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리인 감포읍에서 1919년 3·1운동에 맹렬하게 참여한 이가 있다. 애국애족의 일념으로 항일운동에 헌신한 김봉규 선생(1892(고종 29)∼1967)이다. 선생의 숭고한 정신과 실천적 삶을 기리고 후세의 귀감으로 삼기 위해 올해 3월 감포읍 나정리 생가의 지척에 공적비가 제막되기도 했다. 감포읍 나정리 127에 위치한 김봉규 선생의 생가는 감포읍 바다 인근 나정리 해수욕장 바로 근처로, 비교적 눈에 잘 띄는 도로변에 있는 평범한 가옥이었다. ‘독립유공자의 집’ 이라는 현판과 함께 ‘독립유공자 김봉규 선생 생가’라는 안내 표지판만이 여느 집과는 다른 기상을 내비치고 있었다. 결혼 후부터 선생의 생가를 지키며 살고있는 김봉규 선생의 장손 고 김영길씨의 부인 정연옥 여사(71세, 선생의 종손부)는 자긍심을 가지고 살고 있다고 했다. 정 여사는 “남편과 가족들로부터 조부님이 옥살이를 하실 때 손톱 밑에 대침을 박는 것이 너무나 참기 힘들었다는 말도 전해 들었습니다”며 당시 선생의 고초를 전해주었다. 지난 17일 찾은 생가에는 선생의 전 생애에 단 한 장의 사진만이 남아 있었다. 1963년 대통령 표창장을 받고 사모관대 차림으로 찍은 기념사진이 전부였다. 추상같은 기개가 서늘하게 넘치는 한 장의 사진은 그 울림이 강했다. 한반도 격변기에 태어나 온몸으로 항일 투쟁을 해 온 한 장부의 모습에서 가슴이 먹먹했던 것이다. -군자금 모금 활약 중 일본 순사 총살하고 망명, 임정 밀서 전하고 체포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나라 위한 굳은 결의는 추호도 굽힘이 없어’ 올해 3월 제막된 국한문 혼용체의 선생의 공적비문 전문을 최대한 원문의 느낌을 살려 그대로 직역해 옮겨 보았다. 한자로 표기된 부분을 한글로 옮겼고 이해를 돕기 위해 부득이한 경우 한자와 함께 표기했다. 이 비문은 대정 13년(1924) 형공 제337호 판결문과 대한민국 의병록에 의거하고 있어 선생의 공적을 알리는 가장 적확한 자료라는 판단에 근거해서다. ‘공(公)의 휘(諱)는 봉규(鳳奎) 호는 한송(寒松) 성은 김씨요, 본관은 김해다. 1892년 8월 10일이요, 감포읍 나정리에서 태어나니 천품(天稟)이 총명하고 호협(豪俠)하여 청운을 꿈꾸고 형설의 학문을 쌓다가 경술국치(1910년, 한일합병)를 당했으니, 이때 이바지 할 때를 기다리면서 와신상담하다가 마침 기미 삼일 운동의 함성이 천지를 뒤흔들자 용약(勇躍) 군중의 선봉으로 투항하다가 마침내 왜경에 체포 수감되어 3개월 여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나라 위한 굳은 결의는 추호도 굽힘이 없어 군국주의 주구(走狗)들을 아연케 하였다. 그 뒤 의기는 더욱 격렬하여 1920년 4월부터 항일구구운동에 투신, 독립을 전취(戰取)하려는 일념에서 상해임시정부와 만주 등지의 독립단과 긴밀한 유대하에 송두환, 최윤동, 노기용, 정래영, 김종철 그 밖의 여러 지사와 더불어 조국 독립을 위하여 풍찬노숙(風餐露宿)하며 맹렬히 활약하였다. 각 지방의 동지들을 규합하는 한편, 국외로부터 무기를 반입하고 예경회, 의용단 임명장, 애국금 수합위원, 사령서, 군사경비단 단제 인쇄물 등을 가지고 각처로 잠행하면서 독립 자금을 모집하여 수 차례 상해임정에 밀송금 하였다. 그러다가 동년 12월, 동지 김종철과 독립군자금 모집 차 경남 의령군 모 재벌가에 잠입하다가 매복중의 왜경에게 검거되어 경찰서로 연행 도중, 봉총(奉銃)으로 왜인 순사 갑배수(甲裵秀)를 사살하고 동포 순사에겐 중상을 입힌 후 두 사람은 만주로 망명 탈출하여 4년여 조국의 독립 운동을 전개하다가 모종의 밀명(密命)을 띠고 밀입국하여 동지들과 공작 중 불행히도 1924년, 한국독립운동단의 활동상황이 탄로가 나서 동지들과 함께 피검되니 혈기방장한 젊음의 나이로 4개월 영어(囹圄)의 몸이 되었으니 이것이 경북항일단 독립운동의 전말이다. 공은 출옥 후에도 불타는 투지는 꺾이지 않아 다시 동지들을 모은 한편, 해동청년회라는 비밀 조직을 만들어 회관을 건립하고 후진들의 독립정신 고취에 쉴 줄을 모르시니 왜황의 악랄한 예비검송령이라는 올가미에 걸려 괴로움을 겪음이 한 두 번이 아니었으나 구국에의 일편단심은 변함이 없었다. 마침내 꿈에도 그리던 1945년 8월, 조국 광복을 맞음에 감격과 환희 속에서 여생을 조국 대한의 자유 번영과 향토 발전을 위해 진력(盡力)하다가 1967년 2월, 향년 76세로 영면하시니 묘는 전촌리 포일산 해좌(亥坐)이다. 장하도다! 굳건한 기백으로 불사조 같이 한평생 지낸 공에게 대통령 건국 포장이 추서되니 그 뜻과 그 용기 후생의 귀감으로서 찬연히 빛나리라. 생각하면 조국이 국권을 되찾고 전 국민이 재생의 기쁨을 누리게 된 것은 실로 공(公)과 같은 투사들이 쏟은 정성의 소치라 아니할 수 없다. 길이 빛날 거적(巨跡)의 편린이나마 적어 후인의 귀감으로 삼고자 한다. 대정 13년(1924) 형공 제337호 판결문과 대한민국 의병록에 의거해 비문을 새기는 바이다. 부경대학교 정헌교 교수가 글을 짓고 정수암 선생이 제자(題字) 쓰고, 대한민국 석공 명장 윤만걸 선생이 세웠다’. -‘죽음을 각오하고 일인 순사들의 악독한 고문과 악형으로 수 십 번 기절’ 공적비문과 함께 김봉규 선생이 생전에 직접 쓴 ‘항일 투지’와 선생에 대한 판결문 정리본에서 선생의 공적을 좀 더 보완해 보았다. 선생은 1920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지령에 따라 대구일대를 중심으로, 일반국민으로부터 부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그 대상자를 삼아 군자금 조달활동을 전개한다. 1920년 12월 선생은 양북 출신 김종철 선생과 함께 군자금 모집을 위해 합천군을 방문해 군자금 1만원 제공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어 경남 의령군 유곡면 칠곡리 남정구 집에 침입해 군자금 협조요청을 한다. 그러나 일본군 순사부장 갑배수와 한국인 순사 손기수에 체포돼 의령경찰서 신촌주재소로 연행 되던 중 ‘단총으로 연달아 세 발(선생이 두 발, 김종철 선생이 한 발)로 일본인 순사 갑배수를 총살하고 한인 순사에게 중상을 입히고 도망쳐 마주 보이는 암석에 앉아 담배 한 개씩 피운 후 도피해 30리 되는 낙동강 쪽으로 가서 밤중에 길이 없는 산길로 삼일동안 피신한 끝에 대구에서 만난 두 애국지사는 만주로 망명하기에 이른다. 선생은 그 후 1924년 임시 정부의 밀서를 가지고 국내에 잠입하고 임무를 마치고 고향에 잠시 왔다가 일경에 체포된다. 조선총독부 대구 제3경비부 감포주재소에서 체포돼 대구로 압송되기에 이른 것이다. 선생은 징역 4년을 선고 받는다. 한편, 김종철 선생은 체포되지 않았다. 선생은 죽음을 각오하고 일인 순사들의 악독한 고문과 악형으로 수 십 번 기절하면서도 ‘보따리 메고 따라 다녔다’고만 해 사실을 실토하지 않았고 사실이 조금은 은폐돼 사형은 면했다고 한다. 4년간 옥고를 치른 뒤에는 평생 고향 나정리에서 살며 고향 발전에 헌신했다. 1963년 대통령표창, 정부에서 그의 공훈을 기리기위해 추서한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한편, 선생이 연루된 군자금 모금활동에 당시 대구에서 10명이 참여했는데, 그 중 경주 출신의 애국지사가 무려 3명이나 참여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한다. 감포읍 팔조리 정래영 선생, 양북면 용당리 김종철 선생, 김봉규 선생이 그들이라는 점은 우리가 반드시 기억하고 선양해야 할 인물임이 틀림없다. 국가보훈처는 김봉규 선생 등의 군자금 모금활동을 ‘경북 제2 유림단 의거’라고 기록하고 있다. -대쪽같은 기상 느껴질 정도, 매우 강직한 성품...귀향후 지역 지도자로서 향토발전에 이바지 나정리 신동일 마을 이장은 안타깝게도 최근에야 독립유공자들에 대한 조명이 되고 있다면서 김봉규 선생을 기억한다고 했다. “어릴적 뵀었는데 댁의 툇마루에서 안경을 끼신 채 긴 곰방대 담배를 피우시곤 하셨습니다. 대쪽같은 기상이 느껴질 정도였고 어린시각에 무서울 정도로 강직해 보였습니다. 옥살이를 하고 귀향하시고는 동네 지도자역할을 하셨고 향토애가 강하셨던 분으로 이야기 들었습니다”라고 전했다. 정 여사는 “예전에는 독립운동을 중요시하지 않는 분위기였지요. 1963년 대통령표창 당시, 사모관대를 구해서 예를 갖춰 입으시고 찍으신 것이 지금 남아있는 사진입니다. 선생의 유년시절 생가 마당에는 쌀 뒤주가 몇 개나 있었다고 할 만큼 부농이었다고 했습니다만, 제가 결혼해서 보니, 가세가 기울어 지독한 가난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시어머니께서 소쿠리에 고기 장사를 할 만큼 경제적으로 힘들었었지요”라고 회고했다. 또 1970년대 초, 새마을운동 사업의 일환 중 선생의 생가 초가지붕을 개량하던 도중 처마 아래에 보관해 둔 여러 자필 기록물들이 발견됐다고 했다. 그 기록물들을 국가보훈처 등 행정기관에 제출하고 드디어 1977년 정부로부터 건국 포장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발견된 기록물들은 정부 관련처에 모두 제출해 현재 원본은 한 점도 전하지 않는다고. “넷째 시삼촌인 김남원 선생(김봉규 선생의 넷째 아들)이 많은 자료를 비롯해 비문도 기록해 두셨고 형무소에 가서 판결문 등의 모든 자료 원문을 복사하고 일일이 번역하시고 책자로도 제작해 형제분들에게 나눠 주셨기에 그 기록들이 이나마 지금 이렇게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비교적 상세하게 시조부님의 항일 독립운동을 지금도 알 수 있는 것이지요”라고 했다. -선생의 공적 기리며 살고있는 실질적인 후손들에게 국가의 혜택이 확대 지원돼야 독립유공자 발굴사업의 일환으로 김봉규 선생의 생가 복원에 대한 안건은 최병윤 감포읍장이 감포읍민과 함께 관심과 의지를 가지고 추진계획중이라고 한다. 정 여사는 “공적비가 국한문 혼용으로 돼 있어서 이곳을 찾는 이들이 선생의 업적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으므로 누구라도 쉽게 잘 알 수 있도록 한글로 쉽게 옮긴 안내판을 지금의 공적비 옆에 세워 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바랐다. 또 선생에 관한 모든 자료나 국가보훈처 서류 등도 후손이 살고 있는 이 생가로 전달돼야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한편, 신동일 이장은 “김봉규 선생은 동네 자랑이며 자부심입니다. 선생은 당시 혁명적인 인물이었잖습니까. 그런 훌륭한 분의 후손들이 좀 더 대우받는 시스템이 갖춰지면 좋겠습니다. 국가 차원에서, 후손들이 관례적이고 불합리한 지원에서 벗어나 가슴에 와닿는 정확하고 현실적인 처우개선이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의 제한된 혜택에서 지금까지 선생의 공적을 알리고 기리며 선생의 생가를 모시고 있는 실질적인 후손들에게 국가의 혜택이 확대 지원돼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보훈처의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지원의 확대방안이 절실한 대목이었다.
앞에서 신라는 박혁거세가, 고구려는 주몽, 천제의 아들이 건국했다고 말한바 있다. 고전에 의하면 ‘천자는 천지신명과 천하의 명산대천에 제사를 지내고 제후는 사직과 국내의 명산대천에 제사를 지낸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까지도 경주에서는 신라, 역대 왕들의 제사를 능과 사당에서 지낸다. 《삼국사기》의 (제사)편을 보면 신라는 2대 남해왕 3년(AD 6년), 봄에 처음으로 사당을 세우고 계절마다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22대 지증왕은 나정에 신궁을 짓고 36대 혜공왕은 5묘를 짓고 37대 선덕왕에 이르러 사직단을 세웠다. 즉 중국의 영향을 받아 유교의 제례를 따른 것으로 본다. 이후 고려시대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냈으나 말기에는 제후의 예를 따랐다. 조선초기에는 ‘우리의 선조는 하늘에서 내려온 단군이다. 천자가 분봉한 나라가 아니므로 하늘제사를 폐지할 수 없다’고 했으나 하늘에 올리는 제사가 아닌 제후국의 제사를 지내며 원구단은 폐지되고 기우제만 지냈다. 1897년, 고종황제가 ‘대한 제국’을 선포하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곳이 환구단(혹은 원구단)으로 지금은 서울 조선호텔이 있는 자리다. 반면에 고구려는 〈귀신과 사직과 농업의 신께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고구려는 흘승골성(중국 환인현, 비류수가 흐르는 오녀산성)에서 국내성으로 천도(AD 3년, 유리왕 22년)한 후에도 매년 10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냈는데 바로 ‘동맹’이다. 즉, 농경의례로서 부족사회 전체의 추수감사제로 보고 있다. 그 대상은 고구려의 동쪽에 있는 큰 동굴에서 부여신인 ‘유화부인’과 그 아들인 ‘주몽’에게 제사를 올린 곳으로 보고 있다. 이번에 옛 고구려지역 답사를 다녀왔는데 바로 중국 집안시 인근에 위치한 ‘국동대혈(國東大穴)’에서 제사를 지낸 것으로 본다. 다음으로는 왕릉의 구조가 다르다. 신라는 돌널무덤(석관묘) → 돌무지 덧널무덤(적석목곽분) → 돌방무덤(석실분)으로 바뀌었고 묘실은 지상에 있다. 특히 돌무지 덧널무덤은 도굴이 불가능한 반면 돌방무덤은 합장, 즉 부부나 가족장도 가능했다. 입구에 문이 있기 때문에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구조였지만 도굴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후대로 가면서 큰 능들은 많이 도굴을 당하여 귀중한 부장품들이 많이 사라졌다. 고구려는 돌무지무덤(적석총) → 굴식장법 → 석실봉토분으로 변화해 갔다. 즉 돌로 방을 만들고 그 위에 흙으로 봉분을 쌓았다. 고임식 천장(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며 마지막으로 큰 돌로 마무리한다)으로 위로 갈수록 좁아진다. 특징은 내실에 벽화가 있어 고구려인들의 생활상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중국 집안시 장천동 고분군이나 통구고분군, 북한의 평양과 황해도의 안악과 남포부근에 집중 분포되어 있다. 세계적으로도 고대국가에서 이렇게 많은 고분이 한 장소에 집중적으로 남아있는 나라는 고구려뿐이다. 내부구조는 석실봉토분으로 지하에 묘실을 두었는데 방이 2개 이상인 경우도 있다. 고구려는 말을 타고 사냥하는 기마인의 모습도 생생하게 보이지만 논을 갈고 밭을 가는 농경사회이기도 했다. 왕의 명칭은 시대에 따라 의미하는 바가 다르다. 신라의 첫 왕은 박혁거세(朴赫居世)로 ‘세상을 빛내다’라는 뜻이다. 보름달 같은 큰 알이 초가지붕에 있는 박처럼 생겼다고 하여 ‘박’, ‘혁거세’는 ‘세상을 빛내다’라는 뜻이다. 거서간(혁거세왕 당대에만 사용) → 차차웅(왕이면서 제사를 지내는 제정일치사회로 본다. 2대남해왕 당대만 사용) → 이사금(尼師今)은 연륜이 높은 사람, 3대 유리왕부터 16대 흘해왕까지 사용) → 마립간(칸은 왕, king으로 17, 18, 19, 20, 21대왕만 사용) → 지증왕(22대 왕)부터는 ‘국왕’으로 칭했다. 신라는 마립간 시대부터 중국의 영향을 지속적으로 받았고 신라가 멸망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현재는 모두 왕으로 통칭한다. 고구려왕들의 묘호는 능이 묻힌 장소나 업적를 나타낸다. 15대 미천(美川)왕은 미천강 둔덕에 장사를 지냈고 19대 광개토대왕은 고구려의 영토를 요동성까지 확장하며 전성기를 일군 왕이다. 고구려는 부여에서 내려온 북방기마민족의 후예다. 그래서 고구려의 전성시대는 5C~6C중반까지로 19대 광개토대왕과 20대 장수왕이 재위하며 많은 성들을 쌓아 승리를 이어나갔던 고구려는 드넓은 만주를 주름잡았다. 이번에 다녀온 중국 심양과 집안등에서 드넓은 평원과 풍부한 물과 보며 그 옛날 고구려의 기상을 느낄 수 있었다.
불교에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 즉, 불보(佛寶)·법보(法寶)·승보(僧寶)를 삼보(三寶)라고 한다. 불보는 진리를 깨친 모든 부처님, 법보는 모범되고 바른 부처님의 가르침, 승보는 화합하고 깨끗한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수행하는 사람으로 스님을 지칭한다. 이 삼보의 으뜸으로 삼는 사찰이 있으니 영축산 통도사(通度寺)와 가야산 해인사(海印寺), 조계산 송광사(松廣寺)이다. 통도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어 불보사찰, 해인사는 부처님의 가르침인 팔만대장경이 있어 법보사찰, 송광사는 국사(國師)의 칭호를 받은 16명의 고승을 배출함으로써 승보사찰이 되었다. 이곳 불국사는 삼보사찰 이상으로 불교신도만이 아닌 전 국민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사찰로 부처님 나라의 사찰이다. 사찰은 평지나 석굴의 형태로 있는 것도 있으나 큰 규모의 사찰은 주로 산 속에 있다. 사찰에 이르기까지 다리를 건너고 여러 문을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건너는 다리 하나, 우리가 지나가는 문 하나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흔히 절에 들어서기 위해서 극락교를 지나 일주문(一柱門), 금강문(金剛門), 천왕문(天王門), 불이문(不二門)을 지나게 되는데 이를 산문(山門)이라 하고, 그중에서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이 삼문(三門)이다. 이 곳 불국사는 일주문을 지나 반야교를 건넌 후 천왕문을 통과하고 자하문을 지나 대웅전으로, 또 안양문을 지나 극락전에 이르도록 되어 있다. -일주문(一柱門)은 진리의 터전으로 들어가는 첫 관문이다. 일주문은 사찰로 들어서는 첫 문이다. 속세를 벗어나 부처님의 땅인 진리의 터전으로 들어서는 관문인 것이다. 일주문에는 ‘○○산 ○○사’라는 그 산사의 이름이 걸린다. 또 일주문의 좌우 기둥에는 그 사찰의 위치나 사격(寺格)을 나타내는 주련(柱聯)이 걸리기도 하는데 불국사 일주문은 예외적으로 ‘佛國寺’라고 단순하게 절의 이름만 적힌 편액이 걸려 있다. 이 일주문은 1973년 중창 당시 새로 세워진 문으로 조선시대 양식의 맞배지붕에 한 칸 문이다. 일주문이라고 해서 글자 그대로 기둥 한 개로 된 문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기둥의 숫자가 대개 두 개 혹은 네 개로 되어 있는데 한 줄로 늘어서 있기 때문에 일주문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일직선상에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올린 것은 일심(一心)을 의미한다. 분별심을 버리고 한마음으로 이 문을 통과해서 부처님께로 다가오라는 의미이다. 신도들은 일주문에서 합장 반배(半拜)의 절을 올리고 들어와야 한다. 하동 삼신산 쌍계사와 문경 운달산 금룡사 일주문 기둥에는 ‘入此門來(입차문래) 莫存知解(막존지해)’라는 글귀를 볼 수 있다. 이는 중국의 선승 보안선사(普岸禪師)의 법문에 등장하는 구절로 ‘이 문 안으로 들어와서는 보고 듣는 모든 것을 세간의 알음알이로 해석하려 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불국사에 대해서 글을 쓰자니 먼저 이 구절이 생각난다. -반야교(般若橋)를 건너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의 길로 들어선다. 일주문을 지나면 아름답게 조성된 연못을 만나게 된다. 1973년 불국사를 복원하면서 ‘월지’를 참고로 하여 조성한 연못이다. 이 연못을 건너는 홍예교(虹蜺橋, 무지개 다리)가 바로 반야교이다. 이 다리는 수미산 초입에 들어서는 중생들이 가파른 수미산을 오르는 고행을 체험하라는 의미에서 약간 둥글게 만들었다. ‘반야(般若)’란 만물의 참다운 실상을 깨닫고 불법을 꿰뚫는 지혜, 즉 온갖 망상에서 벗어나 존재의 참모습을 앎으로써 성불에 이르게 되는 마음의 작용을 말한다. 따라서 반야교를 건너는 것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의 길로 들어섰음을 의미한다.
영양남씨 치암(癡菴) 남경희(南景羲,1748~1812)는 영덕에서 경주로 세거한 우암 남구명(南九明)의 후손으로, 활산(活山) 남용만(南龍萬)이 그의 부친이고 어머니는 화계(花溪) 류의건(柳宜健)의 따님이다. 1777년 진사에 올라 승문원박사·성균관전적·사헌부감찰·병조좌랑·사간원정언 등 여러 요직을 거쳤으며, 44세 되던 해(1791)에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 경주로 돌아와 보문동의 동쪽인 암곡동(暗谷洞)에 지연정사(止淵精舍)를 짓고, 학문을 궁구하고 지역의 인사들과 교유하면서 여생을 마쳤다. 1860년 아들 남기양(南驥陽)이 12권 6책의 『치암집』을 편찬하였고, 외손 이종상(李鍾祥,보문정사 배향)이 발문을 적었다. 현재 보문단지에서 동쪽으로 토함산을 오르다 보면 좌측으로 1975년에 건립된 덕동댐이 시야에 들어온다. 예전 이곳엔 황룡에서 흘러오는 물과 암곡에서 굽이치는 두 물줄기가 만나는 덕동(德洞)마을이 있었고, 북쪽 암곡 상류쪽으로 오르면서 덕동-명실-시래골-큰마을-계정-큰기왓골-와동-왕산 등 여러 마을이 분포한다. 특히 계정에는 치암의 지연정이 있었으나, 댐 건설로 상류쪽으로 500여m 떨어진 곳에 이건(지연정사, 보덕로 275-5)하였고, 덕동을 비롯한 수몰민 역시 주변으로 흩어지거나, 가까운 산등성이로 옮겨가 살았다. 치암은 1791년 암곡동에 자리하면서 덕동의 아름다운 산수를 즐겼으며, 지역의 교화에도 애썼다. 이후 1804년 명실동에 대한 자치회를 둘 것을 제안하며, 백성이 착하고 덕이 있는 마을의 덕동을 가꾸려고 노력하였다. 송나라 여대충(呂大忠)·대방(大防)·대균(大鈞)·대림(大臨) 4형제는 장재(張載)와 정이(程頤)에게 도학을 배웠고, 『여씨향약』을 지었다. 조선에 주자학이 성행하면서 여씨향약이 알려지고, 중종 때 조광조(趙光祖)에 의해 향약이 대대적으로 보급되었으며, 이후 지방의 실정에 맞게 보완되면서 여러 향약이 등장하게 되는데, 경주도 유림과 향촌세력을 중심으로 향약이 가속화되었다. 명곡은 암곡의 반대되는 표현으로 화봉괘정산(불벵이산:260여m)에 불을 놓으면 괘정산 뒤쪽은 어두워 암곡(暗谷)이라 하고, 앞쪽은 밝아 명실(明室)이라 했다고 한다. 그가 남긴 명곡동안기(明谷洞案記)는 경주의 마을형성과 향약연구 및 향촌지배세력을 연구하는데 도움이 된다. 글에 등장하는 경약(敬若)과 사희(士希,淵巖 南景愚,1762~1837)는 집안사람으로 보이며, 근암 최옥(1762~1840)이 지은 「만남사희(輓南士希)」에서 치암과 사희의 관계를 언급했다. 이들이 치암에게 보세장민에 대해 묻고, 치암은 장재의 정전제와 여씨향약을 거론하며, 백성이 힘들어하는 이유가 선비 자신들에게 있다고 자책하며 명곡동안을 작성하였다. 장재(張載)는 “인정(仁政)은 반드시 경계 다스림으로부터 시작하여야 하니, 빈부가 균등하지 못하며 교양함에 법도가 없으면 비록 정치의 도를 말하고자 하더라도 모두 구차할 뿐이다” 또 “대처함에 방법이 있게 하여 몇 년을 기한으로 삼는다면, 옛 제도를 회복할 수 있다”며 정전제의 개혁으로 어진 정치를 하고자 제안하였다. -명곡동안기(明谷洞案記) 갑자년(1804) 여름 6월 3일, 명곡동의 동안(洞案)이 완성되었고, 동안의 인원은 다섯 사람이다. 명곡동은 옛날에는 양반의 가계가 없다가, 남씨·최씨 두 성씨가 처음 와서 거주하였고, 산지가 혹은 20여 년 혹은 10여 년 되기 때문에 다섯 사람에 그쳤다. 경약(敬若)과 사희(士希)가 일찍이 나에게 “선비는 어려서부터 독서하고 혈구지도(絜矩之道)를 배우면서 어찌 세상을 구하고 백성을 돕고자[輔世長民] 하지 않는 겁니까?”하기에, 나는 “힘이 미치지 못해서이다. 힘이 있으면서도 하지 않는 것은 군자의 체용의 학문이 아니다. 횡거선생[장재(張載,1020~1077)]이 밭을 사서 우물 정자로 획을 긋고(정전법:買田一方 畵爲數井), 여씨향약을 하고자한 것은 모두가 이러한 뜻이다. 우리들이 비록 촌구석에 살지만 진실로 이것에 힘쓴다면 오히려 한 마을의 백성 수에는 미칠 것이니, 이 역시 보세장민(輔世長民)이라 말할만하다. 여기서 하지 않는다면 양주(楊朱)의 위아설(爲我說)에 가까울 것이니, 우리들이 어찌 조금도 그것에 뜻을 두지 않겠는가?”했다. 마침내 내가 마을의 일을 아는 것을 미뤄서 향약을 간략히 모방하고 절목을 지었으니, 풍속의 교화 가운데 만분의 일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 그 마음이 소민(小民:백성)을 위함에 그치지 않고, 우리들이 서로 갈고닦아 힘쓰는 방도에 달려있으며, 백성은 날마다 힘쓰지만, 기미가 옮겨 다님과 시행하고 조치하는 책임을 알지 못하니, 실제는 우리들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때문에 성명을 나열해 적어 명곡동안을 만들고, 그 말미에 절목을 이어서 적어 후인들에게 보여주어 (향약의 규칙을) 무너뜨리지 말도록 한다. 경약은 그 사안을 알아 이미 완성하였고, 나(치암)는 책 끝부분에 그 일을 설명하노라.
子曰 苟志於仁矣 無惡也 자왈 구지어인의면 무악야라. <주석> 苟 :誠이다. 志 :마음이 가는 바이다. 無惡 :악을 하는 일이 없음이다. <번역>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한 사람이 능히 진실로 인에 마음을 둔다면 악한 일은 만들지 않는다. <묵상> 지극히 당연한 원론적인 말씀이다. 그런데 이를 해석함에 내가 진실로 인에 뜻을 둔다면 악이 없어질 것이다. 고 해석하면 너무 지나친 자만일 것이다. 그저 단순히 악한 일만은 하지 않을 것이다. 정도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인간을 워낙 불완전하고 나약하기 때문이다. 바울 같은 성자도 내가 하고자 하는 선은 행치 못하고 하고자 아니하는 악을 행한다고 고백하였다. 이게 인간의 타고난 나약함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섰다고 하는 자는 넘어지기를 조심하여야 하는 것이다. 잠시라도 섰다고 자만하는 순간 곧 넘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인에 뜻을 두고 부단히 그 인을 실천하고자 하여야 겨우 악은 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이제 내가 인에 뜻을 두니 악이 없어지더라고 하는 것은 자기 자만이다. 끊임없이 인에 뜻을 두고 정진하여야만 악을 없이 하고 더욱 나아가 정진하면 인도 이룰 수 있는 경지에 달하는 것이다.
경주시 출자·출연기관의 경영효율화 방안 마련과 경영평가결과 효율성 낮은 기관에 대한 출연금 차등 지원 등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김동해 의원은 20일 경주시의회 제236회 제1차 정례회 시정질문에서 “경주시는 7개 출자·출연기관과 1개 지방공단으로 도내에서 가장 많고, 전국적으로도 상위 5위 내 있을 만큼의 규..
(사) 동리목월기념사업회에서 운영하는 동리목월문예창작대학은 오는 29일 오후 2시 동리목월문예창작대학에서 신수정 문학평론가를 초청해 열린 강의를 실시한다. 이번 강의는 ‘소설이 말하는 것과 말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주제로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와 그것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명량’을 소재로 소설 장르의 본질적 특성을 이해하고자 하는 데 중점을 둔다. 신수정 평론가는 “우리 역사상 가장 탁월한 민족 영웅이라고 할 수 있는 이순신 장군을 소재로 한 ‘명량’과 ‘칼의 노래’를 대상으로 소설이 영웅을 재현하는 방식과 영화의 방식을 비교한다”면서 “조금 더 대중적으로 다가오는 영화라는 장르와 문자 텍스트로서의 소설 장르의 본질적 특징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고자 하는 데 본 강연의 가장 큰 목적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한국 소설에 내재돼 있는 집단적 무의식을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모티프들을 확인하는 작업에 많은 관심을 집중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신수정의 첫 평론집 ‘푸줏간에 걸린 고기’의 첫머리에서 ‘그 누구도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게 작가의 부담이라면, 작가의 작품에서 그 누구도 찾아내지 못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비평가의 몫’이라고 피력하는데 그런 점에서 신수정의 비평작업이 더욱 돋보인다는 평을 듣고 있다. 결국 문학이란 딱딱하게 굳어 있는 화석이 아니라 현재적 관점에 따라 항상 새롭게 재구성되는 유동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주고자 하는 데 강의자의 의도가 담겨 있다. 동리목월기념사업회 측은 “이번 강의는 문예창작대학 학생뿐 아니라 경주 시민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강의로 문학에 관심 있는 시민들의 많은 참석을 기다린다”고 전했다. 신수정 평론가는 문학평론가로 계간 ‘문학동네’ 편집위원 역임했다. 1990년대 문학의 특질을 규명하는 작업 밎 문학의 새로움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을 평론집 ‘푸줏간에 걸린 고기’를 통해 제시했으며, 최근에는 황석영 선생과 더불어 ‘한국 명단편선 100선’ 시리즈 10권을 선하고 해설을 덧붙이는 작업을 통해 한국근대소설의 계보를 새롭게 재구성했다. 현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해 소설론과 비평과 창작 등을 강의하고 있다.
경주교육지원청은 19일 상황실에서 ‘학원자율정화위원회 위촉식’ 을 가졌다. 이날 위촉된 자율정화위원들은 오는 28일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자율정화위원회 위원은 경주시학원연합회가 추천하는 학원장 5명과 학부모 중 교육장이 추천한 2명으로 구성됐으며 위원들의 임기는 2년이다. 학원자율정화위원회는 건전한 학원 풍토 조성으로 학부모의 사교육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데 일익을 담당하게 된다.
경주시는 민족고유의 명절인 추석을 맞이하여 고향을 찾는 귀성객들과 시민들이 안전하고 편안한 명절연휴를 보낼 수 있도록 ‘추석맞이 종합안정대책’을 추진한다. 추석맞이 종합안정대책은 △종합상황반 운영 △도로정비 및 특별교통대책 △추석 물가 안정 관리 등 서민경제 대책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는 추석 △환경정비 및 주민불편사항 해소 △비상진료체계 확립 △ 재난안전관리 강화 △ 공직기강 확립 등 시민생활과 밀접한 8개 민생분야의 대책을 마련해 연휴 기간 행정 공백을 줄이고 민생안정과 주민 불편 해소에 전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이와 관련, 경주시는 19일 영상회의실에서 ‘추석맞이 종합안정대책운영상황 점검회의’를 갖고 연휴기간 동안 예상되는 각종 불편사항을 해소를 위하여 부서별 운영상황을 최종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다. 시는 우선 추석 연휴기간인 22일부터 26일까지 5일간 종합상황실을 운영한다. 10개반 155명의 직원이 비상근무에 나서 도로, 교통, 환경, 청소, 상·하수도 등 시민생활 불편사항을 최소화하는데 만반의 준비를 갖춘다. 특히 연휴 전까지 귀성객에게 안전하고 편안한 귀성길을 제공하고자 시·군도 및 농어촌도로 등 전 노선(1,184km)에 대해 불량노면, 도로절개지 등 도로시설물 정비 및 점검을 마쳤다. 물가안정대책과 관련해 물가관리 중점기간을 두고 합동지도 점검반이 개인서비스, 축산, 수산, 상거래질서 등 4개 분야의 요금인상, 부정축산물 유통, 매점매석, 가격표시제 이행 등을 집중 점검하고, 제수용품과 선물용품을 중심으로 농산물 원산지 허위표시 등의 특별단속도 병행해 추진한다. 또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는 추석 명절을 위해 사회복지시설 34개소, 어려운 세대 7889세대를 위문하는 등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강화하여 정겨운 명절 분위기 조성에 앞장선다. 추석맞이 환경정비 대책으로 읍면동별 자생단체, 유관기관 합동으로 환경정비를 실시하고 연휴 기간 환경오염 사고에 대비해 중점관리대상 배출업체, 산업·농공단지 등 공장밀집지역, 주요하천 등에 대한 특별점검을 실시한다. 또한 연휴 기간 생활쓰레기의 원활한 처리를 위해 상황실과 기동청소반을 운영하고, 일요일과 추석 당일인 23일과 24일을 제외하고 정상 수거한다. 보건소에서는 연휴기간 동안 비상진료 및 응급의료 상황실을 운영한다. 응급의료기관으로 동국대 경주병원이 24시간 응급실을 운영하고 당직의료기관 43개와 당번 약국 101개를 지정해 운영한다. 해당 명단은 경주시 홈페이지, 당직실(779-6222) 및 읍면동 주민센터에 비치하여 안내한다. 한편 경주시는 명절을 맞이해 해이해지기 쉬운 공직기강을 확립하고자 특별감찰 활동을 강화하고 ‘검소하고 청렴한 추석 명절 보내기’에 전 직원이 함께한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시민과 귀성객 모두가 일상에 불편함 없이 즐겁고 훈훈한 명절을 보낼 수 있도록 종합대책 운영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며 "유관 기관과의 협조체제를 구축하고 민생안정과 생활불편 해소 등 분야별 중점관리에 역점을 두고 철저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경주교육지원청 Wee센터는 19일 오전 10시부터 오후4시까지 소회의실에서 New-Start 상담원 및 Wee센터 관계자 25명을 대상으로 상담원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학업중단 청소년의 감정코칭과 자아존중감 향상’이라는 주제로 상담연수를 진행했다. 이번 연수는 한국심리상담센터 강용 원장을 강사로 초빙해 학업중단 청소년의 가족 및 또래 관계에서의 사회성을 함양하고, 자아존중감 향상을 위해 감정카드, 인지카드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으로 진행됐다. 경주교육지원청은 이번 연수를 통해 New-Start 상담원들의 전문가적 자질을 높여 학업중단 학생들의 감정코칭 및 자아존중감 향상을 통한 학교복귀율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New-Start프로그램은 경상북도교육청의 학업중단숙려제도를 말한다. 무단결석, 자퇴 등 학업중단 위기에 놓인 학생들이 있는 곳에 New-Start 상담원이 직접 찾아가서 상담과 체험활동을 지원해 학교적응력을 향상시켜 학교복귀를 돕고자 운영되고 있다. New-Start 프로그램은 일 년에 2번 의뢰가 가능하며 1회 이상 부모상담을 지원하고 있다. 김현동 Wee센터장은 “학생들의 학업중단은 가족과 사회의 문제 속에서 인정받고 격려 받지 못한 왜곡되고 억압된 감정이 학교라는 체제에서 표현된 것일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연수가 New-Start 상담원들의 감정코칭 능력을 향상시켜 지역의 학업중단 위기 청소년들의 학교복귀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사)경상북도장애인부모회 경주시지부(지부장 배예경)와 의료법인 성산의료재단 새빛병원(병원장 박재홍)은 지난 18일 발달장애인의 건강증진을 도모하고 의료지원 등에 관한 상호협력을 위하여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배예경 지부장은 "발달장애인에게 많은 관심과 성원을 보내주셔서 감사하고 이러한 실천 노력이 발달장애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상생의 가치를 구현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직원 박영식 씨가 ‘대학 학사 행정 개선 분야’에 관련해 교육부장관 표창장을 받았다. 박 씨는 학생수요기반 학사관리 인프라 개선, 학사제도 개선을 통한 엄정한 학사관리, 비교과 활성화 및 교육서비스 개선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지난 2012년부터 동국대 경주캠퍼스에서 근무 중인 박영식 씨는 학생들의 학사업무를 담당하는 교무팀에 근무하는 동안 스마트수업관리시스템 구축, 수강신청 장바구니(예비수강신청), 순번 대기제 도입 등 수강신청 시스템 개편과 미출석 조기취업자 학점부여 제도화, 재수강 제도 개선 등을 통해 대학의 교육서비스를 개선하는 데 기여했다. 박영식 씨는 “먼저 이 상은 저 개인의 수상이 아니라 지난 5년간 교무팀에서 대학 학사관리업무를 진행하며 함께 근무했던 교무팀 구성원들과 학사운영실의 선생님들을 대표해서 받은 상이라 생각한다. 교무팀과 학사운영실에서 늦은 밤까지 업무에 매진하고 계실 여러 선생님들과 수상의 기쁨을 함께 하고 싶다”며 “ 앞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참사람 양성대학’으로 동국대 경주캠퍼스가 나아가야 할 길에 미력하나마 작은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화랑교육원(원장 박두진)은 지난 18일 불국중 학생 46명과 교사 4명을 초청해 '화랑의 멋스러움으로 내일을 만들어 가자'라는 주제로 2018 화랑 호연지기 체험캠프를 열었다. 생동감이 넘치는 학생활동 중심의 학교 문화조성을 위한 희망, 열정, 지혜, 기력을 기르기 위해 현대적 감각에 맞는 화랑의 얼과 우리의 전통 문화 계승 및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하기 위해 모둠북, 국궁 및 장애체험, 동남산 현장체험등 화랑교육원에서 준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함께하며 친구 간의 우정과 공동체 역량을 기르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다. 박두진 원장은 “4차산업 혁명시대에 필요한 소통과 배려에 대해 중요성이 많아지는 오늘날, 화랑교육원이 조화와 화합으로 사회 구성원을 하나로 묶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은 의미가 크다”면서 “앞으로 더 많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해 운영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고 밝혔다.
용강동을 사랑하는 모임(이하 용사모, 회장 신창섭)는 지난 16일 근화여고에서 근화유치원까지 배수로 정비와 환경정비를 실시했다. 용사모는 용강동을 아끼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봉사단체로 발족해 지역의 궂은일에 마다하지 않고 솔선수범하는 단체다. 회원들은 이날 불어난 강우량으로 인해 지역 곳곳이 배수로 퇴적토로 인해 지역주민들이 불편을 겪는다는 민원을 파악해 자발적으로 배수로 정비를 실시해 주민들의 고충을 해소해 주었다. 신창섭 회장은 “민족 최대 명철 추석을 앞두고 이른 아침부터 정비봉사활동에 동참해준 회원들에게 감사드린다”며 “배수로와 환경정비를 통해 지역민들의 생활이 편리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동국대 경주캠퍼스는 지난 18일 교내 글로벌에이스홀에서 선도장학회 등 총 15개 장학회 장학금 수여식을 가졌다. 이날 수여식을 가진 장학회는 ▲선도장학회(이시장 선도스님) ▲관음장학회(이사장 만오스님) ▲길상장학회(이사장 길상스님) ▲나무심장학회(이사장 김순이) ▲박여련화장학회(이사장 박필순) ▲백년장학회(이사장 보안스님) ▲연진은성장학회(이사장 은성‧연진스님) ▲무금사장학회 ▲정진인장학회(이사장 변금연) ▲천지당장학회 ▲태영장학회(이사장 김광호) ▲혜선장학회(이사장 혜선스님) ▲경화상사장학회 (이사장 임행준) ▲보리사장학회 ▲무진장학회(이사장 최애화)등 총 15개 장학회로, 불교인재 양성을 위해 동국대 경주캠퍼스 재학생 49명에게 총 4900만 원의 장학금을 수여했다. 이대원 동국대 경주캠퍼스총장은 "불교종립대학인 우리 학교에 기부를 해주시는 분들은 형편이 넉넉하셔서 기부를 하시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불교 인재 양성을 위한 염원으로 기부하는 것”이라며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도 사회에 나가서는 베푸는 삶을 살아달라"고 당부했다.
한국수력원자력(사장 정재훈, 이하 한수원)이 19일 양북면 복지회관에서 지역상생 구현과 저소득층 의료복지 증진을 위한 ‘무료 눈 검진’을 실시했다. 한수원과 실명예방재단이 함께한 이날 검진에는 재단 소속 안과의사 및 검진요원들이 양북면 주민 180여명을 대상으로 시력검사, 안압검사, 굴절검사, 각막곡률검사, 전문의 정밀 검진 등을 시행했다. 또 진료를 마친 어르신들에게는 돋보기와 안약 등을 무료로 배부했다. 한수원 직원들은 안내와 접수 자원봉사자로 나서 진료가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도왔다. 한수원은 지난 2016년부터 발전소 주변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실명예방사업을 시행해오고 있다. 최신 장비를 활용한 정밀 안과 진단을 통해 백내장, 녹내장, 망막 질환 등을 조기 발견하는 한편, 실명위기에 놓인 저소득층에게는 수술비를 지원해 왔다. 올해도 지난 4월 춘천수력발전소 주변 지역을 시작으로 11차례에 걸쳐 발전소 주변 지역 주민 1600여 명에게 무료 눈 검진을 시행하고, 저소득층 시각 질환자 170여명에게 개안 수술비를 지원하는 등 지금까지 한수원의 실명예방사업을 통해 주민 4700여 명이 무료로 눈 검진을 받았으며, 907명이 개안 수술비를 지원받았다. 정재훈 사장은 “앞으로도 의료 소외계층을 찾아가는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지역주민을 비롯한 모든 국민들이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주소방서는 지난 18일 소회의실에서 안태현 경주소방서장, 한동수 소방안전협의회장, 신임소방안전협의회원 등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소방안전협의회 신임회원 위촉식 및 정기총회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경주소방서 소방안전협의회(회장 한동수)는 경주지역 주요 사업장 대표 등으로 구성된 협의체로 지역 자율소방안전관리 구축과 안전한 사회분위기 조성 등 민간에 의한 선진 소방안전문화 구축을 위해 운영되고 있다. 이날 위촉식에서는 ㈜준엔지니어링 이현정 대표이사, 명신정밀(주) 박지영 상무이사, 호텔여기어때 김호주 대표, 참사랑복지재단 배성진 이사장, 이현이엔지(주) 이현희 대표이사, 임연주공인중개사 임연주 대표 등 총 6명의 신임회원을 위촉하고 추석명절 화재예방대책, 주택용 소방시설 설치 등 주요 소방정책을 홍보하고 민관협력 안전문화 정착 방안에 대해 논의 했다.
양북면 어려운 세대 후원회(회장 곽석윤)는 추석 명절을 맞아 지난 17일 지역의 홀몸어르신·장애인·다문화가정 등 저소득 계층 80세대를 방문해 600만원 상당의 백미(20kg)와 상품권을 전달했다. 이날 후원물품 중 쌀 80포는 한국수력원자력(주) 월성원자력본부의 후원으로, 상품권(210만원)은 어려운세대후원회 회원들의 성금으로 마련됐다. 양북면 어려운 세대 후원회는 37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으며 매년 민족 고유의 명절인 설과 추석에 지역의 어려운 이웃을 방문해 쌀과 상품권을 전달하고 말벗을 해드리는 등 훈훈한 이웃의 정을 나누고 있다. 곽석윤 회장은 “추석을 맞이해 지역의 외롭고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 나누게 되어 기쁘다. 앞으로도 나눔을 통해 소외계층에게 행복과 희망을 줄 수 있는 후원 활동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중부동 통장협의회(회장 이상구)는 지난 17일 아름답고 쾌적한 중부동을 만들기 위해 읍성주변과 가로변 환경정비를 실시했다. 추석 명절을 맞아 고향을 찾는 귀성객과 경주를 찾는 관광객에게 아름답고 다시 찾고 싶은 경주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통장협의회에서 먼저 솔선수범했다. 이상구 통장협의회장은 “우리 마을은 당연히 우리가 중심이 되어 아름답게 관리하는 것이 당연하다. 앞으로도 꾸준히 통장협의회에서 솔선해 환경정비에 앞장 설 계획이다”고 말했다.
천북면사무소(면장 임경석)는 지난 18일 면소재지 진입로 자투리땅에 화단을 조성해 아름다운 천북면 만들기 사업에 나섰다. 이번 사업은 경주시의 민선7기 시민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경주 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됐으며 천북면새마을협의회(회장 최동식)와 부녀회(회장 장성분) 회원 10여명이 참여해 진입로 자투리땅 330㎡에 맨드라미, 대국, 국화 등 화초 500본을 심어 화단을 조성했다. 천북면은 앞으로 면소재지 인도변에 대형화분을 설치해 사계절 꽃을 심고, 천북면 진입로와 천북남로 무궁화거리에 코스모스 꽃길을 조성할 계획이다. 장성분 부녀회장은 “추석 대목을 맞아 바쁜 가운데도 참여한 회원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고향을 찾는 귀성객들이 기뻐할 모습을 생각하니 힘든 줄도 모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