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에서는 ‘9’를 아홉수라 하여 불길하다고 여기지만, 서양에서는 대체로 성(聖)스러운 숫자로 생각한다. 하지만 서양 교향곡에 있어서 9번은 늘 저주의 숫자였다. 9번 교향곡을 작곡하면 누구든 죽음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베토벤, 슈베르트, 브루크너, 드보르자크, 말러가 바로 9번의 희생양들이다. 9번의 저주는 베토벤에서 유래한다. 그는 9번 ‘합창’을 작곡·초연(1824년)한지 3년 만에 영면(1827년)한다. 이어서 슈베르트는 베토벤이 죽은 다음 해에 9번 ‘그레이트’를 작곡하고, 31세라는 꽃 같은 나이에 요절(1828년)한다. 그의 9번은 11년이 지나서야 멘델스존에 의해 초연(1839년)된다. 사람들은 이때까지만 해도 9번이 죽음을 부르는 숫자라고 생각하진 않았을 것이다. 9번을 작곡하고 죽은 사람은 아직 두 사람에 불과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저주는 계속된다. 브루크너는 1896년에 9번 교향곡 4악장을 쓰다가 갑작스레 사망한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3악장으로 연주되는 경우가 많다. 드보르자크의 9번 ‘신세계로부터’는 또 어떤가? 1893년 미국 뉴욕에서 작곡·초연된 이 작품 역시 그의 마지막 교향곡이다. 이 정도면 9번이 불길한 숫자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쯤 되니 말러가 얼마나 불안했을까? 평생을 죽음에 대한 불안 속에 살았던 그에게 9는 끔찍한 숫자였을 것이다. 오죽하면 8번 천인교향곡의 후속 작품을 9번으로 명명하지 않고, ‘대지의 노래’라 했을까 싶다. 그러나 말러 역시 9번의 저주를 피해갈 순 없었다. 9번을 작곡(1910년)한 후 10번 교향곡을 쓰다 죽고 만다(1911년). 베토벤 사후 백년을 이어온 9번 교향곡의 저주는 쇼스타코비치가 마침내 깨버린다. 그런데 이 과정도 드라마틱하다. 쇼스타코비치의 9번(1945년)은 악명 높은 즈다노프(Zhdanov) 비판을 받았기에 당시 그의 생사는 불투명했었다. 그러나 1953년 스탈린이 죽자 쇼스타코비치는 구사일생한다. 그해에 바로 10번 교향곡을 작곡하여 백년 묵은 9번의 저주를 풀고, 이어 5편의 교향곡을 더 작곡한 후 1975년에 눈을 감았다. 교향곡 9번의 저주가 정말 있기는 한 걸까? 평생 동안 브람스가 4편, 시벨리우스가 7편, 닐센과 차이콥스키가 6편의 교향곡을 쓴 것을 보면, 9편을 작곡하는 것은 지난한 일임에 분명하다. 게다가 저주에 무릎을 꿇은 다섯 명의 작곡가들이 만든 9번을 보면 예외 없이 원숙한 걸작들이었다. 어쩌면 남들보다 시간과 정력을 훨씬 많이 소비했기에 수명이 단축되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앞으로는 9번의 저주를 다시 목격하긴 힘들 것 같다. 쇼스타코비치가 9번의 저주를 깼기 때문이 아니라 교향곡을 평생 9편이나 작곡할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그너의 말마따나 이제 교향곡의 시대는 진짜 지나가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