는 특강 진행 후 분야별(비즈니스모델, 홍보/마케팅, 디지털 전환/ICT, 재무/회계 등) 맞춤형 컨설팅을 제공한다. 공사 김성조 사장은 “도내 관광기업 및 예비창업자들이 관광 창업에 대한 실무 노하우를 터득하고, 기업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마련한 특강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고 말했다.
2004년생 이상 생맥주 500cc 한잔 무료‘2023 경주 Water Beer 축제’가 오는 8월 5일, 6일 이틀간 경주 황성공원 타임캡슐 광장에서 열린다. 사단법인 관습도감이 주관하는 이번 축제는 물놀이와 공연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문화행사로,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워터 축제다. 국내 K팝 댄스 팀과 치어리더들의 공연 등 다양한 무대와 물총 싸움도 예정돼있다. 2004년생 이상 입장 시 생맥주 500cc 한잔을 무료로 제공하며, 화려한 DJ퍼포먼스와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부스를 마련할 예정이다. 축제 관계자는 “경주에서 최초로 주최되는 이번 축제는 지역발전에 도움이 되고 시민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형태로 진행된다”며 “이번 축제를 계기로 앞으로 축제의 규모와 활동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고 말했다.
신라문화원 문화재보존활용센터는 지난 21일 서악마을에서 ‘新화랑 통일 ROAD’를 주제로 2023년 생생(生生) 문화재 프로그램을 개최했다. 문화재청, 경북도, 경주시가 후원하는 이 프로그램은 4월부터 11월까지 매월 열린다. 화랑의 나라라는 테마로 진행된 이날 프로그램은 미국 태권도 사범 Bill Cho 등 45명이 무열왕릉 입구에 집결해 신라왕복과 화랑복으로 갈아입고 진흥왕릉까지 영웅화랑탐방을 진행했다. 또 죽궁장에서 화랑무예, 도봉서당에서 다도, 붓글씨 체험과 화랑의 풍류를 즐기는 판소리 등 한국문화를 체험했다. 미국 태권도 사범 Bill Cho는 “생생 문화재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전통문화를 느낄 수 있었고, 계획에 없었던 붓글씨 체험과 평소에 체험할 수 없었던 택견 시연을 통해 태권도와 비교할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 문화재보존활용센터가 주관하는 생생(生生) 프로그램은 2014년부터 매년 문화재청의 문화재활용 프로그램으로 진행되고 있는 문화재와 시민이 함께 하는 사업이다. 한편 문화재청은 2023년 문화재활용사업으로 생생(生生)문화재 165선, 향교·서원문화재 110선, 문화재야행 47선, 전통산사문화재 51선, 고택종갓집 44선, 세계유산문화재 20선의 총 437선을 진행하고 있다.
경주시가 한국관광정책연구학회 주관 제1회 대한민국 관광정책대상에서 ‘관광산업부문’ 대상에 선정됐다. 대한민국 관광정책대상은 전국 기초 자치단체를 대상으로 부문별 우수 관광정책 사례를 발굴해 이를 추진한 기초자치단체장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경주시는 ‘경주 국제회의복합지구 활성화 사업’이 우수 관광정책사례로 선정됐다. 심사위원들은 지역 고유한 문화관광자원과 민간부문의 국제회의시설을 연계한 전시복합산업문화공간을 조성해 지역 마이스산업 육성 정책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점을 높이 평가했다. 이번 선정으로 지난해 경주화백컨벤션센터와 보문관광단지 일원이 국제회의복합지구로 지정된 것과 함께 준비된 국제회의도시로서의 브랜드 가치와 명성을 재확인했다. 특히 이번 선정은 관광정책 전문가들의 추천 공모제 방식으로 이뤄져 더욱 의미가 있다. 주낙영 시장은 “이번 수상으로 관광정책의 선도 도시 경주를 알리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대한민국 대표 관광문화도시를 넘어 글로벌 관광도시로 나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관광개발부문 군산시, 생태관광자원부문 가평군, 문화관광자원부문 홍성군, 국민관광부문에는 강릉시가 각각 관광정책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7월 29일은 세계 호랑이의 날이다. 멸종 위기에 처한 호랑이를 보호하고 개체수를 늘이기 위해 2010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제정되었다. 호랑이의 날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이 땅에서 멸종해버린 동물에 대한 무관심 탓일 수도 있겠지만 단군신화에 호랑이가 등장하듯 우리 민족은 늘 호랑이와 함께해 왔고 경주 또한 마찬가지이다. 중국「위서」‘동이전’에 ‘호랑이를 신으로 섬기며 제사 지내는 민족’이라는 기록이 있다. 그런가 하면 ‘일년에 반은 조선사람이 호랑이를 잡으러 다니고 나머지 반년은 호랑이가 조선사람을 잡으러 다닌다’라는 중국 속담이 있다. 이만큼 호랑이가 많았다는 기록들이다. 육당 최남선은 범 이야기로 천일야화를 쓸 수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라며 호담국(虎談國)이라 했다. 중국의 용, 인도의 코끼리, 이집트의 사자처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동물이 바로 호랑이다.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올림픽 마스코트도 호랑이였고, 축구대표팀 엠블럼 또한 백호이다. 호랑이는 두려운 존재이면서 가장 친숙한 동물이었다. 조상들은 호랑이로 인한 호환을 두려워하였으나 오히려 호랑이를 영물로 여겼다. 액을 물리치고 복을 부르는 존재로 여기며 매년 정초가 되면 대문에 호랑이 그림을 붙이기도 했다. 각종 속담과 민화, 설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불교에서도 호랑이는 영물인 동시에 그 특유의 위엄과 용맹으로 불법을 수호하는 동물이다. 문수보살이 타고 다니는 동물로 중생들에게 지혜를 전하는 현장에 등장한다. 사찰의 산신각 탱화 속에 산신과 함께하는 호랑이의 모습도 우리에게 익숙하다. 영물인 호랑이가 산신의 옆에 엎드리거나 뒤따르는 모습으로 신격화되고 있다. 산신각은 우리의 토속신앙과 불교가 합해진 독특한 형태의 신앙이다. 경주는 호랑이와 밀접한 도시이다. 1921년 경주 대덕산에서 잡힌 호랑이는 이 땅의 공식적 마지막 호랑이로 기록되어 있다. 하동마을 김유근 씨는 추석을 앞두고 대덕산으로 나무하러 갔다가 등 뒤에서 호랑이의 급습을 받았지만 지게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는 후일담을 인터뷰로 남기기도 했다. 당시 신고를 받은 불국사 구정 지서 미야케 요조 순사는 도로 공사하던 인부들을 소집, 호랑이 몰이꾼으로 동원시켜 호랑이 사냥에 나섰다. 포수의 총을 맞은 호랑이는 길이 2.5m, 몸무게 153kg의 대호였다. 이 이야기는 일본 황실 구미에 맞게 미화 각색된 부분도 없지 않지만, 당시 소학교 일본어 국어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슬프게도 이 땅의 마지막 호랑이는 일본 왕실에 받쳐지고 말았다. 일제강점기에 해로운 짐승을 박멸한다는 명목의 해수구제(害獸驅除) 정책으로 이 땅의 호랑이는 빠르게 사라져 갔다. 일본인 야마모토 다다사로부로는 조선 포수들을 끌어모아 호랑이 사냥부대인 정호군(征虎軍)을 만들어서 호랑이 씨를 말리는 데 앞장섰다. 그의 정호기(征虎記)에는 한반도 호랑이 사냥 이야기들을 생생히 기록하고 있다. 일제의 호랑이 말살은 바로 민족 말살과 다름없었다. 일본 작가 엔도 키미오(1933~)는 2023년 2월에 출간된『한국 호랑이는 왜 사라졌는가?』라는 저서에서 호랑이를 멸종시킨 일제의 잔혹성과 폭력성을 구체적으로 고발했다. 은폐와 침묵보다는 드러내놓고 사죄한 작가의 용기에 박수를 치고 싶다. 경주에는 호랑이와 관련된 오래된 이야기가 있다. 신라 원성왕 시절 김현이라는 청년이 흥륜사(興輪寺)에서 탑돌이 할 때 호랑이 처녀와 정을 나눈 사랑 이야기가『삼국유사』「감현감호金現感虎」편에 나온다. 자신의 목숨과 맞바꾼 호랑이 처녀의 헌신으로 벼슬에 오른 김현이 은혜를 갚고자 세운 절이 호원사(虎願寺)이다. 김현은 이곳에서 주로 법망경(梵網經)을 경전을 읽으며 넋을 위로했다. 호랑이 처녀는 죽으면서 호랑이에게 다친 상처는 흥륜사 된장을 바르면 깨끗이 낫는다는 말을 남겼는데 이 이야기는 왠지 낯설지 않다.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은 약 대신 상처에 된장을 발랐다. 치료제로 쓰인 된장의 유래가 신라시대 흥륜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호원사지(虎願寺址)는 현재 경주 황성공원 변두리에 폐사지로 남아 있다. 황성공원에 절터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서라벌여중과 국궁장인 호림정 사이에 기단석 몇 개만 겨우 잡초 속에 보일 뿐이다. 철책 울타리만 둘러쳐져 있는 이곳이 호원사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주변을 정비하여 안내 표지판이라도 세워두면 좋겠다. 전국 최고의 공원이자 쉼터에 스토리텔링 하나 더 하는 일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호원사지 근처에 국궁장이 있는 것도, 이름도 호림정(虎林亭)이라는 것도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경주에는 호랑이와 관련된 지명들이 여러 곳 있다. 토함산 석굴암 아래 동네 범곡(범실), 함월산 기림사가 있는 호암리(虎巖里), 감포읍 호동리(虎洞里), 강동면 호명리(虎鳴里) 등이 호랑이와 관련된 동네 이름들이다. 이외에도 많을 것이다 특히 필자는 대덕산 인근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고 현재도 살고 있다. 대덕산 기슭으로 소풀 먹이로 가고, 산딸기 따러 가던 곳이다.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 머리맡에서 호랑이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덕동의 포수 이야기, 암곡 산고개 넘어 다닌 던 고기 장사꾼들 이야기 등등 그런 영향인지는 몰라도 호랑이에 관한 시를 몇 편을 짓기도 했던 것은 필연에 가깝다. 호랑이와 관련된 삼국유사 속의 이야기들이 존재하는 경주의 흥륜사와 호원사지 그리고 이 땅의 호랑이가 마지막으로 죽은 대덕산 등을 하나로 연결하면 좋은 관광 자원이 되지 않을까? 표범의 마지막 서식지 합천 오도산에 표지석이 있는 것처럼 경주 대덕산에도 표지석 하나 세웠으면 어떨까. 더군다나 대덕산은 보문관공단지와 불국사를 잇는 보불로를 접하고 있으니 접근성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사라진 호랑이가 다시 돌아올 수는 없겠지만, 사람들은 돌아올 것 같다. 최소한 우리는 100년 전까지 호랑이와 함께 살아왔다. 첨단 과학 시대의 오늘 왜 뜬금없이 호랑이가 그리울까? 호랑이는 바로 우리 민족의 상징이자 경주의 상징이기 때문일까? 전인식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