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경주의 어느 분으로부터 시의회 의원들이나 공무원들이 시민들의 혈세로 과도한 해외여행을 일삼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그 분에게 혈세 아니라 뭐라도 좋으니 제발 시의회나 시 공무원들이 경주를 떠나 다른 고도나 유적지, 관광지들을 좀 다니며 제대로 공부하면 좋겠다고 맞섰다. 그런 이유가 있다. 경주시 시의원들이나 공무원들이 우물 안 개구리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누구를 만나도 경주가 지붕 없는 박물관이고 담장 없는 유물 전시관이라 말하기 일쑤다. 내가 직접 가본 세계의 고도들은 경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유적을 지니고 있었고 고도를 보존해야 하는 당위성에 대한 시민 의식들도 남다르게 느껴졌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고도들이 자기들 나름대로 고대의 유적부터 현대에 이르도록 각 시대별로 모든 것을 역사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함부로 없애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경주는 일정한 기준을 두고 그 기준에서 벗어나면 가차 없이 허물고 비우기를 밥 먹듯 해 왔다. 그 결과 유적지 발굴, 유적지 정비, 유적 공원화라는 이유로 시간이 지나면 이 역시 역사의 중요한 부분이 될 현재의 삶들이 무턱대고 쓸려나갔다. 수많은 동네가 사라졌고 거기 살던 사람들이 이웃과 친척을 잃고 헤어져야 했다. 반면 정작 보존되어야 할 풍광과 경치는 힘 있는 사람들의 배 불리기로 뭉턱뭉턱 훼손되었다. 불국사 가는 길 배반동에 아파트가 들어섰고 백률사 앞 넓은 들과 동천동 황성동 일대도 아파트 단지로 개발되었다. 심지어 불국사 앞 주차장은 당시 권력자들의 담합과 신성한 불국의 성역을 지켜야 할 불국사 관계자들의 어이없는 묵인으로 인해 용도변경까지 되면서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다. 또 다른 병폐도 있다. 위의 개발 지역을 포함, 용강, 충효, 금장 등 경주를 둘러싼 이른바 ‘신도시’들이 한결같이 경주와 전혀 상관없는 문자 그대로 신도시가 되어버렸다. 이들 도시들을 지나다 보면 이곳이 과연 경주의 도시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로마나 피렌체, 파리, 교토에서 만난 특유의 도시 정서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물론 도시의 특성을 떠나 경제성과 도시 편의성을 높인다는 면에서 무조건 비판만 할 수 없다. 그러나 경주의 경우, 기존의 인구밀집 지역은 사람이 사라진 자리에 꽃밭만 남았고 신도시는 완전히 특성을 잃은 이상한 현상이 곳곳에서 벌어져 과연 이게 온전한 유적지 보존이고 관광도시 개발인지 의심스럽다. 명칭과 마을 기능이 완전히 뒤집힌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교촌한옥마을이 그렇다. 한옥마을은 원래 살던 교촌의 주민들을 대거 몰아내고 기와 얹은 상가건물만 왕창 지어 놓은 기형적인 마을이 되었다. ‘마을’이란 사람들이 살아야 마을인데 정작 중요한 사람들은 몰아내고 상가만 몰아넣은 것은 기막힌 실정(失政)이다. 교촌 한옥마을이 아니라 그냥 어정쩡한 교촌먹자골목이다. 중심상가에 만든 ‘금리단길’을 걸어도 마음이 착잡하다. 황리단길의 북적거림을 중심상가까지 넓혀 보려는 의도겠지만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단순히 길을 지정하고 치장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내가 고등학교 다니던 80년대는 이 길이 사시사철 사람들로 넘쳐났던 길이다. 그럴 수밖에 없던 것이, 이 길에서 반경 2km 이내에 성건동, 중부동, 황남동, 황오동, 사정동, 황성동, 인교동 등이 밀집해 대도시 못지않은 인구 응집력을 과시했다. 지금 성건동과 중부동 이외 대부분 마을들이 유적정비 명목으로 사라지거나 공동화되었다. 황리단길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그 일대가 7~80년대의 모습을 유지하고 그 속에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 복고적 열풍에 부응한 덕분인데 생짜로 길 이름을 짓고 휘황한 가로등을 배치한다고 해서 경주 사람이나 외지 사람들이 관심 가질 리 없다. 그래서라도 더욱 경주를 이끌 시의회나 공무원들이 제대로 된 해외답사를 해야 한다. 단, 이런 답사는 단순히 형식적 답사가 아닌 철저한 목적과 공부를 전제로 한다. ‘로마 한 달 살기’, ‘파리 한 달 살기’ 같은 프로젝트 아래 공적 목적에 충실한 답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좀 더 경주다운 장기적이고 발전적인 고도 발전안이 만들어질 것이다. 여행사가 짜 맞춰주는 형식적인 공식 방문지 한두 곳으로 생색만 내는 해외답사는 당연히 나도 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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