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가 2023년 1월 1일 기준 조사·산정한 개별주택 4만853호에 대한 개별주택가격을 오는 지난달 28일 결정·공시했다. 개별주택가격은 주택시장의 가격정보를 담고 있고 국세, 지방세 부동산 관련 조세의 부과 기준이 된다. 이외에도 각종 부담금, 건강보험료 산정 등 61종에 활용된다. 시에 따르면 올해 공시대상 개별주택가격은 전년 대비 평균 2.9% 하락했다. 이는 부동산시장 침체, 국민세금 부담 완화를 위한 올해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율 하향 조정에 따라 지역 표준주택가격 평균 3.59% 하락이 반영된 결과이다. 결정·공시된 개별주택가격은 부동산공시가격 알리미를 통해 열람하거나 시청 세정과 또는 주택소재지 읍·면·동 행정복지센터를 방문해 확인할 수 있다. 공시된 개별주택가격에 대한 이의가 있는 주택 소유자는 4월 28일부터 5월 30일까지 경주시청 세정과 또는 주택 소재지 읍·면·동 행정복지센터에 방문해 이의신청서를 접수하면 된다. 시는 이의가 제기된 주택가격에 대해 적정성 여부 등을 재조사해 한국부동산원의 검증과 경주시 부동산가격공시위원회의 심의를 거친 후 그 결과를 이의 신청인에게 통지하고 6월 27일 조정 공시할 계획이다.
경북 5개 학교가 선정된 해외 우수 유학생 경북 직업계교 입학 프로젝트에 경주지역 학교가 3개 선정됐다. <사진> 이들 학교는 전체 우수 유학생의 80%를 배정받을 전망이다. 경북교육청은 따르면 해외 우수 유학생의 경북 직업계고 입학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경북교육청에 따르면 학령 인구 감소로 학생 충원이 어려워진 직업계고와 소멸 위기에 놓인 지역 사회를 살리기 위해 중학교를 졸업한 외국 우수 유학생을 적극 유치하기로 했다. 해외 유학생이 지역특화형 비자와 연계될 경우 직업계고 졸업 후 지역 산업체에 취업해 국내 구인난을 해소할 수 있으며, 비자 발급이 어렵다면 자국으로 돌아가 현장기술인력으로 취업할 수 있다. 경북 직업교육은 지난 2010년부터 특화된 해외 취업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글로벌 현장실습과 연계한 해외 취업으로 취업역량을 강화해 학교별 특성을 반영한 자율적 혁신을 통해 고숙련 실무인재를 양성해 오고 있다. 그리고 지난 3월, 하와이와 베트남 교육관계자가 도내 직업계 고등학교를 방문해 교육과정 협력 및 교류 방안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해외 우수 유학생 입학을 위한 사전 현지 조사 결과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ASEAN 국가의 다수 유학생이 입학을 희망해 도내 5개 직업계고로 입학할 예정이다. 경주정보고, 경주여자정보고, 신라공고 선정 해외 우수 유학생 경북 직업계교 입학 프로젝트는 도내 개 직업계 고등학교에서 54명의 학생이 선발된다. 이 가운데 지역의 경주정보고와 경주여자정보고, 신라공고 등 3개 학교가 40여 명 내외의 학생을 선발할 계획이다. 도내에서 경주지역 직업계고가 다수 선발은 지역적 특성이 반영된 것이다. 교육청 관계자는 “학령인구 감소로 직업계고 충원률을 높이고 인구 감소지역 중소기업 구인난 해소, 다문화 학생 비율이 높은 경주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다”면서 “산업체 맞춤형 교육과정 운영을 통해 지역 구인난 해소 및 이들의 지역 정착을 통한 지방 인구 소멸 문제 해소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외 유학생들이 한국어와 전공 직무 기술을 익혀 지역 인재로 안착할 수 있도록 취업비자 발급 등 제도 개선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경주시가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이나 치매 가족을 돌보느라 진학·취업 등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을 돕는다. 시는 올해 첫 ‘가족돌봄청년 지원사업’으로 가족돌봄청년 50명을 선정해 인당 최대 600만원을 지원한다. 가족돌봄청년으로 선정되면 △생활위기 지원금(통신료, 공공요금 등) △자기계발 지원금(교육비, 문화지원비, 심리정서 지원비 등)을 포함해 1인당 월 50만원씩 최대 1년간 지원받게 된다. 시는 또 선정된 청년들에게 심리 상담과 경주시 청년센터에서 운영 중인 취업지원 프로그램도 연계 지원할 예정이다. 신청대상은 가족과 주소(경주)를 같이 하는 만 19세 이상 39세 이하 미혼청년이다. 신청방법은 경주시 일자리청년정책과로 방문접수하거나 우편 등기접수하면 되고, 선정 결과는 개별 휴대전화로 통보된다. 선정기준은 △지난해 기준 중위소득 150% 이하 △청년 본인이 기초생활보장수급자가 아닌 자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이나 치매 가족을 돌보는 미혼청년 등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신청은 이달부터 상시 접수한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경주시청 홈페이지(경주소식/고시공고)를 참조하거나 일자리청년정책과로 문의하면 된다. 경주시 관계자는 “장애인, 치매 가족을 돌봄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족돌봄 청년에게 건강한 사회구성원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밝은 미래를 준비해 나가는데 적극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의무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암 검진 수검률에서 경주시가 전국·경북 평균보다 저조한 것으로 나타나 각별한 관심이 요구된다. 암 발생에 따른 본인과 가족의 고통 그리고 사회적비용 등을 감안하면 경주시민들의 암 검진 수검률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3일 국민건강보험공단 경주지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암검진사업 대상자 암검진 수검률 집계결과 경주지역에서는 검진 대상자의 42.3%에 그쳤다. 실제 경주시에 거주하는 시민들의 암검진 수검률로, 검진 대상 경주시민 10명 중 약 4명만 검사를 받은 셈이다. 이 같은 수치는 전국 평균(45.6%)과 경북 평균(44.0%)보다 낮은 수치다. 특히 인구분포도 및 검진대상자가 경주시와 유사한 경북지역 내 포항 북구(46.9%), 구미(46.8%), 경산(44.81%)보다도 낮게 나타났다. 앞서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간 경주시민들의 암 검진 수검률은 더욱 낮았다. 2019년 35.2%, 2020년 38.1%, 2021년 39.3%로 도내 23개 시·군 가운데 하위권에 머물렀다. 암 검진 수검률이 낮게 나타난 것은 실제 암 발생 감소율이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중앙암등록본부가 5년마다 집계하는 인구 10만명당 암 연령표준화 발생률에 따르면 경주지역에는 2009년~2013년 523.9명에서 2014년~2018년 498.9명으로 25.0명 감소했다. 같은 기간 전국 평균 46.3명, 경북 평균 43.5명에 비해 매우 낮은 감소율을 보인 것. 특히 암 발생 감소현황이 비슷한 인근지역 포항 북구(82.1명), 구미(78.5명), 포항 남구(64.7명)와 대비해서는 더욱 큰 차이를 보였다. 정부는 암으로 인한 의료비 증가 등 사회적비용을 줄이기 위해 전체 건강보험가입자와 의료급여 수급자를 대상으로 국가암검진사업을 벌이고 있다. 위암과 유방암 검사는 만 40세 이상부터 2년에 한번씩, 대장암은 만 50세 이상부터 1년에 한 번씩 받을 수 있다. 간암은 만 40세 이상 간염 보균자 등 고위험군만 6개월에 한 번씩, 자궁경부암은 만 20세 이상부터 2년에 한 번씩 받는다. 건강보험 가입자 중 소득상위 50%는 암 검진비용의 10%만 부담하면 되고, 건강보험 가입자 하위 50%와 의료급여 수급권자는 무료로 받을 수 있다. 다만, 자궁경부암과 대장암 검사는 모두 무료다. 국가암검진을 통해 암을 발견하면 국가에서 별도로 의료비를 지원한다. 하지만 당해 국가암검진 대상자임에도 검진을 안 받았다가 뒤늦게 암을 발견하면 별도의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이 같은 제도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경주시민들 중 본인이 받을 수 있는 한 가지 또는 여러 가지 암 검진 중 하나라도 받은 사람이 10명 중 약 4명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관련당국이 수검률이 저조한 원인 파악과 함께 국가암검진 사업 홍보와 검진을 독려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주지역 의료계 한 관계자는 “암은 조기 발견이 매우 중요한 만큼 국가암검진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인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관련당국의 암 검진 사업 홍보도 물론 중요하다. 무엇보다 시민들 스스로가 본인과 가족을 위해, 또 사회적비용 감소를 위해 암 검진에 적극 참여하고자 하는 시민의식은 더욱 필요하다”고 전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경주시자 관계자는 “암 검진은 암의 조기 발견·조기치료의 첫걸음으로, 경주시 등 지역 기관·단체와 연계한 홍보를 강화해 수검률을 높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또 “보통 연말이면 수검자가 대거 몰려 검진기관 이용이 어려울 수 있으니 연말이 오기 전 건강검진 및 암 검진을 받을 것을 추천한다”고 덧붙였다.
휘영하다 ‘공허함’ 우리의 삶에서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며 다양한 경험을 하고, 목표를 가지고 노력하고 성취를 이루어 내기도 한다. 그럼에도 ‘공허함’은 종종 큰 불안감, 두려움을 주기도, 언제나 따라다니며 우리를 괴롭히곤 한다. 이를 채우기 위해 사람들은 각자의 방법을 시도한다. 돈이나 명성을 추구하기도, 가족과 친구,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며 위로를 받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종교나 철학을 통해 신념을 갖고 자신을 안정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방법이 자신의 결핍을 완전히 채우지는 못하며 우리는 공허함과 함께 살아가게 된다.
지난 주말 경주지역에도 황사와 미세먼지가 최악의 수치를 기록하며 기승을 부렸다. 국립환경과학원에 따르면 지난 21일 오후 7시 기준 경주에서 관측된 미세먼지는 시간당 최고 763㎍/㎥까지 치솟았다. 이는 미세먼지 대기환경지수 상 ‘매우나쁨’(24시간 기준) 기준인 151㎍/㎥의 505%에 해당한다. 환경부는 이날 오전 11시와 오후 3시 각각 경북의 황사위기경보 단계를 주의로 한 단계 올렸다. 주의 단계 황사위기경보는 ‘황사 때문에 미세먼지 경보가 발령되고, 대규모 재난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을 때’ 발령된다. 이번 황사로 인한 미세먼지는 일요일인 지난 23일까지 기승을 부렸다. 문제는 올해 봄철 황사가 자주 발생했고, 앞으로도 나타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지난 겨울 몽골 고비사막, 중국 내몽골고원과 만주 등 황사 발원지에 눈이 적게 내리고, 기온이 평년보다 높아지는 등 황사 발생 확률이 올라갔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 방역조치 해제 이후 중국 북동부 지역에 있는 공장이 가동이 늘어난 것도 대기질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미세먼지는 천식과 같은 호흡기계 질병을 악화하고, 폐 기능 저하를 초래한다. 특히 코 점막을 통해 걸러지지 않는 초미세먼지는 폐포까지 침투해 천식이나 폐 질환 유병률과 조기 사망률을 증가시킨다. 세계보건기구는 미세먼지로 인해 매년 700만명이 조기 사망한다며 미세먼지를 1급 발암물질로 지정하기도 했다. 공기 중에 초미세먼지나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지면 개인별 건강관리에 유념해야 한다. 우선 가정에서는 황사가 실내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창문 등을 사전에 점검하고, 노약자 등 황사에 취약한 계층은 실외활동을 자제해야 한다. 부득이한 외출 시에는 황사·미세먼지 등 유해물질은 막을 수 있는 KF80 이상의 보건용 마스크를 써야 한다. 황사나 미세먼지를 개인, 지자체 등의 노력으로는 마땅히 막을 방법은 없다. 점점 심해지는 황사와 미세먼지를 저감하기 위해서는 한·중 양국 정부차원의 공동연구와 대응이 시급해 보인다. 그동안 코로나19 등 국제적인 이슈로 인해 미세먼지 저감대책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측면이 없지 않다. 경주시는 비산먼지 발생 사업장 관리 등 지자체 차원의 노력을, 정부는 근본적인 미세먼지 저감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할 것이다.
넘어진 채 발견된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불을 바로세우기 위한 열기가 어느 때보다 뜨겁다. ‘5cm의 기적’으로 불리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 마애불은 지난 2007년 5월 발견돼 16년이 지났지만 현재까지 넘어진 채로 보존되고 있다. 문화재청, 경북도, 경주시는 지난 14일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남산 열암곡 마애불상의 가치와 보존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또 조계종은 지난 19일 ‘천년을 세우다’ 추진위원회를 공식 출범했다. 이어 추진위원회는 28일부터 남산 열암곡에서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 모시기 기도 입재 법회’를 시작으로 1000일 기도에 돌입한다. 모두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불 바로 모시기와 선명상 프로그램 개발, 명상센터 건립 등을 위해서다. 조계종은 이 같은 원력 결집과 실무적 연구를 통해 오는 2025년까지 마애불의 입불을 시행한다는 복안이다. 사실 열암곡 마애불을 바로 세우기 위한 노력들은 그동안 꾸준히 진행돼왔다. 하지만 길이 5.6m, 무게가 80t에 이르고, 산비탈 중턱에 엎어진 상태여서 바로세우기에 난항을 겪고 있다. 자칫 불상을 세우는 과정에서 파손 우려가 있고, 산 중턱이어서 장비 반입도 어렵기 때문이다. 앞서 경주시가 지난 2015년 3월부터 2016년 9월 5일까지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입불방안 연구용역을 의뢰한 결과 ‘자재를 민간헬기와 모노레일로 운반한 다음 호이스트 크레인을 설치한 뒤 불상을 세워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었다. 하지만 당시 문화재위원들은 불상이 위치한 곳의 지반이 연약해 작업 시 파손위험이 예상되므로 모의실험 뒤 성공하면 입불작업을 해야 한다고 자문했다. 현재 불상 주변 지반과 똑같은 환경을 만들고 중량 80t의 암석을 설치한 뒤 장비를 이용해 세우는 모의실험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모의실험에 드는 비용은 약 20억원으로 추산했다. 이 같은 과정 속에서 열암곡 마애불 입불에 대한 추진동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핵심 공약으로 열암곡 마애불 바로 모시기를 내놓으면서 추진에 탄력을 받기 시작했고, 현재 입불 방안 연구용역 등이 재추진되는 등 다양한 노력들이 전개되고 있다. 과거 조사에서 마애불은 1430년 발생한 규모 6.4 지진으로 넘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마애불이 있는 주변의 지반도 연약한 것으로 분석됐다. 지진, 산사태 등 자연재해로 인한 훼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말이다. 문화재청 등 관련당국이 열암곡 마애불 바로 세우기를 서둘러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국힘당의 윤석열 후보는 불과 0.73퍼센트의 득표 차로 민주당의 이재명 후보를 눌렀다. 그러나 이것이 작은 표차이기는 해도, 민주당이 문재인 정부 5년간 해놓은 탄탄한 재집권의 시나리오를 뒤엎은 결과이다. 민주당은 이해찬 대표가 20년 내지 50년의 장기집권 마스터플랜을 짜놓았고, 그 실효성은 거의 압도적이었다. 그리고 민주화 이후 성립된 일종의 공식 즉 보수건 진보건 두 번의 연속 집권기간은 허여된다는 것을 허문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윤 대통령의 당선은 하나의 기적이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윤석열 후보는 박근혜 정권, 문재인 정권의 10년을 거치며 형성된 강한 지도자를 원하는 국민의 의사와 운동권세력에 대한 염증이 만들어낸 ‘시대정신’의 바람을 등에 업고, 이처럼 기적적으로 당선되었다. 이 전반적 과정에 관해서는 졸저 ‘기득권을 넘은 공정세상’에서 상술하여 놓았다. 흥미가 있는 분은 이를 참고해주시면 좋겠다. 다 아는 대로, 민주당 주변의 모험주의 세력은 윤석열 정부의 출범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임기가 시작되자마자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 혹은 탄핵을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그리고 민주당의 일부 국회의원들도 여기에 동조하며 과격한 막말의 퍼레이드를 이어나갔다. 지금은 민주당 전체가 ‘입법독재’를 행사하며 정권재탈환의 야문 꿈을 꾸고 있다. 민주당 인사들이 전반적으로 그리는 그림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바로 ‘대선불복’이다. 그러나 ‘대선불복’은 야당쪽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윤석열 후보와 국힘당 내부에서 경선하였던 국힘당의 노련한 정치인 유승민 전 의원과 홍준표 대구시장은 그들의 목소리에 고저는 있었어도 대통령후보를 뺏긴 것에 대한 억울한 유감이 언제나 묻어있다. 물론 홍 시장은 보다 현실적 사고를 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대구시정의 책임자로서, 한동안 윤 대통령을 옹호하는 외관을 보여주기는 했다. 그러나 유 전 의원은 취임 당일부터 지금까지 윤 대통령에 대한 혹독한 비판을 그치지 않았다. 이와 같이 자당의 대통령을 대하는 자세는 우리 헌정사에서 일찍이 없었던 일일뿐더러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예이다. 그 둘은 윤 대통령의 당선을 뜻밖에 찾아든 행운으로 여긴다. 그들의 의중은 로또 1등 당첨자에 대해 주변의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과 거의 같다고 본다. 특히 홍 시장이 강하다. “내가 당원투표에서는 졌지만 일반 국민 여론조사에서는 이겼다”고 하며, 자신이 대통령후보가 되기만 했으면 당선은 또 틀림없었다는 아쉬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자신에 대한 여론조사의 호의가 ‘윤석열 대통령 후보’에 대한 민주당 측의 두려움이 빚어낸 ‘역선택’의 결과임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향후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면, 주저 없이 윤석열 정부를 향하여 냉정하고 날카로운 발톱을 들이밀 것이다. 유승민, 홍준표 두 사람은 좀 더 자신에게 엄격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자신의 존재를 그대로 바라보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들은 한갓 ‘정치적 야심가’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준석 전 당대표의 말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윤석열 후보가 토론 몇 번 하면 나가떨어질, 정치인으로서의 자질이 대단히 부족한 인물로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경선의 토론과정을 상기해보라. 거듭된 토론 내내 토론을 이끌어가는 ‘상황지배력’은 윤 후보가 두 사람을 훨씬 능가했다. 그리고 국민은 시종일관 민주당 후보를 상대하여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윤석열 후보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여하튼 ‘정치초년생’인 윤 대통령은 바깥의 적 뿐만 아니라 내부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적까지 안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누구의 말마따나 ‘내부의 적이 더 무서운 법’이다. 윤 대통령은 어떻게 하면 이 포위상태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김기현 당대표체제가 세워졌으나 짧은 기간이긴 해도 지금까지의 상황전개를 보면, 기대처럼 큰 의지처가 되기는 어려울 듯하다. 앞으로 권영세 장관이 국회로 돌아온다 해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소극적인 농성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안팎의 대선불복세력에 의한 포위를 풀기 위해서는 성 밖의 국민을 향해 절실한 도움의 요청을 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기댈 것은 국민의 성원밖에는 없다. 지지층 뿐만 아니라 중도층의 국민들까지 나서 나라의 장래를 위해 그를 기꺼이 돕겠다는 태세가 형성되면, 내부의 적이건 외부의 적이건 모래성처럼 보잘 것 없어진다. 다시 한번, 더욱 큰 시대정신인 ‘공정’의 빛나는 깃발을 들며, 그들을 껴안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하라.
60이라는 나이가 저만치 와 있다. 만으로 기준이 바뀌어 60이 되는 날이 조금 뒤로 밀렸지만 60이라는 숫자는 태산이 되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공자의 기준을 적용하면 50대는 지천명이고, 60대는 이순이라 했던가? 이를 현재에는 어떻게 적용해야 될까? 공자 시대의 나이 기준에 0.8 아니 0.7를 곱하면 될까? 그러면 현재의 나는 불혹일까, 지천명 초반일까? 최근 엔데믹으로 바뀌고 마스크로부터 자유로워짐과 함께 고등학교 서울동기회가 활성화 되고 있다. 내 삶에서 3년이라는 고등학교 시간이 이렇게 소중하고 귀한 인생동반자를 만들어 주었음이 새삼 감사하다. 그들을 생각하며 ‘내가 ~ 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가정형 질문과 ‘나는 ~ 해서 다행이야’라는 문장을 비교해본다. 영국 심리학자 브레이저 박사는 자신의 삶이 불행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자주하는 것을 알아냈다고 한다. ‘나한테 약 1억원만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아이도 남들처럼 공부를 잘하면 얼마나 좋을까?’, ‘잘 사는 사람과 결혼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미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등 주로 ‘내가 ~ 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가정형 질문에 매달려 스스로를 괴롭혔다고 한다. 이에 브레이저 박사는 그들에게 ‘나는 ~ 해서 다행이야’라는 문장을 매일 네 개씩 만들어 보라고 했다. 그들은 ‘난 두 다리로 걸을 수 있어 다행이야’, ‘난 오늘도 먹을 수 있고, 잠잘 곳이 있어 다행이야’, ‘난 두 눈으로 볼 수 있어 다행이야’ 등 문장을 매일 만들었으며 이 훈련을 한지 6개월 뒤 ‘여러분은 지금 행복합니까?’라는 물음에 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네 살아 있음 그 자체가 참 다행입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서울에서의 삶을 시작한 내가 ‘만약에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의 초중고를 나왔더라면’이라는 질문과 ‘나는 경주에서 태어나 초중고를 나와서 다행이다’라는 문장을 대비시켜 본다. 결과는 너무나 선명하다. 동기들을 만나면서 그동안 몰랐던 오랜 친구들의 진가를 새삼 깨닫게 되는 즐거움을 느낀다. ‘경주에서 태어나 초중고를 나와서 다행’인 즐거움이다. 그들과의 모임과 소통은 내게 행복과 에너지를 일으켜준다. 다양한 경험과 연륜을 가진 친구들은 과거의 추억에 머무른 채 그 속에서만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 속에서 새로운 자극과 아이디어, 코칭을 주고 받는다. 그야말로 인생의 즐거운 향연이 펼쳐지는 것이다. 더구나 코로나라는 장벽이 오래 친구들을 가로 막고 있었으니 친구는 가까이 있어야 하고 자주 만나야 하며 같은 취미면 더 좋다는 말도 자연스레 되새기게 된다. 조금씩 나이를 먹어가니 후회나 미련이 적을수록 좋은 인생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려면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여기며,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고 또한 나이가 들수록 삶을 반추해 어떤 잔고가 얼마나 남았는지 돌아보는 과정도 필요하다. 인생에는 ‘6대 잔고(殘高)’가 있다고 하는데 남길수록 좋은 것이 있는가 하면, 떠나기 전에 깨끗이 비워야 하는 것도 있다고 한다. 남겨야 할 세 가지는 그리움과 웃음과 감동이다. 이 세 가지를 인생에서 남길 수 있다면 그만큼 성공한 인생도 드물 것이다. 비워야 할 것 세 가지 마음의 빚과 응어리, 그리고 정이라고 한다. 나로 인해 눈물을 흘린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용서를 구해 마음의 빚을 비우고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고 우정과 애정과 인정의 잔고를 아낌없이 나눠줘야 한다는 것이다. 비단 나이 먹어서뿐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누구건 이 인생의 6대 잔고 중 채울 것은 수시로 채우고 비울 것은 수시로 비워간다면 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브레이저 박사의 제안처럼 매일 4가지의 ‘다행 인생’ 문장을 만들어 볼 것을 권한다. 다음 번 친구들을 만나서도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양동마을의 수졸당(守拙堂) 고택 맞은편 언덕에 문원공(文元公)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1491~1553)의 손자인 수졸당 이의잠(李宜潛, 1576~1635)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동호정(東湖亭) 정자가 있다. 높은 곳에 세워진 정자는 비교적 관광객 발걸음이 적어서 조용히 앉아 사색하기에 좋고 마을을 조망하기에 수월하며, 정면으로 수목이 길을 내어주면 경주방향으로 산천이 시야에 들어온다. 앞면 4칸의 팔작지붕과 가운데 넓은 대청마루 2칸, 양쪽 1칸씩 온돌방이 배치되었고, 지금도 후손들이 사용하는 공간이다. 이의잠은 모친 옥산장씨와 수암공(守庵公) 이응인(李應仁, 1535~1593) 사이에서 4남의 막내로 경주 양동마을에서 출생하였다. 풍채가 좋았고 성품은 공손하였으며 4세에 모친이 죽자 부친은 아들이 가여웠지만 가르치기를 늦추지 않았다. 조금 장성해서는 설천정(雪川亭) 이의활(李宜活, 1573~1627), 무첨당(無忝堂) 이의윤(李宜潤,1564~1597)과 옥산서원에서 독서하였다. 1592년 왜란이 발발하자 부친과 함께 토벌에 참여하였고, 얼마 후 부친상을 마치고는 1595년에 참봉 손엽(孫曄,1544~1600), 남포현감 최계종(崔繼宗,1570~1647), 참봉 권응행(權應生,1571~1647) 등 여러 사람과 창의해서 왜적을 물리쳤으며, 팔공산회맹에도 참여하였다. 청도 대암(大庵) 박성(朴惺,1549~1606)의 문하에 들어갔으며, 지산(芝山) 조호익(曺好益,1545~1609),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1563~1633) 등에게서 수학하였다. 1612년 소과에 합격해 진사가 되었고, 찰방․의금부도사․하양현감 등을 역임하였으며 가학을 계승하며 1627년에 옥산서원 원장을 지냈다. 1617년 한강(寒岡) 정구(鄭逑) 선생이 부산 동래로 온천욕을 다녀올 적에 석담(石潭) 이윤우(李潤雨,1569~1634) 등과 함께 경주부로 맞이해 유람을 다니며 경전을 묻고 익혔는데, 『봉산욕행록(蓬山浴行錄)』을 보면 당시에 경주부윤 윤이영(尹貽永)이 노곡천(奴谷川)에서 이의잠,손우남(孫宇男),정사상(鄭四象),서재(鋤齋) 도여유(都汝兪) 등과 함께 한강 일행을 맞이하였다고 전한다. 훗날 사미헌(四未軒) 장복추(張福樞,1815~1900)가 묘지명을,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1827~1899)이 묘갈명 등을 지어 그의 행적을 전하였다. 동호정 정문을 지나면 대청마루 안에 걸린 동호정 현판이 눈에 들어오고 9대손 곡포(谷圃) 이능윤(李能允,1850~1930)과 서파(西坡) 류필영(柳必永,1841~1924) 등이 지은 동호정기(東湖亭記) 현판 등이 걸려있다. 1900년대 초반에 기문이 지어진 것을 미뤄보면 아마도 정자 역시 비슷한 시기에 편액이 걸린 듯하다. 류필영의 「동호정기」를 보면, “정자는 수졸공 이의잠 선생께서 거처하는 곳에서 동쪽 산에 있고 동호(東湖)라 편액하였으니, 이곳은 선생께서 일찍이 형강(兄江) 가의 동호에서 경치가 아름다운 곳을 찾았었다. 동호에는 윤암(綸巖) 즉 백씨(伯氏) 무첨당 이의윤 선생이 머물던** 곳이 있었고, 공이 그 뜻을 이어서 이곳 동호에 의거해 집 짓는 일을 도모하였다. 이미 이름을 명하였으나 집은 아직 300년 동안 이루지 못하였고, 동호가 뒤집히고 윤암이 돌아가시어 그 땅에 정자를 지을 수가 없었다. 이에 이곳에 집을 짓고 옛 편액을 걸은 것은 당시의 남기신 뜻을 쫓은 이유에서이다”라며, 무첨당과 연관된 동호의 내력을 언급하였다. 회재 선생의 손자인 무첨당 이의윤․양졸당 이의징․설천정 이의활․수졸당 이의잠․오의정 이의온 등이 각각 가학을 계승하며 터전을 닦았으며, 전주류씨 류필영은 정재(定齋) 류치명(柳致明,1777~1861)의 문인으로 역학(易學)과 시경(詩經)에 조예가 깊었고, 1919년 파리만국평화회의에 영남 유림의 주축으로 파리장서(巴里長書) 독립청원운동에 서명한 독립운동가로 알려진 인물이다. 이의잠에 대한 학문적 연구와 시대적 행보에 대한 조사는 미비한 상태이며, 집안사람과 지역사의 연관관계를 통해 그의 업적이 조명되길 희망해본다.
아시아의 봄이 뜨겁다. K팝 열풍과 한류로 뜨겁다는 뉴스가 아니다. 기상이변이 이제는 좀 더 크게, 다각적인 방향으로 온 대륙을 위협하고 있다. 한 곳에는 극심한 가뭄으로, 다른 곳에서는 물벼락으로 각종 이재민을 형성하고 있다. 또한 인간이 만들어낸 재앙, 전쟁으로 우크라이나가 시끄럽더니 수단 역시 내전으로 대한민국 군용기가 떠서 교민을 수송하고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 산업혁명이 세상을 뒤바꾸었다면 이제 AI 시대는 어떨까? 산업혁명 당시 일자리를 빼앗긴 노동자들이 산업혁명 예찬가인 자본가나 공장주를 타살하는 사건도 있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은 바뀌지 않았다. 없어진 일자리를 대신할 새로운 일자리가 어느 정도 생겼지만 일반 노동자들은 극빈층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해야 했다. AI시대는 더 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다. 새로운 일자리도 생겨날 테지만 극히 일부일 것이라 예측한다. 챗GPT에서 오토GPT로 단 몇 달만에 업그레이드 된 성능의 GPT가 등장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더 쉽게 사용하고 접근 가능한 GPT가 나올 것이다. 단순 업무, 단순히 지식을 이용하는 직업군은 모두 사라질 것이다. 삼십 년 전 우린, 이런 세상을 감히 상상이나 했었나? 미래세상을 구현하는 박람회에서 얼굴을 보며 통화하는 화상전화기(유선전화기다)가 고작이었다. 대학교에서 보고서를 컴퓨터에서 한글 프로그램으로 쓰기 시작하던 시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손에 스마트폰(컴퓨터)을 들고 못하는 것을 찾기가 어려운 세상이다. 게다가 AI까지. 우리가 살아온 세상이 우리 부모 세대와 달랐듯이,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엄마가 살아온 세상과 다르다. 1970년대는 고등학생만 되어도 지식인이었다. 왜? 먹고 살기도 바쁜 세상에 학교를 다닐 수 있는 사람은 부유한 가족이 아니라면 장손 정도였다. 그렇기에 대학만 졸업해도 직장이 보장되고 미래가 보장되는 시대였다. 그런 시대를 보고 읽힌 부모 세대는 전세계가 놀라는 교육열로 모든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다. 인구 소멸로 지방대가 무너지고 있으며 서울 시내 초등학교가 폐교되고 있다. 대학 졸업장은 더 이상 직장을, 미래를 보장해주지도 않는다. 그런데 왜, 아직도 부모들은, 엄마들은 아이들을 1970년대 발상으로 교육하려 하는가! 정보가 넘치는 세상에서 정보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능력(직독직해, 간단한 의사소통)이 필요할 것이다.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는 미래에는 모든 정보와 교육이 인터넷에 오픈되어 대학이 사라질 것이라 예언했다. 정말 엄청난 양의 정보와 교육 관련 자료들이 많다. 단, 영어 자료와 한국어 자료의 차이는 양으로나 질적으로나 비교 불가다. 번역 어플이나 GPT의 번역 능력이 뛰어나도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정보 접근성은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그렇다고 영어 유치원, 영어 학원을 주구장창 보내라는 소리가 아니다. <본지 “엄마는 30년이 걸렸단다” 참조> 스마트 시대에 스마트기기보다는 아날로그 독서를 강조하고 싶다. 뽀로로가 아이들의 대통령이 된 이후 각종 미디어로 인해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의 문해력은 나날이 떨어지고 있다. 글자를 이미 익히고 학교에 들어간 아이들도 많지만, 그 아이들은 단순히 활자를 익힌 것뿐이다. 문해력은 독서를 통해서 익히고 나아가 독서를 통해 더 큰 세상을 경험하고 생각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스마트기기를 통한 교육과 자료가 넘쳐난다. 그러나 스마트기기를 통한 교육은 자극적이다. 특히 어린 나이에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더욱 자극적이고 재미 위주의 자료들이 제공되고, 문제를 풀면 바로 답을 체크한다. 오랜 시간 고민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 몰입의 과정 역시 없다. 아줌마의 경험상 문제를 많이 푸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다. 한 문제를 풀더라도 몇 시간, 며칠에 걸쳐 해결했을 때 그 경험, 그 기분은 그 어떤 보상보다 크며 더 어려운 문제에 도전할 힘을 준다. 스마트기기를 통한 문제풀이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일이다. 스마트 시대에 스마트 기기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말할텐가? 스마트기기의 사용법은 한 시간이 익숙해진다. 하루면 영상을 만들 수도 있다. 애플, 구글 등 미국의 대표적 IT기업 창업자들의 아이들은 애플을 갖고 있지 않고 구글 검색을 이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19세기 스타일의 고대 교육을 받고 있다. 왜 그럴까? 지혜로운 엄마라면 답을 알 것이다.
바그너는 1849년 드레스덴 혁명 이후 스위스 취리히로 도피했다. 비록 도망자의 신분이었지만 특유의 카리스마와 입담으로 취리히 현지에서 인맥을 넓혀갔다. 특히 1852년 거상 오토 베젠동크(Otto Wesendonck/1815-1896)와의 만남은 바그너 인생과 작품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바그너가 오토의 젊고 아름다운 아내 마틸데(Mathilde Wesendonck/1828-1902)를 연모했기 때문이다. 오토는 1857년 취리히 근교에 지은 대저택의 별관에 바그너 부부를 불러 살게 했다. 바그너는 연모하던 마틸데를 매일 가까이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는 근 10년 동안 집필 중이던 니벨룽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를 (지크프리트의 2막 부분에서) 접고, 트리스탄과 이졸데(Tristan und Isolde)를 쓰기 시작했다. 자신과 마틸데의 ‘사랑’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이다. 당연히 자신은 트리스탄, 마틸데는 이졸데다. 이들은 현실에서도 비밀스런 만남을 이어갔다. 명백한 불륜이었다. 바그너는 불과 2개월 후 대본을 완성한 후 낭독회를 열었는데, 이날 바그너의 여인들이 모두 모이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현재의 아내 민나, 현재 사랑에 빠진 마틸데, 훗날 아내가 되는 코지마가 모두 참석한다. 낭독회를 마친 후 마틸데는 크게 감동하여 시를 쓴다. 바그너는 마틸데의 시로 가곡을 만들어 헌정하는데, 바로 베젠동크 가곡이다. 5편으로 구성된 베젠동크 가곡의 일부는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인용된다. 두 사람의 불륜은 이듬해(1858년) 발각된다. 민나가 둘 사이에 오간 연애편지를 보게 되었고, 그녀는 오토에게 고자질을 한다. 아무리 바그너가 철면피라지만 더 이상 베젠동크 부부의 집에서 머물 순 없었다. 그는 취리히를 떠나 베네치아에 한동안 머물다가 루체른에 돌아오는 동안 작곡을 완료했다(1859년). 이젠 무대에 올릴 일만 남았다. 바그너는 개작한 탄호이저를 파리 무대에 먼저 올리고(1861년), 이어서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오스트리아 빈에서 초연하려고 했다. 하나같이 모두 어렵고 길기까지 한 바그너의 작품들을 선뜻 무대에 올려주는 극장은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낙담하고 있던 바그너에게 희소식이 날아든다. 로엔그린을 보고 큰 감명을 받은 바이에른의 젊은 왕 루트비히2세(Ludwig II/1845-1886)가 왕위에 오르자(1864년) 바그너를 뮌헨으로 초빙한 것이다. 4시간짜리 대작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루트비히2세의 후원으로 드디어 뮌헨극장에서 초연(1865년)된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중세 켈트족의 전설이다. 오페라 배경이 아일랜드에서 콘월로 가는 배(1막), 콘월(2막), 브르타뉴(3막)인데, 모두 켈트 족의 언어가 남아있는 지역이다. 아일랜드의 공주 이졸데는 콘월의 마르케왕과 결혼하기 위해 콘월로 가는 중 사랑의 묘약을 마시고 마르케왕의 조카이자 용맹한 기사인 트리스탄과 사랑에 빠진다. 둘의 사랑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이었다. 결국 트리스탄이 먼저 죽고, 이졸데가 따라 죽음으로써 오페라는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음악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바그너다운 최초의 음악극 작품이면서 최초의 현대음악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대놓고 불협화음인 트리스탄코드(Tristanchord)는 쇤베르크의 현대음악에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바그너 작품 중에서 가장 통속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마틸데 부인과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이 작품에 노골적으로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둘이 함께 죽자며 노래하는 사랑의 이중창(2막)과 이졸데의 사랑의 죽음(3막) 아리아가 유명하다.
최근 종방된 SBS 방송의 인기 드라마 ‘모범택시2’가 많은 후일담을 남겼다. OTT방송 쿠팡플레이의 집계에 따르면 세계 16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콘텐츠로 등극했다. 최근 SBS가 다시 3편까지 제작결정했다고 밝힐 만큼 흥행 카드로 부상하기도 했다. ‘모범택시2’가 이처럼 인기를 얻은 비결은 간명하다. 힘없는 이들을 아픈 곳을 시원하게 가라앉힌 통쾌한 장면들로 넘쳐나기 때문이다. ‘모범택시1’편부터 시작된 ‘복수대행 써비스’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병리현상들, 일방적인 폭력과 그로 인한 억울함과 좌절, 분노들을 다루어 왔다. 이를테면 학폭에 시달리는 학생을 지금도 각 학교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을 다루었다. 여기에는 정치인과 부유한 상류층 아들이 학폭 가해자로 나오는데 이것은 현실에서도 생생히 드러난다. 오히려 현실에서는 그 억울함이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 최근에도 정치 일선에 나설 뻔한 유력한 검사출신 변호사의 아들이 학폭 가해자였지만 검사였던 아버지는 오히려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자신의 아들이 저지른 만행을 덮어버렸다. 노인을 위한 공연, 효도 나들이 등을 미끼로 시골 노인들에게 저질 전자제품을 판매해 돈을 갈취하는 악질 판매자들이 지금도 요리조리 법망을 피해가며 전국 곳곳에서 사기행각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는 부모들을 방치하다시피 하는 세태까지 맞물려 노인들의 쇠락을 부채질 한다. 제품에 대한 정보도 없고 물어볼 곳도 없이 오로지 감언이설에 이끌려 폭리와 바가지에 노출된 노인들은 드라마에서 나온 시골 노인들과 하등 다를 게 없다. 사이비 종교가 개인의 약점을 파고들어 사람을 불행에 빠뜨리는가 하면 멀쩡한 가정을 파탄에 몰아넣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비화된 것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불법적인 다단계 사업을 운영하며 개인의 재산을 갈취한 돈으로 정관계와 검찰과 경찰, 언론에 검은돈을 뿌려 천문학적인 사기행각을 벌인 일도 백일하에 드러났다. 그러나 이런 파렴치한 일들의 결과는 언제나 그렇듯 어중간한 중간 책임자 몇을 직위해제하거나 감옥에 보내는 것으로 졸속 매듭지어지기 일쑤였고 의혹들은 대충 며칠쯤 방송언론에서 떠들다가 묻혀버리기를 반복했다. 심지어 세간에 널리 알려진 ‘버닝썬 사건’이 거의 이름만 바꾼 ‘블랙썬 사건’으로 포장되어 모범택시에 나타난 것은 압권이었다. 현실에서 그랬듯 모범택시에서도 수사 경찰이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그러나 모범택시는 경찰의 죽음을 끝까지 파고들어 그 억울함을 해소해 주었고 범죄의 진상을 백일하에 드러내 관련된 악당들을 모두 단죄했다. 그러니 이런 속 시원한 결말을 보는 시청자들이 열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모범택시가 보여준 ‘복수대행 써비스’는 단순히 드라마 속 복수가 아니라 현실에 대한 시청자들의 끓어오르는 복수심을 해소해 준 서비스였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모범택시 류의 소설과 드라마, 영화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단한 인기를 기록했다. 홍길동전이 국문학사에서 중대한 대접을 받게 된 것이나 홍명희의 임꺽정전이 아직도 명작으로 읽히고 김홍신의 인간시장, 황석영의 장길산 등의 소설이 엄청난 판매고를 올린 것도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내재 된 억울함과 분노를 시원하게 해소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로빈 훗이나 월리엄 텔 같은 소설이 세계인의 사랑을 받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모범택시에 악당들을 물리치는 통쾌한 액션이 있었다는 것도 인기의 결정적 이유일 것이다. 드라마 속 김도기 기사의 액션은 마치 홍길동의 도술과 임꺽정의 힘, 장길산의 땅재주, 장총찬의 무술, 로빈 훗과 월리엄 텔의 활 솜씨를 보는 듯한 통쾌함을 안겨 주었다. 여기에 첨단자동차와 영화에서 보는 FBI나 CIA를 방불케 하는 첨단시스템 활용, 블록버스터급 CG, 비현실적이지만 손가락만 갖다 대면 다 해결되는 현란한 해킹 등도 보는 눈을 즐겁게 했다. 이를테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거대한 악에 맞서는 슈퍼히어로들은 언제나 환영받는다는 것을 모범택시가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결국 시대와 나라를 떠나 사람들이 갈구하는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은 정해져 있다. 권력을 가진 자들과 그 권력에 기생해 뱃속을 불리는 무리들이 일순 제 세상을 만난 듯 횡행하지만 악의 검은 기운은 결코 손바닥으로 가려지지 않는다. 모범택시가 세계인들의 인생 드라마로 환영받은 이면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 주위에서 벌어지는 악들에 대해 사람들이 둔감하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비록 드라마 속에서일망정 악한들이 제대로 벌 받는 모습에서 현실적인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통쾌해하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권력 쥔 사람들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
(사)경주시종합자원봉사센터는 지난 22일 친절한 경자씨 23명과 함께 올바른 반려문화를 만들기 위한‘V-펫과 함께’자원봉사활동을 황성공원에서 진행했다. <사진> ‘V-펫과 함께’는 반려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반려인과 비반려인들 간의 갈등을 예방하고, 올바른 반려문화를 만들기 위해 기획한 프로그램으로 자원봉사자가 반려동물 기초 교육 및 펫티켓 교육을 듣고 직접 펫티켓 캠페인을 실시하는 자원봉사 프로그램이다. 이날 참여한 자원봉사자들은 반려견 기초교육 및 펫티켓 교육을 듣고, 펫티켓 안내서와 배변 봉투를 나눠주며 외출 시 목줄 착용, 배변 수거 등 반려인이 지켜야 할 펫티켓에 대해 알렸으며 캠페인 부스에서는 펫티켓 퀴즈 이벤트를 진행해 비반려인이 지켜야 할 펫티켓에 대해 알리는 활동을 진행했다. 캠페인에 참여한 자원봉사자는 “자원봉사자들이 진행하는 이번 펫티켓 캠페인에 함께할 수 있어서 뜻깊었고, 이번 캠페인을 통해 반려동물 에티켓에 대한 경주시민들의 인식이 높아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사)경주시종합자원봉사센터 외동거점센터는 지난 19일 구충제 500여개를 (사)외국인과 동행에 기증했다. <사진> 이날 구충제는 예천단샘로타리클럽에서 후원받았으며, (사)외국인과 동행은 이를 지역 내 외국인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사)외국인과 동행은 지역사회에서 내ㆍ외국인이 공생하고 함께 살아가는 살기 좋은 지역사회를 실현하고자 외국인봉사단 운영, 외국인 대상 교육 및 상담 등을 시행하고 있는 기관이다. 자원봉사거점센터는 지역사회에서 폭넓은 자원봉사활동 영역확보 및 자원봉사센터 서비스 제공을 위하여 지난해부터 북경주(안강읍ㆍ강동면)와 외동에서 운영되고 있다. 이종관 외동거점센터장은 “외국인을 위해 구충제 500여개를 기증한 예천단샘로타리클럽에 감사를 표하며, 외동거점센터 또한 내국인과 외국인이 모두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지역사회를 위해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전했다.
코레일 철로 길 ‘상생의 숲길’ 7번 국도를 따라 안강을 거쳐, 포항 유강터널을 지나면 탁 트인 형산강물이 나타나고, 강변에 아파트들이 우뚝합니다. 효자역에서 포항역으로 달리던 기찻길이 없어지고 그 길따라 새 숲길이 조성되어, 시민들의 산책길로 인기를 얻고 있어요. 포항시 그린웨이 프로젝트에 의거, 효자교회→효자역→유강 어린이공원→유강 정수장으로 이어지는 숲길(2.7㎞)로 ‘상생의 숲길’이라고 해요. 이 길을 걷고 쉬면서, 서로 마음을 터놓고 세상사는 얘기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이용하자는 뜻에서 이런 이름이 지어진 것 같아요. 코로나가 물러나면서 봄이 온 지금, 많은 사람들이 수만 그루의 나무가 줄지어 있는 이리로 나와, 걷고 운동하고, 달리고 있습니다. 이 길 따라 전해오는 몇 가지 이야기도 있습니다. ‘효자리 학생 전희 효자비’ 이야기 이 상생의 숲길이 시작되는 곳(효자교회 앞)에 새로 지은 비각이 있고, 그 안에 한문으로 ‘효자리 학생 전희’라고 쓴 비석이 우뚝 서 있습니다. 높이가 160여cm. 폭 40여cm 정도의 화강암 비석입니다. 효행(孝行)에 관해 본받을 만한 좋은 가치가 있어 포항시 향토문화유산 제 2020-1호로 지정되어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비(碑)만 근처 솔밭에 방치된 채로 있었는데. 1976년 10월에 효자초등교로 이전됐고, 2008년, 효자근린공원으로 옮겼으며, 2020년 다시 이곳으로 옮겨와 있습니다. 이 비에 대한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전해옵니다. 옛날 조선시대 연일면 ‘임강촌’에 ‘전희’라는 착하고 효성이 뛰어난 사람이 있었어요, 그가 소년 시절에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묘옆에 움막을 짓고 3년간이나 영위를 모시고 조석으로 호곡을 끊이질 않았습니다. 이 효성에 하늘이 감동하였는지 호랑이가 밤마다 여막에 나타나 그의 신변을 보호해주었고, 그의 모친이 세상을 뜬 후에도 3년 동안 호곡에, 밤이면 또 그런 일이 반복되었어요. 이 지극한 효성이 세상에 알려지자 경상감사가 효자상을 내렸으며, 그가 죽은 후에는 조정에서 효자비가 사액 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살던 마을은 당초 ‘버들골’이라 했는데, 마을 앞으로 흐르는 형산강 뚝 따라 버들이 길게 우거진 아름다운 마을로, 효자비를 받으면서 효자리 ‘유강’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전희 선비와 같은 후학들의 학풍이 전해와 그런지 ‘연일향교’가 있었고, 현재는 포항공대 및 관련학교, 포항 제철 학원은 물론, 올해는 경북과학고등학교까지 새로 지어 이곳으로 이전한다고 해, 여기가 경북에서 선진 첨단 면학 도시로 우뚝 자리 잡고 있어요. 상생의 숲길- 당산목(팽나무) 이야기 전희선생 비 옆에 하늘로 뻗은 당산목 한그루가 별도로 서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좋아하는 신목(神木)으로 여기는 ‘팽나무’입니다. 지금부터 100여년전 효자리 동네 어귀에 심은 것으로 전해와요. 팽나무는 마을 정자나무, 당산나무로 경상도와 전라도 지방에 많이 볼 수 있는 나무입니다. 겨울 추위와 태풍 등 자연재해에 강인하고 단단하여 예부터 선비들이 좋아해 정원에 많이 심기도 했지요. ‘이삭이 패다’, ‘꽃이 피다’라는 말에서 나온 이름으로 가볍고 튼튼해, 가구나 목조 가옥 건축에 잘 사용하며, 잔가지와 껍질로 ‘박수피’라 불리는 약재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이 나무는 효자동 SK아파트 진입도로 7번 국도변에 있던 걸 2017년 9월, 현재 이곳으로 옮겨 심었어요. 꽃말이 ‘그리움’으로 다산(多産)과 풍요(豐饒)를 비는 신목(神木)으로 알려져, 가끔 길가는 어르신들이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시곤 합니다. 이종기 문화유산해설사&시민전문기자 leejongi2@naver.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라이딩 경주시! 천년의 시간을 누비다!’를 주제로 한 2023 자전거의 날 기념행사가 지난 21일, 22일 양일간 황성공원 일원서 열렸다. 경주시와 행정안전부가 공동으로 주최·주관한 이 행사는 자전거 이용 활성화와 안전문화 확산을 위해 매년 열고 있다. 자전거 타기 좋은 4월과 두 바퀴를 상징하는 22일이 만나는 주간에 개최된다. 자전거의 날은 지난 2010년 6월 법정기념일로 지정됐다. 행사기간 동안 각 프로그램 별로 참여했다. 21일 기념식과 자전거 대행진을 시작으로, 이틀 간 △자전거 산업전 △두 바퀴로 누비는 경주(역사탐방) △그림그리기 대회 등 프로그램별로 어린이와 시민 등 1500여명이 참여했다. 기념식은 황성공원 실내체육관 앞 야외무대에서 주낙영 시장, 한창섭 행정안전부 차관 등 300여명이 참석해 청소년 8명에게 안전모를 전달하며 타실라 자전거를 탑승해 행사 슬로건 표출 퍼포먼스를 펼쳤다. 이어 30분 간 황성공원 입구~계림중 사거리~축구공원 삼거리~황성공원 코스로 한 바퀴(5㎞)를 도는 대행진을 진행하며 지구사랑을 몸소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 행사 기간 동안 실내체육관에서는 자전거 산업전이 열렸다. 국내 자전거 산업육성과 탄소중립 시대 자전거의 중요성 홍보를 위해 △역사관 △정책관 △공유자전거 △산업관 등 50개 부스를 선보였다. 특히 삼천리 자전거, 전기자전거 전문기업 벨로스타, 모덴 등이 참여한 완제품 자전거 부스에는 생활형부터 친환경 전기자전거까지 다양한 제품을 체험하게 해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또 공유자전거 전시관, 20여개 지자체의 아름다운 자전거길 전시관 등은 전국 지자체 자전거 정책을 국민들에게 널리 홍보하는 좋은 기회가 됐다. 행사 둘째 날인 22일에는 황성공원 내에서 경주미술협회 주관 ‘자전거의 날 기념 그림 그리기 대회’도 열렸다. 이외에도 부대행사로 이틀간 행사장 일원에는 지역 예술인의 버스킹, 자전거 안전교육, 발전기 체험, 어린이 자전거 안전 뮤지컬 등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제공했다. 경주시 관계자는 “자전거는 탄소중립시대의 친환경 교통수단이자 국민 건강관리, 여가활동 등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시에서도 자전거 이용활성화 정책을 적극 발굴하고 추진 하겠다”고 말했다.
인도의 대표적인 대서사시, 하나는 <마하바라타>(摩訶婆羅多, Mahabharata)이고 또 하나는 <라마야나>(罗摩衍那, Ramayana)이다. <마하바라타>는 위대한 (마하)바라타족의 왕위 계승 전쟁을 담은 서사시이고, <라마야나>는 라마왕의 일대기이로, 시기는 BC 14∼10세기경이다. 대서사시 <마하바라타>의 끝부분에는 36년간 태평성대로 이끌며 왕국을 다스리던 유디스티라(Yudisthira)왕은 나이가 들어 세상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하고 모든 짐을 내려놓고 아르주나의 손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동생들인 비마(Bhima), 아르주나(Arjuna)와 쌍둥이인 나쿨라(Nakula), 사하데바(Sahadeva)와 다섯 형제들의 공동 배우자인 드라우파디(Draupadi)여인과 함께 영생의 왕국인 천상을 찾아 히말라야 고봉준령 메루(Meru, 수미산須彌山)산을 향해 길을 떠나는 과정이 묘사되어 있다. 천상을 찾아 떠나는 일행 중에서 가장 먼저 추락한 사람은 드라우파디이다. 그는 평생 덕스럽지 않고 감정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천상을 오를 수 없었다. 그 다음 추락자는 사하데바로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고 최고의 지식자라고 착각하는 자만심 때문에 추락했다. 그 다음으로 나쿨라는 자신이 가장 잘생겼다는 편견을 갖고 살았기 때문에, 아르주나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영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추락했다. 마지막 남은 비마는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생각하지도 않고, 자신을 위한 너무 많은 욕심 때문에 함께 하지 못하고 추락했다. 일행들을 모두 잃은 유디스티라가 나무 밑에서 외로움과 추위와 굶주림으로 떨고 있을 때 갑자기 개(인도 고유종 ‘파리아, Pariah’)한 마리가 나타나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개와 유다스티라는 히말라야 정상에서 하늘로 가는 인드라의 전차(Rath Yatra)를 함께 찾아 헤맸다. 유디스티라가 먹을 것을 찾으면 개에게 주고, 개가 찾으면 유디스티라에게 주었다. 아무 것도 찾지 못하면 함께 굶었다. 드디어 개가 인드라의 전차가 숨겨진 비밀의 장소를 발견했다. 하늘로 가는 인드라의 전차 안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인드라 신의 목소리다. “어서 내 전차를 타고 하늘로 가자!” 유디스티라와 개는 함께 인드라의 전차에 승선하려 할 때 인드라는 “개는 늙고 야위었으며 쓸모없는데, 너는 왜 이 개를 데리고 가겠다고 하느냐. 저 개가 쉴 자리가 하늘엔 없다” 유디스티라는 한참 동안 개를 바라보고는 눈에 눈물 가득이 인드라 신에게 말한다. “신이시여! 제 개가 같이 못 간다면 저는 뒤돌아 다시 산을 내려가겠습니다. 이 개는 저의 가장 충직한 동반자였습니다. 항상 저를 도왔고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따랐습니다. 천상에서의 기쁨은 제가 개와 떨어져 살아야 하는 슬픔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제 개가 하늘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면 저도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산 아래로 개와 함께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멈춰라! 유디스티라여! 나는 너처럼 고귀한 인격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이것이 너의 마지막 시험이었다. 너는 하늘로 올라갈 자격이 있다” 그 순간, 개는 다르마(dharma, 달마 : Dharma, 達磨) 신으로 변신해 유디스티라를 축복해주었다.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의로움을 요구하는 다르마! 유디스티라는 결국 인드라의 전차에 올라 승천한다. 개가 상징하는 ‘다르마’는 인간의 참된 본질이다. 정의롭고 올바른 행위, 선업(善業)을 행하는 것이 참된 다르마를 수행하는 길이다. 인간의 논리로는 터무니없고 손해만 보는 행동이지만, 양심이 자신에게 해가 되더라도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다. 유디스티라와 고생을 함께 한 개가 행동하는 모습으로 낮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켤 때 취하는 자세인 가슴을 아래로 향하고, 엉덩이는 하늘을 향해 들어 올리고, 두 앞다리는 앞으로 뻗고, 등을 최대한 늘리는 모습이 아도무카스바나(Aadhomukhashvana)라는 요가로 승화되었다. 오늘날 용기와 정신건강을 북돋는 요가로 발전되어 전해지고 있다. 최석규 경주개 동경이 혈통보존연구원장 경주신문 독자위원회 위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김 장군 무덤 앞에 우뚝한 석수 金老墳前石獸危 천년 지나도 검기는 여전히 기괴하네 千年劍氣尙奇奇 윤건과 백우선에 전대의 공업 추억하고 綸巾白羽追前業 단려와 황초에 후인의 그리움 일어나네 丹荔黃蕉起後思 시를지어 장렬함 과시해준 길손은 있었지만 有客題詩誇壯烈 요리 무덤 가까이 들어간 사람은 없네 無人穿塚近要離 예전 천관사는 어디 있는지 아는가 天官寺古知何處 만고토록 미인의 성명까지 따라 전하네 萬古蛾眉姓字隨 조선 초 문신이자 학자인 서거정이 김유신 장군 무덤을 방문한 뒤 지은 ‘김유신 묘를 지나다’(過金庾信墓)란 시다. 그의 시문을 모은 ‘사가시집보유’(四佳詩集補遺) 권3에 실려 있다. 신라 17관등 뛰어 넘는 ‘태대각간’ 벼슬 얻어 김유신은 가야왕족의 후손으로 신라의 삼국통일에 결정적 역할을 한 장수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금관가야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증손인 그는 15세에 화랑이 됐고 자신의 누이와 결혼한 김춘추(태종무열왕)와 함께 삼국통일을 이뤘다. 진골 출신으로 귀족회의의 수뇌인 상대등이 되었으며 선덕여왕, 태종무열왕, 진성여왕, 문무왕 등 4명의 왕을 보필하면서 신라를 강국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김유신은 사후에 ‘흥무대왕’(興武大王)으로 추봉됐다. 그를 기리는 사당은 현재 여러 곳에 산재하는데 어떤 곳에선 산신 또는 천신으로 기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김유신의 정체성은 무엇보다도 무장으로서 김춘추와 협력해 삼국통일을 이뤘다는 데 있다. 김유신이 자신의 여동생을 김춘추에게 시집보내 훗날을 도모한 일화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김춘추는 ‘정사가 어지럽고 음란하다’는 이유로 폐위당한 진지왕의 손자로, 왕권 계승에선 배제돼 있었다. 그러나 당시는 왕위를 이을 만한 성골 출신 남성이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아, 성골 여성인 선덕여왕이 왕위를 잇고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진골 신분으로 차기 왕위에 오를 가능성이 있는 김춘추와 힘을 합쳐 훗날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게 김유신의 판단이었다. 김유신은 김춘추를 집으로 불러 공차기를 하다가 일부터 그의 옷고름을 밟아 떨어뜨렸다. 그러고는 여동생을 불러 옷고름을 달아주게 했다. 이를 계기로 동생 문희가 김춘추의 아이를 가졌으나 김춘추는 가야계라는 이유로 결혼을 주저했다. 그러자 김유신은 왕이 남산에 행차한 시간에 맞춰 여동생을 태워 죽인다며 연기를 피워 올렸다. 그렇게 김유신은 계략을 꾸며 왕의 주의를 끌어 결국 김춘추와 여동생의 결혼을 성사시켰다. 이후 김춘추의 뛰어난 정치적 수완과 김유신이 가진 군사력의 결합은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는 견인차가 됐다. 당시 신라 17관등 가운데 가장 높은 계급은 ‘각간’이었다. 그런데 김유신은 백제 멸망의 공으로 각간보다 높은 ‘대각간’의 지위를 얻었고, 고구려 멸망 직후엔 그보다 더 높은 ‘태대각간’의 벼슬을 얻었다. 기존의 17등급 위계보다 두 단계나 더 높은, 이른바 ‘특특’의 지위를 받은 것이다. 게다가 문무왕은 통일 후 전국의 말 목장 174곳을 왕실 22곳과 국가기관 10곳, 개인 등에 골고루 나눠주었다. 그런데 태대각간 김유신은 개인으로선 가장 많은 6곳을 받았다. 문무왕의 동생인 김인문 조차도 5곳에 불과했으니 김유신의 공적에 대한 위상이 얼마나 엄청났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삼국통일의 대업을 완성한 김유신이 죽자 국가차원의 장례식이 열렸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당시 문무왕은 조의금으로 비단 1000필과 조 2000섬을 냈다. 또, 군악대에서 북치고 피리 부는 사람 100명을 보내주었다. 담당부서에 명을 내려 비석을 세우도록 했고 공적과 명예를 기록했다. 김유신의 무덤을 지킬 백성들도 지정했다. 김유신의 나이 79세, 673년의 일이다. 죽은 뒤엔 ‘흥무대왕’(興武大王)으로 추봉 경주 충효동 송화산 자락에 있는 김유신묘는 지름이 30m에 달하는 원형의 무덤이다. 봉분 둘레에는 호석(護石, 무덤의 흙이 흘러내리는 것을 방지하는 돌)을 두르고 그 바깥에는 바닥에 넓은 돌을 깔았으며, 95㎝ 높이의 돌난간을 둘렀다. 무덤의 구조는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분)으로 추정된다. 1963년에 사적 제21호로 지정되었다. 묘는 지대석(地臺石, 지면을 다진 후 놓는 돌)을 바닥에 설치하고, 그 위로 면석과 탱석, 십이지신석으로 구성된 호석을 원형으로 둘렀다. 봉분 둘레엔 95㎝ 높이의 탱주석(撐柱石)을 세웠는데 소면석(素面石)과 신상석(神像石)을 교대로 배치했다. 신상석엔 십이지신상을 새겼다. 호석 외곽에는 박석(薄石, 넓적하고 얇은 돌)을 깔고 다시 박석 외곽으로 난간 지대석을 두고 그 위로 난간 석주를 설치하였다. 봉분의 앞쪽으로는 상석(床石)과 신도비(神道碑, 무덤 앞에 세우는 비석)를 세워놓았다. 한편, 1974년 사적 정비작업 중 납석(蠟石)으로 만든 토끼상과 말상 등 십이지상 2점이 발견됐다. 이들은 모두 갑옷을 입은 모습이었다. 현재 무덤 주변에 있는 석물들은 경주시 안강읍 육통리에 있는 흥덕왕릉과 비슷하다. 김유신이 흥덕왕 대에 흥무대왕(興武大王)으로 추봉되면서 그의 무덤을 새롭게 정비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게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측 견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김유신이 죽은 후 문무왕이 명령을 내려 비를 세우게 했다는 기록이 있어 원래 그의 무덤 주변에 비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나 발견되지는 않았다. 현재 무덤 앞 ‘신라태대각간김유신묘’(新羅太大角干金庾信墓)란 글자가 새겨진 비는 1710년(숙종 36년)에 경주부윤 남지훈이 세운 것이다. 그 맞은편엔 근대기인 1934년에 세운 ‘개국공순충장렬흥무대왕릉’(開國公純忠壯烈興武王陵)이란 글자가 새겨진 비가 있다. 무덤 호석에 새겨진 십이지신상을 눈여겨 볼만하다. 이를 보기 위해 김유신묘를 찾는 이들도 많다. 이곳 십이지신상은 특이하게도 다른 왕릉이 갑주무장상(甲胄武裝像)을 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평상복에 무기를 들고 있으며 모두 오른쪽을 향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김운 역사여행가
경북도는 경주를 비롯해 도내 수산업경영인 31명(어업인후계자 27, 우수경영인 4)을 선정했다. <사진> 경북 어업기술원은 수산업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년 어업인을 육성하고, 지역수산업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어업인들을 돕기 위해 수산업경영인을 선정하고 있다. 새롭게 선정된 수산업경영인은 남성 26명, 여성 5명이다. 연령별로는 20대 3명, 30대 11명, 40대 15명, 50대 1명, 60대 1명으로 40대가 가장 많이 선정됐다. 지역별로는 포항이 19명으로 가장 많았고, 경주 6명, 울진 4명, 영덕 1명, 상주 1명 순이다. 35세 미만 청년과 여성 신청자는 우선 선발했다. 수산업경영인 육성사업은 수산업에 종사할 의욕 있는 청·장년을 발굴해 안정적인 사업기반 조성 및 경영개선에 필요한 자금(융자)을 지원하고, 미래 수산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사업이다. 특히 올해부터는 어업인후계자의 융자지원 최대한도가 기존 3억원(연리 2%, 3년 거치 7년 균분상환)에서 5억원(연리 1.5% 또는 변동, 5년 거치 20년 균분상환)으로 확대됐다. 우수경영인의 융자지원 최대한도는 2억원(연리 1%, 5년 거치 10년 균분상환)이다. 신규 선정된 어업인후계자는 지난 24일부터 26일까지 경북도 어업기술원에서 실시하는 수산업경영인 교육을 이수했다. 이어 지원한도 내에서 어선·어구 구입, 양식장 부지 및 기자재 구입, 수산물 가공 기기 설치 등 용도에 맞게 자금을 사용할 수 있다. 경상북도 어업기술센터는 수산업·어촌의 혁신을 선도할 우수한 수산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1981년부터 올해까지 1900명의 수산경영인을 선정해 총 1210억원의 육성자금을 지원해왔다. 앞으로 선정인원을 더욱 확대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