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내 사생대회 준비로 아들 녀석은 스케치에 열심이다. 쓰레기통에는 이미 구겨진 종이가 수북하다. 그림 주제가 ‘부엌에 숨어 있는 영웅들’이라나. 키가 제일 큰 냉장고. 뿔 달린 식탁 그리고 싱크대 삼총사가 부엌을 지킨다는 초등학생적인 발상이다. 커다란 안경을 끼고 있는 냉장고 영웅(?)은 삼겹살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환풍기처럼 생긴 로봇 팔도 달려있다. 아직도 이렇게 유치한 상상을 하느냐가 아니라, 문제는 이 녀석이 바라보는 세상이 아빠나 어른들이 보는 세상과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아이들 블록 장난감 회사로 유명한 레고(Lego) 회사는 광고를 해도 이렇게 한다. 광고지 한 가운데 공룡 형태의 블록 두 세 조각이 놓여 있다. 그 아래에는 플라스틱이 아닌 실제 티라노사우루스 같은 공룡의 실루엣을 한 그림자가 붙어 있다. 그게 다다. 무슨 광고에 글자 하나 안 보인다. 아주 불편하기 이를 데 없는 광고다. 그런데도 클리오(CLIO)나 깐느(Cannes) 국제 광고제 같은 데에서는 매해 이런 무성의한 광고에 큰 상을 안기곤 한다.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 그럴까? 색깔도 매우 촌스러운 그 광고 시리즈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선명하다. ‘엄마, 아빠 눈에는 플라스틱 블록 조각 몇 개가 보이나요? 댁의 아이들은 살아 있는 티라노사우루스가 보이는데?’란다. 손톱만한 조각들이 뭐가 이렇게 비싸? 하고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어른 눈에는 그저 노랗고 파란, 그러나 아주 비싼 플라스틱으로 보이겠지만, 그걸 가지고 노는 아이들은 위에서는 그림자로 표현했지만 실제 끼~익 하고 울어대는 무서운 공룡으로, 자동차로, 로켓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니 하루 종일 그걸 만지작거리는 것이다. 이 사실을 간파한 레고 사 광고에는 ‘우리 제품 좀 사주이소’ 하는 읍소형 문구 하나 안 집어넣는다. 아주 건방지기까지 한 이 광고 한 장으로, 이래도 당신 주머니에서 지갑 안 꺼낼 거야?, 당신 아들 친구들은 이걸로 무한한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데도? 하고 훈계(!)하는 것이다. 손톱만한 플라스틱 조각 몇 개로도 이렇게 인식의 맥락이 달라진다. 불교 경전에 똑같은 물이지만 뱀이 마시면 독이 되고,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며, 사람에게는 갈증이 해소되는 물이라고 한 것도 같은 이치다. 보통, 종이에다 집 한 채 그려보라고 하면 우리는 지붕부터 그린다. 그런 다음 세로로 기둥 몇 개를 그리고, 그런 다음 가로로 줄 하나를 그어 땅임을 표시하는 순서로 말이다. 스케치로 바쁜 아들한테도 시켜봤더니 역시 그렇게 그린다. 집을 그리랬더니 아파트를 그리기에 일반 가정집을 그려 달라 다시 부탁을 했지만 말이다. 인식(認識)이 이처럼 다르고 때에 따라서는 위험할 수도 있겠다 싶은 건, 얼마 전 타계하신 신영복 선생의 글을 읽고 나서다. “…그는 왕년 목수 시절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집을 그렸다. 땅바닥에 나무꼬챙이로 아무렇게나 그린 집 그림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집 그리는 순서 때문이었다. 주춧돌부터 그렸다. 노인 목수는 주춧돌부터 시작해서 지붕을 맨 나중에 그렸다. 엄청난 충격이었다. ‘아, 일하는 사람은 집 그리는 순서와 집 짓는 순서가 같구나. 그런데 책을 통해 생각을 키워 온 나는 지붕부터 그리고 있었구나’” 사실 지붕부터 그릴 수는 없다. 공중에 떠 있는 지붕은 무너져 내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우린 아무런 생각 없이 지붕부터 그려왔을까. 신 교수는 생각은 각자가 살아온 삶의 결과라서 그렇다고 말한다. 지붕부터 그릴지 주춧돌부터 그릴지는 철저히 그 사람의 살아온 과정에서 결정된다는 말이다. 하얀 종이에 집이 완성되어져 가는 절차와 과정은 그렇기에 완고하다. 설득하거나 주입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집을 직접 지어본 목수에게는 특히 말이다. 생각은 각자 살아온 삶의 결론이기 때문이다. 부엌과 하다못해 레고 조각 하나에도 우린 너무나 다른 삶을 동시에 같이 살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08년 말부터 본격화 된 동천동 변전소 관련 민원이 8년째 표류하고 있어 주민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당초 변전소 이전을 촉구했던 주민들은 상황이 여의치 않자 한국전력공사 측과 옥내화로 전환하기로 합의해 추진 중이었지만, 이번엔 문화재 주변 경관보존을 위한 문화재보호법 등 관계법령에 의해 제동이 걸렸기 때문. 경주시와 한전 등에 따르면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위는 지난달 27일 동천동 변전소 현지 확인을 통해 한전 측이 제출한 건물 높이 18.5m에서 14m로 하향 조정하는 것으로 조치했다. 또 건물 외벽 주변과 어울리게 설계하고, 현장 상황을 시뮬레이션으로 작성해 6월말까지 제출할 것도 함께 요구했다. 이에 앞서 지난 2월 17일 열린 사적분과 제2차 위원회 심의에서는 한전 측이 제안한 ‘헌덕왕릉 주변 변전소 신축 및 변전설비 설치’ 안건에 대해 문화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부결했었다. 이어 5월 11일 열린 제5차 사적분과 위원회에서 ‘현지 조사 후 재검토’하기로 하고 보류한데 이어 27일 문화재위원들이 현지 확인 뒤 이 같은 조치사항을 내린 것이다. 당시 문화재위원회에 제출했던 자료 등에 따르면 변전소 신축 및 변전설비 설치는 현재 노출돼 있는 변전설비를 옥내화하는 사업이다. 한전이 24억 여원의 예산 전액을 들여 현 변전소 부지 7920㎡에 건축면적 2440㎡,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변전소 1동을 신축한다는 계획이다. -오랜 진통 끝에 옥내화 결정···문화재보호법에 ‘덜미’ 변전소 관련 민원은 동천동 주민들이 경주변전소 이전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지난 2008년 12월 대규모 집회를 시작으로 시민서명을 받은 탄원서 제출 등으로 이어지면서 본격화됐다. 당시 대책위은 1977년 변전소를 만들 때만 하더라도 변두리였으나 지금은 도심지역이 됐다면서 변전소가 외곽으로 가더라도 송전에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만큼 조속히 이전할 것을 촉구했었다. 또 지가 하락과 시가지 일원 경관 훼손, 그리고 전자파 발생으로 인한 피해 등을 호소하기도 했었다. 주민들의 반발이 지속되자 한전 측은 300억원의 막대한 이전 비용과 이전 지역 내 또 다른 민원제기 등을 이유로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해오다 2012년 3월 변전소 이전계획을 옥내화로 전환하는 등 협의안으로 주민들과 의견 차를 좁혔다. 그러고도 3년이 지난 2015년 6월경에서야 한전본사는 ‘경주변전소 옥내화 심의회’를 열고 도시계획시설 변경을 전제로 조건부 승인해 옥내화 사업이 최종 결정됐다. 그러나 문제는 이곳 부지가 사적 제29호 헌덕왕릉과의 직선거리가 불과 300여m 내외로 문화재보호구역 내 위치해 있다는 점. 이로 인해 한전은 지난해 12월 국가지정문화재 현상변경 신청에 이어 올해 2월과 5월 두 차례 문화재위원회로부터 심의를 받았지만 ‘부결’과 ‘보류’ 등의 결정이 내려졌다. 조망성, 마루선, 왜소화 등 문화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문화재위원회도 사업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27일 문화재위원 현지 확인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위원들이 변전소 옥내화를 위한 건물 신축사업의 필요성은 인정하고 있는 분위기였다”며 “다만 건물 층고가 높아 문화재 경관 훼손과 추후 발생할 다른 건축물의 승인에도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는 듯 했다”고 전했다. -한전, 신축 건물 높이 하향 위한 기술적 검토 중 한전 측은 건물 높이를 당초 계획인 18.5m에서 14m로 하향 조정하라는 문화재위원회의 조치에 난감해하면서도 T/F팀을 구성해 대책마련에 나섰다. 한전 측에 따르면 변전소 내 전력설비의 높이에 맞춰 설비와 천장 간 안전거리를 확보해야 하는데 현재기술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건물 높이가 18.5m로, 이에 맞춰 설계를 했다는 것. 만약 건물 높이를 낮추게 되면 면적이 넓어지고 공사 중에 경주지역 일부 또는 전체가 정전될 수밖에 없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한전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건물 높이를 낮추는 것은 전력설비의 안전거리와 맞지 않아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경주변전소 옥내화사업 T/F팀을 구성해 층고 하향조정에 관한 기술적인 검토 중에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경주시 관계자는 “오랜 기간 변전소 인근 주민들이 전자파와 소음 등으로 피해를 호소하고 있고, 시와 시의회 주민들의 요청을 한전이 받아들여 시행하는 사업인 만큼 옥내화 사업이 원만히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무대에 올라가기 전까지 너무나 떨리고 흥분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의 연습량을 믿기에 자신은 있었습니다” 국내 국악인들의 등용문 전주대사습놀이대회 민요부문에서 장원을 수상한 김수연(38)씨. 그녀는 한국 전통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부친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판소리와 민요, 국악, 농악 등 다양한 전통음악을 접하며 자랐고, 16세가 되면서 ‘명창’이 되기 위한 길을 걷기 시작했다. “기억은 안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아기 때부터 장구소리와 민요만 들으면 몸을 덩실덩실 거리면서 흥이 많았다’고 항상 말씀해주셨어요” “지금도 흥이 많은건 여전합니다(웃음). 16살이 되면서 부모님께서 진지하게 민요를 권했고, 그때의 선택이 지금의 제가 있는 이유인 것 같아요” 이후 꾸준히 민요의 길을 걸어온 그는 방송을 통해 ‘전주대사습놀이’를 접하면 언제나 ‘아! 저 꿈의 무대에 언젠가는 오르겠지?’라는 생각을 가졌다. 그러다 지난해 참가했던 대회에서 ‘차상’을 수상했고, 두 번째 출전인 올해 대망의 ‘장원’에 도달했다. 명실상부 명창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이다. “지난해 가족들과 여행을 가면서 경험삼아 참가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차상’을 타게 된 것이지요. 그러면서 올해 대회에 욕심이 생겼고 ‘장원’에 대한 꿈에 손이 닿을 것 같았습니다” 그녀는 지독한 연습벌레다. 올해 대회를 준비하면서 혹독하게 자신에게 채찍질 했다. “첫 출전에 ‘차상’이란 결과에 대한 주변의 시선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지만, 스스로에게 후회가 남지 않기 위해 정말 하루에 2-3시간씩 자면서 연습에만 몰두 했어요. 주변에서 말릴 정도로 연습만 했죠. 하지만 컨디션 조절에 자신이 있었기에 열심히 했습니다” “연습을 하면서 힘들었던 것은 아들을 자주 보지 못했던 것이에요. 그리고 시어머님(조복선)께서 아이를 봐주셔서 연습에 몰두 할 수 있었어요 시어머님께 항상 감사하죠” 쉼 없는 노력으로 이뤄낸 결과지만, 그녀는 ‘가족의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가족의 지지없이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절대 달성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변의 모두에게 감사드리고, 주변 많은 분들의 지지와 격려로 좋은 결과를 얻은 것입니다” 대회가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녀는 벌써 다른 대회 참가를 준비한다. ‘명창’의 반열에는 올랐지만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명창’이 되기 위해서 앞으로도 끊임없이 도전할 것이라고 했다. “스스로가 만족할 소리꾼이 될 때까지 저의 도전은 계속될 것입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알게 됐으니 언젠가 올 그 날을 위해 멈추지 않고 도전하겠습니다”
제9회 경주시민의 날을 기념해 1350여 년 전 모습을 재현한 신라고취대가 시가지 행렬을 하고 있다.
경주시의 재정자립도가 20% 밑으로 떨어졌다. 경주시가 최근 경주시의회에 제출한 2015회계연도 일반회계 및 특별회계 결산검사 의견서에 따르면 2015년 재정자립도가 18.5%로 나타났다. 지난 2011년 25.8%였던 경주시의 재정자립도가 5년 사이 7.3%포인트나 하락했다. 2012년 24.1%, 2013년 27.6%, 2014년 20.9%에서 20% 밑으로 떨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방재정365’에 따르면 2015년 전국 평균(예산기준 당초) 재정자립도는 50.6%로, 경주시는 전국평균보다 크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재정자립도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것은 충실한 재정기반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사회복지비 급증 등에 따라 지방재정 수요가 증가해 중앙재정 의존도가 심화되고 있기 때문. 즉 자주재원인 지방세와 세외수입 증가에 비해 의존재원인 교부세와 재정보전금, 국·도비 보조금이 급격히 증가한 탓으로 경주시는 보고 있다. 재정자립도는 전체 예산에서 순수 지방자치단체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을 말하는데, 경주시의 재정자립도가 이렇게 하락하고 있는 원인은 크게 2가지로 파악되고 있다. 우선 복지사업의 확대로 국비에 맞춰 시비보조 사업비가 많이 늘었기 때문인데, 중앙정부에서 지자체의 재정 여건은 고려하지 않고 각종 복지사업 부담을 전가하면서 이에 대한 예산이 매년 늘어나 시의 살림살이를 어렵게 하고 있다는 것. 경주시 2015년 세출결산 항목별 내역을 보면 전체 예산액 1조40억원 대비 사회복지분야 예산이 2312억1000만원(23%)으로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다. 2014년 2012억9000만원보다는 299억2000만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복지예산 규모가 커져 재정자립도가 하락하고 있는 것이다. 재정자립도가 떨어지는 또 다른 이유는 경주지역 특성상 문화재 관련 예산 비중이 높다는 데 있다. 2015년 세출결산 내역 중 사회복지분야 예산에 이어 가장 많은 분야가 문화 및 관광으로 1821억8300만원(18.1%)이었다. 2014년 1220억5000만원 대비 601억여 원이나 증가했다. 이처럼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은 신라왕경복원사업 등 문화재 관련 국·도비 보조금이 늘어났기 때문으로, 결국 재정자립도 하락에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재정자립도의 지속적인 하락에 대해 경주시 관계자는 “재정위기와 관련 있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데 뒤짚어 보면 국비 확보 노력의 반증으로 볼 수 있다”며 “현재 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는 자체수입(지방세+세외수입)/총수입(자체수입+의존수입)으로 산출된다. 이러한 산출방식 때문에 전체 예산규모가 늘더라도 국비나 교부세 등의 증가로 의존수입의 비중이 높아지면 재정자립도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정자립도는 지자체가 스스로 살림을 꾸릴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재정위기와는 설령 관계가 없더라도 향후 국비 확보와 대외적인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치는 만큼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동시에 나오고 있다. -사회복지지원 분야 세출 가장 많아 2015회계연도 일반회계 및 특별회계 결산검사 의견서에 따르면 2015년 경주시 재정규모는 일반회계와 특별회계를 합쳐 세입 1조4708억5700만원, 세출은 1조227억3700만원이다. 명시이월 1955억5800만원, 사고이월 541억원, 보조금 집행잔액 98억7300만원, 순세계잉여금 1835억8900만원 등 총 이월액은 4431억2000만원이다. 세입예산은 2011년 1조2114억7400만원 대비 5년간 평균 4.1% 증가했고, 세출규모는 같은 기간 8457억5300만원에서 평균 4.5%, 잉여금은 3657억2100만에서 평균 3%로 각각 증가했다. 결산검사위원들은 이처럼 5년 사이 세입·세출 규모가 증가한 것에 대해 ‘세입 증가’는 지방세 및 보조금 증가 등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세출 증가’는 사회복지지원을 비롯해 문화 및 관광, 농림해양수산, 환경보호, 산업·중소기업, 공공질서 및 안전 분야의 지출이 늘어난 것이 주요원인이라고 밝혔다. 세출예산을 주민수로 나눈 ‘주민 1인당 재정지출규모’는 368만4876원으로 나타났다. 또 경주시의 채무는 최근 5년간 평균 1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1년 총 채무액(일반회계 및 지방공기업 채무)은 758억4700만원에서 2015년 412억5600만원으로 5년 사이 345억9100만원 감소했으며, 2015년 주민 1인당 지방채무는 15만8815원으로 분석됐다.
우리 몸은 내부 장기의 기능이 원활하고, 혈액 순환이 막힘이 없이 되어 영양과 산소의 공급이 잘 이루어질 때 비로소 건강하다 할 수 있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건강한 사회는 국민들이 열심히 일하고, 국가기관은 법에 의한 기능을 수행하고, 경제는 돈과 자원이 순환할 때 경제성장을 이루어 건강한 사회가 이루어진다. 만약 우리 몸에 혈관이 막히고, 장기가 원활하지 않는다면 그 부위는 괴사하고 각종 질환이 진행되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마찬가지로 국민이 게으르고, 국가기관은 법이 아닌 청탁과 부정부패와 비리가 만연해지고, 돈과 자원이 순환하지 않는다면 건강하지 못한 사회가 될 것이다. 우리의 몸은 아주 철저한 진화의 산물이고, 건강하기 위한 완벽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우리 몸은 이중 삼중의 방어막을 두르고 있기 때문에 바이러스가 침입했을 때 바이러스를 물리치고, 출혈이 발생했을 땐 혈관을 막고, 에너지원을 저장하여 미래에 대비한다. 이것은 각 장기간에 생체시스템이 제 역할을 적절히 수행한 결과이다. 우리는 청렴을 위해 개인의 도덕성을 강조한다. 공직자의 양심과 정의만 믿고 청렴하길 바란다. 청렴도 1위의 핀란드나 싱가포르에서 개인의 양심만 바라보며 청렴을 외치진 않는다. 성역 없고 독립된 수사나, 투명한 정보공개, 투명한 금융, 옴부즈맨 제도 등 청렴한 사회를 위한 시스템을 만들어 뒷받침한다. 그리고 시스템을 진화시키고 정비한다. 원활히 작동하는 청렴시스템이 이들 국가들을 건강한 사회인 즉, 청렴선진국으로 만들고 있다. 청렴시스템이 작동하는 한, 개인의 양심에 전적으로 기대지 않아도 된다. 청렴은 자연스러워지며, 국민은 행복하고, 경제는 활발해지고, 사회는 건강해질 것이다. 공무원이 되고 나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청렴”이란 두 글자다. 공무원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자 최고의 덕목이다. “청렴”이란 과거에도 강조했고, 현재에도 강조하는, 미래를 여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그만큼 어렵다. 과거에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현재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미래를 위해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농식품부가 농협중앙회장의 선출을 이사회에서 호선하겠다는 농협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농협중앙회장이 농축경대표, 전무이사 등 사업전담대표에게 위임 전결 처리한 업무들을 각 사업전담대표의 고유 업무로 변경하기 때문에 비상임인 중앙회장을 대의원회에서 선출할 이유가 없다는 게다. 언어도단이다. 이는 농협중앙회장을 지금의 대의원회 선출에서 바꾸어 전체 조합장의 직선으로 또는 조합원의 총의가 반영된 조합장 직선으로 뽑아야 한다는 농민조합원들이나 전문가들의 주장에도 반하는 것이다. 중앙회장을 이사회 호선으로 청와대나 농식품의 입맛대로 임명하여, 농협중앙회를 자기들 마음대로 주무르겠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공기업(심지어 민영화된 공기업이나 금융기관)의 장이 임명되는 과정을 보면 불문가지다. 지금도 농식품부가 농협중앙회를 좌지우지하지만 회장 선출만은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아쉬운가 보다. 꼼수 부리지 말고 농협중앙회 개혁을 제대로 해야 한다. 농협중앙회가 경제지주와 금융지주를 자회사로 거느린 거대 지주회사인 한, 법적 규정과 상관없이 농협중앙회장은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경제지주와 금융지주를 중앙회의 자회사가 아닌 독자적인 경제사업연합회와 신용사업연합회로 분리 독립시키고, 농협중앙회는 사업을 하지 않는 중앙회 고유 업무인 조사연구, 지도 감독 및 협동운동과 농정활동에 전념하도록 해야 한다. 이 경우에 농협중앙회장은 조합원의 총의를 반영하여 전체 조합장이 직선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농민 대표성을 확보하여 회원조합과 경제사업연합회와 신용사업연합회가 농민조합원을 위해 봉사하도록 지도감독하고, 농업을 경시하는 신자유주의 정부에 맞서 농정활동을 강화하고 농업농촌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해야 할 본래의 위치를 되찾을 수 있다. 박진도 지역재단 이사장·충남대 명예교수
김유신장군의 묘가 알려지게 된 것은 조선 숙종 36년(AD 1710) 당시 경주부윤이던 남치훈(南至熏)이 현재의 위치에 묘비를 세우면서부터다.『삼국사기』에는 ‘장군이 돌아가시자 금산원에 나가 장사지내게 했다’고 하고, 『삼국유사』에서는 ‘능이 서산 모지사의 북쪽이며 동쪽으로 향해 뻗은 봉우리에 있다’고 하여 서로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금산원과 모지사의 위치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에 김유신장군묘의 진위에 대해 일제강점기에는 일인학자들, 해방 후에는 국내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학자 세끼노데이(關野貞)와 이마니시따쯔(今西龍)가 각기 다른 주장을 했다. 세끼노데이는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김유신장군묘를 부정하였다. 『삼국사기』 「열전」에 김유신이 세상을 떠나자 ‘금산원에 장사하고 비를 세워 그 공을 영원히 남기도록 했다’고 했고, 『삼국유사』에서는 ‘능은 서산 모지사의 북쪽, 동으로 뻗은 봉우리에 있다’고 했다. 그런데 현재의 금산의 위치와 모지사지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또 『삼국사기』「열전」의 김양의 장지에 대해서 ‘김유신을 태종왕릉에 배장한 것처럼 김양 또한 태종왕릉에 배장했다’라고 해석하고 김인문의 무덤을 김유신장군의 묘라는 것이다. 그리고 김인문의 무덤과 김유신의 무덤이 서로 바뀌었다고 하고 그 이유를 김유신이 아무리 공이 크다 할지라도 태종릉 보다 더 화려한 묘를 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김인문은 당나라 고종의 신임이 두터워 나당이 서로 싸웠을 때는 신라왕으로 봉해진 일도 있는데 현 김유신장군묘의 묘제는 당나라 고종의 그것과 너무나 흡사하니 그것이 김인문의 묘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이마니시다쯔는 김유신묘가 틀림없다고 주장하였다. 이후 1968년 서울대에 재직하고 있던 이병도가 김유신장군묘가 잘못 전해져 왔다는 새로운 학설을 발표해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그의 주장에 대해 김해 김씨이자 연세대에 재직하고 있던 김상기가 즉각 반론을 제기했다. 두 사람의 논쟁은 조선일보(1968.9.24)에 이병도가 인터뷰 형식을 빌어 ‘사적21호는 김유신묘가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기사화하면서 비롯되었다. 1300년의 풍상을 침묵 속에 지켜온 한 고분이 엄청난 논쟁의 회오리를 몰고 온 셈이었다. 이병도의 주장은 한마디로 지금까지 김유신묘로 전해진 묘는 신무왕릉이며, 무열왕릉 동편에 있는 김인문묘가 김유신묘이고, 김인문묘는 이미 봉토가 허물어져 평지화 되어 그곳에 서악서원이 세워졌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김상기는 이병도의 주장은 50여년 전 일본인 세끼노데이가 들추어낸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같은 무렵 김해김씨 종친회는 앞으로도 사적21호에서 조상에 대한 제사를 계속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병도는 김상기의 반론에 대해 조선일보 지면을 통해 몇 가지 반증을 또다시 제시하였다. 이어 이병도는 논문을 7회에 걸쳐 조선일보에 연재함으로써 논쟁은 더욱더 세간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한편 김상기 역시 한국일보 지상을 통해 반론을 거듭 제기하였고, 1969년 초에 ‘김유신묘의 이설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고고미술에 장편의 논문을 실었다. 양씨의 주장은 이 두 논문으로 일단 정리된 셈이지만 아직도 학계의 정설로서 정립되지 못한 채 사학계의 묵은 과제로 남아 있다. 이후 1973년 강우방은 현재의 김유신묘가 맞으나 원래의 모습이 아니고 36대 혜공왕 대에 개수하였다는 설을 제기하였고 향토사학자인 권오찬도 1979년 비슷한 맥락에서 김유신 묘가 맞다고 하였다. 이근직은 『신라왕릉 연구』에서 김인문묘를 김유신묘로 보고 있으며 현 김유신묘는 경덕왕릉으로, 또 현 경덕왕릉은 소성왕릉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유신장군묘의 진위 여부는 금산원이나 모지사의 위치가 밝혀지거나 묘를 조성할 당시에 세웠다는 묘비가 발견되기 이전에는 확인 할 길이 없을 듯하다.
경북농업안전보건센터(센터장 임현술)와 영덕군보건소(소장 김미옥)는 지난 7일 농촌지역 주민 안전보건 및 감염성 질환의 효과적인 예방 교육 및 홍보를 통해 농업인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상호교류·협력 협약(MOU)을 체결했다. 영덕군보건소 3층 회의실에서 열린 이번 협약체결은 영덕군 거주 농촌지역 주민을 중심으로 검진, 교육, 홍보 및 체험학습 프로그램 수행으로 건강증진 및 삶의 질 향상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농촌지역 주민 감염성 질환의 효과적인 예방교육 및 검진 실시와 지역주민 건강증진 및 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보건교육 실시, 양 기관의 예방교육을 위한 인력·시설 및 장비 등 상호지원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경북농업안전보건센터(동국대)는 ‘농어업인 삶의 질 향상 및 농어촌지역 개발촉진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2014년 지정받아 농업인의 감염성 질환 등 건강문제를 조사·연구하고 농업인의 안전보건교육을 통해 예방에 힘써왔다.
경주소방서(서장 류수열)는 주택용 소방시설 설치촉진을 위해 지난달 16일부터 원스톱 지원센터를 상시 운영하고 있다. 지난 2012년 2월 '화재예방,소방시설설치·유지및안전관리에관한법률'이 개정됨에 따라 주택소유자는 소화기, 단독경보형감지기 등 주택용 소방시설을 설치해야하며, 기존 주택에도 오는 2017년 2월 4일까지 세대당 1개 이상의 소화기와 방(구획된 실)마다 단독경보형감지기를 1개씩 설치해야 한다. 이에 따라 경주시민들이 보다 손쉽게 주택용 소방시설 구매·설치할 수 있도록 경주소방서 예방안전과는 원스톱 지원센터를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대표번호(054-778-0542)로 문의하면 주택용 소방시설 판매업체 및 구매절차 등 관련정보를 상세히 안내받을 수 있다. 손혜숙 예방조사담당은 “화재 발생 시 소화기·단독경보형감지기가 큰 역할을 한다”며 “원스톱 지원센터가 주택용 소방시설 설치 촉진에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경주시 주민건강지원센터에서는 지난 2일 금연동아리 학생 및 금연자원봉사자 150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29회 세계 금연의 날 기념행사를 가졌다. 세계 금연의 날은 세계보건기구(WHO)가 매년 5월 31일을 지정해 흡연의 심각성을 알리고 효과적인 금연정책을 전 세계에 전파해오고 있다. 특히 시는 2015년 금연 환경 조성사업 최우수 기관으로 선정돼 지난 5월 31일 서울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세계 금연의 날 행사에서 복지부장관상을 수상했다. 1부 행사에서는 위덕대 금연동아리 흡연예방 퍼포먼스를 시작으로, 금연유공자 4명에게 표창을 수여하고 지역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금연 표어, 포스터, 글짓기 공모전에 응모한 1864명중 최우수, 우수 작품 수상자 18명에게 상장을 수여했다. 2부 행사는 울산현대자동차산업보건센터 김민섭 과장의 금연의 중요성에 대해 특강 후 황성공원에서 경주대 금연동아리 학생들과 함께 흡연과 간접흡연의 심각성에 대해 홍보 캠페인을 펼쳤다. 전점득 보건소장은 “공모전 등 다양한 홍보활동으로 금연분위기를 조성하여 흡연을 예방하고 비흡연자의 건강과 권리를 보호해 시민 건강증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반환일시금 지급대상 외국인이 본국으로 귀환하는 경우 출국 확인 후 반환일시금을 지급합니다. 사회보장협정이나 상호주의가 적용되지 않는 국가의 외국인가입자에게는 본국 귀환시 반환일시금을 지급하지 않았으나, 다음에 해당하는 외국인에 대하여는 2007년 5월 11일 이후 반환일시금을 지급합니다. ① 외국인의 본국법에서 대한민국 국민에게 ‘반환일시금에 상응하는 급여’를 지급하는 경우 ② 대한민국과 외국인 본국 간에 반환일시금 지급에 관한 사회보장협정이 체결된 경우 ③ E-8(연수취업), E-9(비전문취업), H-2(방문취업)에 해당하는 체류자격으로 국민연금에 가입한 외국인 제공=국민연금 경주지사
면역이란 인체 방어 시스템으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질병으로부터 우리 몸을 보호하고 원래 상대로 회복시키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면역력을 높이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면역력을 높이는 12가지 생활 속 실천 방법에 대해 알아봤다. 잠은 7시간 이상 장시간 잠을 못 자게 한 실험용 쥐가 면역력이 떨어져 패혈증으로 죽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양질의 잠을 성인은 7시간 이상, 소아는 12시간 이상 자는 것이 면역력을 높이는 데 가장 좋다. 잠이 쉽게 오지 않을 때에는 취침 2시간 전에 더운물로 목욕을 하거나 바나나, 체리, 우유 등과 같이 체내 수면 유도 호르몬인 멜라토닌의 재료가 되는 식품을 먹도록 하자. 카페인은 피하자 오후 근무 중 졸음이 오더라도 카페인을 함유하고 있는 커피, 녹차 등 각성 효과가 있는 음료는 오후 4시 이후에는 피하자. 밤에 잠들기 어렵게 하고 수면의 질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5분 동안의 산책은 커피 한잔을 마신 것과 동일한 각성 효과를 나타낸다. 회사에서 심하게 졸릴 때에는 10분 내외로 토막잠을 자는 것이 좋다. 손을 잘 씻기 손에는 2억 마리의 세균이 살고 있다. 손만 잘 씻어도 세균 감염의 60% 정도는 예방된다. 자주 손 씻는 습관은 바이러스와 곰팡이, 세균으로부터 우리 몸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다. 평소 향균 효과가 있는 젤을 가지고 다니면서 쓰거나 약국에서 판매하는 일회용 알콜솜으로 휴대전화를 자주 닦아 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스트레칭과 가벼운 운동 스트레칭을 하는 것은 면역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가벼운 운동은 깊은 호흡과 긴장 이완을 통해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면서 자율신경의 하나인 부교감신경을 활성화시키고, 부교감신경은 면역계를 자극한다. 10분 정도 걷기나 계단 오르기 정도도 운동이 될 수 있다. 다만 갑자기 너무 심한 운동을 하면 오히려 면역력 저하를 초래할 수 있으니 주의하자. 면역력에 도움 주는 음식 먹기 면역 기능에 도움이 되는 대표적인 식품으로는 비타민C가 많은 풋고추, 피망, 파프리카, 양배추, 유자와 면역 세포를 활성화시키는 베타글루칸이 많은 버섯, 비타민 B군이 많은 수수, 보리, 율무, 기장, 메밀 등의 잡곡이 있다. 특히 호흡기 점막을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하는 비타민A는 붉은 고추, 당근, 말린 살구 등에 많이 있다. 프로바이오틱스 챙겨먹기 사람이 태어날 때 장에 갖고 있는 균을 유익균이라 한다. 프로바이오틱스는 장내 세균 중 유익균을 캡슐이나 정제로 제품화한 것으로 꾸준히 먹으면 장 속 유해균(병원성 세균, 부패균 등)이 증식하는 속도가 늦춰지고 유익균이 활성화돼 면역력이 저하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동국대학교 경영대학원 원우회(회장 허정미)는 지난 1일 내남면 소재 사회복지법인 민재 경주푸른마을을 방문해 거주인들이 휴식을 취하면서 편안하고 즐겁게 시청할 수 있는 LED TV와 빵을 전달하는 등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전했다. 동국대 경영대학원은 전문적 지식과 최신의 경영기법을 갖춘 지역경제의 혁신적인 리더양성을 목적으로 2009년 설립됐다. 하나의 지구촌으로 변모하는 무한경쟁의 시대적 상황과 최근 가장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기후변화 문제의 흐름을 읽고, 올바른 판단을 내려 지역사회를 주도해 나갈 수 있는 힘을 지닌 창조적인 지역경영 리더가 요구되고 있는 시점, 현실경제에 참여하고 있는 직장인의 편의를 위해 교육과정을 모두 야간으로 운영하고 있어 직장을 다니면서 석사과정을 수학할 수 있다. 원우회 허정미 회장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경영인들이 모여 결성된 원우회가 이번 후원물품 전달을 시작으로 어려운 지역주민들과 따뜻한 마음을 함께 나누고 싶다”면서 “이를 계기로 해마다 경주지역과 포항지역을 중심으로 연 2회씩 사회복지기관을 방문해 후원물품을 전달할 예정”이라며 지속적인 후원물품 전달을 약속했다.
매슬로우는 1908년 빈민가에서 태어난 미국의 심리학자이다. 그의 부친은 유대계 러시아인으로 미국으로 이주하여 7형제를 두었고 매슬로우는 그중 첫째였다. 매슬로우가 등장하기 전 심리학 진영은 과학적 행동주의자나 프로이트나 융과 같은 정신분석학자들이 심리학을 주도하고 있었는데 이와는 완전히 다른 제 3세력의 심리학인 인본주의 심리학이 매슬로우에 의해 주도 창설되었다. 매슬로는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에서부터 사랑, 존중, 그리고 궁극적으로 자기실현에 이르기까지 충족되어야 할 욕구가 위계가 있다는 욕구5단계설을 주장하였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의 욕구는 병렬적으로 열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낮은 단계에서부터 충족도에 따라 높은 단계로 성장해 가는 것이며 낮은 단계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높은 단계의 욕구는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고 이미 충족된 욕구도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보았다.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자. 제1단계는 생리적 욕구이다. 먹고 마시고 잠을 자고 숨을 쉬고 하는 기본적인 사항들을 뜻한다. 2단계는 안전의 욕구이다. 정신적, 심리적, 육체적, 경제적으로 안전을 확보하고 싶은 욕구를 뜻한다. 제3단계는 사회적 욕구인데 소속감과 사랑의 욕구라고도 한다. 인간은 소외감이나 고독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다른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이루거나 특별한 집단에 소속되길 바라는 욕구를 뜻하는데 우리 시대의 많은 청춘들이 이 3단계에 머물러 있지 않나 생각하기도 한다. 그 다음단계는 존경의 욕구이다. 자아 존중욕구라고도 부르는데,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단순한 구성원이 아니라 어떤 존재이길 바라며 주변사람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와 존경을 받고 싶어하는 욕구를 뜻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명예와 명성에 해당되는 욕구이다. 마지막 단계가 바로 자아실현의 욕구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해 보려는 욕구로 자신이 가진 능력과 재능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다. 앞서 말했던 4가지 욕구는 결핍욕구라고 하여 계속해서 생겨나는 욕구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자아실현의 욕구는 성취욕이라는 특징이 있다. 매슬로우의 이론이 100% 맞는것이 아니다. 인간의 욕구라는 것이 항상 단계별로 이뤄지지도 않는다. 총알이 빗발쳐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전쟁터에서도 사랑의 감정이 나타나는 것이나, 얼마남지 않은 식량과 언제 구조될지도 모르는 난파선이라는 극한 상황에서도 여전히 서열을 따지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매슬로우의 이론이 상당히 설득력있는 것은 낮은 단계의 욕구총족 여부가 높은 단계의 욕구 충족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엄연히 사실이기 때문이다. 제법 큰 고깃집을 경영하는 부부가 있다. 매출액은 상당히 크지만 순수익은 사실상 낮아서 속사정은 그리 좋지 않다고 한다. 지나치게 낙천적인 성격의 남편은 집 관리비가 석달씩 밀려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편이어서 한때나마 집에 수도와 전기가 끊겨버린 적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아내가 내뱉은 말이다.. “그냥 저 식당 관두고 아직도 좀 젊은 남편이 어디가서 월급이라도 받아오면 아무리 늦게 오더라도 난 괜찮을텐데” 가장 하위 단계인 생리적 욕구와 안전의 욕구가 제대로 충족되지 않아 그 다음 단계인 소속감과 사람을 느끼는 욕구가 순간적이나마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닐까? 현재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을 칭하는 어휘는 많다. 88만원 세대, 삼포세대 오포세대 더 나아가 칠포세대, 어려운 세대라는 표현임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다. 삼포세대는 결혼, 연애, 출산 포기를 지칭한다. 여기에 내집 마련과 인간관계를 포기해서 오포세대가 되고 꿈과 희망까지 포기해서 칠포세대라고 한다. 삼포세대는 매슬로우의 이론중 3단계부터이고 오포세대는 4단계, 칠포세대는 마지막 단계까지를 모두 포기하는 말이 되어버렸다.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설 중 1단계, 2단계는 포기하지 않으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선진국들의모임인 OECD 가입국이고, IMF가 발표하는 소득상위국가에 늘 이름을 올리고 있는 대한민국으로서 매슬로우의 욕구 1, 2단계를 걱정해야 한다면 그야말로 자존심문제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암울해진 사회, 특히나 젊은이들의 도전이 몹시도 힘들어진 상황이 너무 안타깝다. 김민섭 시민기자
경주세계문화엑스포에서 열리고 있는 문화장터에 참여하는 사회적 기업 및 협동조합 참가자 교육이 지난 1일 경주시새마을회관 3층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경주시사회적기업협의회 주최로 열리는 문화장터는 두꺼비학교협동조합과 다드림교육지원센터가 주관해 6월부터 12월까지 매주 토·일요일 엑스포공원 내에서 열리게 된다. 경북소재 30여 개 사회적 기업 및 협동조합에 참여해 열리는 행사장에는 60여 개 부스가 설치돼 지난 4일을 시작으로 국가가 지정한 사회적 기업 물품을 판매한다. 이날 교육에서는 참여 사회적 기업 등의 관계자 등 4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가경복지센터 조수경 센터장의 인사말에 이어 경산 두꺼비협동조합 김은영 대표의 교육으로 진행됐다. 두꺼비학교협동조합(바리스타, 일러스트, 공예, 퀼트, 석고체험), 맘이좋은(에코백, 티셔츠, 가방체험 및 판매), 더나비(팔찌, 리본, 선물포장), 한따미(바느질체험), 다문화교육연구소(다문화의상, 열쇠고리체험, 다문화관련도서, 북마트키트판매), 푸드앤디자인 협동조합(도시락), 다락과 마을(더치커피) 등 참여 사회적 기업 및 협동조합에 대한 소개와 판매 및 체험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과 교육을 실시했다. 이날 참석한 교육생들은 평소에 사회봉사활동에 많이 참여한 봉사자들로 대부분으로 연령층이 높았지만 교육에 대한 열의만큼은 젊은 세대 못지않게 뜨거웠다.
경주농협 제19기 주부대학이 지난 2일 개강했다. 이날 경주농협 대회의실에서 열린 개강식에는 최우성 농협 경주시지부장, 황도석 경주농협조합장을 비롯해 각급 기관단체장, 주부대학생 등이 참석한 가운데 임원 및 내빈소개에 이어 주부대학 경과보고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농협 제19기 주부대학은 이날 개강식에 이어 2개월 간 화·목요일 16회차로 주부들에게 필요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실시할 예정이다. 황도석 주부대학장은 환영사에서 “배움의 터전에서 새로운 인연을 맺게 돼 고맙게 생각한다. 제19기를 맞아 여성 지위향상과 자기개발을 위해 열심히 강의를 들어주길 바란다”며 “농협과 농촌에 대한 바른 이해와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계기와 함께 농산물 수입개방과 농촌고령화 등으로 어려움에 처해있는 농업·농촌을 위해 주부들이 솔선수범해 지역사회를 이끌어 가는 주역으로 봉사활동에 참여해 주길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최우성 농협 경주시지부장은 “주부대학에 참여해주신 분들이 우리 농촌발전과 시민안전에 기여해 주시기 바라며 건강하길 기원한다”고 축사했다. 민자란 여사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들어오셔서 축하드리고, 19기 명예청강생으로 받아주셔서 감사드린다”며 “두 달 동안 농협 주부대학에서 여성들에게 필요한 뷰티, 건강, 심리학, 체험학습 등 16회의 강의가 너무 알찬만큼 시간이 수강 기간이 더 연장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이어 주부대학 총동창회 김정옥 회장의 격려사와 교육생 대표의 ‘우리들의 다짐’ 낭독, ‘농협의 노래’ 제창 후 제19기 교육생들의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한편 제19기 주부대학은 총 112명으로 학생장 1명, 부학생장 2명, 총무 1명, 오락부장 1명, 반장 4명으로 임원을 구성했으며, 상호친목과 지역사회발전을 위한 자발적인 봉사활동 참여 등 학생수칙에 따라 활동하게 된다.
경주문예대학 총동창회(회장 방종관)가 주최하는 ‘시민과 함께하는 문학특강’이 지난달 31일 유림회관 강당에서 열렸다. 이번 특강은 구림 이근식 선생을 초빙해 ‘기미독립운동 전후의 우리문학’이란 주제로 강연을 했다. 구림 이근식 선생은 경주의 시인이자 한국의 시인이며 1928년 건천읍 금척리에서 태어났으며, 교육자로 시인으로 세간의 존경을 받아왔다. 또한 문학을 꿈꾸는 문청들을 위해 경주문예대학을 운영해 수많은 문인 제자를 길러냈으며, 꼿꼿하게 선비 정신을 지켜온 학자로서 경주 원로를 대표한다. 1972년 목월 선생의 3회 추천으로 월간 현대시학 등단 후, 청마 유치환 선생과 경주문협을 이끌었고 경주문협회장, 경북예총회장, 한국문인협회 고문에 이르기까지 창작을 멈추지 않는 원로시인으로 경상북도 문화상, 한국예총예술문화상, 경북문학상, 한국문협 윤동주문학상 수상 등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였다. 이날 강의에서 이근식 선생은 ‘기미독립운동 전후의 우리문학’의 시대적 배경은 1894년(고종31년) 갑오경장에서 기미년 3.1운동 전후 약 30여 년간의 문학을 말한다. 봉건주의와 쇄국주의는 여지없이 무너지게 됐고 따라서 많은 학교의 설립과 학술기관 발족, 근대적인 신문 발행, 잡지 발간, 극장 설립 등 새로운 문화운동이 힘차게 일어나 문화사적 커다란 전환기를 마련하게 돼 우리나라의 근대화를 위한 신문학운동은 매우 큰 문화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갑오경장을 중심으로 일어난 개화사상은 새로운 문예운동을 일으킴으로써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으며 그 중에서도 외국서적의 번역과 더불어 근대적인 신문의 발행과 잡지의 간행이 새문화를 섭취해 육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옛날에 조보(朝報:조정에서 내는 신문)라는 것이 있었지만 이것은 하나의 관용문서에 불과했고 근대적인 신문은 갑오경장이후 서재필에 의해 1896년(건양원년) 발행된 ‘독립신문’이 처음이었다. 문단의 조류를 보면 김동인, 주요한, 전영택, 김환 등의 동인지 ‘창조’를 통해 과거 춘원의 계몽문학을 거부하고 사실주의 문학을 건설했다. 어디까지나 인생 그것을 그대로 표현해야 한다는 순수문학운동을 일으켰다. 방종관 회장은 “국내 저명한 문인들을 초청해 진행되는 이 강좌는 경주시민들과 인근주민, 문예대학생들이 한국 저명문학가를 직접 만나 문학의 즐거움을 진지하게 나누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선후배들과의 만남으로 문학의 길을 걷는데 좋은 공유의 시간이 된다”고 말했다. 윤태희 시민기자
봉황대 고분을 배경으로 열리는 고품격 야외콘서트 ‘봉황대 뮤직스퀘어’에 슈퍼스타K 출신의 실력파 싱어송라이터 장재인이 10일 초여름의 경주를 찾아 매력을 발산한다. <사진> 장재인은 2010년 슈퍼스타K에 출전해 3위에 랭크되며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이문세)’을 리메이크해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포크, 발라드, 빈티지 소울까지 다양한 음악적 스펙트럼을 선보이며 실력파 아티스트로 급성장하고 있는 뮤지션이다. 또, 10년동안 지역에서 왕성한 활동을 한 ‘하늘호’밴드의 무대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일 년이 멀다하고 동네 풍경이 변하는 요즘이다. 묵묵하게 자신의 생업을 지키고 버텨 온 이들과 그 장소성에 주목하고자 하는 이번 기획을 준비하면서 기자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들에게 오랜 장소성과 성실함에 어울리는 댓가를 치러줘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난호에 이어 경주의 오래된 가게(2)편을 준비하는 과정은 참으로 힘들었음을 토로한다. 인터뷰 섭외부터 이번 기획의도와 부합하는 콘텐츠를 발굴하기 어려웠다. 한 직종을 4~50년 간 같은 장소에서 해 온 가게가 드물기도 했지만 설혹 발굴했다하더라도 삼고초려를 했는데도 끝까지 고사한 이들이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수작업에 의존하고 시류와는 동떨어졌지만 고집스럽게 일하고 있었던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힘든 가게 운영을 못버티고 그만두는 이들이 많은 가운데 이들도 명맥만 겨우 이어가는 상황이 많았다. 다음호에서는 ‘오래된 가게’에 대한 경주시 관련자들의 의견과 비전을 함께 반영하려한다. -오현환 대표의 ‘시민자전차 상회’, 이제는 술도 한 잔 나누고 시름도 덜어주는 사랑방 역할 시민의 발이 되어 주라는 의미에서 지어진 이름인 ‘시민자전차 상회(오현환 대표, 65)’는 오 대표와 친구들의 존재 그 자체다. 황남동 국당리 작은 다리를 건너기 전부터 조마조마했다. 혹여 자전차 상회가 사라진 것은 아닐까하는 기우에서였다. 그러나 여전히 자전차상회는 건재했다. 내남 사거리를 지나 오릉 가까이에 70년대 골목 어귀에서나 혹은 향수를 자극하는 드라마에서나 등장할법한 녹이 슬어 찌뿌둥한 간판이 하나 걸려있다. 바로 ‘시민자전차 상회’. 빛바랜 흰 페인트 칠 위에 또박또박 쓰여진 검은 고딕체 글씨는 쇠락해가는 자전차 상회의 자화상인 듯하다. 그 간판의 외양만으로도 가슴 한 켠이 저려 온다면 넉살이 심한 걸까. 괜한 페이소스라 나무랄까. 시류와는 상관없다는듯한 간판에서 쥔장의 고집을 엿볼수 있다. 이 수상쩍은 ‘오래됨’은 요즘 SNS의 급물살을 타고 알려져 관광객들의 구경거리 가게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인심좋은 웃음사이로 가끔씩 보이는 금니가 이채로운 오현환 대표가 이 곳 주인장이다. 70년대 해병대 소속으로 월남전에 참전했던 그는 72년 제대 이후 소년시절 자전거방 점원으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 가게를 차렸다고 한다. 그때부터 이곳에서 줄곧 41년간 일해 온 것. 장사가 가장 잘 되던 시기는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였다. 최근엔 중국산 자전거로 인해 가격 경쟁에서 밀려 난지 오래란다. 자전거 수리 및 판매가 그의 주요 일인데 요즘은 하루 매상이 2만원을 넘지 않는다고 너털웃음을 짓는다. 1995년엔 포스코 사원용 자전거 1000대 납품 요청에 기술자로서 경주사람으로는 유일하게 초청받아 일하기도 했다. 요즘은 판매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굳이 지인이 부탁할 경우엔 반조립된 제품을 완성시켜서 팔지만 수지가 맞질 않는다고 한다. 동네 구멍가게와 대형마트가 비교가 되지 않듯이 이 가게도 명맥만 유지한 지 오래라는 것이다. 그리고 웬만한 수리는 공짜로 해주고 기름도 쳐주고 타이어 바람도 채워주고 큰 수리라고 해도 부속값 정도만 받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가게를 고집하는 것은 친구들 때문이란다. 퇴직한 친구들의 요청으로, 모여서 술도 한 잔 나누고 시름도 덜어주는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한다며 인심좋은 웃음을 짓는다. 그는 또, 황남동 자율방범대, 새마을 지도자, 자연보호, 바르게살기운동에도 적극 참여하는 모범 경주시민이기도 하다. 오스트리아 철학자인 이반일리치는 인류를 구원할 세 가지로 도서관과 시와 자전거를 꼽았다. 소박하고 자족적인 삶을 은유하는 의미로서의 자전거는 언플로그드한 세상을 꿈꾸는 인간들에게는 대표적인 표상이 될 것이다. 잊혀져 갈 그 작고 허름한 자전차상회도 언젠가 사라지겠지만 자전거 페달을 밟을 두 다리가 허락되는 한 자전거는 영원할 것이다. -오태식 대표의 ‘남광 목공소’, “점심을 굶고서라도, 잠을 자지 않더라도 주문 약속은 지키지요” 오래도록 만져서 반질반질 윤기가 흐르는 여러 목공기구들이 그간의 시간을 말한다. 얼마나 열심히 일 해 왔는지 짐작할 수 있는 사람의 손때 묻은 흔적은 아름답다. 황남동 오릉 가는 길에 위치한 남광 목공소(사찰문 전문, 오태식 대표, 56)에는 검지 하나가 목공 작업중 잘리고 없는 오태식 목공인이 있다. “이 일을 배운 것은 초등학교 졸업하고서부터 대략 14~5세경 이었습니다. 20대 후반, 85~6년부터 이곳에서 터를 잡고 일을 했으니 30년째죠. 단돈 450만원으로 이 목공소를 차렸습니다”고 한다. 공장이 적어서 가구 제작은 할 수 없고 업자들이 연락이 오면 손수 재와서 주로 문을 짰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전통 문 제작에 능하다고. “이 목공소를 차리고 3~4년간은 동생과 함께 일을 할 정도로 재미가 쏠쏠했지요. 공장이 적어도 일 많이 한다고 소문이 날 정도였습니다. 당시 목재를 5톤 한 차를 댔다고 하면 일을 매우 많이 하는 것이었습니다. 1년에 7차 정도 날린다는 것은 엄청났지요. 그러던것이 IMF사태 당시 그해는 절반으로 줄었고 이듬해는 다시 절반으로 줄었죠. 그리고는 5톤 한 차를 소비하는데 1년이 걸렸고요” 이에 같이 일하던 동생은 회사에 취직을 했던 것. 요즘은 그래도 일거리가 제법 들어온다고 한다. “작은 목공소가 거의 사라져버렸고 우리같은 수작업하는 목공소가 귀해졌고 게다가 한옥을 지으려는 분위기가 많아 좀 나아졌어요. 전통 한옥이나 잘 짓는 주택의 경우 문짝을 주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저는 고객과의 시간 하나만큼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철저하게 지킵니다. 하늘이 두 쪽 나더라도요. 점심을 굶고서라도, 잠을 자지 않더라도 약속은 지키지요” 라고 하는 오 대표의 신용을 지키는 철칙이 오랜 단골로 이어지는 것 같았다. “강동면 국당리 깊은 산 어느 작은 암자에 홍송으로 문짝을 짜 드렸는데 스님이 ‘아침에 일어나면 문짝 떼갔는지부터 먼저 확인한다’고 했습니다(웃음). 그만큼 흡족하게 문을 잘 제작했다는 뜻인거 같아 기뻤습니다” 며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앞으로도 여기에서 계속 이 일을 할 것입니다. 경로당 가더라도 걸음만 똑 바로 걷고 허리만 괜찮으면 일은 할 생각입니다. 일 해서 용돈벌이 하면 돼죠. 하하” 지금도 오 대표의 목공소 한켠에는 주문받아 이미 제작 해놓은 73짝의 문짝이 달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근데 제가 일은 확실하게 하는데 성질이 급해서 문제입니다(웃음)” 남광목공소 오태식 대표는 화끈한 경상도 남자였다. -유종태 사장의 ‘건천 대장간’, 2대에 걸쳐 65년 세월을 같은 자리에서 건천 대장간 유종태(45) 사장은 지난 2012년 본지 1055호, 우리가 간직했던…사라져가는 아름다움 ② ‘건천대장간’ 편에서 ‘삶이 심드렁해질때…‘우당탕’ 메질 소리 쏟아지는 건천 대장간을 찾아보라’라는 제목으로 취재한 바 있다. 지난 7일 다시 건천대장간을 찾았다. 4년만에 찾은 대장간은 간판이 달라져 있었다. 부친이 직접 썼다는 옛 간판은 그대로 보존한 채 포스코(POSCO)에서 제작해준 세련된 간판을 달고 있었다. 한 달 전 쯤 포스코에서 내마모강을 가져다주면서 낫이나 호미 등 농기구를 수작업으로 제작해달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이는 포스코가 사회봉사차원에서 농기구를 보급하는 차원에서 이곳 대장간에 주문을 의뢰한 것. 이 농기구 제작 과정을 SBS방송국에서 촬영해갔고 지난 31일 방송됐다고 한다. 최근 유 사장의 대장간에는 또 좋은 일이 생겼다. 회사 생활을 하던 조카가 합류한 것인데 기술을 배우라는 유 사장의 권유 덕이었다고. 유 사장은 천상 대장장이다. 뭐든지 뭉툭하고 두툼하다. 그의 어깨가 그렇고 손이 그렇고 둥그런 배도 그렇다. 손톱에 까맣게 낀 때가 그의 작업량을 말해주는 듯하다. 건천읍 건천 3리 시장 안 깊은 골목, 비린내가 진동하는 어물전을 마주하고 있는 ‘건천 대장간’은 부친(유기배, 작고)때부터 65년의 세월을 이 자리에 있었다. 값싼 중국산 농기구에 밀려 사양산업이 된지 오래된, 그저 우리들 향수를 자극하는 눈요기용 상품정도로 명맥을 유지할 것 같은 대장간을 상상했다. 그러나 ‘건천 대장간’은 달랐다. 일은 줄어들고 있긴 하지만 작업하는 대장장이가 거의 없으니 밥 먹고 살만해서 평생 생업으로 삼을 생각이라고 한다. “오시던 단골분들은 많이 돌아가셨습니다. 요즈음은 외지에서도 많이 찾아오시고 주문도 하고 물건도 사 가는 편입니다. 농기구 외에도 인테리어 소품등도 사가고요” 농기구는 갈수록 주문이 줄어들고 있지만 농기구 외에 부엌칼이나 회 뜨는 칼은 죽도시장이나 바닷가 쪽의 전문횟집에서의 수요가 만만치 않다고 한다. “대장간에서 무쇠를 연마해 칼을 만드는 작업은 흔히들 했지만 스테인레스를 다루면서 수작업으로 식도로 만드는 일은 아마도 전국에서도 드문 편으로 알고 있습니다” 면서 “동해안 지역 즉 포항 죽도시장, 구룡포, 후포, 평해 등의 횟집에서는 전부 제가 만든 칼만 사용합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인터뷰 중간에도 횟집에서 주문이 들어왔다. 또 한옥을 짓는 목수들의 연장으로서 다양한 치수의 끌이나 망치, 정 등을 주로 찾는다고. 이들은 모두 수작업으로 제작한다. 1970년~80년대는 밤새도록 일을 해도 다 해내지를 못할 정도였다. “장날 벌초 대목에는 이 대장간 앞이 ‘둘러꺼졌다’. 낫을 50가리씩 포개어 놓아도 금세 동이 났다”고 했다. “그래도 이일을 해서 먹고 사는 정도는 되니까 괜찮습니다” “작업마다 다 재밌고요”라고 말하는 유 사장은 큰 욕심부리지 않고 오늘도 우직하고 성실하게 일한다. “이 기술을 무형문화재로의 지정을 신청하라고 주위에선 많이 권하지만 제가 아직은 나이가 젊어서 더 열심히 한 뒤에 도전해 보겠습니다. 아버님이 신청을 했으나 제가 다른 곳에 있어 지정되지 못했거든요”라며 앞으로 바람을 조심스레 이야기했다. 삶이 심드렁해질때 ‘우당탕’ 메질 소리 쏟아지는 건천대장간을 찾아보라. 대장간이 전하는 치열하고 정직한 말을 듣고 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