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경주캠퍼스 17대 직원노동조합(위원장 이수우)은 지난 8일 보문 스위트호텔에서 노조 창립 3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이날 기념식엔 정성호 동국대 경주캠퍼스 초대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역대 위원장과 이대원 동국대 경주캠퍼스총장, 김영규 교수회장, 성채용 총무처장 등이 동국대 경주캠퍼스 내빈으로 참석했다. 또한 전국사립대 노동조합연맹 김상수 위원장, 한노총 경주지부 윤석주 의장과 각 대학 노조 위원장, 경북도의회 배진석 도의원, 경주시의회 김태현 시의원, 장복이 시의원 등 조합원을 비롯한 내·외빈 200여 명이 참석해 창립 30주년을 축하했다. 이수우 노조위원장은 기념사를 통해 “지금 우리 대학들은 10여 년간의 등록금 동결과 학령인구감소, 대학구조개혁에 의한 정원감축 이라는 위기에 직면해 있지만 학교당국이 직원 사기진작에 아낌없고 충분한 정책을 추진하고 노와 사가 전향적으로 협력한다면 충분히 극복할 것”이라며 "통상적으로 한 세대를 30년으로 구분하듯 동국대 노동조합도 지난 1세대의 훌륭하고 탄탄한 기반을 온고지신 삼아서 새로운 2세대 모델을 구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1988년 창립한 동국대 경주캠퍼스 노조는 지난 30년간 조합원의 권익보호와 복지 향상에 앞장 서 왔으며 2009년에는 100주년 기념관 건립 기금으로 1억원을 학교 측에 전달하는 등 대학 발전의 동반자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
깊어가는 가을, 세계 유일의 고분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경주의 대표 야외공연인 ‘봉황대 뮤직스퀘어’가 수준 높은 이색 공연을 즐기려는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특별한 가을 추억을 선사한다. 천년고도의 가을 정취를 만끽할 10월의 공연 라인업으로는 오는 12일 7080드림콘서트로 ‘유익종, 전유나, 이치현과 벗님들의 가을콘서트’에 이어 19일 대한민국 록의 전설 ‘전인권 콘서트’로 올해 ‘봉황대 뮤직스퀘어’의 대미를 장식한다. 봉황대 뮤직스퀘어는 매주 금요일 밤 다양한 장르의 수준 높은 공연을 통해 천년고도의 대표적 공연문화 콘텐츠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특히 황리단길과 이어진 봉황로에 마련된 프리마켓 봉황장터가 핫 플레이스로 부상하면서 야간관광 투어 코스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올해도 지난 5월 11일 최고의 록그룹 ‘부활 콘서트’를 시작으로 발라드의 황제 변진섭을 비롯해, 조성모, 장혜진, 왁스 등 화려한 출연진들의 라이브 공연으로 연 4만명 이상 관람객이 방문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내남면사무소는 지난 9월말부터 이달 8일까지 이조교와 삼성생활예술고 앞길을 아름다운 꽃길로 조성했다. 쾌적한 환경과 새로운 볼거리 제공을 위해 지난 9월 면소재지 이조리 관문인 이조교(용산교) 난간에 웨이브페튜니아 화분 200여개를 설치한 내남면은 지난 8일 유동인구가 많은 삼성생활예술고 앞 담장에 가을소국 화분걸이 250여개를 설치해 주민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번에 조성된 꽃길은 자생단체 회원을 비롯한 주민들과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화분물주기 등 관리에 나설 계획이다. 박용환 내남면장은 “다리 난간과 학교 담장에 설치된 꽃이 주민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 기쁘게 생각한다. ‘당신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해집니다’라는 페튜니아의 꽃말처럼 주민들과 학생들이 꽃길을 거닐며 잠시나마 편안한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내남면은 버스승강장 13개소에 화단을 조성한 것을 비롯해 각 리동별로 경로당 34개소에 화분 340개를 비치하는 등 민선7기 출범과 동시에 역점적으로 추진 중인 ‘아름다운 읍면동 만들기’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지역 애향청년단체가 교과서로 배우던 신라시대 대표 문학 ‘향가’를 알리기 위한 자리를 마련해 화제가 되고 있다. 건천애향청년회(회장 최병섭)는 13일 건천초 운동장에서 신라향가 발굴 전승사업으로 ‘제2회 모죽지랑가’ 행사를 개최한다. ‘모죽지랑가’는 신라 효소왕 때 ‘득오’가 죽지랑을 사모하여 지었다는 8구체 향가로 현존하는 향가 중 실존 인물(죽지랑, 득오)과 장소(부산성, 모량, 달래창, 여근곡) 그리고 작가(득오)가 명확한 유일한 신라시대 향가이다. 건천지역 청년단체가 직접 지역 문화를 알리기 위해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마련한 이번 행사에는 지역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모죽지랑가를 배경으로 사전 공모한 ‘제1회 모죽지랑가 시화 공모전’에 대한 시상과 전시도 함께 열린다. 전통 향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홍보영상, 한양대 이형우 교수의 특강과 함께 경북 영제시조연구소 허화열 소장과 서라벌 정가단의 향가 실연 공연 등 향가를 직접 체험하고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모죽지랑가 이외의 향가에 대한 전시도 마련된다. 공식행사 이후에는 건천섹소폰동우회, 국악공연, 쏠라이트 율동패, 초청가수 공연 등 축하공연이 열려 주민 화합의 한마당 잔치가 열릴 예정이다. 최병섭 건천애향청년 회장은 “지역의 뛰어난 역사적 자산을 발굴해 지역민의 자긍심을 높이고 장기적으로는 스토리가 있는 지역 관광자원으로서 지역발전에 기여하고자 한다”며, “우리고장 건천을 배경으로 지어진 ‘모죽지랑가’ 행사에 많은 시민들이 참석해 모죽지랑가를 비롯한 신라향가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되는 값진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번 행사는 건천지역 청년 봉사단체인 건천애향청년회가 주최·주관하고 경상북도와 경주시, 경주교육지원청, 신경주농협이 후원하며 쏠라이트에서 협찬한다.
경주소방서는 최근 연이은 공장(공단) 대형화재가 발생함에 따라 오는 26일까지 현장중심의 선제적 예방 및 대응으로 대형화재 절대방지를 위한 대형 공장 소방안전대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주요 추진 내용은 △공장시설 소방안전관리실태 현장 지도방문 △공장 단지별 현장 화재안전 컨설팅 추진 △자위소방대 대응능력 강화를 위한 무각본 지도훈련 실시 △공장·공단 화재발생 제로화 추진 연론 홍보 등이다. 경북소방본부 통계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경북 공장화재 건수는 494건(연평균 164건)으로 전체 화재 건수 8536건의 5.8%로 화재 발생 빈도는 대체적으로 낮으나 인명피해와 재산피해가 상대적으로 높다. 또한 2017년은 전년 대비 18건(11.5%)이 증가하는 등 화재건수는 대체적으로 증가 추세에 있다. 안태현 경주소방서장은 “대형 공장, 산업단지별 취약특성 등을 고려한 맞춤형 예방대책을 추진해 안전사고 방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경주교육지원청은 오는 17일부터 19일까지경주예술의전당 대공연장 및 알천미술관 갤러리에서 경주지역 초․중․고 학생들과 교직원, 학부모가 함께하는 ‘2018 서라벌 학생 꿈․끼 한마당’를 개최한다. 이 행사는 올해부터 기존의 화랑문화제와 방과후학교 우수 프로그램 발표회를 축제형 한마당으로 통합, 운영하며 3일 동안 학생들의 꿈과 끼를 펼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마련한다. 이번 한마당은 첫날인 17일에는 ‘작품 전시회 커팅식’ 및 ‘방과후학교 우수 프로그램 공연’, 18일은 ‘작품 전시’, 19일에는 ‘작품 전시회 종료’ 등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방과후학교 우수 프로그램 공연은 난타, 국악, 댄스, 치어리딩, 합창, 합주, 밴드공연 등 학생들이 평소 학교에서 배운 음악적·신체적 표현을 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로 구성됐다. 작품 전시회에는 그림, 도자기, 풍선, 서예, 사진, 시화, 공예품 등 평소 학교 수업활동 또는 방과후 활동을 통해 정성들여 만든 작품들이 전시될 예정이다.
제5회 은광민화회원전이 경주 서라벌문화회관에서 오는 14일까지 펼쳐진다. 이번 전시에서 은광 서지연 작가의 문하생 40여 명의 회원들은 옻칠민화, 전통민화, 생활민화 등 90여 점의 다채로운 민화 작품을 선보인다. <사진> 은광 서지연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 민화의 전통을 되새기고 나아가 민화의 거듭남을 재확인 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면서 “고유한 화풍이라는 그릇 위에서 보다 다양한 삶의 스펙트럼을 담아내고자 했다”고 말했다. 또 “선인들의 지혜와 품격이 돋보인 민화를 통해 소통의 기회, 새로운 미래를 향한 비젼을 열어 보여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역의 봉사단체인 카루나의 모임(회장 성행)이 어려운 가정 청소년 장학금 기금 마련을 위한 하루찻집을 오는 17일 오후3시~9시까지 예술의 전당 지하1층에서 개최한다. 카루나의 모임은 해마다 꾸준히 이웃사랑바자회, 하루찻집을 열어 마련된 기금으로 청소년 장학금, 지역아동센터 후원 등 활발한 지역봉사활동을 펼쳐왔다. 카루나의 모임 관계자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생활하는 우리 이웃 청소년들의 장학금 마련을 위해 올해도 하루찻집을 개최합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해 아이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기회를 마련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고 전했다.
경주는 천년의 세월동안 한 번도 천도하지 않았던 신라의 수도로 수많은 유적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기에 현재의 경주로 거듭났다. 최근의 조사에서는 국내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아올 뿐만 아니라 다시 가보고 싶은 도시로 꼽히고 있는, 명실상부한 세계 10대 고대도시의 하나다. 신라뿐만 아니라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지방행정의 중심지였다. 신라와 고려는 불교국가였지만 좀 더 꼼꼼히 살펴보면 경주에는 유교문화도 산재해 있다. 삼국시대에 이미 유교가 들어왔고 고려시대는 불교국가였지만 행정은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조선시대에는 경상도관찰사가 있던 경주는 뿌리 깊은 불교문화의 전통위에 수준 높은 유교문화를 꽃피웠다. 2010년, 양동마을과 옥산서원, 독락당, 동강서원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특히 양동마을은 조선시대 가장 큰 양반마을로 경주 손 씨와 여주 이 씨가 함께 살고 있다. 두 가문의 종갓집은 물론 파종택, 사당, 정자 등 많은 건축물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그 중에서도 정자, 정사, 누는 휴식을 취하고 주변의 경관을 감상하거나 공부하고 사색하는 곳으로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정자는 많은 선비들이 자신의 학문을 닦으며 자연과 함께하는 이상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졌다. 그러나 정자와 정사의 공간은 건물만으로 한정되지 않고 건물외부로 확장하여 자연을 건물 속으로 끌어들여 주변경관과 더불어 하나가 되도록 하고 있다. 특히 마을 내부에는 정자가 10개나 있을 정도로 빼어난 경관을 보여 준다. 관가정처럼 살림집과 이어서 짓거나 양졸정처럼 사랑채이면서 정자로 쓰이기도 했지만 적당히 외진 곳에도 지어졌다. 그 중에서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수운정을 살펴보자. 양동마을의 많은 정자중에서도 가장 경관이 빼어난 곳에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수운정은 마을 안에 있지만 찾기 어려울 정도로 외진 곳에 있다. 양동마을은 ‘물(勿)’자모양의 마을인데 그중에서도 가장 왼쪽 획인 산줄기 언덕에 있으며 앞에는 안강의 드넓은 들과 경주 가는 길이 멀리 보인다. 마을에서도 외따로 있다 보니 번잡하지 않고 호젓하여 사색하기에는 그저 그만이다. 수운정은 월성 손 씨 문중의 정자로 우재의 증손인 청허재 손엽(孫曄:1544~1600)이 1582년에 세웠다. ‘수운정’은 물과 같이 맑고 구름같이 헛된 욕심을 내려놓는다는 뜻의 ‘수청운허’(水淸雲虛)에서 비롯되었고 나머지 글자를 본인의 호로 삼았다. 자연과 함께하는, 그리고 성리학을 공부하고 사색하는 선비들의 삶은 조선시대 선비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삶의 형태였다. 손 엽은 사마시(지방과거)에 합격했으나 학문에 대한 열정을 삭일 수 없어 벼슬을 마다하고 향리에서 유학자들과 교류하며 성리학을 연구하였다. 손 엽은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1592년부터 3년 동안 겪은 정황을 엮은 용사일기(龍蛇日記)에 의하면 임진왜란 당시 왜구가 동래부를 함락하고 한양으로 치달을 때 경주 집경전에 모셔져있던 태조 이성계의 어진(임금의 초상화)을 수운정으로 옮겨 봉안하였다. 이후에도 예안에 있는 서당으로 옮겨 봉안한 공로로 집경전 참봉이 되기도 했다. 그 후, 강릉 집경전으로 이전 봉안되었으나 결국 화재로 소실되었다. 현재, 태조의 어진(임금의 초상화)은 전주의 ‘경기전’에 유일하게 봉안되어 있는 아주 소중한 유적으로 1410년에 제작되었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어진을 옮겨 화를 면했다. 수운정은 정자와 관리사(행랑채)로 이루어진다. 정자는 정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정자와 ‘ㄱ’자를 이루며 뒤쪽에는 행랑채가 있다. 뒤쪽으로 올라가 마루에 앉아 보면 드넓은 안강들을 옆에 둔 듯 가슴이 시원하다. 특히 방과 마루의 앞에는 계자난간을 둘렀는데 연꽃까지 정교하게 새겨 놓아 아주 격식 있는 정자임을 알 수 있다. 그 자리에 앉아 마루에 걸려 있는 편액인 ‘수운정’ 글씨는 마을 옆을 따라 흐르는 안락천과 닮았다. 50년 전만 해도 배가 드나들며 수많은 사람과 물자가 오가던... 마을 전체가 자연친화적이지만 글씨마저도 내를 따라 어우러지고 있다. 회재의 추성(秋聲, 가을이 오는 소리)을 이 밤에 읊어보자. 월색금소분외명(月色今宵分外明: 오늘 밤 달은 휘영청 밝고 ) 빙란정청이추성(憑欄靜聽已秋聲: 난간에 기대어 귀 기울이니 어느새 가을소리) 상음일곡무인회(商音一曲無人會: 가을노래 한곡조차 같이할 이 없으니) 상상모사모경(上霜毛四五莖: 귀밑에 흰 머리가 몇 가락 더 생겼고나)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는 오늘날 거의 모든 오페라극장에서 볼 수 있는 인기 오페라다. 공연 빈도로는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와 맨 앞자리를 다툰다. 이러니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오페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1853년 베네치아 초연에서 실패했다. 이유가 뭘까? 오페라가 당시 귀족들의 부도덕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그들의 반발을 샀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이유는 따로 있었다. 몸무게가 100㎏은 족히 넘을 것 같은 소프라노가 비올레타 역을 맡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를 그리다가 폐병으로 죽어가는 비련의 여인으로 심히 뚱뚱한 소프라노를 연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라 트라비아타는 이듬해에 시대적 배경을 바꾸고, 비올레타 역을 교체한 후에야 비로소 성공할 수 있었다. 요즘은 굳이 극장에 가지 않아도 오페라를 만날 수 있다. 유명 극장에서 제작된 오페라가 고화질 영상물로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영화관에선 오페라를 상영한지 이미 오래다. 영상물은 TV드라마처럼 성악가의 얼굴을 클로즈업하여 보여주기도 한다. 극장에선 멀어서 안 보이는 것들이 영상물에서는 너무나 잘 보인다는 말이다. 자연스레 오페라 가수에게 가창력 말고도 외모나 연기력을 요구하는 시대가 되었다. 뚱뚱한 비올레타나 못생긴 만토바 백작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발 연기로는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없다. 이제 오페라 가수는 배우 못지않은 팔방미인이 되어야 하나보다. 라 트라비아타는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다. 우리나라 최초의 오페라 공연이 바로 라 트라비아타다. 1948년 1월, 서울 명동의 시공관에서 처음 무대에 올랐는데 1막에 나오는 ‘축제의 노래’는 알프레도와 비올레타의 이중창으로 시작하여 합창으로 연결되는 매우 유명한 아리아다. 당시 비올레타 역을 김자경이 맡았고, 이후 김자경오페라단을 창단하여 눈부신 활약을 했다. 비련의 여인 비올레타는 귀족들을 상대하는 고급 창녀다. 알프레도를 좋아하지만 마음대로 사랑할 수 없다. 신분이 사랑을 가로막는다. 영화 귀여운 여인(원제 Pretty Woman)을 보면, 거리의 여인 비비안(줄리아 로버츠 분)이 에드워드(리차드 기어 분)와 함께 오페라를 감상하는 장면이 나온다. 바로 이 오페라가 라 트라비아타다. 비비안은 오페라에 몰입하면서 눈물을 흘린다. 동병상련이라 했던가. 시대는 다르지만 비올레타에 투영된 가엾은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의곡초등학교 일부분교장(김동현)이 있는 산내면 일부리에는 버스가 하루 3대 들어오는 산골마을 입니다. 이곳 일부분교는 의곡초등학교의 분교장으로 뒷산이 병풍처럼 포근하게 학교를 감싸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분교에서의 프레임은 어디서나 작품이지요. 아귀가 잘 맞지 않아 여닫을 때마다 덜커덩 거리는 교실문과 창문은 정겹지만 겨울나기가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경주시에는 현재 다섯 군데의 분교가 있습니다. 벽지학교는 가~라군 까지 교육법에 따라 등급이 정해져 있는데 오지일수록 가군 쪽에 가깝다고 하는군요. 일부분교는 경주시에선 가장 벽지학교라고 하네요. ‘학생수가 적어서 전 학년이 친구’인 일부분교는 매년 가을 운동회는 본교인 의곡초등학교에 가서 한다고 합니다. 이 분교는 2012년의 경우 1학년 1명, 4학년 4명, 5학년 1명, 6학년 1명으로 전교생이 7명인 학교였습니다. 지금은 3학급 6명(남 3명 / 여 3명)이 됐습니다. 4명의 교사와 30년간 일부분교의 급식을 담당했던 조리사와 학교의 잡일을 보는 ‘주사’등 6명이 근무하고 있고요. 일부분교는 1948년 의곡초등학교 일부분교장으로 설립인가를 얻었고 1949년 일부국민학교로 승격인가를 받았지만 1993년 다시 의곡초등학교 일부분교장으로 통합돼 지금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곳 일부분교를 보면서 하나 둘씩 사라져 가고 있는 분교의 오늘과 잊고 살았던 우리들 어린시절 모교에 대한 기억의 단상을 떠 올리게 되지만 막연하게 분교의 서정에만 취하기에는 일부분교의 현재는 치열합니다. 다른 기관들과 MOU 협약을 통한 교육활동과 다양한 견학을 시키고 방과 후 수업 등을 활성화 하고 있지요. 분교를 통폐합하려고만 하는 정책에 대해 분교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 작지만 옹골찬 학교입니다. 이 작은 학교는 2013년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펼쳐진 제8회 부산국제어린이영화제에서 동아시아 어린이영화제 특별상을 수상하는 등의 경사를 맞기도 했습니다. 폐교 위기에 놓인 산골 작은 학교가 교사들의 열정적인 지도아래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학생 개개인에 적합한 맞춤형 교육을 실시해 활기를 띄고 있는 것이지요. 경주의 분교중에서 가장 활성화 되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대목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학급 수 감소로 복식학급(둘 이상의 학년이 하나의 학급이나 교사에 의해 운영되는 학급)을 시행하고 있는 학교 10곳 중 의곡초 일부분교도 복식수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가을의 정석’ 같은 날씨가 연일 이어지고 있습니다. 산골학교의 전원 풍경 사이로 풍금소리와 동요를 목청 높여 부르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려올것만 같은 분교장을 찾아 순수했던 옛 추억을 소환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우리들 분교들이 걸어온 역사와 스토리는 변함없이 그대로 일테니까요. 그림=김호연 화백 글=선애경 문화전문기자
경주 동남산 통일전 부근에 풍천임씨의 집성촌이 있고, 서출지로 불리는 연못 가에는 풍류를 즐기든 이요당(二樂堂)이 우뚝하다. 서남산에 살던 화계 류의건(1687~1760)은 서출지의 작은 정자를 찾아 자주 글을 남겼고, 그는 이요당이 있는 누각을 남산 연정(南山 蓮亭)이라 불렀다. 『동경잡기』「승지(勝地)」에 “이요당은 금오산의 동쪽 기슭에 있으며, 고을 사람 임적(任勣,1612~1672)이 지은 객당(客堂)이다. 앞쪽에 연못이 있고, 돌을 쌓아 층계를 만들고 누정(樓亭)을 지었는데, 그 위에 올라가 보면 완연히 물 가운데 서 있는 것 같았다. 못에 가득 연꽃을 심었고 가을이면 무성하게 피며, 온갖 가지의 붉은 꽃들이 마루의 기둥까지 눈부시게 빛난다(二樂堂在金鰲山東麓, 鄕人任勣所構客堂也. 前臨池湖, 築石爲階, 仍構樓亭, 登臨則宛在水中. 種蓮滿湖, 當秋盛開. 萬朶紅萼, 輝映軒楹.)”라며, 연꽃과 붉은 꽃이 가득한 못 앞에 지어진 이요당의 경치를 설명하였다. 쌍봉(雙峯) 정극후(鄭克後,1577~1658)의 사위인 풍천임씨 임적은 1665년에 누정을 짓고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에 자신의 호를 따서 ‘이요당’이라 명명하고, 다음과 같이 기문을 남겼다. -이요당 창건기(二樂堂 創建記) 내가 이곳에 터를 잡은 지가 30년인데, 지난 계묘년(1663) 여름부터 겨울까지 여러 달 비가 내리지 않아, 시내와 못이 말라버렸다. 우물은 조금의 물을 긷기에도 부족하고, 못은 얼마 안 되는 물조차 남은 곳이 없으며, 가정에서는 물동이를 이고 동으로 서로 분주하게 다니는 자들이 얼마인지 모를 정도였다. 나는 이곳에 우물을 뚫어, 다행히 샘을 찾았다. 온 고을의 사람들 모두가 그 혜택을 입었고, 그로 인해 못의 물이 마를까 함께 산의 돌을 옮겨다가 겹쳐 쌓아 축대를 완성하였다. 그 위에다 정사(精舍)를 지어 편하게 쉬는 장소로 삼고자, 갑진년(1664)에 비로소 공사를 시작하였으나, 겨울 혹한의 날씨로 공사가 중단되었고, 다음 해 을사년(1665) 정월 24일에 상량하였다. 이 정자가 지어진 것이 어찌 우연이었겠는가? 훗날 자손들이 도와서 영원히 보존한다면, 이 정자는 오래도록 변치 않을 것이다. 때는 을사년 정월 원우(院宇)는 없고, 강희4년(1665) 주인 임적이 쓰다. 이요당 임적은 전국적으로 가뭄이 심해 우물까지 말라버려 백성들이 어려워할 때 샘을 뚫어 백성을 이롭게 하였고, 또 돌을 쌓아 물을 가두어 못을 만들고 비상용수를 확보하였다. 또 백성의 민심을 얻어 못 주변에 누정을 짓고 편하게 쉬는 장소로 삼고자 건물을 지었으니, 이것이 이요당의 건립배경이 된다. 게다가 고을의 백성들이 서로 도와 공사가 빨리 되었으니, 그의 인품을 짐작할 만하다. 실제 1636년(인조14)부터 1889년(고종26)까지 수표(水標)·기우제(祈雨祭)·기청제(祈晴祭)·기설제(祈雪祭) 등과 관련된 논의와 보고를 담고 있는 6책 분량의 『기우제등록(祈雨祭謄錄)』에 의하면, 1660년(현종1)부터 가뭄이 심하여 1661~1663·1665·1667·1668·1670년·1674년에 모두 31회의 기우제를 지낸 것으로 기록되며, 당시 전국적으로 가뭄이 심했음을 알 수 있다. 앞서 1546년(명종1) 무과에 올라 남포현감(藍浦縣監:충남 보령)을 지낸 임몽서(任夢瑞)의 후손들이 경주에 살면서, 남산동에 풍천임씨 집성촌이 이뤄졌다. 증조부 임균(任匀)-조부 임사유(任四維)-부친 임이현(任以賢) 세대를 거쳐 임적은 금오산의 서출지 부근에 살면서 벼슬을 하지 않고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깊었다. 훗날 아들 오봉(鼇峯) 임인중(任仁重,1645~1721)과 손자 시암(是庵) 임화세(任華世,1675~1731)가 가문의 명성을 드높였다. 동남산에 위치한 이요당은 건립 이후 많은 시인묵객이 다녀갔으며, 지역문사의 교유장소로도 중요한 곳이었다. 특히 석음재(惜陰齋) 고상변(高相變,1680~?)이 「이요당빙허루취음(二樂堂憑虛樓醉吟)」을, 활산 남용만이 「빙허루중수기(憑虛樓重修記)」 등을 지었고, 경주부윤 황경원과 치암 남경희 등도 이요당·빙허루에 관한 시를 다수 남겼다. 1736년 비바람에 훼손되어 무너진 것을, 1781·1995년 거듭 중수하였다. 임적의 아우 임극(任勀,1614~1686) 역시 배반동 능지촌에서 산수당(山水堂)을 경영하였고, 현재는 양피못 둔덕으로 이건하였다.
子曰富與貴是人之所慾也 不以其道 得之不處也 자왈 부여귀는 시인지소욕야나 불이기도로 득지어든 불처야하며 貧與賤 是人之所惡也 不以其道得之不去也 君子去仁 惡乎成名 빈여천은 시인지소오야나 불이기도로 득지라도 불거야라. 군자거인이면 오호성명이리오? 君子 無終食之間違仁 造次必於是 顚沛必於是 군자 무종식지간위인이니 조차 필어시하고 전패필어시니라. <주석> 慾 :喜愛, 기뻐하고 사랑함이다. 不以其道得之不處也 :부당하게 얻었으면 부귀라도 처하지 않음이다. 之는 부귀를 가리킨다. 畢浣이 말하기를 “得之”는 아래로 이어 읽어야 한다고 하였는데 역시 한 학설을 갖추었다. 惡 :싫어함이다. 不以其道得之不去也 : 부당하게 얻었으면 빈천이라도 버리지 않음이다. 之는 빈천을 가리킨다. 대개 군자가 도를 행함에 마땅히 부귀를 얻거나 도리어 빈천을 얻더라도 그것이 그 도로써 얻은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에 마땅히 빈천에 평안하여야 한다. 거슬려 이를 버리고 망령되게 부귀를 구하여서는 안 된다. 惡乎成名 :어찌 능히 군자의 이름을 이루겠느냐? 함이다. 惡는 何, 어찌이다. 終食之間 :밥 한 숟가락 먹는 사이. 아주 짧은 시간을 말한다. 造次 :급하고 구차한 때, 곧 촉박하여 틈이 없다는 뜻이다. 顚沛 :넘어짐이다. 넘어져 어려운 때이다. <번역>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귀, 이것은 사람이 기뻐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땅하게 하지 않고 얻는다면 군자는 그것을 향유하지 않는다. 빈천, 이것은 사람이 싫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땅하게 하지 않고 얻는다면 군자는 이를 포기하지 않는다. 군자가 만약에 仁道를 버린다면 어찌 능히 군자라 칭하겠는가? 군자는 한 숟가락 밥 먹는 동안에도 仁을 떠나지 못하고 촉박하고 급한 때에라도 인과 같이 있어야 한다. 넘어져 곤궁한 때에라도 인과 함께 있어야 한다. <묵상> 여기서 貧與賤 是人之所惡也 不以其道得之 不去也 라는 말의 해석이 좀 복잡하다. 그 앞의 “부귀라 하더라도 그 도로써 얻은 것이 아니라면 처하지 않는다.”는 말은 이해가 쉽다. 결국 부당하게 얻은 부귀라면 이를 거절하겠다는 말이다. 그러나 똑 같이 빈천도 그 도로써 얻지 않는다는 말은 이해가 어렵다. 위의 해석도 궤변같이 들린다. 그럼 무슨 뜻인가? 나는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빈천이 비록 정당하게 돌아온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를 거절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은 부자 집에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가난하게 태어난다. 그 부함이나 가난은 내 탓이 아니다. 그러나 그 영향은 너무나 크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도 이를 수용하라는 말이라 생각된다. 천재지변으로 인한 빈천, 부당한 위정자의 사리사욕에 의한 희생, 이들은 다 내 탓이 아니다. 곧 정당한 방법으로 나에게 돌아온 것이 아니다. 억울하게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이를 벗어나려고 나 역시 부당한 방법으로 대항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수용하며 인을 지키라는 말이다. 이를 벗어나려고 나 역시 인을 버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목적이 비록 선하더라도 그 방법에서도 언제나 인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부당하게 받은 불이익이라도 이를 벗어나려 나 역시 부당한 방법은 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경우 어떠한 목적에서라도 인을 버릴 수 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은 내 존재의 모든 근거가 되는 것이다. 참으로 지당한 말씀이다. 우리는 흔히 목적이 선하면 그 방법에서는 좀 비뚤어져도 용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게 안 된다는 것이다. 목적이야 물론 선해야 하지만 방법 역시 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천왕문을 지나 천상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다. 호법신장인 사천왕이 지키는 문이 천왕문이다. 사천왕은 원래 수미산 중턱에 있는 사천왕천에 있는 천신이었는데, 부처님의 가르침에 감복하여 불법을 지키는 신장이 된 이들이다. 천왕문 안에서 각 신장이 지키는 위치는 사찰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법당 쪽에서 볼 때 왼쪽 안으로부터 시계 방향으로 동방 지국천왕(持國天王), 남방 증장천왕(增長天王), 서방 광목천왕(廣目天王), 북방 다문천왕(多聞天王) 순이다. 그리고 이들은 각각 보검(寶劍), 비파, 용과 여의주, 보탑(寶塔)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지물(持物)이 모두 일정한 것은 아니나 다문천왕이 보탑을 들고 있는 점은 거의 예외가 없다. 사천왕들은 발밑에 무서운 악귀나 마귀를 밟고 있는데, 이를 생령좌 또는 마구니라고 한다. 천왕문은 하늘로 들어가는 문이기에 이 문 밖은 천하(天下)가 되고 문 안쪽으로는 천상(天上)이 되는 것이다. -스님의 사리를 모신 부도전(浮屠殿) 부도전이란 스님의 사리를 봉안한 석조물을 설치해둔 곳이다. 불국사에 부도전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불국사 부도전은 천왕문과 해탈교 사이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불국사는 역사가 오랜 사찰로 부도가 여러 기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현재 부도전에는 옛 부도 6기와 최근에 조성된 3기가 있다. 이 부도전 아래로 불국사 주지를 역임하고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을 지낸 월산 대종사의 웅장한 부도와 탑비가 있다. 비로전 마당에도 1기의 부도[광학부도(光學浮屠)]가 있으며, 사찰 외곽에도 확인되지 않은 부도가 소수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또 하나의 다리인 해탈교(解脫橋)를 건너다. 천왕문을 지나면 자그마한 다리가 있다. 해탈의 경계에 든다는 의미를 가진 해탈교이다. 해탈(解脫)이란 번뇌의 얽매임에서 풀리고 미혹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본디 열반과 같이 불교의 궁극적인 실천 목적이다. 해탈교는 반야교와 달리 수평으로 조성되어 있다. 수미산 정상이 가까워졌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수행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의미에서 편하게 건널 수 있도록 조성했을 것이다. 이 다리 역시 반야교와 마찬가지로 복원공사를 하면서 새로 만든 다리이다. -불이문(不二門)을 통과하여야 불이(不二)의 경지에 도달한다. 불이문은 진리를 상징하는 문으로 해탈을 얻게 된다고 하여 해탈문, 또는 극락문이라고도 한다. 해탈을 하고자 하는 구도자가 천왕문을 지나 수미산에 오르면 제석천왕(帝釋天王)이 다스리는 도리천이 있고 도리천 위에 불이(不二)의 경지를 상징하는 불이문이 있다. 불이란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요, 세속과 부처의 세계, 선악, 유무, 깨끗함과 더러움 등 상대적 개념이 모두 둘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이 불이문을 들어서면 부처님의 나라인 불국정토, 즉 법당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불국사에는 자하문을 지나면 석가여래가 주석하고 있는 대웅전, 안양문을 지나면 아미타여래를 모신 극락전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자하문과 안양문이 불이문에 해당된다. 그런데 불국사에는 서쪽에 있는 후문이 불이문으로 잘못 안내되어 있다. 1960년대 말 경주관광종합계획이 수립되고 1971년부터 대대적으로 불국사 복원공사를 하면서 현 성보박물관 자리에 있던 불국사관광호텔을 철거하고 남쪽으로 사역(寺域)을 넓히면서 일주문과 천왕문을 새로 건립하였다. 이전에는 현 후문 즉 불이문으로 알려진 문이 주 출입구였다. 만약 이곳이 당시의 불이문이라면 더 앞쪽에 천왕문과 일주문이 있었을 것이다.
경주시가 금관총 보존전시공간 건립공사를 위해 사업부지 내 국유지 매입(교환)을 추진한다.경주시가 8일 경주시의회 문화행정위원회 간담회에서 밝힌 2018년도 공유재산 관리계획에 따르면 ‘금관총 보존전시공간 건립공사’를 위해 노서동 104번지 일원의 국유지를 매입하기로 했다. 국유지에는 영구축조물을 축조할 수 ..
경주시가 천북면 물천리 손곡 생활체육공원 인근에 ‘베이스볼파크 3구장 조성’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경주시는 8일 시의회 문화행정위원회 간담회에서 ‘경주 베이스볼파크 3구장 조성’에 따른 부지매입을 위한 2019년 공유재산 관리계획(안)을 공개했다.시에 따르면 베이스볼파크 3구장은 천북면 물천리 일..
경주시가 중앙시장 공영주차장 건립과 외동공설시장 시설 현대화사업을 추진한다. 경주시는 8일 경주시의회 경제도시위원회 간담회에서 2018년도 공유재산 관리계획 제4차 변경(안)과 2019년도 공유재산 관리계획(안) 설명을 통해 이들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경주시에 따르면 중앙시장 공영주차장 건립사업은 중앙시장 ..
시장 상인회 및 주민 300여명을 대상으로 10월 22일 중앙시장 야시장 인근에서 펼쳐진다. 찾아가는 건강 체험 및 홍보관 운영 등 다양한 행사가 준비돼 있다.
경주예술의전당 화랑홀에서 청소년협주곡의 밤 공연이 10월 20일에 펼쳐진다. 총 공연시간은 80분이며 젊은 연주자들의 꿈과 열정을 만나볼 수 있다.
제46회 신라문화제 신라미술대전 전시가 10월 23일 까지 경주예술의전당 알천미술관 갤러리해(4F)에서 전시된다. 미술부문 입상작은 10월 12일까지, 서예·문인화부문 입상작은 10월 16일부터 23일까지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