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공룡 둘리가 김수정 작가에 의해 탄생한 것은 1983년 4월이었다. 이 둘리 이야기는 10년 조금 넘게 어린이 잡지 책에 연재되어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만화를 보고 자란 어린이들은 이제 대부분 어른이 되었으나 귀여운 말썽꾸러기 둘리를 여전히 잘 기억하고 있다. 이 만화 내용 탓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아직도 공룡과 사람들이 같이 살았을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서울의 Y대학 공대 전기공학부에서 2015년 가을 학기 교양 과목으로 ‘창조과학 세미나’라는 강좌를 개설하겠다고 하여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이 과목을 담당하기로 되어 있던 C교수는 기존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빅뱅(Big Bang, 우주 대폭발) 이론이나 진화론 등을 모두 부정하였다. C교수는 구약성서 창세기 제1장 제1절 ‘신이 이 세상과 그 사람들을 엿새 동안 창조하였다’는 내용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 ‘창조과학회’ 회원들의 생각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들은 지구의 역사를 6-7000년 정도로 여기고 ‘공룡과 인간이 같은 시대에 살았다’고 믿는 것으로 보인다. 과학적이어야 할 자연과학 분야 교수의 생각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이런 사고(思考)는 17세기에도 있었다. 당시 대주교였던 제임스 어셔(Archbishop James Ussher)는 구약성서의 족보를 토대로 이 세상은 기원전 4004년 10월 23일 전날 밤에 창조되었다고 계산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19세기 초까지도 신학 교리가 되었으며 신학자들은 이에 심취해 있었다.
17세기 초에 코끼리 뼈와 돌도끼가 공반되어 런던에서 발견되었고 그 이후에도 이러한 발견이 적지 않게 있었다. 그리하여 지구의 역사가 훨씬 더 오래되었다고 여겨졌으나 당시 학자들은 이러한 물증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18세기 말 산업혁명으로 철도, 운하 및 건설 사업이 활성화되어 지질학이 체계적으로 연구되면서 지구의 역사에 대해 기존 학설이 재검토되기 시작하였다.
지질학자들은 다양하고 독특한 동물 뼈가 층위별로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이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때만 하더라도 지구의 역사가 6-7000년 보다 더 오래되었다는 주장을 한 사람들은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1858년 영국 남서부 브릭스햄(Brixham) 동굴에서 코뿔소, 맘모스, 동굴 곰의 뼈와 석기가 한 지층에서 발견되어 상황이 급반전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절멸된 동물 뼈와 인간들 도구가 같이 출토되었다는 점이다.
만약 둘리와 사람이 함께 살았다면 ‘둘리와 사람 발자국’ 혹은/그리고 ‘둘리와 그 친구들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 동일한 층위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이를 고고학에서는 공반관계(共伴關係)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공룡 뼈와 고성 덕명리, 의성 제오리, 울산 천전리와 대곡리 암각화 인근에서 공룡 발자국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공룡 뼈와 도구 그리고 공룡과 사람 발자국은 함께 발견되지는 않았다. 이는 공룡과 사람은 동시기에 같이 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룡은 중생대, 인류는 신생대 제4기에 각각 살았기 때문에 둘 간에 최소한 6500만~1억 년 이상 시간 차가 나 공반관계가 성립될 수 없다.
Y대학에서 ‘창조과학’이라는 교양 과목을 개설하겠다고 하자 학생들은 강하게 반발하였고 과학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당국은 ‘건학 이념’과 궤(軌)가 동일한 창조과학을 강의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고 반문하였다. 믿을 수 없는 대응이다. 당시 Y대학에서 그 강좌가 개설 혹은 폐강되었는지 확인하지는 못했다. 다만 이 과목을 개설하겠다는 교수나 이것이 문제가 없다는 학교 측이나 모두 황당할 뿐이었다.
아기 공룡 둘리와 사람이 같이 살았고 지구의 역사는 6~700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뭐 하나에 꽂히게 되면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보거나 들으려고 하는 습성이 있다. 나이가 들면 사고가 고착되어 더 심해진다. 한두 사람의 말만 듣지 말고 싫더라도 몇 사람의 말을 듣고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지 않으면 ‘본인이 모르는 줄도 모르고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다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