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립미술관 건립 후보지로 선정됐던 천북초등학교 물천분교장에 문화예술창작소를 건립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경주시는 오는 2022년까지 물천분교 약 9550㎡의 부지, 연면적 약 877.22㎡에 사업비 약 35억원을 들여 문화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위한 레지던시 공간과 전시장 등을 갖추고 문화예술의 거점 공간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경주시는 지난 19일 영상회의실에서 ‘문화예술창작소 조성’을 위한 기본 수립 및 타당성 조사 용역 중간보고회를 개최했다. 이날 보고회에서 용역 보고업체인 지역정책조사연구원 김창미 이사장이 경주문화예술창작소 조성에 대한 계획을 보고했으며, 이어 문화예술창작소 건립에 관한 문제점 및 대안제시 등 다양한 의견들이 개진됐다. 경주시 문화예술과 측은 “중간보고회를 통해 다양하게 제시된 의견을 수렴하고 면밀히 검토해 오는 3월 최종보고회를 가질 예정이다. 경주문화예술창작소 조성으로 지역 내 문화예술작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문화기반시설을 확충함으로써 문화예술도시 경주의 위상 제고와 경쟁력 확보는 물론 문화도시로의 자긍심을 고취할 기회가 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경주미협 최영조 회장은 “레지던시 공간이 경주에 생긴다는 것은 지역미술인으로 아주 반가운 일”이라면서 “레지던시 공간은 예술가들에게 창작공간을 제공하는 것만 아니라 타지역 작가와의 교류, 도시재생 등 복합적인 효과를 동반한다”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한편 경주시는 지난해 4월 물천분교장을 시립미술관 건립부지로 제시했지만, 시의회가 접근성이 불리하고 협소하다는 등의 이유로 시립미술관 건립부지로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자 문화예술창작소 건립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2021년 기축년 ‘소’의 해! 희‘망’을 나누는 ‘소망 콘서트’가 오는 31일 오후 2시 경주문화재단 유튜브채널서 열린다. (재)경주문화재단은 경주예술의전당 올해 첫 기획공연으로 경주시민과 지역예술인이 함께 만들어가는 온라인 신년음악회를 선보인다. 실시간 채팅을 통해 소통할 수 있는 이번 공연은 시민들의 희망 사연과 신청곡을 접수받아 진행되는 랜선 콘서트다. 출연진에는 클래식 현악팀 ‘라파스트링 앙상블’과 여성 4인조 ‘팝페라솔라즈’, 클래식 기타리스트 ‘곽진규’, 어쿠스틱 밴드 ‘하늘호’, 퓨전 국악 그룹 ‘새라온’ 등이다. 경주문화재단 오기현 대표는 “지역예술인들에게 공연의 기회를 확대하고, 코로나19로 위축된 시민들에게 안전하게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비대면 시스템 구축으로 신년음악회를 준비했다”면서 “앞으로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걸맞은 온라인 시스템과 상생 인프라를 발전 시켜 문화예술의 무형적 가치와 실질적 가치 창출에 더욱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희망 사연과 신청곡은 27일까지 경주예술의전당 SNS와 담당자 E-mail(ajj211@gjfac.or.kr)로 접수하면 된다. 선정된 사연과 신청곡은 온라인 신년음악회 ‘소망 콘서트’에서 공개되며, 선정자에게는 소정의 선물이 증정될 계획이다. 한편 온라인 신년음악회 ‘소망 콘서트’는 컴퓨터 또는 모바일 등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추후 지역 예술인의 뛰어난 연주를 다시 볼 수 있게 클립 영상으로 제작해 유튜브에 업로드될 예정이다. 자세한 문의는 경주문화재단(1588-4925)과 홈페이지(www.gjartcenter.kr)에서 가능하다.
아이들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 중독에 빠져가는 지금, 우리는 어떻게 예방하고 대처해 나가야 할까. Q. 스마트폰 중독이란? 최근 중독에 대한 개념은 약물중독 혹은 물질중독의 개념을 넘어 도박, 인터넷, 게임, 스마트폰에 이르는 ‘행위중독(behavioral addiction)’ 개념으로 확산되고 있다. 첨단 IT산업 등과 관련되어 빠르게 발전하는 인터넷, 스마트폰 등의 매체에 따른 새로운 행위 중독에 전 세계적인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스마트폰 중독이란 스마트폰에 지나치게 몰입해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스마트 폰에 중독된 사람들은 다른 일상 행동을 할 때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기 때문에 사고의 위험이 높아진다. 서울대 예방의학교실과 보건환경연구소 공동연구팀에서 국내 대학생 608명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6.5%가 스마트폰 중독이었다. 스마트폰에 중독된 대학생들은 일상생활을 하다가 충돌, 지하철 출입문 끼임 등의 사고를 경험할 위험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1.9배 높았는데 추락이나 미끄러짐 사고 위험은 2.08배, 충돌사고 위험은 1.83배 높았다. Q. 알코올, 마약 등의 물질 중독과 비슷하다 스마트폰 중독은 정신건강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강한 청색광에 오랜시간 노출되면 생체리듬이 깨질 위험이 크다. 인체는 눈(망막)으로 들어오는 빛을 통해 낮과 밤을 인식해 생체리듬을 조절한다. 밤시간에 과도하게 스마트폰을 사용하면 인체가 낮과 밤을 혼동해서 수면장애를 겪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우울이나 불안 등 정신질환으로 이어질 위험도 커지게 된다. 국내 한 연구에 따르면 스트레스 수준이 높은 대학생은 그렇지 않은 대학생보다 2.19배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했다. 자살을 생각한 사람은 2.24배나 스마트폰 중독 위험이 높았고 최근 1년간 우울과 불안을 경험한 사람도 같은 결과를 보이고 있다. 스트레스, 우울, 불안 등의 증상이 심하면 뇌기능에 영향을 주어 스스로를 통제하고 충동을 조절하는 기능이 떨어질 위험이 크고 호르몬도 변하게 된다. 대뇌 보상회로에 영향을 주는 신경전달물질 분비에 문제가 생겨 스마트 폰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할 위험이 커진다. 이러한 스마트폰 중독은 알코올, 마약 등의 물질 중독과 비슷한 원인으로 발생하는데 위험도 또한 다른 물질 중독과 다르지 않다.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스마트폰에 중독되면 생체 리듬이 깨져 수면장애 등으로 이어질 위험이 커지기 때문에 정신건강이 더 나빠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우려가 있다. 따라서 스마트폰 중독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장시간 화면을 보다 보면 안구 건조증 등의 안과 질환이 생길 가능성도 높고, 자세가 나빠 성장장애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 특히 아이들의 경우 휴대폰에서 보여주는 화면은 대부분 빠르게 전환되며 시청각 자극만을 주기 때문에 집중력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뇌가 골고루 발달하지 않을 수도 있고 나아가 좌우 뇌가 휴대폰으로 인해 고루 발달하지 못하는 불균형으로 인해 성장 시 공감 능력 감정 조절 등에도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게다가 화면을 볼 때 자세로 인해서 만성 거북목증후군이나 손목터널 증후군을 앓게 될 수 있다. 이는 통증을 동반해 뼈 성장을 방해하고 목이 휘기 때문에 또래 아이들보다 키가 작게 느껴질 수 있는 만성 증후군이다. Q.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스마트폰 중독은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 아이들의 경우 말을 안듣거나 떠들 때 휴대폰을 보여주지 말아야 하며, 휴대폰 이외의 다른 놀이를 많이 해주는 것이 좋다. 반드시 시간을 정해두고 할 수 있도록 해주며 그 시간 약속을 잘 지켰을 때 칭찬과 보상을 해주는 방식으로 교육하는 것이 좋다. 어른의 경우라면 가능하면 전화를 통해 상대방과 소통할 것을 권한다. 이는 SNS 등을 이용하는 시간을 줄이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식사시간이나 대화시간 등 가족들이 함께 시간을 보낼 때는 다함께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사용하지 않도록 규칙을 정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자료제공 : 한국건강관리협회 경상북도지부 (대구북부건강검진센터) 글 : 노성원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한국건강관리협회 건강소식 2021년 1월호 발췌
“상처 없이 자란 나무가 예뻐 보일 수 있겠지만, 상처를 통해 뒤틀리고 울퉁불퉁해진 나무는 더 강건하고 아름답습니다” 흑백의 고목이 순수하고 담백한 매력을 선사한다. 박종래 작가의 열 번째 개인전 ‘상처-순수로의 회귀’가 오는 25일부터 더케이호텔 경주 1층 갤러리에서 펼쳐진다. 이번 전시에서 박종래 작가는 흑백 모노크롬 회화 ‘Wound-Return to Pureness’ 시리즈 작품을 선보인다. “지난 뉴욕 전시의 연장 선상에서 ‘상처-순수로의 회귀’라는 주제로 진행합니다. 삶의 과정에 필연적으로 갖게 되는 상처와 그 상처가 아물며 남는 흉터. 이와 같은 아픔들이 사실은 인간이 성장하고 궁극의 자아를 실현하는 과정에 필수 불가결한, 어쩌면 삶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러한 성장의 과정을 고목의 뒤틀림, 옹이로 표현되는 성장에 빗대어 표현했습니다” 대학 시절부터 회화, 설치,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작업을 병행해 온 작가는 그동안 회화의 형식을 띠지만 조형물처럼 설치되는 에폭시로 제작된 ‘설치회화’, ‘디지털 변용 이미지 회화’, ‘흑백의 모노톤 회화’ 등으로 작품의 형식에 꾸준한 변화를 가져왔다. 이번 전시는 목탄과 유화를 혼용한 모노톤 회화 작품으로, 실존하지 않는 색채에 대한 물리학적, 생리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진행된 것. “무채색이 실은 모든 색이며 동시에 아무 색도 아니라는 실체적 이해를 바탕으로 작품이 탄생했습니다. 또한 어린 시절부터 인간과 삶에 대해 갖게 되는 관심에서 전술한 주제에 가 닿게 됐죠” 작가는 흑백 모노크롬 회화를 통해 회화 본질이 아닌 정신의 세계로 환원 시킨다. 다양한 시도를 통해 우리 정서를 담을 수 있는 기법을 고안해내고 우리 고유의 정체성 드러내고 있는 작가는 동양의 전통적 미의식을 세련된 현대회화 방식으로 표출시키고 있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에 위로가 되는 작가이길 바란다는 박종래 작가. “나무의 상처는 성장을 통해 나무의 외형에 변화를 줍니다. 어려운 시기 어쩌면 우리네 삶도 여러 사건으로 상처받고 힘이 들지만, 시간이 지나면 더 강하게 아물어 삶의 남은 여정에 힘을 보태겠지요. 이번 전시에서 간결한 모노톤으로 제작된 나무의 형상을 통해 많은 이들이 담백한 위로를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상처를 통해 성장하고 그 성장의 증거로 자리 잡은 흉터를 고목을 통해 은유적으로 드러내 용기와 희망의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하는 박종래 작가의 전시는 이달 말까지 진행된다. 박종래 작가는 홍익대학교에서 회화과를 전공, 동대학원 회화과와 미국뉴욕 롱아일랜드대학에서 임상미술치료를 전공했다. 서울, 인천, 뉴욕, 경주 등지에서 9회의 개인전과 다수의 그룹전(서울, 포항, 이스탄불, 뉴욕, 베이지 등), 설치·미술퍼포먼스(서울, 강릉, 광주, 전주 등)를 가진바 있다. 현재 호서대 조형융합예술학 박사과정에 있으며, 대구가톨릭대학 회화전공 겸임교수로 후학 양성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성동새마을금고(이사장 진창호)는 지난 19일 황오동과 천북면에 ‘사랑의 좀도리 운동’을 통해 모은 쌀 등 후원물품을 전달했다. 황오동에는 쌀 400kg과 라면 80박스를, 천북면에는 쌀 300kg과 라면 70박스를 지역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해 달라며 기탁했다. 진창호 이사장은 “작은 지원일수도 있지만 회원들과 정성으로 모은 만큼 어려운 분들에게 위로와 희망이 됐으면 좋겠다”면서 “앞으로도 ‘사랑의 좀도리 운동’뿐만 아니라 자원봉사 활동과 각종 복지사업, 장학사업 등을 통해 코로나로 침체돼 있는 지역사회에 보탬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권칠영 황오동장과 문용권 천북면장은 성동새마을금고의 후원에 감사를 전하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지역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관심과 온정이 이어지길 희망했다. 한편, 성동새마을금고에서 매년 실시하고 있는 사랑의 좀도리 운동은 옛날 어머니들이 밥을 지을 때마다 쌀을 미리 한술씩 덜어 부뚜막 단지에 모았다가 남을 도왔던 것에서 유래됐다.
노래가 가진 힘은 의외로 매우 크다. 유명한 노래 속 도시들은 노래 그 자체로 이야기도 되고 관광의 중요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노래로 기억되는 도시는 대중들 마음속에 그 노래의 분위기로 기억되는 탁월한 효과가 있다. 목포의 눈물, 대전 블루스, 흑산도 아가씨, 서울의 찬가, 돌아와요 부산항에, 칠갑산, 안동역에서 같은 노래는 노래 제목에 나온 고장들을 대중들에게 확연하게 각인시킴과 동시에 전 국민들에게 도시들을 대표하는 노래로 자리매김했다. 경주는 박목월 선생의 고향이자 유치환 선생의 삶터였고, 우리나라 근현대 시인들이 가장 자주 찾던 명소였다. 조지훈 선생이 경주고등학교 교가를 썼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시인들이 경주를 내왕하며 경주에 대해 노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경주 출신 시인들이 전국에서 활동하고 있고, 경주에도 유명한 시인들이 경주의 구석구석을 시적 감수성으로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아쉽게도 이렇게 많은 시인들이 활동해온 경주지만 경주를 대표할 만한 노래가 없다. 1949년에 발표된 현인 씨의 ‘신라의 달밤’에 불국사, 금오산 같은 경주의 명소들이 등장하지만 세대가 흐를수록 이게 경주를 노래한 것인지조차 인식되지 않을 만큼 시대와 동떨어져 있다. ‘신라의 달밤’은 40대 이상 세대들, 다시 말해 경주가 수학여행지 1순위로 꼽히던 시절 경주로 와본 사람들에서 거의 멈추었고, 그 이하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경주는 잊어버린 고도(古都)가 되고 말았다. 노래를 모르는 세대가 도시마저 잊어버린 채 발길을 끊어버린 것 아닐까? 조바심이 난다. 바로 이런 망각의 시기에 경주에 대한 시를 쓰고 그것을 다시 노래로 만들기 위해 흔연히 뛰어든 시인이 있어 눈길을 끈다. 본지가 지난해 11월 26일자 ‘SNS는 즐거워’란을 통해 보도한 바 있는 강원석 시인이다. 당시 강원석 시인은 ‘달빛 흐르는 밤, 경주에서 – 달빛 경주’라는 시를 짓고 이 시를 경주 노래로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그로부터 두 달 가깝게 흐른 지금 강원석 시인이 그 포부를 현실화 시키고 있어 부쩍 기대된다. 확실히 ‘이것이다’고 결정만 하지 않았을 뿐 이미 곡이 만들어져 있음을 강원석 시인과의 만남을 통해 확인했다. 뿐만 아니라 ‘아직 결정하지 못한’ 그 노래는 경주라는 도시를 완전히 새롭게 인식시킬 만큼 현대적인 감각에 가슴을 푹 젖게 만들 만큼 호소력까지 갖추었다. 시에서 표현한 경주가 경주의 유적이나 역사 같은 해묵은 재료들이 아닌 ‘청춘과 달빛’인데 노래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도 가사에 어울리는 ‘달달하고 따사로운 연인의 감성’으로 넘친다. 경주가 이렇게 해석된다면 전국의 연인들이 죄다 경주로 달려올 것 같은 기대가 될 정도다. 어쩌면 경주의 시인들이 경주를 너무 잘 알고 너무 오랜 기간 익숙해서 넘을 수 없었던 인식의 범주를 강원석 시인이 다소 이방인적인 직관과 감성으로 절묘하게 찾아냈고, 그것을 요즘 트렌드를 잘 아는 젊은 작곡가와 보컬들이 만든 작품일 법하다. “경주는 여러 가지 가치와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도시지만 그중에서 밤 풍경이 특히 아름답고 인상적입니다. 그래서인지 경주에 오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가슴이 따듯해집니다. ‘달빛 경주’도 그런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쓴 시입니다” 강원석 시인이 경주를 노래로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시인으로서는 물론이려니와 그의 특별한 이력을 보면 쉽게 이해된다. 변진섭 ‘별이 된 너’, 태진아 ‘고향-농부의 노래’ 윤복희 ‘세상은 기억하리라’, 추가열 '빗속의 추억' 등 쟁쟁한 가수들과 작업한 이력은 그의 시가 얼마나 대중들과 깊이 호흡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최근 시청률 21%대의 KBS1 TV 일일드라마 ‘누가 뭐래도’의 OST곡 ‘외로운 밤 그리운 너’ 역시 강원석 시인의 시가 노랫말이 된 것이다. 이 노래는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인기 작곡가 ‘알고보니 혼수상태’가 썼고, 노래는 ‘미스터트롯’으로 인기몰이 한 미남 가수 류지광 씨가 불렀다. 이밖에도 방송가의 내로라하는 가수들과 기획사로부터 강원석 시인에게 노랫말을 얻기 위한 섭외가 수시로 들어오고 있다. 시적이고 아름다운 노랫말에 대한 대중들의 욕구 때문일 것이다. “경주와 처음 인연 맺은 것은 중학교 수학여행 덕분입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고등학교 때도 경주로 수학여행을 왔어요. 감성이 최고조인 청소년기 가장 중요한 두 순간을 경주와 함께 했기 때문에 어떤 도시보다 진한 추억으로 남아 있지요” 이후 강원석 시인에게 경주는 고향인 함안과 자신이 초·중·고까지 학교 다닌 마산을 제외하고는 가장 자주 찾는 도시가 되었고, 지난 2020년에도 한 해를 여는 첫 강연을 비롯 두 번이나 경주에서 시와 관련한 강연을 했을 만큼 경주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떠오른 영감 100번 읽고 고쳐 쓴 시들, 사람들에게 감동과 행복 안겨주는 것이 시인의 ‘사명’ 강원석 시인이 이처럼 경주에서 첫 강연을 했던 것은 그의 시를 열렬히 좋아하는 팬클럽이 경주에 구성돼 있기 때문. 그의 펜클럽은 비단 경주 뿐 아니라 전국의 많은 도시들에 만들어져 있다.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왕성한 SNS활동 덕분이다. “아무리 좋은 시라도 읽혀지지 않으면 가치를 발휘할 수 없기에 한 분이라도 더 제 시를 읽게 하려는 마음에서 SNS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시집을 통해 독자들과 만났지만 인터넷의 발달과 책이나 시집을 멀리하는 세태 속에서 SNS상의 소통은 매우 중요하다는 강원석 시인, 그는 SNS활동이 6권의 시집을 내는데 많은 힘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그의 시가 SNS에서 연령층을 막론하고 읽혀지는 이유가 있을 법하다. “시는 영감(靈感)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떠올린 영감을 갈고 닦아 온전히 자신 있는,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드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강원석 시인은 자신이 발표한 시들은 어떤 시이건 백번 이상 다시 읽고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퇴고(推敲)를 거듭한다고 고백한다. 가끔씩 시 쓰기에 대해 묻는 시인 지망생들에게 강원석 시인이 조언하는 내용도 바로 이 점이라고. “순간적인 영감을 자랑하고 싶어서 섣불리 공개하는 것은 결국 좋은 영감을 소홀하게 취급해 더 좋은 시를 쓰지 못하게 하지요. 그래서 어떤 시이건 수없이 읽고 다듬는 과정을 거치라고 권합니다” 특히 그는 동시를 쓸 때는 완전히 정갈한 마음이 될 때까지 명상을 한 뒤에 시를 쓴다고 할 만큼 각별하게 시를 대한다. 또 시를 쓰면서 스스로 시인다운 인격을 가질 수 있도록 수시로 자신을 일깨운다고 소개한다. “소설 쓰는 사람을 ‘소설가’ 수필 쓰는 사람을 ‘수필가’라며 ‘가’를 붙이는 것은 그것을 직업적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 쓰는 사람에게 ‘시인’이라고 써 명예롭다는 의미가 들어 있는 ‘인’자를 붙이는 것은 그만큼 시인을 특별히 보기 때문일 것입니다” 강원석 시인은 그런 이유로 시를 쓰는 것을 독자들에게 감동과 행복을 주기 위한 ‘사명’으로 여긴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이렇듯 시를 쓰는데 혼신을 다하는 강원석 시인은 시인으로 자신의 삶을 결정 짓기 이전까지는 정평 있는 공직자로서 국가에 헌신했다. 훤칠한 키에 수려한 외모와 전혀 딴판으로 그는 태권도 고단자로 사범 자격을 가지고 있으며, 합기도, 특공무술 등을 연마한 만능 스포츠맨이기도 하다. 그는 공수특전사로 군생활을 마친 후 국회에서 처음 공직생활을 시작해 청와대 행정관, 행정안전부장관 비서실장 등 요직을 거쳤다. 경남대학교 법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더 좋은 공직자가 되기 위해 정치학, 행정학, 법학을 비롯 주경야독으로 무려 7개의 대학원 과정을 마쳤을 정도로 치열한 정진을 거듭했다. 그런 그가 공직자보다 시인으로서 삶을 살겠다고 마음 굳힌 것은 시가 사람들을 풍요롭게 한다는 믿음 때문. 그의 이런 믿음은 그 자신이 절망의 고통 속에 이르렀을 때 그를 다시 살게 해준 것이 바로 시였기 때문이라 회고한다. 그런 만큼 초기 슬펐던 시와 달리 지금 그의 시는 밝고 긍정적이고 따듯하고 영롱하다. 자신을 살게 해 준 시로 또 다른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는 강원석 시인의 믿음은 그 자체로 깊은 울림을 준다. 그는 이전에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경주는 앞으로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도시가 될 것이다. 경주를 사랑하는 마음이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마음이고, 이런 경주가 세계에 알려지면 그것이 곧 국격이 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이토록 경주를 좋아하고, 시를 아끼고, 사람을 사랑하는 그가 달빛 아래에서 쓴 감성적인 경주의 시가 바야흐로 노래로 나오는 초읽기에 들어갔다. 앞으로 결정될 노래가 어떤 모습 어떤 형태로 나올지 확인하려면 좀 더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 노래가 대중들에게 울려 퍼질 즈음 경주는 또 다른 모습, 또 다른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국민들의 가슴에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설레지 않을 수 없다!
서울시가 지난 1월 17일 코로나19로 빈사상태에 빠진 소상공인 지원을 위해 지난 달 12월 28일부터 시행된 10%할인된 선결제상품권에 10% 폐이백 혜택을 주는 고강도 지원책을 시행한다. 이 선결제상품권은 서울시가 시행하는 ‘제로페이’ 가맹업종 가운데 집합금지·영업제한 업종 을 제외하고 약 13만개 업체에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1인당 선결제상품권 구입가능 금액은 선결제금액기준 30만원까지며 집합금지, 영업제한 업종이 아니라도 연매출 10억원 이상 업소에서는 사용할 수 없고 학원에 사용할 경우 페이백 혜택은 주지 않는다고 제한했다. 페이백은 ‘서울사랑상품권’으로 돌려준다. 상품권은 제로페이앱 등에서 업체 방문 없이 비대면 결제할 수 있다. 서울시는 또 기존 상품권이 10만원권으로 한정되어 있던 것을 3510만원 권으로 다양화 시키기로 했다. 고액권의 사용부담을 줄여 누구나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조치하기 위함이다. 이에 따라 10만원 이상 최소 결제조건을 없애고 이달 말까지 한정했던 사용기한도 3월 31일까지 연장했다. 선결제 금액 하향 조정에 따라 소비자 한 명이 여러 곳에서 이용할 수 있어 보다 많은 소상공인들이 매출 증대 혜택을 볼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조치에 따라 선결제상품권은 제로페이를 사용하는 식당, 카페, 실내체육시설, PC방, 목욕장업, 독서실, 이미용업, 피부관리실, 네일샵, 노래연습장, 학원(연매출 10억 미만) 스터디카페 등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제로페이 가맹업종으로 대상을 확대한 것은 그동안 선결제 캠페인만으로는 참여 매장이 많지 않아 불편했다는 소비자 고충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같은 서울시의 선결제상품권은 향후 코로나19로 인해 위축된 시장경제를 활성화 시키고자 하는 다른 광역지자체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월 18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부 완화됐지만 2단계 2주 연장으로 인해 냉각된 경제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우려가 있다. 소비자의 부담을 줄이면 구매효과가 커질 것은 자명한 일, 서울시의 선제적 조치가 어떤 효과를 나타낼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한노인회 경주시지회(지회장 노창수)는 2021년 노인일자리 참여자를 위한 안전교육 및 활동소양교육을 실시했다. 지회에서 운영하는 사업단은 경로당환경정비 등 4개 사업단 640명이다.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은 어르신들의 노후생활을 위한 소득보완 및 사회참여 확대를 통해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실시하는 사업이다. 각 사업단별 참여자는 △노노케어 55명 △학교정화활동 190명 △근린생활시설 95명 △경로당 환경정화 300명이다. 참여자 선발은 노인일자리 사업 선발기준표에 의해 소득 수준 및 세대구성, 활동역량, 경력 등 사전에 공지된 선발기준에 따라 고득점자순으로 이루어졌고 각 사업단 선발 발표는 1월 초 순차적으로 실시했다. 공익형 기준 사업기간은 10개월에서 12개월로 주 3일(월10회)을 활동하고 월 27만원의 활동비가 지급되며 개인별 근무시간에 따라 활동비가 차등 지급된다. 2021년 처음 실시하는 경로당환경정비 일자리사업은 쉼터와 일터가 공존하는 경로당에서 어르신 맞춤형 일자리 창출 및 노인문제를 해결하고자 진행된다. 지난 11일부터 15일까지 교육을 받은 어르신들은 각자가 소속된 경로당에서 18일부터 일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예방을 위해 노인일자리 참여자 소양교육 및 안전교육은 사업단별 소규모로 분산 실시하고 있다. 또한 사업 진행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한 안전 수칙 교육 및 유의사항에 대해 적극적인 교육을 실시해 올해에는 단 한 건의 안전사고도 없는 노인일자리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노창수 경주시지회장은 “고령화 사회를 맞아 맞춤형 노인일자리 제공으로 많은 어르신들이 소득에 보탬이 되고 활기차고 건강한 노후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특히 노인일자리 사업 추진 시 코로나19 대응 노인일자리 운영가이드라인을 준수하며 참여자의 개인위생과 방역관리에 적극 협조하고 참여자 및 담당자 모두 안전에 유의해 사업을 진행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지난해에 이어 코로나19로 인해 설명절 고향을 방문하기 어려운 가운데 보건복지부가 ‘온라인 추모·성묘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진> 보건복지부는 설명절 기간 중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높은 실내 봉안시설 등의 성묘객 분산 및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이동제한을 고려해 지난해 추석기간에 제공한 ‘온라인 추모·성묘 서비스’의 기능을 개선해 제공한다. 지난해 23만552명이 이용한 ‘온라인 추모·성묘 서비스’는 거주지역에 상관없이 누구나 무료로 이용이 가능하며 차례상 꾸미기, 지방쓰기 등의 기능을 제공하며 가족 간 공유도 가능하다. ‘추모관 꾸미기’에서는 안치 사진 등록, 다양한 차례 음식 선택 및 배치를 통해 차례상 꾸미기와 지방쓰기가 가능하며, 추모 음성메시지 녹음 및 추모 영상을 등록해 SNS를 통한 가족 간 공유 할 수 있다. 또, 설명절 기간 장사시설을 찾지 못하는 이용객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지자체 추천 전국 22개 장사시설의 소개 영상과 전경에서 안치장소까지의 이동서비스도 함께 제공하며, ‘온라인 추모·성묘 서비스’에 가입해 2월 10일까지 안치사진을 신청하면 장사시설로부터 고인의 실제안치 모습을 제공받을 수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코로나19의 감염과 확산방지를 위해 지자체와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며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 등 방역지침을 준수해 모두가 행복하고 따뜻한 설명절을 희망한다”고 전했다. 온라인 추모ㆍ성묘 서비스 신청은 인터넷주소 sky.15774129.go.kr 에서 하면 된다. 한편, 방역당국은 코로나19 재확산 위험을 줄이기 위해 내달 1일부터 고궁 및 박물관 등 국·공립문화예술시설에 사전예약제를 통해 적정 이용자 수를 관리하고, 봉안시설은 설 명절 전·후 5주간 사전 예약제를 실시토록 했다.
국보 275호로 지정된 ‘기마인물형토기’를 포함해 평생 애써 수집한 문화재 666점을 수차례에 걸쳐 국립경주박물관에 흔쾌히 기증함으로써 개인소장자의 사표로 전해지고 있는 이가 있다. 고 국은(菊隱) 이양선(李養璿) 선생(1916~1999)이다. 선생은 ‘문화재는 개인의 것이 아니라 민족의 문화유산’이라는 평소의 소신대로 이를 영구 보존하고 연구하는 차원에서 1985년부터 1987년까지 국립경주박물관에 수집문화재를 기증했다. 국립경주박물관은 기증 유물의 사진과 도면·해설을 갖춘 도록 ‘국은 이양선 수집문화재(1987)’를 발행하고 그 높은 뜻을 기리고 기념하기 위해 선생의 아호를 딴 ‘국은기념실’을 마련해 도기기마인물형 뿔잔(기마인물형각배, 국보 제275호)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재를 상설전시하고 있다. 2020년 국립경주박물관은 신라역사관을 새롭게 단장해 문을 열었는데 특히, 기존 신라미술관에 있던 국은기념실을 이전해 재구성했다. 지난 17일과 18일, 문화유산의 아름다운 공유를 몸소 실천한 국은 이양선 박사의 숭고한 뜻을 재조명하는 공간인 국은기념실을 찾았다. 본 기사는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실과 도서실에서 제공한 아카이브 자료와 도서자료를 바탕으로 미흡한 소략에 불과하지만, 평생을 관통한 국은 선생의 높은 뜻을 다시 한 번 기억하고자 재구성해보았다. -국은 이양선 선생...평생 인술 펴는 한편, 남다른 애정으로 문화재 수집하고 연구해// 수집 문화재 대부분이 고고학적 가치 지닌 매장문화재로 고대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 국은 선생은 1916년 평양에서 태어나 고구려 역사의 향기 속에서 소년시절을 보냈다. 숭실중학교를 거쳐 1938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전신)를 졸업한 뒤, 평양의 기독병원과 시립병원에서 이비인후과 전문의로 지냈다. 한국전쟁 이후부터 1981년까지 경북대학교 의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대구에 정착했다. 정년퇴임 할 때까지 30여 년 동안 이비인후과에서 명성을 떨친다. 이비인후과 관련 학회의 중책을 여러 번 맡았으며 1992년에는 이양선 이비인후과 의원을 열어 의사로서 진료에 매진해 널리 인술을 펼쳤고 1999년 12월, 83세로 별세한다. 이양선 선생은 평생 대학병원과 종교단체의 병원에서 인술을 펴는 한편, 전통문화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문화재를 수집, 연구했으며 문화재를 감상의 대상이 아닌 학술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인식해 우리나라 고고학과 미술사학 연구에 중요한 많은 문화재를 수집했다. 선생이 본격적으로 문화재를 모으게 된 것은 한국전쟁으로 우리 사회가 어지러웠던 시절 대구에 온 후부터였다. 크게 여유는 없었지만 비교적 안정된 직업을 가졌던 선생은 학교와 병원, 집을 오가는 길에 만물상과 골동상을 들르는 것이 일과처럼 돼 집안 살림을 돌보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런 과정 속에서 유물을 보는 눈을 키웠던 선생은 점차 독보적인 감식안을 갖게 되었고 유물의 학술적 가치에도 눈을 돌린다. 수많은 유물들이 해외로 흩어지던 시절, 문화재 보호의 중요성에 일찍 눈을 떴고 일괄유물의 중요성과 출토지 확인에까지 미치는 학술자료수집단계의 경지에 도달한다. 선생이 수집한 문화재는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치는 것이었고 석기, 토기, 금공품, 철제품, 옥제품 등 모든 분야에 달하고 있었으며 지역으로는 경상남북도 영남권에 한정돼 있었다. 1950년대부터 대구와 경주를 비롯한 경상도 지역을 중심으로 문화재를 수집하기 시작해 이후 1990년대까지 문화재 수집에 힘을 쏟았는데, 특히 수집 문화재 대부분이 도자기나 그림이 아니라, 고고학적 가치를 지닌 매장문화재로 경상도 지역 고대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는 것이 많았다. -“문화재는 재화적인 가치로만 생각할 수 없으며 개인의 것 아니라 민족의 문화유산” 1985년부터 293건 666점 국립경주박물관에 기증 토요일과 일요일엔 일과처럼 경주를 찾았다는 선생은 검소하게 살았던 일화가 많다. 문화재 기증으로 전 국민의 시선을 끌었지만 운동화에 점퍼 차림이었다고 한다. 평생을 두고 모은 그의 수집품은 선생의 숙고 끝에 1985년 3월, 1986년 5월, 1987년 12월 등 수차례에 걸쳐 293건 666점(금속, 옥석, 토기, 골각, 기타 등등)이 국립경주박물관에 기증돼 국은 이양선 콜렉션을 이루게 된다. 선생은 “문화재는 재화적인 가치로만 생각할 수 없으며 개인의 것이 아니라 민족의 문화유산이다. 이를 영구히 보존하고 연구해 민족의 전통과 예지를 여기에서 찾아내야 한다”라는 소신을 지녔던 이다. 선생의 수집품은 주로 선사시대부터 통일신라에 이르는 경주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고고학적 자료가 주류를 이루고 있어 경주박물관과 가까이 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기증해 영구히 보존해야겠다는 뜻을 굳힌 듯하다. 그 큰 뜻의 시작은 기마인물상이었다. 이 문화재는 지금도 가장 중요한 전시품으로 손꼽힌다. 박물관에서는 1986년 9월 선생의 기증문화재 첫 전시를 열었다. 1987년에는 그 중 정수를 골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특별전시회를 가진다. 이후 1987년 5월부터는 상설전시로 이어져 지금에 이른다. -1980년대 중반 당시 수백억 원 어치 문화재 기증하고 “모두 경주박물관에 갖고 가. 기탁이 아니고 완전기증이야. 나중 도록이나 한 권 보내주시오”// 3차에 걸쳐 오동나무 상자 속에 솜으로 겹겹이 감싸 2.5t 트럭 3대 동원해 경주로..., 주간조선(1986년, 제909호)에서는 ‘기마인물상 토기는 이번에 이 박사가 기증한 문화재 중에서도 최고로 손꼽히고 있다. 5~6C 삼국시대 가야식으로 추정되는 이 토기는 말과 사람이 완전한 전투무장을 갖춘 형태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발견이었기 때문이다’ 라고 쓰고 있다. ‘이 박사가 수집해 온 문화재를 기증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경북의대 퇴직 무렵이었다. 노후를 경주에서 보낼 마음으로 그는 경주 모 병원과 교섭을 벌였으나 몇 가지 문제로 대구에 다시 주저앉고 말았지만 그는 언제나 신라와 신라인에 대한 향수에 젖어 있었다고 한다. 주말엔 자가용도 없으면서 반드시 경주엘 갔다. 30여 년을 보고 또 보았지만 그래도 다시 보고 싶은 게 이것들이라며 전시실 앞을 떠날 줄 모르더라는 것이다. 이즈음 문화재 기증의사도 조금씩 비쳤다. 그렇지만 이 박사가 안 먹고, 안 입고 평생을 모은 것이기에 박물관측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1985년) 3월 경주박물관팀이 이 박사집을 찾았다. 3백여 점을 기증하겠다는 통보를 받고서였다. 좁은 집에서 엄청난 양의 유물이 쏟아지자 직원들은 모두 충격을 받았다. 대략 국보급으로 추정되는 것만 고르고 난 뒤 기탁증서를 주려고 하자 이 박사는 필요없다고 거절했다. 며칠 후 유물을 정리하던 직원들 앞에 나타난 이 박사는 몇 가지 분류의 오류를 정확히 지적하기도 했다. 그리곤 “모자곡옥(母子曲玉)이 어디 있느나”며 물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잠시 빌려갔다”는 대답에 이 박사는 “경주박물관에 맡긴 것인데…”라며 상당히 섭섭해 했다. 한편, 1백여 점의 곡옥 중에 2개가 없어진 것을 한눈에 알만큼 자신이 수집한 물건에 대한 기억력이 뛰어났다. 1차 기탁이 있은 후 이 박사를 만난 당시 정 관장은 “제2별관 전체를 전시실로 꾸밀테니 화려한 금제귀고리를 내놓으라”며 은근히 강요했다. “그 귀고리들을 사실은 자식들에게 나눠 주려고 집사람에게 슬며시 이를 떠보았더니 ‘벽창호 같은 영감’이라며 구박만 받았다”고 관장에게 털어놨다. “자식들이 나눠 갖고 있어 보았자 흐지부지될 것 같다며 말리더군. 또 무슨 소문을 들었는지 재벌그룹에서 끈질기게 찾아와 팔라고 졸라대더군. 수집한 노력이 다르다며 쫓아 보냈어. 모두 경주박물관에 갖고 가. 기탁이 아니고 완전기증이야. 조건은 딱하나. 기증유물 도록이 나오면 자식들에게 꼭 보내줘야 돼” 3차에 걸쳐 이 박사의 유물은 오동나무 상자 속에 솜으로 겹겹이 쌓인 채 경주로 운반됐다. 2.5t 트럭 3대가 동원됐다. 이 박사의 문화재는 오는 9월8일(1986년) 일반전시를 앞두고 지금 정리중에 있다. 제2별관 3백평 전시실이 비좁아 간격없이 백뻑이 진열되고 있다. 이 박사가 이제 바라는 소망이 하나 있다. 예산이 없어 지체되는 기증문화재 도록 제작이 빨리 진행되는 것이다’라고 썼다. 1987년 12월, 선생의 바람대로 기증품이 드디어 한 권의 도록으로 발행되고 이 도록 제작은 기증자인 선생의 단 한 가지 기증 조건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바로 ‘완전한 도록이나 한 권 만들어주면 아들이나 딸, 지인들에게 나눠주고 싶다’는 소박한 뜻의 갈음이었다. -국은 수집 기증품, 단순한 미적 감상의 대상이 아닌, 학술적 가치를 지닌 고고학 계통의 자료 많은 것이 특징 국은 이양선 선생이 수집해 국립경주박물관에 기증한 문화재는 단순한 미적 감상의 대상이 아닌, 학술적 가치를 지닌 고고학 계통의 자료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선생은 문화재를 수집할 때, 출토지와 출토 상태를 꼼꼼하게 추적하였을 뿐만 아니라, 출토품과 함께 있었던 모든 것을 확인하고 검증했다. 문화재의 학술적 가치에 대한 그의 집념은 훗날 국보로 지정된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의 수집 과장에서 잘 드러난다. 당시 선생은 완형도 아니었던 도기기마인물형 뿔잔을 더 비싼 도자기를 주고 바꾸었을 정도다. 이는, 선생이 이 문화재가 지닌 자료적 가치를 잘 파악했기 때문이다. 이 문화재는 삼국시대 말 탄 무사와 말갖춤 복원에 중요한 기준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밖에 경주와 대구의 출토지가 분명한 청동기 일괄품 등 한국의 고고학과 미술사학 연구에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자료가 많다. 국은기념실 전시품은 선사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로 각 시대를 아우른다. 선생이 가장 아끼는 도제기마인물상을 비롯해 안계리, 죽동리, 지산동의 청동일괄유물 등 고고학과 미술사 연구에 빼놓을 수 없는 자료가 많다. 대표적인 전시품으로는 도기기마인물형 뿔잔(기마인물형각배, 국보 제275호), 청동옻칠발걸이(보물 제1151호), 오리모양 토기, 경주 죽동리 출토 청동기 일괄품(보물 제1152호), 대구 지산리 일괄 출토품 등의 국가지정문화재를 비롯해 무덤 출토 토기, 장신구, 말갖춤, 그리고 기와, 금동불, 사리장엄구, 각종 금속공예품 등의 다양하고 찬연한 문화재를 감상할 수 있다.
능의 초입에 들어서면, 양 갈래 소나무군상들이 한 폭의 풍경으로 빼꼭하다. 풍파에 시달린 흔적들을 고스란히 안고 가는 위풍당당한 기세다. 휘어지고 뒤틀린 흠집으로도 풍경을 이룬 나무의 자태가 위안을 안겨준다. 길도 나무도 묵은 나이테로 구부정해, 옛 숲에 안겨드는 걸음이 느슨하다. 흙살 펑퍼짐한 휘어진 오솔길을 따라가다 보면 한량없이 편안해하는 심신이다. 태초의 숲을 거닐듯 무심히 하늘을 쳐다본다. 훤칠한 소나무 키 높이로 빠끔히 내다뵈는 하늘이 솔잎 사이로 푸르다. 최치원 사산비문(四山碑文) 초월산(初月山) 대숭복사 비명(碑銘)에 ‘묘역 둘레에 소나무를 옮겨 심으니 쓸쓸하게 비풍(悲風)이 잦으면, 춤추던 봉황과 노래하던 난새의 생각이 커지지만, 왕성한 기운으로 밝은 해가 드러나면 용이 서리고 범이 걸터앉은 듯 지세(地勢)의 위엄을 더해 줍니다’라는 글귀를 실감하는 대목이다. 【삼국사기】 ‘원성왕(38대, 785~798)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경신이며, 내물왕의 12대손이다. 어머니는 박씨 계오부인이다. 왕비는 김씨이니 신술 각간의 딸이다. 처음 혜공왕(36대, 765~780) 말년에 신하들이 반역하여 발호하였는데, 선덕(37대왕, 780~785)이 상대등이 되어 임금 측근 악당들을 제거할 것을 앞장서서 주장하였다. 경신이 이에 동조하여 반란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웠다. 선덕이 왕위에 오르면서 상대등으로 임명하였다. 선덕이 후계자 없이 죽자 신하들이 의논 후 왕의 족질 주원을 추대하려 하였다. 그때 주원은 서울 북쪽 20리 되는 곳에 살았는데 홍수가 져서 알천(閼川)을 건너오지 못했다. 누군가가 말했다. “임금 자리는 사람이 마음대로 할 수 없기에, 오늘 폭우를 내려 하늘의 뜻이 주원을 왕으로 세우려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지금의 상대등 경신은 전 임금의 아우로서 덕망이 높고 임금의 체통을 지녔다”이에 여러 사람들이 의견을 일치하여 왕위를 잇게 하였다. 얼마 후 비가 그치니 백성들이 만세를 불렀다’ 【삼국유사】 ‘이찬(伊湌) 김주원이 수석 재상으로 있을 때 왕은 각간(角干) 차석자리였다. 꿈에 머리에 쓴 복두(幞頭)를 벗고 흰 갓을 쓰고, 열두 줄 가야금을 들고 천궁사(天宮寺) 우물 속으로 들어가는 꿈을 꾸었다. 사람을 시켜 해몽을 하게 했더니, 복두를 벗은 것은 관직을 잃을 징조요, 우물 속으로 들어간 것은 옥에 갇힐 징조라고 했다. 해몽을 듣고 몹시 근심하며 두문불출 했다. 이때 아찬(阿湌) 여삼이 뵙기를 청했으나, 왕은 병을 핑계하고 나오지 않았다. 다시 뵙기를 청하자 허락하여 아찬이 물었다. “공께서 꺼리는 것은 무엇입니까?” 왕은 꿈 해몽 이야기를 자세히 일렀다. 아찬이 일어나서 절하고 말하기를 “좋은 꿈입니다. 공이 왕위에 올라서도 나를 버리지 않는다면 공을 위해서 꿈 풀이를 해보겠습니다.” 왕이 좌우 사람들을 물리치고 꿈 해몽을 청했다. 아찬이 말하기를 “복두를 벗은 것은 그대 위에 앉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요, 흰 갓을 쓴 것은 면류관을 쓸 징조요, 열두 줄 가야금을 든 것은 12대손이 왕위를 계승할 징조요, 천궁사 우물에 들어간 것은 궁궐에 들어갈 상서로운 징조입니다.”라고 해몽했다. 왕이 말하기를 “내 위에 주원이 있는데 어떻게 왕 위에 앉을 수 있단 말이오?” 아찬이 답하기를 “비밀히 북천신(北川神)에게 제사를 지내면 성사될 것입니다” 왕은 아찬의 말에 따랐다. 선덕왕이 세상을 떠나자 나라 사람들은 김주원을 왕으로 삼아 장차 궁으로 맞아들이려 했다. 갑자기 홍수로 냇물이 불어 북천 북쪽에 살던 김주원이 건너오질 못했다. 왕이 먼저 궁에 들어가 왕위에 오르자 대신(大臣)들이 모두 와서 새 임금에게 축하를 드렸다. 원성대왕 성함은 김경신이요, 길몽이 들어맞은 것이다. 김주원은 명주(溟洲)에 (지금의 강릉) 물러가 살았다. 경신이 왕위에 올랐으나 이때 꿈을 해몽한 여산은 이미 사망했기에 그의 자손들을 불러 벼슬을 주었다.’ 【삼국사기⦁삼국유사】 ‘재위 14년 만에 죽으니 유해를 봉덕사 남쪽에서 화장하였다’ ‘원성왕릉이 토함산 서쪽 곡사에 있으며 곡사는 당시에 숭복사라 하였다’ 숭복사에는 최치원이 쓴『사산비문』「대숭복사비」가 남아 있다. 고 했다. 지금 비석이 보이지 않으나 인근 말방리 숭복사 터가 있어 괘릉이 원성왕능이라는 견해를 뒷받침하고 있다. 『동경잡기』에 ‘괘릉은 경주부의 동쪽 35리에 있는데, 어느 왕의 능인지 모른다. 전설에 의하면 물속에 장사하고 관을 돌 위에 걸어놓고 흙을 쌓아 능을 만들었기 때문에 괘릉(掛陵)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이런 까닭으로 1936년 이래 사적에 괘릉으로 등록되었다. 1967년 대왕암이 문무왕릉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대숭복사비문」의 해석이 이루어져 원성왕릉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삼산오악조사단의 대왕암 발견 전까지 괘릉엔 문무왕릉 표석이 박혀있었다. 연못이 있던 물구덩이라 널을 땅에 묻지 못하고 돌 위에 걸었다고 해서 걸‘괘(掛)’ 괘릉으로 불리었다. 어느 해 원성왕릉 근무 때 일이다. 전반적 해설이 끝나고 답사객들로 부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널을 어떤 식으로 어떻게 걸었냐?”는 질문이었다. 걸었다는 의미를 필자 생각으로 해석해 본 적이 있다. 필자성장기 집안이 종가(宗家)였다. 다달이 제사를 지내다시피 했다. 산적이나 떡 등 제물을 제기(祭器)에 담을 때 높지막이 동개 얹는데, ‘괸’ 다고 했다. 신라는 불교가 공인된 이후부터 거대한 무덤을 조성해 왕족의 장례를 치르는 관습을 주저했다. 시신을 불태워 산골(散骨)하는 화장제도가 융성했다. 통일 후 지배층이 불교문화를 활성화 시키면서 화장은 장엄한 의식구조로 탈바꿈 되었다. 【삼국사기】 원성왕의 장례는 ‘유언에 따라 관(棺)을 봉덕사 남쪽에 옮겨 화장(火葬)하였다’ 화장 후 산골 의식을 치렀기에 목제(木製) 관이기 보다는 뼈 항아리 골호(骨壺)가 연상된다. 땅을 판 밑바닥에 석판(石板)을 설치하고 그 위에 얹어두는 방식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정을 해본다. 화장용기는 토기나 화강암 돌을 다듬어 큰 용기 안에 작은 용기를 담는 형식이었다. 집 모양 토기를 사용하거나 당삼채(唐三彩) 항아리도 이용했다. 뼈항아리 둘레로 12지상을 새겨 넣은 골호 뼈항아리도 등장했다.
‘우민화(愚民化)’, 백성을 바보 취급하거나 바보로 만드는 일은 비겁한 정치인들이 나라를 다스릴 때 암암리에 쓰는 수법이다. 국민을 개돼지로 아는 나라나 시민을 눈 아래로 깔보는 지자체, 주변 주민을 사람취급하지 않는 공·사기업들이 사람의 눈을 가려놓고 제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때 우민화라는 말이 적용된다. 대표적인 우민화는 일제강점기 일본이 우리 국민에게 가한 식민지사관과 우리말 금지, 내선일체사상, 대동아공영권 같은 것이 있고 해방 후 독재정권들이 사용한 3선 개헌과, 유신개헌, 독재 옹호 교육과 자본력을 앞세운 거대기업들의 독점자본논리가 모두 그에 해당한다. 지난 17일 이원희 씨의 페이스북에 오른 ‘한수원과 핵산업계의 워딩’에 관한 포스팅은 원전을 운영하는 정부와 한수원,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우민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예다. 이원희씨는 방사선 피폭사고, 누출사고 등의 표현에 대해 핵산업계가 사고라는 말 대신 ‘기능 이상’이라는 말을 쓴다고 꼬집는다. 노심손상 같은 중대하고 노심손상과 같은 아주 중대하고 심각한 상황은 분명히 사고인데 이를 기능이상이라고 표현하고 그런 사고를 다 무시한 채 버젓이 무사고 1500일이라 주장하는 핵산업을 비웃는다. 2011년 월성원전에서 사용후핵연료(이 역시 고준위 방사선 폐기물이라고 써야 하지만) 낙하로 인한 손상이 있었고 노동자가 처리과정에서 피폭되는 사고가 있었지만 이 역시 기능 이상일 뿐이라 단정했다고 힐난한다. 비슷한 이유로 고리원전에서 사용후핵연료 습식저장조에서 화재가 난 것도 사고가 아닌 것처럼 위장됐다. 2017년 한빛원전 4호기 증기발생장치에서 발견된 cm의 손망치는 이물질로 표현되었다고 지적한다. 일상에서 시민들이 느끼는 이물질은 작은 오염물질에 불과한데 손망치를 이물질로 표현함으로써 사고의 의미를 대폭 축소시킨 것이다. 마지막 사례로 최근 월성원전에서 발생한 원전삼중수소누출 사고다. 이것을 원전에서는 사고라는 용어대신 ‘비계획적 누출’이라는 말로 사고 자체를 희석시켰다고 지적한다. 절차에 따라 배출하지 않는 모든 것은 사고밖에 없다. 그 사고를 사고라고 하지 않고 비계획적 누출이라고 표현하면 사고사실을 은폐하고 조작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신뢰를 받기는 애당초 어렵다. 한수원이나 원전관련 기업은 물론 연구소나 해당 정부부서까지 경주시민이나 국민을 바보나 개돼지로 취급한다면 모를까 이런 얄팍한 용어들은 앞으로 쉽게 바꿔야 한다. 자기네들끼리 쉬쉬하다가 호미로 막을 걸 포크레인이 와도 못 막는 사고가 될 것이다.
경주시 건천읍 조전리에 새롭게 단장한 광산정사(光山精舍)를 들어서면, 사우(祠宇) 상의(尙義)·강당 이선(貳善)·서재 강마(講磨)·삼문 경절(敬節) 등 편액이 눈에 들어온다. 광산정사는 의병장 오산(鰲山:청도)백씨 부암(傅巖) 백이소(白以昭,1557~1597)를 모신 공간으로 훼철된 것을 2011년 후손 백수청(白水晴)씨가 주관해 다시 건립하였다. 「연보」에 의하면, 부암은 가학을 계승하였고, 효경·소학·사략 등을 배우며 학문에 뜻이 깊었다. 26세에 순천김씨 김언광(金彦光)의 따님과 재혼하면서 장인이 사위의 뛰어난 기력을 보고 활 쏘는 법을 익히도록 권면하였다. 30세에 광지산 아래에서 준마를 얻었고, 부암산 아래에 집을 짓고 아우 백이정(白以貞)과 함께 날마다 낮에는 활 쏘는 법을 익히고, 밤에는 경서와 사략을 읽었다. 이후 36세 되던 해에 임진왜란이 발발해 붓을 던지고 집안과 나라를 위해 몸을 던졌다. 특히 왜란 당시 건천 주사산과 열박재 등에서 왜적을 막아 공을 세웠고, 사후 1786년에 유림의 공의로 광산사(光山祠)를 건립하기에 이른다. 『순조실록』에 의하면, 순조 14년(1814) 9월 5일, 예조에서 경외에서 의정부에 장보한 충신ㆍ효자ㆍ열녀에 대해 분등하여 초계하며, 경주의 고(故) 봉사 백이소, 왜변 때 의병을 일으켰다가 정유재란 때 전사한 자로 인해 병조참의에 증직되었다. 그의 행적이 담긴 『부암실기』는 권1의 「연보」와 「문천회맹록」, 권2의 「유사」와 「교지」, 권3의 「축문」과 「묘갈명」 등 총 3권으로 구성되며, 경주 의병을 연구하는데 소중한 자료가 된다. 연보는 백수장(白受章), 행장은 조종영(趙鍾永,1771~1829), 묘갈명은 김이익(金履翼,1743~1830), 묘지명은 후손 백수장의 요청으로 치암(癡菴) 남경희(南景羲,1748~1812) 등이 지었다. 병절교위 훈련원 봉사 백공 묘지명(秉節校尉訓鍊院奉事白公墓誌銘) - 치암 남경희 아! 충신이 어느 시대인들 있지 않으리오? 섬 오랑캐의 오랜 전쟁을 당해서 대대로 나라의 녹을 먹던 신하들은 대부분 도망쳐 숨어 살기를 도모하였지만, 비분강개하여 팔뚝을 걷어붙이고 국가의 위급에 목숨 바치며 비록 죽어서도 후회하지 않던 사람은 바로 초야(草野)에 있었다. 매번 동경야승(東京野乘)을 읽으며 우리 고을에 충의지사가 많다는 것을 탄식하였고, 그 가운데 한 분이 봉사 백이소(白以昭) 공이 있다. 백이소 공의 자는 융원(隆遠)으로, 그의 원조(遠祖)는 당나라 백우경(白宇經)이다. … 증조부는 진사 백구(白球), 조부는 백문절(白文節), 부친은 기자전 참봉 백희(白熹)이고, 모친은 최씨이다. 공은 1577년에 고을 서쪽 부산리(富山里)에서 태어났다. 임진년에 왜적들의 공세가 매우 거세져 바로 수도를 범했고, 남은 무리들은 온 고을을 약탈하였다. 공은 어머니를 산중에 모셔두고 홀로 활을 가지고 적을 막았다. 적 30여급을 참수하니 적들이 감히 산으로 들어오지 못했고, 산중에서 적을 피해 있던 사람들이 덕택으로 모두 온전했다. 공은 기골이 웅걸하고 남보다 특출한 용맹함이 있었기에 노인들은 “부산(富山)의 깎아지른 듯 험준한 그 기운이 실로 이 사람에게 모였다”고 하였다. 갑오년(1594)에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 봉사가 되었고, 정유년(1597) 적이 다시 쳐들어왔을 때 공은 발분하여 적과 싸우다가 총탄을 맞았다. 영천 창암의 전장으로 달려가고자 할 때 절도사와 고을수령이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만류하였으나, 공은 개연히 “신하가 국난을 당해 전장에서 죽는 것이 당연한데 어찌 살 생각을 하겠는가!”하고 끝내 스스로 군사를 모아 창암 전쟁터로 달려가 힘껏 싸우다가 전사하였으니, 바로 9월 29일이다. 또 공은 준마가 있었는데 항상 전쟁터에서 그 씩씩한 준마의 도움을 받았다. 종 부기(富基)도 항상 말고삐를 잡고 따랐는데, 이번 전투에도 따라갔다가 군사가 패했어도 달아나지 않고 주인과 말과 함께 죽었으니, 참으로 충신의 노복이라 할만하다. 아! 국가에서 충신을 드러내는 일은 지극하다 말할 수 있고, 임진왜란에 죽은 신하는 전후에 걸쳐 증직(贈職)의 은전을 입고 정려 표창되었으니 무슨 한이겠는가마는 공만이 홀로 빠진 것이 어찌 드러나는 때가 있겠는가? 광산에 신주 모시고 제사 받드는 것은 가히 오랜 세월 의를 사모한 마음이 드러난 것이리라. 공은 순천김씨 김언광의 따님과 혼인해 백운붕(白雲鵬)·백운곤(白雲鵾) 두 아들을 낳았다. … 6세손 백수장이 묘지명문을 나(남경희)에게 부탁하였다.
경주역 3만2000평 부지를 한 눈에 가늠해 볼 수 있는 육교가 있습니다. 준철도 기념물인 경주역 급수탑과 함께 시작해 성동시장과 경주시내로 바로 연결되는 이 육교는 경주역 육교입니다. 또 다른 경주의 숨은 명소죠. 성동동과 황오동을 이내 가로지를 수 있는 육교를 처음으로 걸어보았습니다. 싸락눈이 흩날리는 날이어서 감성 또한 배가 되었는데요, 왜 늘 소중한 일을 미루기만 했을까요? 오래된 계단을 하나씩 오르다보면 미묘한 설레임이 다가옵니다. ‘경주스카이웨이’라는 별칭이 이해되는 대목이었죠. 나지막하고 고즈넉한 황오동에서 육교를 지나자 바로 성동동 도심의 시끌벅적한 대로가 나타나 판이하게 분위기가 달라지더군요. 이제 경주역이 그 역할을 수행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기차가 멈춘 경주역은 상상하기 싫지만 이제라도 육교를 걸으면서 기관차의 굉음과 플랫폼의 사람들을 볼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육교 위에서는 경주역 구내가 훤히 내려다보입니다. 정말 부지가 넓고 규모가 크다는 것을 새삼 확인 할 수 있습니다. 객차들과 기관차가 보이고 역 구내 부속건물들과 함께 경주기관차사무소도 건재합니다. 직선으로 쭉 뻗어있거나 커브가 심한 여러 선로가 휘감기듯 교차해있는 철로는 시원하게 뻗어있고 대기 중인 기차들이 가쁜 숨을 ‘쉭쉭’ 내쉬고 있지요. 경주역의 속살과 스케일을 고스란히 내려다 볼 수 있어서 더욱 즐겁습니다. 육교에는 낡은 가로등이 설치돼 있는데 가로등에는 각기 관리번호가 매겨져있어 자주 점검하는 것 같습니다. 경주역 철로를 가로지르는 이 육교는 길이만 200여 미터를 자랑한다고 합니다. 육교는 크게 휘어져있는 형태로 아마도 경주의 육교들 중에서 가장 길 것 같았습니다. 육교의 폭은 그리 넓지 않습니다. 두 팔을 벌리니 약간의 여유가 있을 정도니까요. 육교 끝 주변 골목은 매우 낙후돼 있고 좁아서 도무지 같은 하늘 아래의 경주가 아닌 1970년대 어디쯤에서 멈춰 있는 듯 했습니다. 육교를 지나니 도심 상권과 멀리 경주읍성 향일문이 보이는 북성로입니다. 이 육교도 경주역과 그 명운을 함께 할 것 같아 왠지 더 측은해집니다. 도시재생사업에 포함돼 있으니 정체성은 잘 보존하되 깔끔하게 정비되길 바라봅니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봄날, 다시 한 번 이 육교를 천천히 걸어볼까 합니다. 글=선애경 문화전문기자 그림=김호연 화백
오페라는 원래 비극이다. ‘오르페오’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해피엔딩은 없다. 그러나 상인 등 평민계급이 극장에서 당당히 오페라를 소비하게 되자 상황이 변한다. 사실 그리스나 로마의 신화를 소재로 하는 초기 오페라는 평민들이 공감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많다. 극장에 오페라 구경을 갔다가 하품만 하고 나오는 일이 잦아진다. 이러다간 관객감소로 극장이 문을 닫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위기의식 속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있다. 바로 막간극이다. 막간극(intermezzo)은 오페라 속 오페라다. 평민들의 일상을 담은 무겁지 않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결혼하면 여자가 돈을 헤프게 쓸까봐 무서워서 결혼을 하지 못하는 구두쇠 노총각의 이야기, 뭐 이런 내용이다. 그런데 막간극은 의외로 큰 인기를 얻게 된다. 심지어는 본 오페라에서 떨어져 나와 독립적인 장르로 탄생하게 된다. 바로 오페라 부파(opera buffa), 우리말로는 희가극이다. 당시만 해도 세상의 모든 오페라는 비극이어서 굳이 비가극이라 부를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오페라 부파의 등장으로 비가극은 오페라 세리아(opera seria)라고 불리게 된다. 오페라 부파는 베네치아로부터 오페라의 주도권을 넘겨받은 나폴리에서 18세기에 유행한다. 당시 나폴리는 매우 가난한 도시여서 지친 일상으로부터 위안이 되는 오락거리에 관심이 많았다. 오페라 부파의 선구자는 단연 페르골레시(G.Pergolesi/1710-1736)다. 그의 작품 ‘마님이 된 하녀’(1733초연)는 비가극에서 독립한 대표적인 막간극으로, 가장 오래된 오페라 부파로 꼽힌다. 이어서 파이지엘로(G.Paisiello/1740-1816)가 ‘세비야의 이발사’(1782초연)를, 모차르트가 ‘피가로의 결혼’을 비롯한 다 폰테 3부작을, 치마로사(D.Cimarosa)가 ‘비밀부부’(1792초연)를, 로시니(G.Rossini/1792-1868)가 ‘세비야의 이발사’(1816초연)를 작곡하여 오페라 부파의 계보를 이어간다. 파이지엘로의 세비야의 이발사는 러시아 초연 이후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오늘날 세비야의 이발사의 작곡가로 기억되는 이는 로시니뿐이다. 파이지엘로는 당대의 오페라 거장이었으나 안타깝게도 로시니가 초연을 하자 바로 사망한다. 사람들은 점점 파이지엘로를 잊고, 젊은 감각의 로시니에 매료된다. 그 후 로시니는 꽃길을 걸으면서 세계적인 오페라 작곡가로 도약한다. 오페라 부파는 신화나 영웅의 이야기에서 벗어나 친근한 소재와 작은 규모의 공연으로 대중들의 접근성을 높였다. 특기할 만한 것은 유럽에서 자국어 오페라가 발전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는 점이다. 프랑스에서는 오페라 코미크(opéra comique)가, 독일에서는 징슈필(Singspiel)이 일반대중을 위한 오페라로 자리 잡게 된다. 모차르트 작품이라도 다 폰테가 이탈리아어로 쓴 피가로의 결혼은 오페라 부파이고, 친구인 쉬카네더가 독일어로 된 마술피리는 징슈필이다. 한편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은 오페라 코미크로 분류된다. 비가극에 대해서는 어느 나라든 그냥 오페라(세리아)라고 부르는 것과는 대조적인 현상이다.
코로나19(COVID19)로 일컬어지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2019년 말 중국 우한에서 발생하여 현재까지 전 세계를 강타한 채 대유행은 현재 진행형이다. 지구촌 전체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을 힘겹게 싸워가고 있다. 이제는 어느 나라에서 몇 명의 확진자가 발생하였고 몇 명이 사망했다는 수치는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있다. 이처럼 코로나19는 우리의 생활 패턴을 일순간에 바꾸어 놓았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이동과 만남 자체를 제약하다보니 ‘집콕(집에 콕 박혀 있음)’이니 ‘나생(나혼자 생활함)’이란 신조어가 익숙해져 가고 있다. 지난해 9월 모 TV방송에서 ‘호모 언택트(Homo Untact)’ 다큐를 방영했다. ‘모든 것이 달라졌다’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문명을 만들어야 살아 남을 수 있다’고 하였다. 바로 신인류시대의 도래를 예고한 것이다. 두려운 오늘, 막연한 내일! 다들 코로나 이후의 생활도 그 전과는 많이 다를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코로나가 종식되거나, 코로나 종식에 실패한다 하더라도 사회가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었을 때를 뜻하는 ‘포스트 코로나(Post Corona19)’ 이후가 걱정이다. 프랑스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Gabriel Marcel)은 인류를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라 하였다. 걷는자를 의미하는 이 말은 ‘여행하는 인간’이란 뜻이다. 사람은 끊임없는 여행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발이 묶이어 여행 금단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때에 우리나라 대표 관광지인 경주는 포스트 코로나에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까? ‘코로나가 종식되면 그전으로 돌아가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다면지금 당장 생각을 고쳐야 한다. 신인류시대를 논하지 않더라고 패턴의 변화에 따른 경주관광을 미리 마련하고 대안을 세워야 할 것이다. 관광을 구성하는 3요소는 관광주체(관광객:수요)와 관광객체(관광지:자원,지역,권역), 그리고 관광매체(관광사업체:교통,숙박,음식)이다. 세계적으로 코로나가 잠잠해 질려면 백신 접종이 완료되고 면역체계가 완성 되어야 하는 만큼 해외여행은 언제쯤이나 가능할지 막연하다. 그런 면에서 억제되었던 내국인들은 우선 우리나라부터 관광할 여지가 아주 높다. 따라서 잠재 관광객은 더 많이 대기하고 있는 샘이다. 포스트 코로나의 경주는 관광객이 넘쳐날 것으로 믿어진다. 두 번째, 관광지로서의 경주는 볼거리가 다양하다. 신라 천년의 도읍지로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비롯한 수많은 문화재와 바다, 관광단지, 놀이시설 등이 잘 갖추어져 있다. 마지막으로 관광사업체 측면에서 자고 먹고 즐길거리는 대폭적인 혁신이 요구 된다. 코로나를 경험하면서 잠자리의 패턴을 보면 가족단위의 관광객이 호텔이나 콘도미니엄 같은 다중 숙박업소는 피하고 단독형 농어촌민박(팬션)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였다. 즉 가급적 접촉을 피하면서 검증된 가족 중심으로 독채로 된 숙박시설로 몰린 것이다. 1박에 50~60만 원대의 풀빌라 펜션은 오히려 호황을 누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패턴은 포스트 코로나에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기존 시설의 개보수나 부대시설의 확충을 위해 제도를 완화하거나 개선비용을 저리로 대출받을 수 있도록 알선하는 것도 대안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 먹거리를 보면 비대면으로 식사를 할 수 없는 만큼 칸막이를 한다거나 식탁의 위치 조정 등에 비용 지원을 하여 안전이 보장된 경주의 음식점이 된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경주 관광은 밝을 것이다. 호모 비아토르! 울산 울주 천전리에는 신석기시대 암각화와 더불어 신라 지증왕 14년(513)과 법흥왕 12년(525)에 이곳을 방문(여행)하고 새겨 놓은 명문이 있다. ‘을사년(乙巳年)에 사탁부(沙喙部)의 갈문왕(葛文王)이 찾아 놀러와 처음으로 골짜기를 보았다. …’ 또 신라 혜초(慧超)는 4년(723-727)간 중국 광저우를 출발하여 중인도로 들어가 당시 5개 인도를 여행하고 실크로드 육로를 따라 돌아온 여행기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을 남겼다. 조선시대 연암 박지원(朴趾源)은 정조 4년(1780) 청나라 건륭제(乾隆帝)의 칠순연 축하하사절로 간다온 여행기를 ‘열하일기(熱河日記)로 남겼다. 추사 김정희(金正喜)는 24세 때인 순조 10년(1810)에 아버지 김노경의 사신행렬에 자제군관으로 따라가 청나라 제일의 학자 옹방강(翁方綱), 완원(阮元) 등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고증학을 배우게 되고 이후 큰 업적을 보였다. 이처럼 여행은 한 사람의 감흥을 넘어 역사적인 사료로 남기도 하고 큰 가르침을 배우게도 한다. ‘여행하기 좋은 곳! 경주!’, 지금부터 코로나 이후를 대비한다면 침체된 오늘을 극복하는 제 2의 도약기를 맞는 관광경주가 될 것이다.
불과 16개월 어린 나이에 아동학대로 숨을 거둔 정인 양의 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가운데 경주시가 아동학대 예방과 피해아동 보호 등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적극 추진하기로 해 주목된다. ‘경주시 아동학대 피해제로 종합대책’은 경주시가 그동안 추진해 왔던 유니세프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위한 실천 의지로 보여 지며 제대로 된 시행과 정착이 요구된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이번에 경주시가 아동학대 예방과 피해아동 보호를 전담하는 ‘아동보호팀’을 신설하기로 했다. 그리고 ‘법적 제도적 보호체제’ ‘아동 세이프 콜 신고체계’ ‘피해아동 치료 보호 강화’ ‘시민공동안전망’ 등 4대 과제를 골자로 한 ‘경주시 아동학대 피해제로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아동학대 피해건수 제로로 만들겠다고 했다. ‘법적 제도적 보호체제’ 정비를 위해 ‘경주시 아동학대예방 및 피해아동조례’ 제정, 유니세프가 인증한 아동친화도시 조성, ‘경주시 영유아보육조례’ 일부 개정, 아동보호전담팀 신설과 읍면동 아동학대전담공무원 확대 배치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또 ‘아동 세이프 콜 신고체계’는 주거 밀집지역과 대형마트에 익명성을 보장하는 아이쉴드 신고함 설치, 경주 아이 지킴이 지정하고 협조체계 구축, 포상금 제도 실시, 영유아검진 건강이상아동 통보제도 등을 시행하기로 했다. ‘피해아동 치료 보호 강화’를 위해서는 학대피해아동쉼터 확대, 안심진료비 지원, 다함께돌봄센터 확대, 피해아동 임시보호 공간 확보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또 시민모니터링단 구성, 부모교육 강화, 아이 스마일캠페인 전개 등 ‘시민공동 아동안전망 구축’을 통해 지역사회 전반에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기로 했다. 유니세프가 인정하는 아동친화도시는 만 18세 미만의 모든 아동이 생존과 보호, 발달, 참여 등 4대 권리를 보장받으며 살 수 있는 도시를 말하며 경주시도 그동안 이를 인증을 받기 위해 노력해 왔다. 시는 지난 2019년 말부터 유니세프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위해 유관기관과 업무협약을 맺었으며 지난해에는 아동친화도시 조성 일환으로 ‘아동친화예산서’를 제작해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경주시가 아동학대 제로를 위해 제도를 마련하고 건강한 사회 및 가족 분위기를 정착시킨다면 우리 아이들이 사회의 보살핌 속에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던 아동학대 사건 대부분은 제도적 미비와 사회적 관심 부족과 관계기관의 소극적인 대처 때문이었다. 경주시에는 최근 3년간 총 399건의 아동학대신고가 접수 됐으며 그중 263건이 아동학대로 판명될 만큼 빈번했었다. 경주시의 이번 ‘아동학대 피해제로’를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지역사회에 잘 정착하길 바라며 결코 ‘사후 약방문’이 되지 않길 바란다.
코로나19 장기화와 한파로 연초부터 치솟는 밥상물가가 설 명절 물가까지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돼 경주시의 적극적인 대책이 요구된다. 경북도 물가관리 시스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초 밥상물가는 식재료를 중심으로 지난해보다 크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통시장과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주요 농축수산물 모두 1년 전보다 큰 폭으로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전통시장의 경우 쌀, 쇠고기, 명태, 양파, 고추 등 밥상물가 14개 품목의 가격이 1년 전보다 평균 9.2% 상승했다. 대형마트에서는 고추를 제외한 13개 밥상물가 품목의 가격이 9.3% 올랐다. 이는 지난해 전국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0.5%)을 크게 웃도는 수치라고 한다. 시민들이 많이 소비하는 계란은 고병원성 AI영향을 받아 30.7%나 올랐으며, 특히 양파의 경우 대형마트는 무려 95.5%나 치솟은 것으로 나타났다. 밥상물가 상승이 코로나19 장기화와 한파 등으로 인한 집밥 소비가 늘어난 것으로 분석되지만 곧 다가올 설 명절을 물가는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경주시는 매년 명절과 휴가철을 앞두고 물가 안정을 위해 행정력을 투입해 왔다. 시는 이번 설 명절에도 서민물가 안정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해왔지만 올해는 예년과 달리 물가 상승이 예사롭지 않은 만큼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여 진다. 경주시가 치솟는 물가를 잡기는 쉽지 않겠지만 이 기회를 노려 불법, 부당하게 폭리를 취하는 상행위는 막아야 한다. 또한 원산지나 정량을 속여 판매하는 일이 없도록 철저히 단속해야 한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지역경제기반이 많이 흔들리고 있다. 일부 업종은 이미 휴업을 했거나 폐업을 하려는 영세소상인들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전통시장의 경우 코로나19이후 시민들의 이용이 크게 줄어들면서 크게 위축돼 있다. 이번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통시장이 대형마트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것으로 조사된 만큼 설 명절 꼭 필요한 물품은 전통시장을 이용하는 것이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여 진다.
독립적으로 존재하던 기술, 산업, 서비스(기능) 등이 서로 간의 경계를 넘어 결합됨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융합(convergence)시대이다.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에 정보통신기술(ICT)이 교량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디지털컨버전스의 열풍에도 ‘갬성’이란 단어로 포장된 아날로그적인 감성도 같이 가고 있다. 즉, 피할 수 없는 대세가 될 것 같던 컨버전스 흐름 속에 다양한 분화 현상을 일컫는 디버전스(divergence)가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컨버전스와 디버전스는 서로 상호전제가 되는 상호보완적인 연결선상에 있는 순환적 관계로 이해해야 한다. 관광공간도 이러한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포스트코로나 혹은 ing코로나, with코로나 시대에 관광산업의 미래를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떤 논의가 필요할까? 관광 소비는 감소했는가 아니면 다른 형태로 전환해 가고 있는가? 이동성이 막히거나 스스로 막은 시대의 관광산업에 필요한 것은 어떤 것이고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똑같은 공간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의미가 있고 누군가에게는 의미가 없다면 의미가 있는 사람이나 장소, 감동을 받는 사람들을 어떻게 늘려 나가야 하는가?. 경주라는 도시는 신라천년의 삶 자체를 그대로 드러내주고 있는 문화유산이자 최초의 관광공간으로 지속되어 왔다.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 같은 문화유산은 건축물과 그 공간이 가지는 역사성의 가치와 강요로 인해 닫힌 관광공간으로 구조화되어버렸다. 즉, 경주에는 시간적으로 신라만이 아닌 고려와 조선, 그 후 백년 안의 역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라만의 역사 공간으로 약속된 지각공간이 되어왔던 것이다. 역사가들은 도시를 ‘고유’의 기록물로 보고 있으며 경주는 그 중에서도 두께가 꽤나 두꺼운 역사적 기록물이다. 그런 만큼 경주의 문화자원이 갖고 있는 최초의 지각공간들이 시간이 지나고 시대가 바뀌면서 새로운 관점의 스토리텔링과 공간연구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사실 공간들은 일정한 의미에서 만들어졌거나 의도적으로 생산된 것일 수 있다. 더구나 관광산업을 위한 공간일수록 더 그러하다. 실질적으로 역사성과 교육에만 의존하지 않는 경주만의 독특한 관광공간, 독특하지 않더라도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매력을 찾아야 한다. 이러한 관광공간이 지역주민과 관광객들에게 인정받게 되면 새로운 장소성이 만들어지고 관광자원으로 전환될 수 있다. 장소의 관광자원화 전략은 경주의 문화자원에 대하여 의도적으로 현대적인 관점으로 변화를 꾀하고 그 변화대상에 새로이 긍정적인 장소의 특성을 가미하여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만드는 것이다. 경주문화자원의 관광공간창출은 바로 공간스토리텔링과 직결되며 SNS 등 디지털매체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스토리들이 전달되고 소통됨으로써 새로운 문화관광 공간으로 정착되고, 점진적인 관광수요를 유발할 수 있다. 공간스토리텔링을 통해 장소성의 관점에서 내제된 가치를 끄집어내고, 디지털기술을 매개로 소통하고 거기에 아날로그적인 감성인 ‘갬성’으로 소비까지 일어날 수 있도록 한다면 관광공간텍스트가 공간스토리텔링으로 전환되어 지역민과 관광객이 관광공간의 장소관광자원화를 실현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경주라는 장소가 역사문화유산만이 아니라 다른 공간적인 매력도 충분히 끌어 낼 수 있는 곳이라는 점은 황리단길의 예에서 알 수 있다. 문영미 교수가 쓴 ‘디퍼런트(Different)’의 표지에는 ‘넘버원을 넘어 온리원’이라는 말이 쓰여 있다. 정체성과 차별성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라 여겨진다. 정체성의 개념은 인간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속해 있는 문화와 살고 있는 장소에서도 발견되며, 명사형처럼 굳어진 것이 아니라 동사형처럼 ‘시간’과 ‘장소’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 모든 중립적인 ‘장소’를 의미로 가득 찬 ‘공간’으로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이다. 인간들이 발을 들이고 만지기 이전에 장소는 단순한 물리적 구성물에 지나지 않는다. 장소는 인간에 의해 가공되고 변형되며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다. 이런 점에서 모든 공간은 인간에 의하여 ‘생산’ 혹은 ‘재생산’된다. 이것이 앙리 르페브르가 말하는 ‘공간의 생산’ 혹은 ‘공간적 실천’이라는 개념이다. 결국은 사람이다.
꿈 드넓은 바다를 유유히 헤엄치는 지구에서 가장 큰 동물인 흰수염고래와 나비를 주제로 꿈을 표현한다. 원색의 색감으로 화려하게 나타내며 행복한 꿈, 자유로움에 강렬함을 더한다. 꽃님 작가 010-9664-5790/silver5790@naver.com 경주여고 졸업, 동국대 미술학과 졸업, 개인(초대)전 4회, 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 서울조형아트페어 참여 한국미술협회전, 남부워터칼라페스티벌, 경북수채화페스티벌,한국미술협회전,한국예총전,경주수채화협회전 등 단체전다수 경북미술대전, 신라미술대전, 뷰티풀환경미술대전 수상 현 한국미술협회,경주수채화협회,생각미술학원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