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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타이포그래피 거장 안상수, 천년고도 경주에 ‘한글도깨비’ 깨우다

오선아 기자 suna7024@hanmail.net 1741호 입력 2026/07/30 15:02 수정 2026/07/30 15:05
플레이스씨서 안상수 문자추상세계 펼쳐

안상수, 한글도깨비, Mixed pigment of graphite on canvas, 259x194cm, 2025. <사진=플레이스씨>확대
안상수, 한글도깨비, Mixed pigment of graphite on canvas, 259x194cm, 2025. <사진=플레이스씨>
시각예술가 안상수 작가가 8월 27일까지 복합문화공간 플레이스씨에서 개인전 ‘한글도깨비’를 열어 수십 년간 고민해 온 한글의 모습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한글을 눈으로 보고 느끼는 생명체로 일으켜 세우는 자리다. 글자라는 정형화된 틀을 깨고, 한 글자가 어떻게 스스로 꿈틀거리며 우리 곁의 생명으로 다가오는지를 또렷이 보여준다.

안상수는 1985년 네모 틀을 벗어난 ‘안상수체’를 세상에 내놓으며 한글 디자인에 거대한 질문을 던졌다. 네모 상자라는 견고한 울타리를 허물었던 그 시절의 안상수체는 대중에게 문화를 바라보는 유쾌한 충격이었다.

훈민정음 해례본에 담긴 글자 만드는 원리를 깊이 파헤친 그는 문자를 정보만 전하는 도구에서 보고 느끼는 예술 언어로 바꾸어 놓았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한글 자음 중에서도 사람의 웃음소리와 숨결을 가장 많이 닮은 ‘ㅎ’을 중심에 두었다. 작업실의 붓끝에서 시작된 ‘ㅎ’은 뿔이 돋아나고 눈이 트이며 신령스러우면서도 장난기 가득한 도깨비로 새로 피어났다.

화면 가득 채워진 ‘홀려라’(2026)의 붉고 검은 물감 선은 자음 ‘ㅎ’의 형태를 띠고 있으나, 동시에 두 눈을 부릅뜬 채 꿈틀거리는 한 마리의 신비한 동물과 같다. 붓이 지나간 자취마다 뻗어나간 강렬한 선은 보는 이의 눈길을 한순간에 사로잡는다. 화면 전체를 누비는 거친 선 속에서 문자는 이미 글자의 구실을 내려놓고,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의 넘치는 기운을 뿜어낸다.

반면 흑연 가루를 겹겹이 쌓아 올린 ‘한글도깨비’(2025)는 묵직하면서도 정밀한 종이와 화폭의 질감을 그대로 전한다. 검은 숨결 속에서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도깨비의 형상은 정갈한 침묵 속에 숨 쉬는 전통 먹의 기운을 떠올리게 한다. 선 하나, 흑연 가루 한 알에도 작가의 고단한 노력과 글자를 향한 깊은 정성이 서려 있어 가만히 들여다보는 이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든다.

전시는 세 개의 흐름으로 관객을 맞이한다. 첫 번째 공간 ‘한글도깨비’에서는 ‘ㅎ’에서 탄생한 도깨비 연작과 드로잉, 회화를 통해 글자와 상상력이 만나는 첫 순간을 보여준다.

안상수, 홀려라, Acrylic on canvas, 259x194cm, 2026. <사진=플레이스씨>확대
안상수, 홀려라, Acrylic on canvas, 259x194cm, 2026. <사진=플레이스씨>
두 번째 공간 ‘날개’에서는 ‘알파에서 ㅎ까지’, ‘문자추상도’, ‘물맑은담’, ‘생명평화무늬’ 등 작가가 걸어온 글자 작업의 발자국을 짚어낸다. 이 공간에서는 경주의 역사적 모습과 결합한 3D 홀로그램 작품 ‘천년경주 한글도깨비’도 함께 공개한다.

마지막 공간 ‘홀리다’는 관람객이 완성된 작품을 눈으로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도깨비를 피워내는 체험 공간이다. 관객은 ‘ㅎ’ 스탬프와 압인기를 들고 종이 위에 직접 먹을 찍어 누르며 글자가 모양을 갖춰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전시를 주최한 최유진 플레이스씨 대표는 “안상수 작가의 손을 거친 한글은 우리가 알던 익숙한 모습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형상으로 되살아난다”며 “천년의 문자와 역사적 기운이 겹겹이 쌓인 경주라는 도시에서 관객들이 직접 찍고 그리며 한글이 가진 동시대적 역동성을 온몸으로 경험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25일 개막식에서는 안상수 작가와 최정우 미학자가 함께하는 아티스트 토크 ‘날개, 한글, 도깨비 - 경계를 넘다’와 퍼포먼스 드로잉이 진행돼 관객들의 호응을 얻었다.

전시 기간 중 매주 토·일요일 오후 2시와 4시에는 정기 도슨트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31일부터는 어린이와 가족 관람객을 위한 참여형 워크숍 ’도깨비 놀이터‘가 총 4회(7/31, 8/3, 8/7, 8/10)에 걸쳐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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