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지 날다
박상봉
공중에서 물장구친다
땅으로 내려오기 싫은지 공중에서만 논다
건물 창유리와 가로수 이파리 쪽으로
곤두박질치기도 하지만
요령껏 빗줄기 한쪽 끝 붙들고
비 내리면 젖어 하염없이 웅크린 몸으로 유배되는 봉지
억누르고 눌린 것이 봉지다
핏기 뽑아버린 빈 봉지 몸통 너머 세상이 보인다
키 큰 나무 넘어 하늘 높이 사무쳐 오르다가
땅속 깊이 뻗쳐 내리다가
나무의 팽팽한 긴 외로운 가지 끝에 와 덜컥, 안긴다
오갈 데 없는 찢어진 봉지
더 이상 밀고 갈 힘없어
비바람에 송두리째 흔들리는 나무에 등 기대고 머물다가
만 리 밖에서 바람이 부르면
후득 후드득 깃을 털며 저문 언덕 넘어간다
바람의 어깨를 깨물고
울창한 공기의 숲으로
기억 속 절망 딛고
길고 긴 하늘 자락 붙들고 일어서는
꿈틀꿈틀 솟아오르는 봉지는
팔뚝보다 질긴 근육을 가졌다
타인과의 교감 없이 메말라가는 삶의 고독
봉지는 원래 내용물을 담아야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시인은 그러나 그 속에 담긴 “핏기”를 “뽑아버린 빈 봉지 몸통”, 용도를 다한 비닐 봉지를 통해 세상을 읽는다. 그걸 우리는 ‘봉지의 자유’라고만 쉽게 단정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땅으로 내려오기 싫은지 “공중에서 물장구‘치다, 건물 창유리와 가로수 이파리, 비에 젖어 “젖어 하염없이 웅크린 몸으로 유배되는” 지상까지의 이동과 거기서 겪게 되는 “억누르고 눌린” 일까지가 바람과 비 같은 자연현상이, 흙이나 돌과 다른 사물을 통한 외발적 요인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인이 카메라로 잡은 봉지의 생의 겹은 여럿이기도 한 것이어서, 이번에는 “키 큰 나무 넘어 하늘 높이 사무쳐 오르다가/땅속 깊이 뻗쳐 내리다가” 쓸쓸하게도, “나무의 팽팽한 긴 외로운 가지 끝에 와 덜컥, 안긴다.” ‘팽팽한 긴 외로운’이라는 세 개의 관형어를 거느린 나무 역시 타자와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오랜 고독과 연민을 가진 존재가 아닌가. 거기서 용도 폐기를 넘어 “오갈데 없어 찢어진” 봉지는 외로운 존재에게 안기다가 등 기대고 머물지만, 그것도 오래 가지 못한다.
“만 리 밖에서” 바람이 부르는 소리에 광활하고 울창한 공기의 숲으로 “후득 후드득 깃을 털며 저문 언덕 넘어” 날아갈 수밖에 없다.
시인은 “꿈틀꿈틀 솟아오르는 봉지는/팔뚝보다 질긴 근육을 가졌다”고 하지만, 문명의 편의성에 물들어 물건을 담는 용도로 쉽게 쓰이는 봉지가 타인과의 교감 없이 메말라가는 삶의 고독도 아울러 말하고 있음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일상의 용도에서 폐기 처분되어 “길고 긴 하늘 자락 붙들고 일어서는” 이 비닐 봉지의 신산한 삶의 층위를 입체적으로 묘사한 이 작품은 우리 시단에서 하나의 경향으로 자리잡고 있는 생태시의 일반적 경향들과 차별성을 보여주면서, 하잘것없는 존재를 시인 특유의 미학으로 건져올린 범상하지 않은 깊이까지 지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