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이라는 나이가 저만치 와 있다. 만으로 기준이 바뀌어 60이 되는 날이 조금 뒤로 밀렸지만 60이라는 숫자는 태산이 되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공자의 기준을 적용하면 50대는 지천명이고, 60대는 이순이라 했던가? 이를 현재에는 어떻게 적용해야 될까? 공자 시대의 나이 기준에 0.8 아니 0.7를 곱하면 될까? 그러면 현재의 나는 불혹일까, 지천명 초반일까?
최근 엔데믹으로 바뀌고 마스크로부터 자유로워짐과 함께 고등학교 서울동기회가 활성화 되고 있다. 내 삶에서 3년이라는 고등학교 시간이 이렇게 소중하고 귀한 인생동반자를 만들어 주었음이 새삼 감사하다. 그들을 생각하며 ‘내가 ~ 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가정형 질문과 ‘나는 ~ 해서 다행이야’라는 문장을 비교해본다.
영국 심리학자 브레이저 박사는 자신의 삶이 불행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자주하는 것을 알아냈다고 한다. ‘나한테 약 1억원만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아이도 남들처럼 공부를 잘하면 얼마나 좋을까?’, ‘잘 사는 사람과 결혼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미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등 주로 ‘내가 ~ 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가정형 질문에 매달려 스스로를 괴롭혔다고 한다.
이에 브레이저 박사는 그들에게 ‘나는 ~ 해서 다행이야’라는 문장을 매일 네 개씩 만들어 보라고 했다. 그들은 ‘난 두 다리로 걸을 수 있어 다행이야’, ‘난 오늘도 먹을 수 있고, 잠잘 곳이 있어 다행이야’, ‘난 두 눈으로 볼 수 있어 다행이야’ 등 문장을 매일 만들었으며 이 훈련을 한지 6개월 뒤 ‘여러분은 지금 행복합니까?’라는 물음에 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네 살아 있음 그 자체가 참 다행입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서울에서의 삶을 시작한 내가 ‘만약에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의 초중고를 나왔더라면’이라는 질문과 ‘나는 경주에서 태어나 초중고를 나와서 다행이다’라는 문장을 대비시켜 본다. 결과는 너무나 선명하다.
동기들을 만나면서 그동안 몰랐던 오랜 친구들의 진가를 새삼 깨닫게 되는 즐거움을 느낀다. ‘경주에서 태어나 초중고를 나와서 다행’인 즐거움이다. 그들과의 모임과 소통은 내게 행복과 에너지를 일으켜준다. 다양한 경험과 연륜을 가진 친구들은 과거의 추억에 머무른 채 그 속에서만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 속에서 새로운 자극과 아이디어, 코칭을 주고 받는다. 그야말로 인생의 즐거운 향연이 펼쳐지는 것이다.
더구나 코로나라는 장벽이 오래 친구들을 가로 막고 있었으니 친구는 가까이 있어야 하고 자주 만나야 하며 같은 취미면 더 좋다는 말도 자연스레 되새기게 된다.
조금씩 나이를 먹어가니 후회나 미련이 적을수록 좋은 인생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려면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여기며,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고 또한 나이가 들수록 삶을 반추해 어떤 잔고가 얼마나 남았는지 돌아보는 과정도 필요하다.
인생에는 ‘6대 잔고(殘高)’가 있다고 하는데 남길수록 좋은 것이 있는가 하면, 떠나기 전에 깨끗이 비워야 하는 것도 있다고 한다. 남겨야 할 세 가지는 그리움과 웃음과 감동이다. 이 세 가지를 인생에서 남길 수 있다면 그만큼 성공한 인생도 드물 것이다.
비워야 할 것 세 가지 마음의 빚과 응어리, 그리고 정이라고 한다. 나로 인해 눈물을 흘린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용서를 구해 마음의 빚을 비우고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고 우정과 애정과 인정의 잔고를 아낌없이 나눠줘야 한다는 것이다. 비단 나이 먹어서뿐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누구건 이 인생의 6대 잔고 중 채울 것은 수시로 채우고 비울 것은 수시로 비워간다면 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브레이저 박사의 제안처럼 매일 4가지의 ‘다행 인생’ 문장을 만들어 볼 것을 권한다. 다음 번 친구들을 만나서도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