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0일 김경숙 님이 동아시아 고대학회에서 중국 양주시를 답사한 포스팅을 올렸다. 양주는 신라의 대학자 최치원 선생이 당나라에 머물 때 입신하던 곳이다. 답사는 자연스럽게 최치원 선생의 유적을 중심으로 진행돼 대규모 최치원 선생 기념관과 한중우호관, 한중 연구센터 등을 먼저 답사하고 기타 중국 문화와 역사지역을 답사하는 것으로 소개됐다. 양주가 이처럼 최치원 선생을 기리는 것은 선생의 학문적 성취를 존중해서이기도 하지만 선생이 한중양국의 우호에 미치는 영향을 중요하게 여겨서이다. 한 예로 지난 박근혜 정부 당시인 2016년 9월 한중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이 최치원 선생의 시 범해(泛海)를 읊어 화제가 됐다. 이 정도로 중국이 최치원 선생에게 부여하는 한중교류의 의미가 큰 것이다. 경주 역시 최치원 선생과 관련된 유적이 적지 않다. 상서장, 서악서원, 독서당이 대표적이고 최치원 선생이 읊어서 잎이 누렇게 변했다는 계림도 있다. 선생의 발길이 닿은 유적들이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다. 부산 해운대를 비롯 지리산, 합천, 마산, 군산, 문경, 포천, 하남, 함양, 남양주 등 여러 곳이다. 이들 지역에는 최치원 선생의 발자취와 기념관 혹은 사당이 있고 하남시에는 경주최씨 종친들이 선생을 기려 호와 이름을 딴 도서관이 세워져 있다. 그러나 이런 선생의 기념관 전부를 모아도 중국 양주시에서 선생을 기리는 것에는 미치지 못해 보인다. 이렇게 선생이 중국에서보다 소홀하게 여겨지는 것은 선생을 정통 유학자로 보지 않은 퇴계 이황 등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의 영향도 크다. 그로 인해 문묘에서 배제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최치원 선생이 고대 한중문화교류의 대표자일 만큼 국제적 명성을 얻었고 유불선을 망라한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출중한 학자 중 한 명이란 사실이다. 더구나 최근 들어 한일관계가 미묘해지면서 상대적으로 중국과의 관계에 더 많은 비중이 실리고 있다. 이런 때 경주를 중심으로 최치원 선생을 바로 알기 위한 보다 다양한 학술활동과 선생을 테마로 한 중국과의 교류가 추진되는 것은 어떨까? 김경숙님의 포스팅에 유난히 눈길이 가는 이유는 바로 이런 저간의 국제적 기류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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