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어느 프로그램에서 ‘국가별로 가장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을 뽑았다. 독일인들은 시간 안 지키기는 걸 제일 싫어하고, 프랑스인들은 걸어 다니면서 먹는 걸 못 견딘다고 했다. 남에게 폐 끼치는 걸 싫어하는 일본인이지만 국수를 먹을 때 소리를 못 내게 하는 걸 싫어한다고 했다. 그럼 한국인들은 뭘 가장 싫어할까? 일본의 어느 잡지에서 조사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 이름하여 ‘7가지 한국 사람들을 화나게 하는 확실한 방법’이란다. 그 순위는 이랬다. ‘라면 먹을 때 김치 안 주기’(1위) ‘고기 구워 먹을 때 소주 안 주기’(2) ‘밥 먹은 뒤에 커피 안 주기’(3) ‘화장실 갈 때 휴대폰 못 가져가게 하기’(4) ‘인터넷 속도 느리게 하기’(5) ‘엘리베이터에서 ‘닫힘’ 못 누르게 해 자동으로 닫힐 때까지 기다리게 하기’(6) 그리고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할 때 먼저 일어나지 않고 앉아서 기다리게 하기’(7위)다. 장난 삼아 매겨본 랭킹이지만 나한테 대입해 보니 고구마 먹은 듯 하나같이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아, 난 한국 사람 맞는구나!’ 16년 동안 비행기 승무원으로 근무했던 분이 쓴 글을 보면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인사를 건네면 유독 한국 승객들이 인색하다고 한다. 공항이나 기내에서만 그런 것도 아니다. 우리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자주 보는 광경이다. 오가며 하루에 몇 번도 만날 관계다 싶어 볼 때마다 인사를 건네는데, 반응은 받아주는 분만큼이나 아닌 분들도 계신다. 무반응의 경우 그때부터 흐르게 될 어색한 침묵을 어떻게 견디려고 그 힘든(?) 걸 선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우리는 잘 참아낸다. 어느 책에서 본 적이 있는데, 먼저 인사하는 것은 스스로 낮은 자라는 걸 인정하는 행동이라고 쓰여 있었다. 한국인이 인사에 인색한 이유치고는 강렬(!)했다. 여태 친절과 배려, 환대와 겸손이 상호 관계를 건강하고 동등하게 만드는, 인사의 본질이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혼란스러웠다. 그런 다음 일본 유명 디자이너는 그 책에서 인사를 아주 예술적으로 정의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하는 인사는 상대와의 적절한 간격을 측정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해요.” 인사를 했을 때 상대가 기분 좋게 받아주느냐? 말없이 받아주지 않느냐? 에 따라 거리를 어느 정도로 유지해야 할 지가 가늠이 된다는 거다. “그러면 불필요한 마찰이 없어져요. 마찰이 생기지 않는다는 건 좋은 기분을 유지하는 데 아주 중요하거든요.” 인사를 너무 정치 역학 구도로 해석하는 게 아닌가 싶다가도 내가 인사를 할수록 불편했던 이유가 바로 이거였구나 싶기도 했다. 다시 한국인들로 돌아와서 그들은 그럼 어떤 걸 좋아할까? 아마 ‘외국인들이 정리한 한국인의 ‘응’ 사용법‘ 같은 걸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가령 한국인이 응↘ 하고 끝을 내리면 ‘맞아, 오케이’라는 의미란다. 자, 각자 화살표대로 따라 발음해 보시라. 응↘↗는 반대로 ‘노! 그게 아니야!’ 맞다. 우린 이렇게 사용한다. 그럼 응↗은 ‘뭐라고?’라는 의미다. 웃기는 것도 있다. 응↓ 하면 (전화통화 시)‘듣고 있어’의 뉘앙스란다. 전화기에다 대고 계속 응↓응↓거린다면 그는 분명 한국인이라는, 외국인들의 한국인 구별법이란다. 역시 전화랑 관계가 있는 건데 그럼 이건 뭘까? 응↘응↗응↗ 이 소리는 ‘그래, 전화 끊어’ 란다. 끝이 살짝 올라가는 ‘응’을 여러 번 반복한다면 ‘나 이제 전화를 끊어야겠어’ 라거나 ‘그만 통화하자’는 걸 상대방이 눈치챌 수 있다. “응” 하나로 아주 다양한 맥락을 주고받는 우리는 한국인이다. 외국인들은 우리의 이런 습관도 재밌어한다고 한다. 한국인들의 독특한 화장지 사용법인데, 한국인들한테 “휴지 한 장 주세요.” 하고 부탁해 보라. 한 장을 주는 한국인들은 없다. 티슈를 꼭 두 장 건넨다. 하나 주면 정(情)이 없다나? 그 외에 한겨울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신다면 무조건 한국인이고, ‘당기시오’라고 적힌 문을 막무가내로 밀고 나가도 한국인이다. 당기라는 문을 기어이 미는 데는 나름 과학적인 이유가 있다. 당기는 것보다 미는 것이 관성의 법칙에 맞기 때문이다. 즉, 미는 행위는 사람의 진행하는 방향과 같아서 당기는 것보다 힘이 덜 든다는 걸 한국인들은 본능적으로 아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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