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는 오늘날 거의 모든 오페라극장에서 볼 수 있는 인기 오페라다. 공연 빈도로는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와 맨 앞자리를 다툰다. 이러니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오페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1853년 베네치아 초연에서 실패했다. 이유가 뭘까? 오페라가 당시 귀족들의 부도덕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그들의 반발을 샀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이유는 따로 있었다. 몸무게가 100㎏은 족히 넘을 것 같은 소프라노가 비올레타 역을 맡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를 그리다가 폐병으로 죽어가는 비련의 여인으로 심히 뚱뚱한 소프라노를 연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라 트라비아타는 이듬해에 시대적 배경을 바꾸고, 비올레타 역을 교체한 후에야 비로소 성공할 수 있었다. 요즘은 굳이 극장에 가지 않아도 오페라를 만날 수 있다. 유명 극장에서 제작된 오페라가 고화질 영상물로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영화관에선 오페라를 상영한지 이미 오래다. 영상물은 TV드라마처럼 성악가의 얼굴을 클로즈업하여 보여주기도 한다. 극장에선 멀어서 안 보이는 것들이 영상물에서는 너무나 잘 보인다는 말이다. 자연스레 오페라 가수에게 가창력 말고도 외모나 연기력을 요구하는 시대가 되었다. 뚱뚱한 비올레타나 못생긴 만토바 백작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발 연기로는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없다. 이제 오페라 가수는 배우 못지않은 팔방미인이 되어야 하나보다. 라 트라비아타는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다. 우리나라 최초의 오페라 공연이 바로 라 트라비아타다. 1948년 1월, 서울 명동의 시공관에서 처음 무대에 올랐는데 1막에 나오는 ‘축제의 노래’는 알프레도와 비올레타의 이중창으로 시작하여 합창으로 연결되는 매우 유명한 아리아다. 당시 비올레타 역을 김자경이 맡았고, 이후 김자경오페라단을 창단하여 눈부신 활약을 했다. 비련의 여인 비올레타는 귀족들을 상대하는 고급 창녀다. 알프레도를 좋아하지만 마음대로 사랑할 수 없다. 신분이 사랑을 가로막는다. 영화 귀여운 여인(원제 Pretty Woman)을 보면, 거리의 여인 비비안(줄리아 로버츠 분)이 에드워드(리차드 기어 분)와 함께 오페라를 감상하는 장면이 나온다. 바로 이 오페라가 라 트라비아타다. 비비안은 오페라에 몰입하면서 눈물을 흘린다. 동병상련이라 했던가. 시대는 다르지만 비올레타에 투영된 가엾은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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