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문화관광공사와 경북도는 25일 베트남 하노이시에 ‘경상북도 관광홍보사무소’를 개소했다. 관광홍보사무소는 베트남 내 경북관광 인지도 제고와 관광객 유치를 위해 현지여행사 및 유관기관과의 협업, 경북 관광 상품 개발 및 현지홍보판촉, 기업 및 일반소비자 대상 관광정보 제공 등 다양한 업무를 현지에서 진..
‘여름 풀(Pool) 축제 - 핫 서머 버블 페스티벌’ ‘여름 풀(Pool) 축제 - 핫 서머 버블 페스티벌’ 일시 : 7월 27일(토) ~ 8월 25일(일) 오전 10시 ~ 오후 11시 장소 :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 천마광장 일대 경주세계문화엑스포가 이색 워터파크로 변신했다. (재)문화엑스포는 27일부터 8월 25까지 ‘여름 풀(Pool) 축제 - 핫 서머 버블 페스티벌’을 개최한다. ‘핫 서머 버블페스티벌’은 엑스포문화센터 앞 천마광장 및 경주타워 앞 신라 왕경숲에 수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실내외 수영장과 무대를 만들어 낮에는 가족과 어린이들을, 밤에는 젊은이들을 위한 축제를 마련한다. 매일 밤 ‘눈 내리는 나이트 버블파티’가 진행되고 주말에는 △K-POP △소울 힙합 △파워락 △힙합 △스페셜듀오 등 5가지 테마공연이 더해진 ‘5WEEK 스페셜 나이트’가 선보인다. 칠석(8/7)엔 ‘버블미팅’, 말복(8/11)엔 ‘치맥파티’ 등 특별 이벤트가 준비된다. 이밖에도 황용사탑·금관 만들기, 신라역사체험 포토존, 엑스포 체험, 숲속 텐트존, 힐링 족욕탕 등 다채로운 역사·문화 학습체험도 즐길 수 있다. 축제는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주말은 오후 11시)까지 운영되며 7월 27일 개장식에는 유명가수 초청공연과 바비큐 파티가 펼쳐진다. 축제기간 중 신경주역에서 경주엑스포까지 정기적으로 셔틀버스도 운행된다. ‘2019경주국제주방 및 식품 박람회’ 일시 : 7월 27일(토), 28일(일) 오전 10시 ~ 오후 6시 장소 : 경주 화백컨벤션 주방가전, 주방가구, 주방시스템, 주방설비, 조리 및 취사기, 전국팔도 우수농특산물 및 생활식품 등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2019경주국제주방 및 식품 박람회’가 경주 회백컨벤션에서 3일간 진행된다. 행사 기간 동안 해외진출을 위한 전략세미나, 수출입유통상담회, 주방디자이너 특별전이 함께 진행되며, 매일 선착순 50명에게 기념품이 증정된다. ‘2019 경상북도 대표 청소년어울림마당 썸머 페스티벌’ 일시 : 7월 27일(토) 오후 4시 장소 : 봉길해수욕장 청소년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해 만들어가는 ‘2019년 경상북도 대표 청소년어울림마당 썸머 페스티벌’이 이번에는 봉길 해수욕장에서 열린다. 청소년어울림마당은 경주시와 지역 청소년 관련 기관, 단체, 전문가 등이 연계·협력해 오는 10월까지 매월 토요일 1~2회 개최되고 있다. 이 행사는 문화예술, 스포츠 등을 소재로 한 공연과 경연, 전시, 놀이체험 등 다양한 문화 활동을 체험해 청소년들이 상호 소통함과 동시에 문화적 감수성 함양 및 역량 개발을 위해 마련됐다. 27일에는 와락썸머 페스티벌, 8월 17일에는 역사해설 경연대회, 9월 21일에는 와! 락! 가을 운동회, 10월 12일에는 진로체험 어울림마당, 10월 26일에는 폐막식과 함께 시상식 등으로 이어진다. 지율공방 전시관 개관 기념 ‘자수토크쇼’ 일시 : 7월 27일(토) 오후 7시 장소 : 지율공방 (건천읍 화천신기길 56-8) 전통 자수의 명인 지율 이순례 선생이 한 땀 한 땀 세월과 함께 놓았던 자수품들이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생활품과 마음을 아름다움으로 바꾸는 바늘의 예술, 지율 이순례 선생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자수토크쇼는 누구나 참여가능하다. 문의 010-5543-0580.
경주 건천지역 석산개발회사의 각종 불법의혹과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지만 감사원의 감사결과는 기대에 못 미쳐 부실감사 논란이 일고 있다. 이 회사에 대해 국회의 감사요구를 받은 감사원은 감사결과 토석채취허가 사후 관리 및 단속업무가 부적정하다고 했으며 상수원보호구역 인근 공장 이전 설립에 대해서는 경주시가 공장설립을 허가한 사실도 없고 이 회사에 철거명령 및 고발조치를 하였기 때문에 경주시의 위법 및 부당행위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지역 시민단체들은 경주시와 업체 간 유착 혐의에 대한 감사원 감사결과에 대해 부실감사라며 반발하며 관련자를 검찰에 고발했다. 문제는 경주시가 이 회사에 대한 최초 토석채취 허가일인 1991년 6월 10일부터 지난 2019년 4월 30까지 28년간 천우개발의 토석채취 허가지에 대한 순찰을 실시하지 않아 불법토석채취를 방치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2017년 3월 이 회사가 토석 81만여㎥를 불법 채취한 사실을 확인하고도 행정조치처분을 하지 않았다. 또 허가구역이 아닌 산지에서도 48만여㎥를 불법 채취했으나 고발 등 사법조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이 회사가 불법행위를 한 것이 분명해 보이며 경주시도 직무유기를 한 것이다. 당초 이 회사에 대해 감사원에 대한 국회요구안은 ‘불법적인 토석채취 등을 실시한 바 있는 ㅇㅇ개발과 경주시의 유착혐의’를 감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감사대상을 ㅇㅇ개발 업무에 대한 사후관리 및 적정성 여부로 축소해 경주시와 업체에 사이의 유착혐의에 대한 국회감사요구를 왜곡했으며 감사대상에서부터 경주시에 대한 면죄부 내지 부실감사의 징후가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감사원 결과를 보면 시민단체가 장기간 불법토석 채취와 산림을 훼손한 이 회사에 대한 수사기관 고발, 토석채취허가 취소, 공무원 직무유기 조사와 징계 등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리고 시민단체들이 문제가 드러났는데도 감사원이 감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당연해 보인다. 이제 이 문제는 수사기관으로 넘어갔다. 해당 기관은 이 사건에 대해 철저한 수사를 통해 의혹을 해소하고 사태를 바로잡길 바란다.
25. 子謂韶 盡美矣 又盡善也 謂武 盡美矣 未盡善也 자위소하시되 진미의오 우진선야로다. 위무하시되 진미의나 미진선야로다. <주석> 韶 :舜 나라 시대의 舞樂. 武 :武王 시대의 舞樂 <번역> 공자께서 순 임금 시대의 소 음악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아름다움을 다하였고 또 선함을 다하였다. 무왕 시대의 무 음악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아름다움은 다하였으나 선함을 다하지는 못하였다” <번역> 앞에서 본 바와 같이 공자는 음악의 대가이시다. 그러므로 그의 평은 아주 정확할 것이다. 또 공자의 평이라 이 자체가 그만 평의 기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말하는 美나 善의 개념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대체적으로 미는 審美的인 측면이요 선은 윤리적인 측면이 아닐까 유추하여 볼 뿐이다. 그런데 이 음악에 대한 평가가 그 나라에 대한 평가와 일치하고 있어 흥미롭다, 즉 순임금의 은나라는 평화로운 나라였으며 무왕에 의해 무력으로 세운 주나라는 살벌한 분위가 있었을 터이니 그 음악도 그리 되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옛날에는 그 곳의 음악을 듣고 그 곳의 정치까지 가늠하였다지 않은가? 그래서 이 음악을 채집하려고 세운 관청이 樂府였다. 그 음악을 듣고 그 정치를 가늠하여 보려는 의도에서였던 것이다. 그만큼 그 음악을 중요시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면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음악만 보아도 그렇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빠르고 좀 광란적인 것이다. 조용한 가운데 우아한 분위기는 없는 것이다. 영혼 밑바닥의 그윽함은 없다. 그저 경쾌하고 즉흥적이고 외향적이다. 이 사회 저변의 분위기를 잘 반영하는 것이다. 26. 子曰 居上不寬 爲禮不敬 臨喪不哀 吾何以觀之哉 자왈 거상불관하며 위례불경하며 임상 불애하면 오하이관지재리오? <주석> 爲禮 :行禮이다. 臨喪 :임하여 타인의 상을 보는 것을 말한다. <변역>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위에 있으면서 도리어 능히 관용하지 못하고 예를 행할 때에 공경하지 못하고 상을 당함에 슬퍼하지 아니하면 내 어떻게 이런 사람들을 보겠는가? <묵상> 어떤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위에 있는 사람이 있고 아래에 있는 사람이 있다. 평등사회라는 개념과는 다른 차원이다. 나이 많은 사람이 있고 나이 적은 사람이 있으며 그 직책상 위에 있는 사람이 있고 아래에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그 위에 있는 사람은 관용해야 한다. 그래야 그 사회가 매끄럽고 부드럽게 돌아간다. 그리고 어떤 의식이든지 행함에는 공경스러움이 우선이다. 공경이 없는 의식은 의례적이요 나아가 허식이다. 또한 상을 당함에 슬픔이 없다면 이는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감정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이 중요한 세 가지 측면을 실행치 못한다면 다른 무엇으로도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당시 거만한 관리들에 대한 경종이지만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이다.
경주시청 홈페이지에서는 우리 시가 가지고 있는 문화재 현황을 잘 알려주고 있다. 국가지정문화재 3949개 가운데 국보 33개 10.5%, 보물 88개 5%, 사적 74개소 15.4%, 국가무형문화재 3개 2.6%, 국가민속문화재 15개 5.6%, 등록문화재 2개 0.4%로 총 220개를 보유하여 5.6%를 차지하고 있다. 경상북도 지정문화재는 유형문화재가 35개 9%, 기념물 17개 11.7%, 무형문화재 4개 12.2%, 민속문화재 4개 1.7%, 문화재자료 45개 8.3%로 105개 보유에 7.8%가 경주 소재이다. 황남대총 북분 금관(국보), 금령총 금관(보물), 경주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국보), 경주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국보), 기마인물형 명기(기마인물상, 국보),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청와대 불상, 보물) 등 경주에서 반출된 문화재까지 더하면 보유비율은 더 높아질 것이다. 그렇기에 경주는 ‘문화재 보고(寶庫), 노천(露天) 박물관, 세계문화유산 도시'같은 여러 가지 수식어로 불려지고 있다. 1000년에 이르는 신라와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 남겨진 문화재가 그만큼 많다는 방증이다. 곧 한국의 역사와 문화재를 이야기할 때 경주를 빼고는 말이 되지 않는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문화재란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이다. 문화재는 크게 문화재보호법 또는 시·도 문화재보호조례에 의해서 보호되는 ‘지정문화재'와 법령에 의하여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문화재 중에서 지속적인 보호와 보존이 필요한 ‘비지정문화재'로 구분된다. 지정문화재는 국가지정문화재, 시·도지정문화재로 구분되며, 비지정문화재는 매장문화재, 일반동산문화재 등 기타 지정되지 않은 문화재(향토 유적·유물)로 구분된다. 국가지정문화재는유형문화재(국보·보물)와 민속문화재(국가민속문화재), 기념물(사적·명승·천연기념물), 무형문화재(국가무형문화재), 등록문화재로 나눈다. 시·도지정문화재는 유형문화재, 민속문화재, 기념물, 무형문화재, 비지정문화재로 구분하여 관리하고 있다. 이러한 문화재는 문화재청의 주관 아래 각 지자체가 관리하고 있지만 문제는 턱없이 부족한 예산편성이다. 2019년도 정부 총예산 496조 5000억 원 중 문화재청 예산이 9000억 원에 그쳐 0.18%에 해당하니 우리가 5000년 역사를 말하고 문화유산을 말할 자격이 있는가? 그러하기에 경주시에서는 매년 문화재 보존·정비 등 관리에 소요되는 많은 비용을 중앙정부에 요청하지만 대폭 삭감된 채 배정되어 기존의 문화재 관리에만 급급한 편이다. 이로 인하여 시 관계자는 매번 문화재 홀대이니 방치니 등 관리 소홀이라는 여론의 몰매를 맞기가 일쑤이다. 항상 우선순위에서 밀린 문화재는 말 그대로 손길 밖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것이다. 기념물중 유적·제사·신앙·정치·국방·산업·교통·토목·교육·사회사업·분묘·비 등으로서 중요한 것인 사적(史蹟)의 예를 들어 보자. 우리나라 사적 제1호는 경주 포석정지이며, 사적 제6호 경주 황룡사지를 비롯하여 경주에는 77개소, 면적 41㎢(약 1238만 평)의 사적이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넓은 면적은 사적 제311호 경주 남산 일원으로 25㎢(약 770만 평)이며, 다음으로는 경주 남산신성(사적 제22호 약7.3㎢, 약 220만 평), 관문성(사적 제48호, 약 1㎢, 30만 평), 경주 낭산 일원(사적 제163호, 약 0.9㎢, 27만 5천 평) 순이다. 사실상 속속들이 살펴보고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물며 예산이 부족하고 전담 인력까지 부족하니 누구를 탓하고 누구를 나무랄 것인가. 경주 남산은 그나마 국립공원관리공단 경주사무소에서 탐방로 등을 유지․관리해 주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허물어진 절터며 훼손된 채 방치된 문화재가 많다. 그 밖의 여러 사적도 우선순위로 예산이 배정되어 손길을 기다리는 곳이 부지기수이다. 최악의 경우는 1996년 경주경마장 건설을 위한 발굴에서 대규모 토기 생산 및 유통 단지로 확인된 사적 제430호 경주 손곡동과 물천리 유적이다. 한국마사회 소유의 0.86㎢(26만 평) 면적에서는 토기가마터, 숯가마터, 공방터, 저장공간, 질 좋은 진흙 등이 확인되어 신라시대 대규모 생산시설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또 이곳에 종사한 장인들이 주거지도 발견되어 요즈음의 공업단지 역할을 했던 곳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금은 어디가 입구인지, 사적안내판 하나 제대로 세워져 있지 않다. 중요 유적이 획인된 발굴지가 어디인지는 전문가도 찾지 못할 만큼 흙이 깎인 곳이 있는가 하면 수목이 우거져 그냥 야산에 불과하다. 말이 사적이지 산으로 되돌아간지 아주 오래 이다. 이렇게 방치할 바에야 사적에서 해제해 주던지 아니면 출토유물 전시관이라도 만들고 주요 유적지에 출토 유구를 보여주는 시설을 만들어 탐방로를 개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문화재청은 관심 없고 경주시는 예산을 지원해 줄 날만을 기다리니 언제쯤 사적으로서의 대우를 받을 수 있을지 까마득하다. 경주를 위한 정치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정치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경주가 고향이라며 우쭐대는 중앙정부 고위직 출향인들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더 이상 경주사람들 입에서 “문화재 때문에 못 살겠다”는 둥 “문화재가 밥 먹여주나”라는 볼멘 목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중앙정부는 경주의 어깨 위에 올려진 문화유산의 멍에를 하루바삐 벗겨 주어야 한다. 통 큰 예산지원을 통해서!
경주부에서 서쪽 물길을 건너면 신라 시조왕 전설의 성모사(聖母祠)와 김유신장군과 보희(寶姬)의 꿈 이야기 그리고 조선에 건립된 서악서원(西岳書院) 등 해동역사의 자취가 깃든 서악동 선도산(仙桃山:僊桃山:仙挑山)이 나타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보면, 신라 때 토함산(吐含山)을 동악·금강산(金剛山)을 북악·선도산을 서악(西岳)·함월산(含月山)을 남악으로 불렀고, 서악은 서형산(西兄山)·선도산·서술산(西述山)·서연산(西鳶山) 등 서쪽의 서(西)와 신선이 된 소아(蘓娥)의 전설에 등장하는 연(鳶:솔개)이 결합해 다양하게 불렸다. 서산류씨 류의택(柳宜澤,1719~?)은 이곳 선도산 기슭에 연곡서당(鳶谷書堂)을 짓고 후학양성에 힘쓴 인물로, 내남면 두릉(杜陵) 화곡의 화계(花溪) 류의건(柳宜健,1687~1760)선생의 동생이다. 화계선생은 광풍정파(光風亭派) 류윤렴(柳允濂)의 현손으로 1687년 오암(鰲菴) 류기서(柳起瑞,1652~1713)의 차자로 태어나 작은아버지 류태서(柳泰瑞,1659~1732)의 양자로 입적되어 가업을 이었고, 1730년 44세에 화계서당을 짓고, 1735년 49세의 늦은 나이에 진사시에 합격해 학행과 효행을 크게 드러냈다. 게다가 내남면 화곡의 아름다운 산수를 벗 삼아 고향에 머물며 유유자적한 처사문인의 길을 간 화계는 중국의 정현(鄭玄,127~200)을 사숙(私淑)하고, 당나라 한유·두보의 학풍과 산수관의 풍류를 계승하였으며, 「괘변의의(卦變疑義)」등 심오한 학문과 저서 『화계집』을 남겼다. 동생 류의택은 자가 윤겸(潤兼)으로, 부친의 나이가 거의 60세에 태어났으며, 문행(文行)이 있었고, 인천채씨 부인을 만나 류하응(柳河應)·류하근(柳河根) 두 아들을 두었다. 선도산 아래에서 강학하였다고 전하지만 정확하게 언제부터 서악을 출입하며 그곳에서 살았는지 자료가 부족해서 알 수는 없지만, 내남 두릉마을의 화곡에서 서악까지의 거리를 생각하면 그리 먼 거리도 아니다. 화계는 서악의 연곡서당에 자주 머물며 「留題鳶谷書堂」·「宿鳶谷書堂 復次軒字韻」·「次鳶谷書堂韻二首」등 다수의 작품을 지었고, 동생을 위해 연곡(鳶谷)이라 재(齋)의 호(號)를 지어 주었다. 또 『화계집』권6,「詩·示宜澤」에서 “나는 화계서사의 주인이 되고, 너는 연곡서당의 스승이 되었구나.(我作花溪書社主 汝爲鳶谷塾堂師)”며 동생을 격려하는 구절을 담았다. 조선 후기에 접어들면서 서당이 보급되며 학문을 통한 배움의 확대가 이뤄지고, 혼란한 정국과 출세의 한계 그리고 가문의 계승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서당은 지역인재 양성과 지역민 교육을 담당하는 중요한 공간으로 인식되어 간다. 서악에 세운 연곡서당은 지역의 인재양성과 예학정신을 계승하는 강학의 장소로 활용되었고, 화계서당과 더불어 경주부 서쪽 가숙(家塾:집안 글방)의 면모를 파악할 수 있는 지역의 소중한 정보를 담는다. 경주의 수많은 조선 선비들이 서당을 열어 학문을 주창하였고, 지금이라도 옛 경주에 설치되었던 서당의 규모와 현황 등이 파악되기를 소망하며, 『화계집』권9에 실린 연곡서당 기문을 소개한다. 연곡서당기(鳶谷書堂記) 집안에 글방의 숭상함이 있었는데, 무릇 세상의 등급이 날로 낮아지면서부터 학교에서 글 외는 소리가 매우 작아졌다. 집안에서 경영하는 글방 역시 끊어져 없어지고 겨우 명맥만 남았는데, 지금 연곡서당(鳶谷書堂)이 그 가운데 하나다. 서당은 선도산 아래에 있고, 선도산은 옛적 서연산(西鳶山)으로 불렸기에 서당 역시 ‘연(鳶)’자를 넣어 이름하였다. 옛날 소아(蘓娥)가 거처를 정한 곳이 이 산으로, 솔개가 나는 것을 보고는 멈춘 곳을 따라 머물렀는데, 이에 득도하여 신선이 되었다. 이는 솔개가 소아를 위해 발몽(發蒙)한 것이고, 소아는 솔개를 표준으로 삼은 것이다. 지금 산 아래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학문에 뜻을 둔 자 가운데 이곳 서당에 귀의하지 않음이 없고, 이곳 서당에서 글을 소리 내어 외우고[강송(講誦)], 예를 갖추어 겸손하게 양보[읍양(揖讓)]하며 다른 서당엔 가지 않았다. 마치 소아가 솔개를 따라 이곳에 거처를 정한 것처럼 이곳 서당 역시 여러 유생들이 솔개[鳶]와 같았다. 훗날 여러 유생들이 이곳 서당을 표준으로 삼아 어린아이를 가르치는 것을 바탕으로 하고, 배우고 익히기를 마치 어린 새가 반복하여 나는 것처럼 한다면 새가 깊은 골짝에서 나와 높은 나무로 옮겨갈 것이다. 다만 짧은 시간이겠지만 세상의 등급이 낮아지고 있으니 만회(挽回)할 만하다. 또 궁구하여 말하자면 그곳에서 배우면 그 기질의 변화됨이 마치 곤(鯤)이 붕(鵬)새로 변하여 회오리바람이 일어나면 9만 리를 날아 남쪽으로 옮겨가는 것과 같으니 어찌 소아가 신선의 도를 얻은 것을 부러워하겠는가? 『시경(詩經)』에 “솔개가 하늘 위를 난다(鳶飛戾天)”라 하였다. 솔개가 하늘을 날 때 땅 가까이에서 날고 또 날아올라 위로 나아가길 그만두지 않는다면 하늘에 이를 수 있게 된다. 초학자 가운데 “아래를 배워 위에 달한다(下學而上達)”는 것 역시 이와 같으니, 만일 스스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메추리가 울타리를 노닐며 땅에서 날개만 푸드덕하는 것과 같을 뿐이니, 솔개가 반드시 비웃을 것이다. 여러 유생들이 어찌 함께 힘쓰지 않겠는가? 서당의 스승된 자 역시 그것을 살펴야 할 것이다. 서당을 짓는데 약간의 사람들이 도왔고, 도문재(都文載)·김창옥(金昌玉)이 주도하였다.
▼포항효자동 유래와 「효자리 학생 전희 비」이야기 강동면에서 「유강터널」을 벗어나면, 바로 포항 효자동에 이른다. 포항 초입 형산강변에 많은 아파트군, 포항공대와 포스코주택단지, 그리고 효자 시장이 주변에 있어, 꽤 붐비는 포항 신흥 도시지역이다. 이곳 효자초등학교 후방 50여미터 지점에 효자 어린이 공원이 있고, 그 안쪽에 「효자리 학생 전희(孝子里 學生 田禧)」라는 긴 비석이 우뚝 서있다. 조선시대 이 마을의 전신인 연일면 임강촌에 「전희」라는 착하고 효성이 지극한 사람이 있었다. 학문이 깊고, 덕행이 뛰어나 일명 효공거사(孝公居士)라고 불렀다고한다. 그가 소년시절에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묘 옆에 움막을 짓고, 3년간이나 영위를 모시고, 조석으로 호곡을 끊이질 않았다. 이 갸륵한 효성에 하늘이 감동하였는지 어느 날부터 호랑이가 밤마다 나타나 여막 앞을 지키며 그의 신변을 지켜주었다. 그리고 모친이 떠난 후에도 시묘3년에 호곡을 이어가니, 역시 범이 이를 지켜주며 소년을 보호했다고 한다. 이 효자의 지극 효성이 세상에 알려지자 경상감사가 효자 상을 내렸으며, 그가 죽은 후에는 조정에서 효자비가 사액되었다고 한다. 비석 높이는 2미터 정도 화강석이며, 효자비각이 있었다고 전하나, 긴 세월 속에 간데없다. 야산 솔밭에 비(碑)만 방치되어 있던 것을 1976년 10월에 효자초등학교로 이전했다가, 효자토지구획사업으로 인해 14년 전 이곳으로 다시 옮겨 세웠다고 적혀있다. 그가 살던 마을은 당초 버들골 또는 유동이라고 했는데, 마을 앞으로 흐르는 형산강 뚝 따라 땅버들이 길게 우거진 멋진 동네로, 효자각을 정려 받은 후에는 효자리(孝子里)로 불렀다고 한다. 이곳은 형산강이 보이는「배산임수(背山臨水)」의 형세로,「전희」선비와 같이 훌륭한 학자와 그 후학들의 학풍이 배어있어 그런지, 연일향교가 자리해 있었고, 현재는 포항공대, 포항제철학교들이 형산강을 바라보고 자리 잡고 있어, 포항의 선진 면학동네로 일컬어지고 있다. ▼포항 칠성천의 효·불효교 이야기 옛날 형산강 지류인 칠성천이 있던 강변 어느 마을에 홀어머니와 한 아들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 어머니는 밤늦게 아들이 잠든 틈을 타서 밤마실을 다니곤 했는데, 그 횟수가 한 달에 한번쯤에서 나중에는 거의 매일 밤으로 잦아졌다. 건너 마을 남자를 만나러 다닌 것이다. 어느 동짓달 날 아들은 밤이 이슥해지자, 몰래 집을 빠져 나가는 어머니에 대한 궁금증을 참지 못해 그녀 뒤를 미행 하였다, 그녀는 치마를 걷어 올리고 개울물을 건너 어느 홀 애비 집으로 들어갔다. 어머니의 그릇된 행동을 목격한 아들은 처음에는 충격을 받았으나 아버지 돌아가시고 외롭게 살아가는 어머니를 이해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리고 추운 겨울 어두운 밤에 강을 건너는 어머니를 위해 징검다리를 놓아드리기로 결심했다. 그녀가 밤에 집에 돌아오기 전까지 남몰래 일곱 개의 크고 넓적한 바위로 열심히 다리를 놓았다. 그 후 사람들이 이를 알게 되어, 연일 현감에게 고하여 아들의 행위가 효(孝)냐?, 불효(不孝)냐?, 어느 쪽에 해당하는 가를 가려주도록 청했다. 현감은 고심 끝에 ‘동온하정(冬溫夏凊)-겨울은 따뜻하게, 여름은 시원하게 해드리는 것이 부모에 대한 도리-이라, 죽은 아비는 죽은 대로, 산 어미는 산자의 소망대로 해주는 것이 진정한 효도’라는 명(名) 판결을 내려 아들에게 효자상을 주었다고 한다. 그 후 다리는 일곱 개의 돌로 만든 다리인 ‘칠성교’라고 불렀으나, 어미 편에 선 사람들은 ‘효자교’로, 아비 편에 선 사람들은 ‘불효교’로 마을사람들끼리 암암리에 호칭을 달리하곤 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이심전심, 자연적으로 통합되어 효·불효교(孝不孝橋)로 불러졌다고 한다. 칠성천은 시내를 돌아 죽도시장과 동빈 내항 쪽으로 흘러내렸고, 칠성교 자리는 남빈동 사거리 어느 근방이었다고 전하나, 지금은 모두 도시 개발 및 죽도시장현대화로 복개되어 지하로 숨었고, 많은 차량과 사람들만 붐비고 있다. 이종기 문화유산해설가·시민전문기자 leejongi2@hanmail.net
동양에서는 ‘9’를 아홉수라 하여 불길하다고 여기지만, 서양에서는 대체로 성(聖)스러운 숫자로 생각한다. 하지만 서양 교향곡에 있어서 9번은 늘 저주의 숫자였다. 9번 교향곡을 작곡하면 누구든 죽음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베토벤, 슈베르트, 브루크너, 드보르자크, 말러가 바로 9번의 희생양들이다. 9번의 저주는 베토벤에서 유래한다. 그는 9번 ‘합창’을 작곡·초연(1824년)한지 3년 만에 영면(1827년)한다. 이어서 슈베르트는 베토벤이 죽은 다음 해에 9번 ‘그레이트’를 작곡하고, 31세라는 꽃 같은 나이에 요절(1828년)한다. 그의 9번은 11년이 지나서야 멘델스존에 의해 초연(1839년)된다. 사람들은 이때까지만 해도 9번이 죽음을 부르는 숫자라고 생각하진 않았을 것이다. 9번을 작곡하고 죽은 사람은 아직 두 사람에 불과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저주는 계속된다. 브루크너는 1896년에 9번 교향곡 4악장을 쓰다가 갑작스레 사망한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3악장으로 연주되는 경우가 많다. 드보르자크의 9번 ‘신세계로부터’는 또 어떤가? 1893년 미국 뉴욕에서 작곡·초연된 이 작품 역시 그의 마지막 교향곡이다. 이 정도면 9번이 불길한 숫자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쯤 되니 말러가 얼마나 불안했을까? 평생을 죽음에 대한 불안 속에 살았던 그에게 9는 끔찍한 숫자였을 것이다. 오죽하면 8번 천인교향곡의 후속 작품을 9번으로 명명하지 않고, ‘대지의 노래’라 했을까 싶다. 그러나 말러 역시 9번의 저주를 피해갈 순 없었다. 9번을 작곡(1910년)한 후 10번 교향곡을 쓰다 죽고 만다(1911년). 베토벤 사후 백년을 이어온 9번 교향곡의 저주는 쇼스타코비치가 마침내 깨버린다. 그런데 이 과정도 드라마틱하다. 쇼스타코비치의 9번(1945년)은 악명 높은 즈다노프(Zhdanov) 비판을 받았기에 당시 그의 생사는 불투명했었다. 그러나 1953년 스탈린이 죽자 쇼스타코비치는 구사일생한다. 그해에 바로 10번 교향곡을 작곡하여 백년 묵은 9번의 저주를 풀고, 이어 5편의 교향곡을 더 작곡한 후 1975년에 눈을 감았다. 교향곡 9번의 저주가 정말 있기는 한 걸까? 평생 동안 브람스가 4편, 시벨리우스가 7편, 닐센과 차이콥스키가 6편의 교향곡을 쓴 것을 보면, 9편을 작곡하는 것은 지난한 일임에 분명하다. 게다가 저주에 무릎을 꿇은 다섯 명의 작곡가들이 만든 9번을 보면 예외 없이 원숙한 걸작들이었다. 어쩌면 남들보다 시간과 정력을 훨씬 많이 소비했기에 수명이 단축되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앞으로는 9번의 저주를 다시 목격하긴 힘들 것 같다. 쇼스타코비치가 9번의 저주를 깼기 때문이 아니라 교향곡을 평생 9편이나 작곡할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그너의 말마따나 이제 교향곡의 시대는 진짜 지나가 버린 것이다.
한국명강사명강의연합회 경주시지부(지부장 박순화)는 지난 11일~21일까지 나눔교육협동조합(경주시 원화로 320)에서 ‘웃음코칭지도사 자격증’ 취득 과정을 실시했다. 이번 자격취득과정 첫날은 이미정(한국명강의명강사연합회/미래창조인재교육원 대표)의 오프닝과 웃음에 대한 이론 강의를 시작으로 박순화 지부장을 비롯해 손문희, 서정주, 김옥순, 정연기 등 1일 3시간씩 10여명의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진행했다. 특히 웃음의 이론과 효과에 대한 강의, 레크리에이션, 실버건강 운동법, 체조를 겸한 라인댄스, 치매예방 등 백세시대를 맞아 어르신을 대상으로 하는 자격증 과정을 열었다. 이미정 대표는 “크고 길게 온 몸으로 웃으면 만병을 고칠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떤 역경도 이겨낼 수 있다”며 “열심히 학습하고 실천하면 모든 분들이 명강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수강생들은 “뇌를 발달시키기 위해 익숙한데서 멀어져 끊임없이 노력하고 웃음도 대화도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새롭게 깨달았다”며 “바쁜 시간을 보내며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사람이 또 배우고 더 나누려고 배우는 것 같다”고 서로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박순화 지부장은 “경주시민들은 물론 모든 국민들이 웃음을 통해 건강하고 행복한 인생을 위해 스스로 웃을 일을 만들고 주변이 웃을 수 있도록 행복에너지 듬뿍 전하는 꼭 필요한 웃음지도사가 되자”고 강조했다. 나눔교육협동조합은 2014년 동아리에서 시작돼 2016년 5월 박순화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2017년 11월 법인으로 설립됐다. 현재 강사역량강화를 위한 월요데이를 운영하는데 지난 22일 158마당을 진행했으며 매주 강사들이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강사들은 학교, 평생교육원, 자원봉사센터, 지역아동센터, 주부대학, 자치센터, 노인대학, 요양원 등에서 전래놀이, 댄스, 노래교실 등으로 다양한 강사활동을 한다. 또한 매주 금요일 7시 시민들의 건강을 위해 조합 내 댄스강사들이 화합해 강변라인댄스도 운영하고 있다. 조합은 자주적·자립적·자치적인 조합 활동을 통하여 구성원들이 모여 지역사회 경력단절여성들의 사회적 참여 기회를 늘리고 연령별, 직종별 맞춤교육 및 다양한 교육 사업 및 활동을 진행하여 지역의 경력 단절 여성과 취약 계층을 위한 일자리 창출과 사회공헌사업을 목적으로 한다.
(사)가경사회서비스지원센터(이하 가경지원센터)가 지난 3월부터 실시하고 있는 사회공헌활동지원사업(문화예술)이 사업참여자와 프로그램대상자들로부터 호평이다. 가경지원센터는 사회공헌활동지원사업을 통해 경북 내 신중년 퇴직인력 584명에 대해 사회서비스(사회서비스, 문화예술, 교육연구, 상담 멘토링)를 제공하고 있다. 신중년이란 은퇴 이후에도 소비생활과 여가생활을 즐기며 사회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50~60대를 지칭하는 말이다. 가경지원센터 문화예술 사회공헌활동지원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사회적기업 두꺼비학교협동조합은 지역 내 50세 이상 신중년을 대상으로 전문 교육프로그램을 진행, 수료한 인력을 사회공헌활동지원사업과 연계해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문화 예술 공연과 치매예방활동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김은영 두꺼비학교협동조합대표는 “사회공헌활동지원사업을 통해 지역 내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한 문화복지서비스를 확대 실시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며 “특히, 지역 내 많은 신중년 전문인력들이 사회공헌활동지원사업에 참여하고 싶어하는 등 관심과 만족도가 매우 높은 사업이다”고 전했다. 한편 (사)가경사회서비스지원센터는 2016년부터 고용노동부와 함께 사회공헌활동지원사업 진행을 통해 베이비부머세대 퇴직 전문인력들의 경제활동 기회의 장을 마련하고, 이를 바탕으로 운영기반이 열악한 지역 기업과 비영리단체에 전문인력을 지원함으로써 지역 내 사회서비스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지난 7월 20일 김경숙 님이 동아시아 고대학회에서 중국 양주시를 답사한 포스팅을 올렸다. 양주는 신라의 대학자 최치원 선생이 당나라에 머물 때 입신하던 곳이다. 답사는 자연스럽게 최치원 선생의 유적을 중심으로 진행돼 대규모 최치원 선생 기념관과 한중우호관, 한중 연구센터 등을 먼저 답사하고 기타 중국 문화와 역사지역을 답사하는 것으로 소개됐다. 양주가 이처럼 최치원 선생을 기리는 것은 선생의 학문적 성취를 존중해서이기도 하지만 선생이 한중양국의 우호에 미치는 영향을 중요하게 여겨서이다. 한 예로 지난 박근혜 정부 당시인 2016년 9월 한중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이 최치원 선생의 시 범해(泛海)를 읊어 화제가 됐다. 이 정도로 중국이 최치원 선생에게 부여하는 한중교류의 의미가 큰 것이다. 경주 역시 최치원 선생과 관련된 유적이 적지 않다. 상서장, 서악서원, 독서당이 대표적이고 최치원 선생이 읊어서 잎이 누렇게 변했다는 계림도 있다. 선생의 발길이 닿은 유적들이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다. 부산 해운대를 비롯 지리산, 합천, 마산, 군산, 문경, 포천, 하남, 함양, 남양주 등 여러 곳이다. 이들 지역에는 최치원 선생의 발자취와 기념관 혹은 사당이 있고 하남시에는 경주최씨 종친들이 선생을 기려 호와 이름을 딴 도서관이 세워져 있다. 그러나 이런 선생의 기념관 전부를 모아도 중국 양주시에서 선생을 기리는 것에는 미치지 못해 보인다. 이렇게 선생이 중국에서보다 소홀하게 여겨지는 것은 선생을 정통 유학자로 보지 않은 퇴계 이황 등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의 영향도 크다. 그로 인해 문묘에서 배제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최치원 선생이 고대 한중문화교류의 대표자일 만큼 국제적 명성을 얻었고 유불선을 망라한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출중한 학자 중 한 명이란 사실이다. 더구나 최근 들어 한일관계가 미묘해지면서 상대적으로 중국과의 관계에 더 많은 비중이 실리고 있다. 이런 때 경주를 중심으로 최치원 선생을 바로 알기 위한 보다 다양한 학술활동과 선생을 테마로 한 중국과의 교류가 추진되는 것은 어떨까? 김경숙님의 포스팅에 유난히 눈길이 가는 이유는 바로 이런 저간의 국제적 기류 때문이기도 하다.
경주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숲으로 이루어진 황성공원은 지금 보랏빛 맥문동이 활짝 피기 시작해 소나무 아래를 보랏빛 수 놓은 맥문동을 만나 볼 수 있다. 특히 맥문동 재배 면적을 확대해 오세재 문학비, 이경록 사랑가 시비 주변 산책로에도 심어져 산책 나온 시민들과 황성공원을 찾아오는 방문객들에게 인기를 모을 것으로 기대된다. 8월 초가 되면 전국 사진작가들이 찾는 황성공원 맥문동 군락은 이제 경주의 또 다른 명소가 되고 있다.
경주 화랑의 언덕이 방송 프로그램을 타고 연일 인터넷 검색의 순위에 오르고 있다. 화랑의 언덕이 위치한 산은 경주 산내면의 단석산(斷石山)으로 경주에서 가장 높은산이지만 초보자도 오를 수 있는 등산코스가 있어 사계절 수많은 등산객이 즐겨찾는 산이다. 경주 화랑의 언덕은 과거 OK그린 캠핑장으로 운영된 곳으로 캠핑매니아들 사이에서 사랑을 받고 있던 장소였다. 방송에 소개된 장소를 찾아가려면 ‘화랑의 언덕’이 아닌 ‘OK그린 캠핑장’, ‘OK그린 청소년 수련원’등으로 검색해서 찾아갈 수 있지만 현재는 이 캠핑장은 운영이 정지된 상태이다. 수련원 관계자는 “방송이 나가고 문의전화가 늘어났다. 방송에서 소개된 위치는 현재 차량진입을 제한해 놓은 곳이며, 방송을 위해 특별히 촬영을 허가했다”며 “화랑의 언덕은 주변 자연환경이 멋져 평소에도 사진을 찍으러 사진작가들이 많이 찾던 곳이었다. 현재 캠핑장은 잠정적으로 운영을 중지한 상태이다. 방송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지만 운영이 중지된 상태라 화장실 등의 시설이 이용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화랑의 언덕 근처에는 300대 가량의 오토캠핑차량이 이용 가능한 45만평부지의 캠핑장이 있었지만 현재는 운영하지 않고 청소년 수련원만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련원 관계자는 “방송도 나가고, 과거 캠핑장을 이용했던 사람들이 개인 블로그나 SNS를 통해 화랑의 언덕을 소개하는 글들을 보고 캠핑장 이용이 가능한지 알고 문의를 많이 한다. 죄송하게도 캠핑장이 다시 운영될지에 대해서는 확답을 드릴 수 없다”며 “캠핑장이용은 불가능 하지만 화랑의 언덕, 명상바위 등 명소는 관람이 가능하다. 방문 전에 문의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곳은 지난 2015년 강화도에 있었던 글램핑장 화재사고 이후 법이 바뀌면서 캠핑장 운영을 정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주중46회, 경주고37회 동기회(회장 안치수)는 오는 10월 13일 개최될 제32회 경주중고 전국동문가족등반대회를 앞두고 지난 21일 포항시 송라면 내연산 군립공원 일원서 사전행사로 주관기수(고46·중37회)와 함께 하는 산행을 개최했다. 산행은 보경사 입구를 거쳐 연산12폭포 중 상생~보현~삼보~잠룡~무풍~관음~연산폭포, 그리고 선일대까지 이어지는 코스로 진행됐으며 2부 행사는 문수봉가든에서 화합의 자리가 마련됐다. 행사 전날과 당일 오전까지 태풍 다나스의 영향으로 많은 비가 내린 가운데 산행하는 내내 내연산계곡에 엄청난 양의 물이 흘러 내려 운치를 더했다. 계곡마다 이어지는 폭포수에 절로 감탄사와 탄성이 터져 나왔으며 관음폭포와 연산폭포에 이르러서는 절정에 달했다. 이날 행사에는 이상윤 총동창회장을 비롯해 백상길 경주고 교장, 임일중 동문산악회장, 역대 동문산악회장 등 약 130여명의 동문들이 우중에도 불구하고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안치수 주관기수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행사에 참석해 주신 동문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면서 “행사를 석달여 앞두고 열린 이번 산행을 계기로 올 가을에 열릴 등반대회에도 더욱 많은 동문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도록 성심껏 준비 하겠다. 많은 격려와 성원을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오후 6시 경 일단의 어린이들이 악기를 들고 강남 세브란스 병원 1층 원무과 라운지 앞으로 모여든다. 바로 직전까지 안내 데스크 뒤 벽쪽에서 악기 조율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바로 이들이 내는 소리였던 것이다. 25명 남짓, 열을 맞추어 선 어린이들이 지휘자의 리드에 맞추어 바이올린을 켜고 플루트를 분다. 어린이들 뒤쪽으로는 ‘환우 및 보호자를 위한 작은 음악회’라는 작은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날 공연은 강남구에 자리 잡은 한 음악학원이 만든 어린이 챔버 오케스트라의 연주였다. 관계자는 학원생들에게 실전을 겸한 공연무대를 경험하게 해주고 환자들에게는 연주를 통해 위안과 기쁨을 준다는 취지에서 정기적으로 이 공연을 해온다고 설명한다. 벌써 20년째 이 공연을 이어오고 있다는 관계자는 흐뭇한 눈길로 공연단을 바라본다. 강남 세브란스뿐만 아니라 서울의 대학병원 라운지에는 매주 이런 작은 공연들이 정기적으로 일어난다. 공연 참가자들은 이날처럼 어린이 챔버 오케스트라이기도 하고 아마추어 남성합창단이 되기도 하고 간단한 마술공연이 되기도 한다. 프로처럼 완숙하지 않아도 몸과 마음이 지친 환자와 환자 가족들에게 잠시나마 안식의 시간을 준다는 것으로 공연단은 큰 만족감을 얻는다. 환자들 역시 다소 어눌해 보이는 공연이라도 이 시간을 통해 잠시나마 고통과 괴로움을 잊을 수 있다며 반긴다. 마침 경주 동국대 병원 조희군 원무팀장과 통화하면서 경주 동국대 병원에서도 이런 행사가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조팀장은 동국대학교에도 정기적이지는 않지만 작년까지 몇 차례 이런 공연을 했고 시인인 자신이 주도되어 시낭송회도 했다고 알려주었다. 나아가 이런 공연들은 공연 당사자나 환자, 보호자들 모두에게 활력을 주는 것은 물론 병원을 밝고 편안하게 해준다며 앞으로 동국대 병원에서도 최대한 시도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동국대 병원에서 공연해줄 마음 따듯한 연주자나 예능 방면에 소질이 있고 함께 나눌 마음이 있는 사람들은 동국대 원무과와 협의하면 뜻밖의 놀라운 하모니가 만들어질 지도 모른다.
“공연 사진은 본인이 공연에 직접 빠져들어야만 그 공연 사진을 생동감 넘치게, 가장 효과적으로 찍을 수 있습니다” 어느 사진가의 열정과 철학으로 공연 현장의 뜨거웠던 순간이 한 장의 사진 속에 녹아든다. 찰나의 감동을 붙잡는 이, 바로 공연사진전문가 김지용(46) 씨다. 영덕에서 태어난 그가 사진에 매력을 느끼게 된 것은 아마도 어린 시절 필름 현상소를 운영했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필름 현상소는 저에게 놀이터와 같은 곳이었어요. 필름 현상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늘 곁에서 함께하며 조금씩 사진의 재미를 알게 됐죠” 그는 그 시절 아버지께서 직접 현상한 사진 속 멋진 풍경이며 행복하게 웃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늘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내며 아버지와의 추억을 쌓아갔었다. “당시 아버지께서는 어린 저에게 쓰시던 자동카메라를 선뜻 내어주셨어요. 막상 필름을 현상했을 때 건질만한 사진들은 별로 없었지만 사진에 대한 열정만큼은 프로사진작가 못지않았죠” 김지용 씨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해 가족들은 경주로 이사를 왔고 아버지의 현상소 역시 문을 닫게 됐다. “체격조건이 좋았던지라 초등학교 3학년부터 야구부 활동을 하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그때부터 자연스레 공부를 멀리하게 됐죠(웃음). 대학 진학을 앞두고 진로를 선택해야 할 시점이었어요. 공부에 대한 흥미가 없었기에 제가 제일 잘 할 수 있고 좋아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봤어요” 당시 사진작가가 신랑감 선호도 1위였던 90년대 초반, 어린 시절부터 사진과 영상 쪽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사진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사진영상학과에 진학하게 됐다. 그는 대학 졸업 후 부푼 꿈을 안고 지인과 울산에서 스튜디오를 오픈했다. 사회초년생이었던 그에게 첫 사업은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여러 가지 문제로 다시 경주로 돌아왔고, 광고사진 촬영 전문 스튜디오를 재오픈해 사진 활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번엔 IMF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이후 전공과 무관한 업종에서 전전긍긍 일해 왔지만, 지용 씨의 마음 한쪽 어딘가에는 사진에 대한 미련이 늘 함께했다. 그러던 어느 날, 경주문화재단이 생기면서 우연히 그에게 사진 찍을 기회가 생겼고, 그는 오랫동안 바라던 일이었기에 행사, 공연 현장을 누구보다 부지런히 렌즈에 담았다. 그가 공연사진가로 나선 것은 지난 2011년, 처음 개막한 ‘봉황대 뮤직스퀘어’에 참여하면서부터다. 하지만 의욕으로 찍었던 그의 첫 공연 사진은 비참했다. 어두운 조명과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인해 그날 제대로 찍힌 사진은 별로 없었다고. 공연 스태프들과 부딪히기도, 깨지기도 하며 그는 자신만의 데이터값을 만들어갔고, 해를 거듭하며 김지용만의 공연 사진을 구축해갔다. “공연 사진은 언론 보도, 인쇄물, 광고 등 공연 홍보와 기록으로 대부분 쓰이기 때문에 다양한 시점, 입체적 구도, 깨끗한 고퀄리티가 확보돼야 합니다. 그래서 공연이 끝날 때까지 집중이 요구되는 예민한 작업이기도 하죠. 저의 실수로 많은 사람의 노고가 한순간 물거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죠” 올해로 9년째 공연을 기록하고 있는 그는 봉황대 뮤직스퀘어와 함께 공연사진가의 인생이 시작됐다고 말한다. 천혜의 자연경관과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경주는 곳곳이 사진 명소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사진 촬영하기에 좋은 곳이라는 김지용 씨. 그는 경주를 배경으로 사진 작업을 해오면서 현장을 담아내고, 또 그것이 하나의 자료가 되고 역사가 된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봉황대뮤직스퀘어의 생생한 공연을 담은 사진전을 열고 싶다는 그는 공연 현장의 뜨거운 감동을 그대로 전하기 위해 오늘도 부지런히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경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센터장 조병기)는 지난 11일 2019 밝은빛누리 장애인대학 여름 견학을 실시했다. <사진> 이번 여름견학은 울산 현대자동차 견학을 시작으로, 옹기박물관, 대왕암 공원, 양남주상절리로 순회하며 진행됐다. 한국자동차산업의 발전의 산실인 울산 현대자동차 역사에 관해 영상관람 후 울산공장의 설명을 들으며 공장 내부를 견학했다. 울산 외고산 옹기마을 내 옹기박물관은 약 300여점의 다양한 옹기를 만날 수 있었다. 특히 기네스에 등재된 세계최대 옹기는 웅산옹기박물관의 상징이며 위상을 높이는 동시에 옹기마을 만의 특화된 옹기 만들기 체험을 진행했다. 이후 우리나라에서 울주군 간절곶과 함께 해가 가장 빨리 뜬다는 장소인 대왕암공원 둘레길을 거닐고 양남주상절리 견학을 끝으로 마무리 했다. 일행은 교육장이라는 한정된 장소에서 벗어나 자연과 함께 해설가의 설명을 듣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느끼며 힐링하는 시간을 가졌다. 2011년 3월 개강해 올해로 9년째 진행 중인 밝은빛누리 장애인대학은 장애인 복지 및 자립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분야의 주제로 강의를 계획해 장애인들이 삶의 활력을 찾고 자신의 역량을 강화할 기회를 가지며 사회참여를 통한 지역사회 내에서 의무와 역할을 가지고 통합사회를 구현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밝은빛누리 장애인대학은 앞으로도 다양한 주제의 강의 및 10월 경북산림환경연구원의 삼림욕 체험 등이 예정돼 있으며 11월 졸업여행과 수료식을 끝으로 올해의 일정을 마무리 할 예정이다.
내셔널리그 3위 경주한수원이 4위 천안시청을 홈으로 불러 혈전을 벌였지만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지난 20일 경주시민운동장에서 열린 내셔널리그 14라운드 경기에서 경주한수원은 천안시청과의 우천 경기에서 2위로 도약하기 위해 힘을 다했지만 아쉽게 무승부로 끝났다. 경주한수원은 정규진(GK), 박찬용-장지성-김동권(이상 DF), 김창대-윤태수-김민호-박종진(이상 MF), 김민규-김민준-김운(이상 FW) 선수가 선발 출전했다. 전반 초반 김창대 선수의 페널티 아크 왼쪽에서의 중거리 슛으로 포문을 연 경주한수원은 이어진 코너킥에서 김운의 헤더가 골 포스트를 살짝 비껴 가는 등 천안시청의 골문을 계속 두들겼다. 이후 전반 39분 좌측 코너 부근에서 프리킥 기회를 얻은 경주한수원은 김동규 선수가 헤더로 천안시청의 골망을 흔들었지만 오프사이드 판정으로 무효가 됐다. 후반에는 양 팀은 공방을 주고받는 가운데 후반 68분 창원시청의 결정적인 찬스를 정규진 골키퍼가 선방해 실점 위기에서 팀을 구해내며 무승부로 경기를 마쳤다. 한편, 경주한수원은 26일(금) 저녁 7시 승점 1점 차인 부산교통공사와 부산구덕운동장에서 2위 자리를 두고 대결을 펼친다.
경북남부보훈지청(지청장 김유문)이 지역 업체와 함께 독립운동가 알리기에 나섰다. 보훈지청은 지난 12일 경주 The-K호텔과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상호교류와 협력을 통한 보훈문화 확산 및 지역공동체 발전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을 통해 The-K호텔은 이달의 독립운동가 배너를 내부에 설치했고 호텔을 찾는 고객들이 인증샷을 찍으면 매달 20명씩 추첨을 통해 온천 사우나 티켓을 제공한다. 특히 경주 The-K호텔은 매년 호국보훈의 달 기간에 국가보훈대상자에게 할인 혜택을 제공해오고 있으며 이번 이벤트를 위해 티켓 100매를 기증했다. 김유문 지청장은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많은 분들의 희생과 아픔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이번 이벤트를 마련하게 됐다”면서 “평화와 번영으로 그들의 희생에 보답하는 것이 후손인 우리의 사명”이라고 밝혔다. 또 “우리나라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고, 독재와 불의에 맞선 유공자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생활 속에 자리 잡을 수 있게 협약에 흔쾌히 응해준 The-K호텔에 감사드린다”면서 “이번 기념 이벤트에 많은 시민, 학생들의 관심과 참여를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달의 독립운동가 알리기 캠페인은 올해 12월 31일까지 펼쳐지며 대중이 많이 찾는 숙박업소·식당·커피숍 등에서 실시되고, 각 장소에 설치된 배너를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고 SNS에 해시태그(#)를 달아 게시하면 매월 20명을 추첨해 경품을 증정하게 된다.
(사)한국스포츠인재육성협회(이사장 최익성, 이하 스포츠인재육성협회)는 지난 19일 경주지부 개소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한국스포츠인재육성협회 산하 전국 최초로 설립된 경주지부 개소식에는 이상윤 경주중고총동창회장, 이동은 경주시야구소프트볼협회장, 최익성 이사장 및 협회 이사 등이 참석해 축하와 격려를 전했다. 한국스포츠인재육성협회는 ‘스포츠 활동을 통한 사회공헌’이라는 가치 아래 청소년 및 다양한 계층의 스포츠 문화 활동 지원으로 인재 발굴·양성하고 있다. 이 협회는 경주출신으로 13년간 프로 야구선수를 지낸 최익성 씨가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마라톤의 이봉주, 펜싱의 김영호, 사격의 진종오 등 각 스포츠 분야에서 최고의 선수 출신들이 이사를 맡고 있다. 특히 협회는 올 6월 기획재정부로부터 지정기부금단체로 선정돼 활동영역이 넓어졌다. 한편 한국스포츠인재육성협회 경주지부는 앞으로 야구를 비롯한 다양한 스포츠의 컨설팅, 상담 등을 진행해 지역 스포츠 꿈나무 육성을 최우선 목표로 활동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