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가 전국 최장 미분양관리지역이라는 오명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택보증공사는 최근 열린 제89차 미분양관리지역 선정 회의에서 경주시를 비롯한 기존 9곳의 미분양관리지역 적용 기간을 7월 9일로 1개월 연장했다. 미분양관리지역 연장은 지역 미분양 물량이 좀처럼 해소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주시에 따르면 지역 미분양가구수는 3월 기준 1437호로 2월 1449호 대비 12호가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2월 1433호보다 증가하며 미분양물량이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경주시는 지난 2022년 3월 미분양관리지역으로 지정된 후 오는 7월까지 기간이 연장되며 29개월 연속 관리지역으로 머물게 됐다. 경주시가 미분양관리지역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지난 2016년 11월부터 48개월간 전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미분양관리지역으로 지정됐다가 2020년 10월에야 관리지역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당시 지역 미분양현황을 살펴보면 2020년 10월 미분양은 총 669가구로 직전 6개월 사이 미분양 물량이 800여 가구가 줄어든 상태였기에 가능했다. 미분양 물량이 쌓인 상황에서 향후 대규모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면 미분양 물량 해소는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올해와 내년 약 4000세대가 넘는 아파트 입주가 예정돼 있다. 지난 3월 534호 규모의 아파트를 시작으로 4월 494호, 337호가 입주 예정돼 있다. 그리고 오는 7월 292호, 2025년에도 2647세대 등 향후 1년간 약 4000여 세대가 입주를 시작할 예정이다. 부동산 관계자는 “현재 일부 건설사들이 미분양 물량을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입주가 시작되면 미분양 물량이 확인될 것이다”면서 “미분양 물량이 해소 된다면 관리지역 탈피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금리와 경기 등 부동산 경기 하락으로 미분양 물량의 급격한 해소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미분양관리지역은 미분양 주택이 1000가구 이상인 시군구 가운데 미분양 해소 저조, 미분양 증가, 미분양 우려 등의 요건에서 하나라도 충족되면 지정된다.
“회의·전시, 숙박, 경호·안보, 항공, 파급효과 등 모든 분야에서 경주시가 2025 APEC 정상회의 개최도시로서 탁월한 여건을 갖추고 있다” 주낙영 시장이 6월 2025 APEC 정상회의 개최도시 결정을 앞두고 지난 7일 마지막 관문인 프레젠테이션(PT) 발표자로 나서 경주 개최의 당위성과 강점을 피력했다. 이날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2025 APEC 정상회의 유치계획 현장발표 프레젠테이션은 경주시와 함께 유치 경쟁도시인 인천시와 제주시가 참여했다. 이날 김석기 국회의원, 이철우 경북도지사도 함께해 경주 선정에 힘을 보탰다. 이철우 도지사는 기조발언에서 “경쟁후보 도시 가운데 유일한 기초지자체인 경주는 지방시대 균형발전을 실현할 수 있는 도시”라며 “경북도 차원에서도 적극적인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경주화백컨벤션센터 주변에 정상용 5성급 호텔, 리조트 등 103개소 4463실의 숙박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정부대표단 수요대비 157%를 넘는 수치”라며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경주의 숙박문제에 대해 일축했다.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한 주낙영 시장은 경주는 신라 천년고도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도시이자 한반도 문화유산의 보고로, 대한민국 5000년 역사를 세계 속에 알리고 한국의 발전상을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도시임을 강조했다. 또 APEC의 포용적 성장가치와 정부의 지방균형발전에 최적 모델은 경주뿐이라고 밝혔다. 특히 정상회의가 열릴 보문관광단지는 회의장과 숙박, 전시장 등이 3분 거리로 이동이 매우 짧고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외부경호에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2005년 APEC이 부산에서 개최될 때 한미정상회담은 보문관광단지에서 열린 사실을 들며 요새와 같은 경호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보문관광단지 일원 178만㎡가 2022년 비즈니스 국제회의 복합지구로 지정돼 적은 비용으로 도시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점도 부각시켰다. 이어 50분대 거리의 김해국제공항 등 4개 공항(군사 3, 민간 1)과 KTX·SRT 등 우수한 교통망도 장점으로 내세웠다. 또 G20 재무장관회의, APEC 교육장관회의, 세계물포럼, 세계유산도시기구 세계총회 등 다양한 국제행사의 성공 개최 등 풍부한 국제회의 노하우를 지닌 점도 알렸다. 주 시장은 멕시코 로스카보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인도네시아 발리, 베트남 다낭 등 그동안 정상회의가 역사·문화를 간직한 중소도시에서 성공 개최한 사례도 들며 경주 개최의 당위성을 재차 강조했다. 경주는 대한민국 산업화를 일궈낸 성장축의 중심에 있어 대한민국 경제발전상을 공유할 수 있는 최적지라는 점도 들었다. 그리고 경주의 한수원, 원전, 소형모듈원자로(SMR)와 포항(포스텍, 이차전지), 울산(완성차, 조선), 구미(반도체), 안동(바이오) 등으로 이어지는 영남권 산업벨트의 중심허브 도시라는 점도 강조했다. 특히 지난해 9월 ‘APEC 정상회의 경주유치 100만 서명운동’에서 85일 만에 25만인 경주인구 보다 약 6배 많은 146만3874명이 참여하는 등 많은 국민들의 지지와 성원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주낙영 시장은 “APEC 정상회의 성공 개최를 위한 경호·안보, 숙박, 회의·전시, 항공, 파급효과 등 모든 분야에서 경주가 탁월하다”며 “반드시 유치해 경주는 물론 경북도를 넘어 대한민국을 전 세계에 알리고 APEC 역사에 길이 남을 성공 롤모델로 승화시키겠다”고 밝혔다. 한편 외교부는 이날 프리젠테이션에 이어 향후 개최도시선정위원회 회의를 거쳐 6월 중 최종 개최도시를 확정·발표할 예정이다.
경주시 감포읍 앞 바다에서 길이 7m 88cm의 밍크고래가 혼획돼 8300만에 위판됐다. 포항해양경찰서에 따르면 12일 오전 10시 30분경 경주시 감포읍 대본리 동방 11km 해상에서 6톤급 어선 A호가 고래를 혼획했다. A호는 이날 새벽 4시 30분경 포항시 남구 장기면 양포항에서 출항 후 해당 해역에 도착해 양망작업 중 밍크고..
경주시시설관리공단이 신규직원 9명을 공개 채용한다. 채용 규모는 일반직 4명(행정 2명, 기술 1명, 기록물 1명), 업무직 5명(시설보조 3명, 주차‧매표 2명) 등 총 9명이다. 이중 업무직(시설보조) 1명은 정부의 고졸 인재 적극 채용 권유에 따라 고졸 제한 경쟁방식으로 채용한다.지원서는 10일부터 21일 오후 6시까..
베트남 유학생 수십 명의 대학교 입학금을 가로챈 전 유학 알선업자가 경찰에 붙잡혔다. 경주경찰서는 국내 대학교에 입학할 베트남 유학생의 입학금을 횡령한 혐의(횡령·사기 등)로 유학 알선업자 A씨(56)를 구속했다고 9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2022년 국내 한 대학교와 베트남 유학생 어학연수 프로그램 관련 ..
2025 APEC 정상회의 경주유치 기원 ‘제17회 경주시민의 날’ 기념식이 8일 황성공원 타임캡슐광장에서 열린다.올해 기념식은 ‘시민과 함께, 언제나 경주해’를 주제로 시민들과 시정 성과를 공유하고 서로를 격려하며 즐기는 축제의 장으로 꾸며진다.행사는 식전공연, 1부 기념식, 2부 경주 비전 퍼포먼스와 축하 공연 등..
ARTIST STATEMENT 오류라는 것은 ‘틀리다, 맞지 않다’와 같은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수많은 오류를 저지르고 마주하게 된다. 자신이 세운 규칙이나 신념을 저버리거나, 타인이 기대와 다른 행동을 할 때 사유의 혼란을 야기한다. 하지만 오류로 인해 의도치 않게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 자신의 기준을 넘어서면서 새로운 자신을 발견할 수 있고, 기대와 다른 타인의 행동의 원인을 생각하게 되며, 타인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실수를 통해 배움을 얻게 되듯이, 오류가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6월 들어 30도를 넘는 무더위가 시작되면서 올해도 어김없이 피서철이 다가오고 있다. 경주시는 오류, 나정, 봉길, 관성 등 4곳의 해수욕장을 오는 7월 12일 일제히 개장해 8월 18일까지 38일간 운영한다. 이들 해수욕장의 관리운영은 해당지역 해수욕장 번영회가 맡기로 했다. 시는 또 해수욕장 개장 전까지 사업비 6억2900만원을 들여 화장실, 샤워장 등 편의시설을 점검·정비한다는 내용도 올해 해수욕장 운영 계획에 담아 현재 추진 중이다. 여름철 무더위라는 계절에 경주가 지니고 있는 동해안 청정해변은 하나의 자산이다. 안전에 각별히 신경쓰고, 운영 주체와 지역주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이 발휘돼 이 자산을 제대로 살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관광객의 편의를 위한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고, 바가지요금을 근절시키는 등 피서문화의 품격과 만족도를 높여야 한다. 몇몇 상인의 바가지요금은 관광객들의 불신 뿐만아니라 경주의 이미지를 손상시킨다. 실제 지난 4월 벚꽃시즌 흥무로 벚꽃길 노점에서 데우지도 않은 닭강정 몇 조각을 1만5000원에 판매한 사실이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와 전국적으로 알려지는 등 논란이 일었었다. 당시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진을 두고 ‘바가지요금’이라며 경주시와 상인을 비판하는 글이 빗발치기도 했다. 대부분 업소가 정성을 들여 서비스를 제공하겠지만 한두 곳에서 바가지요금을 받으면 전체가 나쁜 것으로 오해받게 된다. 여기에 도시 전체의 이미지까지 훼손된다. 피서객들을 가장 짜증나게 하는 일이 바로 바가지요금이다. 더이상 바가지요금 논란이 나와서는 안 되는 이유다. 경주시는 바가지요금 근절과 함께 안전과 청결 등 올해 운영 계획에 담긴 내용들을 점검해 피서객 등 관광객 맞이에 한 치의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또 해수욕장 일대 주차와 교통혼잡 등 교통 문제 해결에도 세심한 준비가 필요하다. 경주 동해안은 피서객과 시민들의 휴식과 충전의 공간이다. 마음 편히 즐길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경주 관광의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다.
경주 동해안의 낚시어선에 대한 안전점검이 대대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경주시는 포항해양경찰서,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포항어선안전조업국, 한국전파진흥원 등 유관기관과 합동점검반을 편성해 오는 21일까지 안전점검을 실시한다. ‘대한민국 안전대전환 2024 집중안전점검’ 일환으로 실시되는 이번 합동 점검은 낚시객의 증가에 따라 낚시어선의 안전사고를 미연에 예방하는 차원에서 바람직하다. 시는 이번 점검기간 동안 낚시어선의 불법 증개축, 출·입항 신고, 안전장비 구비·작동, 승선정원 초과, 음주운항, 낚시전문교육 이수 여부 등을 집중 점검한다. 점검 결과 구명·소화설비 미비치, 승선정원 초과, 음주운항 등 중대 위반사항은 엄중 조치한다는 방침이다. 포항해경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경주, 포항 등 관할 지역에서 낚시어선 사고는 총 18건 발생했다. 또 봄철 낚시어선 이용객은 월평균 9000여명으로 파악하고 있다. 지역 내 낚시어선의 작은 안전사고는 있었지만, 대형사고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낚시어선 사고가 발생해 인명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은 끊이지 않고 있다. 관련 당국의 노력과 낚시어선 등 해상레저업 종사자들의 안전의식이 예전보다는 향상됐다고 한다. 하지만 안전사고는 언제나 방심에서 비롯된다. 구명조끼 착용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출·입항 신고, 안전장비 작동 점검 등 해상안전에 대한 점검과 교육·홍보가 더욱 강화돼야 한다. 특히 점검 대상 어선뿐만 아니라 미신고 어선들의 영업활동도 있는 만큼 전체 어선에 대한 점검이 이뤄져야 한다. 사고가 일어날 확률은 미신고 낚시어선이 더 높을 것이기 때문이다. 경주를 비롯해 경북 동해안은 바다낚시 동호인이나 낚시체험을 하려는 가족단위 나들이객이 많이 찾는다. 그만큼 사고 위험성도 항상 도사리고 있다. 이번 합동점검 기간 동안 정비소홀이나 정원 초과 승선, 음주운항 등 불법행위 단속과 더불어 선주들을 대상으로 하는 안전 교육도 강화했으면 한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는 격언처럼, 이번 낚시어선 안전점검이 의례적인 통과절차가 안되게 철저하게 이뤄지길 바란다. 올해는 단 한 건의 낚시어선 사고소식도 들리지 않길 기대한다.
며칠 전 경주의 어느 분으로부터 시의회 의원들이나 공무원들이 시민들의 혈세로 과도한 해외여행을 일삼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그 분에게 혈세 아니라 뭐라도 좋으니 제발 시의회나 시 공무원들이 경주를 떠나 다른 고도나 유적지, 관광지들을 좀 다니며 제대로 공부하면 좋겠다고 맞섰다. 그런 이유가 있다. 경주시 시의원들이나 공무원들이 우물 안 개구리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누구를 만나도 경주가 지붕 없는 박물관이고 담장 없는 유물 전시관이라 말하기 일쑤다. 내가 직접 가본 세계의 고도들은 경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유적을 지니고 있었고 고도를 보존해야 하는 당위성에 대한 시민 의식들도 남다르게 느껴졌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고도들이 자기들 나름대로 고대의 유적부터 현대에 이르도록 각 시대별로 모든 것을 역사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함부로 없애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경주는 일정한 기준을 두고 그 기준에서 벗어나면 가차 없이 허물고 비우기를 밥 먹듯 해 왔다. 그 결과 유적지 발굴, 유적지 정비, 유적 공원화라는 이유로 시간이 지나면 이 역시 역사의 중요한 부분이 될 현재의 삶들이 무턱대고 쓸려나갔다. 수많은 동네가 사라졌고 거기 살던 사람들이 이웃과 친척을 잃고 헤어져야 했다. 반면 정작 보존되어야 할 풍광과 경치는 힘 있는 사람들의 배 불리기로 뭉턱뭉턱 훼손되었다. 불국사 가는 길 배반동에 아파트가 들어섰고 백률사 앞 넓은 들과 동천동 황성동 일대도 아파트 단지로 개발되었다. 심지어 불국사 앞 주차장은 당시 권력자들의 담합과 신성한 불국의 성역을 지켜야 할 불국사 관계자들의 어이없는 묵인으로 인해 용도변경까지 되면서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다. 또 다른 병폐도 있다. 위의 개발 지역을 포함, 용강, 충효, 금장 등 경주를 둘러싼 이른바 ‘신도시’들이 한결같이 경주와 전혀 상관없는 문자 그대로 신도시가 되어버렸다. 이들 도시들을 지나다 보면 이곳이 과연 경주의 도시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로마나 피렌체, 파리, 교토에서 만난 특유의 도시 정서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물론 도시의 특성을 떠나 경제성과 도시 편의성을 높인다는 면에서 무조건 비판만 할 수 없다. 그러나 경주의 경우, 기존의 인구밀집 지역은 사람이 사라진 자리에 꽃밭만 남았고 신도시는 완전히 특성을 잃은 이상한 현상이 곳곳에서 벌어져 과연 이게 온전한 유적지 보존이고 관광도시 개발인지 의심스럽다. 명칭과 마을 기능이 완전히 뒤집힌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교촌한옥마을이 그렇다. 한옥마을은 원래 살던 교촌의 주민들을 대거 몰아내고 기와 얹은 상가건물만 왕창 지어 놓은 기형적인 마을이 되었다. ‘마을’이란 사람들이 살아야 마을인데 정작 중요한 사람들은 몰아내고 상가만 몰아넣은 것은 기막힌 실정(失政)이다. 교촌 한옥마을이 아니라 그냥 어정쩡한 교촌먹자골목이다. 중심상가에 만든 ‘금리단길’을 걸어도 마음이 착잡하다. 황리단길의 북적거림을 중심상가까지 넓혀 보려는 의도겠지만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단순히 길을 지정하고 치장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내가 고등학교 다니던 80년대는 이 길이 사시사철 사람들로 넘쳐났던 길이다. 그럴 수밖에 없던 것이, 이 길에서 반경 2km 이내에 성건동, 중부동, 황남동, 황오동, 사정동, 황성동, 인교동 등이 밀집해 대도시 못지않은 인구 응집력을 과시했다. 지금 성건동과 중부동 이외 대부분 마을들이 유적정비 명목으로 사라지거나 공동화되었다. 황리단길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그 일대가 7~80년대의 모습을 유지하고 그 속에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 복고적 열풍에 부응한 덕분인데 생짜로 길 이름을 짓고 휘황한 가로등을 배치한다고 해서 경주 사람이나 외지 사람들이 관심 가질 리 없다. 그래서라도 더욱 경주를 이끌 시의회나 공무원들이 제대로 된 해외답사를 해야 한다. 단, 이런 답사는 단순히 형식적 답사가 아닌 철저한 목적과 공부를 전제로 한다. ‘로마 한 달 살기’, ‘파리 한 달 살기’ 같은 프로젝트 아래 공적 목적에 충실한 답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좀 더 경주다운 장기적이고 발전적인 고도 발전안이 만들어질 것이다. 여행사가 짜 맞춰주는 형식적인 공식 방문지 한두 곳으로 생색만 내는 해외답사는 당연히 나도 반대다.
아기 공룡 둘리가 김수정 작가에 의해 탄생한 것은 1983년 4월이었다. 이 둘리 이야기는 10년 조금 넘게 어린이 잡지 책에 연재되어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만화를 보고 자란 어린이들은 이제 대부분 어른이 되었으나 귀여운 말썽꾸러기 둘리를 여전히 잘 기억하고 있다. 이 만화 내용 탓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아직도 공룡과 사람들이 같이 살았을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서울의 Y대학 공대 전기공학부에서 2015년 가을 학기 교양 과목으로 ‘창조과학 세미나’라는 강좌를 개설하겠다고 하여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이 과목을 담당하기로 되어 있던 C교수는 기존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빅뱅(Big Bang, 우주 대폭발) 이론이나 진화론 등을 모두 부정하였다. C교수는 구약성서 창세기 제1장 제1절 ‘신이 이 세상과 그 사람들을 엿새 동안 창조하였다’는 내용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 ‘창조과학회’ 회원들의 생각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들은 지구의 역사를 6-7000년 정도로 여기고 ‘공룡과 인간이 같은 시대에 살았다’고 믿는 것으로 보인다. 과학적이어야 할 자연과학 분야 교수의 생각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이런 사고(思考)는 17세기에도 있었다. 당시 대주교였던 제임스 어셔(Archbishop James Ussher)는 구약성서의 족보를 토대로 이 세상은 기원전 4004년 10월 23일 전날 밤에 창조되었다고 계산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19세기 초까지도 신학 교리가 되었으며 신학자들은 이에 심취해 있었다. 17세기 초에 코끼리 뼈와 돌도끼가 공반되어 런던에서 발견되었고 그 이후에도 이러한 발견이 적지 않게 있었다. 그리하여 지구의 역사가 훨씬 더 오래되었다고 여겨졌으나 당시 학자들은 이러한 물증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18세기 말 산업혁명으로 철도, 운하 및 건설 사업이 활성화되어 지질학이 체계적으로 연구되면서 지구의 역사에 대해 기존 학설이 재검토되기 시작하였다. 지질학자들은 다양하고 독특한 동물 뼈가 층위별로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이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때만 하더라도 지구의 역사가 6-7000년 보다 더 오래되었다는 주장을 한 사람들은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1858년 영국 남서부 브릭스햄(Brixham) 동굴에서 코뿔소, 맘모스, 동굴 곰의 뼈와 석기가 한 지층에서 발견되어 상황이 급반전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절멸된 동물 뼈와 인간들 도구가 같이 출토되었다는 점이다. 만약 둘리와 사람이 함께 살았다면 ‘둘리와 사람 발자국’ 혹은/그리고 ‘둘리와 그 친구들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 동일한 층위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이를 고고학에서는 공반관계(共伴關係)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공룡 뼈와 고성 덕명리, 의성 제오리, 울산 천전리와 대곡리 암각화 인근에서 공룡 발자국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공룡 뼈와 도구 그리고 공룡과 사람 발자국은 함께 발견되지는 않았다. 이는 공룡과 사람은 동시기에 같이 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룡과 중생대 인류는 신생대 제4기에 각각 살았기 때문에 둘 간에 최소한 6500만~1억 년 이상 시간 차가 나기 때문에 공반관계가 성립될 수 없다. Y대학에서 ‘창조과학’이라는 교양 과목을 개설하겠다고 하자 학생들은 강하게 반발하였고 과학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당국은 ‘건학 이념’과 궤(軌)가 동일한 창조과학을 강의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고 반문하였다. 믿을 수 없는 대응이다. 당시 Y대학에서 그 강좌가 개설 혹은 폐강되었는지 확인하지는 못했다. 다만 이 과목을 개설하겠다는 교수나 이것이 문제가 없다는 학교 측이나 모두 황당할 뿐이었다. 아기 공룡 둘리와 사람이 같이 살았고 지구의 역사는 6~700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뭐 하나에 꽂히게 되면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보거나ㅁ 들으려고 하는 습성이 있다. 나이가 들면 사고가 고착되어 더 심해진다. 한두 사람의 말만 듣지 말고 싫더라도 몇 사람의 말을 듣고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지 않으면 ‘본인이 모르는 줄도 모르고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다 간다.
대만의 어느 프로그램에서 ‘국가별로 가장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을 뽑았다. 독일인들은 시간 안 지키기는 걸 제일 싫어하고, 프랑스인들은 걸어 다니면서 먹는 걸 못 견딘다고 했다. 남에게 폐 끼치는 걸 싫어하는 일본인이지만 국수를 먹을 때 소리를 못 내게 하는 걸 싫어한다고 했다. 그럼 한국인들은 뭘 가장 싫어할까? 일본의 어느 잡지에서 조사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 이름하여 ‘7가지 한국 사람들을 화나게 하는 확실한 방법’이란다. 그 순위는 이랬다. ‘라면 먹을 때 김치 안 주기’(1위) ‘고기 구워 먹을 때 소주 안 주기’(2) ‘밥 먹은 뒤에 커피 안 주기’(3) ‘화장실 갈 때 휴대폰 못 가져가게 하기’(4) ‘인터넷 속도 느리게 하기’(5) ‘엘리베이터에서 ‘닫힘’ 못 누르게 해 자동으로 닫힐 때까지 기다리게 하기’(6) 그리고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할 때 먼저 일어나지 않고 앉아서 기다리게 하기’(7위)다. 장난 삼아 매겨본 랭킹이지만 나한테 대입해 보니 고구마 먹은 듯 하나같이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아, 난 한국 사람 맞는구나!’ 16년 동안 비행기 승무원으로 근무했던 분이 쓴 글을 보면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인사를 건네면 유독 한국 승객들이 인색하다고 한다. 공항이나 기내에서만 그런 것도 아니다. 우리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자주 보는 광경이다. 오가며 하루에 몇 번도 만날 관계다 싶어 볼 때마다 인사를 건네는데, 반응은 받아주는 분만큼이나 아닌 분들도 계신다. 무반응의 경우 그때부터 흐르게 될 어색한 침묵을 어떻게 견디려고 그 힘든(?) 걸 선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우리는 잘 참아낸다. 어느 책에서 본 적이 있는데, 먼저 인사하는 것은 스스로 낮은 자라는 걸 인정하는 행동이라고 쓰여 있었다. 한국인이 인사에 인색한 이유치고는 강렬(!)했다. 여태 친절과 배려, 환대와 겸손이 상호 관계를 건강하고 동등하게 만드는, 인사의 본질이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혼란스러웠다. 그런 다음 일본 유명 디자이너는 그 책에서 인사를 아주 예술적으로 정의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하는 인사는 상대와의 적절한 간격을 측정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해요.” 인사를 했을 때 상대가 기분 좋게 받아주느냐? 말없이 받아주지 않느냐? 에 따라 거리를 어느 정도로 유지해야 할 지가 가늠이 된다는 거다. “그러면 불필요한 마찰이 없어져요. 마찰이 생기지 않는다는 건 좋은 기분을 유지하는 데 아주 중요하거든요.” 인사를 너무 정치 역학 구도로 해석하는 게 아닌가 싶다가도 내가 인사를 할수록 불편했던 이유가 바로 이거였구나 싶기도 했다. 다시 한국인들로 돌아와서 그들은 그럼 어떤 걸 좋아할까? 아마 ‘외국인들이 정리한 한국인의 ‘응’ 사용법‘ 같은 걸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가령 한국인이 응↘ 하고 끝을 내리면 ‘맞아, 오케이’라는 의미란다. 자, 각자 화살표대로 따라 발음해 보시라. 응↘↗는 반대로 ‘노! 그게 아니야!’ 맞다. 우린 이렇게 사용한다. 그럼 응↗은 ‘뭐라고?’라는 의미다. 웃기는 것도 있다. 응↓ 하면 (전화통화 시)‘듣고 있어’의 뉘앙스란다. 전화기에다 대고 계속 응↓응↓거린다면 그는 분명 한국인이라는, 외국인들의 한국인 구별법이란다. 역시 전화랑 관계가 있는 건데 그럼 이건 뭘까? 응↘응↗응↗ 이 소리는 ‘그래, 전화 끊어’ 란다. 끝이 살짝 올라가는 ‘응’을 여러 번 반복한다면 ‘나 이제 전화를 끊어야겠어’ 라거나 ‘그만 통화하자’는 걸 상대방이 눈치챌 수 있다. “응” 하나로 아주 다양한 맥락을 주고받는 우리는 한국인이다. 외국인들은 우리의 이런 습관도 재밌어한다고 한다. 한국인들의 독특한 화장지 사용법인데, 한국인들한테 “휴지 한 장 주세요.” 하고 부탁해 보라. 한 장을 주는 한국인들은 없다. 티슈를 꼭 두 장 건넨다. 하나 주면 정(情)이 없다나? 그 외에 한겨울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신다면 무조건 한국인이고, ‘당기시오’라고 적힌 문을 막무가내로 밀고 나가도 한국인이다. 당기라는 문을 기어이 미는 데는 나름 과학적인 이유가 있다. 당기는 것보다 미는 것이 관성의 법칙에 맞기 때문이다. 즉, 미는 행위는 사람의 진행하는 방향과 같아서 당기는 것보다 힘이 덜 든다는 걸 한국인들은 본능적으로 아는 거다.
월성 안의 궁궐 유적을 발굴하다. ‘作新宫室 儉而不陋 華而不侈(신작궁실 검이불루 화이불치)’ 『삼국사기』「백제본기」 ‘온조왕’편 기사이다. 새로 궁궐을 지었는데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는 의미이다. 이번 월성 발굴에서 밝혀지고 있는 신라 궁실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고 출토 유물도 검박한 편이다. 따라서 ‘儉而不陋, 華而不侈’는 백제뿐만 아니라 신라의 궁궐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월성 전체를 발굴하면서 궁성을 이루는 주요 건물들이 모여 있는 중앙 건물지인 C지구를 주목하게 되었다. 이 지구에서 정사각형 담장으로 둘러싸인 통일신라 후기 건물지 17개 동이 확인되었고, 공무수행 기록 등이 담긴 목간, 벼루, 각종 토기와 토우 등 다양한 유물도 출토되었다. 특히 이곳에서 출토된 다수의 벼루는 이곳이 관청이었음을 추정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는 유물이고, 터번을 쓴 토우는 서역인들과 활발한 교류를 했던 흔적이라 주목을 하게 되었다. 월성에 대한 여러 기록 중에는 문헌 외에도 목간(木簡)과 기와나 토기에 새겨진 여러 문자 자료가 있다. 목간은 지금의 종이와 같은 용도로 사용하였는데, 길쭉한 나무 위에 간단한 글을 써서 정보를 전달하거나 남기기 위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토양이 산성이 강한 탓도 있지만 유기질인 나무이기에 남아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특히 이번 발굴 과정에서 수습된 목간은 주로 행정문서용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문제, 윗사람의 명령 지시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2016년~17년에 출토된 목간 중에 ‘병오년(丙午年)’이라는 완전한 간지(干支) 목간이 처음 발견되었다. 병오년은 526년(법흥왕 13), 또는 586년(진평왕 8)으로 추정하고 있다. 병오년 목간에는 ‘지방민의 노동력을 동원하여 일벌(一伐)이라는 관직을 가진 자가 이들을 통제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즉 6세기 무렵 지방민을 동원할 정도의 대규모 정비 사업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목간에는 ‘전중대등(典中大等)’이라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관직명이 등장하였고 중국 주(周) 무왕(武王)의 동생인 ‘주공(周公)’의 이름도 보인다. 신라는 6세기 이전에는 신라 고유한 말로 이름을 지었으나 6세기 후반 즈음에는 중국의 유명한 사람의 이름을 따라 짓는 경향이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목간 외에도 기와나 토기에 찍거나 새긴 문자 자료가 있다. 확인되는 문자 자료는 ‘의봉사년개토(儀鳳四年皆土), 한(漢), 한지(漢只), 정도(井桃), 습부정정(習部井井), 정(井), 주(朱), 본(本), 동궁(東宮; 태자, 또는 태자가 사는 곳), 전인(典人; 신라의 하위 행정기관)과 도부(嶋夫; 토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새긴 사람 이름으로 추정)’ 등이 있다. 이들은 어떤 특정 시점을 지칭하거나 신라 6부 및 궁궐과 연관된 자료로 추정된다. 토기나 기와에 새겨진 문자는 한문에 익숙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구분한다. 또, 신라 사람의 모습을 추정해 볼 수 있는 출토 유물로는 토우나 토용, 석인상 등이 있다. 월성 해자에서도 사람과 동물을 작게 본떠 만든 토우가 나왔다. 사람은 두 팔을 벌린 모습, 말을 탄 모습 등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터번을 쓴 소그드 사람(중앙아시아의 이란계 민족)으로 추정되는 토우도 있어 신라와 서역과의 교류를 엿볼 수 있다. 동물 토우는 말, 염소, 돼지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현재 발굴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앞으로 당시 신라 사람들의 궁중을 비롯한 백성들의 생활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월성의 발굴과정과 그 성과를 알아보고자 한다면 먼저 월성 발굴현장에 있는 ‘월성이랑’을 찾고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https://nrich.go.kr/gyeongju/)에서 발간한 안내 책자 ‘찬란했던 신라 왕궁 세상에 나오다, 월성’을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또 최근에 교촌마을 건너편에 개관한 숭문대를 찾으면 월성을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 같다.
봉지 날다 박상봉 공중에서 물장구친다 땅으로 내려오기 싫은지 공중에서만 논다 건물 창유리와 가로수 이파리 쪽으로 곤두박질치기도 하지만 요령껏 빗줄기 한쪽 끝 붙들고 비 내리면 젖어 하염없이 웅크린 몸으로 유배되는 봉지 억누르고 눌린 것이 봉지다 핏기 뽑아버린 빈 봉지 몸통 너머 세상이 보인다 키 큰 나무 넘어 하늘 높이 사무쳐 오르다가 땅속 깊이 뻗쳐 내리다가 나무의 팽팽한 긴 외로운 가지 끝에 와 덜컥, 안긴다 오갈 데 없는 찢어진 봉지 더 이상 밀고 갈 힘없어 비바람에 송두리째 흔들리는 나무에 등 기대고 머물다가 만 리 밖에서 바람이 부르면 후득 후드득 깃을 털며 저문 언덕 넘어간다 바람의 어깨를 깨물고 울창한 공기의 숲으로 기억 속 절망 딛고 길고 긴 하늘 자락 붙들고 일어서는 꿈틀꿈틀 솟아오르는 봉지는 팔뚝보다 질긴 근육을 가졌다 타인과의 교감 없이 메말라가는 삶의 고독 봉지는 원래 내용물을 담아야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시인은 그러나 그 속에 담긴 “핏기”를 “뽑아버린 빈 봉지 몸통”, 용도를 다한 비닐 봉지를 통해 세상을 읽는다. 그걸 우리는 ‘봉지의 자유’라고만 쉽게 단정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땅으로 내려오기 싫은지 “공중에서 물장구‘치다, 건물 창유리와 가로수 이파리, 비에 젖어 “젖어 하염없이 웅크린 몸으로 유배되는” 지상까지의 이동과 거기서 겪게 되는 “억누르고 눌린” 일까지가 바람과 비 같은 자연현상이, 흙이나 돌과 다른 사물을 통한 외발적 요인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인이 카메라로 잡은 봉지의 생의 겹은 여럿이기도 한 것이어서, 이번에는 “키 큰 나무 넘어 하늘 높이 사무쳐 오르다가/땅속 깊이 뻗쳐 내리다가” 쓸쓸하게도, “나무의 팽팽한 긴 외로운 가지 끝에 와 덜컥, 안긴다.” ‘팽팽한 긴 외로운’이라는 세 개의 관형어를 거느린 나무 역시 타자와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오랜 고독과 연민을 가진 존재가 아닌가. 거기서 용도 폐기를 넘어 “오갈데 없어 찢어진” 봉지는 외로운 존재에게 안기다가 등 기대고 머물지만, 그것도 오래 가지 못한다. “만 리 밖에서” 바람이 부르는 소리에 광활하고 울창한 공기의 숲으로 “후득 후드득 깃을 털며 저문 언덕 넘어” 날아갈 수밖에 없다. 시인은 “꿈틀꿈틀 솟아오르는 봉지는/팔뚝보다 질긴 근육을 가졌다”고 하지만, 문명의 편의성에 물들어 물건을 담는 용도로 쉽게 쓰이는 봉지가 타인과의 교감 없이 메말라가는 삶의 고독도 아울러 말하고 있음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일상의 용도에서 폐기 처분되어 “길고 긴 하늘 자락 붙들고 일어서는” 이 비닐 봉지의 신산한 삶의 층위를 입체적으로 묘사한 이 작품은 우리 시단에서 하나의 경향으로 자리잡고 있는 생태시의 일반적 경향들과 차별성을 보여주면서, 하잘것없는 존재를 시인 특유의 미학으로 건져올린 범상하지 않은 깊이까지 지녔다.
‘황오재즈페스타 vol.3’이 오는 14일, 15일 양일간 경주문화관1918광장에서 열린다. 행사 시간은 오후 3시부터 10시까지다. <사진> 이번 행사는 황오동만의 독창적인 콘텐츠를 도입해 관광·상권 활성화는 물론 경주시민 및 관광객의 문화향유 증대를 위해 마련됐다. 특히 지역 전문 재즈뮤지션의 공연뿐만 아니라 관람객들을 위해 로컬부스, 먹거리부스 등을 마련해 페스타 분위기를 더욱 즐길 수 있도록 한다. 또 글로벌 퍼레이드와 연계해 다양한 볼거리와 현장참여 프로그램을 확대했다. 한편 경주시 황오동 원도심 황오재즈페스타는 지난 2021년부터 현재까지 3회째 이어져오고 있다. 경주시 관계자는 “주요 관광지에 집중돼 온 경주 방문객들에게 원도심만의 특색 있는 즐거움을 찾아볼 수 있는 행사로 많은 관심을 바란다”고 말했다.
지역 청년마을 ‘가자미마을’의 2024년 1기 참가자들이 각자의 시각으로 담아낸 ‘감포’를 선보였다.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이틀간 열린 ‘가자미스토어 팝업샵’에는 가자미마을에서 감포를 즐기고 있는 9명의 청년들이 만들어낸 ‘감포’가 지역주민과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서울, 부산, 대전, 경기 등 각기 다른 지역에서 온 9명의 청년들은 감포에서 생활하면서 직접 보고 느낀 것들을 상품으로 만들어 냈다. 감포의 풍경, 감포 바다, 감포 해녀, 가자미마을을 거쳐 경주에 정착한 청년들의 이야기를 엽서와 같은 굿즈 또는 체험상품으로 만들어 팝업샵을 찾은 지역주민과 관광객들에게 제공했다. 가자미마을 팝업샵을 기획한 청년들은 “저희가 느낀 감포라는 지역을 상품으로 다 담아내지는 못했지만, 감포라는 지역이 단순한 어촌마을이 아닌, 특유의 분위기와 이야기를 품은 마을이라는 것을 전하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며 “팝업샵을 통해 체험자들이 조금이라도 감포를 이해하게 됐다면 우리의 목표는 달성한 것이나 마찬가지다”고 말했다. 이어 “청년마을이라는 것을 우연히 알게 돼서 신청해 감포지역에서 지내게 됐지만, 이번 팝업샵을 함께 준비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젊은 나이에 배를 운영하는 선장, 가자미마을을 통해 경주에 정착하게 된 앞 기수들을 인터뷰하면서 ‘나도 경주에 정착해봐야겠다’라는 마음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됐다”고 강조했다.
화재는 언제든 예상치 못한 재난으로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합니다. 특히 공동주택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화재예방에 대한 더욱 신중한 대응이 필요합니다. 이에 따라 우리는 다양한 측면에서 화재예방에 집중하고, 사전 대비 및 대응책을 마련하여 안전한 주거 환경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먼저, 화재예방은 개인과 가정 내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는 가스 및 전기 시설을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화재 발생 시 대응할 수 있는 소화기와 화재경보기를 설치해야 합니다. 가연물은 안전한 장소에 보관하고, 쓰레기는 정기적으로 처리하여 화재 위험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또한, 가정 내 화재대응 계획을 마련하고 가족 구성원들과 함께 화재 대피 및 대응 훈련을 실시하여 비상시에 신속하고 안전한 대응이 가능하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공동주택에서는 이웃 간의 협력이 매우 중요합니다. 건물 내에서는 복도와 비상구를 뚫어두고, 화재 대피로를 방해하는 물건을 배치하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건물 관리자와 협력하여 화재예방 시설을 유지보수하고, 정기적인 화재 대피 훈련을 실시하여 모든 거주자가 대처 및 대피 절차를 익힐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건물 관리자는 화재예방을 위해 건물 전체를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유지보수해야 합니다. 화재 경보 시스템 및 소화시설의 작동 여부를 확인하고, 건물 구조의 안전성을 유지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또한, 화재대응 계획을 마련하고 거주자들에게 화재예방에 대한 교육 및 정보를 제공하여 전반적인 화재예방 활동을 지원해야 합니다. 화재가 발생했을 때는 신속하고 침착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화재 대피 경로를 잘 알고, 비상상황에 대비하여 필요한 비상연락망 및 구조 계획을 마련하여야 합니다. 또한, 화재 발생 시 신속한 대피 및 구조활동을 위해 건물 내의 모든 거주자들이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합니다. 최종적으로, 화재예방은 우리 모두의 공동 책임입니다. 개인의 노력과 협력을 통해 우리는 안전한 주거 환경을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함께 노력하여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며, 안전하고 행복한 공동체를 구축해 나가는 데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지속가능발전’은 ‘미래세대가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손상하지 않는 범위에서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발전’이라고 정의한다. 이 보고서(「우리 공동의 미래(Our Common Future)」, 1987)는 ‘필요’와 ‘환경 용량의 한계’라는 두 가지 핵심 개념을 담고 있다. 이 보고서는 빈곤 원인을 사회적·문화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고 생산과 소비문화의 가치와 방향을 재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이창언·오수길·유문종·신윤관, 2013: 36). 1982년 세계문화정책회의 선언은 처음으로 문화를 유형문화뿐만 아니라 삶의 방식, 사회조직, 가치·신념 체계를 포괄하는 광범위한 개념으로 명시하였으며 이러한 문화 정체성의 개념을 연결시켰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Blake, 2023).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문화의 필요성이 적극적으로 요청된 것은 1992년 유엔환경개발회의(UNCED)이다. 이 회의에서 채택된 의제21(환경과 개발에 관한 리우 선언)의 원칙 9와 원칙 10에는 지속가능발전에서 문화의 중요함을 언급하고 있다(김진희, 2018: 59). 이어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요하네스버그 선언에서는 인류 연대감 구축의 중요성을 인지하면서, 인종, 장애, 종교, 언어, 문화 및 전통에 상관없이 세계 문명 및 민족 간 대화와 협력의 증진을 촉구한다. 문화가 사회, 경제, 환경에 이어 지속가능발전의 네 번째 기둥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유네스코 「세계문화다양성선언(The Universal Declaration on Cultural Diversity)」(2001)을 통해서다. 세계문화다양성선언이 명시한 “자연에 있어 생물 다양성이 중요하듯이, 인간에게는 문화 다양성이 필요하다”는 언설은 자연의 일부로서 인간의 지속가능성의 근원에 대한 인식을 함축한다(이철호·박소윤, 2020: 19). 국제사회는 지금까지 발전의 진정한 성공에서 문화가 중요한 공헌을 한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해 왔다. 1998년 발전을 위한 문화정책 정부 간 회의는 문화 다양성과 지속가능발전 개념을 제시했다. 2000년대에는 유네스코의 세계문화다양성 선언,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2003년), 문화다양성협약(2005년)이라는 지속가능발전개념을 기본원칙으로 규정하였다. 2개의 문화에 관한 국제 조약이 잇따라 성립하고 있으며, 그러한 가운데 문화를 ‘경제’, ‘환경’, ‘사회’와 나란히 지속가능발전의 측면의 하나로서 자리매김하려고 시도하는 논의도 볼 수 있게 되었다. 세계지방정부연합(UCLG)의 2004년 문화의제 21은 도시의 문화적 특성에 따른 지속가능발전을 돕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2010년 UCLG는 경제, 사회, 환경과 함께 문화를 지속가능발전의 4번째 축으로 채택했다(이철호·박소윤, 2020: 19-20). 2005년 유네스코(UNESCO)는 지속가능발전교육을 매개로 지속가능발전에 대한 새로운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이는 지속가능한 발전 담론과 문화(culture)의 결합이었다. 유네스코는 개인의 가치관의 전환이 세계의 전환의 전제로 보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ESD(지속가능발전교육)라고 제시한다. 유엔은 2010년과 2011년 ‘문화와 발전 결의안’을 연속 결의했다. 이 결의안은 지속가능발전과 새천년개발목표(MDGs) 달성에 문화의 중요성을 천명한다. 2012년 리우+ 20정상회의는 지속가능발전에서 문화의 가치를 확인했다. 유네스코가 주도한 2013년 항저우 문화와 발전 국제회의는 지속가능발전의 동인으로서 문화를 포스트 의제에 포함시킬 필요성을 천명했다. UCLC도 2015년 문화실천21을 통해 지속가능발전문화 실행을 위한 지침을 제시한다. 문화실천21은 문화정책, 공공정책에 관한 실행지침으로써 문화·권리·시민권, 지속가능발전문화, 지방정부의 책임이라는 세 가지 가치를 제시하고 있다.
2004년 어느 날 대학교서 함께 지내던 시간강사 교수님이 “경주에 꼬리 짧은 개가 있다는데 신라개라고 합니다. 한번 연구해 보실랍니까?”라는 물음에서 경주개 동경이 혈통고정화 연구가 시작되었다. 경주개 동경이의 역사성이 2005년에 최석규 교수에 의해 확인된 후에 경주시에 경주개 동경이의 혈통고정화 연구에 대한 요청을 무수히 했지만, 결국 최석규 교수의 과거 방사성 폐기물 매립장 반대 환경운동 전력이 걸림돌이 되어 무산되었다. 2006년 7월 31일 구미시의 적극 도움으로 산업자원부 RIS(지역혁신특화사업)인 ‘토종견 동경구를 주제로 한 애견문화테마파크 조성(구미시)’ 과제로 선정되어, 1차 사업인 포럼 사업비로 2000만원이 배정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경주시 요청에 의해 경주개 동경이 혈통고정화 사업은 경주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경주시의 요청에 의해 반려동물 학회와 페티앙 연구진이 함께 혈통고정화 사업에 필요한 연구비와 연구계획을 세웠다. 계통번식, 혈통고정화, 유전형질 등 3분야로 구분하고 분야별로 약 3억여원으로 4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요청하였으나 모든 예산은 반영되지 않았고, 확보된 예산은 2000만원 뿐이었다. 사업진행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서라벌대학에 함께 있던 성기창, 이은우, 박순태 교수의 도움으로 경주개 동경이 혈통고정화사업이 출발되었고, 희생과 봉사의 긴 여정의 시작이 된 것이다. 2006년, 경주시 축수산과 이상호 계장님에 의해 확인된 동경이를 키우고 있는 농가를 방문조사했다. 경주 곳곳을 방문하여 확인하고 수집된 개체 중에서 경주개 동경이의 형질을 지닌 73두가 경주개 동경이 혈통고정화 연구의 원종이 되었다. 2008년 6월에 경주개 동경이의 외형과 유전형질의 특성 확인과 품종 표준화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제1회 경주시민의 날에 ‘경주개 동경이’라는 견명으로 시민들에게 공개하였다. 그러나 매년 경주개 동경이의 예산확보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예산이 세워졌다가 없어지길 수차례나 되었고, ‘최교수님! 첨성대도 팔아야 할 이 시기에 개 사료비가 웬 말입니까?’라 했던 시의회 의원의 말이 아직도 섭섭한 말로 가슴에 남아 있다. 수많은 곡절을 겪은 끝에 2011년 3월에 경주개 동경이 천연기념물 신청을 경상북도 문화재심의위원회에 했지만 심의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조직적인 반대와 경상북도에 천연기념물로 2종류의 토종개가 지정되는 것은 정부의 지원이 축소될 수 있다는 논리로 반대의 분위기가 확산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연구결과를 경상북도 문화재위원회 심의에서 설명할 수 있는 마지막의 기회를 경주대학교 최재영 교수가 만들어 주었다. 드디어 2011년 10월 27일에 경상북도 문화재 심의위원회에서 경주개 동경이 천연기념물 심의가 의결되었고, 11월 16일에 문화재청 천연기념물 지정 신청을 하였다. 2012년에 문화재청 심의위원회에 의결되어, 4월 4일 경주개 동경이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지정이 예고되었다. 동경이 연구팀에서 서라벌대학에게 경주개 동경이 사업의 주관을 요청했지만 학교는 받지 않았다. 사업을 반대했던 학교가 천연기념물 지정 예고가 되자 4월 9일에 동경이 소유권 이의신청을 문화재청에 요청하는 바람에 천연기념물 지정은 연기되었다. 10년의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가자 수십 번 문화재청을 방문하였고, 어느 날은 문화재청 천연기념물과의 큰 책상에 엎드려 엉엉 울면서 사정했던 때가 나를 여기까지 지켜오는 원동력이었다. 나는 저먼 세퍼드의 아버지 폰 스테파니츠 같이 독단적으로 이끌지 못했다. 하지홍 교수와 같이 끈질기지도 못했다. 공무의 갑질에 그냥 주저 앉아 버렸다. 무수히 많은 인연들이 스스로 나를 떠났다. 나는 이 일을 후회한다. 그러나 또 가고 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연구사업은 원래 불가능한 것이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내 마음에 항상 함께 했던 우공이산(愚公移山), 마부작침(磨斧作針), 욕궁천리목(欲窮千里目), 수시여전(受施如箭) 덕분이다.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면 아무것도 두려워 하지 말라(Do right and fear no one)”라는 좌우명을 가지고 주변의 멸시를 뿌리치면서 저먼 세퍼드의 품종 표준화를 완성한 막스 폰 스테파니츠로 나도 남고 싶다. 최석규 경주개 동경이 혈통보존연구원장 경주신문 독자위원회 위원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본지가 지난 1992년부터 ‘孝子, 烈女碑(효자 열녀비)’를 제목으로 연재한 고 함종혁(咸鍾赫: 1935~1997) 선생의 기사를 토대로 그 현장을 다시 찾아 점검한다. 함 선생은 1963년 동아일보 특파원으로 경주에 부임해 경주의 문화재를 알리는데 주력했다. 함종혁 선생이 본지를 통해 전했던 경주지역의 효자, 열녀 이야기를 재편성해 선조들의 충효사상을 되새겨본다. 그리고 현재 효자·열녀비에 대한 관리 상황도 함께 점검해본다 /편집자주 ① 안강읍 갑산리 ‘효부이씨 정려비’<孝婦李氏 旌閭碑> 안강읍 갑산리에는 임진왜란 당시 적장이 효부(孝婦)의 효행에 감복해 왜적의 침탈로부터 면하게 됐다는 일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효부이씨 정려비(孝婦李氏 旌閭碑)에 새겨져 있는 효부 이야기다. 이 비각은 경주에서 안강읍으로 가는 2차선 국도를 따라 갑산리 농공단지를 지난 뒤 옛 철길 건널목에서 300여m 쯤에 한옥 기와 한 채가 보인다. 바로 앞은 형산강 줄기다. 이 비각 내 비석에는 ‘孝婦李氏之閭(효부이씨지여)’ 여섯 글자가 음각돼있다. 이 비의 주인공인 이씨는 안강읍 죽전마을에서 태어나 영천군 창수마을의 문중으로 출가했다. 이씨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다고 한다. 남편의 아버지 즉, 시아버지는 앞을 볼 수 없었다. 남편은 충절이 놀라운 선대의 피를 이어받은 선비로서 학문을 숭상하는 촉망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집안이 가난해 제대로 학문을 하지 못한데다 허약한 몸으로 인해 결혼한 지 1년도 못 돼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시어머니마저 괴질로 몸져 누웠다. 청상과부인 이씨는 온갖 정성을 다해 간호했지만 시어머니는 결국 돌아가시고 말았다. 창수마을에서 살길이 막연하게 된 이씨는 여러 이웃들의 권유로 친정인 죽전마을로 돌아오게 됐다. 이후 이씨는 친정 집안 어른들로부터 어느 양반 가문의 후실로 재가하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창수마을에 홀로 지내는 앞을 볼 수 없는 시아버지가 주야로 걱정돼 감히 재가할 마음을 낼 수 없었다. 생각다 못한 이씨는 시아버지를 설득해 죽전마을로 모시고 와 친정 집안이 마련해 준 오두막집에서 살게 됐다. 친정 집안의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하면서 오로지 갈 곳 없는 시아버지를 정성으로 섬기며 살았다. 그러자 친정 집안에서는 시아버지를 영천으로 모셔다드리고 재가할 것을 재촉했지만, 이씨는 단호히 거절하고 시아버지 모시는 일에만 정성을 쏟았다. 항상 방을 따뜻하게 해 잠자리를 보살폈고, 식사 공양도 지성으로 받들었다. 인근 마을에서는 이씨의 효행에 칭송이 자자했다. 적장 ‘효부마을 함부로 들어가지 말라’ 표식 남겨 하지만 때마침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왜적이 침략하면서 “왜적은 성질이 아주 포악해 부녀자들을 농락하고 잔인한 짓은 예사로 한다더라”, “왜적은 닥치는대로 사람을 죽인다”는 등의 말들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리고 집집마다 피난 준비로 부산했다. 이씨의 친정 집안도 피난가기에 바빴다. 이씨도 시아버지께 피난갈 것을 간청했다. 하지만 시아버지는 맹인의 몸으로 다리마저 성하지 못해 며느리에게 짐이 될까봐 이씨에게만 피난을 떠나라고 말했다. “아가! 나는 이미 늙었으니 설령 왜적들이 온다 해도 어찌하겠느냐? 어서 사돈댁 식구들과 같이 너나 떠나거라”고 했다. 그러자 이 씨는 “아버님께서 떠나시지 않으시면 저도 아버님을 모시고 이대로 남겠어요”라고 했다. 효성이 지극한 이씨는 앞을 못 보고 다리마저 성하지 않아 걷지도 못하는 시아버지를 두고 차마 떠날 수는 없었다. 결국 친정 식구들의 강요를 뿌리치고 텅빈 마을에 시아버지와 외로이 남았다. 이씨는 집에서 왜적들에게 당하는 것보다 시아버지를 좀 더 안전한 곳으로 모셔야겠다는 생각에 갑산마을로 향했다. 그러나 저 멀리 왜적들이 오는 것을 보고 엉겹결에 유교(柳橋) 다리 밑으로 내려가 시아버지와 함께 숨었으나 들키고 말았다. 이 씨는 짐보따리 옆에 시아버지를 숨기고 치마로 덮어두고는 떳떳이 왜적들을 맞이했다. 왜적들이 치마를 들치고 시아버지를 발견하자 더욱 수상히 여겨 죽이려했다. 이때 이씨는 왜적들에게 “아버님을 죽이려거든 나를 죽여라”하며 대항했다. 왜적들은 시아버지를 가짜 맹인이라고 우기며 칼로 내려치려 할 때 마침 다리 위에서 말을 타고 이 광경을 지켜보던 왜적 장교가 “두 사람을 이리로 끌고 오라”고 명령했다. 그러고는 10리나 떨어진 죽전마을까지 끌려갔다. 왜장은 외모가 귀골스럽게 생긴 시아버지를 첩자로 알고 혹독하게 문초했다. 그러자 이씨는 왜장에게 매달리며 손짓발짓으로 사실이 아님을 전하려 했으나 말이 통하지 않았다. 왜적들은 시아버지를 막아서는 이씨를 사정없이 매질했지만, 이씨는 시아버지만 살려주면 무슨 짓이라도 하겠다고 눈물로 호소했다. 끈덕진 부인의 호소에 감동된 왜장은 왜적 첩자와 통역을 통해 이씨와 시아버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했다. 갑산마을과 죽전마을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이씨의 덕행을 알게 된 왜적들은 그의 효행에 감복했다. 왜장은 이 씨에게 “훌륭하신 부인을 몰라뵙고 무례하게 행한 일을 용서하오”하면서 사과하고, 부하에게 명령해 지필묵을 가져오게 했다. 왜장은 ‘효부의 마을에 함부로 들어가 동민을 해치지 말라’는 글을 써서 마을 입구에 표식을 남기고 떠났다. 이후 왜인들은 갑산마을을 지나치면서도 동민들을 괴롭히거나 약탈 방화하는 일이 한 번도 없었다. 갑산마을 사람들은 ‘이씨의 지극한 효성 때문에 온 마을이 왜적의 참화를 모면했다’며 이씨의 효성을 기리는 효부각을 세워 오늘에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효부이씨 정려각 앞에는 효부이씨의 일화를 새긴 비석이 있다. 1991년 10월 세운 비석에는 건립 연대(조선 인조 조), 위치(경주군 안강읍 갑산리 715), 관리주체(창녕조씨 하양중립 죽원재 문중) 등이 새겨져있다. 또 ‘인조께서 정려해 건립했으나 그 후 퇴락해 1805년 중수하고, 1923년 철도 부설로 인해 현 위치로 이건했으며, 1960년 보수 후 1991년 10월 중건하다’라고 건립 연혁도 기록돼있다. ② 안강읍 대동리 ‘월성손씨정려비’<月城孫氏旌閭碑> 안강읍 대동리 182번지에는 조선시대 암행어사가 조정에 알려 세웠다고 전해지는 월성손씨정려비(月城孫氏旌閭碑)가 있다. 본지 146호(1992년 12월 7일자) 보도 당시에는 정려비가 쓰려져 있어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지난 2일 찾은 이곳의 비는 제대로 세워져 있었다. 하지만 비각 내외로 수풀이 우거져 있고, 안내판은 녹슬어 있는 등 관리의 손길이 미치지 않고 있었다. 출입문은 잠겨져 있어 내부를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정려비는 최근에 세워진 듯 보였다. 이 비의 주인공은 월성손씨다. 집안에서 엄격한 가풍 속에서 자란 손씨부인은 총명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부덕을 닦아 현모양처로서 손색이 없는 인품을 갖췄다고 한다. 조선조 때 김씨와 지금의 약혼식으로 결혼을 약속했다. 하지만 손씨가 결혼해 시댁에 들어가기도 전에 남편이 모진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아눕자 시댁에 들어와 성심을 다해 남편을 간호했다. 그러나 남편 김씨는 부인이 간호한 효험도 없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고 말았다. 손씨 부인은 남편을 따르고자 결심했으나 시부모님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가 가족들 몰래 집을 빠져나와 마을 앞 연못에 몸을 던져 남편의 뒤를 따랐다고 한다. 이 같은 사실이 주민들에 의해 암행어사에게 알려졌고, 암행어사는 조정에 알렸다. 조정은 열부 경주손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정려하고, 비와 함께 비각을 세웠다. 이상욱 기자 lsw86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