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역 3만2000평 부지를 한 눈에 가늠해 볼 수 있는 육교가 있습니다. 준철도 기념물인 경주역 급수탑과 함께 시작해 성동시장과 경주시내로 바로 연결되는 이 육교는 경주역 육교입니다. 또 다른 경주의 숨은 명소죠. 성동동과 황오동을 이내 가로지를 수 있는 육교를 처음으로 걸어보았습니다. 싸락눈이 흩날리는 날이어서 감성 또한 배가 되었는데요, 왜 늘 소중한 일을 미루기만 했을까요? 오래된 계단을 하나씩 오르다보면 미묘한 설레임이 다가옵니다. ‘경주스카이웨이’라는 별칭이 이해되는 대목이었죠. 나지막하고 고즈넉한 황오동에서 육교를 지나자 바로 성동동 도심의 시끌벅적한 대로가 나타나 판이하게 분위기가 달라지더군요.
이제 경주역이 그 역할을 수행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기차가 멈춘 경주역은 상상하기 싫지만 이제라도 육교를 걸으면서 기관차의 굉음과 플랫폼의 사람들을 볼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육교 위에서는 경주역 구내가 훤히 내려다보입니다. 정말 부지가 넓고 규모가 크다는 것을 새삼 확인 할 수 있습니다. 객차들과 기관차가 보이고 역 구내 부속건물들과 함께 경주기관차사무소도 건재합니다. 직선으로 쭉 뻗어있거나 커브가 심한 여러 선로가 휘감기듯 교차해있는 철로는 시원하게 뻗어있고 대기 중인 기차들이 가쁜 숨을 ‘쉭쉭’ 내쉬고 있지요. 경주역의 속살과 스케일을 고스란히 내려다 볼 수 있어서 더욱 즐겁습니다.
육교에는 낡은 가로등이 설치돼 있는데 가로등에는 각기 관리번호가 매겨져있어 자주 점검하는 것 같습니다. 경주역 철로를 가로지르는 이 육교는 길이만 200여 미터를 자랑한다고 합니다. 육교는 크게 휘어져있는 형태로 아마도 경주의 육교들 중에서 가장 길 것 같았습니다. 육교의 폭은 그리 넓지 않습니다. 두 팔을 벌리니 약간의 여유가 있을 정도니까요. 육교 끝 주변 골목은 매우 낙후돼 있고 좁아서 도무지 같은 하늘 아래의 경주가 아닌 1970년대 어디쯤에서 멈춰 있는 듯 했습니다. 육교를 지나니 도심 상권과 멀리 경주읍성 향일문이 보이는 북성로입니다. 이 육교도 경주역과 그 명운을 함께 할 것 같아 왠지 더 측은해집니다. 도시재생사업에 포함돼 있으니 정체성은 잘 보존하되 깔끔하게 정비되길 바라봅니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봄날, 다시 한 번 이 육교를 천천히 걸어볼까 합니다.
글=선애경 문화전문기자 / 그림=김호연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